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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인가 있었던 '빨간 마후라' 사건 때문에 '빨간 마후라'가 구글에서 성인인증을 받아야 검색할 수 있는 단어가 돼 버렸다는 개탄할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상옥 감독의 영화 '빨간 마후라'와 김영환 장군의 이름은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고유명사들입니다.

지난 주 일제히 '김영환 장군'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난 14일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치러진 김영환 장군의 추모제와 관련한 내용들입니다. 요약하자면 김영환 장군은 6.25가 한창이던 1951년 12월18일, 공비 토벌을 위한 공습에 나섰다가 UN 사령부의 공격 목표가 해인사인 것을 알고 명령에 불복, 인류의 문화 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것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또 이 분은 한국 공군 파일럿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처음으로 도입한 분이기도 하더군요. 그 분의 사적을 돌아보다 생각난 얘기들을 지난 주말에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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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숭고한 불복종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1944년 8월 9일, 독일의 디트리히 폰 콜티츠(Von Choltitz) 중장은 파리 점령군 사령관으로 부임한다. 2개월 전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이 시시각각 파리로 진격하고 있는 상황. 히틀러는 그에게 거듭 “절대 파리를 온전한 채로 내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폰 콜티츠는 이 명령을 묵살한 끝에 8월 25일 1만7000명의 휘하 장병과 함께 연합군에 항복했다. 히틀러는 폰 콜티츠의 항복 소식에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Brennt Paris)?”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전해진다. 이 말은 연합군의 파리 수복 과정을 영화화한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6년 작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하다.

폰 콜티츠는 회고록에서 “후세에 '파리를 파괴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전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감지한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온전한 파리를 보게 된 것은 폰 콜티츠의 덕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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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어떤 군대도 상명하복을 철칙으로 삼지 않은 적은 없다. 대한민국 군 형법 44조도 '적과 대치한 상황에서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자'에게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엄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양심에 따른 명령 불복종으로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다. 14일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는 6·25 당시 유엔군의 폭격 명령을 거부, 국보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의 추모제가 열렸다. 그는 항명을 추궁하는 상부에 해인사의 가치를 조목조목 설명해 '귀하와 같은 장교를 둔 건 대한민국의 행운'이라는 찬사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비슷한 시기 “태우는 건 하루면 족하지만 다시 세우려면 천 년도 부족하다”며 구례 화엄사를 소각령으로부터 지킨 차일혁 총경, 오대산 상원사를 태우려는 국군 장교에게 “그럼 나도 함께 태우라”고 맞선 방한암 선사의 이야기도 감동을 전한다. 물론 그 뜻을 받아들여 법당 문짝만 뜯어 태우고 떠난 이름 모를 국군 장교를 빠뜨릴 수 없다.

