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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7일. 파리의 목요일.

이제 중간을 넘어, 집에 갈 날이 더 가까워진다.

오전을 휴식시간으로 보내고, 느즈막하게 퐁피두 센터로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

퐁피두 센터는 상당히 큰데, 거기서 옥상층에 있는 레스토랑 조르주  Georges 로 가려면 저 흰 파라솔을 찾아야 한다.

여기.

저 아저씨의 허락을 받고, 빨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올라가다 다시 에스컬레이터로 환승.

당연히들 아시겠지만 루브르가 19세기 초까지, 오르세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를 대표한다면 퐁피두 센터는 대략 1차대전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대변해주는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퐁피두 센터 주변은 참 많이 돌아다녔지만 지금까지 내부의 미술관을 구경해보지는 못했다. 어려서는 현대 미술에 대한 막연한 반감으로 저런건 봐서 뭐해, 하는 생각이 결코 없지 않았고, 얼마 전에는 일하느라 구경할 짬이 없었다...고 변명해 본다.

어디서나 보이는 에펠 타워.

예쁘다.

예쁘네.

그리고 꽤 올라갔다 싶으면 도착.

바닥이 좀 어수선해 보이긴 하지만, 아무튼 파리의 하늘이다. 

날이 좋으면 밖에 앉을 때 더 기막히련만, 꽤 추운 날이라 안으로 들어간다.

사실상 오픈런이라 자리는 여유있는 편.

웨이터 간지 뿜뿜.

퐁피두 센터의 외벽도 노출 파이프가 상징처럼 되어 있지만, 내부도 이렇다.

 

퐁피두 센터가 지어진 것이 1977년. 리처드 로저스렌초 피아노라는 두 거물 건축가가 설계해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처음 이 앞을 지나갔던 1988년에도 가이드 형님이 "외관만 보면 공사중인 건물처럼 보이지만 공사중 아닙니다. 원래 저런 모양으로 만든 겁니다"라고 했었다. 

 

지금은 온 동네의 상식처럼 된 저 노출 파이프의 원조가 아마도 여기일 듯. 

이른 점심이라 수프 하나, 파스타 하나, 로스트 치킨만 주문. 

뭘 많이 배터지게 먹자는 게 목적이 아니고, 여기서 한번 식사를 해 보고 싶었다.

망고가 들어간 소스와 잘 구운 닭, 좋은 조합이다.

디저트는 왜 사진이 없는지.

아무튼 아침 먹은지 얼마 안 되어서 가볍게 점심. 이렇게 풍경에 초점이 맞춰진 식당들은 대개 음식은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음식도 훌륭했다. 가격도 엄청 비싼 편은 아니니 한번씩 방문해보실만. 

역시 레스토랑은 손님과 음식이 내장의 일부다.

아무리 멋지게 꾸몄어도 빈 식당은 그리 멋져 보이지 않는다. 손님들이 차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살기 시작했다.

굿바이 조르주.

사실 조르주에서 밥을 먹으면 좋은 점 하나는, 1층에서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점. 본래 뮤지엄 패스가 있어도 퐁피두 센터는 줄을 서야 입장 가능인데 조르주에서는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다.

이게 팁이라면 팁.

사실 퐁피두 센터=미술관이라고 지금까지 쓰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퐁피두 센터는 이 건물의 이름이고, 정작 미술관은 프랑스 국립 현대 미술관( Musée National d'Art Moderne)이다. 이 미술관이 퐁피두 센터의 5층과 4층을 전시공간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다들 퐁피두 센터=미술관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그래서 5층으로 들어가 잘 보면 이렇게 쓰여 있다. 5층은 현대 회화 컬렉션, 4층은 컨템퍼러리 컬렉션, 즉 5층에는 20세기 초 거장들의 이미 고전이 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어찌나 컬렉션이 방대한지, 한 작가에 한 작품 이상의 공간이 할애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니 퐁피두 5층에 만약 두 작품 이상이 전시되어 있는 작가가 있다면 그만치 편애받고 있는 작가라고 볼 수 있을 듯. (내 맘대로 해석)

시작은 앙리 마티스, <빨간 물고기가 어항속에 있는 봄철의 실내 Interieur, bocal de poissons rouges Printemps>, 1914

역시 마티스, <붉은색과 흰색의 머리 tete blanche et rose>

조르주 루오, <다친 광대 Le Clown blesse>, 1932.

앙리 루소와 함께 미술 교과서에서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화가가 루오였다. 굵은 테두리로 얼굴을 그리는 스타일 때문. '예수처럼 보이는 가난한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화가라는 기억이 오래 남았는데, 이 <다친 광대> 역시 뭔가 연민을 자아내는 데가 있었다. 

그리고 마르크 샤갈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퐁피두, 아니 샤갈 없이는 무의미한 파리. 

