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히든싱어] 2014년 1월25일에서 26일로 넘어가는 밤. JTBC 사옥 호암아트홀에선 '히든싱어2'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왕중왕전 생방송이 펼쳐졌습니다.

 

왕중왕전으로는 세번째 방송. 그러니까 1월11일과 18일, 2회로 나뉘어 왕중왕전 본선이 치러졌고 25일에는 거기서 살아남은 세 사람의 모창 도전자 - 임성현(논산가는 조성모), 조현민(용접공 임창정), 김진호(사랑해 휘성)의 최종 대결이 펼쳐진 것입니다.

 

두 차례의 왕중왕전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말 치열한 대결을 뚫고 올라온 이들입니다. 난다긴다하는 모창자들 중에서 선발됐고, 그 우승 혹은 준우승자 사이에서도 각 조에서 1위를 차지한 인물들이니 말입니다.

 

 

 

 

물론 결과는 아시는 바와 같이 휘성 모창자 김진호의 우승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마지막날 생방송을 현장에서 보고 있으니 과연 더 이상 '모창'이란 말로 이 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온당한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습니다. 이미 모창이란 큰 의미가 없어진 대결이었습니다.

 

 

 

PM 10:20

 

이날 호암아트홀 무대는 정말 발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찼습니다. 앞에 보이는 빈 자리는 특별 게스트로 참여한 연예인들과 그동안 '히든싱어2'에 출연했던 멤버들을 위해 비워 놓은 자리들이고, 나머지 자리는 꽉 들어찬 것을 지나 복도까지 어떻게든 들어온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만약 '히든싱어3' 때도 최종 생방송을 한다면 경희대 평화의 전당 정도는 충분히 채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PM 10:30

 

30분 전. 출연진들은 분장실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있고, 스태프들은 원활한 무대 진행을 위해 마지막 점검이 한창입니다.

 

 

 

2층에서 본 모습.

 

 

 

PM 10:50

 

하늘 위에서 찍는 듯한 느낌을 주는 지미집 카메라가 마지막으로 팔을 휘저어 봅니다. 앞줄엔 출연 연예인들이 착석 완료를 확인하는 스태프들이 아직 서 있죠.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간.

 

 

 

 

 

PM 11:00

 

무대 중앙문에서 전현무가 걸어나오며 환호와 함께 방송 시작.

 

세 사람의 도전 여정을 간략하게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신선한 건 세 도전자가 처음으로 예심에 나섰을 때의 모습.

 

그리 오래 전도 아닌데 세 사람 모두 지금과는 꽤 다른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처음에 보였던 쭈뼛대는 모습이 지금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습니다. 자신감이 예전과는 전혀 달라 보입니다.

 

순서대로 세 도전자의 노래.

 

 

 

 

조현민과 김진호를 향한 임창정과 휘성의 찬사와 응원이 눈길을 끄는 가운데, 조성모가 나오지 못한 임성현이 혼자 좀 쓸쓸해 보입니다. 가장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야 할 조성모가 없으니 어딘가 힘이 빠져 보이는 아쉬움. 휘성의 무대 의상까지 그대로 물려입고 나온 김진호의 어깨에 더 힘이 들어가 보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25일 무대에서 가장 빛났던 사람은 임성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히든싱어' 시즌 1,2를 통틀어 원조 가수를 누르고 우승한 사람든 단 둘뿐, 신승훈 편의 장진호와 조성모 편의 임성현 뿐입니다.

 

장진호가 의외의 부진으로 최종 3인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 이변이라고 할 정도로 두 사람의 실력은 탁월했습니다. 특히 임성현은 25일 무대에서 최상의 실력을 보여 진짜 조성모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던 당시의 우승이 우연의 결과가 아님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AM 00:00

 

부조정실. 전현무의 말이 많아질수록 조승욱 PD의 주름이 늘어갑니다. 자꾸 시간이 초과되기 때문이죠.

 

당초 실시간 문자투표를 하기로 했을 때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왕중왕전 두 차례를 마친 뒤 1주일간 진행한 사전 인터넷 투표의 총 개표수가 1만건 정도밖에 안 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방송중 투표를 수없이 진행한 ARS 업체에서도 "이 시간이면 15만표 정도가 예상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15만표는 방송 시작 20여분만에 훌쩍 넘어섰고, 밤 12시를 지나면서 50만표 이상이 확실시됐습니다.

 

대박 예감.

 

 

 

 

 

AM 00:30

 

최종 투표가 마감됐습니다. 총 투표수는 864,868표.

 

음향편집실 스태프도 분주합니다. 이때부터 전현무 특유의 '쪼는' 시간에 맞는 음악이 나갑니다.

 

물론 3위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선 광고를 봐야 합니다.^^

 

 

 

 

 

"우승자는 김진호!"

 

두 사람이 남은 상황에서 전현무의 발표 순간, 김진호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세 사람 모두 사연이 있습니다. 조현민은 많은 사람이 아는대로 부산에서 용접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병환과 집안 환경 때문에 음악에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임성현은 현역 뮤지컬 배우이지만 수많은 오디션에서 탈락했던 아픔을 겪었고, 곧 입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임성현의 아버지가 "내가 못 이룬 꿈을 아들이 이뤘다"며 눈물을 보이는 광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김진호는 연세대에 다닐 정도의 우등생이지만, 한편으론 거울을 보며 휘성의 동작을 따라하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에 진로를 놓고 남들은 짐작하지 못하는 고민을 겪었을 겁니다.

 

이런 세 사람 모두에게 왕중왕전 생방송은 그야말로 한풀이의 무대였습니다. 음악이란 이들에게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목표였고, 어찌 보면 애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한켠에는 그들 각자에겐 음악의 세계를 엿보게 했던 우상들이 있습니다. 이들 각자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우상에 대한 존경, 그리고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 바로'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표출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세 사람의 고민과 좌절이, 이날 보여준 놀라운 실력에 날개를 달아준 듯 했습니다.

 

이날 무대에 선 것은 임창정과 조성모, 휘성을 모창하는 세 사람이 아니라, 그 세 우상을 통해 자신의 꿈을 펼치려는 세 젊은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세 사람의 노래가 더욱 예사롭지 않게 들린 것입니다. 임창정이 장난스럽게 던진 "전 저렇게 못 불러요"라는 말이 그저 농담만은 아닐 정도로, 세 사람은 생방송 무대에서도 위축되지 않는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특히나 보기 좋았던 것은 그런 꿈의 소중함을 아는 선배들과 곧바로 '즐기는 무대'가 연출됐다는 것.

 

 

 

AM 1:00

 

생방송이 끝난 무대는 몰려 나온 축하객들로 북적이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무대에서 단연 인기있는 출연자가 있었으니.

 

 

 

바로 아이유 모창자 샤넌.

 

최종 결승에 진출하지 못해 많은 남성 시청자들을 좌절시켰던 '히든싱어2'의 주역(!) 중 하나.

 

 

 

다들 샤넌과의 기념 촬영을 위해 줄을 섭니다.

 

옆에 찬조출연한 작곡가 주영훈. "야, 샤넌이랑 빨리 찍어. 얘 데뷔하면 우린 사진도 같이 못 찍을거야."

 

 

 

그래서 저도 잠시 본분을 잊고...

 

 

 

샤넌양, 정말 얼굴이 조막만 하더군요. 화장기 없는 얼굴도 어쩌면 그리 귀여운지.^^

 

 

 

AM 1:20

 

곧바로 심야의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새벽 시간이지만 취재 열기가 뜨겁습니다.

 

 

 

다들 밝게 웃는 모습.

 

대락 기억나는 질문과 답은:

 

 "전현무를 시즌3에도 MC로 쓰겠느냐"는 질문에 "생각 중"이라고 말한 조승욱 PD.

