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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참 손이 근질근질했습니다. 남들이 만드는 드라마, 영화 방송 나가는 걸 보면서 아 이런 얘기는 꼭 하고 싶은데, 뭐 이런 생각을 한 게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뭐 바쁜 것도 바쁜 거지만, 곧 방송국을 오픈할 주제에 남들 작품 갖고 왈가왈부하는 게 솔직히 불안했죠. 뚜껑 연 뒤에 "남의 것 갖고 그 난리를 치더니 참 대단한 물건들 만들어 놨다"는 비아냥이라도 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12월1일 JTBC가 개국을 하고, 하나 하나 준비한 물건들을 까 보는 과정에서 희망이 생겼습니다. 드라마 '인수대비',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 교양 '깜놀, 드림프로젝트', 그리고 예능 '칸타빌레'를 보면서 콘텐트의 질에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물론 이 한편을 빼놓으면 말이 안 되겠죠. 바로 '노희경표 드라마', '빠담빠담'입니다.




JTBC 월화드라마 '빠담빠담'의 원제는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입니다. 좀 길죠. 이 드라마는 16년 전 어울려 다니던 동년배 학생을 죽인 죄로 수감된 강칠(정우성)과 어찌 어찌 하다가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수의사 지나(한지민)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100% 드라마 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강칠은 사건의 진범이 아니고, 강칠의 손에 피묻은 칼을 쥐어 준 진범은 현재 검사가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대법관 물망에 올라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강칠에게 사람을 붙여 감시하고 있습니다.

첫회부터 아무 이유 없이 계속 마주치는 강칠과 지나 사이에는 끈끈한 인연이 숨어 있습니다. 강칠이 죽인 것으로 오해를 산 학생은 지나의 삼촌, 그러니까 형사인 지나 아버지의 나이 차이 나는 동생이었던 겁니다.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싸움질이나 하다가 누군가의 칼을 맞고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지나 아버지는 강칠을 절대 움직일 수 없는 살인범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지나 어머니는 강칠이 진범이 아닐 것이란 생각에 면회를 다니며 강칠의 구명 운동을 펴고, 이 때문에 부부 사이에 틈이 생기고, 그러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숨을 거둡니다. 이때문에 지나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가고 있죠.

참 난마처럼 얽인 관계입니다.



물론 이런 식의 갈등 구조는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빠담빠담'을 특이하게 보이게 하는 것은 드라마를 풀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꿈'과 '현실'의 교차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스스로 천사라고 주장하는 국수(김범)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의 궁금증은 대략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하나는 국수가 진짜 천사인가, 아니면 자기가 천사라고 믿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미숙한 아이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과연 이 드라마가 실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인가, 아니면 강칠의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첫번째와 두번째 이야기는 결코 무관하지 않죠. 제가 이 글의 제목에 '인셉션'을 끌어들인 것도 이 질문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 꼭 짚고 넘어갈 일이 있습니다. 제가 분명 내부자(?)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가 앞으로 전개될 방향에 대해서는 시청자 여러분보다 별로 더 아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는 모두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절대 회사나 제작진의 의견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 흑백 단편 영화 한 편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무대는 남북전쟁기의 미국. 한 남군 포로가 북군에게 체포돼 다리 위에서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목이 매달리는 순간, 줄이 끊어지고, 그 포로는 강물 속 깊이 빠집니다.

다리 위의 적군이 총을 쏘지만 포로는 요행히 총을 피해 내고, 들판을 달려 집으로 향합니다. 마침내 그리던 고향 집이 눈에 보이고, 예쁜 아내가 환히 미소지으며 포로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가 아내와 손을 맞잡는 순간,

목줄이 조여지고, 포로의 다리가 축 늘어집니다. 그러니까 고향 집과 행운의 탈주는 모두 이 포로가 목이 졸리고 숨이 끊기기 전까지, 그 짧은 순간 동안 꾼 아름다운 꿈이었던 것이죠. 어찌 보면 삼국유사의 조신지몽과 비교할 수 있는, 인생의 비애를 느끼게 하는 수작입니다.

(뭐 대략 짐작도 하실 수 있겠지만 혹시나 해서 결말은 감춰 두었습니다. 마우스로 위의 흰 부분을 긁으시면 답이 보입니다.)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저 단편 영화는 로버트 엔리코(Robert Enrico)의 1962년작 'An Occurrence at Owl Creek Bridge' 입니다.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 영화상 단편 부문을 휩쓴 유명한 작품이고, 저 결말은 두고 두고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단편 영화 치고는 24분 가량으로 좀 길지만, 한번 보실만한 수작입니다.

굳이 이 영화 얘기를 왜 꺼냈는지 이해 못할 분은 안 계시겠죠.^^



1, 2부에 걸쳐 강칠은 여러 차례에 걸쳐 석방 직전의 갈등 - 싸움 - 김교위의 갑작스런 죽음 - 교수형을 반복해서 경험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귀휴-아들과의 만남-지나의 차에 의한 교통사고 - 병원에서의 깨어남 역시 반복됩니다.

두 사건의 흐름은 정상적이라면 귀휴 - 교통사고 - 병원에서 눈뜸 - 교도소로 귀환 - 싸움 - 교수형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강칠은 교수형 이후 병원에서 눈이 뜨는 경험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똑같은 싸움 장면을 경험하면서 국수에게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아!"라고 절규합니다. 마지막 순간, 김교위에게 향하던 주먹을 간신히 멈춰 정해진 사건을 중단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의아해하게 됩니다. 과연 강칠에게 일어난 사건의 정체는 무엇일까. 앞부분의 사건이 미래를 내다보게 해 준 예지몽일까? 아니면 현실일까? 현실이라면 왜 똑같은 사건이 되풀이될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쉬운 답은 그냥 그대로 '국수가 천사이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천사가 나오는 드라마에서 개연성이나 실현 가능성을 따지는 건 바보짓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해석은, 뒷부분을 '강칠의 꿈'으로 풀어 가는 해석입니다. 강칠은 김교위를 죽인 죄로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아마도 사형이 집행되기 전,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나 하는 후회를 수십번, 수천번은 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만약 그때 조금이라도, 마지막 순간에라도 몸을 멈췄다면...'하는 간절한 소망이 꿈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난 강칠에게는 수많은 상상들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출감하고, 출감해서 귀휴 때 만났던 그 예쁜 아가씨를 다시 만나고, 알고 보니 그 아가씨가 자신에게 계속해서 속옷을 보내 주던 그 아주머니의 딸이고.... 간절함이 현실로 보이는 것이죠.



하지만 꿈은 꿈. 언젠가 꿈은 깨게 되어 있는 법. 그래서 어느 한 순간, 강칠은 다시 깨어납니다. 그 깨는 장소가 병원 침대 위일지, 감방 안일지, 그도 저도 아닌 또 다른 장소일지는 알 수 없겠죠. 그리고 그 꿈을 깬 뒤의 결과가 해피엔딩일지 비극일지도....

만약 이렇게 진행된다면 참 슬픈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노희경 같은 대 작가가, 저 따위가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진행을 선택하지는 않겠죠?

어쨌든 이런 저런 상상을 해 볼 정도로 '빠담빠담'은 흥미로운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가, 아직 18회나 남아 있다는 건 꽤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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