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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4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국외로 탈출한 지사들과 중국에 거주하던 독립운동가들이 한데 뭉쳐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세운 날이죠. 또 올해가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0주년이기도 해서 백범의 유품 19점을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품 중에는 어린 시절부터 익히 들었던 '윤봉길 의사와 바꾼 회중시계'도 있더군요.

마침 매주 칼럼을 마감해야 하는 금요일에 이런 발표가 있었는데 이 시계 말고 두 개의 시계가 머리 속을 스쳐 갔습니다. 모두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람들의 염원과 관련된 시계들입니다. 특히나 그중 한 시계는 정 반대의 의미를 가진 시계더군요. 그래서 이 시계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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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계

미국 워싱턴DC의 국립역사박물관에는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유품인 회중시계가 있다. 이 시계 안에는 감춰진 메시지가 있다는 전설이 내려왔다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3월 11일 그 전설이 사실이라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시계 수리공 조너선 딜런에 의해 1861년 4월 13일 새겨진 메시지는 “포트 섬터가 반란군(남군)에 의해 공격당했다. 우리에게 정부를 갖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내용이었다. 남북전쟁 발발 당시, 마침 딜런은 대통령의 시계를 수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초의 우국충정이 남북전쟁 기간 동안 대통령의 품 안에 늘 간직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묘한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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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인 오는 13일을 앞두고 백범 김구 선생의 유물 19점을 문화재 등록 예고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직전 김구 선생과 바꿨다는 시계다. 『백범일지』는 거사일인 1932년 4월 29일 아침의 정경을 이렇게 전한다.

“식사도 끝나고 시계가 일곱 점을 친다. 윤군은 자기의 시계를 꺼내어 주며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 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하기로, 나도 기념으로 윤군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는 윤군에게 주었다.”

살아서 조국의 광복까지 매진할 사람과 몸은 버리고 이름만을 청사에 남길 사람. 두 장부의 맞잡은 손길을 따라 전해진 것이 시계만은 아니었을 것이고 보면 문화재 지정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문득 꽤 유명하되, 그리 아름답지는 않은 사연을 담은 시계 하나가 떠오른다. 고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10·26의 두 달 전인 1979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의 62회 생일 선물용으로 스위스의 명품 시계 메이커에 2만 달러짜리 순금 손목시계를 주문했다. 이렇게 충성을 과시하려던 인물이 어떻게 시해자로 변신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결국 이 시계는 정작 선물로 쓰여야 했을 그해 11월 14일에는 주문한 사람도, 받을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비운의 미아가 됐다.

두 개의 시계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도 참 이채롭다. 한 시계에 구국의 신념과 사나이들의 정이 담겨 있다면, 다른 시계가 보여주는 것은 권력을 향한 인간의 헛된 야심과 표변하는 인심뿐이다. 가능하면 두 개의 시계를 어디엔가 나란히 전시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을 더욱 깊게 해주지 않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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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WBC 얘기를 쓸 때, 척 웨프너가 알리와 경기한 날짜가 한국이 WBC에서 일본과 결승전을 벌인 날짜와 같은 3월 24일이라는 걸 알고 참 신기하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도 날짜가 겹치더군요. 조너선 딜런이 링컨 대통령의 시계를 수리하고 있던 날은 4월 13일, 바로 남군이 포트 섬터를 공격해 미국 남북전쟁이 발발한 1861년 4월 12일의 바로 다음 날입니다. 그리고 맨 처음에도 얘기했듯 4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기념일이죠. 따로 따로 떼놓고 보면 별 상관 없는 날이지만, 이렇게 한 칼럼 안에 모아 놓고 보니 참 희한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링컨 대통령은 딜런이 자신의 시계 안에 어떤 메시지를 남겼는지 전혀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는 한 시계수리공의 마음이 위대한 대통령에게 금속 표피를 뚫고 전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절로 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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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시계 이야기는 아주 어린 시절 교과서나 학교에서 주는 교양도서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한정된 내용 때문에 좀 축소했지만 저 앞 뒤에도 이야기가 조금씩 붙어 있습니다. 다 복원하자면 이렇습니다.