 

"내가 '히든싱어2' 최고의 수혜자인 것 같다. 안티가 많이 줄었다"는 휘성의 말에 "안티는 제가 더 많습니다"라고 덧붙인 전현무.

 

상금 2000만원을 어떻게 쓰겠냐는 말에 "제작진과 출연자들을 모아 고기를 배터지게 먹겠다'는 김진호.

 

세 사람 모두 공통적으로 가장 감격스러운 건 팬카페가 생겼다는 것.

 

 

 

 

임성현은 이미 노래하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나머지 두 사람의 진로가 어떻게 될지,

 

세 사람의 인생이 '히든싱어2' 출연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김진호의 말처럼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 기억으로 이겨내겠다"고 한다면, 참 좋은 일일 듯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세 사람 모두 수천명의 지원자 중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승자들이라는 것.

 

늦은 시간,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세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로 세 사람을 환영했습니다.

 

국민투표에 임해 주신 864,868명의 시청자들도 아마 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히든싱어2'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물론 '히든싱어3'는 당연히 돌아옵니다. 아쉬우시겠지만 늦어도 8월이면 '히든싱어3'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짧은 안녕을.

 

 

 

 

728x90

1970년대. 엠비씨 일기예보 배경음악(일설에 따르면 오늘의 주요 프로그램 안내 배경음악이라고도 한다^^)으로 늘 나오던 청승맞은 기타 연주곡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곡의 제목이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알함브라 궁전? 뭔가 아라비안 나이트 풍의 이름을 가진 이 궁전이 아라비아가 아닌 스페인 땅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세월이 또 흘렀다. 제법 머리가 굵었고 왜 스페인에 아랍인들의 궁전이 있는지도 알았다. 또 세월이 흘러 그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에서도 가장 유명한 구역은 바로 나스르 궁전이고, 그 나스르 궁전이야말로 이슬람 세력이 스페인 땅에 남겨 놓은 최고의 보물이라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왔다.

 

 

 

 

바닥도 예사롭지 않아.

 

 

드디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사실 작다면 작은 공간이다. 나스르 궁전은 절대 규모로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다.

 

단지 치명적인 조형미가 있을 뿐이다.

 

 

설계도면으로 보면 이렇게 생겼다. 입구로 들어가 직진하면 제일 먼저 메수아르 Mexuar 에 도달한다.

 

 

 

천장 장식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기둥과 각도가 애매하다 보니 카메라에 담기 쉽지 않은 '메수아르의 방'. 거의 모든 가이드북에 '메수아르의 방'이라고 나오는데 그냥 메수아르 Mexuar 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이 메수아르는 나스르 궁전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전실 antechamber 이며, 왕의 집무실로 사용됐다. 때로 재판이 열리기도 했다고 한다.

 

 

 

메수아르를 거쳐 나오면 다시 하늘이 보이고

 

 

작은 파티오가 하나 나온다. 저 문 안의 방 이름을 따서 파티오 델 쿠아르토 도라도 Patio del Cuarto Dorado, 즉 '황금의 방의 파티오'라는 이름이다.

 

 

 

 

작은 분수도 하나 있다. 파티오라고 불리려면 당연히 분수 하나는 있어야 한다.

 

 

 

 

 

이 황금의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알함브라 전체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느껴졌다.

 

 

 

황금의 방 자체는 그닥 인상적이지 않지만,

 

 

지금부터 알함브라는 디테일로 승부한다.

 

 

 

 

 

온 벽이 다 장식이다.;;

 

다른 문화권이라면 그림이나 조각이 있을 법 하지만 우상숭배를 극도로 경계하는 이슬람의 특성상 어디에나 기하학적인 문양 뿐이다. 꽃무늬 비슷한 문양은 가끔 눈에 띄지만 동물 모양은 절대 없다.

 

 

 

황금의 방을 나와 모퉁이를 돌아 입구를 나서면 앗, 많이 보던 광경인데, 라는 정원에 도착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정말 낯익은 광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아직 오른쪽을 볼 시간이 아니다. 왼쪽의 검게 보이는 입구로 발을 들여 놓으면,

 

 

 

 

 

 

 

 

코마레스 탑의 입구에 해당하는 배의 방 Sala de la Barca 이 나온다.

 

 

 

 

이런 다소 어두운 복도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알함브라가 규모로 사람 기죽이기에 들어간다. 이것이 '대사의 방 Salón de los Embajadores '.

 

대사의 방이라고 이름붙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알함브라의 왕이 외국 대사들을 접견하기 위한 자리다.

 

대사의 방은 알함브라의 마지막 이슬람 군주였던 보압딜이 1492년 1월, 기독교도의 왕, 페르난도2세와 이사벨라 여왕에게 항복한 장소이기도 하다. 보압딜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해를 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전쟁을 포기하고 북아프리카로 망명한다. 물론 상대가 관용이라곤 모르는 기독교도들이었으니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워싱턴 어빙의 '알함브라 이야기'에 따르면 이 기독교도 군주들의 후손인 카를로스 5세는 보압딜의 우유부단한 처사를 비웃으며 "나 같으면 알함브라를 나의 무덤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어빙은 이런 말로 보압딜을 옹호했다.

 

"권력과 권세를 지닌 사람들이 패배자들에게 영웅주의를 설교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불행한 이들에게 목숨 말고 남은 게 없을 때, 그 목숨 자체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그들이 어찌 이해하겠는가."

 

 

 

 

이 거대한 방은 이렇게 이슬람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굴욕적인 역사의 현장이다.

 

전성기 때 왕은 이 창을 등지고 앉아 귄위를 뽐냈다고 한다. 

 

 

 

여기 저기 인용되는 대사의 방의 천장.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이렇다. 이 시절 사람들에겐 하늘에서 별이 떨어질 듯한 위압감을 주었을 듯한 천장이다.

 

 

 

다들 천장을 바라보면서 머리를 쥐어 뜯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어 보인다.

 

 

 

어디에나 있는 종유석 문양.

 

대사의 방을 나서 다시 배의 방을 지나 이 아치 너머로 고개를 내밀면,

 

 

 

스페인어를 살려 '아라야네스의 정원'이라고도 소개되는 도금양의 정원 Patio de los Arrayanes 이 나타난다.

 

도금양은 뭘 도금했다는 뜻이 아니고, 식물의 이름이다.

 

 

이 샘으로부터 시작되는, 우아하고 격조있는 정원이다.

 

완벽한데 저 건물 너머로 보이는 흉물스러운 건물이 정돈된 스카이라인에 끼어든다. 바로 위에서 보압딜을 무시했던 카를5세가 이 궁 안에 지은 카를5세궁이다.

 

대체 왜 저기다 저따위 건물을 지은 것인지 불만이 생긴다.

 

 

 

고개를 돌려 지금까지 지나온 방향을 바라보면,

 

 

코마레스 탑이 보인다. 저 탑 안이 하나의 방이고, 그 방이 바로 그 대사의 방이다. 그러니 넓을 수밖에.

 

흔히 나스르 궁전은 3개 지역으로 이뤄졌다고 말한다. 첫째 메수아르, 둘째 대사의 방(코마레스 탑)과 도금양 정원, 그리고 세째는 사자의 정원과 거기 딸린 세 개의 방이다.

 

 

이것이 절정에 오른 기둥의 미학을 보여주는 사자의 정원 Patio de los Leones.

 

 

 

엄청나게 많은 기둥들. 기둥 하나 하나, 벽면 하나 하나가 놀랍도록 정교하고 아름답다.

 

그 안에 있으면 정말 아름다움에 둔감해 질 정도로 아름답다.

 

그런데 사자의 정원이라더니 사자는...?

