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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세월 동안, 한국의 신작 드라마가 그 전에 방송됐던 일본이나 미국 드라마를 아무 허락 없이 베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무슨 새로운 드라마를 기획할 때 기존의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를 베끼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죠. 

 

물론 한국은 이미 전 세계를 기준으로 볼 때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콘텐트 강국입니다. 프라임 타임에 자국산 드라마를 편성하는 나라, 콘텐트 최강국인 미국 드라마가 프라임타임에 맥을 못 추는 나라는 생각보다 대단히 드문 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후반까지는 '외화'가 당당하게 핵심 시간대를 지켰죠.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한국의 영향을 받은 해외 콘텐트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늘 우리가 베끼고 받아들이던 일본 드라마 가운데서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표절이라고 불러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다는 겁니다.

 

 

 

혹시 오다기리 조 주연 드라마 '가족의 노래'를 보신 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방송국에서 일을 하다 보니 앞으로 방송하게 될지도 모르는 해외 콘텐트를 점검해 보는 것도 꽤 중요한 일이 됐습니다. 오다기리 조는 워낙 한국에 인기 높은 일본의 톱스타이기도 하고,'가족의 노래'는 특히  설정이 독특해 관심을 끌었지만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죠. 결국 8회만에 조기종영을 맞았습니다. 한 회가 대개 11회 정도에서 끝나는 일본 드라마의 특성상 조기종영하는 경우는 꽤 드문 편입니다.

 

아무튼 별 사전정보 없이 이 드라마를 보게 됐을 때 상당히 놀랐습니다. 놀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얼마전에 썼던 글입니다.

 

 

 

지난 4월 일본 후지TV에서 방송된 <가족의 노래>(家族のうた)라는 드라마가 있다.

오다기리 죠가 주인공을 맡았는데도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8회 만에 막을 내린 범작이지만, 한국 시청자들에겐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가 있었다.주인공 하야카와 세이기(오다기리 죠)는 10여 년 전 밴드의 일원으로 정상의 인기를 누렸던 인물. 하지만 밴드 해체 후 쇠퇴일로를 겪었고,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퇴물 뮤지션이 되어 있다.

충실한 매니저 미키(유스케 산타마리아)만이 하야카와를 감싸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이 전성기라는 착각에 빠진 하야카와는 늘 자존심만 앞세워 미키의 속을 썩인다.그러던 어느 날, 한 10대 소녀가 하야카와의 집 대문을 두드린다. 자신이 하야카와가 한 여성 팬과 벌인 하룻밤 불장난으로 태어난 딸이며, 엄마가 죽고 없으니 이제 하야카와와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하야카와는 몸서리를 치지만, 심지어 두 명의 소녀가 더 나타나 하야카와가 자신의 생부라고 주장한다.

 

 



한국 관객이라면 ‘어라…?’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한국 영화 <라디오 스타>(2006)와 <과속스캔들>(2008)을 본 사람에겐 너무나 익숙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과속스캔들>의 강형철 감독에게 일본 측과 판권에 관련된 협의가 있었는지를 확인했지만, 그는 <가족의 노래>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 드라마의 대본을 쓴 작가 사카이 마사아키의 히트작 중에는 묘하게 기시감을 주는 것들이 있다.

그의 2010년 히트작 <할아버지는 25살>은 빙하에 46년간 갇혔다가 살아 돌아온 주인공(후지와라 타츠야)이 자신의 할아버지뻘인 아들, 동갑인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967년 미국 ABC에서 방송된 시트콤 <두번째 백년>(The Second Hundred Years)도 빙하에 갇혔던 주인공이 아버지뻘의 아들, 동갑인 손자를 만나 벌이는 난리법석을 다루고 있다. 1970년대 국내에서도 ‘청춘 할아버지’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작품이다.

 

 

<할아버지는 25살>과 <청춘 할아버지>. 사실상 리메이크작입니다. 두 사진 모두

나이든 남자가 젊은 남자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관계입니다. 이 경우에는

아마도 <청춘 할아버지>의 판권을 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모르겠습니다.


사카이의 또 다른 히트작 <절대영도: 미해결사건 특명수사>는 오랫동안 미해결로 남아 있던 사건을 재수사하는 경찰 특설 팀의 이야기다. 긴 시간 아무도 손대지 않아 서류철이 차가워졌다는 뜻에서 제목이 붙은 미국 드라마 <콜드 케이스>(Cold Case)와 노골적인 공통점이 느껴진다. 사실 한국 드라마 작가들이 그동안 수없이 많은 미국, 일본 작가들의 창작을 은근히 도용하고 채용했던 점을 생각하면, <가족의 노래>의 구성이 아무리 뻔뻔스럽다 해도 함부로 뭐라 할 처지는 아니다(이준익 감독이나 강형철 감독 개인이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 측이 일본 방송계를 싸잡아 매도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뜻이다).

오히려 국내 창작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라도, 해외 저작물의 무단 도용이나 차용에 더욱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필요할 때다. 한국 드라마의 수준을 몇 년 끌어 올렸다는 평을 듣고 있는 <추적자 THE CHASER>(SBS)조차도 몇몇 미국 드라마와의 유사점을 지적받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물론 시야를 지난 20년, 30년간의 드라마 전체로 확대할 때 한국 드라마의 독창성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아울러 대다수 한국 드라마들이 ‘외국 작품의 영향’에 대한 의혹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우리도 대외적으로 한국산 콘텐츠의 도용을 떳떳하게 항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끝)

 

 

 

 

     <가족의 노래>와 <과속 스캔들>. 차이가 있다면 <가족의 노래>에서는 무려

      세 소녀가 '내가 당신의 딸'이라고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그 중 하나가 남매.

 

윗글에서는 한국 드라마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됐지만 사실 '가족의 노래'를 보다 보면 기시감이 드는 작품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휴 그랜트, 드루 배리모어 주연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입니다.

 

 

 

 

'한때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던 뮤지션 이야기'라는 기본적인 공통점 외에도 주인공의 밴드 시절 동료 가운데 현재 잘 나가는 프로듀서로 변신한 남자와 갈등을 겪는다는 , 주인공에게 당대의 여자 아이돌 가수에게 곡을 줘야 한다는 미션이 떨어지는 점, 그리고 주인공이 먹고 살기 위해 어린이 공원('가족의 노래'에서는 동물원) 관련 일을 하게 된다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정상적으로 후반까지 진행됐다면 공통점이 더 발견됐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튼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드라마 소재를 가져다 쓰는 일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당연한 일이 돼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들이 '우리는 후발국'이라는 이유로 그런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을 뿐이죠.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남의 것을 그냥 가져다 쓰는 일은 없어져야 할 시점이 온 듯 합니다. '가족의 노래'가 바로 그런 시대임을 보여주는 좋은 잣대가 된 듯 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분들이 그런 부분에서 떳떳해 져야 할 필요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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