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전통적으로 한국 사극에서 여주인공과 관련된 킬러 콘텐트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하나는 목욕신이고, 다른 하나는 사약 신입니다. '인수대비'에서도 이번 주말 폐비 윤씨 역의 전혜빈이 약사발을 들이키고 최후를 맞을 전망입니다.

 

여주인공이 사약을 먹고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장면은 그 자체로 강한 비주얼을 제공합니다. 시청자들이 왜 사람이 피를 토하고 죽는 장면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사약 신이 나오고 시청률 확보에 실패한 드라마는 없다는 것이 대략 정설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 대목에서 궁금증 하나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대체 왜 사람이 사약을 먹으면 피를 토하고 죽는 것일까요?

 

 

 

 

생각해보면 간단한 의문입니다. 우선 사람이 피를 토하려면 피를 흘려야 합니다. (....당연한 얘기라고 돌 던지지 마십쇼;;) 그럼 내출혈이 있어야 하는데, 칼에 찔리거나 총에 맞은 사람은 당연히 몸 속에서 피가 날 겁니다. 그럼 입으로 피를 토할 수 있겠죠. 뭐 물론 얼마 전 나온 얘기로는 배를 칼로 찔린다고 해도 거꾸로 매달지 않는 한 입으로 피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고도 합니다만, 아무튼 가능하긴 할 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수많은 사극 속에서 보아 온 폐비 윤씨, 장희빈, 경빈 박씨 등 역사적인 팜므 파탈들은 대개 입으로 피를 토해 왔습니다.

 

 

 

 

 

 

따라서 그냥 '사약 먹는 장면이 나온다'는 말만 들어도, 소복 입은 여인이 곱게 약사발을 받쳐 들고, 사약을 들이킨 뒤 붉은 피를 토해 소복이 젖는 비주얼이 그려집니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상당히 과장된 것입니다. 어쨌든 고증은 해야 하기 때문에, 후배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봅니다. 내과 의사나 약사가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만만한 사람이 좋기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에게 전화했습니다.

 

나: 통화 괜찮음?

의사: 네. 무슨 일로?

나: (불문곡직) 사람이 먹으면 피를 토하고 죽는 독이 뭐가 있냐?

의사: ....사극 쓰세요?

나: 묻는 말에 대답을 하세요.

의사: 글쎄요. 사실 피를 토하기가 쉽지 않아요. 농약 같은 걸 먹어도 시퍼런 약물을 토하지...

나: 그럼 먹자마자 대량 위 출혈을 일으키는 약물은 없나?

의사: 뭐든지 토하다 보면 피가 나오는 경우는 있어도 그러긴 쉽지 않을걸요.

나: 하긴 술먹은 다음날 토하다가도 피 나왔다는 사람이 있더라.

의사: ...암튼 간경변이 있는 사람은 식도 혈관이 상해서 쉽게 피를 토할 수도 있어요.

나: 그럼 강한 산이나 알칼리로 식도가 상하면 피를 토할수 있겠네?

의사: 그럴 수도... 그런데 그런걸 삼킬 수나 있을까요?

 

 

                                          (....삼킬 수 있냐고? 응?)

 

말 그대로 강한 알칼리, 즉 양잿물(수산화나트륨 용액)을 먹으면 피를 토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름이 '양'잿물인데서 알 수 있듯 이건 근현대 이후에 한국사에 편입된 물질이죠. 조선시대에 빨래할 때 쓰던 '잿물'이 과연 그 정도로 독성이 강했는지도 모르겠고, 뭣보다 잿물로 사약을 만들었다고 전해지지는 않는답니다.

 

폐비 윤씨 관련 역사 기록에는 왕이 '비상을 쓰라'고 했다고 나오고, 여기저기서 나오는 얘기로는 초오(草烏)라는 약재가 주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초오는 미나리아재비과인 바곳이라는 식물의 뿌리로 만든 한약재. 바곳은 투구꽃이라고도 불렸다는군요.

 

투구꽃이라...

 

 

 

바로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에 나오는 그 투구꽃입니다.

 

 

초오의 독성이 알려진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한약재'라는 이름 때문에 아직도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군요. 약과 독은 정말 한끗 차이.

 

2006년 3월 경기도 연천에 사는 마을 주민 20명이 투구꽃(초오)으로 담근 술을 나눠 마셨다가 집단 중독 증세를 일으킨 사례도 있다. 이는 식물성 천연 독 ‘아코니틴(aconitine)’에 중독된 경우였다. 아코니틴은 투구꽃(초오)에 함유된 독으로, 뿌리>꽃>잎>줄기 순으로 독성물질이 분포돼 있다. 특히 뿌리부분은 독성이 강해 과거에는 독화살 성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투구꽃의 뿌리부분을 말린 것을 한방에서는 ‘부자(附子)’라고 부르며 신경통, 관절염, 중풍 등의 치료에 사용하기도 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28&aid=000208495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911554

 

초오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인 것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초오가 마비독이라는 점입니다. 즉 초오 때문에 죽으려면, 호흡중추가 마비되어 죽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초오를 먹으면 욱 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는 것이 아니라, 눈빛이 흐려지면서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하고 숨이 막혀 죽는 겁니다. 당연히... '충격적인 비주얼'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그럼 왜 사극에서 사약 마신 주인공들은 피를 토하고 죽어갈까요.

 

많은 사람들은 박종화 원작 소설 '금삼의 피'를 이런 장면의 효시라고 생각합니다. "폐비 윤씨가 사약을 먹고 피를 토한 뒤, 친정어머니 신씨가 그 피묻은 한삼 자락을 간직하고 있다가 뒷날 연산군에게 전하고, 어머니의 피를 본 연산군의 분노가 폭발하며 마침내 갑자사화의 피바람이 분다는 이야기"라고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바로 그 작품입니다.

 

하지만 '금삼의 피'를 실제로 읽어 보면, 그 '금삼(비단 한삼)'에 뿌려진 피는 폐비가 사약을 먹고 토한 피가 아니라, 원한의 피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윤씨가 피눈물을 닦은 수건을 어머니 신씨에게 장면이 분명히 나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니 화끈하게 토한 피가 아니고 피눈물? 하고 살짝 실망(...;;;)한 기억이 납니다.

 

그럼 역사에는 사약을 먹고 피를 토했다는 기록이 있을까요. 사실 그 부분도, 딱 착각하기 좋게 돼 있습니다. '기묘록'의 기록입니다.