 

 

 

 

728x90

헤네랄리페에서 알함브라 궁전으로 넘어가는 길에는 이런 다리가 있다.  

 

헤네랄리페를 먼저 보든, 나중에 보든 알함브라 관람은 이 문에서 시작하게 된다. 알함바르 궁전의 동쪽 끝에 있는 문이다.

 

 

 

그러니까 이게 어디냐 하면...

 

 

 

 

고구마처럼 동서로 긴 알함브라 궁에서 빨간 동그라미가 있는 이 위치다.

 

다시 말하면 동쪽 끝이란 얘기.

 

 

 

문 위의 문장. 무슨 뜻인지 일일히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알함브라 연구자도 아니고...

 

알함브라라는 이름은 아랍어의 qa'lat al-Hamra, 즉 '붉은 성(red castle)'에서 왔다고 한다. 물론 선홍빛으로 붉지는 않다.

 

알함브라의 이름이 사료에 등장하는 것은 9세기부터. 중동/북아프리카를 손에 넣은 이슬람 정복자들의 칼날은 마침내 8세기 초, 지브롤터를 건너 바로 빤히 보이는 이베리아 반도로 향했다. 정복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뤄졌고, 이들은 동쪽으로 동쪽으로 말을 달려 중부 유럽까지 진출하려 했다.

 

하지만 칼 마르텔(카를로스/샤를마뉴/칼/찰스 대제의 할아버지. 프랑크 왕국 카롤링거 왕조의 조상. 지금은 유명한 브랜디 브랜드인 'Martell'을 통해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에 의해 투르-프와티에의 결전에서 패배하면서, 유럽에서의 이슬람 세력은 피레네 산맥 동쪽으로의 진출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 프랑크 인들 또한 그 서쪽으로는 넘어 오지 않아 이슬람인(스페인에서는 특히 무어 인이라 불림)들은 약 800년에 걸쳐 사실상 스페인 전역을 지배했다.

 

그 기간 동안 코르도바, 세비야 등과 함께 아랍인들이 주요 거점으로 개발한 도시 중에 그라나다가 있다.

 

 

 

그라나다 부근은 안달루시아에서 가장 지형이 험한 곳이다. 남쪽으로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끼고 있는 등 툭 터진 안달루시아의 평원 가운데서 꽤 지대가 높고, '가려져 있는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악 지형 한가운데 그라나다가 있고, 그 그라나다를 제압하는 언덕 위에 알함브라가 있다. 탁 트인 전망이 압도적인데다 물까지 풍부해 도시 하나를 통째로 들여 놓을 수 있는 알항브라 터는 누구라도 욕심을 낼 만한 땅이다. 그래서 9세기부터 조금씩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13세기. 나스르 왕조의 첫 왕인 무하마드 1세가 이곳에 자신의 궁성과 요새를 포함한 '도시 안의 도시'를 처음으로 건설했다. 이후 나스르 왕조의 다른 왕들이 조금씩 조금씩 부속 건물을 지으며 알함브라를 완성시켰다. 천혜의 요새 알함브라는 이 시기 기독교 세력의 확대로 이슬람의 강역이 축소되는 가운데서도 200년 가량 더 왕조의 운명을 지속시켰다. 

 

아마도 알함브라에 도성을 정한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압딜이 1492년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력이 얼마나 더 버텼을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는 것을 알면 알함브라를 구경하는데 꽤 도움이 되겠지만, 사실 알함브라 안으로 들어서도 왕년의 거대한 도시는 금세 느껴지지 않는다. 문을 들어선 뒤로 한참 동안 건물은 보이지 않고, 조경이 잘 된 공원 속 같은 길을 걷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길이 15세기 중엽에는 화려한 도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다 보면 첫번째로 나타나는 역사적인 스팟.

 

 

바로 7층탑의 문 Torre de los Siete Suelos, 토레 데 로스 시에테 수엘로스다.

 

스페인어로 써 놓는다고 더 멋져지는 건 아니다. 지금 관람자가 성 안에 있으므로 안쪽에서 본 모습인데, 꽤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성 밖에서 보면 좀 다르다.

 

 

 

이게 밖에서 본 모습. 이 광경을 보려면 밖으로도 성벽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를 반바퀴 쯤 돌아야 하는데 불행히도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아무튼 밖에서 보면 꽤 그럴싸한 광경이다.

 

그런데 문의 이름이 7층탑의 문인 것은 지하에 일곱 층의 공간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정작 발굴해 본 결과 두 층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론은... 왜 저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뭐야 이거)

 

 

 

그리고는 계속해서 예쁜 조경 산책로.

 

 

 

그리고 걷다 보면 왼쪽으로 이런 폐허가 나타난다.

 

아직은 별 감흥이 없다. 또 걷는다.

 

그리고 약간 넓은 뜰이 나온다.

 

 

이 문은 알함브라의 파라도르로 통한다.

 

스페인 여행을 하다 보면 파라도르 Parador 라는 이름의 숙박업소를 검색하게 된다. 유서깊은 유명 관광지의 경내에 위치한 숙박업소다. 고성이나 수도원을 호텔로 개조한 것이므로 가격은 좀 나가지만, 느낌이 다른 숙소라는 평이 있다.

 

특히나 그 유명한 알함브라 성내에 있는 이 알함브라 파라도르는 명성이 자자해 몇달 전부터 예약이 차 있다고 한다. 뭐 이런 숙소는 감히 예약할 생각도 못했던 터라, 여기서도 그냥 정문만 보고 지나쳤다.

 

 

 

이 빨간 원 정도의 자리. 참 좋긴 좋아 보이는 자리다.

 

 

 

근처에 이런 호텔도 있다. 아니 대체 유서깊은 알함브라 안에 호텔이 두개나 있는거야.

 

이름도 그렇고...뭔가 좀 무성의한 느낌.

 

 

그리고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 골목 사이로 카를5세 궁(스페인 식으로 하면 카를로스 5세 궁)이 보인다.

 

좌우의 건물들은 그리 세련되지 않은 기념품 등속을 팔고 있다.

 

 

 

이게 카를5세 궁.

 

모든 지도에서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겉에서 보면 사각형이지만 안에서 보면 원형인, 재떨이같이 생긴 건물이다.

 

 

 

굳이 이 궁 안에 이런 식의 유럽식 건물을 세우려고 생각했다는 것도 불순하고, 건물 자체가 그리 정감 가는 데가 없다.

 

1527년 카를 5세의 명으로 짓기 시작해 정작 1957년에 완공됐다는 건물.

 

 

그리고 게속 안쪽으로 들어가면,

 

 

 

드디어 알카사바 Alcazaba 가 나타난다.

 

 

 

지도상으로는 이 위치. 그러니까 알함브라의 서쪽 끝이며, 전체 알함브라 지역 내에서 가장 먼저 구축된 지역이다.

 

당연히 군사 주둔 지역. 주위를 압도하는 전망탑이 그 상징이다.

 

 

 

알카사바 쪽에서 본 카를 5세 궁. 크긴 참 크다.

 

 

 

알함브라에는 고양이가 참 많다.

 

 

사람 따위가 구경을 오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는 오만함을 갖췄다. 유서깊은 비궁의 주민 답다.

 

 

 

결코 먼저 관심을 보인다거나, 관광객 따위가 내는 어설픈 고양이 소리 흉내 따위엔 절대 관심을 주지 않는다.

 

 

 

어느새 날이 흐려온다. 뭐 운치를 더한다면 더하는 느낌.

 

 

세월의 더깨.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천년이 넘은 성벽이다.

 

중간에 또 보수를 했는지도 모르지만 천년 넘게 그 자리에서 이 고성을 지키고 있는 전망탑. 자못 감동적이다.

