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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퀄(prequal)이라는 말은 오히려 시이퀄(속편, sequal)이란 말보다 잘 알려진 단어가 됐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이퀄은 '속편'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프리퀄은 '전편'으로 번역하면 의미에 혼란이 오기 때문이죠. '엑스맨-퍼스트클래스'가 '엑스맨'의 프리퀄이라고 말하면 웬만한 사람은 다 알아듣지만 '전편'이라고 얘기하면 누군가는 심각한 표정으로 '엑스맨'이 가장 첫번째 작품인데 무슨 전편이 있느냐고 따질 수도 있습니다. 뭐 아무튼 그렇다는 얘깁니다.

최근 들어 히트한 영화에는 속편 제작의 유혹만큼이나 프리퀄 제작의 기회가 있는 게 보통입니다만 모든 종류의 프리퀄에는 심각한 약점이 있습니다. 그건 당연히... 거의 모든 관객이 결말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주요 인물의 생사에 대한 자유도는 전혀 없어지는 것이죠.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는지를 모든 관객이 아는 상태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건 상당한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단 줄거리.

2차대전 중 폴란드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에릭 랜셔는 나치의 학대 속에 자신 속에 잠자는 초능력의 발현을 경험합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 동부 명문가의 아들 찰스 재비어는 집에 몰래 들어온 어린 레이븐(뒷날의 미스틱)을 동생처럼 거둡니다.

세월이 흘러 1960년대. 미국 정보요원 모이라는 소련의 첩보활동을 돕는 세바스찬과 일단의 초능력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안 뒤 초능력=돌연변이의 소산(이라는 놀라운 추론을 해내다니!)이라는 생각에서 돌연변이 연구로 각광을 받던 젊은 날라리 학자 찰스 재비어를 찾아나섭니다. 미국의 방첩활동에 뛰어든 재비어는 오래지 않아 복수를 위해 세바스찬을 뒤쫓던 에릭 벤셔와 만나게 됩니다.



위에서 말한 문제점은 고스란히 '엑스맨-퍼스트 클래스(이하 FC)'에도 해당됩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운명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찰스 재비어(제임스 매커보이)와 매그니토-에릭 랜셔(마이클 패스빈더)가 아무리 우정을 나눠도, 언젠가는 적이 될 거라는 걸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돌연변이 악당 세바스찬(케빈 베이컨)이 아무리 강력해 보여도, 영화가 끝나기 전에 그의 전성기는 막을 내릴 거라는 점 역시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럼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할까요. 사실 프리퀄의 약점부터 얘기하고 시작했지만 좋은 점도 있습니다. 프리퀄을 보러 오는 관객의 특성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기본적으로 캐릭터의 히스토리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매그니토가, 내가 좋아하는 X박사가 철들기 전에는 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혹은 냉철하고 판단력 뛰어난 비스트는 어려서 어떤 타입이었을까, 미스틱은 어쩌다 X박사와 등지고 매그니토와 같은 편이 되었을까와 같은 '설명'을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관객들은 액션의 부족이나 거대한 볼거리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신 캐릭터가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서로간의 관계를 맺어 가는지에 주목하는 경향이 짙죠. 이것만 잘 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매튜 본은 이 과업을 특유의 유머 감각을 살려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영화감독보다는 클라우디아 쉬퍼의 남편으로 더 유명하고, 이따금씩 수컷판 백조의 호수를 연출한 매튜 본과 혼동되며(무용 매튜 본은 Matthew Bourne, 영화감독은 Matthew Vaughn 입니다^^), 원래 '엑스맨 3'의 감독이 될뻔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프리퀄을 맡게 된 이 감독의 유머감각은 프로듀싱을 맡은 영화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나 자신의 데뷔작 '레이어 케이크'에 잘 나타나 있죠. 괴짜 돌연변이들의 성장 드라마에 이보다 적절한 감독도 드물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교해보자면 나쁜 프리퀄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스타워즈 1, 2, 3'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세 편이나 되는 대작 영화에 거대한 음모와 대전쟁을 그려 놓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지루했을 뿐입니다. 전쟁이 아무리 엄청난 규모로 그려져봐야 어차피 스톰 트루퍼가 승자가 된다는 건 다 알고 있으니 관심 갈 내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에피소드 4~6에서는 한두명만 있어도 행성간 전쟁의 전세를 바꿔 놓을 수 있을 것 같던 초전사 제다이들이 1~3에서는 수십명 있어도 백병전에서 몰살이나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설정이 시리즈에 대한 반감을 폭증시켰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에피소드 1, 2, 3가 관객들에게 보여준 거라곤 '대체 요다는 어떻게 싸울까'에 대한 대답 뿐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매튜 본의 이 프리퀄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데에는 기존 배우들의 젊은날을 연기한 새로운 배우들이 큰 몫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뭐 요즘 한창 뜨거운 배우들인 매커보이나 패스빈더는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간 건 역시 엠마 프로스트 역을 맡은 재뉴어리 존스. '언노운'을 못 봤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처음 대했는데 왠지 클라우디아 쉬퍼가 젊었으면 욕심냈을 것 같은 역할이더군요. 아니면 이런 타입이 바로 매튜 본의 스타일인지도....ㅋ



이미 속편('엑스맨4'가 아니라 이 FC의 속편 - 그러니까 여전히 '엑스맨' 보다 앞의 시대 이야기)을 만든다는 계획이 세워져 있다는데 이 시리즈가 계속되는 걸 보고 싶은 마음이 반, 두번의 프리퀄은 아무래도 무리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반 정도 듭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굳이 FC라는 이름을 건 것은 '비긴스'나 '리턴스'의 또 다른 표현이며 이제부터 이 배우들을 갖고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어 보겠다는 얘기일테니, 2편부터는 굳이 프리퀄의 굴레를 씌울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울버린이나 성인 미스틱 같은 배우들의 얼굴이 잠깐 비쳤던 건 또 어떻게 소화할 생각인지...^^



P.S. 생각해보면 왕년의 NBA 선수중에 보스턴 셀틱스, 시애틀 슈퍼소닉스 등에서 뛰었던 재비어 맥다니엘이라는 선수의 별명이 'X맨'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드물게 이름이 X로 시작(Xavier)한다는 것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게 '엑스맨' 시리즈와 무관하지 않은 별명이었을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P.S.2. 얼마나 가능성있을지 모르지만 어쩐지 부잣집 출신의 마음씨 넉넉한 재비어는 매튜 본 자신을, 재능은 뛰어나지만 독선적인 에릭은 가이 리치를 그리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슬쩍 스치고 지나가더라는.... ('뭐 아니면 말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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