위화도 회군 이후 수많은 장군이 사리 사욕에 의한 하극상으로 역사를 더럽히기도 했지만, 이렇듯 숭고한 불복종의 기록은 인간이 명령대로 단순 복종하는 기계와 어떻게 다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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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생인 김영환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으로부터 F-51 무스탕 전투기 10대를 넘겨 받아 한국 공군 최초의 전투비행단을 지휘한 에이스였습니다. 이 분이 빨간 마후라를 처음으로 착용하게 된 계기를 찾아 보다 보니 참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김영환 당시 대령이 1951년 형인 김정렬(뒷날 참모총장) 장군의 집에 가서 치맛감인 빨간 비단 천을 얻어다 목에 감은 것이 시작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2차대전때 독일의 에이스였던 리히토펜의 진홍색 머플러에서 착안한 김대령이 '빨간 마후라'를 후배 조종사들에게도 사용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
http://www.army.mil.kr/history/%C2%FC%B0%ED/%C1%D6%BF%E4%C0%CE%B9%B0/%B3%B2/%B1%E8%BF%B5%C8%AF.htm 에 더 자세한 얘기가 있습니다.일설에는 영화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도 김영환 장군이라고 합니다만, 이 사이트에 따르면 영화의 내용은 승호리철교 폭파작전을 지휘한 유치곤 장군의 이야기에서 더 많은 것을 따 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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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는 그야말로 전쟁 영화의 고전입니다. 이 영화에선 폰 콜티츠가 양심적인 지식인의 표상으로 그려지지만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 인사들은 그가 파리에서 항복하기 전까지 수많은 레지스탕스들을 체포해 처형했으며, 전세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을 판단, 전쟁 이후 자신의 삶을 도모하기 위해 급격히 변신한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요소를 참고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쨌든 파리의 보존은 아이젠하워도 쉽게 파리로 진공하지 못했을 정도로 중요한 요소였고, 그 부분에서 콜티츠에게 공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합니다. (아울러 콜티츠의 항복 때문에 드골의 자유프랑스군과 파리 수복의 공을 나눠 갖게 된 좌익 레지스탕스들은 콜티츠를 미워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는군요. 이 구도는 2차대전 이후 프랑스 좌익의 운명에 꽤 큰 영향을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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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엔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국어 교과서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수필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 수필엔 방한암 선사가 상원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받은 국군 장교와 갈등을 일으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물론 이 수필엔 한암 선사가 장교를 "이삿짐을 싸야 하니 며칠 뒤에 오라"고 돌려보내고, 돌아온 장교가 법당 문을 열자 한암 선사가 절명해 있는 광경을 본 뒤 차마 절에 불을 지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사실과는 좀 다르다고 하더군요.^ 한암 스님이 절의 소각을 막은 것은 맞지만 입적하신 것은 이보다 좀 뒤의 일이라고 합니다. 선우휘의 단편 '상원사' 때문에 사실과 전언 사이에 혼란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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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차일혁 총경은 유명한 아드님 때문인지 요즘도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분입니다. 지리산 공비 토벌대장으로 혁혁한 공로를 세운 이 분은 지금 들어도 전설적인 일화를 여럿 남겼습니다. 가극 '눈물의 여왕'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분이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듣고 한 말이 "이 절을 태우는데 하루면 충분하지만 다시 지으려면 천년도 부족하다"는 명언입니다. 전쟁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지간한 용기로는 감히 하기 힘든 말일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참 이런 분들의 일화가 자꾸 잊혀지는게 아쉬울 뿐이라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댓글
  • 프로필사진 가을남자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오랫만에 생가해보는 영화군요.
    흑백영화인 데 마지막의 파리의 전경이 현대로 바뀌면서 칼라로 바뀌지요.
    '알랑 들롱'과 '장폴 벨몬드'의 젊었을적 모습이 보입니다.
    혹시 오늘은 내가 1등은 아닌지 모르겠읍니다.
    2009.11.24 13:18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이 영화를 특히 좋아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2009.11.25 08:47 신고
  • 프로필사진 가을남자 이영화에서는 콜티츠(켈트 후레베)가 주인공이지요.
    많은 유명배우들이 나오지만 (커크 더글러스는 팻튼장군으로 나오지만 한씬정도) 모두 콜티츠의 행위를 돋보이게 하지요. 후에 '쉰들러 리스트'를 보며 콜티츠를 생각하기도 했었읍니다.
    2009.11.25 11:28 신고
  • 프로필사진 bass 좋은 얘기! ^^ 2009.11.24 13:18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 2009.11.25 08:47 신고
  • 프로필사진 뚱띵 앙금 이런 감동적이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숭고한 불복종에 대한 내용보다는 , '언제쯤인가 있었던 빨간 마후라 사건'이 도대체 뭔지 궁금해 죽는 것은,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수업시간에 나온 중요한 뽀인뜨는 절대 기억 못하고 선생님께서 하셨던 농담만 기억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라나요. 2009.11.24 13:23 신고
  • 프로필사진 엘니뇨 저도 궁금합니다. 빨간마후라 사건이 무엇인지요...찾아봐야 겠습니다. 2009.11.24 13:28 신고
  • 프로필사진 후다닥 엘니뇨 님...
    그냥 국산 셀카의 원조 정도로만 알고 계시면 될듯합니다.
    더 자세한건 공식적인 자리에선 좀... ^^;;;
    2009.11.24 13:31 신고
  • 프로필사진 순진찌니 앙금님이 뚱띵하다니요.
    순진찌니를 모욕하는 발언입니다.
    진정한 뚱띵을 보셨으면서..ㅋㅋ

    그냥.. 좀 덜큰 애들이 장난을 심하게 친 셀카라고 생각하심됩니다.
    원하시면 P2P에서 비슷한 단어 쓰면 예전것 구해서 보실수도 있을듯..ㅋㅋㅋㅋㅋㅋㅋ
    2009.11.24 13:34 신고
  • 프로필사진 뚱띵 앙금 순진찌니님을 모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제가 요즘 폭식으로 인해 살이 좀 많이 쪘다니깐요! 순진찌니님은 나이 어린 미인 여자친구도 있지만 전 가진 거라곤 몸무게와 흰머리뿐이란 말이어욧!