 

 

 

모퉁이를 돌아 계단을 오르면,

 

 

 

이런 광경에 도달한다. 속이 탁 트인다.

 

 

 

클릭해 보시면 파노라마.

 

 

 

크고 아름답다.

 

 

알카사바의 무너진 부분은 문득문득 앙코르 와트를 생각나게 한다. 붉은 색의 성벽 때문일까.

 

 

왼쪽으로는 과거 병사들의 숙소 유적이 보인다. 아무튼 요새의 규모는 압도적이다.

 

이렇게 한바퀴를 돌아 반대쪽으로 돌아 나오면,

 

 

 

 

성벽과 성벽 사이의 좁다란 정원.

 

이 정원에서 바라보는 시내의 전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정작 나무가 너무 우거져 전망은 살짝 가려진다.

 

이곳의 성벽에는 이런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갔다 와서 알았다.)

 

프란치스코 A. 데 이카사 Francisco A. de Icaza 라는 시인의 유명한 시라고 한다.

 

 

대략 해석하면

 

그를 부축해다오, 여인이여.

그라나다에서 장님으로 사는 것보다

금생에서 더 비참한 일은 없으려니.

 

 

 

 

 

다시 좁다란 문을 지나 내려가면

 

 

 

알카사바의 출구가 보인다.

 

 

알카사바 안녕.

 

 

 

알카사바를 나와 알함브라의 북쪽을 바라보면 멀리 이런 정경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알함브라를 바라보기 가장 좋다는 뷰포인트, 산 니콜라스 전망대다. 사진 속에 저녁을 먹기로 한 식당이 있다.

 

이제 알함브라의 핵심인 나스르 궁전을 입장할 시간이 왔다. 줄을 서야 한다.

 

 

 

 

나스르 공원의 입구에 있는 마추카 정원 Patio de Machuca

 

 

 

들어가야 하는데 조금 앞에서 줄이 끊겼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입장시키지 않기 위해 안내원들이 계속 머릿수를 헤아린다.

 

 

 

드디어 긴 기다림이 끝났다. 이제 나스르 궁전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됐다.

 

알카사바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알함브라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면, 나스르 궁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고조.

 

 

 

728x90

밀린 문화어 사전 세일 기간입니다.

 

별 설명 없이 그냥 나갑니다.^^

 

사진은 신성일, 윤정희가 주연한 전설의 히트작 '내시'. (조여정 주연 '후궁'과 매우 흡사한 내용입니다.)

 

 

영충호 [명사]

: 영남, 충청, 호남 지방을 한꺼번에 일컫는 말.

전통적으로 영남, 호남, 충청 지방을 총칭하는 이름은 삼남(三南)이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는 따로 이 세 지역을 묶어 부르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인구 순에 따라 영남-호남-충청의 순으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013 812, 이시종 충북지사는 충청 지역 인구가 호남 지역 인구를 넘어선 데 맞춰 영충호 시대라는 신조어를 내놨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2 10월 기준으로 충청남북도와 대전,세종시 인구는 총 526만여명으로 전라남북도와 광주광역시를 합한 호남권의 525만여명보다 약 1만여명 많다. 이런 인구 변화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이다.

 

삼남 외에 영호남과 충청 지방을 한꺼번이 일컫는 조선시대의 표현으로는 양호(兩湖)와 영남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양호란 호남(湖南, 전라도)과 호서(湖西, 충청도)를 말한다. 이 호남과 호서는 모두 중국에서 동정호(洞庭湖)를 중심으로 그 남쪽과 서쪽을 가리키는 지명이지만 한국에는 동정호에 비길 만한 큰 호수가 없다. 그럼 대체 왜 호남과 호서라는 지명이 한국에서 쓰이게 된 것일까.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의 지리전고(地理典故) 편에는 전라도의 김제군 벽골제호(碧骨堤湖)를 경계로 해서 전라도를 호남이라 부르고, 충청도를 호서라고도 부른다. 또는 제천에 의림지호(義林池湖)가 있기 때문에 충청도를 호서라고 한다. 경상도의 고을들은 조령과 죽령 두 고개 남쪽에 있기 때문에 영남이라 부른다고 되어 있다.

 

김제 벽골제와 제천 의림지는 삼한시대부터 내려오는 유서깊은 저수지이긴 하지만 자연이 만든 호수도 아닌 터라 중국과 같은 지명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붙인 기준임이 역력하다.

 

P.S. 호서와 호남 모두 비슷하게 억지에 가까운 지명인데도 두 지명 가운데 오늘날 호서는 상대적으로 사라진 이름이 된 데 비해 호남은 여전히 널리 쓰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다나다 [형용사]

 

: ‘대단하다의 영혼 없는(?) 표현

 

대단하다를 아무런 억양 없이 읽으면 대다나다가 된다. ‘대다나다로 쓰는게 일반적이지만, 발음의 특이점을 설명하기 위해 ...로 점을 찍어 쓰기도 한다.

 

의미도 그냥 대단하다는 뜻이긴 하지만, 진심으로 감탄하는 경우를 대단하다라고 쓴다면 내심으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영혼 없이’) 형식적으로만 인정해 주는 경우에 쓰는 말이 바로 대다나다인 것이다.

 

 

어원은 2013 123 MBC TV ‘라디오 스타에 소녀시대가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로 추정된다. 유리가 요가 시범을 보이자 제시카가 대단하다고 칭찬했는데, 유세윤이 이 말에 아무런 억양이 없고,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라며 지적했다. 이후 이 말이 대다나다라는 표기로 굳어졌다는 것이 정설.

 

(위 동영상의 2:00~2:10 사이에 나옵니다.^^)

 

P.S. VIXX의 히트곡 ....는 가사 내용과 이 말의 뜻이 아무 상관이 없다(심지어 노래 안에 대다나다라는 가사가 나오지도 않는다).

 

 

 

순애보(殉愛譜) [명사]

 

: 연인을 따라 죽음을 택하는 슬픈 사랑 이야기

 

1939년 출간된 박계주 원작 소설 순애보는 오늘날 보기엔 다소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당대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희대의 히트작. 남자 주인공 문선이 인순과 명희라는 두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제목 순애보()’은 오래 전 왕이나 귀족이 죽을 때 하인들을 같이 묻는 순장(殉葬)  자다. 그래서 순애보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죽는 이야기라는 뜻. 하지만 이 순애보순수한 사랑 이야기라는 뜻의 순애(純愛譜)’로 착각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러다 보니 별 심각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 심지어 아무 위기 없이 잘 살고 있는 커플 이야기에도 순애보라는 표현이 남용되고 있다. 이재용 감독의 영화 순애보(純愛譜)’도 있지만,  한자 표기를 순()으로 쓴 경우의 90%는 별 생각 없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P.S. 물론 원작 소설 순애보에서도 문선이 죽을 각오를 하긴 하지만 죽지는 않음.

 

 

클리셰 [명사]

 

: cliché(불어). 본래 진부한 문구 혹은 상투적인 표현을 뜻하는 문학용어.

 

전통적으로 클리셰라는 말은 당연히 좋은 뜻이 아니다. 드라마로 치자면 재벌 2세인 기획실장님과 간신히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가난한 캔디가 회사 복도에서 부딪혔을 때 실장님이 아무 사과 없이 지나가려 하고, ‘캔디회장 아들이면 이래도 되는 거에요!”하고 화를 내며 실장님의 따귀를 때리는 뭐 그런 진행을 말한다.

 

하지만 최근 클리셰가 변명이 되기도 한다. 2013년 하반기 표절 시비에 몰린 수많은 가요들에 대해 작곡자들이 그건 장르적 클리셰일 뿐이라고 항변하면서, 클리셰라는 말이 대중에게 익숙해졌다.

