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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이라면 벌써 29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에는 '나탈리 우드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외신이 대단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대강 그 무렵, 그리고 조금 윗세대까지도 '초원의 빛'이라는 영화와 나탈리 우드라는 진한 눈빛의 여배우는 너무도 선명한 우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영화 '초원의 빛'은 1961년작이었고 나탈리 우드는 1981년에 이미 43세의 중년이었습니다. 로버트 와그너라는 일세를 풍미한 미남 스타를 남편으로 두고 있기도 했죠. 어쨌든 1981년 11월28일, 이 부부가 함께 요트로 여행을 떠났다가 나탈리 우드가 익사체로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29년이 지난 최근, CNN은 나탈리 우드의 동생 라나 우드가 '언니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로버트 와그너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나름 그 시대를 아는 사람들에겐 참 충격적인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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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용을 전하고 있는 CNN 보도(
http://www.cnn.com/2010/CRIME/03/08/grace.coldcase.natalie.wood/index.html?iref=allsearch )는 그 시절을 아는 사람들에겐 참 놀랍기만 합니다.

물론 모르는 분들에게 나탈리 우드는 그냥 흘러간 옛날 배우 중 한명일 뿐입니다. 지금 살아 있다면 72세. 할머니 배우겠군요. 어쨌든 5세때 아역배우로 데뷔해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마리아, 워렌 비티와 공연한 '초원의 빛'의 디니 역으로 6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 스타의 자리를 굳혔고, 한동안 뜸했던 스타덤은 1979년 TV판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통해 다시 한번 스타덤에 불을 붙인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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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연상인 남편 로버트 와그너는 50년대 서부극의 미남 히어로 배우 출신입니다. 80년대 국내에서 '부부 탐정'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TV 시리즈 'Hart to Hart'로 인기를 모았고, 젊은 관객들에게는 오스틴 파워즈 시리즈에서 닥터 이블의 부두목인 '넘버 투' 역으로 눈에 익은 배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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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초원의 빛'이라는 영화 제목을 대면 잉걸스 가족 이야기를 다룬 홈드라마 '초원의 집'과 혼동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엘리아 카잔 감독의 영화 '초원의 빛'은 미국 중서부 지방의 청소년 성 문제를 다룬 당대의 화제작이었죠. '피서지에서 생긴 일' 등과 함께 시대를 한참 지나서도 온 세대의 청소년들에게 영감(?)을 전해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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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부분의 어린 시절 명작들이 그렇듯 자라나서 생각해 보면 참 아이들의 이야기 치고는 너무도 무거운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주제야 어쨌든간에 워즈워드의 시 구절에서 따 온 제목, 그리고 어린 나탈리 우드와 워렌 비티의 미모는 참 전설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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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당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우드의 사망 당시 상황을 '우드의 마지막 몇 시간'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
http://www.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925095-2,00.html)로 소개했습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고 당일인 11월28일, 이들은 와그너 소유의 요트 스플렌더(Splendour)호를 산타 카탈리나 섬 앞 바다에 정박시키고 3m 길이의 작은 보트를 이용해 섬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6시간에 걸쳐 만찬과 함께 와인 4병, 샴페인 2병을 마셨다니 꽤 걸찍한 자리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요트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당시 검시관이었던 토마스 노구치는 "그리 심하지는 않았지만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고 했지만 당시 수사 담당이었던 로이 해밀턴은 "논쟁이 있었다는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다. 아마도 검시관이 다소 과장되게 말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우드는 두 남자(와그너와 월큰)를 남겨두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가, 나이트가운에 실내화를 신고 그 위에 오리털 파카를 걸친 뒤 갑판으로 올라갔습니다. 영상 10도 가량의 쌀쌀하고 맑은 날씨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는 고무 보트를 묶은 줄을 푼 뒤 스플렌더의 뱃전에서 바다로 떨어져 빠졌습니다.

