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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증이라는 바이러스가 인터넷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배운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모두 걸립니다.

아무래도 남의 글이니까 휙 보고 만다는 생각이 이 바이러스에게는 너무나 좋은 환경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앞서면 남의 글이 무슨 내용인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특히 블로그 월드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옳은 주장이든, 무리한 주장이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 남이 해 놓은 말을 거기에 끼워 맞추는 건 참 쓴웃음을 짓게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런 일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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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블로거 뉴스 베스트 화면에 두 개의 글이 떠 있습니다. 하나는 '일본 에로영화 후원하는 영진위'(5번)라는 글이고, 또 하나는 '스포츠서울 글에 대한 반론'(9번)이라는 제목입니다.

두 개의 글은 모두 핑크영화제라는 행사에 관련된 것입니다. 이 행사는 11월1일부터 28일까지 전국 시너스 체인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핑크영화가 뭔지 생소한 분들에게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극장에서 상영되는 일본제 준 포르노 영화'라고 생각하시는게 제일 적절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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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일반 극장용 영화와 비디오-DVD로 나오는 AV 영화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장르죠. 일본만의 독특한 장르인데 철저한 저예산 체제라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대신 일반 극장용 영화에서 볼 수 없는 과감한 표현이나 상상력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죠. 또 그냥 포르노라고 치부하기에는 작품성이나 수준에 대한 자기검열이 만만치 않습니다.

어쨌든 이런 영화를 좀 기형적으로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 들여온다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핑크영화제도 사회 일각의 시선을 의식해 '여성 관객들을 위한 영화제'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남자 관객들은 매주 수요일, 그것도 여성을 동반한 경우에만 입장할 수 있다는군요.



아무튼 이런 행사에 대한 비판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글을 '원글'이라고 부르겠습니다.)

http://press.sportsseoul.com/471

제목만 보면 '에로영화같은 걸 왜 후원해?'라는 뜻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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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비판 글에 대한 반박이 나왔죠. (편의상 이 글을 '비판글'이라고 부릅니다.)

http://blog.daum.net/songcine81/137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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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두 글을 모두 읽어 보면, 비판글의 방향이 영 석연찮다는 걸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비판의 대상이 된 원글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립니다.

비판글의 논조는 "스포츠서울 블로그에 실린 글이 핑크영화제를 비판하고 있다. 핑크영화가 일본의 저질 에로 영화인데 그걸 한국의 영진위가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핑크영화는 그런 후지고 나쁜 영화가 아니다. 게다가 니들이 그걸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자기 자신을 돌아봐라" 라는 식입니다.

그런데 원글을 잠시만 살펴보면,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원글은 핑크영화제가 '일본의 저질 에로 영화를 들여오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에로 영화는 수많은 제도적-비 제도적 장벽때문에 고사위기에 있는데, 한국에서 찍는다면 오만 난리가 다 날 영화를 일본에서 들여오는 행사를 영진위가 후원한다는 데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한마디로 일본에서는 이런 영화를 들여다 영화제까지 하는데, 한국에서는 왜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지 않느냐는 비분강개가 담긴 글이죠.

원글의 일부분입니다.

에로영화 제작현장을 지켜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국의 에로영화는 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놓여져 있다. 가장 중요한 창작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분야가 바로 에로영화다. 영등위의 서슬퍼런 칼날은 유독 에로영화에만 잔혹하다.

이번 핑크영화제에서 예매가 쇄도한다는 '노예- 누가 뭐래도 좋은 나의 이야기'가 에로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가위질을 하고 재심, 삼심을 거쳐도 심의 불가다. 새디즘, 매저키즘 같은 변태성향의 스토리는 에로영화에서 절대 다룰 수 없다.

동성애도 안되고 2대1 성행위도 안된다. 에로영화는 안되는 것 투성이다. 그런 판국에 진정한  하드코어(포르노를 두개로 분류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성행위 묘사가 매우 강한 쪽을 의미한다. 상대적으로 약한 것은 소프트코어라고 한다)라는 일본 핑크영화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원글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습니다.

"일본 핑크무비도 예술이랍시고 영화제까지 여는데 더 말해서 뭣하랴. 억울하면 에로영화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덕분에 한국 에로영화의 숨통도 사실 얼마 남지 않는 것 같다. 신인 에로배우가 없어 더 이상 찍어댈 것도 없다는 것이 감독들의 하소연이다. 좋겠다. 에로영화가 없어져서. 대신 그 자리에 일본 음란물을 들여와서. 실제로 요즘 케이블TV 등을 보면 일본 핑크영화에서부터 포르노물까지 다양하게 줄창 나오고 있다."


아마 이 부분만 봐도 원글이 어떤 취지인지는 충분히 짐작하실만 할 겁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비판글은 이렇게 보고고 있습니다.  



"스포츠서울 블로그의 글로 보면 모든 애로 영화들은 벌거벗은 여자들이 남성의 그거(?)나 열심히 빨고 있는 그런 변태적 성향의 영화로만 생각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들이 블로그 글에 올린 스틸컷만 보면 딱 그런 분위기이다. 한마디로 한심한 소리이다." (오자나 비문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남의 다리 긁는 비판입니다. 원글은 핑크영화를 매도하지도 않았고, 변태적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걸 왜 한국 에로영화에는 허용하지 않느냐'고 분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열심히 '핑크영화가 왜 저질이 아닌가'를 설명하는 건 정말 초점 없는 얘기죠.

어느 쪽의 주장이 옳고 그르다에 대한 얘기를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무튼 '비판'이라는 간판을 걸 때에는, 상대방이 어떤 주장을 하는 지는 제대로 이해하고 하시길 바랍니다.



p.s. 사실 이 분만 갖고 뭐라 할 일은 아니죠. 워낙 이런 풍조가 퍼져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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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 그나자나 저도 한번 가보고 싶은데 남자는 안된다니 대략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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