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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아이리스'가 김소연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 별로 없었을 겁니다. 이 드라마의 축은 어디까지나 이병헌-김태희 커플이었고, 그밖에도 쟁쟁한 김승우 정준호 같은 톱스타들의 등장은 시선을 분산시킬 요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아이리스'라고는 하지만 '여자 1번'도 아닌 2번의 역할로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던게 시작 때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소연은 자신의 힘으로 한계를 뛰어넘었고, '아이리스' 시청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김태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참 의외의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게 있습니다. 김소연은 김태희가 데뷔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주목받고 있는 스타였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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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김소연이 꽤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것을 알지만, 기억은 서로 엇갈립니다. 어떤 사람은 김소연이 주인공으로 나온 작품 중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김소연은 본래 주연이었는데 무슨 소리냐고도 합니다.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기껏 기억하는 것이 '순풍 산부인과'나 '식객' 정도인 듯 합니다. 하지만 김소연은 그 정도 경력을 가진 배우가 아닙니다. 올해가 데뷔 16년차인 관록의 연기자죠. 남들처럼 스무살 안팎에 연기자로 데뷔했다면 30대 중후반으로 접어들어야 할 경력입니다. 단지 너무 일찍, 그것도 아역이 아닌 사실상 성인 역할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서른의 나이에 16년차의 경륜을 지니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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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일단 김소연에게 연예계 진출이라는 것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김소연의 데뷔는 1994년, 만 14세 때의 일입니다. 이때 김소연은 중3이었습니다. 당시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중3인데 얼굴은 20대인 애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었죠.

그리고나서 오래지 않아 김소연을 실물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참 놀랍더군요. 정말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밝은 성품에 총명하기까지 하더군요. 한 마디로 대형 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소녀였습니다.

그리고 17세 되던 해, 김소연은 MBC TV 주말드라마의 여주인공 역을 맡게 됩니다. 1997년 여름 방송된 '예스터데이'라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김소연은 여고생에서 20대 중반까지 약 10년간의 세월을 연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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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이 드라마는 남자주인공으로 이정재와 이종원, 두 근육질의 미남 스타가 격돌할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레 이정재가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 결과 이정재의 역할을 이종원이 맡게 되고, 여주인공으로 김소연이 깜짝 등장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캐스팅이 그리 매끄러운 편은 아니었죠.

하지만 갑자기 이정재가 빠지는 바람에 급하게 들어온 새로운 스타 하나가 각광받게 됩니다. 바로 MBC의 공채 신인이었던 이성재. 이 드라마는 부잣집 아들(이성재)과 그 집에서 양자처럼 자라게 된 소년(이종원), 그리고 그 집의 운전기사 딸(김소연)의 성장과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본래 이종원과 이성재는 형제처럼 친한 사이였지만 성장하면서 김소연 때문에 원수처럼 변해갑니다.

여고생이야 현재 자신의 모습이니 큰 무리가 없겠지만 그 나이에 경험해보지 못한 열살 위의 모습을 연기한다는 건 참 쉬운 일이 아닐텐데 김소연은 역할을 무리없이 수행합니다. 한번은 이성재와 약간 농염한(?) 장면까지 있어 '아무리 성숙해 보여도 실제론 여고생인데...'하는 생각을 자아내게 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 드라마의 약점은 이종원과 김소연 사이의 불균형이었습니다. 이때 이미 20대 후반이던 이종원이 고교생으로 나오고, 그와 동갑내기 역인 김소연이 이종원에게 "영호야"하고 부르는 장면 등은 아무래도 영 어색했습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종영을 맞습니다.

(이 드라마의 성과라면 비틀즈의 노래 여러 곡을 드라마에 삽입하면서 방송사가 음악 저작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방송사는 매년 저작권협회에 거액을 지불하고 있다고 항변하지만,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트는 것과,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국제 기준이 처음 국내에도 적용되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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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에서 청순가련형 연기자의 면모를 보인 김소연은 같은 해 영화 '체인지'에서는 톱보이 연기자로서 다양한 재능을 뽐냅니다. 스타 드라마 PD인 이진석 감독의 영화 데뷔작인 '체인지'는 고교생인 정준과 김소연이 서로 몸이 바뀌면서 빚어지는 코미디입니다. 말하자면 '스위치'같은 할리우드 영화의 한국 고교생 버전이었고 당시로서는 드문 30만 관객(와이드 릴리즈 시대가 오기 전엔 꽤 큰 숫자입니다)을 넘어 서며 꽤 큰 성공을 거둡니다.