 

장르적 클리셰라는 것은 일단 위에서 말한 일반적인 클리셰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상투적인 표현(음악의 경우 곡의 진행)이라는 점은 맞지만, ‘그것이 없으면 그 장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인 특징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왕과 기사, 엘프와 용이 등장하는 것은 판타지 장르의 클리셰다.

 

하지만 판타지라는 장르에 무지한 사람은 드래곤 라자를 읽고 이건 반지의 제왕의 표절이잖아!”하고 흥분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도 이런 주장은 낯설지 않다. 90년대 그룹 넥스트를 이끌며 수차례 표절 시비에 오른 신해철은 댄스 음악을 모르는 사람은 오오, 이 듀스라는 녀석들은 서태지의 표절이구나!’ 할 수 있다며 특정 장르에 대한 무지가 무분별한 표절 논란을 확산시킨다고 일침을 가한 바 있다.

 

문제는 이 장르적 클리셰 이론도 이제 더 이상 대중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 특정 리듬이나 멜로디, 곡의 진행은 부분적으로 클리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똑 같은 위치에 똑 같은 악기나 코러스를 배치한다든가, 왜 하필 특정 장르를 선택했는가와 같은 문제에 답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일부 대중은 또 많은 작곡가들이 이건 장르적 클리셰이므로 표절이라 볼 수 없다고 코멘트하는 것 자체가 동업자끼리의 의리 같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 법에서 표절 여부는 원저작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청구해야 법정이 판단할 수 있는 민법상의 개념이므로, 결국 그 곡의 표절 여부는 바로 전문가들이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러니 대중이 할 수 있는 것은 맨 처음 문제가 된 곡에 대한 고발’, 그리고 실제 판결 결과와 상관 없이 자신이 의심한 작곡가에 대한 선택적 거부 정도인 셈이다.

 

비트코인 [명사]

 

: Bitcoin. 2009년부터 세계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사이버 화폐의 이름

 

전 세계 모든 국가는 자국 영토 내에서 유통될 수 있는 화폐를 법으로 규정하고, 이 화폐 유통 질서에 도전하는 시도를 엄벌을 통해 규제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데, 정보화사회가 발달하다 보니 온라인에선 사이버머니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 오래다.

 

2013년 하반기 들어 갑자기 한국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한 비트코인은 사이버머니로 출발했지만 현실 사회에서의 통용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물론 온라인 게임 안에서 사용되는 게임머니나 아이템도 실제 화폐와 교환되는 경우가 꽤 많이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마트에 가서 디아블로3의 골드를 줄 테니 컵라면을 달라고 하면 어지간해선 통하지 않는다(물론 같은 길드원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싸이월드 도토리나 네이버 해피빈과도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도 서서히 오프라인에서 비트코인을 이용한 상거래가 가능해지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비트코인의 최대 보유국이 중국이며, 그 이유는 중국이 비트코인을 이용해 미국 주도의 세계 통화질서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음모설도 등장했다. 비트코인을 만들어 낸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인물의 정체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개인인지 집단인지도 불분명하다)이라 음모설의 등장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대가 사이버 머니의 탄생을 요구한다면 어차피 보통 사람들로선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 전 세계 온라인 쇼핑몰을 누비는 쇼핑 마니아들에겐 환전이나 환율을 따지지 않는 비트코인이 보편화되는 세상이 천국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철저하게 무기명이고 거래 흔적도 남지 않는 비트코인이 현재대로 발전할 경우 가장 좋아할 사람들은 마약 카르텔의 보스들이나 국제 무기상, 그리고 뇌물을 좋아하는 전 세계의 부패한 공직자들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미드 '왕좌의 게임'에도 빠지지 않는 환관 역할.

내시 [명사]

 

 

: 內侍. 왕의 주위에서 시중을 들던 사람.

 

 

오늘날에 와서 내시라는 말은 흔히 환관(宦官)과 사실상의 동의어로 쓰이지만, 이 말은 처음부터 같은 뜻이 아니었다. ‘성기능을 상실하고 궁에서 일하는 남성을 가리키는 말은 엄밀히 말해 환관이다. 이에 비해 내시는 그저 권력자의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사람정도의 의미를 갖는 말이었다. 한국의 경우 14세기 이전, 고려 중엽까지 임금의 직속 비서 역할을 하던 엘리트 문관들을 내시라고 불렀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 ‘삼국지연의에도 조조의 사촌인 조인이 조조의 침전에 들어가려 하자 허저가 이를 막는 대목에 이 말이 나온다. “내가 조조의 친척인 것을 모르느냐고 꾸짖는 조인에게 허저는 나는 비록 친척이 아니지만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이고(許褚雖疏,現充內侍), 주공이 취해 누워 있으니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구절이 있다. 혹시 이 내용을 보고 허저가 고자였다고 착각한 독자도 있을 수 있겠다.

 

유사 이래 아시아권의 다양한 왕정 체제에는 복수의 여인들이 거주하는 후궁과 이를 관리하기 위한 거세된 남성의 역할이 상시 존재했다. 최고 통치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므로 환관과 권력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특히 중국 명대 후기에는 환관들이 실질적인 재상 역할을 했으나 부패와 타락이 심해 당대의 석학 황종희가 명이대방록에서 환관들은 독약이나 맹수와 같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국왕의 시중 등 단순 업무만 처리하던 환관들은 고려 의종 이후 서서히 내시들의 영역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공민왕 5(1356) 내시부를 설치하면서 내시=환관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갔다. 고려 말에는 원의 영향으로 환관의 숫자도 많아졌고 특히 원의 조정에 진출한 고려인 환관들은 본국 내정에 간섭하며 세도가 행세를 했다.

 

조선 왕조는 내시부 체제를 계승해 1894년 갑오경장으로 내시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유지됐다. 하지만 고려말 환관들의 악몽 탓인지 내시들의 권력 장악에 대한 견제를 엄격하게 유지, 간혹 부를 축적한 내시들은 있어도 권력을 휘두른 강한 내시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2013년 이후 최고 통치자의 참모들이 지나치게 저자세로 처신, 소신 있는 행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내시 정치라고 비꼬는 용례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고위공직자는 내시도 아니고, 울지도 않았다고 발끈하기도 했다.

 

중국의 역대 환관들이 모두 후한시대의 십상시처럼 나라를 어지럽힌 간신들이었던 것은 아니다. 환관 가운데서도 종이를 발명한 후한 때의 채륜이나 대함대를 거느리고 동남아시아 일대를 경략한 명초의 정화 같은 큰 인물들이 나왔다.

 

 

 

또 조선 세조 때부터 4대를 섬긴 김처선은 사대부들이 숨 죽이고 침묵할 때 연산군의 패악무도함을 직간하다가 팔다리가 잘려 죽은 의인이었다. 여기다 함부로 조선시대 내시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말을 하면 김처선의 영혼이 저승에서도 편치 못할 듯 하다.

 

P.S. 오만석 주연 드라마 '왕과 나'에서 오만석의 역할이 바로 김처선이었습니다. 연산군을 다룬 사극에선 김처선이 빠질 수가 없죠. 최근 '인수대비'에서는 맹상훈이 이 역할이었습니다.

 

고자는 한자로 鼓子라고 씁니다. 물론 한자에 본래 그런 뜻이 없으니 '고자'는 순 우리말이고, 그걸 한자로 맞춘 게 鼓子일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중국에서는 고자를 엄인()이라고 부릅니다.

 

 

드립치다 [동사]

 

: 특정 주제나 특정 형식으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다

 

인터넷 용어 드립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설이 있으나, 가장 널리 통용되는 것은 라틴어의 즉흥 대사를 뜻하는 약어 애드리브(ad lib)에서 온 것이라는 설이다.

