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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성 있게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이밍의 문제와 항상 엇갈립니다. 지난 금요일, 굳은살이 덕지덕지 붙은 이상화의 발이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일제히 온갖 언론이 '이상화의 발'과 '박지성의 발'을 비교하고 나섰죠.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들이 맨발로 스케이트를 신는다는 것에도 놀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아깝다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날 '양발굿'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양발굿이란 '양(洋)인들이 발로 하는 굿'이라는 뜻인데요, 이것이 바로 20세기 초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스케이트 타는 것을 보고 당시의 한국 사람들이 붙인 명칭입니다. 하도 양발굿이 유명해서 명성황후가 궁중으로 이들을 초청해 '양발굿'을 한번 보자고 한 적이 있었다는군요. 이것이 한국에 스케이트가 소개된 공식 기록입니다.

이상화의 발 사진이 하루만 먼저 소개됐더라면, 절묘하게 이 '양발굿'과 타이밍이 맞았을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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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상화 얘기 없이 쓴 '양발굿'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계 스케이팅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들어 있습니다. 인류가 스케이트를 탄 것은 알려진대로라면 약 5천년, 그리 긴 역사는 아니더군요.

제목: 양발굿

인류 최초로 스케이트가 만들어진 곳은 스칸디나비아 혹은 북러시아 일대로 추정된다. 2008년 영국 옥스퍼드대 페데리코 포멘티 교수 팀은 약 5000년 전 고대 핀란드 지역에서 발견된 최고(最古)의 스케이트를 복원해 실효성을 증명했다. 이들은 당시 제작법 그대로 말 뼈를 갈아 만든 날을 가죽끈으로 연구진의 신발에 묶고 얼음 위를 달렸다.

하지만 이 원시 스케이트는 중심을 잡기 위해 양손 지팡이가 필요했으므로 최고 시속 8㎞를 넘지 못했다. 16일 밴쿠버 겨울올림픽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모태범의 최고 시속 57㎞엔 비할 바가 아니다. 금속 스케이트 날이 처음 도입된 것은 3세기 초이지만, 빙속 경쟁이 시작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1592년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최초의 철제 날이, 1850년 미국에서는 강철 날이 도입됐고 빙상 대회가 겨울 볼거리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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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설마(雪馬)라는 썰매를 이용한 기록이 보이나 주로 화물 운반용이었던 듯하고, 1894년 경복궁 향원정에서 고종 내외가 바라보는 가운데 빙족희(氷足戱)란 이름으로 서양식 스케이트의 시범이 처음으로 펼쳐졌다.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따르면 민간인 중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신어 본 사람은 현동순이라는 이다. 그는 1904년 선교사 질레트에게 15전을 주고 스케이트를 구입해 개천에서 타는 법을 독학했다고 전해진다.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일단 빙상에 서자 한국인의 활빙(滑氷) 속도는 눈부셨다. 해방 전까지 이성덕·최용진 등 6명이 8차례나 전일본 선수권대회를 제패했고, 1936년 독일 가르미슈에서 열린 제4회 겨울올림픽을 통해 처음 국제 무대에 나선 김정연은 1만m에서 18분2초로 '일본 신기록'을 세우는 기염을 토했다. 그 뒤 불과 수십 년 만에 쇼트트랙 스케이팅 최강국이 된 한국은 2010년 밴쿠버에서 전통의 스피드 스케이팅 간판 종목인 남녀 500m를 잇따라 석권하며 북유럽 빙상 종주국들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 누구도 기대하지 못한 쾌거라 기쁘면서도 놀라움이 앞선다.

구한말 사람들이 스케이팅을 '양발굿'이라고 부른 걸 보면 그들에게도 이 빙상 묘기가 대단히 신명 나는 일로 여겨졌던 듯하다. 한국 젊은이들이 이 기세를 몰아 밴쿠버를 더 큰 얼음판 놀이마당으로 만들길 기대해 본다. (끝)


그러니까 인류 최초의 스케이트는 대략 이런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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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용 가죽신에다 저런 뼈 스케이트를 묶고서 스키 타듯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 얼음을 지치던 그 옛날 사람들의 모습은 상상하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스케이팅이 오늘날에는 시속 50km를 넘는 고속 스포츠로 발전하게 된 것이죠.

어쨌든 이상화의 발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땀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면 그걸로 참 값진 일입니다. 하긴 성공하기 위해서 그 정도의 굳은살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 리 없습니다. 누구에게든 굳은 살이 노력의 대가로 생기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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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김연아의 발이 공개돼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죠. 하긴 저렇게 아름다운 백조의 모습을 보면서 누가 아픈 발을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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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은근히 우리는 발 사진 중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뭐랄까요, 이런 발 사진은 감동의 중독성이 있다고나 할까요. 왼쪽부터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박지성의 발, 그리고 '상록수' 뮤직비디오를 통해 잘 알려진 박세리의 발입니다. 양말을 벗는 순간 햇빛에 그을은 종아리와는 달리 양말 속에서 하얗게 되어 있던 발이 노력의 상징으로 주목받았던 순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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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발을 쓰는 사람에게는 발이 중요하지만, 손을 쓰는 사람에겐 반대로 손바닥의 굳은살이 노력이 상징입니다. 웬만한 야구선수들은 굳은 살을 몇번씩 깎아내곤 합니다. (웃자는 얘기지만 개인적으로 저도 왕년에는 왼손 손목 바로 위에 굳은 살이 배겼더랬습니다. 키보드 짚는 버릇이 안 좋아서...^^)

윗글에는 다 들어가 있지 않지만, 저는 '양발굿'이라는 말의 뜻이 신명나는 놀이라는 느낌도 있었겠지만, 양발에 칼을 달고 타는 스케이트라는 것이 어쩐지 무당의 작두타기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칼날을 밟고 서는 것과는 반대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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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이라는 것은 흥겨운 놀이판이면서도 극도의 집중과 숙련을 요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한 나라가 빙상 500m 금메달을 싹쓸이한 사상 초유의 결과는 그야말로 '신들렸다'는 말 외에는 설명하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그래서 더욱 '굿'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신들린 발' 들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절로 흐뭇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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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우리도 다음엔 맨발로 한번 찍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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