(스타 드라마 PD의 작품답게 수많은 스타들이 우정출연합니다. 특히 정준의 형 역으로 나온 김민종의 코믹 연기는 레전드급이었죠.^)

이렇듯 '성인형 하이틴 스타'로서 김소연의 위치는 공고했습니다. 이해 김소연의 출연작에는 김수정 원작 만화를 드라마로 만든 '일곱개의 숟가락'이 있습니다. 사실 만화에서 가장 인기있던 삼룡이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 등 만화 팬들에겐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작품이지만 어쨌든 이 해 극심한 부진을 겪던 MBC 드라마에는 숨통을 터 준 작품입니다. 홍경인과 이정현의 연기가 불을 뿜었던 작품으로, 김소연의 비중이 그리 크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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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2편과 영화 1편에서 주인공을 맡은 1997년에 비해 이후 2년간의 활동은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김소연의 재능과 미모를 알아본 사람들에겐 참 혀를 찰 일이었지만 아무튼 '집안 문제'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어쨌든 그리고 나서 빛을 발한 작품이 2000년 '이브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김소연은 '여자 2번'이었고 드라마의 간판은 장동건-채림이었지만 이 작품으로 김소연의 입지는 튼튼해집니다. 당시 채림은 시트콤의 잇단 성공과 밝은 캔디 이미지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둘 중 누가 진짜 방송 앵커로 보이느냐는 질문엔 누구나 '김소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죠.

이해 김소연은 주말극 '엄마야 누나야'에서 출생의 비밀을 가진 장미희의 딸(고수와 쌍둥이 남매)로 출연해 두각을 보입니다. 그런데 두 편 연속 어두운 이미지의 역할을 맡는 것이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김소연의 경력을 보면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즉, 정작 경력 관리가 필요한 시점에서 마땅히 있었어야 할 누군가(주로 매니지먼트)의 도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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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김소연은 류시원과 공연한 MBC TV '그 햇살이 나에게'로 다시 한번 적시타를 터뜨립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작품에서 3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력을 과시한 것이죠. 큰 특징 없는 신데렐라+캔디형 드라마였지만 어쨌든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성공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배우라는 점은 입증한 셈입니다.

하지만 이때도 '그 여세를 몰아...'라는 표현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물론 어떤 배우도 출연하는 작품마다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경력 관리'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만, 그 뒤로 약 5년간 김소연은 악몽같은 세월을 보냅니다. 몇 안되는 출연작들도 한결같이 흥행에 실패하고, 한창 국내에서 자리를 잡아야 할 20대 중반의 나이에 서극 감독의 영화 '칠검' 촬영 외에는 다른 활동 소식이 들리지 않습니다. 결과라도 좋았으면 위안이 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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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던 김소연이 느닷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확 잡아 끕니다. 바로 2007년 부산영화제의 레드 카펫이었죠. 전례를 보기 힘든 과감한 흰 드레스가 사람들이 잊고 있던 '김소연'이라는 배우를 메인 스테이지로 끌어낸 겁니다.

그 뒤의 역사는 많은 사람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식객'과 '아이리스'가 나왔고, 우리 나이로 서른의 김소연이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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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을 보고 있으면 생각나는 할리우드 배우는 제니퍼 코넬리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기억하듯, 소녀시절 남다른 미모와 재능으로 각광을 받지만 잠시 방황하며 엉뚱한 작품으로 세월을 보내고, 학업 수행 등으로 연기에 전념하지 않은 제니퍼 코넬리는 '잠시 반짝했다가 일찍 사그러든 배우'로 기억될 뻔 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생인 코넬리는 서른 즈음에 알렉스 프로야스의 '다크 시티'(1998),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레퀴엠'(2000) 등으로 다시 배우로서의 재기를 알린 코넬리는 마침내 '뷰티풀 마인드'(2001)에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차지하며 화려한 꽃을 피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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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외에도 두 배우는 호소력짙은 미모, 지적인 분위기 등 여러 면에서 유사한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김소연도 제니퍼 코넬리처럼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20대를 접고 30대 여배우로서 화려하게 개화하길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지금'은 일단 성공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향후 2-3년간의 작품 선택과 열정이라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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