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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닭이란 동물은 대개 음식으로 대하게 됩니다. 개 안 먹는 나라, 돼지 안 먹는 나라, 소 안 먹는 나라는 있어도 닭 안 먹는 나라(혹은 문화, 종교, 학칙...)이라는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기르기 쉽고, 알도 쑥쑥 낳아 주고, 죽으면 고기와 국물을 주고, 좀 따갑긴 하지만 털로는 베게며 이불도 만들어 주는 아주 훌륭한 동물입니다.

그런 유틸리티 애니멀인 반면 대중적인 인기는 크게 떨어집니다. 대개는 호랑이나 사자, 독수리 같은 뽀대 나는 동물들이 인기 앞 순위를 차지하기 마련이고(그런 면에서 프랑스는 대단히 예외적인 나라...), 이런 경향은 한화 이글스를 비하하는 호칭인 칰스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닭이란 동물에 별 애정이나 관심 같은 건 전혀 없었습니다. 심지어 남들이 다 재미있었다는 '치킨 런'조차도 굉장히 지루하게 봤습니다. 그런데 '마당을 나온 암탉'은 좀 다른 영화더군요.


이 국산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양계장의 암탉 '잎싹'. 늘 먹고 알 낳는 것이 일상인 수많은 암탉들 가운데서 잎싹은 문틈으로 보이는 양지바른 마당을 동경합니다. 하지만 어느날, 마침내 마당으로 나가게 되지만 그 마당은 잎싹이 바라던 살만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야생의 세계로 진출한 잎싹은 남성미 넘치는 야생 청둥오리 '나그네'를 보고 연정을 품게 되는데, 종이 다를 뿐만 아니라 나그네의 옆에는 우아한 암컷 오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악역인 족제비가 나그네의 둥지를 덮치고 잎싹은 그들의 알을 대신 품어 새끼 오리가 태어나게 합니다.

알에서 깬 조류는 처음 본 존재를 어미로 여긴다는 자연의 철칙대로 잎싹을 엄마로 여기는 병아리. 이 병아리에게 '초록'이란 이름을 붙인 잎싹은 아기를 데리고 바닷가 늪으로 갑니다.



살짝 코믹한 외양의 잎싹은 지성보다는 행동력이 지나치게 앞서는 타입의 여성입니다. 왜 사람에게 가축들이 순종해야 하는지, 마당의 가금류들 사이에는 왜 서열이 있는지, 자연 상태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미 가축이 된지 오랜 닭은 왜 물가에 가면 힘들어지는지 따위의 상식에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민폐 캐릭터의 모든 요소를 갖춘 잎싹. 하지만 유일한 특징은 같은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는 능력입니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 존재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한다는 뜻이죠. 그 전에는 그냥 '오리 1', 혹은 '파수꾼'이던 오리는 잎싹에 의해 '나그네'란 이름으로 기억되죠. 초록이도, 달수도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그런 민폐형 캐릭터 잎싹이가 펼치는 예상 밖의 결말은 정말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뭔가 이 카리스마 넘치는 오리에게서 위장취업한 운동권 대학생류의 느낌을 받게 되는 건 아무래도 제가 80년대 세대이기 때문일 듯 합니다. 아무튼 이 최민식의 목소리가 잘 어울리는 수컷 오리는.... 보기만큼 제몫을 다 하지는 못합니다.

뭐 어차피 주인공도 아닌데 무슨 상관입니까.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도 미스테리로 남는 건 옆에 있던 암컷 오리의 정체입니다. 대사를 주지 않은 것은 연기력이 떨어지기 때문인지, 제작비 절감 차원의 선택인지 모르겠지만 행색으로 보아 집오리 종류인 듯한 이 암컷 오리는 대체 어쩌다 야생으로 나오게 됐던 것일까요.

생각해보면이 암컷 오리야말로 멜로드라마 주인공으로 제격입니다만...(묵념)


유승호가 목소리 연기를 맡은 초록이는 딱 유승호 같은 캐릭터입니다. 적당히 귀엽고 적당히 반항적인데 능력은 초인적..아니 초압적입니다. 원래 오리는 그렇게 빨리 자라나요? 1년도 안 되어 다 자란 수컷 오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이 '마당을 나온 암탉' 최고의 스타 캐릭터는 수달 달수입니다. 이름이 왠지 오달수를 캐스팅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리 봐도 1/3 이상이 애드립인듯한 박철민의 연기는 불꽃을 튀깁니다.


생각해보면 주요 캐릭터들 중 상당수가 죽고 헤어지는 가운데서도 이 영화가 밝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건 누가 뭐래도 박철민의 공헌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물론 이 애니메이션을 오래 기억나게 할 건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아무래도 영상일 듯 합니다.


모든 장면이 이 장면처럼 잔뜩 공이 들어갔다면 영화가 버틸 수 없었겠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아 이건 우리나라의 산야고 우리나라의 늪지대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게 하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특히 잎 진 겨울 산야와 멀리 보이는 하늘을 배경으로 오리들이 날아가는 장면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우리 자연'을 그리는 데 남달리 공이 들어간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성장에 대한 우화로 여겨졌던 이 작품의 예기치 못한 결말은 원작을 안 보신 분(저를 포함해서)들에게 참으로 충격적일 것입니다.

이 작품의 원작이 동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세상이 분명한 선과 악으로 나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방법도 참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꼭 이런 결말을 내려야 했는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어쨌든 세상 만물에는 모두 특유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자연에는 이래저래 순환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불변의 진리. 굳이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仁)을 거론하는 건 오히려 촌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잎싹의 선택은 예전에 한번 거론한 적이 있었던 앤서니 퀸 주연의 1960년작 '이누크(The Savage Innocents)'에서 장모 할머니가 내렸던 선택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다만 영화를 안 보신 분들에게는 스포일러 역할을 할 수도 있으니 블라인드 처리합니다.

(궁금하신 분은 아래 흰 부분을 마우스로 긁어 보세요.^^)


워낙 식량 생산이 적은 에스키모들은 노령이 되어 더 이상 가족을 위한 노동에 종사하지 못하게 되면 일종의 자발적 고려장을 요구하게 됩니다. 북극곰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버려져 곰의 먹이가 되는 거죠.

이 영화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곰을 바라보며 할머니는 생각합니다. "곰이 나를 잡아 먹고 살이 쪄서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이누크가 곰을 사냥하겠지. 그럼 이누크와 내 딸, 그리고 아기가 곰을 먹고, 나는 가족에게 돌아가는거지." 이것이 영화 '이누크'가 보여주는 에스키모의 독특한 자연관입니다. '마당을 나선 암탉'의 결말과 어쩐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죠.


아무튼 
어린이들이 이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참 궁금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똑똑한 어린이들은 어른들보다 쉽게 그 정수를 이해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입니다. 아무튼 비오는 여름철, 한번 보실만한 영화임은 분명합니다. 절대 '애들 보는 영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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