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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Toledo. 실질적인 스페인의 역사적 수도. 현재의 수도 마드리드가 스페인의 수도가 된 것은 1561년, 펠리페 2세 때의 일이다. 그 전까지 마드리드는 작은 소읍에 불과했고, 스페인 역사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럼 스페인의 빛나는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가야 할 도시는 어디일까. 사실 바르셀로나 - 그라나다 - 세비야 - 마드리드까지 '꼭 가야 하는 도시'를 잡아 놓고 그 틈새에 어느 도시를 가야 할까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이슬람 유적의 코르도바와 절벽미의 론다, 피카소의 말라가, 백설공주의 도시(?) 세고비아와 요새 도시 쿠앵카 등등의 후보가 난무하는 가운데, 마드리드 일정에서 하루를 빼서 간다면 엘 에스코리알톨레도 중 골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엘 에스코리알 El Escorial 은 수도원/학교/묘지를 겸하고 있는 곳으로,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에 천도한 이후 이 도시를 기념하기 위해 강력한 역사적 기념물을 남기고자 하는 야망으로 건설한 거대한 구조물이다. 더욱이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의 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해서,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엘 에스코리알은 일단 교통이 좀 불편하고, 지명도가 그리 높지 않은 탓에 가 본 사람이 별로 없는데다, 대부분 장소들이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라 뭔가 자료를 참고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사진을 못 찍으면 가 봤다고 잘난체 하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 아무튼 도보 이동을 매우 싫어하는 동반자가 있는 이상 이동 경로가 복잡한 건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론은 : 첫번째 스페인 여행이라면 톨레도를 빼놓아선 안 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매우 잘 한 선택이었다.)

 

 

 

시내 중심부에서 가까운 남쪽의 아토차 Atocha 역에서 톨레도 행 AVE를 타는 것이 가장 손쉽고 빠른 길이다. 워낙 관광객이 많은 노선이라 그리 멀지 않은 길인데도 AVE가 다니고 있어 30분이면 도착한다. 왕복 요금은 50유로 가량 소요.

 

그래서 바쁘지 않은 사람이라면 왕복 10유로 정도면 해결되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단 버스를 탈 경우 1시간~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는 정보. 뭐 조금만 부지런했더라면 버스를 탈 수도 있었는데, 어찌 어찌 하다 보니 기차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도착한 톨레도. 물론 톨레도는 중세의 성곽 도시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므로 시내에 기차역이 있을 리 만무하다. 역은 성에서 차로 약 5~10분 거리에 있다. 걸어가는 것도 괜찮겠으나 30분 가량 소요. 별 고민 없이 택시를 탄다. 4~5 유로.

 

거리를 생각하면 아까울 수도 있겠지만 비싼 기차까지 탄 마당에.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톨레도 성문 앞에 도착한다. 저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톨레도가 시작된다.

 

 

 

택시를 타든 뭘 타든 바로 이 소코도베르 광장 Plaza de Zocodober 광장에서 내린다. 물론 광장이래봐야 농구 코트가 2개 이상 들어가기 힘든 크기다. 왼쪽의 'OPEN'이라고 써 있는 곳이 미니열차 Zocotren l의 출발/종착점. 자동차가 딸린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지 않았다면 꼭 타 봐야 할 시설이다. 

 

 

소코도베르 광장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모습. 그러니까 남쪽 대문을 통해 톨레도 성에 입성해 소코도베르 광장까지 걸어 올라왔다면 바로 이 각도에서 도시를 바라보게 된다. 관광객들은 저어기 보이는 맥도날드(고성에 웬 맥도날드냐고 놀리지 말 것. 바로 옆에는 KFC도 있다. 엄청나게 잘 된다) 매장에서 왼쪽 길이나 오른쪽 길을 택해 걸어 올라가며 관광을 시작하게 된다.

 

일단 왼쪽 길로 올라갔다. 이유는 이 도시의 알카자르를 보기 위해서.

 

 

대략 엇비슷하게 비교하자면, 알카자르는 스페인식 성곽 도시의 방어 핵심 구조물이다. 외성벽이 돌파되어 적이 성 안에 밀려들어왔다고 할 때 두번째 수성전을 전개할 만한, 도시 안의 도시라는 느낌이다. 일본식 성이라면 천수각의 의미라고나 할까.

