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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는 개봉 전부터 큰 우려의 대상이 됐던 영화입니다. 당초 올 여름을 겨냥한 한국 영화계의 카드로는 '해운대', '차우', '국가대표'가 있었죠. 이 가운데서도 '해운대'는 한국 영화 사상 초유의 재난 블록버스터로 큰 주목을 끌었습니다.

아무리 CG 기술이 발달했다 한들 관객들의 눈높이 역시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기 때문에 재난 블록버스터란 엔간한 제작비로는 감히 시도하기 힘든 장르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처음 공개된 예고편의 수준은 2년 동안 '해운대'를 기다렸던 관객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대재난이 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오가곤 했죠.

하지만 극장에서 개봉된 '해운대'는 이런 사람들의 걱정을 상당 부분 가라앉히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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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과 '해운대'의 초기 홍보 방향은 '재난'에 올인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다시 말해 이 무렵까지 대중들에게 홍보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설경구도, 하지원도, 박중훈도 아닌 '쓰나미'였던 것이죠.

하지만 이건 대단히 위험하고 초보적인 생각입니다. 어떤 재난 영화도 '재난'을 주인공으로 해서 성공한 적은 없습니다. 재난 영화의 고전들인 스티브 맥퀸의 '타워링'이나 진 해크만의 '포세이돈 어드벤처(리메이크 말고 오리지날)'에서 비교적 최근작인 '투모로우'에 이르기까지, 재난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져야 할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건 제왕 제임스 카메론이 '타이타닉'의 대사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속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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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어떤 재난영화도 재난을 보여주는 걸로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습니다. 쓰나미가 덮쳐 폐허가 된 파라다이스 호텔이나 씨클라우드 호텔의 모습은 한 몇초 정도 사람들을 '아' 하게 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이 영화가 성공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결국 그 재난에 연루된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어떻게 영화에 녹아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재난'만을 강조한 예고편에 쏟아진 혹평이 본편 영화 '해운대'가 지금의 모습으로 개봉되는 데에는 상당한 공을 세웠다고 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한 관계자는 "예고편에 대한 반응을 보고 나서 편집 방향이 상당 부분 수정됐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아마도 이때 휴먼 스토리에 대한 부분이 좀 더 강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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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입니다.

2004년, 원양어선을 타고 가다가 쓰나미에 휘말린 만식(설경구)은 같이 타고 있던 연희(하지원) 아버지를 구하지 못하고 늘 마음의 짐을 느낍니다. 2009년. 연희는 해운대에서 낮에는 생선 행상, 밤에는 횟집을 운영하며 어렵게 살고 있고, 이웃 상가 번영회장이 된 만식은 늘 안쓰러운 눈으로 연희를 바라봅니다.

지질학자 김휘박사(박중훈)는 홋카이도 인근에서부터 차츰 남하하는 해저 지진의 진앙지를 보고 한반도에 쓰나미가 닥칠 가능성을 경고하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특히 해운대에서 각국 VIP들과 함께 포럼을 준비하고 있는 김박사의 전처 유진(엄정화)은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김박사가 짜증스러울 뿐입니다.

만식의 동생인 구조대원 형식(이민기)은 서울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러온 삼수생 희미(강예원)를 구해 주다가 엉뚱한 인연이 닿게 됩니다. 이런 세 커플의 사연 위로 쓰나미의 그림자가 점점 다가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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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재난영화지만 진짜 재난이 닥치는 것은 영화가 시작하고 90분이 지나서입니다. 그 전까지 세 커플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사연이 구구절절 소개됩니다. 이 부분에서 윤제균 감독은 충분히 재능을 발휘합니다.

지나치게 신파조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지만, 이런 영화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야말로 신파 스토리라는 것은 지난 세기부터 시작된 재난영화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타이타닉' 만 생각해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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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일일히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베테랑 배우들답게 다들 자기 몫을 해 주지만, 아마도 이 영화를 통해 가장 득을 본 사람을 꼽으라면 백수건달 동춘 역의 김인권과 구조대원 형식 역의 이민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특히 동춘 캐릭터는 영화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데 매우 효과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민기는 이 영화를 통해 '멋진 남자' 이미지도 덤으로 얻을 수 있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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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얘기했듯 쓰나미는 이 영화에서 단역입니다. 사람들의 갈등과 사연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죠. 그리고 '해운대'는 그런 재난영화의 기본에 충실한 영화가 됐습니다.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면 그걸로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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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연히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일단 쓰나미에 대한 연구가 좀 부족해 보입니다. 그저 거대한 파도가 해운대를 덮친다는 얘기만 강조될 뿐, 쓰나미라는 재난을 당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에 대한 연구가 좀 부족했다는 뜻입니다.

재난영화에서 과학을 얘기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것은 잘 알지만, 이를테면 2차 쓰나미가 올 때 1차 쓰나미에서 온전했던 건물까지 쓸려가는데 광안대교 아래에 둥둥 떠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멀쩡한지, 그리고 왜 호텔 복도는 그냥 걸을 수 있는 정도인데 엘리베이터 안에는 사람 키까지 물이 차는지 등등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하긴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끝이 없긴 없죠.^^ 사람이 평지에서 볼 수 있는 수평선은 맑은 날도 5-7km를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영화 속 쓰나미의 속도는 시속 700km. 수평선 끝에서 파도가 보이고 약 30초 뒤면 뛰고 어쩌고 할 새도 없이 끝장이 난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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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쓰나미 이전의 사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쓰나미 이후의 삶에 대한 조명 역시 지나치게 부족합니다. 가장 큰 아쉬움은 바로 마무리입니다. 당연히 대 재난이 덮쳤으므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칩니다. '해운대' 제작진의 마무리는 그 죽고 다친 사람들의 뒷애기를 담담하게 지켜보는 선에서 그칩니다.

뭐 그걸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작진의 선택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재난영화의 결말은 재난이 재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건을 위한 의지의 표현으로 승화되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해운대'의 상영시간은 2시간 10분. 이런 규모의 영화라면 3시간은 되어도 충분할 듯 한데, 이야기의 살려내지 못한 부분들이 좀 아쉽긴 하지만 초유의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할 몫은 충분히 다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평점을 매기라면, 저의 평점은 '볼만하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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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이 영화의 무대가 '한국 어느 항구도시'가 아니라 부산이라는 구체적인 지역,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해운대로 설정되어 있었다면 좀 더 노골적인 결말이 나와도 나쁠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왜 제작진은 결말에서 부산 시민들의 애향심을 좀 더 자극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결말은 '재난을 극복하고 도시를 재건하려는 부산 시민의 의지'를 강조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부산적인 요소'는 영화 내내 나오는 사투리와 롯데 자이언츠 신 만으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부산 시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결말이 있었다면 '친구' 때의 경험을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최소 100만명 이상의 관객은 더 동원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실지... 너무 장삿속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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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 현역 소주 모델인 하지원이 다른 회사 소주병을 놓고 앉아있는 모습... 물론 부산이라는 향토색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겠지만 광고주가 보면 좀 분노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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