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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꽃등심'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 본 건 한 20년 전 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그냥 등심구이, 그보다 더 전에는 '로스구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였죠. 그런데 어느샌가부터 '꽃등심'이라는 말이 쇠고기의 최고봉을 가리키는 말처럼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꽃살', '설화육' 같은 말들이 뒤이어 등장했죠.

물론 '꽃등심'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한참 뒤까지도 고기를 먹으러 가서 '마블링'이라는 말을 쓰면 뭔가 대단히 아는 척 하는 것으로 비쳐지곤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시골 고기집에 가도 마블링을 얘기하게 됐으니 상전벽해가 된 셈이죠.

이제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마블링의 위력. 하지만 세상이 다시 한번 돌아 제자리로 왔습니다. 마블링이라는 것이 과연 가장 좋은 쇠고기의 절대적인 기준이냐는 질문을 던질 시점이 온 듯 합니다.

8일 방송된 JTBC '미각스캔들'에서는 '마블링 만능론'에 대해 의문을 던졌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한우 육질은 일단 A, B, C로 나뉘고, A급은 다시 1++A, 1+A, A급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이 1++를 붙일 수 있느냐 없느냐에는 바로 마블링의 모양이 절대적 역할을 합니다.

본래 마블링이란 기름과 물의 성질을 이용한 미술 기법입니다. 물 위에 유성 물감이 아른아른 번지는 모습이 매끈한 차돌 겉면의 무늬처럼 보이기 때문에 마블링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쇠고기의 마블링은 눈꽃처럼 넓게 퍼지는 것을 최고로 치죠.

물론 그 마블링의 흰 색은 모두 지방입니다. 고기 끝에 뭉쳐 있다면 떼 버릴 지방이 고기 속에 골고루 퍼져 있으면(근내지방이라고 하죠) 박수를 받는 겁니다. 적당이 콕콕 마블링이 박힌 고기는 쉽게 질겨지지도 않고, 얇게 썰면 살코기와 지방이 사르르 녹아 버리는 느낌을 줍니다. 쇠고기 뿐만 아니고, 오도로라고 불리는 참치 뱃살에서도 마블링이 잘 된 것일수록 높은 품질로 쳐 주지만, 사실 취향에 따라선 느끼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쇠고기의 마블링은 9단계 표로 표시됩니다. 이 도표와 비교해 볼 때 8,9 등급 이상이라야 1++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방송에서도 거론됐듯, 전체 도살우 중에서 1++ 등급을 받는 고기는 7.8% 정도라고 합니다. 12마리 중 1마리 꼴입니다.

사실 방송에서는 마블링 때문에 2, 3 등급을 받는 소들이 속출해 축산 농가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쪽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엄밀히 말해 마블링의 가장 큰 페해는 먹는 사람의 건강입니다.

아시다시피 마블링이 많은 소는 절대 건강하지 않은 소입니다. 가능한 한 움직이지 않고 고열량의 먹이를 먹으면서, 심지어 알콜까지 섭취하게 해 만들어 낸 소가 근내 지방 축적이 많습니다. 사람으로 쳐도 운동따위는 뒷전으로 미루고 편안한 소파 위에서 뒹굴며 술과 고지방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피둥피둥 살찌는게 당연한 얘기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대목에서 잠시 묵념...)

방송에서는 막걸리를 소에게 먹이고 트로트를 들려주는 장면이 나왔지만, 일본에서도 최고급 무사시노 와규를 생산하는 농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맥주를 먹이고 클래식을 듣게 한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이렇게 '기름기가 찬' 소의 고기를 먹으면 그 기름기는 다 어디로 갈까요. 당연히 사람의 몸에 마블링으로 박히기 됩니다. 물론 먹고 나서 모두 지방흡입으로 빨아 내실 분들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런 형편이 아닌 분들이 1++ 고기를 포식하는 건 꽤 위험한 일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 사실 이 부분이 핵심인데 - 마블링만 박히면 정말 맛이 좋으냐 하는 의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물론, 너무나 분명한 것은, 고기를 찍어 맛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마블링은 가장 확실한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삶거나 찌지 않는 경우. 그리고 숙성하지 않는 경우. 생고기를 구워 먹는 조리법에서 마블링의 신뢰도는 대단히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아니 보기는 좋은데 고기 맛이 왜 이래' 싶은 경우가 분명 있습니다. 네. 마블링은 폭설이 펄펄 내리는데도 구워 놓으면 그냥 기름덩어리 씹는 것 같은 경우 말입니다. 마블링=절대적인 맛의 기준이라는 믿음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소위 '기름 맛'에 대한 호오가 상당히 엇갈린다는 부분도 마블링에 대한 신화를 깰 수 있는 요인입니다. 이를테면 최고 등급의 와규는 아래 보시는 사진처럼 거의 연분홍색입니다. 지방과 육질의 비율이 저 정도가 되면 불 위에 올려놓을 때 이미 '녹기' 시작하고, 혀에 얹어 놓으면 그냥 스윽 흘러넘어가 버립니다. 씹고 어쩌고 할 여유도 없죠.^^ 이런 맛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으니 저런 와규가 그렇게 비싼 거지만, 개인적으로는 취향이 아닙니다.

기름 맛에 사람들이 얼마나 둔감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 주변에서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기름치입니다. 기름치라는 물고기는 살이 25% 이상이 지방이라 먹으면 설사나 복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기름치 사용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 기름치가 회로 먹을 때는 참치(물론 최저등급의 허연 참치살), 구워 먹을 때에는 메로와 혼동되기 쉽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즉 이 '기름 맛'을 진짜 맛과 구별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울러, 저도 궁금한 맛입니다만 가끔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콩 먹고, 쇠죽 먹고 자란 소고기 맛'은 분명 지금의 마블링 지글지글 고기맛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 합니다. 실제로 최근 국내에서도 '유기농으로 기른 소' 들이 서서히 상품으로 등장하고 있죠.

물론 가격을 따져 보면 이 소들이 사료 먹여 기른 소보다 더 비쌀 수도 있겠지만(...계란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비싼게 당연한데, 한편에선 '비싼 수입 사료 안 먹여서 오히려 쌀 수도 있다'고 합니다), 왕년에 어르신들이 어렸을 때 드시던 '쫄깃하고 고소한 고기' 맛은 한번 보고 싶습니다. 몸에도 그 쪽이 훨씬 좋다니 말입니다.

P.S. 15일 방송되는 '미각스캔들'에서는 '대게의 비밀' 편이 방송됩니다. 동해안 대게 산지에서도 국산 대게는 실종되고 수입 대게가 국산으로 변신해 팔려나가고 있다는군요.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더 쇼킹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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