당시 노구치는 "살인도 아니고 자살도 아니다. 사고일 뿐"이라는 검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당시 우드는 7-8잔의 와인을 마신 상태였고 뺨에 멍이 들어 있었지만 이건 넘어지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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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배에서 약 90미터 떨어진 곳에 배를 띄우고 있던 한 여자는 당시 '살려줘'라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 소리는 15분 정도 지속됐고(15분이나 살려달라는 소리를 듣고도 내다 보지도 않았다는 뜻?), 그때 한 남자가 '걱정 마. 우리가 건져줄게'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는 겁니다. 이 여자는 구조에 응하지 않은 이유를 "외치는 소리에 전혀 위급함이나 다급함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주장은 이 여자 혼자의 주장이었습니다.)

이 증언과는 별도로 와그너는 새벽 1시30분, 배에서 아내가 보이지 않고 보트가 풀려 있자 선착장 관리자에게 연락합니다. 이들은 수색을 개시하고, 오전 3시26분에 코스트가드가 요트에서 1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우드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경찰은 '(1) 우드는 혼자 고무 보트를 타고 잠시 바다 위로 떠다니고 싶었을 것이다 (2) 고무 보트가 뱃전에 부딪혀 내는 소리가 시끄러워 보트가 묶인 위치를 옮기려 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중의 하나로 사고 원인을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우드는 생전에 "나는 물에 빠져 죽는 데 대한 공포를 갖고 있다. 수영도 좀 할 줄 알지만, 어둡고 깊은 물은 무섭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 인물이 설마 혼자 밤 바다 위에 고무보트를 띄울 리가 있겠느냐는 의혹이 남은 셈이죠.

어쨌든 우드와 와그너가 결혼한 장소가 바로 산타 카탈리나 섬 인근에 정박된 이 요트 위였다는 점, 그리고 요트의 이름 '스플렌더'가 우드의 성공작 중 하나인 '초원의 빛(Splendour in the grass)'과 겹친다는 점 등이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 죽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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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최근 CNN 보도에 따르면 29년만에 우드의 죽음에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우드의 동생인 라나 우드('다이아몬드는 영원히'의 본드걸 출신입니다)와 당시 요트의 선장이었던 데니스 데번입니다. 데번은 지난해 9월에 'Goodbye Natalie, Goodbye Splendour'라는 책을 내놨는데 이 책에서 데번은 사고 직전 우드와 와그너가 갑판에서 싸웠고, 이 싸움이 우드의 죽음의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와그너도 지난해 출간된 책 'Pieces of my heart'에서 그날 밤 우드와 싸웠고, 원인은 자신이 월큰과 우드의 사이를 질투했기 때문이며, 분개해서 와인 병을 테이블에 부딪혀 깨기도 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 두 사람의 주장은 달라집니다. 와그너는 다툰 뒤 우드가 자기 방으로 갔고, 자신은 월큰과 화해하기 위해 갑판에서 찬 공기를 마시다가 우드의 방에 가서 우드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배 안에 우드가 없고 고무보트가 없어진 것을 안 뒤 포구로 전화해 수색의뢰를 했다는 것이죠.

반면 데번은 우드와 와그너가 갑판에 올라가서도 한참 계속 싸웠으며, 꽤 시간이 지난 뒤 와그너가 자신에게 와서 "아내가 안 보인다. 좀 찾아 보자"고 했다는 겁니다. 데번은 우드가 사라진것을 알고도 와그너가 즉시 수색을 의뢰하지도 않았다고 했고, 와그너는 이에 대해 "우드는 본래 혼자 빠져나가 다른 배의 파티에 참가하곤 했다. 이번에도 그렇겠거니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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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참... 29년만에 새록새록 기억나는 엽기적인 사건이기도 하고, 과연 이제 와서 무슨 진실이 밝혀질까 싶기도 합니다. 그저 이런 일들을 누가 또 기억할까 싶어서 정리용으로 남깁니다.

P.S. 김수미씨가 "젊어서 사람들이 나한테 나탈리 우드와 닮았다고 하더라"고 하던 얘기가 문득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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