 

한편으로는 - 혼자 생각이지만 - 대부분의 스페인식 도시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두 건물은 알카자르와 카테드랄(대성당)이다. 카테드랄이 카톨릭의 귄위를 상징한다면 알카자르는 왕이나 영주의 세속 권력을 상징한다. 그래서 영주들은 알카자르를 건설할 때 카테드랄에 기가 죽지 않도록, 보는 이들이 위압감을 느끼도록 심혈을 기울인 것이 아닐까 싶다.

 

카테드랄은 화려하며 장식적이고 우아하되 알카자르는 남성적이고, 군더더기 없이 강직한 미감을 지닌다. 특히 톨레도의 알카자르가 갖고 있는 이런 매력이 극대화된 형태가 바로 엘 에스코리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나는 왠지 이런 쪽에 매력을 느끼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현재 톨레도의 알카자르는 군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부를 들어가면, 이 거대한 건물이 얼마나 장구한 세월 동안 개축을 거듭해 오늘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적이 나온다.

 

 

 

그리고는 바로 전시 시작.

 

그런데 이 전시물이라는 것이 왕년의 밀덕 또는 어쨌든 잠재적 밀덕이라고 할 수 있는 10대~60대 남성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것인 반면, 여성 관람객들에게는 대체 이따위 것들을 왜 시간 내서 봐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들이라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처음부터 이런 식. 스페인을 천년간 장악했던 무어 인 기병의 기본 무장이다.

 

 

 

그리고 많이 보던 스페인식 풀 플레이트 Full Plate 갑옷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역시 사이즈는 작다.

 

 

이런 식의 챙 있는 투구는 불행히도 과거 우리가 익히 보아 온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선 별 감흥 없는 역할들의 전유물이었다. 특히나 영국 해적들을 영웅으로 그린 영화들에선 이 투구는 곧 '거드름은 피우지만 전투만 했다 하면 깨지는 스페인 세력'의 상징이었으니.

 

 

흥미로운 전시. 슬라이드를 이용해 역사적인 전투 현장을 저 노란색과 빨간색 부대 이동을 통해 설명한다. 바닥의 굴곡은 당연히 현지의 지형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역사 교육을 위한 박물관 등에선 충분히 활용할만한 모습이다.

 

 

 

 

대략 3층까지는 과거 알카자르의 자리에 있었던 옛 건물의 토대 발굴 현장을 같이 보여준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면,

 

 

 

현재의 알카자르가 위용을 드러낸다. 네 귀퉁이의 첨탑을 빼고 대략 5~6층 높이라는 느낌.

 

 

 

 

내다보면 그 주위는 모두 평원이다.

 

 

 

어쨌든 이렇게 생긴 건물.

 

 

 

 

 

 

 

 

 

 

정교하고 아름답다. 손 크기까지 고려해 맞춤 제작하지 않으면 사용이 불가능한 제품.

 

 

 

 

 

수많은 실전을 거치며 주인을 보호했을 갑주의 모습. (아니면 단순히 보관상의 실수로 때가 묻은...?)

 

 

이렇게 보면 저 갑옷의 주인공들이 그리 큰 체구는 아니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초기의 총기들은 외형만으로 참 매력적이다.

 

 

영어로는 Musketeer라고 불렀을 총기병. 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총사 銃士 들의 스페인판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건물의 4층 정도로 올라오면 갑자기 화려한 장식적 공간이 나타난다. 이른바 '하늘 위의 중정 Pateo' 인 셈이다.

 

 

 

 

 

 

 

 

과거 왕가의 문장을 전시한 곳에서 확 눈에 띄는 문장. 바로 합스부르크 가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다.

 

 

합스부르크 가라면 대개 오스트리아를 연상하지만 카를 5세(1500~1558, 스페인 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의 후손들은 대표적인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스페인 군주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이자 신성 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문장. 아무리 봐도 스페인의 역사적 전성기는 페르디난드-이사벨라 부부의 결혼과 스페인 전토 통일(그리고 비슷한 시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달), 카를로스 1세에서 펠리페 2세로 이어지는 15세기 말 ~ 16세기 시절로 여겨진다.