 

 

 

 

일찍이 성종(成宗) 기유년에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려 자결하게 했는데, 폐출되어 사약을 내린 일은 성종조에 나와 있다. 윤씨가 눈물을 닦아 피묻은 수건을 그 어머니 신씨(申氏)에게 주면서, “우리 아이가 다행히 목숨이 보전되거든 이것을 보여 나의 원통함을 말해 주고, 또 거동하는 길 옆에 장사하여 임금의 행차를 보게 해 주시오.” 하므로 건원릉(健元陵)의 길 왼편에 장사하였다. 인수대비(仁粹大妃)가 세상을 떠나자 신씨는 나인들과 서로 통하여 연산주의 생모 윤씨가 비명으로 죽은 원통함을 가만히 호소하고 또 그 수건을 올리니 폐주는 일찍이 자순대비(慈順大妃)를 친어머니인 줄 알고 있다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매우 슬퍼하였다. 시정기를 보고 성을 내어 그 당시 의논에 참여한 대신과 심부름한 사람은 모두 관을 쪼개어 시체의 목을 베고 뼈를 부수어 바람에 날려 보냈다.

 

(굵은 부분 원문: 尹氏以拭淚斑血帨。付其母申氏曰。吾兒幸保全。當以是告我哀冤

흔히 볼 수 없는 한자가 몇개 있습니다. 拭: 씻을 식,  帨: 수건 세.

吾兒, 즉 '내 아이'란 당연히 어린 세자, 즉 뒷날의 연산군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여기도 문제의 한삼에 젖은 피는 토한 피가 아니라 피눈물의 피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기록을 볼까요. 사실 조금 더 혼동하기 쉽게 돼 있죠. '파수편'입니다.

 

윤씨가 죽을 때에 약을 토하면서 목숨이 끊어졌는데, 그 약물이 흰 비단 적삼에 뿌려졌다. 윤씨의 어미가 그 적삼을 전하여 뒤에 폐주에게 드리니 폐주는 밤낮으로 적삼을 안고 울었다. 그가 장성하자 그만 심병(心病)이 되어 마침내 나라를 잃고 말았다. 성종(成宗)이 한 번 집안 다스리는 도리를 잃게 되자 중전의 덕도 허물어지고 원자도 또한 보전하지 못하였으니 뒷 세상의 임금들은 이 일로 거울을 삼을 것이다.

 

여기는 '토한 수건'이라고 되어 있지만 피를 토했다는 말은 역시 없습니다. '약을 토했다'와 '그 수건을 전달했다'는 맞지만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방송되는 드라마에서 피 토하는 장면이 없어지거나 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다른 무슨 수단을 쓴다 해도 그만한 비주얼을 얻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착각이나 오해는 하지 마시길.^^

 

그리고,

 

이 블로그의 인수대비 관련 글 모음입니다.

 

1. 계유정난은 어떻게 진행됐나  http://fivecard.joins.com/964
2. 폐비 윤씨는 정말 용안에 손톱자국을 냈을까? http://fivecard.joins.com/1003
3. 폐비 윤씨, 사약을 마시고 정말 피를 토했나? http://fivecard.joins.com/1004
4. 폐비 윤씨 사약이 남긴 공무원의 숙명 http://fivecard.joins.com/1007
5. 연산군, 정말 계산 없는 광인이었나?  http://fivecard.joins.com/1012
6. 인수대비 사후, 연산군은 어떻게 몰락했나 http://fivecard.joins.com/1015

 

그리고 긴 말 필요없이, 아래 추천 숫자 좀 눌러 주세요! ^

 

728x90

드라마 '인수대비'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중전 윤씨(전혜빈)는 아들을 빼앗기고 대비들과의 갈등이 극에 달해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됐고, 마침내 이번주 남편 성종(백성현)이 다른 후궁의 침소에 든 것을 참지 못해 달려들어 싸움을 벌이다 얼굴 손틉자국을 내게 됩니다.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가 성종과의 사이가 원만치 못해 늘 싸움이 잦았고, 어느날 용안에 손톱 자국을 낸 것이 인수대비에게 알려지며 즉시 폐비에 처해졌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남편인 임금의 얼굴에 상처를 냈을까요? 임금의 용안과 옥체는 그 무엇보다 귀중하게 여겨지던 것이 당시의 정서입니다. 아무리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런 기록은 분명히 있습니다. 게다가 임금이 폐비 윤씨를 때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말로만 전해지는 야사는 아닙니다.

아무튼 이럴때 가장 확실한 지침은 일단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성종실록에는 성종 10년, 1479년 6월2일 마침내 임금이 폐비를 결심한 내용이 전해집니다.

성종 105권, 10년(1479 기해 / 명 성화(成化) 15년) 6월 2일(정해) 1번째기사

전날 저녁 야대(夜對)를 파(罷)한 뒤에 임금이 급히 승지(承旨)를 불러 입내(入內)하도록 하더니, 조금 있다가 이를 중지시키고, 정승(政丞) 등을 불러 내일 이른 아침에 예궐(詣闕)하라고 명하였다. 이날 여명(黎明)에 영의정(領議政) 정창손(鄭昌孫)·상당 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청송 부원군(靑松府院君) 심회(沈澮)·광산 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우의정(右議政) 윤필상(尹弼商)이 이르니,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 인견(引見)하였는데, 승지·주서(注書)·사관(史官)이 모두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좌우(左右)를 돌아보고, 일러 말하기를,

“궁곤(宮壼)의 일을 여러 경(卿)들에게 말하는 것은 진실로 부끄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일이 매우 중대(重大)하므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제 입직(入直)한 승지(承旨)와 더불어 이를 의논하고자 하였으나, 생각하니 대사(大事)를 두 승지와 결단할 수 없으므로 이에 경들에게 의논하는 것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선경 삼일(先庚三日) 후경 삼일(後庚三日)’이라고 하였으니, 내가 어찌 생각하지 않고 함이겠는가? 부득이하여서 그러는 것이다.

(선경삼일, 후경삼일이라는 것은 중대사일수록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신중하게 결정한 것인가를 설득하는 과정입니다.)

