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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연예인 강호동을 사랑하는 것은 무엇보다 친근감 때문입니다. 가끔은 MC몽이나 유세윤을 폭력으로 제압(?)하기도 하고, 처음 정했던 조건에 쉽게 승복하지 않은 채 끈질기게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억지를 부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그의 밑바닥에는 대중에 대한, 또 함께 출연하는 다른 연예인들에 대한 선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요소들은 방송인 강호동을, 가끔은 거칠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김구라나 신정환과는 다른 종류의 방송을 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합니다.

하지만 18일 방송된 '무릎팍도사'에서 유세윤과 강호동의 모습은 그런 부분에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바로 늘 웃음의 대상이 되는 권상우의 혀짧은 발음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입니다. 권상우도 웃어 넘겼지만, 사소하게 넘어가기에는 그 대목이 영 마음에 걸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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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윤은 처음부터 '덩서야 한덩서'를 시작으로 '천국의 계단(한정서는 이 드라마에서 최지우의 이름)'에 나오는 대사를 흉내내며 권상우를 자극했습니다. 이걸로 끝나지 않고, 권상우의 프로필을 낭독할 때에도 마지막 순간에 '다당은 움디기는 거야(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유명한 권상우의 CF 멘트를 흉내냈죠.

이걸 본 권상우가 기가 차다는 듯 웃자 강호동은 사과한답시고 엎드려서 '데송합니다. 데송합니다'를 연발했습니다.

뭐 재미있다고 웃어넘길 수도 있는 부분이고, 언뜻 암시된 대로 권상우와 강호동이 사석(같은 사우나에 다닌다더군요)에서는 형 아우 하고 지내는 격의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편안한 말투가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발음 부분은 배우로서의 권상우에게 계속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되어 온 부분이고, 어찌 보면 태생적인 약점입니다. 권상우는 데뷔 이후 줄곧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결과 현재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이 약점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입니다(물론 흥분하거나 긴장된 장면의 연기 때에는 가끔 다시 살아나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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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발음으로 놀리기'는 '천국의 계단' 때의 상대역이었던 최지우가 더 많이 당한 바 있습니다. 있는 자리건 없는 자리건, 화를 잘 내지 않는 최지우의 성품을 이용해 참 많은 사람들이 이 약점을 놀려먹었죠.

아무튼 이런 부분들은 당사자의 노력으로 고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보는 사람을 그리 즐겁지 않게 합니다. 변명거리는 많습니다. 언뜻 완벽해 보이는 권상우에게도 그런 약점이 있다는 사실이 일반인들을 좀 더 행복하게 할 지도 모르고, 권상우 본인이 웃어 넘겼는데 왜 다른 사람이 난리냐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진짜 코미디란 남의 약점보다는 나의 약점을, 남의 부족한 점보다는 장점을 이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수근과 정명훈이 '키컸으면'을 외칠 때 웃을 수 있었던 건 자신들의 약점을 코미디로 승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정종철이나 오지헌이 자신들의 외모를, 대성과 김종국이 자신들의 작은 눈을, 이윤석이나 윤종신이 자신들의 건강을 거론하며 웃음의 소재로 삼는 건 페어 플레이지만, 이런 약점들을 다른 사람들이 캐내 공격하는 건 아무래도 반칙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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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에게 혼전 임신을 부정한 거짓말을 추궁하거나, 손태영의 옛날 애인이던 신현준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어보거나, 이런 부분들은 토크 프로그램의 본령이고 권상우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에 이미 감수했을 부분들이니 여기서 예의를 따지는 건 좀 빗나간 행동입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보다는 혀짧은 소리의 흉내가 훨씬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최근 몇년 사이 막말과 예의상실이 예능 프로그램의 기본처럼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경험담을 이용해 남을 스토커로 몰거나(김세아 - 김민준 사건이죠), 방송에서 '개새끼'라는 욕을 하고도 아직 아무런 조치도 없는 방송(상상플러스는 여전히 잘 돌아갑니다)이 만연하고 있는데, 그나마 품위를 유지하고 있던 국가대표 방송인 강호동까지 그런 대열에 합류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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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날 방송 최고의 유머는 권상우의 '숙면'이었습니다. 자신과 송승헌이 출연한 영화 '숙명'이 전날 잠을 못 잔 관객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했다며 '숙명'이 아니라 '숙면(영어로는 Deep Sleep이라고 친절하게 영역까지)'이라고 빗대더군요. 그러고 보면 '자신의 약점을 승화시킨 개그'의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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