    다음 번 오프때까진 (그게 언제려나요) 원상복귀 해야 할 터인디...
    2009.11.24 16:33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빨간마후라 사건때 앙금님은 그럼 해외에라도 계셨던...? (어떻게 그 사건을 기억못할수가.) 2009.11.25 08:48 신고
  • 프로필사진 skywalker ㅎㅎ 앙금님의 원댓글이 바로 그런 내용이지요. 2009.11.25 10:09 신고
  • 프로필사진 교포걸 해외에 있던 저도 기억하는데요. 앙금님은 동건오빠외엔 무관심이셨나 봅니다. 그때가 90년대였던가요? 그 학생들이 제나이보다 약간 어렸던것 같은데. 확인차 검색을 하고 싶은데 회사컴이라 후환이 두려워 그냥 퇴근하길 기다려야 겠네요.

    그런데 댓글들이 다 산으로 가는군요. 아주 교훈적인 포스팅인데 ^^;

    *집에서 확인해보니 생각처럼 그렇게 오래된 사건은 아니네요. 제가 대학생때 일어난 일이네요. 고등학생땐줄 알았는데.
    2009.11.25 18:46 신고
  • 프로필사진 리얼리스트 군대있을때 보았던 빨간마후라는...
    한마디로 후우....
    그이후 어떤 영상매체를 보아도 그때의 온몸을 울리던 미칠것같은 충격파는 재현할수가 없었답니다~~
    2009.11.26 04:52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리얼리스트/ 혹시 공군은 아니셨나요? ^ 2009.11.26 11:36 신고
  • 프로필사진 리얼리스트 /송원섭/ You Win !!! 2009.11.26 12:51 신고
  • 프로필사진 순진찌니 차일혁총경의 아들? 누구지요?
    저만 모르나요?--;;
    눈물의 여왕도 모르는데...--;;
    2009.11.24 13:32 신고
  • 프로필사진 후다닥 요새 무속 소재로한 프로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분이죠
    "차길진"법사라고... ^^;;;
    2009.11.24 13:39 신고
  • 프로필사진 가라한 저도 그 아드님이 누군가 했는데.. 답도 있군요.. ㅎㅎ
    눈물의 여왕은 또 어디에??
    2009.11.24 14:29 신고
  • 프로필사진 halen70 전쟁후에 배삼룡씨를 비롯한 연예인 위문단이 빨치산에게 납치되어 있던중 차일혁총경께서 구출해 주셨답니다.. 그후에 배삼룡씨와 위문단이 국군과 빨치산앞에서 위문공연을 했다는 전설적인 일화를 소재로만든 뮤지컬이라고 합니다. 2009.11.25 03:19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실제로 '눈물의 여왕'이라고 불린 전옥이라는 당대의 인기 여배우가 당시 그 가극단에 있었습니다. 이분이 빨치산에게 잡혀 목숨이 위급할 때, '당신이 정말 전옥이면 노래를 해 보라'는 말에 '날보고 조명도 없고, 의상도 없고, 무대도 없이 노래를 하란 말이냐'고 벌컥 화를 냈다는 전설이 있죠.^^ 2009.11.25 08:50 신고
  • 프로필사진 후다닥 "눈물의 여왕"얘긴 처음 듣는건데 그런 배경이 있군요
    전옥이란 분은 아티스트로서 자긍심이 대단하신 분이었나 봅니다.. ^^;;;
    2009.11.25 09:03 신고
  • 프로필사진 제 기억으로는 눈물의 여왕 전옥씨는 최민수의 외할머니가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즉, 강효실씨의 어머니이죠...
    그러고보면, 신상옥 감독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그 옛날에 저렇게 전투기가 날라다니며 공중전과 지상 폭격같은 대규모 영화를 찍은걸 보면.. 요즘에도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장면들 아닌가요. 그야말로 '70mm 시네마스코프의 스펙타클'한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2009.11.25 12:28 신고
  • 프로필사진 후다닥 흠 빨간 마후라에 그런 내용이 있었군요...
    제겐 빨간 마후라라고 하면 동영상 부터 떠올라서.. ^^;;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많은 부분들이 선견지명을 가진 그분들
    덕 이겠지요..
    2009.11.24 13:38 신고
  • 프로필사진 halen70 그당시에 그런동영상이 있다는 것으로만도 큰 충격이였죠..빨간 마후라는 저는원래 공군 주제가인줄만 알았습니다만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도대체 저는 아는게 뭐가있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09.11.25 02:36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z 2009.11.25 08:51 신고
  • 프로필사진 nohwon 진정한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건 선택을 하신 분들.
    그들의 인격과 풍모는 지금 이 시대에 더욱 빛나고
    그래서 더 그립습니다.
    2009.11.24 14:05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대단한 분들입니다. 2009.11.25 08:51 신고
  • 프로필사진 echo 그렇다면 콜티츠는 한스 란다의 모델일까요?^^


