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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귀국해서 가장 먼저 보게 된 TV 프로그램이 반찬 재활용에 대한 거였습니다. KBS 1TV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이더군요.

저녁 손님들은 거의 점심 손님들이 먹다 남긴 반찬을 먹게 된다, 점심도 12시30분 넘어서 가면 거의 재활용 반찬이다... 심지어 제육볶음은 먹다 남은 걸 그대로 남비에 부어 다시 볶아온다... 손님 상에 올랐던 김치는 당연히 찌개용이다...

솔직히 말해 먹고 남긴 순두부를 그자리에서 모아 다시 끓여 내놓는다든가, 먹던 밥을 모아 누룽지를 만든다든가 하는 몇몇 장면을 빼면 그리 놀랍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반 식당에서 손님들이 남기는 반찬을 모두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많았다는게 신기할 정도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그냥 먹고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밖에서 일하는 사람의 숙명이죠.)

여담이지만 얼마 전 세계적으로 깨끗한 걸로 유명하다는 일본의 고급 식당에서도 다른 손님이 먹던 회를 재활용했다는 보도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139557 를 보고 체념과 함께 '어디나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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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문제 심각합니다. 고쳐지면 당연히 좋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먹으러 다니는 사람들부터 고쳐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두가지. '싸고 반찬 많이 줄 수 있는 식당은 없다'와 '이유 없이 싸고 맛있는 식당은 없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

아직도 '백반 1인분에5000원인데 반찬이 20가지 나온다'고 좋아하든가, '1인분에 4000원인데 국물 맛이 기가 막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속으로는 답답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반찬 재활용 안 하고 5000원에 20가지씩 반찬 주면서 니가 장사 해 봐라. 안 망하나"라고 얘기를 해 줘도 막무가내더군요. "에이, 설마." 설마는 무슨 설맙니까. 반찬 20가지 깔아 놔 봐야 무게로 따지면 최하 30%, 평균 40%는 다시 상 물릴 때 나갑니다. 그걸 다 버리다간 재료 값도 재료값이지만 음식물 쓰레기 수거하다 일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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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한국 음식의 특성을 생각하면 식당 주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식당에서 함께 모여 밥을 먹을 때 가장 '위생적인' 그릇이라면 눈 앞에서 화력을 가해 끓여 먹는 찌개 종류일 겁니다. 어제 방송에선 이 찌개도 재료를 재활용할 경우 세균이나 미생물은 죽어도 독소가 사라지지 않아 위험하다고 했지만 그건 재료가 부패-변질된 경우를 좀 과장되게 얘기한 것이고 - 실제로 얼마 전까지 일식집 주방에서 나온 상한 생선으로 매운탕을 끓여 먹고 식중독으로 사망한 노숙자들 얘기가 뉴스에 실리기도 했죠 -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끓여 먹는 음식은 일단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찌개는 같이 간 사람들끼리 '위생적으로' 나눠 먹으라고 그릇을 주지만, 반찬 나눠 먹으라고 그릇 주는 식당은 못 봤습니다. 아, 앞접시를 주긴 하지만 그 앞접시에 자기가 밥 한끼 먹을 반찬을 한번에 다 덜어놓고 먹는 사람이 있나요? 다 자기가 먹던 젓가락으로 다시 집어다 먹죠. 그럼 이미 한국식 식탁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각자 자기 찬을 챙겨 먹기 전에는 이미 '남의 침 섞인 음식'을 먹는다는게 전제된 겁니다. 앞 사람이 방금 집어 먹은 콩나물이나 잡채 그릇에 젓가락을 갖다 대면서 이런 생각이 들지 않으시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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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따지면 내 앞에 있는 사람 - 내가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먹던 음식이나, 내가 얼굴을 보지 못한 다른 사람이 먹던 음식이나 위험성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얼굴을 보지 못한 그 어떤 사람이 치명적인 병에 걸려 있을 확률이 있다면, 그건 내 앞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도 같은 가능성이 있는 셈이죠. 특히 직업상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을 일도 숱한 저로서는 그런 위험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이 먹던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그 반찬을 다시 수거하고 나누는 과정에서 오염될 가능성이 더 불쾌하죠. 혹시라도 며칠씩 그렇게 방치되어 있는 반찬, 또는 설겆이통 바로 옆에 반찬통을 두고 있어서 개숫물이 튀어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반찬(방송에서 이런 식당이 나왔습니다)이 더 끔찍했습니다.

아무튼 반찬 재활용이라는 건 분명히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식당 주인들만 노력해서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먹는 사람이 일단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 음식을 남게 시키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은 항상 음식을 넉넉하게 시켜야 보기 좋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일단 돈 들어서 아깝고, 음식 남아서 아깝고, 그 음식이 또 비위생적으로 유통될테니 더더욱 아깝습니다. 특히 내가 돈 낼 때에는 더 아깝죠.

