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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이라는 영화가 상영중입니다. 처음 들어보시는 분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정국 속에서 사실 다른 화제는 모두 묻혀버렸다고 봐도 좋을 2016년 겨울. 왠지 예술영화 취급을 받고 있는 이 영화는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직접 출연하는 역사 탐방 다큐멘터리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목의 '나의 살던 고향'은 바로 만주 벌판, 즉 오래 전 고구려를 세웠던 조상들이 살던 넓은 그 북쪽의 땅을 말합니다.

 

사실 저만 해도 연출을 맡은 류종헌 감독이 친한 형이 아니었다면 감히 이 영화를 보러 나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류종헌 감독은 본래 영화인이 아니고, 보시는 분들은 단번에 알아 보시겠지만 본래 영화로 상영할 것을 염두에 두고 촬영한 영상이 아니라는 것도 금세 드러납니다. 별다른 장비의 도움 없이 찍은 영상은 남극 탐험대나 에베레스트 등반대 보도 영상 못지 않게 흔들리고, 하다 못해 요즘은 모든 분야에서 필수인 드론을 이용한 공중 샷 하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은 사람을 빨아들이는 데가 있습니다. 혹시 역사에 좀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더 그럴 수도 있겠지만, 평소 역사를 멀리 하고 살던 분들이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지식의 다과는 이 영화를 감상하는 데 별 영향이 없는 듯 합니다.

 

 

 

영화 도입부. 도올선생은 높은 비사성 자락에서 발해만과 서해를 바라봅니다. 먼 옛날. 국사 교과서 어딘가에서 들어 본 비사성이라는 이름이 뇌세포를 자극합니다.

비사성은 요동반도의 맨 끝, 한때 중국 근대사에서 격동의 현장이었던 따롄(大連) 항 부근에 있습니다. 요동반도의 끝이라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중국 본토와 한반도를 잇는 근해 수로에서 최고의 요지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에서 거의 모든 중국 수군은 고구려 본토를 공격하기 전에 항상 비사성을 타격했습니다.

 

그 비사성을 시작으로 도올 선생은 압록강 북쪽, 환런과 지안 지역에 위치한 고구려 유적들을 한발 한발 짚어 갑니다. 가장 먼저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곳은 바로 환인의 오녀산성. 주몽이 처음으로 고구려를 세웠다는 졸본성(홀본성)의 오늘날 이름입니다.

 

저 먼 절벽 위가 바로 오래 전 졸본성이 있었던 성터입니다.

 

 

도올선생도 언급하지만 과거 유대인들이 로마에 맞서 마지막까지 싸웠떤 마사다 유적이나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유적인 바위 위의 성 시기리야를 연상시키는 그런 장대한 풍경입니다.

 

 

오녀산성을 위에서 촬영한 샷은 참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대략 이런 모습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함부로 적들이 침입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 지형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오녀산성을 보여주면서 도올선생은 말합니다. "역사라는 것도 그 땅을 밟아 보기 전까지는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입니다.

 

오녀산성의 장관을, 국내성/환도산성의 돌무더기를, 장군총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발해 상경의 무너진 성벽을 직접 보기 전의 고구려는 신화와 전설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대단히 막연한 그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국조 주몽이 오이 마리 협부라는 세 심복과 함께 거북이와 물고기가 모여 놓아 준 다리를 건너 그 어딘가에서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와, 눈앞에 펼쳐지는 오녀산성이라는 거대한, 실체가 있는 요새의 간극은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살던 고향은'에 역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고증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좀 아쉽기도 한데, 어찌 보면 또 크게 따질 일도 아니긴 합니다. 어차피 90분 짜리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고 고구려 역사를 꿰뚫을 것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정서'를 받아들이는 것이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프레임. 즉 세상을 보는 시선의 변화입니다. 우리가 항상 먼 북쪽이라고 생각했던 만주 지도를 뒤집어 놓고, 반대로 만주에서 남쪽을 향해 한반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남의 땅. 하지만 수많은 동포들이 살고 있기도 한 역사의 현장. 그 땅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한번이라도 궁금해 해 보신 분이라면 이 영상의 가치를 알아보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귀한 기회를 주신 도올 선생과 류종헌 감독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게 됩니다.

지금도 이 영화는 상영되고 있고, GV도 잇달아 열리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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