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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의 신작인 SBS TV '인생은 아름다워' 1,2회가 지난 주말 방송됐습니다. 격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첫 방송부터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더군요. 결코 적지 않은 인물들을 소개하느라 약간 나열식이 되긴 했지만 지난 수십년간 김 작가의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에게는 예전의 드라마와 새로운 드라마를 비교하는 게 짭짤한 재미를 줬을 듯 합니다. 하긴, 그렇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는데 아직 태섭(송창의)의 여자친구 채영 역을 맡은 유민은 예고편에서만 얼굴을 내밀더군요.

물론 배경이 제주도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예나 지금이나 3대 대가족이 함께 사는 홈 드라마라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지난번 '엄마가 뿔났다'에서 중간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엄마'에 맞춰졌던 초점이 이번엔 83세의 시아버지(최정훈)와 80세의 시어머니(김용림) 커플, 그리고 장남인 병태(김영철)-민재(김해숙) 부부의 장남인 태섭(송창의)의 예사롭지 않은 애정 문제 쪽으로 옮겨 갈 듯 합니다.

아무래도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태섭과 채영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고, 태섭의 진짜 애인은 사진작가인 경수(이상우)라는 점이죠. 네. 이번엔 동성애 문제가 정조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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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그것도 트렌디풍의 드라마(곧 방송될 '개인의 취향'에서는 다소 코믹하게 동성애자 이야기를 등장시킬 전망입니다. 물론 '진짜 동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자 흉내를 내는 젊은이'일 뿐입니다)가 아닌 홈 드라마에서 동성애 문제가 다뤄지는 것은 아마도 처음일 겁니다.

몇 차례 특집극이나 베스트셀러 극장 식의 단막극에서 다뤄진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화제가 되곤 했지만 이런 온 가족을 무대로 하는 드라마의 한 복판에서 동성애 문제가 조명된 적은 없었습니다. 세상이라는게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보면, 이번엔 동성애의 문제가 결코 자신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정면으로 부각될 듯 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태섭이 놓인 환경도 결코 만만찮습니다. 34세의 아들이 결혼하지 않고, 딱히 사귀는 여자도 없다면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더구나 태섭의 어머니인 민재는 친모가 아니라 계모입니다. 워낙에 살짝 극성스러운 성격인데다 남들이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 아니라서 신경쓰지 않는다고 할까봐" 민감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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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태섭이 결혼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고 남자와 연인 관계라는 것이죠. 그 상대인 경수는 이미 한 여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뒤 스스로의 정체성 때문에 이혼한 뒤 혼자 살고 있는 상태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태섭에게도 "더 이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가족에게 밝히라"고 요구합니다.
 
과연 태섭이 부모에게 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밝히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요. "우리 어머니도 아직 포기하지 못하고, 아는 사람은 전처 뿐이니 다시 새 여자 찾아 결혼하라고 한다"는 경수의 말은 한국 사회의 부모 세대들이 동성애자인 자녀에 대해 갖고 있는 의식의 평균 선을 대변합니다. 주인공인 민재라고 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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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예고편을 보면 태섭의 '명목적 연인'인 채영까지도 '뭐든 참아낼 수 있다'며 태섭에게 결혼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 보면 이안 감독의 '결혼 피로연'에 나오는 2남1녀 커플의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구도지만, 어쨌든 정통적인 홈 드라마의 틀 안에서 예상되는 막대한 갈등이 어떻게 해소될지 궁금합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화제는 아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무시할 선을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 TV는 그런 현실을 애써 무시해 왔습니다. 이런 보수적인 태도는 젊은 층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소재가 이제 정면으로 다뤄진다는 것만 해도 상당히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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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의 사회적인 금기에 대한 도전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죠. 일찌기 코믹 터치의 드라마 '사랑합시다'에서도 겹사둔이라는 '민법상 합법'인 관행을 다뤘고, '엄마 아빠 좋아'나 '모래성' 같은 드라마는 황혼 이혼이란 말이 나오기도 전부터 중년의 위기를 짚었습니다. 논쟁적인 이슈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는 것도 특기입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의 불륜 문제, '엄마가 뿔났다'에서의 엄마의 가출 등이 그렇습니다.

방송 출연 정지 상태였던 이승연, 학력 위조 파문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장미희, 성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방송에서 설 기회가 없었던 홍석천을 기용해 '재활' 시킨 것도 김수현 작가였습니다. '사실 별 이유 없이' 방송에서 외면당하고 있던 사람들을 '나는 쓴다'는 것이 일각으로부터는 '오만'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용기'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과연 그의 손끝에서 해석되는 '동성애'는 어떤 색채를 띨까요? 지금껏 한국 안방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던 동성애라는 소재가(심지어 시트콤에서도 비유적인 의미나 공포의 대상으로나 여겨지던) 70을 맞은 노작가에 의해 연착륙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이 드라마의 줄거리가 그동안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 열광했던 중/노년층 시청자들에게는 더 이상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입니다. 극중에서 송창의와 이상우의 키스신 정도라도 방송된다면... 파장은 정말 만만찮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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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드라마는 결코 '동성애 드라마'가 아닙니다. 다섯 소실을 거느렸다가 80대의 나이에 본처에게로 돌아오겠다는 할아버지 커플, 30대의 나이에 각각 아이 하나씩을 데리고 재혼한 아버지 커플의 얘깃거리나 비중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커플의 이야기가 어떻게 서로 얽히고 설킬지는 지금부터 지켜 볼 일입니다.)

P.S. 많은 사람들이 '김수현의 드라마'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게 이 노장 작가에게도 상당한 부담인 모양입니다. 그분의 트위터에도 "에고 김연아는 진짜 물건이네요. 어찌 견뎠을까요 ㅎㅎ"라는 말이 쓰여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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