    p.s. 이러다 앙금님 팬클럽에서 오늘 중으로 빨간 마후라를 '네이버 검색어'로 띄우는 것 아닙니까.^^
    2009.11.24 15:36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저도 이 글 쓰면서 한스 란다 생각을 했습니다.^^ (구글에서 '빨간마후라'를 치면 19금 검색어로 나옵니다.) 2009.11.25 08:52 신고
  • 프로필사진 사랑과평화 긴 역사에 비해 문화유산이 많은 편은 아니죠, 우리나라가.

    이런 분들 덕분에 그나마 몇개라도 남아있었군요.


    빨간 마후라 비디오라고 해서 길 좌판대에서 샀는데 최무룡이 나와서 사기당한 친구가 있습니다...ㅋ
    2009.11.24 16:47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z 2009.11.25 08:52 신고
  • 프로필사진 후다닥 저는 산건 아니지만 P2P에서 킹콩떠서 받았더니
    30년대에 나온 킹콩이었다는...
    초반에 흑백이길래 그러려니 했더니 끝내...
    올린 유저 찾아가서 현피뜨려다 참았다는..
    2009.11.25 13:03 신고
  • 프로필사진 푸우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네요. 근데 김영환 장군님의 코는 참 잘 생겼네요. 미소도 매력적이고요. 2009.11.24 17:01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역시 일관된 관점! 2009.11.25 08:52 신고
  • 프로필사진 skywalker 음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를 못 보았군요. 좀 오래된 영화여서 좀 가책을 적게 가지면서 구해보렵니다.

    빨간 마후라라.. 공군으로 가면 빨간 마후라를 하는 사람과 하지 못하는 사람간의 위화감이 장난이 아니랍니다. 그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조- 옷장사라고 놀리지만 그야말로 부러움의 표시지요.

    요즘은 몰카 셀카니 별게 다 돌아다니지만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건이었지요. 세상에 앞서갈게 없어서 저런것을...
    2009.11.24 17:55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요즘이라도 중학생은 ^^ 2009.11.25 08:52 신고
  • 프로필사진 ^^ 송기자님,

    방금 TVN 연예뉴스(?)에 패널로 출연하신 기자님 봤습니다.
    거의 밤10시에 채널 돌리다가 우연히 마무리 멘트 하는 사람이 눈에 익다고 생각했는데, 송기자님 이시더군요.
    와~~~ 진짜 훈남이시더군요.(거의 30대 초반으로 보이던데요.)
    화면발이 잘 받으시던지, 아니면, 예전 장학퀴즈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셨는지...
    저는 TVN '막돼먹은 영자씨' 팬인데, 캐릭터들이 다 살아 있고, 정말 페이소스가 ~~~
    (에구구... 이러니까 제가 TVN 알바 같군요TT)

    하여튼... 송기자님도 방송계로 진출하셨더라도 대박이셨을^^
    2009.11.24 22:38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생방송 했더니 살짝 부담이^ 2009.11.25 08:53 신고
  • 프로필사진 후다닥 오옷 하이킥에 이어서 TVN뉴스도 본방사수 해야하는건가요?
    ㅋㅋㅋ
    2009.11.25 09:01 신고
  • 프로필사진 사랑과평화 장학퀴즈가 아니라 퀴즈아카데미?? 2009.11.25 14:12 신고
  • 프로필사진 야구생각 송기자님은...

