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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소년 축구가 U-20 대회에서 오는 9일 26년만에 세계 4강에 재도전합니다. 이런 경사가 없습니다. 박주영과 신영록 같은 특급 골잡이들이 활약하던 시절에도 16강 진출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미 18년만에 8강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칭찬을 아낄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스타가 없다고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막상 대회에 나가자 수비수 출신인 김민우가 3골을 터뜨리며 난세의 영웅으로 거듭났습니다.

8강 진출은 1991년, 포르투갈 대회에 출전한 남북한 단일팀이 이룬지 18년만의 성적입니다. 그리고 9일 가나를 꺾고 4강에 오르면 지난 1983년, 멕시코 대회에서 박종환 사단이 이끈 '기적의 4강'에 이어 무려 26년만의 쾌거가 되는 셈입니다.

이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이때 아예 태어나지 않은 분들도 꽤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을 겪어 본 분들은 당시의 열기가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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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한국이 멕시코에서 열리는 U-20 대회에 나간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박종환 감독의 이름을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박종환 감독은 2년 전인 1981년에도 청소년대표팀을 이끌고 호주로 날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에이스는 최순호.

한국은 첫 경기에서 최순호의 2골을 포함, 이탈리아를 4대1로 격파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이후의 경기를 연패하며 예선탈락의 쓴맛을 봤습니다. 그리고 2년 뒤, 83년 대회는 처음부터 행운이 잇달았습니다. 당초 이 대회 출전권을 딴 것은 북한이었지만 북한 성인 팀이 아시안게임에서 폭행 사건을 벌이며 2년간 국제대회 출전권을 박탈당했고, 그 결과 공석이 된 티켓이 한국의 차지가 된 것입니다.

그 뒤로 박종환 감독이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벌인 고된 훈련은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경기가 주로 멕시코의 고원지대에 열린다는 점을 감안, 저산소 상태에서도 뛸 수 있도록 마스크를 착용한 채 훈련을 했다는 얘기도 유명하죠.

당시의 선수단입니다.

감독 박종환, 코치 원흥재
이문영 김풍주(GK) 김판근 문원근 유병옥 장정 이승희 최익환(FB) 김흥권 노인우 김종건 최용길(HB) 이현철 강재순 이태형 이기근 김종부 신연호(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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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얘기를 들을 때, 다들 1983년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셔야 할 겁니다. 당시의 한국은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도, 월드컵 4강에 이른 적이 있는 나라도 아니었습니다. 1954년 이후 한국이 처음으로 월드컵에 진출한 것은 이보다 3년 뒤인 1986년의 일입니다. 월드컵 예선은 번번이 호주의 벽에 막혀 탈락했고, 한국 축구가 국제대회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치의 성적이 아시안게임이나 아시안컵 정도였던 시절(물론 지금이라고 이 목표들이 쉬운 건 아니지만)의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해 6월, 마침내 한국 팀은 멕시코로 날아갑니다. 물론 대다수 국민들에겐 갔는지 안 갔는지도 모를 일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첫 경기에서 스코틀랜드에 0대2로 패했다는 기사를 보고 청소년대회가 시작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첫판부터 졌다는 소식에 뭐 이번에도 별건 없겠지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죠.

그런데 둘째 판, 한국은 신연호와 노인우의 골로 멕시코에 2대1 승리를 거둡니다. 이어 스코틀랜드가 호주에 패하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 줍니다. 결국 한국은 A조 예선 최종전에서도 김종건과 김종부의 골로 호주에 2대1 승리를 따내며 스코틀랜드에 이어 조 2위로 8강에 오릅니다. 이때는 대회 참가국이 16개국이었으므로 예선 통과하면 8강이었죠.




마침내 6월11일 4강 진출을 앞둔 우루과이와의 대전이 펼쳐집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6월12일 일요일이었습니다. 현지시간 오후 5시 경기였으므로 한국에서는 아침 8시부터 중계가 시작됐죠. 익히 알려진대로 박종환 감독의 당시 대표팀은 뛰고 또 뛰는 숏패스의 축구였습니다.

한국은 후반 9분 신연호의 골로 앞서가지만 후반 26분 마르티네스에게 동점골을 내줘 1:1. 승부는 연장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연장 14분 신연호가 대망의 결승골을 터뜨립니다.