지금 중궁(中宮)의 소위(所爲)는 길게 말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내간(內間)에는 시첩(侍妾)의 방이 있는데, 일전에 내가 마침 이 방에 갔는데 중궁이 아무 연고도 없이 들어왔으니, 어찌 이와 같이 하는 것이 마땅하겠는가? 예전에 중궁의 실덕(失德)이 심히 커서 일찍이 이를 폐하고자 하였으나, 경들이 모두 다 불가(不可)하다고 말하였고, 나도 뉘우쳐 깨닫기를 바랐는데, 지금까지도 오히려 고치지 아니하고, 혹은 나를 능멸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비록 내가 집안을 다스리지 못한 소치(所致)이지마는, 국가(國家)의 대계(大計)를 위해서 어찌 중궁에 처(處)하게 하여 종묘(宗廟)를 받드는 중임(重任)을 맡길 수 있겠는가? 내가 만약 후궁(後宮)의 참소하는 말을 듣고 그릇되게 이러한 거조(擧措)를 한다고 하면 천지(天地)와 조종(祖宗)이 소소(昭昭)하게 위에서 질정(質正)해 줄 것이다. 옛날에 한(漢)나라의 광무제(光武帝)와 송(宋)나라의 인종(仁宗)이 모두 다 왕후(王后)를 폐하였는데, 광무제는 한 가지 일의 실수를 분하게 여겼고, 인종도 작은 허물로 인했던 것이지마는,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다른 후궁의 침소에 왕이 들었는데, 그 침소에 중전이 나타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 왕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중궁의 실덕(失德)이 한 가지가 아니니, 만약 일찍 도모하지 않았다가 뒷날 큰 일이 있다고 하면 서제(噬臍)를 해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예법(禮法)에 칠거지악(七去之惡) 이 있으나, 중궁의 경우는 ‘자식이 없으면 버린다.[無子去]’는 것은 아니다.”

하고, 드디어 ‘말이 많으면 버린다[多言去], 순종하지 아니하면 버린다[不順去], 질투를 하면 버린다[妬去]’라는 말을 외우고, 이어 이르기를,

“이제 마땅히 폐하여 서인(庶人)을 만들겠는데, 경들은 어떻게 여기는가?”

하였다. 정창손이 아뢰기를,

“이제 상교(上敎)를 받으니, ‘중궁이 실로 승순(承順)하는 도리를 잃어서 종묘(宗廟)의 주인을 삼는 것이 불가(不可)하다.’고 하였습니다. 상교가 이에까지 이르렀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고, 한명회가 이르기를,

“신(臣)은 더욱 간절히 우려(憂慮)합니다. 성상께서 칠거(七去)로써 말씀하시니, 신은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원자(元子)가 있어서 사직(社稷)의 근본이 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였다. 윤필상이 아뢰기를,

“사세(事勢)가 이에 이르렀으니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심회가 이르기를,

“태종(太宗)께서 일찍이 원경 왕후(元敬王后)와 화합하지 못하여 한 전각(殿閣)에 벽처(僻處)하게 하고 그 담장을 높게 하였는데, 이것이 선처(善處)하는 도리였습니다. 지금도 역시 별궁(別宮)에 폐처(廢處)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창손과 윤필상이 이미 임금의 뜻에 따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한명회와 심회는 궁 밖으로 내치는 폐서인은 온당치 않다는 입장입니다. 뒤에 보면 정창손마저도 '궁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을 합니다. 그만치 이 폐비는 파격적인 조치였던 것이죠.)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경들은 사의(事宜)를 알지 못한다. 한(漢)나라 성제(成帝)가 갑자기 붕어(崩御)한 것은 누구의 소위(所爲)였던가? 대저 부덕(不德)한 사람은 비의(非義)한 짓을 많이 행하는 것인데, 일의 자취가 드러나게 되면 화(禍)는 이미 몸에 미친 뒤이다. 큰 일을 수행(遂行)함에 있어 만약 일찍 조처하지 아니하였다가 만연이 된 뒤에는 도모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만일 비상(非常)한 변이 생기게 되면 경들이 비록 나를 비호하고자 하더라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한나라 성제는 본래 여색을 밝혀 많은 얘깃거리를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당대의 미녀인 조비연, 조합덕 자매를 총애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들은 성총을 잃지 않기 위해 왕과 다른 궁녀가 동침하면 그 궁녀를 죽이고, 심지어 다른 후궁이 낳은 아이까지도 사라지게 하는 마수를 썼습니다. 그런데도 성제를 그런 악행을 모른체 했고, 이들은 성제의 비호 속에서 더욱 더 못된 짓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어느날 성제는 조합덕의 침소에서 죽은 채 발견됩니다. 두 자매가 성제를 죽일 이유는 전혀 없었지만 - 두 자매는 아이가 없어 황제가 죽으면 자신들의 권세도 끝나는 입장이었으므로 - 아무튼 황제가 죽은 뒤 사방에서 두 자매의 죄를 묻는 상소가 빗발치자 어쩔 수 없이 자결해 버리고 맙니다.

이쯤 되면 성종이 중전 윤씨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은 이미 정나미가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저것을 곁에 두었다가는 내가 비명횡사할지도 모르겠다' 수준까지 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하였다. 도승지(都承旨) 홍귀달(洪貴達)이 아뢰기를,

“중궁의 실덕한 바가 가볍지 아니하니, 진실로 이를 폐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러나 원자를 탄생(誕生)하였고 또 대군(大君)을 나았으므로 국본(國本)에 관계되는 바이니, 폐하여 서인으로 삼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청컨대 위호(位號)를 깎아 내리어 별궁(別宮)에 안치(安置)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원자는 장차 세자(世子)로 봉(封)할 것인데, 어머니가 서인이 되면 이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니, 천하(天下)에 어찌 어머니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강봉(降封)을 하면 이는 처(妻)로써 첩(妾)을 삼는 것이니 크게 옳지 못하다.”

하였다. 좌부승지(左副承旨) 김계창(金季昌)이 아뢰기를,

“중궁은 명(命)을 중국 천자(天子)에게 받아서 이미 위호(位號)가 정당하고 원자를 탄생하였으며, 또 국본이 되어 관계된 바가 매우 중하니, 갑자기 폐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옛날 송(宋)나라 인종(仁宗)은 곽후(郭后)를 폐하여 옥청궁(玉淸宮)에 두었으니, 원컨대 별궁에 옮겨 두고서 그 허물을 뉘우치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만약 그렇다고 하면 전일(前日)의 일도 경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근자(近者)에 또 그 침실(寢室)을 따로 하고 자신(自新)하기를 바랐으나, 그래도 고치지 아니하였는데, 능히 허물을 뉘우치겠는가? 만일 허물을 뉘우칠 기미가 있다고 하면 내가 어찌 감히 폐한다고 하겠는가?”

