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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은 아주 오래 전, 국사 시간의 660-668-676 을 기억나게 하는 영화입니다. 660년 백제 멸망, 668년 고구려 멸망, 676년 한반도에서 당의 세력 축출이라는 시간표는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아도 각각 정확하게 8년차가 나서 기억하기 쉬웠던 숫자였죠.

이준익 감독은 일찌기 세 편의 영화를 구상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황산벌'이 66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번 '평양성'은 668년이 배경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는 676년,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운동 세력을 흡수해 당과 일전을 벌이고 한반도 경략 야욕을 분쇄하는 내용을 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 논란이 꽤 일고 있는 모양입니다. 코미디로서의 정체성에 불만을 느끼는 관객들이 꽤 있기 때문입니다.



668년, 나당연합군은 마침내 고구려의 숨통을 끊기 위한 마지막 작전에 들어갑니다. 각각 남과 북에서 동시에 진공해 평양성에서 만나자는 것이죠. 하지만 문무왕(황정민)의 생각과는 달리 김유신(정진영)은 신라군 본진을 한성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평양성에서는 연개소문 사후 세 아들 남생(윤제문), 남건(류승룡), 남산(강하늘)의 3형제가 항전을 이끌지만 당과의 협상을 주장하는 남생과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남건 사이에 분란이 일어나 끝내 남생이 축출됩니다.

한편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군으로 참전했던 거시기(이문식)는 이번 전쟁에는 신라군으로 징발돼 참전해 있습니다. 신라를 원수로 생각했던 거시기에게 신라군으로 뛰라는 건 참 어처구니없는 일로 여겨지지만, 고구려군의 미녀 갑순이(선우선)을 보고 뭔가 가슴 뛰는 경험을 합니다.



일단 지적해야 할 것은 '평양성'이 매우 불친절한 영화라는 점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과연 '평양성'을 극장에서 보는 관객 중 몇명이나 660-668-676을 기억하고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고, 초반에 아무 설명 없이 나오는 이름들의 의미를 몇명이나 제대로 느낄 것인가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런 전개는 '황산벌' 때와 같습니다. 그때도 관객 대다수는 김법민(문무왕)과 김인문이 모두 김춘추(무열왕)의 아들이며 형제간이라는 것, 김유신과 김흠순도 역시 형제간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왕자인 김인문은 오래 전부터 당과의 연락 담당(인질이라면 인질, 현지화 조기 유학생이라면 유학생)으로 활약했기 때문에 "아 왜 맨날 뒷처리는 내가 하는 거냐"는 식의 푸념을 늘어놓게 된 것이라는 점, 이들 형제는 김유신과 군신관계이기는 하나 아버지의 처형이자 신라 군사력의 핵심인 김유신을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 등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영화를 봤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황산벌' 때에도 이런 이유로 관객 중 절대 다수는 '황산벌'의 코미디 요소 중 상당부분을 소화하지 못했을 겁니다. 관객 절대 다수에게 '황산벌'은 백제 군사들과 신라 군사들이 서로 사투리로 욕을 하는 코미디 영화였을 뿐입니다. 군국주의와 민초들에게 갖는 전쟁의 의미 등 정작 이 영화에서 중요했을 부분은 그냥 넘어가는 부분이었고, 당시 삼국 정세에 대한 날카로운 판단이나 이해는 전혀 읽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쨌든 '황산벌'은 박중훈이라는 좋은 배우가 계백장군이라는 유명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그 토대 위에서 펼쳐지는 코믹한 상황들이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놀랐던 것은 '그냥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돋보이는 영화라는 점이었습니다.



일단 '평양성'은 '황산벌'의 맥을 제대로 잇고 있는 영화입니다. 거기에 8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인 만큼 TV 사극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물량이 등장합니다. 전투의 진행도 대부분의 사극에 나오는 '마구잡이 개싸움'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전투 진행에 질서가 있고, 원칙이 있습니다. 여기서 수시로 터져나오는 이준익 식의 유머도 제몫을 합니다.

그런데 '평양성'을 보다 보니 이준익-조철현 콤비는 '황산벌'의 성공 요인을 좀 오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양성'은 엄밀히 말해 '황산벌'보다 훨씬 더 역사적 환경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영화입니다. 대다수 관객들에게 김유신이 평양성 내의 고구려 잔존 세력과 힘을 합치려 한다는 것은 그냥 허무맹랑한 얘기로 읽힐 뿐입니다.


실제로 668년,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1년전 당은 백제의 영토를 관장하는 웅진도독부에 의자왕의 아들 융을 도독으로 임명하고 문무왕과 백마의 목을 잘라 화친을 맹세하게 합니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구 백제 지역 영토를 신라에게 넘겨줄 뜻이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 결과 고구려 멸망 2년만인 670년, 신라는 고구려 부흥을 꾀하는 왕족 안승을 지원해 고구려 왕에 임명, 당에 반발하게 하고 웅진도독부 지역을 공격해 백제 영토의 본격적 병합에 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당과의 전투가 이어지고 결국 676년,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라의 삼국 통일 전략은 지금 돌아봐도 탁월한 데가 있습니다. 당과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지만 그 순간마다 당과 결전을 벌일 시기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견한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당에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당의 최종 목표가 한반도 전체의 병합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황산벌'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영화들의 역사의식은 대단히 높은 수준입니다. 삼국시대를 다룬 수많은 TV 사극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실제 당시에 펼쳐졌던 사건들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아울러 지나치게 '과거'에 '현대'의 의미를 담으려다 내용이 산으로 가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칭찬할 만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정확한 판단이 어쩌면 관객들에게는 지나친 역사의 무게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문식을 중심으로 한 코미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실제 역사를 보여주는 시도는 '대체 이게 뭔 소리야'라는 반응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높죠. 이런 두 가지 요소가 잘 결합됐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준익 감독의 역사 강론은 자칫 관객들에게 '너무 직설적인 강의'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양성'의 코미디가 약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문식을 비롯한 백제 출신 병사들이 부르는 '쌀노래'는 포복절도할 환경을 만들고 독특한 유머감각은 각처에서 빛을 발합니다. 다만 고구려와 그 백성들에게 놓인 운명이 지나치게 무거운 탓에 밝은 면이 제대로 강조되지 못할 뿐입니다.