 

<빨간 지붕 Les Toits rouges>, 1953. 달 아래 보이는 건물이 노틀담이라고 한다. 벨라루스 출신이면서 "파리는 제2의 비쳅스크(자기 고향)"라고 말했던 샤갈이 파리를 그린 그 수없이 많은 그림들 중 하나. 

<나의 아내 A ma femme>, 1933/1944. 그리고 역시 수없이 많은, 아내 벨라와 자신을 그린 그림 중 하나. 

 

근래 한때 에곤 쉴레 같은 패륜적 사생활의 작가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샤갈은 참 모범적(?)인 삶을 산 듯. 

늘 <에펠탑의 신랑신부 Les mariés de la Tour Eiffel>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들 듯. 생각보다 작았다.

 

알베르토 마넬리 Alberto Magnelli, 잘 모르지만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수레 위의 노동자들 Les Ouvriers sur la charrette>

그리고 금세 알아볼 수 있는 페르난드 레제르, <수업 La Lecture>. 

사실 누구나 수업에 들어가면 저 눈빛이 되지 않을까. ㅎ

그림만 있는게 아니다. 마르셀 브로이어의 의자들도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 있었다. 

저 의자 어디서 많이 봤는데. 

유명한 호안 미로의 <파란색 2호 Bleu II>. 1호랑 3호는 어디갔니. 

그러고보니 이쯤에서 기념샷을 하나 찍었어야 했는데 너무 그림만 찍었네. 

전날 친해진 보나르를 다시 만나니 반가움이! <욕조의 누드 Nu a la baignoire>. 

1931년작이라 그런지 나비파 시절의 기상(?)은 볼 수 없다. 하지만 저 의자에 걸친 수건들의 요염함이란.

마리 로랑생도 현대인이었구나. <누운 무희 Danseuse couchee>, 1937.

그리고 이 층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들 중 하나. 가스통 셰샤크 Gaston Chaissac 이라는 화가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었다. <구성 Composition>. 노동자 출신의 독학 화가라고 한다. 

셰샤크의 또 다른 작품. <두 얼굴의 토템 Totem double face>, 1961.

그러다 보니 세월이 흘러 1970년대가 막 나오기 시작한다. 

베르너 팬톤, 잘 모르지만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디자이너. 제목은 <의자 생활 조각 Siege Living Sculpture>라고 되어 있는데 이게 제목인지 해설인지 모르겠다. 뭐 의자로 쓸 수 있겠네. 아무튼 색감이 마음에 든다. 

많이 보던 그림. 누가 봐도 장 오귀스트 앵그르의 오달리스크에 대한 패러디인 것을 알 수 있는데, 잘 보면 화면 상단에 파리가 앉아 있다. 안 날아간다. 진짜 파리 아니다. 

작가 이름은 마르샬 레스 Martial Raysse. 앵포르멜에 대항한 누보 레알리즘 계열의 작가고, 이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 파스티슈 pastiche를 많이 사용했다. 그림의 제목은 참 엉뚱하게도 <일제, 라 그랑 오달리스크 Made in Japan - La Grande Odalisque>. 1964년작. 

 

1964년이라니까 왠지 도쿄 올림픽이 생각나고, 문득 오달리스크의 머리 수건 장식이 만국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해설을 보면 그 시절 유럽 기준으로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던 싸구려 일본 물건(요즘의 중국 물건에 해당하는 - 우리는 다 이 길을 걷고 있다)들을 대강 걸쳤다는 뜻이라는데.

 

일본에선 별 인기 없는 작가일 듯. 

말 나오기가 무섭게 등장하는 일본 화가(퐁피두에서 딱 한점 눈에 띄었다). 시라가 가즈오라는데 일본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는 화가인지는 모르겠다. (혹시 이거 화단의 BTS나 조성진 아니야?)

아무튼 그림 제목은 <7월, 자연의 행성> Planete nature, juillet. 사실 이 그림을 눈여겨 본 것은 작년 서울에 전시됐던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들과 너무 흡사해서였다. 

비슷하지 않음? ㅎㅎㅎ 

대략 호안 미로의 작품들 같은 것이 있는데 테라스는 겨울엔 닫는대서 안 나가봄.

그렇게 그림들에 파묻혀 걷다가 문득 바깥을 보면 그림같은 파리의 지붕들이 보인다. 

사실 이 지역은 슬럼화된 도심이었는데, 1970년대 파리의 대대적인 도심 재개발 사업에 의해 퐁피두센터가 지어지고, 주위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이름을 따 퐁피두 센터가 된 것. 

 

대통령이 되어 이름을 남기려면 이런 식으로 남겨야지. 한국 전직 대통령들의 이름은 다 어디에 가 있는가. 

 

참 거시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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