하였다. 좌승지(左承旨) 김승경(金升卿)이 아뢰기를,

“중궁이 전에도 잘못된 행동이 있어서 성상께서 이를 폐하고자 하였으니, 또한 조금이라도 반성하는 것이 마땅한데, 또 오늘과 같은 일이 있었으니, 뒷날 반드시 이것이 습관이 되어 잘못된 일을 할 것이므로, 한 나라의 모의(母儀)로서는 불가(不可)합니다.”

하고, 우승지(右承旨) 이경동(李瓊仝)이 아뢰기를,

“모후(母后)를 폐치(廢置)하고 어찌 경이(輕易)하게 사제(私第)로 돌아가게 하겠습니까? 더욱 미안(未安)한 일이 되겠습니다.”

하고, 우부승지(右副承旨) 채수(蔡壽)가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下敎)가 이러하니 신자(臣子)로서는 그 사이에서 감히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채수는 이렇게 폐비에 찬성해 간신으로 보이기도 합니다만, 뒷날 '폐비 윤씨가 어렵게 살아가고 있으니 물자를 대 주어야 한다'고 주장해 성종의 분노를 사 고문까지 당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소신이 강한 사람이었던 듯.)


하였다. 임금이 승지들에게 이르기를,

“출궁(出宮)시킬 여러가지 일을 차비하도록 하라.”

하니, 홍귀달·김승경이 아뢰기를,

“모든 일은 이미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중궁은 이미 한 나라의 모의(母儀)로 있었는데, 사제(私第)로 돌려보내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하고, 김계창이 이르기를,

“모시던 귀빈(貴嬪)이 비록 죄고(罪辜)에 저촉되었다 하더라도 오히려 사제로 돌려보내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왕비(王妃)이겠습니까? 원컨대 그대로 두고 여러 번 생각하소서.”

하니, 임금이 성을 내어 이르기를,

“경들은 출궁할 여러가지 일만 주선하면 그만인데, 무슨 말이 많은가?”

하였다. 정창손이 이르기를,

“이미 폐했는데, 어찌하여 반드시 다시 견책(譴責)을 가(加)하는 것입니까? 하물며 이미 중궁이 되어 한 나라의 모의가 되었고, 또 원자를 탄생하여 나라의 근본이 되었는데, 하루아침에 강등을 시키어 서인을 만들어 사제로 돌아가게 하면, 사론(士論)이 어떻하겠습니까? 청컨대 별전에 폐처(廢處)케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별전에 두면 따로이 견책하는 뜻이 없다. 만약 그 아들이 주기(主器)가 되면 마땅히 추봉(追封)할 것인데, 지금 서인을 만드는 것이 어찌하여 무엇이 상하겠는가?”

하였다. 심회가 말하기를,

“별전(別殿)에 폐처하는 것이 사제(私第)에 돌려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원컨대 다시 여러 번 생각하소서.”

하고, 윤필상이 이르기를,

“별전에 안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어찌 별전을 새로 건립하겠는가? 정승(政丞)들은 나가도록 하라. 내 뜻이 이미 정해졌으니, 결단코 고칠 수가 없다.”

하였다. 정승과 승지들이 그래도 계속하여 다시 생각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성을 내어 일어서면서 이르기를,

“경들이 물러나지 아니하면 내가 마땅히 안으로 들어가겠다.”

하고, 또 내관(內官)에게 명하여 승지를 불러 나가도록 재삼 말하니, 이에 모두 다 나갔으나, 홍귀달·김승경·이경동·김계창만이 머물러 나가지 아니하고, 다시 요청하다가 오래 되어서 나갔다. 얼마 있다가 중궁이 소교(小轎)를 타고 나가서 사제로 돌아 갔다.

(시일을 두지도 않고 당일 곧바로 폐비가 집행된 것입니다. 하지만 승지들은 굴하지 않습니다. 왕의 진노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들의 정신이 볼만합니다.)

홍귀달 등이 차비문(差備門) 안에 나아가 다시 아뢰기를,

“신(臣) 등이 반복하여 생각해 보니, 후궁이 비록 죄가 있어 견책(譴責)을 당하더라도 오히려 사제로 돌려보내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왕비이겠습니까? 이미 중궁의 정위(正位)가 되었고, 또 원자를 탄생하였는데, 이제 여염(閭閻)에 거처하면 소인(小人)들이 성음(聲音)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니, 이는 매우 옳지 못한 것입니다. 청컨대 자수궁(慈壽宮)에 처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傳敎)하기를,

“사제에 폐거(廢居)하게 되면 모자(母子)가 서로 보는 것도 또한 인정(人情)에 기뻐하는 바이다. 그대들이 만약 혹시 다시 아뢰면 장차 대죄(大罪)를 가할 것이다.”

하였다.

홍귀달 등이 이르기를,

“우리 조정에서는 조종(祖宗) 이후로부터 이러한 일이 있지 아니하였으니, 후세(後世)에 반드시 오늘날의 일로써 법을 삼을 것입니다. 청컨대 경솔하게 거행하지 말고 다시 대비(大妃)께 아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신이 비록 죄를 받는다 하더라도 차마 생각하고 있는 바를 말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의 거조는 오직 신 등과 정승만이 알고, 외정(外庭)에서는 모두 다 알 수 없었으니, 청컨대 군신(群臣)을 임석(臨席)시켜 교서(敎書)를 반포(頒布)하고 종묘(宗廟)에 고한 연후에 폐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옛날 세종(世宗)께서 김빈(金嬪)을 폐할 때에도 오히려 교서를 반포하였는데, 하물며 왕비이겠습니까? 다만 전지(傳旨)만을 내리는 것도 예(禮)에 합당하지 못한 듯합니다. 종묘에도 오히려 고해야 하는데, 지금 대왕 대비(大王大妃)가 위에서 계시니, 더욱이 품(稟)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교서(敎書)를 반포하고 종묘에 고하는 것은 아뢴 바가 마땅하다. 중궁의 정위는 길사(吉事)이었는데도 내가 오히려 군신을 참여시키지 아니했는데, 하물며 이러한 흉사(凶事)이겠는가? 권정례(權停禮)로써 행하도록 하라. 또 동부승지(同副承旨) 변수(邊脩) 외에는 모두 다 옥(獄)에 가두게 하라.”

하였다. 정승 등이 빈청(賓廳)에서 아뢰기를,

“승지들의 계옥(繫獄)은 무슨 일입니까?”

하니, 전지하기를,

“이미 정승들과 더불어 의논해 결정하였는데, 승지들이 오히려 대비(大妃)께 아뢰기를 청하였으니, 이는 다른 것이 아니고 윤씨(尹氏)를 구제하려는 것이다.”