 

즉 누군가 엄청나게 형편없거나 어처구니없는 주장으로 위기를 넘기려 했을 때, 누군가 개드립(+애드리브) 치지 말라고 면박을 주었고, 이것이 더 단축되면서 그냥 드립으로 축소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드립의 예들을 보면 그때 그때 순발력을 이용해 발생하는 애드리브의 범주에 드는 것 보다는 나름 여러 날 고민해서 만들어 낸 듯한 경우가 많다. 특히 궤변에 가까운 논리를 공격할 때 ‘X드립 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편 드립의 어원이 드리블(dribble)이라는 견해도 있다. 축구나 농구에서 공을 몰 듯, 어떤 주장을 자신만의 생각으로 어이없이 몰고 가는 경우를 보고 비웃을 때 드립(드리블) 친다고 한 것이 시작이라는 것이다. 방송/연극/영화계에서 흔히 대사를 친다’, 애드리브 역시 친다고 표현하듯 체육계에서는 드리블도 친다고 말한다. 여기 비쳐 볼 때 충분히 그랬을 법한 표현이다.

 

드립치다라는 동사에서 출발한 드립은 접미어로 활용되며 ‘~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수작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아예 드립이라는 명사가 독자적으로 사용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구세대가 사용하는 구라라는 말의 대체어로 자리잡아 가는 느낌이다. 개그맨 김구라의 데뷔가 한 10년쯤 늦었으면 김드립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728x90

[그린라이트] [싱글턴] [감성주점] [FA로이드] [예거밤] [아구아밤]

 

밀린 문화어 사전에 대한 묶음 특집입니다.

 

뭐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반성의 뜻이기도... 아무튼 별다른 설명 없이 넘어갑니다.

 

 

 

 

감성주점 [명사]

 

: 청춘 남녀가 짝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찾는 유흥업소

 

마땅히 정해진 짝이 없는 청춘 남녀가 다양한 핑계로 술자리에서 즉석 짝짓기를 해 온 것은 굳이 기원을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행위다. 그리고 각 시대에 따라 이 목적을 수행하는데 최적화된 업소들이 등장해 왔다.

 

대부분의 경우 술자리에서의 즉석 만남은 남자 손님들이 여자 손님들에게 먼저 다양한 방법으로 매력을 발산하는 동시에 관심을 전달하고, 여자 손님들이 이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이뤄진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21세기 초까지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업소에 고용된 직원들이 여자 손님들을 남자 손님들에게 데려가는 부킹이라는 방식이 유행했던 것이 주목할 만한 예외일 뿐이다. 정상적인 경우 1980년대에는 디스코텍, 90년대에는 락카페, 2000년대 이후에는 클럽이 만남의 장소로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보다 노골적으로 짝짓기가 목적임을 적시한 업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 등장한 부킹포차류의 주점들이 대표적이다. ‘부킹포차란 이름대로 외형상으로는 대형화된 일반 실내 포장마차와 차이가 없으나 손님이 20대 남녀로 제한된다는 점, 거의 모든 고객들이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의 동성끼리로만 구성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입장 자체가 이성으로부터의 접근을 바란다는 의사 표현인 것이다.

 

2013년 현재 번창하고 있는 감성주점은 이런 부킹포차의 형식이 확대 발전된 형태로 볼 수 있다. 외형상으론 일반주점과 큰 차이가 없으나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개중에는 아예 DJ박스와 스테이지를 갖춘 곳도 있다. 짝짓기가 주 목적이되 대부분의 업소에서 질서 유지를 위해 남자 손님들이 여자 손님들에게 직접 수작을 건네기 보다는 종업원을 거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일부 업소에서는 남자 손님들이 여자 손님들에게 의사 표현을 할 때 간단히 사연을 쓴 카드를 이용하고 있고, 여자 손님들은 카드를 받은 뒤 승낙/거절 여부를 결정한다. 이때 카드의 수에 따라 여자 손님들은 술값을 할인받을 수도 있는데 이는 외모가 뛰어난 여자 손님들을 대량 확보하기 위한 업소 측의 프로모션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2013 10월 정부 당국에서 감성주점을 변태 영업으로 규정하고 단속에 나섰다. 손님들이 업장 내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려면 유흥주점 허가를 받아야 하나 대부분의 감성주점들이 세제 면에서 유리한 일반 음식점 허가를 받은 상태에서 변형 영업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단속이 이미 젊은 층에 만연한 감성주점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궁금하다.

 

 

 

 

FA로이드 [명사]

 

: FA를 앞둔 선수들이 평소보다 뛰어난 활약으로 몸값을 올리는 것을 약물 효과에 빗댄 것

 

프로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몸값 폭발의 기회가 있다. 바로 FA(Free Agent) 제도에 따른 것이다. 야구의 예를 들면, 한 구단에서 9년간 매시즌 경기수의 3분의 2 이상을 출전한 타자는 FA자격을 획득, 원 소속팀을 비롯해 나머지 모든 구단과 새로 계약할 수 있다. 물론 입단 직후부터 주전 자리를 확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므로 FA 자격을 획득하는 데에는 대개 10년 이상이 걸린다.

 

FA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FA 자격을 갖게 되는 시즌, 9번째 주전 시즌에 확실한 성적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 해에는 이를 악물고 초인적인 성적을 내기 마련인데 이를 가리켜 ‘FA로이드라도 맞은 거냐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뒷부분의 로이드는 만국 공통의 스포츠 금지 약물인 아나볼린 안드로제닉 스테로이드(anabolic-androgenic steroid, AAS)에서 따 온 것.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남자 100m 금메달리스트 벤 존슨이 메달을 박탈당한 것이나 미국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홈런(762)의 배리 본즈가 명예의 전당에 가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스테로이드 사용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 시즌 종료 후 FA자격을 획득하는 프로야구 박한이(삼성)와 최준석(두산)은 올시즌 내내 그리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이 경우 적절한 표현은 “FA로이드 불발”). 하지만 이들은 팀이 한국시리즈에 오르자 맹타를 터뜨렸고, 결국 최종 승자 삼성의 박한이가 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두산이 이겼다면 최준석이 만장일치 MVP를 받았을 상황. 이들은 조용한 시즌을 보내다 포스트시즌에 FA로이드를 폭발시킨 드문 경우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싱글턴 [명사]

 

: singleton. 독신. 1인가구

 

본래 수학에서 단위집합(원소가 단 한 개인 집합, unit set)을 가리키는 용어. 2013년 들어 1인 가구 독신자를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영국 신문 가디언에 따르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때문. 어디 가서 별 실속 없는 노처녀라는 점을 지적 받고 브리짓이 분통을 터뜨리자 친구 살롯이 너도 내가 결혼하지 않은 건 싱글턴이기 때문이야, 이 잘난 체 하고, 겉늙은데다 편협하기 짝이 없는 병신아라고 맞받아 쳤어야지("You should have said 'I'm not married because I'm a Singleton, you smug, prematurely aging, narrow-minded morons,' Shazzer ranted.)”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싱글턴이란 말은 독신자가 스스로를 다소 높여 표현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

 

국내에선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책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이후 널리 퍼졌다. 한국어로 번역할 때 싱글은 독신자, ‘싱글턴독신 가구(1인 가구)’로 번역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이건 독신인 성인이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 한국 실정에서나 의미 있는 이야기고, 영미인들에겐 사실상 싱글=싱글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글턴’ 이라는 말이 쓰이게 된 건 왠지 좀 격이 높아진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싱글을 싱글턴이라고 부른다고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고, 따라서 이런 표현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무한도전에도 출연했던 영국 배우 데이지 도노반은 브리짓 존스 시리즈가 우리에게 남긴 거라곤 싱글턴이라는 새로운 단어 하나 뿐인데, 그건 정말 최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린 라이트 [명사]

 

: Green Light. 청신호. 연애 관계에서 상대에게 대시해도 좋다고 보내는 OK 사인.