온갖 신문은 한국의 4강 진출 소식으로 도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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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에게 낯익은 이 소식. 바로 붉은 악마라는 이름이 처음 만들어 진 것이 이 때라는 걸 모르시는 분은 없겠죠? 당시 외신이 "한국의 붉은 악마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선전에 대한 기사를 타전하면서 생겨난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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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등교를 했을 때 다른 화제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아는 건 학교 뿐이지만 아마 회사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온 세상이 축구 열기에 휩싸였습니다. 물론 온 국민이 거리로 달려나간 2002년만은 못했지만, 대략 WBC 급의 화제는 됐던 것 같습니다.

한국시간으로 16일 오전 준결승 상대는 브라질. 2년 전 0대3으로 패한 기억도 있고, 누가 뭐래도 가장 껄끄러운 상대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어쨌든 한국이 세계청소년대회 4강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싸운다는데, 온 국민의 관심은 불타올랐습니다.

그 주 내내 문교부에서 학생들이 중계방송을 볼 수 있도록 임시 휴교령을 내릴 거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아마도 학생들의 희망사항), 대신 전날인 15일, "학교로 TV를 가져오겠다"는 열혈남아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저희 반은 담임선생님의 "헛소리 하지 마랏!"에 시청의 기회는 얻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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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학교도 무시할 수 없었던 대사건인터라, 16일 오전 8시부터 학교 방송 스피커로 중계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당시 저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는데 그때까지 11년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방송으로 스포츠 중계를 틀어준다는 건 살다 살다 처음 겪는 일이었죠. (인터뷰를 보니 홍명보 감독은 중3때 버스로 등교하다가 라디오로 중계를 들었다던데, 아마 축구부라서 늦게 등교했던 모양입니다.^^)

찍소리 하나 내지 않고 전교생이 방송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14분. 김종부의 선제골이 터지자 대한독립만세를 방불케하는 함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어느 반에선가 유리 깨지는 소리까지 났습니다. 하지만 22분, 브라질의 동점골 때도 그 못잖은 비명이 터져나왔죠.

결국 팽팽하던 경기는 경기 종료 9분 전, 브라질의 결승골로 끝났습니다. 온 나라가 비탄에 빠졌습니다. 교실에 들어와 있던 선생님도 "자, 이제 수업 하자"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할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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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브라질 대표팀 멤버들을 보면 - 그땐 전혀 알지 못했지만 -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팀을 상대로 싸웠는지를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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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필더에 17번 올리베이라와 16번 둔가라는 이름이 보입니다. 모두 축구선수 이름으로는 꽤 흔한 편이지만, 이중 둔가는 현재 브라질 대표팀의 감독인 그 둥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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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올리베이라, 그때는 성으로 표기하는 국내 원칙 때문에 이렇게 보도됐지만 그 뒤로 이 선수는 다른 이름으로 더 유명해집니다. 바로 베베토라는 이름이죠. 90년대 초, 호마리우와 함께 브라질 A대표팀의 투톱으로 활약하던 그 베베토입니다.

둥가와 베베토는 1994년 월드컵 우승 멤버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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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힌 다 실바는 나중에 88올림픽 브라질 대표팀(은메달) 멤버로군요. 83년 당시 최다득점으로 세계의 주목을 끌었던 이 선수는 브라질 A대표팀에 드는데에는 실패합니다.

관심을 끄는 건 감독의 이름. 당시 보도로는 '페레이라'라는 이름의 감독이 지휘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브라질에 페레이라, 혹은 파헤이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부지기수입니다. 축구 선수중에도 한둘이 아니죠.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카를로스 알베르투 파헤이라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 명장 파헤이라는 이미 82년에 쿠웨이트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으니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아 보이지만 혹시 맞다면... 후덜덜이죠. 아무튼 당시 브라질 감독은 경기 후 호텔에 가서 "지금도 다리가 떨린다"고 한국과의 격전에 대한 소감을 털어놨다고 합니다.

그렇게 브라질에게 치열한 접전 끝에 패하고, 3-4위 전에서 한국은 주전 스트라이커 신연호가 빠진 가운데 폴란드에게 패해 4위에 그칩니다. 맥이 좀 풀린 탓도 있었겠죠. 한국을 이긴 브라질은 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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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90분 내내 안 보여도 골 넣을 때 보면 그 앞에 있다'는 신비로운 스트라이커로 온 국민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신연호 감독. 올해는 김민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부디 이번 홍명보호는 1983년의 전설을 넘어 2009년, 우승까지 가 보는 새로운 전설의 주역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감상의 마무리는 추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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