하였다. 정창손·한명회가 아뢰기를,

“승지들이 무슨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오늘은 일이 많으니 우선 용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승지들이 대비께 아뢰기를 청한 것은 대비로 하여금 이를 중지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두 번이나 아뢰었더니, 대비께서 하교(下敎)하기를, ‘내가 항상 화(禍)가 주상(主上)의 몸에 미칠까 두려워하였는데, 이제 이와 같이 되었으니, 나의 마음이 편안하다.’ 하였으니, 남의 자식 된 자가 부모(父母)로 하여금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 또 이는 이 한 집안의 정사이니, 내가 처치(處置)하는 데에 달려 있을 뿐이다. 대비께서 어찌 그릇되게 여기겠는가? 승지들은 육조(六曹)의 참의(參義)로 개차(改差)하도록 하라. 하였다.

일단 이날의 기록은 여기까지. 어쨌든 임금이 죄를 주겠다, 옥에 가두겠다고 협박을 해도 승지들은 '아닌 건 아닌 것'이라고 직간을 합니다.

 

 

조선시대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왕조실록을 보다 보면 이 직간의 문화만큼은 누가 뭐래도 부정할 수 없는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임금이 죽음으로 협박을 해도 당시의 사대부들은 자신의 소신과 맞지 않으면 '그렇지 않다'고 정면에서 맞섰습니다.

임금은 고사하고 한낱 상사들의 눈치나 보는 요즘의 소시민들이 보기엔 참 대단한 기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직언에 귀를 기울였던 당시의 왕들 역시 요즘의 윗사람들보다는 훨씬 행복했을 겁니다. 잘못을 저질러도 다른 사람들이 고쳐주지 않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겠죠.

어쨌든 아무리 실록을 훑어봐도 '윤비가 임금의 얼굴에 상처를 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일설에는 '왕이 윤비를 때렸다'는 내용이 전해진다고도 하는데 이건 3일 뒤인 6월5일, 6월2일의 회의 때 없었던 백관들 앞에서 임금이 '너희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윤씨의 죄가 한두가지가 아니다'라고 털어놓는 과정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중요 부분만 발췌하면 이렇습니다.

지난 정유년에 윤씨(尹氏)가 몰래 독약(毒藥)을 품고 사람을 해치고자 하여, 건시(乾柿)와 비상(砒礵)을 주머니에 같이 넣어 두었으니, 이것이 나에게 먹이고자 한 것인지도 알 수 없지 않는가? 혹 무자(無子)하게 하는 일이나, 혹 반신불수(半身不遂)가 되게 하는 일, 그리고 무릇 사람을 해(害)하는 방법을 작은 책에 써서 상자 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일이 발각된 후 대비께서 이를 취하여 지금까지도 있다. 또 엄씨(嚴氏) 집과 정씨(鄭氏) 집이 서로 통하여 윤씨(尹氏)를 해치려고 모의한 내용의 언문(諺文)을 거짓으로 만들어서 고의로 권씨(權氏)의 집에 투입(投入)시켰는데, 이는 대개 일이 발각되면 엄씨와 정씨에게 해가 미치게 하고자 한 것이다. 항상 나를 볼 때, 일찍이 낯빛을 온화하게 하지 않았으며, 혹은 나의 발자취를 취하여 버리고자 한다고 말하였다. 비록 초부(樵夫)의 아내라 하더라도 감히 그 지아비에게 저항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왕비가 임금에게 있어서이겠는가? 또 위서(僞書)를 만들어서 본가(本家)에 통하여 이르기를, ‘주상(主上)이 나의 뺨을 때리니, 장차 두 아들을 데리고 집에 나가서 내 여생(餘生)을 편안하게 살겠다.’고 하였는데, 내가 우연히 그 글을 얻어보고 일러 말하기를, ‘허물을 고치기를 기다려 서로 보도록 하겠다.’라고 하였더니, 윤씨(尹氏)가 허물을 뉘우치고 말하기를, ‘나를 거제(巨濟)나 요동(遼東)이나 강계(江界)에 처(處)하게 하더라도 달게 받겠으며, 남방기(南方記)에서 발원(發願)한 대로 사람의 허물을 무량수불(無量壽佛) 앞에서 연비하여 이를 맹세하겠습니다.’라고 하므로, 내가 이를 믿었더니, 이제 도리어 이와 같으므로, 전일(前日)의 말은 거짓 속이는 말이었다.

曩在丁酉, 尹氏陰懷毒藥, 謀欲害人, 至以乾柿砒礵, 同置囊中, 安知不欲食我也? 或無子, 或半身不遂, 凡害人之方, 書諸小冊, 藏于篋中, 事覺, 大妃取之, 至今猶在。 又僞作嚴氏家與鄭氏家相通, 謀傾尹氏, 諺文, 故投于權氏之第, 蓋欲事覺, 害及兩氏也。 常見我, 未嘗和顔, 或言欲取我足跡, 而去之。 雖樵夫之妻, 尙不敢抗其夫, 況妃之於君乎? 又作僞書, 通于本家曰: ‘主上打我腮, 將率吾二子, 出居于家, 以安吾生也。’ 予偶得其書, 謂之曰: ‘俟改過, 乃相見。’ 尹氏悔過曰: ‘使處我於巨濟遼東江界, 亦所甘受, 願於南方記, 人過無量壽佛前, 燃臂以矢之。’ 予乃信之。 今反如此, 前日之言詐也。

腮가 뺨을 뜻하는 '뺨 시' 자였군요. 아무튼 가정폭력이 만만치 않았으니, 거꾸로 윤씨가 성종의 얼굴을 할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성종은 만 22세의 혈기방장한 나이. 윤씨의 나이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성종보다 두살 많거나 열두살 많은(드라마 '인수대비'는 12세 연상설을 택했습니다) 나이입니다. 나이가 많으니 자신이 시들고 꽃다운 새 후궁들에게 임금을 빼앗긴다는 것이 견딜수 없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원자를 낳은 몸, 조금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처신했더라면 연산군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작 중전이 성종의 뺨을 할퀴었다는 기록은 다른 책에 나옵니다. 1638년 나온 '기묘록'에는 이런 내용이 전해집니다.