이튿날 4월 29일이었다. 나는 김해산 집에서 윤봉길 군과 최후의 식탁을 같이하였다. 밥을 먹으며 가만히 윤군의 기색을 살펴보니 그 태연자약함에 마치 농부가 일터에 나가려고 넉넉히 밥을 먹는 모양과 같았다.
김해산 군은 윤군의 침착하고도 용감한 태도를 보고 조용히 내게 이런 권고를 하였다.
"지금 상해에 민족 체면을 위하여 할 일이 많은데 윤군같은 인물을 구태여 다른 데로 보낼 것은 무엇이요?"
"일은 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좋지. 윤군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내나 들어봅시다."
나는 김해산 군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식사도 끝나고 시계가 일곱점을 친다. 윤군은 자기의 시계를 꺼내어 주며,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하기로 나도 기념으로 윤군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는 윤군에게 주었다.
식장을 향하여 떠나는 윤군은 자동차에 앉아서 그가 가졌던 돈을 꺼내어 준다.
"왜 돈은 좀 가지면 어떻소?"
하고 묻는 내 말에 윤군은
"자동차 값 주고도 5, 6원은 남아요."
할 즈음에 자동차가 움직였다. 나는 목이 메인 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하였더니 윤군은 차장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향하여 숙였다. 자동차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천하 영웅 윤봉길을 싣고 홍구공원으로 향하여 달렸다.
(이하 생략)


'제 시계는 한 시간 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라는 말을 읽으면 아직도 가슴이 찡 해 옵니다. 목숨을 버리기로 각오한 남자의 결연하면서도 담담한 의지가 느껴지는 듯 합니다. 어설픈 호기와는 다른 진정한 용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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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라는 구멍을 통해서 보자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선물하려 했던 시계는 이와 정 반대인 헛된 의리와 충성의 본질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박 전 대통령과 김재규 전 부장도 혁명을 함께 할 때에는 나름대로 사나이의 의리로 뭉쳐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죠.

이 시계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10.26으로부터 10년이 지난 1989년, 박근혜 의원이 MBC TV에서 가진 박경재 변호사와의 대담 프로그램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뒤로 몇몇 시사지들이 이 시계와 관련된 추적 보도를 한 적도 있죠. 혹시 더 빠른 기록이 있는지 아시는 분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 대담에서 박근혜 의원은 '10.26은 김재규가 오래 전부터 기회를 노려 계획하던 일'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 시계 이야기를 합니다.


- 그러니까, 그 우발적이라는게 아주 무모한, 자기 자신이 앞으로 이 사건으로 해서 사형을 당한다던가, 이런 생각을 안하고 했다 이런 말씀이신지요. 그 10.26 저녁 궁정동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지 사전에 김재규 피고인이 법정에서 얘기한 그대로 건설부 장관을 할 때, 또 그후에도 계속 기회를 노렸다, 이런 말은 믿지 않으신다는 말씀이군요. 
"아, 말이 안돼요. 아버지 생신이 11월 14일 이거든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제가 물건 을 하나받은게 있어요. 11월 14일 조금 못돼선가 그런데, 김재규 그 당시 정보부장이 아버지 께 드리려고 준비했던 시계 선물이에요 몸에다 이렇게 차는 선물인데 어쨌든 아버지께 좋은 선물을 드리기 위해서 금시계로, 거기에다 '생신을 축하드린다'는 글씨도 박고 또 아버지가 훈장을 하고 계신 모습을 새겼고, 국내에서 선물을 준비해도 될 것을 스위스의 유명회사에 다 일부러 맞춰서 11월 14일날 드리려고 했었던 거죠. 그런 선물까지 준비할 필요가 뭐 있 었겠어요."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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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서 이보다 더 권력의 허망함을 보여주는 소도구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윗글에 쓴 대로 두 개의 시계가 보여주는 대조가 참 극명하다는 생각입니다. 한쪽은 명품 금시계, 한쪽은 가난한 독립 지사의 시계지만 두 개의 시계가 나란히 있을 때 정작 빛날 것이 어느 쪽인지는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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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매헌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인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는 지금도 저런 비석이 서 있습니다. 저 장소에 직접 갔을 때의 일입니다. 한국에서 간 방문단이 폭탄이 터졌던 자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일행 중의 미녀 한 분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이 앞길로 기차가 다녔던 건가요?"

약 2초 동안의 침묵. 아니 공원 한 복판에서 웬 기차?

"...기차에서 내리는 걸 총으로 쏜 거 아니었어요?"

그 다음부터 이 미녀의 별명은 '미스 돌고래'가 되었다는 추억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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