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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현재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을 뽑으라면 '남자의 자격'과 '1박2일'이 포진한 KBS 2TV '해피선데이'를 꼽지 않을 수가 없을 듯 합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1박2일'의 앞 코너가 SBS TV '패밀리가 떴다'에 약세를 보인 탓에 '1박2일'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시청률 톱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 두 코너 모두 활기를 띠면서 무려 29%라는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물론 그동안 '패밀리가 떴다'가 일요일 예능 1위를 달린 비결에도 사실은 집계 방법의 함정이 있습니다. KBS 2TV '해피선데이'는 2시간 넘게 방송되는 전체 프로그램을 1,2부로 나누지 않고 통으로 시청률을 기록하는 반면, SBS TV '일요일이 좋다'는 '패밀리가 떴다'를 1부, '골드미스가 간다'를 2부로 나누어 시청률을 집계했습니다. 그래서 2009년 상반기까지 '패밀리가 떴다'의 전성기 때에는 늘 일요일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은 '일요일이 좋다 1부(즉 패밀리가 떴다)'였던 것이죠. '1박2일'이 아무리 시청률이 높아도 그 앞 코너가 시청률을 깎아먹는 이상 '해피선데이'가 '일요일이좋다 1부'를 이길 수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남자의 자격'이 '1박2일' 못잖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둘을 합해도 1위에 나선 것입니다.)

그럼 '21세기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요. '무한도전'이나 '1박2일'을 꼽을 분들도 많겠지만 저는 아무래도 '개그콘서트'를 꼽게 됩니다. 과연 5년 뒤나 7년 뒤의 '무한도전'이나 '1박2일'이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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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여는 '개그콘서트'의 중심은 전통의 '봉숭아학당'보다 조금 앞쪽으로 옮겨갔습니다. '봉숭아학당'이 살짝 힘이 빠진 가운데(농담이 아니라 허경환이 정말 봉숭아학당을 살리고 있습니다), '커플지옥 솔로천국', '남보원', '나를 술푸하게하는 사회'의 3부작이 현재 개콘의 무게중심입니다. 그리고, 이 세 코너를 보면 너무도 선명하게 공통된 주제가 보입니다. 바로 '루저를 위한 위안'이죠.

(물론 여기서의 '루저'는 '키가 180이 안되는 남자'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글에서의 정확한 의미는 지난번에도 말했듯, '스스로 자신을 패배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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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지옥 솔로천국'의 핵심은 교주와 '성녀 오나미'입니다. 특히 교주 역에 개인적으로는 처음에 나왔던 교주 한민관이 더 신선했다고 생각합니다. 박지선도 물론 대단히 좋지만 이미 '봉숭아 학당'에서 이 소재를 너무 우려먹은 뒤끝이기 때문입니다. 박지선은 목소리나 몸짓에서 '출산드라' 김현숙의 냄새가 좀 짙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어쨌든 재미있는 코너이고, 호응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인터넷으로 유행했던 '솔로부대'의 정서는 영원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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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원'의 인기는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겠죠. 특히나 박성호의 울분을 달래는 황현희의 '뾰로롱' 요술봉의 마력은 매번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사실 이 팀이야말로 의도적으로 '찌질해 보이기'를 유별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들이 정말 남녀간에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소재, 즉 군 가산점 같은 문제를 짚고 나선다면 정말 시끄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남보원' 팀이 알아서 피해 가고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수다'에서 '루저' 파문이 일었을 때 이 팀은 침묵을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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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각광받는 코너는 박성광과 허안나의 열연이 돋보이는 '나를 술푸게하는 사회'입니다. '국가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냐'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발빠르게 유행어가 돼 버렸습니다. 지난밤에도 '왜 2008년 신인왕인 나를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소리치는 박성광의 모습을 보면서 떼굴떼굴 굴렀습니다.

이 세 코너가 가리키고 있는 사람들은 각각 '애인 없는 남녀' '애인이 있어도 질질 끌려다니며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고도 눈치만 보고 있는 남자' 그리고 '어디 하나 큰소리 칠 구석이 없어 술추해 파출소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 입니다. 모두 세상에서 곧잘 무시당하고, 인터넷에서나 익명으로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죠. 그리고 세상을 냉정하게 훑어보면 아무래도 0.1%의 승자 외에는 모두들 어느 정도씩 루저의 느낌을 갖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혹시 모르겠습니다. 그 0.1%마저도 0.001%에 대해서는 루저의 느낌을 갖는지도...^)

아무튼 88만원 세대라는 말의 등장 이후로 서로 서로 '루저임'을 내세우며 위로하고 위로받는 것은 국민 대다수의 공통된 정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개그 코너들을 보면서 '에이, 나는 저 정도로 찌질하지는 않아' 하면서 위로받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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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만큼 2010년 '개그 콘서트'의 대 루저 전략은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됩니다. 하긴 전통적으로 개그맨들은 사회의 힘없는 사람들을 대변해왔죠. 따지고 보면 봉숭아학당의 '행복전도사' 최효종도 역발상으로 루저 정서에 부응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P.S. '개콘'보다 늦게 '개콘'의 스타일을 모방했다가 현재 어두운 그늘을 걷고 있는 '개콘'의 경쟁자들에게도 이렇게 세상의 흐름을 읽는 눈이 있는지를 살펴보면, 어디서 승부가 갈리는지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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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대체 이 코너의 제목이 왜 '드라이 클리닝'인지 아시는 분? (니가 말한 그 빵이 선빵은 아니겠지~~~ 워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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