성종조(成宗朝)에 공혜왕비(恭惠王妃)가 죽은 다음 숙의(淑儀) 윤씨를 올려서 비(妃)로 삼았다. 성화(成化) 병신년에 연산을 낳아 은총이 융숭하니, 교만하고 방자하여 여러 숙원(淑媛: 양가(良家)의 딸이었던 정씨(鄭氏)와 엄씨(嚴氏)를 말한다) 을 투기하였고 임금에게도 불손하였다. 하루는 임금의 얼굴에 손톱 자국이 있으므로 인수대비(仁粹大妃)가 크게 노하여, 천위(天威)를 격동시켰다. 임금이 외정(外庭)에 나가자 대신 윤필상(尹弼商) 등이 영합하여 의논을 올려 윤씨를 폐하여 친정으로 나가게 하였다.

成宗朝。王妃恭惠薨。陞淑儀尹氏爲妃。成化丙申生燕山。寵隆驕恣。妬忌諸媛不遜於上。一日聖顏有爪痕。仁粹妃 大怒。激成天威。出視外庭。大臣尹弼商等將順獻議。廢出私第。

 

뒷날의 '연려실기술'에서도 인용하고 있으니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닐 듯 합니다. 다만 드라마에서 볼 수 있듯 바로 그날, 그 '임금이 다른 후궁의 침소에 간 날' 몸싸움이 벌어져 손톱자국이 났는지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손톱자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 궁에서 쫓겨나는 몸이 된 중전 윤씨.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죽음'까지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듯 합니다. 그러나 결론은 사약으로 이어지고, 비극은 수십년 뒤까지 이어집니다.

물론 그 얘기는 나중에 잇겠습니다.



조 아래쪽 네모 안의 숫자를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스마트폰에서도 추천이 가능합니다. 한번씩 터치해 주세요~)


여러분의 추천 한방이 더 좋은 포스팅을 만듭니다.

@fivecard5를 팔로우하시면 새글 소식을 더 빨리 알수 있습니다.

 

728x90

우연히 포털에서 '아역 김소현 손예진 닮은꼴 미모 화제'라는 얘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김소현이라면 '러브 어게인'에 김지수의 딸로 나오고 있는 처자. 1999년생이라는 무시무시한 출생 연도를 갖고 있는 만 13세 소녀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러브 어게인' 1회를 보다가 '어라, 저 이목구비가 예사롭지 않은 저 아이는 누구지?' 했던 참이었습니다.

 

문득 시대를 넘어 세상을 울리고 웃겼던 브라운관 속 소녀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갔습니다. 그중 몇몇은 '잘 자랐다'는 말을 듣고, 또 다른 몇몇은 성인으로서의 모습이 어린 시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아무튼 아역 시절 이미 레전드의 반열에 오른 분들을 한번 돌이켜 보자는 것이 이번 포스팅의 의도입니다.

 

 

 

 

사실 우리의 김소현 양은 상당히 아슬아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해 아역이라고 불리려면 최소한 7~8세에는 데뷔를 해서 그 즉시, 혹은 10~12세 이전에 스타덤에 올라야 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 15세 쯤이라면 방송계에서 통상 아역으로 분류하더라도 이미 하이틴 탤런트로 보아야 하는게 맞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일단 '미모의 아역' 얘기를 할 때 15세 이후에 빛을 발한 분들은 제외합니다. 임예진 김혜수 강주희 뭐 이런 분들, 그리고 가까이는 송혜교 한지민 등이 '아역' 시절 떴지만 실제로는 아역이라고 볼 수 없는 분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해 봅니다.

 

 

 

 

기억이 희미하실 분들부터 시작합니다. 맨 처음 강수연이 TV에 나왔을 때 - 아마도 TBC 어린이 드라마 중 한편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당시까지 아역 배우의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하던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얼굴에서 벗어난, 이목구비가 뚜렷한 어른 얼굴의 소녀가 등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짝 패인 보조개, 오똑한 콧날, 그리고 이미 '애기 소리'가 아닌 목소리(성인이 된 지금의 목소리와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한국 아역사에서 '미모'를 논하게 된 계기가 바로 강수연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달리 미모를 뽐냈던 이 소녀는 결국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일세의 국민 여배우로 떠오릅니다. 일각에서(방송이든, 연예 기사든) '잘 자란 아역' 운운 하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 리스트에 강수연이 빠져 있는 걸 보면 코웃음을 치게 됩니다. 그만치 그런 콘텐트를 만드는 사람들의 시야가 좁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의 미모, 연기력, 화제성, 그리고 성인이 된 뒤 연기자로서의 성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지금까지 한국에서 강수연을 능가할 아역 배우는 나오지 않았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자료의 부족으로 강수연의 소시적 미모를 제대로 보여드릴 수 없어 아쉬울 뿐.)

 

 

 

나이는 강수연 보다 아래지만 강수연보다 먼저 데뷔한 아역 스타 가운데 윤유선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윤유선은 강수연과 달리 '전형적인 어린이 얼굴'의 배우였습니다. 미모라고 부르는 게 미안할 정도의, '살인적인 귀여움'을 갖고 있던 어린이였습니다. 드라마도 드라마지만 '호돌이와 토순이' 등을 통해 진행자로도 주목받았죠.

 

성인 연기자로는 20대의 나날을 어물어물 지나가 버린 느낌이 있습니다만, 오히려 30대 이후에 연기자로도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40대에 접어들어서도... 어린 시절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슈퍼 동안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죠.

 

 

 

 

한동안 '강수연=예쁜 아역의 대명사'였던 시절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바로 이상아였습니다. 일각에서는 '김지미의 어린 시절과 똑같다'는 말이 전해지는데 확인할 길이 없어 아쉽기도 합니다. 아무튼 영화 '길소뜸'에서 김지미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며 이상아의 아역 시대는 화려하게 열렸습니다.

 

이 리스트에 있는 누구와 비교해도 어린 시절의 미모로는 감히 따를 사람이 없었던 이상아. 그런데 아역 시절 이상아는 가녀린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심한 허스키 보이스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엄청난 노력으로 목소리의 약점을 극복, 놀라운 의지의 소유자임을 증명하기도 했죠.

 

 

 

 

90년대 아역의 최고봉을 꼽자면 이재은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모는 물론이고 아역 본연의 귀여움과 연기력 면에서 단연 발군이었죠.

 

특히 이재은의 강점은 한복을 입었을 때 드러나는 이마. 밥 먹는 옆에서 대본 한권을 읽어 주면 다시 볼 필요도 없이 줄줄 외웠다는 총명함까지, 당대의 이재은은 역대 최고를 다투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성인이 된 뒤에는 주로 극성맞은 역할('인수대비'의 한명회 부인 같은...)을 맡고 있는데, 격세지감을 느끼게 됩니다.