 

한국 어린이들은 횡단보도에서 파란 불에 길을 건너지만 미국 어린이들은 녹색 불에 길을 건넌다는 우스개가 있었다. 사실은 한국 신호등도 잘 보면 녹색 유리가 끼워져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청신호라고 부르는 이유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야구에서는 언제든 자의로 판단해 2루로 도루할 자격이 주어진 선수를 가리키도 한다.

 

 

2013년 하반기부터 JTBC 예능 프로그램 마녀사냥에서는 그린라이트를 켜라라는 코너가 등장하면서 이 용어가 젊은 층 사이에서 연애 용어로 확산되고 있다. 연애 초기 단계에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면, 그 관심을 알아챈 여자가 적극적인 호응의 뜻으로 보내는 사인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한 야구 전문 사이트가 이런 용법의 원조라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영미권에서는 이 말이 오래 전부터 허가(permission)’와 동의어로 사용됐고, 남녀 관계에서도 ‘OK 사인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돼 왔다. 비욘세 와 존 레전드는 모두 ‘Green Light’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데 두 곡 모두 내가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청신호를 보내 줘라는 내용이다.

 

 

 

 

밤 칵테일 [명사]

 

: Bomb Cocktail. 맥주 대신 에너지 드링크를 사용한 신세대 폭탄주.

 

1980년대부터 아저씨들은 맥주잔에 위스키가 담긴 샷 글라스를 빠뜨리며 밤을 지샜다. 세월이 흘러 맥주와 위스키의 황금비율을 따지던 세대는 황혼을 맞았고 21세기 클럽가에선 독주와 에너지드링크를 배합한 신종 폭탄주가 전성기를 맞았다.

 

2013년 현재는 독일산 약초 리큐르인 예거마이스터가 주 재료인 예거밤과 코카 잎으로 숙성시킨 네덜란드산 리큐르 아구아(Agwa)를 이용한 아구아밤이 대세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클럽에서 각광받고 있는 칵테일들인데, 끝에 (bomb)’이 붙어 폭탄주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겐 더욱 친숙하게 느껴진다.

 

카페인 함량이 높은 에너지 드링크와 알코올의 결합은 술을 더 빨리 취하게 하는 동시에 잠을 쫓는 각성 효과를 발휘해 밤새 놀아 보세용 음료로 안성맞춤이다. 물론 단시간에 혈압을 올려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가 있는데, 술이라는 건 본래 산삼 녹용을 섞어도 많이 마시면 몸에 좋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작작 마셔라.

 

 

 

 

일각에선 밤 칵테일의 유행에 대해 외래 클럽 문화가 한국의 전통적인 폭탄주 문화를 망가뜨렸다고 한탄하기도 하는데, 몰라서 하는 얘기다. 맥주+위스키 폭탄주는 이미 미국에선 19세기부터 보일러메이커(boilermaker, 위 사진)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왔다. 가난한 보일러공들이 빨리 취하기 위해 위스키를 원샷하고 맥주로 입가심을 한 것이 유래라는데, 지금은 맥주 잔에 위스키를 빠뜨려 먹는 제조법까지 한국의 원형 폭탄주와 똑같다.

 

 

 

 

 

728x90

[히든싱어] 시즌2를 마감하는 왕중왕전 1,2부가 화려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히든싱어' 방송 이후 처음으로 원조 가수를 앞선 두 명의 도전자들, 신승훈 편의 장진호와 조성모편의 임성현을 포함해 총 13명의 도전자가 치열한 경쟁을 치렀습니다.

 

자신들의 우상과 맞붙어 마지막까지 각축전을 벌였던 모창 능력자들은 한동안 쉬면서 축적한 기량이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첫 방송 출연 당시에는 아무래도 100%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겠지만, 두번째 도전인 왕중왕전에서는 활짝 개화한 듯한 도전자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습니다. 비록 우승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아이유 모창자였던 사년의 열창과 웃음은 많은 남자 시청자들을 열광시켰죠.^

 

아무튼 이들의 기량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연출자 조승욱 PD까지 경악하게 했던, 예상을 뛰어넘는 대접전 끝에 '논산가는 조성모' 임성현, '용접공 임창정' 조현민, 그리고 '사랑해 휘성' 김진호가 최종 결선에 진출했습니다. 이들은 오늘부터 시작되는 국민투표 결과와 25일 생방송을 통해 최종 우승자를 가리게 됩니다. 

 

 

 

왼쪽부터 조현민, 임성현, 김진호.

 

혹시 방송을 못 보신 분들이 꼭 보셔야 할 세 워너비들의 노래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온 국민의 관심사'라고 부르는 것은 좀 낯간지럽지만, 아무튼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이 두 시즌을 방송하면서, '모창'이라는 장르에 대한 국민의 시선을 바꿔 놓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지난 12일 57세로 작고한 가수 김갑순씨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바로 '너훈아'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히든싱어'가 처음 방송될 때, 많은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이 그저 기존의 '스타킹'이나 '묘기대행진' 처럼 신기한 기술의 하나로 모창능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히든싱어'야 말로 진정한 트리뷰트 프로그램, 즉 원조 가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에 쓴 글입니다. "'히든싱어', 감동은 어디서 올까?"  http://fivecard.joins.com/1118 )

 

 

 

 

방송이 진행될수록, 모창 도전자들의 사연이 공개되면 공개될수록 '히든싱어'에 출연하는 도전자들의 출발점은 모두 '지극한 팬심'이었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위 사진의 조홍경 원장의 지도가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영혼 없는 연습만으로 그렇게 똑같이 부르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수영이나 백지영, 주현미 편에 출연했던 도전자들이 가수와 함께 눈물을 흘린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도전자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에서 그 가수들의 노래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했는지를 털어놓고, 가수들은 가수들대로 자신들이 불러 온 노래들이 어딘가에서,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그렇게 큰 의미를 주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수라는 직업에는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부와 명예는 더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면 자신의 노래에 진정으로 공감해 주는 팬들이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천만장의 팬레터와 문자 속에 파묻혀 있어도, 이렇게 팬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다 못해 목소리부터 몸짓까지 똑같이 흉내낼 정도인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그들에게도 대단한 행운인 셈입니다.

 

 

 

사실 '너훈아' 김갑순씨의 출발점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나훈아라는 거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더욱 더 열심히 그의 노래를 연습하게 되고, 남들도 인정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고, 그리고 나선 아예 그의 그림자가 되는 인생을 선택한 것이죠.

 

'모창 가수'의 나쁜 예로 가수 박상민을 사칭하며 돈벌이를 했던 임모씨가 가끔 거론됩니다. 하지만 이 임모씨는 스스로 '박상민 행세'를 했기 때문에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반면 너훈아를 비롯한 대다수의 모창 가수들은 스스로를 '이미테이션 가수'라고 부르며, 가끔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들이 선택한 애정과 추앙의 대상에게 자신의 인생을 기댄 셈입니다.

 

'히든싱어' 출연자들 가운데 너훈아 김갑순씨처럼 온 인생을 이미테이션 가수로 활동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뮤지컬 김광석' 최승열처럼 김광석과 닮은 목소리 덕분에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주연으로 활동하게 된 경우를 보듯, 이들이 모창한 기존 가수의 삶과 활동은 이들의 이후 삶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18일 방송된 '히든싱어2' 왕중왕전에서 '사랑해 휘성' 김진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처음 출연했을 때, '단 하루만이라도 휘성으로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왕중왕전 무대까지 서고 나니..."