    장학퀴즈 최고 타이틀인 기장원,

    퀴즈아카데미 최고 타이틀인 7주 우승을 다 해내신

    대한민국 퀴즈계의 그랜드 슬래머이자 성골이십니다(아마 유일하신 듯..) 다른 잡스런 퀴즈프로는 정통으로 인정할수 없으므로 패스...
    2009.11.25 17:27 신고
  • 프로필사진 halen70 메탈그룹 도켄의 Paris is burning 이라는 곡이 제목도 멋있고 음악도 좋아 어렸을적에 자주듣던 생각이 납니다.. 도켄이 데뷰할때 독일에서 데뷰를했는데요.. 송기자님의 글을읽으니 파리는 불타고있는가? 라는 영화와 에피소드에서 그곡의 모티브를 삼은것이군요..빨간 마후라사건(?)과 또 그후에 벌어진 비디오속에 주인공 청소년들 삶을 생각하면 지금생각해도 참 않됐습니다.. 2009.11.25 02:32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후일담을 아시는 모양이군요? 2009.11.25 08:53 신고
  • 프로필사진 후다닥 거기 나왔던 여학생이 나중에 유흥업소에 취업해서
    일하다가 업주랑 같이 구속되었던거로 압니다..
    기사도 나왔던 것 같은데요..
    그거로 지 업소 홍보(?)할 생각한 사장놈(격한표현 죄송)이
    진짜 나쁜놈이라고 생각합니다..
    2009.11.25 09:01 신고
  • 프로필사진 halen70 빨간마후라의 두 주인공 남녀는 그후 양가부모 허락하에 결혼했다고합니다.. 그러나 너무 어린나이들이고 처지가 처지인지라 결혼생활이 제대로 이루워 질수가 없었던지 이혼하였고요.. 여주인공은 결국 여성으로서 가장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직업에 종사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오래전에 읽었습니다. 2009.11.25 09:03 신고
  • 프로필사진 후다닥 아 그런 후일담도 있군요... 2009.11.25 10:57 신고
  • 프로필사진 리얼리스트 1. 예전에 어떤 미국교수가 쓴 아티클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주제는 "왜 미국은 한국전에선 승리하고, 베트남에선 몰락했는가?" 주 내용은, 미국이 도운 민주정부 세력이, 한국의 경우는 친일가담 전력에도 불구하고, 매우 자주민족주의적이고, 대중들의 큰지지를 받고 있었다는 겁니다. 베트남 민주정부는 전~~혀 아니었구요. (이승만 건국세력=친일=친미)라는 고정관념이 화악~ 무너지는 순간이었죠.

    주인장님이 이번에 써주신 내용도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우리도 이제 대한민국 건국세력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볼 시점이 아닐까 하네요.


    2. 위화도회군에 대한 주인장님의 부정적표현에 쪼금 겐세이를 놓고 싶습니다.^^
    고려 말기에, 무려 200회가 넘는 침략을 당하면서 국토는 황폐해지고, 고려왕은 국경수비를 거의 포기하고 개경주변 방어에만 몰입하던 시절.. 모든 인프라가 무너져서 지옥 그 자체이던 시절이 고려 말기입니다. 그런데, 자존심 좀 지키겠다고, 중국이 좀 혼란하다고, 요동정벌을 지시내린, 최영과 고려왕조가 정말 제정신 이었는지 의문입니다.

    만약, 당시에 요동지역을 공격해서 일시 점령했다면, 후일 명나라가 통일되서 재공격하면 거의 평양까지 내주었을 겁니다. (통일 중국에서 10만명 정도 동원하는건 일도 아니죠. 당시 고려는 거국적으로 동원해봐야 1만2천명...)