 

 

 

 

비교적 근대(?)로 오면 문근영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맑디 맑은 눈망울에서 떨어지던 수정 같은 눈물방울을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이 거의 없을테니 설명도 필요 없겠죠.

 

특히나 문근영은 10세 이하에서 20대 중반에 이르는 현재까지, 공백기나 쇠퇴기가 사실상 없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절정에 달했던 것은 13세 때인 2000년의 '가을동화' 지만 그 이전이나 이후, 문근영의 명성은 줄곧 상승곡선을 그렸습니다. 이른바 '국민여동생'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습니다.

 

 

 

 

문근영보다 세 살 아래, 문근영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고 봐야겠지만 미모 하나만큼은 역시 레전드로 꼽아 아깝지 않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바로 '반올림'의 고아라죠. 역시 13세때인 2003년 '반올림'으로 데뷔했습니다.

 

사실 스무살이 넘은 지금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아역 고아라'를 말할 때 과거형을 쓴다는 게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점은 고아라에게 상당히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하죠. 뭐 성인 변신을 위한 확실한 작품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기도 하고.

 

(여담: 고아라에 비하면 유아인은 참 어른 얼굴이 된 셈이군요.^^)

 

 

 

 

위의 여섯 아역 스타들과 비교해 볼 때도 일단 미모를 따진다면 김소현은 충분히 경쟁력을 갖는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최근들어 갑자기 많은 작품('해품달' '옥탑방 왕세자' '러브 어게인')에 출연하며 관심이 집중됐다는 면도 있지만, '손예진 닮은꼴 미모'가 갑자기 거론되는게 그리 공허한 호들갑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10년, 20년 뒤에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정도인지는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죠.

 

여러분이 직접 '아역 미모'의 순위를 매기신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사실 제가 생각하는, 제가 지금까지 본 역대 최고의 아역은 이 친구입니다.

 

 

 

 

솔직히 아역을 평가할 때 '어른 얼굴'에 가까운 미모가 그리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신애를 능가할 아역을 지금까지는 못 본 듯 합니다. 귀여운 얼굴, 연기력, 어딘가 보고 있는 사람의 가슴을 무겁게 하는 청승맞은 눈빛까지... 완벽합니다.

 

P.S. 자료를 찾다 보니 이 아역이 눈길을 끄는군요. 누구일까요?

(눈썰미 있는 분이라면 금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지금 얼굴이 그대로 있죠.^^)

 

 

 

 

 

728x90

김지수가 일본 드라마 '동창회-러브 어게인 증후군'을 모태로 한 JTBC 수목드라마 '러브 어게인'의 주연으로 발탁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문득 생각난 작품이 있었습니다.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김지수는 2년 전, '도쿄 타워'라는 드라마의 주인공 물망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도쿄 타워'라는 제목은 좀 흔합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건 아무래도 오다기리 조 주연의 영화 '도쿄 타워'(2007)죠. 어머니와 아들의 찐한 사랑 이야기인 이 영화는 같은 제목의 드라마를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지수가 물망에 올랐던 2004년작 영화 '도쿄 타워'는 이와는 좀 다른 얘깁니다. 20대 초반 청년과 40대 유부녀(극중에선 엄마의 친구로 설정)의 비련 이야기였죠. 일본 최고의 인기남 중 하나인 오카다 준이치가 주인공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모태로 한 한국 드라마 '도쿄타워(물론 가칭입니다. 한국 드라마 제목을 '도쿄타워'라고 붙일 수는 없는 일... '남산 타워' 였으면 그것도 코미디였을 것이고...^^)'는 남녀 주인공까지 캐스팅되는 등 제작 초읽기 단계까지 갔지만 결국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남자 주인공 물망에 올랐던 J군이 갑작스레 심각한 문제에 휘말렸기 때문입니다.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고, J군은 긴 자숙에 들어갔고, 드라마는 무산돼 버렸습니다.

 

 



김지수가 출연한 그 많은 작품들 가운데 유독 이 두 작품을 놓고 얘기하는 이유는... 아마도 일본 문화에 관심있는 분들은 금세 눈치채실 수 있을 겁니다. 일본 드라마 '동창회'와 영화 '도쿄 타워'의 주인공이 구로키 히토미라는 같은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쿠로키 히토미라고 쓰는게 정확한 발음에 가깝겠지만 어쨌든 아직 한국의 일본어 표기법은 첫 음에서 '쿠'와 '구'는 모두 '구'로 쓰게 되어 있습니다. 1960년 생. 일본의 독특한 문화 요소인 다카라즈카 출신입니다. 모든 등장인물을 여성들이 소화하는 다카라즈카는 일본 연예계의 엘리트 코스로 불리기도 합니다. 구로키 히토미를 비롯해 '여왕의 교실', '보스'의 아마미 유키(아마도 '일본의 고현정'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합니다)나 미녀 배우 단 레이 같은 경우가 다카라즈카 출신의 대표적인 여배우로 꼽히죠.

 

 

 

 

다카라즈카의 특징은 남자 역을 맡은 배우는 미모와 관계 없이 다소 중성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가 몸에 배고(아마미 유키를 보신 분이라면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여자 역 전문 배우는 여성스러움을 극대화한 연기의 달인이 됩니다. 구로키는 대표적인 다카라즈카의 여자 역할 배우였다고 합니다.

 

 

 

 

나이를 봐도 알 수 있지만 구로키는 스타가 된게 오래 전의 일입니다. 아마도 좀 나이드신 분들은 1990년대 말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물결과 함께 자주 거론됐던 '실락원'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실락원'은 남편과 갈등을 겪던 청순한 유부녀가 훨씬 연상인 중년의 잡지 편집장과 불륜을 겪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일본의 안성기'라는 식으로 비교되는 야쿠쇼 코지가 남자 주인공을, 구로키 히토미가 여주인공을 맡았죠. 주인공들의 이름값에 비해 상당한 수위의 노출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화제였고, 국내 도입을 놓고 '수준높은 예술영화'냐 '왜색 에로영화'냐 하는 논란이 상당히 거셌습니다.

 


아무튼 이 영화가 1997년작이니 지금부터 15년 전. 이미 37세였던 구로키는 50대가 된 지금도 중년 여성의 로망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마 국내 시청자들에게 알려진 드라마를 꼽자면 일본판 '하얀 거탑'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구로키는 한국 드라마로 치자면 장준혁(김명민) 박사의 애인인 카페 사장(한국에선 와인바 주인) 역을 맡았습니다. 한국판에선 김보경이 연기한 역할이죠.

