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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고구려가 섰습니다. 여전히 귀족은 위협적입니다. 뭐 '태왕사신기'를 보면 광개토대왕 시절까지도 고구려 왕은 귀족연합체의 수장 정도였던 모양이니 2대 유리왕때 강력한 왕권을 기대할 수는 없겠죠.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칩시다.

신당이라는 조직은 부여 금와왕에게도, 광개토대왕의 아버지 고국양왕에게도, 그리고 유리왕에게도 제멋대로 굽니다. 이건 무슨 신정국가도 아니고... 뭐 그럴 수도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고구려가 나오는 드라마마다 죄다 이런건 무슨 조화속입니까.

네. 바로 '바람의 나라'에 대한 불만입니다. 재미있다는 사람도 있고, 시청률도 지난주엔 혼전 속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존재 이유는 영 떨어지는 편입니다.

일단 송일국이 연기하는 주인공 무휼은 정작 왜 아무런 근거가 없는 고초를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당에서 어이없이 저주가 붙었네 어쩌네 하는 바람에 불쌍한 무휼은 고구려판 오이디푸스가 되어 버립니다. 게다가 또 자기가 왕자인지도 모르고 가는 곳이 하필 부여랍니까. '주몽'과 '바람의 나라'를 구별 못 하게 하는 것이 제작진의 목표란 말입니까?

물론 주몽과 무휼의 캐릭터도 살짝 다르고, 겪어야 하는 갈등도 조금씩은 다르겠죠. 그것까지 똑같으면 아예 재방송일테니 당연한 얘깁니다. 하지만 뭣보다 이 두 드라마가 넘어야 할 벽은 똑같이 생긴 주인공입니다. 이거야말로 처음부터 넌센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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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목이 써 있지 않으면 어느 드라마인지 정말 구별할 수 없는 스틸입니다.)

송일국이 이 역할을 수락한 것도, 송일국에게 제의한 제작진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뭐 하다 보면 아들 역을 하던 배우가 나이를 먹어서 아버지 역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주몽 역을 한 배우가 2년만에 그 손자 역을 또 한다는 건 좀 어이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있는 역사적 사실까지 다 뜯어 고쳐서 무휼이 걸어가야 할 길도 주몽이 걸었던 것과 거의 흡사한 고난의 성장드라마로 바꿔 놓는 건 또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나오는 무휼은 사실 슈퍼 차일드입니다. AD 4년생인 무휼은 AD 9년(만 5세)에 동부여의 사신을 말솜씨로 제압하고, AD 13년에 대군을 이끌고 대소의 동부여군을 무찌르는 장군이 됩니다. 네. 9세죠.

10세에 세자가 된 무휼은 14세에 유리왕의 죽음으로 왕이 됩니다. 워낙 어린 나이에 왕이 된 터라 27년나 재위하고도 40세에 숨을 거둡니다. 동부여를 공격해서 대소를 죽이고 3대에 걸친 원한을 갚는 것도 재위 5년째인 18세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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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이미 왕이 되어 동부여를 때려 부술 나이에 부여 땅에서 목숨을 걸고 모험하고 있어야 하는 팔자라니, 이거야말로 안습입니다. '태왕사신기'보다 더 심한 왜곡을 하고 있는 거죠.

물론 9세 어린이가 장군이 되어 적을 무찌르는 것 역시 말이 안 되는 얘기지만, 굳이 가정을 하자면 고구려군이 부여군을 모욕하기 위해 9세의 왕자를 명목상의 허수아비 장군으로 두고, 실제로는 다른 장군이 지휘를 해서 전쟁을 치렀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기록에 대해 보완을 하는 것이 14세에 왕이 된 무휼을 거의 스무살이 다 되어 보이는 나이로 부여에서 뛰어다니게 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사극적 상상력'에 부합하는 일입니다.

차라리 영특한 아역 탤런트를 써서 '소년 무휼의 모험'을 하는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 그래도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초반 아역들의 활약으로 점수를 따는 상황에서 이 드라마는 좋은 흥행 요소를 놓쳐 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군요. 그랬더라면 성인 왕 역으로 송일국이 등장하더라도 이런 비판을 덜 받을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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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는 그런대로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극이 이병훈-최완규 라인의 영향으로 '주인공이 죽도록 고생한다 - 경쟁을 통해 더욱 강해진다 - 마침내 빅 맨이 된다'의 과정을 마치 무슨 교과서처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정말 답답한 일입니다. 안 그래도 '주몽'이나 '태왕사신기'와 여러가지로 비슷해 질 수밖에 없는 드라마가 구성 면에서 전혀 새로운 면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중에 왕이 되는 소년의 지긋지긋한 고생담을 드라마로 하려면 차라리 나중에 미천왕(AD 313년, 낙랑군 병합의 공적으로 국사 교과서에 등장하죠)이 되는 소년 을불의 이야기라도 만들 것이지, 굳이 멀쩡한 무휼을 방랑소년(?)으로 만들어 놓는 심사는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대무신왕 드라마는 제발 대무신왕 얘기로 만들었더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유달리 용감하고 영특했다는 소년 왕의 소재를 날려버린 것도 아쉽거니와, 이미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진 대소 같은 캐릭터에 편승해서 대무신왕을 그냥 제2의 주몽으로 만들려는 듯한 '바람의 나라'는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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