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앙코르 와트는 생각보다 겁나게 크다. 그리고 의미가 만만찮다.

관광은 맨 아래, '해자테라스'라고 표시된 부분에서 시작된다. 흔히 이런 대형건물의 입구는 정남쪽에 있을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앙코르 와트의 입구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서쪽은 당연히 망자의 방향. 거대한 앙코르와트는 산사람을 위한 건물이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건물임이 뚜렷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저 해자테라스에서 앙코르와트 쪽을 바라보면 이렇게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탑문이 너무 커서 사원 중앙의 다섯 탑은 이 위치에선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저 중앙 탑문까지 약 300m를 걸어가고, 중앙 탑문에서 다시 한 300m를 걸어가야 마침내 사원이 시작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원 가는 길에서 발견한 기이한 생물. 분명히 고양이의 얼굴인데 사이즈는 쥐 정도다. '고양이쥐'라고 불러야 하려냐? 아무튼 새끼 고양이인 듯 한데 어미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 약간 징그러웠지만 앙코르 와트 주민을 처음 발견한 기념으로 찍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앙코르와트의 1층은 한쪽 변이 200m에 이르는 거대한 회랑으로 되어 있다. 이 회랑은 윗 그림에서 1번-11번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부조들의 행렬이다. 천천히 걸어서 한바퀴 도는 데에만 30분에서 한시간은 걸린다. 거리만 해도 약 1km. 그 벽을 모두 부조로 채운 수리야바르만 왕의 정성이 대단할 뿐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1번 회랑, 즉 서쪽의 오른쪽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옮겨진다. 그리고 순서상 이게 맞다고 한다. 아무튼 1번 회랑은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유명한 쿠루 평원의 전투가 펼쳐진다.


잠깐, 뭐가 유명한 무슨 전투?


이 대목에서 흥분하실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니가 언제부터 인도 문학에 심취했다고 마하바라타를 운운하면서 유명한 전투 어쩌구 하는 거냐. 구라 치지 마라, 라고 하실 분들을 위해서 한마디 준비했다. 앙코르와트를 구경 가실 분들은 일단 마하바라타 와 라마야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가시는게 신상에 좋다. 안 그러면 대체 뭘 봤는지 헷갈리기 십상이다.


그 긴걸 언제 보냐?


라고 하실 분들을 위해 준비된 책이 있다. 서규석 저,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 한권이면 앙코르와트에서 절대 주눅들지 않고 수많은 유적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요즘은 영 평판이 나쁘지만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남긴 명언,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를 실감하게 된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이런 저런 문헌들을 통해 접해 보면 마하바라타는 사촌 형제들간의 치졸하다 못해 한심한 질투와 권력투쟁의 과정에 힌두 신화 최강의 영웅이자 비쉬누의 아바타인 크리쉬나가 뛰어들어 벌어지는, 수십년간에 걸친 살육의 대제전을 극도로 미화한 문학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찮고 어리석은 동기에서 시작해 서로 무릎이 피에 잠기는 맹목적인 살육을 하면서도, 이 신화 속의 주인공들은 엄청나게 예의를 차린다. 일단 전쟁에서도 기마부대는 기마대까리, 전차대는 전차대끼리만 교전할 수 있고 해가 진 뒤에 전투를 시도하는 것은 반칙이다. 매복 따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치졸한 행위로 치부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세기에도 유럽 침략자들과 맞서 싸우던 인도인들을 지휘해 본 서구인들이 남긴 기록에따르면 당시 인도의 무사들은 매복 공격을 권유하자 얼굴 가득 수치의 빛을 띄며 강력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이 시절이 이 정도라면 수천년 전에는 '명예로운 전투'에 대한 집착은 저 당시에는 훨씬 강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이 서사시는, 위대한 왕가의 후손들이 사촌끼리의 반목으로 저지른 이 대혈투 이후로 인간은 급속히 타락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저런 엉망진창의 전투 부조를 보고 대체 이게 무슨 전투를 묘사한 건지 알게 뭐야, 라고 하실 분들은 미술사에 대한 기본이 부족한 분들이다. 이를테면 서양미술사에서 온몸에 화살이 꽂힌 반나의 청년을 그린 그림이 있다면 설명이 없어도 이건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라고 알아 차려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찬가지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죽어가는 원숭이 왕(오른쪽에 길게 누운 캐릭터) 옆에 가족들이 둘러 서 있고, 왼쪽에 활을 든 키 큰 남자가 서 있다면 이건 <라마야나>의 한 장면이고, 서 있는 사람은 역시 비쉬누의 아바타이며 활의 명수인 라마 왕자라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앙코르와트를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물소 등에(사진에는 물소가 잘 안 보이지만 오른쪽 아래의 뿔을 보면 물소임이 분명하다) 타고 있는 인상 나쁘고 근엄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이건 힌두교의 죽음의 제왕인 야마 신, 즉 불교에서 말하는 염라대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의 왕, 조신 가루다의 양 어깨를 밟고 서 있는 존재는 비쉬누 신 자신이 아니라면 그의 아바타인 영웅 크리쉬나다. 가루다를 탈 수 있다는 것은 비쉬누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 두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층층이 쌓인 머리에 수없이 많은 팔로 특징지어진다. 이 인물은 힌두 신화의 중요한 악역인 락샤사의 우두머리 라바나다. <라마야나>에서 라마의 아내 시타를 납치했다가 결국 라마에게 불사의 목숨을 빼앗기고 마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아무튼 앙코르와트 1층을 돌면서 이런 친근한 표상들을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는 한시간도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무식하게 길고 으리으리하기만 한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 바로 앙코르와트다.