짠돌이 소리 듣더라도 음식 시킬 때 먹을 만큼만 시킵시다. 또 남이 돈 낼 거라고, 회삿 돈으로 먹는 거라고 팍팍 시키는 것도 안 될 일이죠. 남이 호기 있게 많이 시키더라도 옆에서 말려 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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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찬 많이 나오는 집, 푸짐한 집 너무 좋아하지 말자

아직도 특정 지방 출신들은 "우리 고향에선 라면 하나 시켜도 반찬이 네가지씩 나오는데"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 그 인정많은 고향 아주머니는 음식 아까운 것도 잘 아시는 분들일 겁니다. 당연히 먹던 반찬도 잘 아껴서 다시 쓰시겠죠.

요지는 반찬 가짓수 많은 집을 너무 선호하지 말라는 겁니다. 시킨 양보다 유난히 많이 나오는 집도 경계해야 합니다. 예전에 가던 집 중에 세종문화회관 뒤의 광화문집이라는 김치찌개집이 있었습니다. 요즘도 인터넷에 맛집이라고 가끔 소개되는 집입니다.

회사가 그 근처일 때 참 많이 갔습니다. 뭘 시켜도 2인분이 4인분처럼 나오고, 맛도 좋아서 다들 신나하며 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음식에서 재활용을 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오물이 두어번 나왔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절대 그 집에 가지 않게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맛집이라며 멀리서 찾아가는 사람이 있더군요.)

식당 주인들 바보 아닙니다. 일단 너무 푸짐한 집은 멀리 하세요.



* 설겆이를 도와줘라

사실 한때는 학교 앞 중국집이 단무지, 양파를 모아서 다시 쓰는 걸 보고 갈때마다 남은 단무지에 모두 구멍을 내고 나오던 적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주인이 와서 사정을 하더군요. "다른 손님들이 이상하게 본다. 앞으로 남은 단무지 다 그냥 버릴테니 제말 그러지 좀 말아 달라"구요. (물론 그 뒤로 고쳐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요즘도 시간 있으면 잔반은 모두 찌개나 전골 남비, 국그릇에 다 부어 놓고 나오곤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반찬을 다시 쓸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다기 보다, 손님이 '반찬 다시 쓰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는 걸 주인이 알 수 있어야 합니다.


* 재활용을 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진 집을 도와줘라

김치 깍두기며 밑반찬을 아예 손님 상에 두고, 알아서 덜어 먹으라는 집들도 요즘 점점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집에 가도 반찬을 산처럼 덜어 두고 다 남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러면 어느 식당 주인이 초심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일단 처음에 주는 반찬의 양이 적은 집들도 칭찬할만한 집입니다. 이런 집들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서라도 반찬 리필은 꼭 먹을 만큼만 시킵시다. 괜히 먹지도 못할 양을 욕심내고 달라고 해서 다 남기면 그보다 미안한 일이 없죠.




아무튼 이번 일이 전화위복이 될 식당들도 있을 겁니다. 어제 방송에 나온 토속촌(02-862-2027, 서울 관악구 신림 8동 소재라고 합니다. 간판을 보면 확인 가능할 겁니다) 같은 식당들은 이제 상당히 영업에 도움이 되겠죠.

자신있는 식당 주인들은 다같이 <우리 식당은 음식 재활용을 하지 않습니다>같은 간판을 써 붙이는 운동을 해도 좋을 겁니다. 그리고 뭣보다, 손님들이 믿을 수 있도록 바퀴달린 큰 잔반통 같은 도구를 활용해서, 상을 치울 때 보란듯이 거기에 잔반을 모아 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대신 이렇게 운영하는 식당의 운영비는 불가피하게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 5000원 하는 째개백반이 6000원, 7000원으로 올라가게 되겠죠. 하지만 어떤 경우든 싼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상표 달린 컴퓨터 안 쓰는 분들은 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뭐든 제대로 소비하려면 제대로 된 가격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게 아마 가장 큰 교훈일 겁니다. 돈은 안 내고 소비자 주권(?)만 주장하는 것도 문젭니다. 5000원짜리 물건 사면서 10만원짜리 애프터 서비스를 기대하거나, 20만원짜리 패키지 여행 가면서 100만원짜리 여행급의 품위를 요구하는 것도 사실 양심불량이죠. 소비자의 권리는 언제든 거기에 걸맞은 돈을 낼 때 의미를 갖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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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프로그램들은 다 좋은 취지에서 출발합니다. 다만 소비자를 위한다는 방송을 할 때에도, 항상 소비자들에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점을 확실히 알려 주는 내용이 포함되기를 바랍니다. 가끔씩 4000원짜리 햄버거에 쇠고기가 4000원어치 들어 있지 않다고 '고발'하는 식의 내용을 볼 때면 불편해지기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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