 


구로키는 올해도 '추정유죄'라는 드라마에서 주역을 맡았습니다.

출연작들을 훑어보면 배우의 이미지가 대략 그려집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여자'의 느낌을 가진 배우죠. 특히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는 여자'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일본을 대표하는 '방부제 복용 배우'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40대의 나이에도 20대 남자와 연애할 수 있는 여자'의 대표자로 꼽히기도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앙케이트 조사에서도 젊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모시고 싶은 여자 상사', 3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모델로 삼고 싶은 중년 여성' 등의 상위권에 단골로 뽑힙니다. 1991년 결혼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남편의 신상 등은 잘 알려지 있지 않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면 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여담이지만 일본 연예계와 연예 저널리즘의 관계는 한국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대단히 많습니다. 가끔 보면 놀라울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쯤 되면 김지수와 구로키 히토미의 비교가 그리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시게 될 겁니다. 나이를 무시한 방부제 미모, '연하남'이라는 코드, 꾸준한 인기, 여성들의 선망. 물론 12년의 나이 차이가 납니다만, 구로키 히토미를 통해 대략 12년 후 김지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아무튼 현재의 모습은 오늘 밤에도 방송되는 '러브 어게인'.^^

 

 

 



728x90

제목을 보시면 '응? 주지훈과 류정한이 무슨 관계지?' 하실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드라마 마니아라면 다르시겠죠. 두 사람 모두 드라마의 거장 황인뢰 감독이 '깜짝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인물들이라는 점을 쉽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캐스팅 과정이야말로 진짜 드라마'라는 말을 합니다. 작가와 연출자가 처음 대본을 만지면서 생각했던 주인공들이 그대로 캐스팅되는 경우는 100에 하나가 될까 말까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처음 구상과는 전혀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깜짝 신인이 '혜성과 같이 나타나서' 스타덤에 오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경우도 있고, '누가 봐도 망할 수가 없는 주인공'을 캐스팅한 드라마가 산산조각이 나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것이 드라마의 세계죠.

 

 

 

 

최근 끝난 '아내의 자격'의 안판석 감독과 현재 방송중인 '러브 어게인'의 황인뢰 감독은 각기 일세를 풍미한 명 드라마 연출자로 유명합니다. 이 분들의 작품들 가운데서 신인 기용과 관련해 대조적인 경우가 문득 떠오릅니다.

 

안판석 감독은 '아내의 자격'의 주인공 이성재를 처음으로 주인공에 기용한 연출자입니다. 바로 1997년작인 드라마 '예스터데이'죠.

 

 

 

당초 이 드라마는 메인 주인공인 영호 역을 비워 놓고, 영호의 의붓형인 민수 역에 이종원을, 그리고 두 남자주인공을 갈라 놓는 여주인공 역으로 김소연을 캐스팅해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메인 주인공 캐스팅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안 감독은 이종원을 영호 역으로 바꾸고 대신 민수 역에 거의 완전히 신인인 이성재를 기용하는 모험을 합니다. 이 작품으로 이성재는 호평을 받았고, 두 남자 사이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오히려 강한 인상의 이종원이 선한 주인공으로, 선하고 유약한 인상의 이성재가 이종원에게 앙심을 품는 역으로 등장하며 신선한 느낌을 줬다는 평이 주류였죠) 대신 이종원과 김소연이 너무 나이 차이가 커 보이며 케미스트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드라마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와는 정 반대 케이스가 '궁'입니다. 궁은 일찌감치 김정훈을 남자 2번 격인 이율 역으로 캐스팅하고, 주인공으로 모델 출신 신인 주지훈을 캐스팅합니다. 당시 지명도로 보나, 인기로 보나 UN 출신의 김정훈이 주지훈보다 높은 급의 배우였죠.

 

당연히 김정훈을 메인 주인공으로 올려 놓고 두 배우의 역할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제작진은 단호하게 그런 주장을 잘라 버렸습니다. 주지훈의 외모에 대해서도 어딘가 이상하다(지금 들으시면 깜짝 놀랄 얘기지만 '궁'이 방송되기 전에는 이런 얘기가 꽤 많았습니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역시 황인뢰 감독은 끄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궁'은 히트했고, 주지훈은 바로 톱의 자리에 올랐죠.

 

물론 이런 선택 때문에 '궁'은 히트하고 '예스터데이'는 실패했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닙니다. 드라마가 성공하고 실패하는 데에는 엄청나게 많은 변수가 있기 마련이죠. 다만 당시 '궁'의 연출자가 황인뢰 감독이고, '궁'에 이어 다시 한번 남자 주인공에 드라마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신인을 기용한 거라는 점에서 유사점을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류정한이 연기 경력이 없는 신인이냐면 그건 또 아니고.^

 

최근 김무열 조정석 엄기준 주원, 멀게는 오만석 신성록 송창의 박건형 등등 뮤지컬계에서 내로라 하는 이름들이 드라마나 영화에 진출해 각광받고 있는 건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 수많은 스타들 가운데서도, 뮤지컬 본령에서 류정한의 이름을 넘어선 연기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있다면 조승우 정도?)

 

 

 

 

뮤지컬 출신 배우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이 안정된 발성입니다. 위의 연기자들 가운데서 목소리가 매력적이지 않은 배우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류정한의 적당히 기름기 있는^^ 저음은 특히 매력적이죠. '러브 어게인'에서 보면 '과연 저런 목소리의 형사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좀 들긴 하지만, 아무튼 목소리 참 좋다는 데에는 이견을 달 수가 없습니다.

 

연기력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대극장 무대에서의 연기와 클로즈업이 들어갈 수 있는 드라마/영화에서의 연기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구로 치자면 내야에서의 송구냐, 외야에서의 송구냐 정도 차이일 뿐, 기본적으로 어깨가 탄탄한 선수라면 어느 쪽이든 적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능하면 류정한이 드라마에서도 노래하는 장면을 한번 정도 보여주면 기존의 팬들 외에 새로운 팬들을 확보하는 데에도 상당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본인의 뜻과 다르다 보니 그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혹시 모르겠습니다. 뒤로 가면 한번쯤 가능할지도...^^) 뭐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강력계 반장이 된 형사... 괜찮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류정한의 노래 한 곡.

 

 

 

만약 류정한을 드라마에서 처음 보신 분이라면, 지금은 드라마 속 역할 때문에 조용조용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남자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노래를 들어 보시면 그 안의 열정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