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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식 상팔자]의 인기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시청률 10%를 우습게 아는 분들은 "10%? 10% 짜리 프로는 지상파에 널렸어"라고 말하지만 지상파에서의 5%와 비 지상파 채널에서의 10%는 참여의 질이 다릅니다.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아직 어지간해서 지상파 3사, 4개 채널의 테두리를 벗어냐려 하지 않습니다. 그 밖으로 나가는 데에는 그만치 '끙'하는 작심과 용기가 필요한 것이죠. 채널 번호도 잘 모릅니다. 대개 채널을 돌리다가 어 이거 재미있을거 같은데 하면 그냥 시청하는 식의 패턴이죠.

 

그런 상황에서 10%라는 건 엄청나게 목적성이 강한 시청자의 수가 만만찮음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습관적으로 틀어 놓는 채널이 아니라, 일부러 찾아 가서 본 채널이라는 얘기죠. 매일 신도림역을 지나가는 5만명이 '신도림역'에 부여하는 가치와, 단풍철에 설악산을 찾은 5만명이 '설악산'에 대해 부여하는 가치는 결코 같을 수가 없겠죠.

 

 

 

그런데 JTBC에서 방송되는 '무자식 상팔자'가 10%대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습니다. 화제도 뜨겁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의아해 지기도 합니다. 물론 드라마의 우수성이 의심스럽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드라마들과 비교해 볼 때, '무자식 상팔자'는 유난히도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심지어 방송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대체 왜 그런 걸까요.

 

문득, 어쩌면 우리는 이미 '김수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이미 2,30년 전부터.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최근 '무자식 상팔자'의 등장인물 가운데 준기(이도영)-수미(손나은) 커플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이런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무자식 상팔자, 학습된 가족 판타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고 나온 많은 사람들의 입에선 같은 말이 튀어나온다. “야, 정말 리얼하지 않냐?” 영화 전반부에 나오는 처절한 격전 장면에 대한 평이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의문. 과연 이 사람들은 대체 왜 이 영화를 ‘리얼하다’고 말할까. 관객 중 실제로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을 가 봤거나, 사람이 총에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본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관객은 이 영화가 리얼한지 리얼하지 않은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데도, “리얼하다”는 표현을 입에 올린다.

 

분명 어색한 일이다. 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전혀 보지 못한 장면을 ‘리얼하다’고 느끼게 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그 참상을 2차대전 기록영화와 라이프 사진집에서 익히 보았기 때문일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오마하 비치라는 격전지의 이름을 이 영화를 통해 안 사람이 대다수일 테니 말이다. 관객들이 느끼는 이 가짜 리얼함이야말로 스필버그가 얼마나 위대한 이야기꾼이자 사기꾼인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김수현의 가족드라마에서도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흔히 가부장적인 할아버지, 부모 자식간의 예의에 충실한 아버지, 어쨌든 아버지를 존경하는 손자 손녀 등으로 구성된 대가족이 등장한다. 3대의 한집 거주는 필수. 그런데 이런 대가족은 사실 50대 이하의 시청자들 중 절대 다수에겐 판타지다. 한국 사회는 40년 전인 70년대 초부터 이미 핵가족화를 시작했다. 20년 전엔 이미 조손(祖孫)이 한 집에 사는 가정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무자식 상팔자’ 속의 가족 관계를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심지어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는 호평까지 쏟아진다. 하지만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이 향수는 허구다. 대체 사람들은 어디서 그런 ‘존재한 적도 없는 향수’를 느끼는 것일까.

 

 

 

‘시나리오 마스터’라고 불리는 미국 USC의 로버트 맥키 교수가 한 말에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가족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작가를 가정하고, 잘 만들어진 서사가 읽는 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통찰력있게 묘사했다.

 

“읽어가는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내 가족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중략) 나는 단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할 뿐이지만 가족이라는 사회 형식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 살고 있는 관객들은 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중략) 나는 내가 느끼는 나만의 감정들을 표현하지만 관객 모두는 그 느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김수현의 가족 드라마는 가장 적절한 예로 떠오른다. ‘가짜 리얼리티’의 원천은 치밀한 디테일에서 비롯된 공감가는 인물 설정과 전개다. 시청자들 중 누군가는 드라마 속 장남과 맏며느리의 대화에서, 다른 누군가는 막내며느리와 둘째 며느리의 갈등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맏손녀와 엄마의 말다툼에서 자신이나 자기 가족 중 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물론 간과할 수 없는 한가지 요소가 더 있다. 우리가 이미 김수현의 드라마 속에서 성장했다는 점이다. 많은 시청자들의 경우, 지금 보고 있는 김수현 드라마 속의 어떤 대사는 30년 전 어느 드라마 속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 30여년 전에 시청률 50%~70%를 오갔던 그녀의 드라마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이란 이런 것’이라고 설득했고, 많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그 규범의 영향을 받아 행동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매트릭스‘ 속 아키텍트처럼) 우리의 삶의 일부를 그려낸 셈이다. 그런 김수현의 드라마를 보는 이들이 ‘언젠가 내가 실제로 겪었던 것 같은’ 향수를 느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굳이 보드리야르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끝)