연기 9단들이 대거 포진한 만큼 배우들의 연기는 더 보탤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만, 상당히 중요한 역할인 선우선이 아쉽습니다. 선우선이 구사하는 이북 사투리 연기 가운데 제대로 소화됐다고 보이는 것은 '어찌 보니(왜 쳐다보니)?' 정도일 뿐, 나머지는 뭉개지고 흩어져 알아듣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가능하면 좀 더 많은 관객들이 보았으면 하는 영화지만 '조선명탐정'에게 워낙 밀리다 보니 불길한 예감(이준익, "관객 250만을 넘지 않으면 상업영화에서 은퇴하겠다")도 들지만 뒷심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설 연휴를 맞아 '글러브', '조선명탐정', '평양성'을 둘러 봤지만 제 취향에는 '평양성'이 가장 맞는 듯 합니다만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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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너돌양 역사를 잘 알면 참 잼있게 볼 수 있겠죠. 지금봐도 그 당시 신라인들은 머리가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2011.02.03 09:59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긴 명절이 다 끝나가는군요. ㅠㅠ 2011.02.05 11:47 신고
  • 프로필사진 skywalker 숙제를 하나씩 안기시는군요. 기쁜 소식도 있고하니 그만 뒹굴거리고 예매라도 해야하나? ^^ 2011.02.03 12:34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ZZZ 2011.02.05 11:47 신고
  • 프로필사진 건빵파총수 과연 이 많은 한국 영화들을 언제쯤에나 볼 날이 올까...

    from NZ...
    2011.02.03 19:08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저런... 2011.02.05 11:47 신고
  • 프로필사진 랜디리 이준익 감독 은퇴를 막기 위해서라도 간만에 극장 한 번 떠야겠군요. 제가 한 끼를 먹어도 반찬 40개를 놓고 먹는 놈인데 (...?) 2011.02.03 20:46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 2011.02.05 11:47 신고
  • 프로필사진 아이스라테 연휴라 맛난 것도 많이 드시고 여유가 있으신가봐요
    간만에 글이 자주 올라오네요~~쉴때도 글을 쓰시는건 직업병? 전 재미있고 유익한 글 자주 보니 큰 기쁨요!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시고 하는 일 다 잘되세요!!!^^
    2011.02.05 02:40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감사합니다. 다들 행복하시고- 2011.02.05 11:47 신고
  • 프로필사진 양락이 음 ~~~
    먼저 원섭아 설명절은 잘보냈니?
    난 이번 연휴 회사에서 열씨미 일했다 ㅠ.ㅠ(지금도 회사)
    한번 만나자구 해놓구 못나간 못난 친구를 용서해주구~~~

    올한해도 좋은일 마니마니 듬뿍듬뿍 모락모락 생겨나길
    기원할께...

    근데 평양성이 코미디로,황산벌이 코미디로 조금 씁씁한디요
    ㅎㅎㅎㅎㅎㅎ 난 갱상도가 고향이라.....
    항상 글 잘읽고 간다.... 청량 홧팅(비밀인가?)
    2011.02.05 09:17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음... 웬만하면 나이에 맞는 문체를 좀 구사해보기 바란다. ㅋ 2011.02.05 11:48 신고
  • 프로필사진 pr2317 저도 나름 역사를 알만큼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덕분에 '황산벌'도 그렇고 '평양성'도 재미있게 봤는데..

    미처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생각못하고 "완전 짱이야!!"라고 사람들에게 말했다가 완전 밟혔다는 아픈 기억이..ㅠㅠ

    '평양성'에서 유일하게 맘에 안드는거 하나는 남건을 너무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물론 평소에 알고 있던 역사가 조작된 역사일수도 있지만..

    제게는 무능한 주제에 욕심 많은 XXX로 인식되어 있던 남건을 새롭게 해석을 한 것이 신선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적 사실을 하나하나 따져봐도 남생이 화친을 주장해서 남건이 형을 내쫓았다는 건 지나친 무리수인듯..
    2011.02.05 14:26 신고
  • 프로필사진 강가리 명절 잘 지내시지요..
    이준익 감독 ..
    그래도 조금이나마 역사의식을
    필름에 담아 볼려는 노력을 높게 평가
    해 줘야지요...
    2011.02.06 00:07 신고
  • 프로필사진 글쎄요.. 백제인이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는 것 부터가 역사적 인식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 2011.02.11 02:34 신고
  • 프로필사진 송원섭 그건 유머감각의 차원입니다. 역사의식과는 무관한. 2011.02.11 11:02 신고
  • 프로필사진 jsyqa 결국 이준익 감독이 상업영화 은퇴 선언을 한 것 같던데요- 거참;; 2011.02.28 21: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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