    p.s. 주인장님 글은 항상 오버해서 생각할 꺼리를 주네요^^
    2009.11.25 03:53 신고
  • 프로필사진 후다닥 글쎄요..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면 그래서 더 욕먹어야 하는거 아닐까요?
    국민들한테는 북진하고 있다고 구라치고 고위층들은
    냅다 서울을 비우고 남으로 피난가는 것도 모자라서
    다리까지 폭파한 행위는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2009.11.25 08:59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거국적으로 동원한 이성계의 요동 원정군이 4만-5만이었고, 그 전에 홍건적의 난 때 개경수복군 병력이 20만이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따낼수는 있지만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 회군의 주된 명분인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땅을 점령하면 죽을 때까지 나는 요동에 묶여서 대중국전쟁을 진행해야 한다. 내가 과연 왕씨와 개경 귀족들을 위해 그 짓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회군의 더욱 큰 동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뭐 지금 이런 얘기하는 건 재미 이상이 되기 힘들지만 한번 해볼만한 승부 아니었을까요. 모 아니면 도...^^
    2009.11.25 09:08 신고
  • 프로필사진 리얼리스트 1. /송원섭/ 오~고려군대가 꽤 있었군요.몰랐습니다. 근데,"모"가 나와서 결과적으로 "도"가 되지는 않을까요^^. 연개소문정부의 찬란한 안시성대첩 이후로 30년도 안되서 국가가 멸망해 버렸다는 쩝... 전 개인적으로, 고구려내전때 영류왕이 연개소문일파를 제거해 버렸다면, 그래서 영류왕의 외교정책대로 당나라와 형식적인 사대관계를 맺는 선에서 타협을 봤더면, 만주와 요동이 한민족의 땅으로 남았을 거라고 봅니다.

    고 시기만 넘겼으면, 당나라는 안사의난 이후로 전체인구의 3분지1이 사망하면서 핫바리 종이호랑이로 변하고, 당의 패망이후에는 5대 10국시대라는 대혼란기로 중국이 갈기갈기 찢어지거든요.이후 중원을 통일한 송나라는 중국역사상 가장 군사력이 약한 나라여서 중원방어에만 급급했습니다. 고구려는 최소한 1000년 동안은 만주와 요동의 최강자로 남았을 겁니다. 따악 50년만 자존심을 죽이고 실리를 챙겼다면, 한민족의 운명이 달라졌겠죠.

    식민사관도 청산되어야 되지만, 단재 신채호의 몽상적 민족주의도 이제는 교정되어야지 않을까요?

    2./후다닥/이승만정부의 당시 작태는 물론 용서받기 힘듭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과정과 한국전쟁종결 까지의 이승만의 대미 외교술을 자세히 보면, 한마디로 "기막힌 천재"라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해방이후 한국 최고의 반미(??)주의자를 뽑으라면 당근 이승만입니다. 그는 냉전의 국제정세를 정확히 이해했고, 미국정부의 군부와 행정부의 갈등을 200% 이용했습니다. 오죽하면 미국정부가 한국전 기간중에 이승만 제거계획인 "에버레디"계획까지 만들었겠습니까?

    이승만은 미국정부내의 몽상적 리버럴들을 경멸했고, 미국의 참전을 대한민국의 이익으로 전환시키려고 대담하고 허를찌르는 정책들을 날렸죠. 요즘 MB의 외교부를 보면, 어느때보다 이승만의 마키아벨리적 기회주의와 담대함이 그립습니다.

    하정우의 "우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다"라는 대사에서 가슴 뭉클했던 사람이라면, 이승만은 반드시 재평가되어야 합니다.
    2009.11.26 05:01 신고
  • 프로필사진 올드가이 고려에 대한 시각은 대다수가 조선조에 각색 - 축소된 시각이 대중적이긴 합니다. 특히 군사력에 관해서도 그렇지요. 특히나 상무국가이자 세습무가/군벌이 쟁쟁하던 고려조를 조선조 베이스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요동정벌에 동원된 4~5만은 징집병으로 쥐어짜낸 병력이라기보단 직업군 - 중앙군과 상위군벌 일부의 정예병 규합 규모 쯤으로 이해하는게 정확할겁니다.

    그야말로 쥐어짜내는 장부상의 규모는 4~50만 단위까지 나오는게 고려조의 군사기록이니까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쌍성도총부를 들어바치고도 다시 변방으로 내몰려야 하는가. 라는 회의에서 단초가 있을수 있겠다 싶군요. 주인장의 지적처럼 말입니다.

    명나라가 실제 내부적으로 모든 세력을 평정하고 안정을 찾는데까지 걸린 시간과 영락제의 대외정벌 상황까지 고려해보면 위화도 정벌 시기 자체는 결코 '또라이'짓이 아닐겁니다.

    주원장이 조선 - 한반도와 관련해 후대를 겨냥 '저동네 얘들이 우리와 손잡고 머리를 조아리고 나온 마당이니 앞으론 어지간하면 골머리만 아프지 실익이 없으니 건드리지 마라' 라는 요지의 언급은 역으로 볼때 저시기 위화도 정벌 움직임과 회군이 어떤 부피로 여겨졌는지에 대한 반증으로 볼수도 있지요.