 

 

 

 

극중 상황. 스물다섯 나이에 학력은 고졸, 바리스타 학원을 다니며 커피 장인으로서의 미래를 꿈꾸는 준기는 어느날 같은 커피전문점에서 알바를 하던 여고생 수미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수미는 부모의 이혼으로 외할머니와 함께 자라온 결손가정 출신의 '사실상' 가출 여고생입니다. 커피숍 알바로 근근이 고시원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처지죠. 하지만 천부적인 붙임성과 긍정적인 성격으로 준기를 사로잡습니다.

 

마침내 수미에 대한 동정이 그냥 동정이 아님을 알아차린 준기는 아직 미성년인 수미와 결혼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가 쫓겨날 위기에 처합니다. 당연한 어른들의 반대. 하지만 수미를 직접 만난 아버지-할아버지의 순으로 수미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결국 '3년간 연애 인턴 기간(?)'을 두고 준기와 수미의 관계가 반 허락을 받습니다.

 

 

 

현실에선 있을 법 하지 않을 일입니다. 변변한 직업 하나 없는 20대 중반의 아들이 아직 만 18세도 안 된 여고생과 결혼하겠다는데, 그걸 내버려 둘 부모가 있을 리 없죠.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요즘 분위기에서 그 나이에 결혼하겠다고 막무가내로 나설 젊은이도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한 배경은 철저한 판타지입니다. 과연 요즘 10대 여고생들 가운데 수미 같은 말투와 생각을 보여주는 아이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수미는 요즘의 '5,60대 어른들이 바라는 여고생'의 형상화죠. 혹은 70년대 쯤 존재했을 법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과 웃음을 잃지 않고 자립의 꿈을 키우는' 여고생이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로 옮겨 온 모습입니다.

 

 

 

(문득 1976년작 영화 '너무너무 좋은거야'의 실제 나이 16세 임예진이 떠오릅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부잣집에서 가정부로 일하지만 언젠가 항공사 여승무원이 되기를 꿈꾸는 쾌활하고 똘똘한 소녀 캐릭터죠. 사실상 '무자식 상팔자'의 수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아울러 수미와 준기의 관계를 허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할아버지(이순재)인데, 이 할아버지의 허락을 위해선 김수현 작가의 치밀한 배경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준기의 누나인 소영(엄지원)이 미혼모가 됐을 때 가족들은 여자보다는 그래도 남자가 운신하기 좋으니 태어난 아기를 '준기가 어디서 사고 쳐 낳아 들어온 아기'로 포장하자는 꾀를 냅니다. 사실 이 거짓말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결국은 우연한 기회에 그 거짓말이 드러납니다.

 

당연히 불호령을 내릴 줄 알았던 할아버지는 '죽을 죄를 지었다'는 소영의 눈물 앞에 아무 말 없이 현관을 나섭니다. 그 앞에 서 있던 것이 바로 준기.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준기의 뺨을 살짝 어루만지고 문 밖으로 나가죠.

 

대사 한마디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손짓은 '그러니까 네가 누나의 곤란함을 알고, 밖에서 아이를 낳아 들어온 칠칠치 못한 놈 행세를 하려고 했던 거구나. 착한 놈. 나에게 거짓말을 한 너희 애비와 삼촌들은 정말 죽일 놈이지만 너는 정말 가족을 위할 줄 아는 놈이구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던 것이죠.

 

그 뒤에도 온 가족은 '평소 밖에서 병든 강아지 하나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던' 준기의 심성에 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준기는 3남매의 막내. 맏이 소영은 판사에 둘째 성기(하석진)는 의사인데 비해 변변찮은 스펙입니다. 하지만 그런 '착함' 때문에 할아버지가 막내 손자를 바라보는 눈길은 각별한 것이죠. 또 그렇기 때문에 '조건이며 상황 따지지 않고' 준기가 데려온 수미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연 요즘 세상이 이렇게 '우리가 먹고 살만 하니 불쌍한 아이(수미-손나은) 하나 정도 품을 수 있다'는 쪽에 가까운지, 아니면 '있는 사람이 더 한' 쪽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하지만 이런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더 듣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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