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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선생이 내한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한번 올때마다 화제를 뿌리고 가시는 히딩크 선생님. 참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업적을 남기셨지만 이분으로 인해 한국과 네덜란드간에 형성된 우호 친선의 분위기는 이루 다 말하기가 부족할 정도입니다. 물론 이분의 후임들인 조 본프레레와 핌 베어벡이 그리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게 좀 안타깝지만 히딩크와 아드보카트의 업적을 무너뜨릴 정도는 아닙니다.

아무튼 이런 양국간의 우호가 형성된 것은 좋은데, 이 우호관계를 거론할 때 약 400년 전 한국을 찾았던 화란인 하멜이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사실 좀 불만입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면 납득하시겠지만 하멜은 양국 우호를 상징하기에 그리 적절한 인물이 아닙니다. 한국에 정을 붙이고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 끝없이 빠삐용처럼 탈출을 시도하다가 마침내 성공한 사람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한 네덜란드 기업인들이 만든 자선단체의 이름이 '하멜협회'로 붙여지는 등 항상 하멜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건 좀 안타까운 일입니다. 대안이 없다면 모를까, 정말 그 자리에 들어가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박연, 한국인들이 잊은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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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의 정체가 궁금하시면 아랫 글을 자세히 읽어보셔야 합니다.^^)

<두루두루> 박연에서 아드보카트까지

두 차례의 월드컵을 통해 한국과 네덜란드 사람들 사이에는 하나의 공고한 유대가 형성됐다. 특히 히딩크는 일본전을 앞두고 "명예 한국 시민의 자세로 일본을 반드시 꺾겠다"는 멘트까지 날려 한국 팬들의 가슴을 다시 한번 불타오르게 했다. 한 개인의 노력이 두 나라를 그 어느 때보다 친근하게 만들어준 사례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떠오르는 영화 한 편이 있다. 한 이방인이 머나먼 아시아의 한 나라를 방문한 뒤 서서히 그 나라 사람들과 동화되고, 마침내 그들과 목숨을 걸고 어깨를 나란히 싸운다. 그렇다. 바로 일본을 무대로 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다. 이 영화는 없는 신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네이선 알그렌이라는 가상 인물까지 동원해 감동을 쥐어 짜려 했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 역사에는 우연히 한국과 인연을 맺고 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네덜란드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흔히 한국과 네덜란드의 인연을 얘기할 때 1643년 한국에 온 <하멜표류기>의 저자 하멜을 꼽지만, 그는 한국 여자와 결혼해 13년 동안을 살고도 결국 적응하지 못해 결국 탈출한 뒤 고국에 돌아가 책을 썼다. <하멜표류기>의 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귀국을 막은 한국인들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 만큼, 그는 사실 '우호의 상징'으로는 그리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다.

반면 박연(벨테브레)은 하멜보다 16년 앞선 인조 5년(1627년) 두 동료와 함께 한국에 표류했고, 훈련도감에 배속되어 총포술 교관으로 일하면서 박연이란 이름으로 귀화해 결혼도 했다. 1636년 병자호란이 터지자 조선을 위해 청나라에 맞서 싸우다 두 동료는 전사하고 박연만 살아남았다. <하멜표류기>에 따르면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류했을 때 박연은 통역 자격으로 이들을 만나 "이 나라는 살 만한 곳이니 정을 붙이고 살아 보라"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먼 이방의 나라에서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 뛰어들어 피를 뿌려 가며 이 땅의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 했던 벽안의 한국인. 박연과 동료들의 실화를 모델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면 <라스트 사무라이>의 엉성한 감상주의를 능가할 수 있지 않을까? (끝)




그런데 놀랍게도 네덜란드 현지에서도 이 이름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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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테브레(Jan Janse Weltevree)의 고향인 De Rijp(어떻게 읽는지 모르겠군요) 지방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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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의 가문 홈페이지(http://www.weltevreden.com/Fame/Fame.htm)에도 '우리 조상중에 최초로 한국 땅을 밟은 이런 분이 계시다'는 내용이 올라 있더군요. 참 감개가 무량합니다. (사실 중간의 사또 차림을 한 박연의 사진은 2002년엔가 박연과 하멜의 모습을 재현한 행사 사진 중 하납니다. 당시 주한 네덜란드 대사가 분장한 것이라는군요.^^)




마지막으로 유머 하나:

2002년 당시에도 이런 비슷한 논의가 있어서 회사에서 얘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 얘기를 했더니 회사의 어떤 선배가 하신 말씀:

"이야, 그럼 아악을 정리한 사람이 네덜란드 사람이었구나? 어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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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딩크형, 언제 또 오시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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