 

카를로스 1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 '미남 필립'과 페르디난드-이사벨라 부부의 유일한 혈육인 요아나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미 탄생과 동시에 네덜란드와 스페인 왕위를 확보했고,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가 죽으면서 신성 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다. 현재의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의 상당 부분과 이 나라들의 모든 해외 영토를 한 손에 거머줜 강대한 권력자가 등장한 것이다. 먼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카를 대제(나라에 따라 샤를마뉴, 찰스, 칼, 카를로스라고 발음만 다르게 불리는 이름들의 조상) 이후, 그리고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유럽의 패왕이 되기 전까지 이렇게 넒은 영토를 독차지한 유럽에 없었다.

 

물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독일/오스트리아에 기반을 둔 합스부르크 왕가의 종손이었기 때문이고, 그리 보면 카를로스 1세 자신의 스페인 혈통은 50%에 불과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스페인 사람들이 이 왕에게 굳이 그리 큰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비유를 하자면 명나라 황제가 조선 공주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조선과 명나라 모두의 황제가 되고, 그 후손들이 조선의 왕으로 이 땅을 다스린 뭐 그런 상황이라고 할까. 아무튼 스페인 왕이고 사후에도 아들 펠리페 2세를 비롯해 줄줄이 그 후손이 스페인 왕가를 차지한 데 대해 막상 스페인 사람들은 별 불만이 없는 것 같다. 어찌 보면 그런 논의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는지도.

 

(여담이지만 카를 5세의 후손들인 합스부르크 왕들의 대가 끊긴 1700년에는 역시 스페인 공주를 어머니로 두었지만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태어난 프랑스 왕가의 후손 필립 5세 -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손자인 - 가 스페인 왕이 되면서, 부르봉 왕가의 스페인 왕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렇듯 스페인 왕의 계보를 보면 국내파보다는 수입파가 훨씬 더 많은데, 대체 왜 그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졌는지는 공부가 짧아 모르겠다.)

 

어쨌든 결론: 쌍두 독수리 가슴의 방패가 저렇게 복잡한 것은 저 문장에 들어가야 할 상징물이 그가 다스린 지역의 수만큼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 멋진 형이다.

 

 

 

 

느닷없이 등장하지만 세고비아의 알카자르. 바로 디즈니랜드에 있는 '백설공주의 성'의 모델이 되었다는 그 성이다.

 

물론 뮌헨에 가면 백설공주의 성의 모델은 퓌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라고 한다(사실 이쪽이 더 비슷하다).

 

뭐, 세계의 온갖 성 중에서 가장 멋진 것들을 모아서 지었겠지, 당연히.

 

 

 

 

 

 

대표적인 기병들의 군도인 사브르. 어찌 보면 무어 인들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어느새 현대로 넘어오면 스페인 내전기의 무기들이 등장한다.

 

 

바로 스페인 인민전선군 - 그러니까 프랑코에 맞서 싸운 쪽의 기본 스타일이다.

 

 

 

스페인 내전에 대한 기록은 이번 여행에서 가 본 스페인 어디에도 짙게 남아 있었다.

 

 

전시물은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하루 종일 봐도 좋을 정도로 방대했다. 간혹 가다 이런 깜찍한 전시물도 있다.

 

나폴레옹 군대와의 전투 장면 묘사.

 

 

정원으로 나오면 보오얀 톨레도 교외가 펼쳐진다.

 

 

살짝 장난친 그림. 그리고 건물 밖에는 중세 ~ 근세의 무기들을 전시해 놓고 있는데 묘한 물건이 눈길을 끌었다.

 

 

아니 이 친숙함은 뭐지...?

 

 

 

 

 

영화 '신기전'을 보신 분들이면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가? 바로 조선시대의 다연장 로켓 무기인 화차의 모습이다. 그 중에서도 신기전(神機箭)을 장착한 화차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다.

 

 

 

정면으로 보면 더 많이 보던 그 물건이다.

 

 

이름도 Hwach. 화차의 공식 표기인 Hwacha와 한끗밖에 다르지 않으니 중국이나 일본의 비슷한 물건을 가져다 놓은 건 아닌 듯 싶다. 저 설명을 독할 능력은 없으나 동양에서 온 물건(oriental로 추측해 보건데) 이라는 것은 분명한 듯 하다. 대체 어쩌다 이 화차는 이역 만리, 톨레도 알카자르 앞에까지 와 있게 된 것인지.

 

물건의 인연이 기구하기도 하다. 아무튼 아방(我邦)의 흔적을 만리 밖에서 만나니 실로 반갑기 짝이 없었다.

(이건 뭐냐 열하일기도 아니고...)

 

알카자르 방문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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