    게다가 덤으로 북원의 상황이나 황제의 혈통을 고려해보면 더욱 재밌는 망상도 가능하죠.
    2009.11.26 13:02 신고
  • 프로필사진 리얼리스트 주인장님과 올드보이님의 글을 읽고서, 모르던 데이타를 알고나니, 확실히 요동정벌이 성공적인 군사작전이 될수 있었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근데 그런말이 있습니다. "용맹한 장수는 전쟁의 승리여부만 따지지만, 지혜로운 장수는 <장기적인 병참>을 먼저 생각한다"

    1.점령한 지역을 군사요새화하고 통치한다는 것은 상당한 경제력과 정예전투병력의 차출을 의미합니다. 고려말의 상황은, 40년간의 원나라의 약탈과, 일본원정의 참혹한 전멸, 200여차례에 이르는 남북에서의 외침으로,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인프라가 완전 붕괴된 상황이었죠. 새영토의 전략적 개척에 드는 비용은 커녕, 기존 영토의 공공재도 거의 포기하고 있던 것이 고려말의 상황입니다.

    2. 쥐어짜낸 병력이 40만 50만이 되었어도 실제 전투력은 의문스럽습니다. 고려말 상황을 보면 왜구들이 경상, 전라, 충청 삼남 지방을 제집 드나들듯 마음대로 약탈하고 다녔다는 기록이 많거든요. 비정규군인 왜구들도 내륙 깊숙이 까지 진입할 정도라면 고려군의 방어력이 신통치 않다는 의미죠. 또 비정규군인 홍건적 잔당들도 10만정도의 병력으로 손쉽게 개경까지 점령하고 공민왕은 남쪽으로 도망갑니다. 고려 주력군이 공격보다 수월한 수비방어에서도 연전연패한걸 보면 고려군의 실질능력이 매우 의심스럽죠.

    3. 영락제 시절 "정화의 대원정"이 예에서도 볼수있듯이, 당시 통일된 명나라의 군사테크놀로지와 이를 뒷바침하는 경제력은 가공할 것이었죠. 특히 해군력과 대포의 화력은 당시 세계 최강국 이었습니다. 조선이 상대할 수준이 못되었죠. 황제 직할의 정규군의 수준도 왜구나 홍건적과는 비교할수 없는 퀄러티를 가지고 있었죠.

    4. 최영과 우왕의 속셈도 그리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성계는 이미 수차례 요동정벌은 불가하다고 말합니다. 좌위도통사였던 조민수도 굉장히 회의적인 입장이었고, 이성계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죠. 이런 두사람을 원정군의 투톱으로 삼은 최영의 속셈은 뭘까요?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에서 자신이 나서지도 않고 불가론을 외치던 두 장수에게 임무를 맡긴것.

    아무리 생각해도, 정치적인 의도가 보입니다. 신돈세력을 척결한 이후, 허수아비 우왕을 세워놓은 상태에서, 최영의 최대정적은 이성계임이 자명했죠. 어쩌면 장기적으로 보았을때 패배확률이 높은 원정을 자기 정적에게 맡김으로서, 이성계의 세력기반이 와해되길 바랬던 속셈이 아니었을까요?

    p.s. 남의 블로그에서 쫌 오버가 심했습니당~ 지송^^
    2009.11.28 04:44 신고
  • 프로필사진 블랙라군 군대 있을적 휴가다녀온 병사 하나가 빨간 마후라 테잎을 가져왔더라구요. 점호후 내무반에서 10시 상영이었는데, 하필
    10시 경계 근무 ㅠㅠ 비디오에 테잎넣는것만 보고 내무실을 떠나야 하는 그 참담함이란.....ㅎㅎ
    김영환 장군님은 그 인격도 멋지지만 외모또한 신성일급이시군요..
    2009.11.25 08:59 신고
  • 프로필사진 후다닥 블랙라군님 글만 봐도 그 울컥하셨을 느낌이 전해집니다.. 2009.11.25 09:05 신고
  • 프로필사진 여름남자 2011.09.07 14:28 신고
  • 프로필사진 오징어 리히토펜은 2차대전이 아닌 1차 대전의 에이스 였는데... 2012.02.16 18: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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