이렇게 1층 관람을 마치고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가려면 갑자기 눈앞에 엄청난 급경사가 등장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공포의 75도 계단. 사진상으로도 거의 평면으로 보이지만 사람들의 눈에도 딱 저 경사로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밑으로 다가가도 이 정도. 네 발을 다 쓰지 않으면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본래 12개가 있는데, 그중 유일하게 50도 정도의 '인간적인' 경사를 갖고 있는 서쪽 중앙 계단은 수리중 푯말이 붙어 있다. 그나마 철제 손잡이가 붙여진 남동쪽 계단은 약간 수월하게 오를 수 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쪽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후덜덜.


사용자 삽입 이미지


힘들게 올라온만큼 전망은 매우 훌륭.








 

사용자 삽입 이미지

힘들게 올라온 만큼 사진은 열심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이렇게 해서 앙코르와트 관람을 무사히 마쳤다. 내려올 때? 당연히 남동쪽 계단으로 힘겹게 힘겹게 한발짝씩 내려왔다. 매우 무서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계단... 다시 봐도 너무나 아찔한.


이렇게 해서 첫날 관광은 이걸로 정리. 애고애고.





3편을 보시려면-



2편을 보시려면-



1편을 보시려면-







댓글
  • 프로필사진 희야 철제 봉이 달린 곳은 내려오기 전용이라고 가이드가 그러던걸요. 정말 네 발로 기어올라갔었습니다.

    안그래도 꼭 다시 가겠다고 생각했었지만, 말씀 보니 더더욱 더 다시 가야겠네요. 공부 열심히 하고서요. 아, 가고싶어라.
    2008.07.14 17:46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그다지 열심히 할것까진...^ 2008.07.14 22:57 신고
  • 프로필사진 누미 장마철인데도 해가짱짱한 앙코르유적지를 돌아다니다 왔습니다. 매우무서운 저 계단, 사람들이 번번이 다쳐서(하나투어 가이드 한명도 저기서 굴러떨어져 반신불수가 됐다든가..) 못올라가게 줄을 쳐놨더군요. 2008.07.14 20:24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아이고. 그렇다고 앙코르와트 3층을 못 봐서야... 그건 아니죠. 몰래라도 올라갔어야. 2008.07.14 22:57 신고
  • 프로필사진 몽란 고생하며 태국에서 캄보디아 넘어서 앙코르와트갔던 생각에 글 읽으면서 많이 즐거웠습니다.

    직항로가 있다지만, 돈보다 시간이 더 많으신 젊으신 분들이라면 태국 카오산로드쪽에 싸게 숙박하면서 하루이틀 태국구경하시고 이름도 가물가물한 태국도시(아란머시기였던것같은데)에서 국경넘어서 포이펫에서 시엠리엡가는 코스도 재미있을것 같네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예전엔 신기한 캄보디아 주유소도 구경하면서 산만한 배낭을 매고있는 튼실한 서구애들과 부대끼면서 잼났던 것 같거든요. 머 지금 다시가라면 무조건 비행기 타겠지만.....
    2008.07.17 03:08 신고
  • 프로필사진 몽란 아 그리고, 전 다시 가라고 해도 또 툭툭이를 이용해서 관람할 것 같아요. 둘이서 네고해서 전용운전사 한분 잘 구하시면 맘대로 일정짜고 맘대로 쉬고 하면서 관광할 수 있거든요.

    전 앙코르와트에서 돌아오면서 앙코르왓이나 툼은 맨마지막에 보는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송원섭 선배님은 가장 웅장한 두 유적을 보고 기타유적(딱히 더 좋은표현이 생각이 안나네요)을 보는 순서가 맘에 드셨는지 모르겠네요.

    솔직히 제 간사하고 얄팍한 지성은, 처음에 본 압도적인 두 유적때문에 나머지 유적에 감동을 덜 받게 되더군요. 빨간빛이 돌던 반띠쓰레이(죄송합니다 찾아보기 귀찮아서 확신이 없네요 맞는지는)처럼 예쁜건축물은 맛이 달라서인지 괜찮았지만요....
    2008.07.17 03:15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스타일이죠. 맛있는걸 아껴두고 나중에 먹는 사람, 제일 맛있는 것부터 차례로 먹는 사람.^ 2008.07.17 09:05 신고
  • 프로필사진 Say 저 계단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게 더 공포스럽겠는걸요?
    엄청난 경사네요..ㅡㅡ;; 무셔...;;

    참. 고양이쥐 너무 귀여워요 +0+ 막상 보면 징그러울지 몰라도 사진상으론 귀여운데요^^? ㅋㅋㅋ
    2008.07.21 16:31 신고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