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MBC TV '나는 가수다'가 처음 나올 때 썼던 글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프로그램이 역풍을 맞았고, 담당 PD가 전격 교체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물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런 사태를 제가 예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런 비슷한 얘기도 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가수다'는 보고 있으면 아쉬움과 한탄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몇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순기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로 '진짜 음악'의 가치를 상당수 시청자들에게 다시금 느끼게 했다는 점이죠.

그리고 또 하나의 순기능을 이제 기대하게 됐습니다. 바로 '실력에 비해 대중에게 덜 부각된 가수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목적을 수행한다면 내일부터 새로 출범하는 '나는 가수다'는 새롭게 존재의 가치를 평가받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런 기대를 갖게 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김연우'라는 이름입니다.




지난해 12월29일, '슈퍼스타K 2'의 열기가 다 식기 전에 썼던 글입니다. 이때만 해도

'위대한 탄생'은 막 시작하고 있었고, '나는 가수다'같은 프로그램이 나타나는 상황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붙인 이 글의 제목은 ‘슈퍼스타 K’가 가수들에게 준 선물은?' 이었습니다. 5개월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현재의 상황은 이때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쪽으로 가고 있는 듯 합니다.



‘슈퍼스타 K’가 가수들에게 준 선물은?'

<슈퍼스타 K 2>(Mnet) 최고의 수혜자는 허각. 이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 그의 우승으로 가장 크게 덕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 케이블 TV Mnet 사장? 허각의 노래를 만든 작곡가 조영수? 허각의 가족? 여자친구? 사실 다들 허각의 우승으로 만세를 부른 사람들이지만 순서를 매기자면 김태우를 빼놓을 수 없다. 벌써 한 달 이상 지났지만 기억들을 되새겨보시기 바란다.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무대에서 허각은 김태우의 ‘사랑비’를 불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말했다. “김태우가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 가수인 줄 몰랐어.”조금 더 시계 바늘을 앞으로 돌려보면 <슈퍼스타 K 2> 심사위원 윤종신은 허각에게 이렇게 말했다. “허각 씨가 앞으로 상대하게 될 가수들은 김태우 김연우 김조한 같은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가수들입니다. 그러려면 좀 더 분발해야 합니다.”

솔리드 출신의 김조한은 아는데 김연우는 누굴까 하는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김연우는 토이의 객원 싱어일 때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여전히 아름다운지’ 같은 히트곡을 남긴 최강 미성의 가수다. 어쨌든 김태우 김연우 김조한 모두 용모로 따지자면 결코 비디오형으로 분류될 수는 없는 가수들이다. 대신 그런 약점을 소름 끼치는 노래 솜씨로 극복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윤종신은 허각 역시 가요계로 나간다면 그들과 같은 길을 걸어야 할 것임을 정확하게 짚어냈고,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대다수 시청자들은 의아해 했다. “아니, 허각이나 그네들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그리고 허각이 부른 ‘사랑비’는 많은 사람들에게 윤종신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닫게 해줬다. 그 노래 잘하는 허각도 김태우만큼 ‘사랑비’를 소화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슈퍼스타 K 2>가 가르쳐 준 교훈 중 하나는 ‘어울리는 노래’가 가수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었다. <슈퍼스타 K>는 몰라도 MBC <스타 오디션-위대한 탄생>(이하 <위대한 탄생>)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했다가 멘토 방시혁에게 당장 쫓겨나게 되어 있다. 허각에게 ‘사랑비’가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는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 노래 때문에 사람들은 허각이 아직 더 다듬어져야 할 가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반인들이 프로에 대한 존중 혹은 존경을 느낄 기회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위대한 탄생>의 다섯 멘토 중 하나인 방시혁은 자신 앞에 선 도전자들이, 그리고 시청자들이 이 부분을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적한다. “요즘 가수 되려고 준비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 씨보다 노래를 잘해요.” “기존 가요계를 비판하려면 실력으로 압도해야 하지 않겠어요?” 농담이 아니다.

요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보고 ‘붕어’ 어쩌고 했다간 엄청난 망신을 당할 수 있다. 뮤지컬계가 제정신이 아니라서 앞 다퉈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데려다 주인공을 시키는 게 결코 아니다. 분야에 따라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선명하기도 하고, 흐릿하기도 하다. 바둑 실력에 자신이 있는 어떤 사람이 이세돌이나 이창호와 비슷한 실력이라고 주장하면 다른 사람들은 몇 단이냐고 물어볼 것이다.

그때 그 사람이 “인터넷 바둑에선 5단”이라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표정을 상상해 보자. 자기가 던지는 공이면 박찬호는 몰라도 김광현 정도는 될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어느 팀에서 뛰고 있느냐고 물어봤을 때, “주말마다 직장인 야구팀에서 뛰는데 작년에 10승이나 했다”고 말하면 정신병자 취급받을 것이다.

노래방에서 자신이 마이크만 잡으면 박수가 쏟아진다는 사람들은 동전을 넣고 치는 야구 연습장에서 때릴 때마다 공이 쭉쭉 뻗는다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적당하다. 노래방 실력으로 방송에 출연하는 가수들과 자신의 실력을 견주는 사람이야말로 야구 연습장 실력으로 자신을 이승엽이나 이대호와 비교하는 사람과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것, 그것이 <슈퍼스타 K>와 <위대한 탄생>의 공적이다. 그래서 가수들과 가요계는 <슈퍼스타 K>에 고마워해야 한다.  <끝>




윗글에서 '실력에 비해 덜 알려진 가수'로 김연우를 든 것은 그냥 예로 든게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노래 잘 하는 가수는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보통 김범수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김범수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실력파는 누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김연우와 이승열을 꼽게 되더군요. (아, 물론 조용필에서 신승훈 이승철에 이르는, 이미 레전드의 자리에 있는 가수들을 같은 선에서 비교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제가 김연우나 이승열의 광팬은 아닙니다만, 약간 덜 대중적인 길을 걸어 온 이승열에 비해 김연우는 대단히 대중적인 노선을 걸어왔으면서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잘 모른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끼게 합니다. 뭐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이란 노래를 들으면 '아, 이 노래 유희열이 부른 거 아닌가?'라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상황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이대목에서 김연우의 노래 한 곡. 영화 '사랑을 놓치다'에 삽입된 '사랑한다는 흔한말'입니다.





고음이 가수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야구에서 구속만 빠르다고 최고의 투수가 되는 것은 아닌 것에 흔히 비교합니다), 이런 맑고 투명하면서도 힘찬 고음의 소유자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는 면에서 김연우의 목소리는 정말 탁월합니다.

'나는 가수다'에 김연우 같은 가수들이 잇달아 등장한다면, 그리고 그 가치를 새롭게 증명한다면 이건 프로그램에도 정말 좋은 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울러 이런 가수들도 '나는 가수다'가 끌어들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