 

누구나 스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모창자들은 자신의 우상과 최대한 비슷해지려 노력하면서, 그 가수의 성공을 보면서 자신의 꿈이 이뤄지는 듯한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 '히든싱어' 시즌1과 시즌2를 합해 가장 인상적인 무대를 꼽자면 지난해 시즌1의 왕중왕전 출연자 전원이 함께 부른 '거위의 꿈'을 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김종서' 이현학과 '윤민수' 김성욱의 활약이 눈부셨죠.^^

 

 

 

 

 

물론 올해의 '마법의 성'도 좋았습니다.

 

 

 

이렇게 즐거움과 웃음이 가득한 히든싱어 왕중왕전의 잔치를 보면서, 문득 김갑순씨의 인생을 생각했습니다. 때로 '짝퉁'이라는 말로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기도 했던 이미테이션 가수 너훈아. 그의 활동 역시 나훈아에 대한 헌정이었다는 점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도 '히든싱어'의 힘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인생을 돌아보는 기사. "너훈아로 20년, 그는 마지막까지 김갑순을 꿈꿨다"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01/18/13259846.html?cloc=olink|article|default

 

 

 

25일 방송을 마치는 '히든싱어2'. 2014년 하반기 방송될 '히든싱어3' 에서는 또 어떤 가수들과 어떤 모창자들이 또 다른 사연과 놀라운 기량으로 시청자들을 두근거리게 할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P.S. 물론 팬심이 팬심으로만 꼭 끝나야 하는 건 아니죠. 어제 놀라운 가창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 샤넌. 언젠가는 아이유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가진 가수로 우뚝 서는 날을 보고 싶더군요.

 

 

아래 손가락 모양을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fivecard5를 팔로하시면 새글 소식을 빨리 알 수 있습니다.

 

728x90

알함브라 방문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몇달 전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그냥 가서 표를 사자면 대략 낭패.

 

티켓마스터 스페인 홈페이지 http://www.ticketmaster.es/ 를 방문해 따지지 말고 메뉴 맨 윗줄의 'Family and More'를 클릭한다. 그럼 이런 화면이 뜬다.

 

 

큼지막하게 La Alhambra 가 보인다. 클릭하고 들어가면 예매 페이지가 나타난다.

 

주의사항 페이지에는 반드시 읽어 둬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 가령 10월25일의 티켓을 샀다면 그 날짜에는 오전 오후 중 자신이 선택한 시간엔 언제든 궁전 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스르 궁전 지역만큼은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 시간이 아니면 나스르 궁전은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예매때 확인하는 시간은 '나스르 궁전의 입장 시간'임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이걸 혼동하는 사람이 꽤 많은데, 요약해 보자.

 

10월25일 표를 샀는데 나스르 궁전 입장 시간을 오후 4시로 정했다 치자. 해당일의 알함브라 궁전의 오후 개장 시간은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그럼 오후 2시에 가든 3시에 가든, 나스르 궁전 이외의 지역을 먼저 마음껏 구경하고 오후 4시까지 나스르 궁전 앞에 가서 줄을 서서 입장하면 된다. 반대로 오전 10시 나스르 궁전 입장 조건으로 티켓을 샀다면, 오전 8시30분~오후2시 사이엔 마음대로 궁전 여기저기를 봐도 좋다. 단 나스르 궁전만큼은 오전 10시가 아니면 입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주의사항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예약할 때 오후 4시라니까 오후4시에 가서 나스르 궁전만 보고, 나머지는 시간이 없어서 못 보는 분들도 있다. 이런 실수는 하지 않기 바란다.

 

아울러 하절기와 동절기 사이에도 꽤 차이가 있다. 3월15일부터 10월14일까지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개장하지만 그 이후 기간에는 오후 6시까지만 개장한다. 이밖에 몇가지 야간 개장은 동절기에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이 점이 사실 매우 아쉬웠다. 애당초 처음 알함브라를 꼭 보러 가겠다고 마음먹은게 바로 그 야간 개장 때 찍은 사진 때문이었기 때문에.

 

기타 알함브라 예약 요령http://blog.naver.com/enehye85?Redirect=Log&logNo=188319175 이 블로그 해설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위 지도를 보면 아래쪽의 긴 고구마가 알함브라, 그리고 오른쪽 위의 돌도끼같은 모양이 헤네랄리페 Generalife 다.

 

헤네랄리페는 흔히 알함브라의 부속 여름 별궁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다. 방문자 가운데는 이곳이 정작 알함브라 본편보다 인상적이었다는 분들도 꽤 있는데, 사실 그 말에 은근히 동의하게 된다. 아무튼 헤네랄리페가 완공된 것은 14세기. 그리고 그라나다가 기독교도의 손에 넘어간 뒤에는 예배당으로 쓰였다.

 

저 알함브라 표지판이 있는 입장 관리소는 딱 한군데 있다. 미리 예매한 티겟은 이 자리에서 등록을 해야 궁전 구역 안으로 입장할 수 있다. 현장에서 입장권을 바로 사서 들어가시는 분도 있다는데, 가을 이후엔 어떨지 모르지만 봄 여름엔 새벽부터 와서 줄을 서야 간신히 그 날짜의 입장권을 살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러니 딴 생각 말고, 저 위에 써 있는대로 반드시 입장권을 예매하고 가시기 바란다.

 

 

 

입장관리소를 통과하면 거대한 사이프러스 소나무 사이로 산책로가 나타난다. 조경이 멋지다.

 

 

 

하이 시즌이 아닌 10월말이지만 어쨌든 관광객은 우글우글.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조각에서 보곤 정말 저렇게 생긴 나무가 있을까 했는데, 이 지역에선 지천으로 깔려 있다. 신기함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멋지다.

 

 

 

나무 사이로 숲 건너편, 알함브라의 한 자락이 보이고 저 멀리 구시가의 산동네도 언뜻 언뜻 보인다. 아름답다.

 

그라나다에 가 보면 알함브라야말로 천혜의 요새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코르도바는 1236년, 세비야는 1248년 함락되었지만 그라나다는 건재했다.

 

 

 

본격적인 헤네랄리페 지역의 입구. 조경이 정교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보면 원근감이 없어져서 별 것 없어 보이지만 왼쪽은 알함브라의 서쪽 끝자락인 알카자르. 오른쪽은 그 건너편의 오래된 산동네다. 탁 트인 전망에서 보면 아 소리가 나온다.

 

 

 

 

 

헤네랄리페 입구의 계단식 정원. 간이 공연장으로도 쓸 수 있을 듯. 생김새가 독특하다.

(실제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는 제보가 있었다.^^)

 

대체 어떻게 깎았을까 싶은 나무 문을 지나면

 

 

전형적인 스페인/아랍식 정원의 정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알함브라와 헤네랄리페의 상징은 물이다. 산 위에 요새를 건설하는 일은 건물만 지어서 될 일은 아니다. 바위산 위에 건물을 짓고 병력과 민간인이 거주하게 하려면 풍부한 수원이 있어야 한다. 일단 알함브라는 그 조건을 확실히 갖추고 있다.

 

그리고 특히나 알함브라는 안달루시아의 혹독한 직사광선과 더위를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모든 조경에서 물의 활용을 극대화했다. 가는 곳마다 분수와 수로가 조경의 필수적인 요소다. 여긴 그냥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도 매혹적이다.

 

 

 

 

 

이런 그림 같은 정원 사이로

 

 

이렇게 한시간 두시간씩 앉아 있어도 전혀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도피 공간이 있다.

 

 

어릴 적 한창 꿀을 빨았던 사루비아가 만발해 있는 정경이 반갑다.

 

샐비어(Salvia)는 뭔 놈의 샐비어. 사루비아는 사루비아라고 써야 제 맛이다. 꽃 꽁무니의 달콤한 꿀 방울도.

 

 

 

 

 

어디에나 깔려 있는 라임 나무.

 

처음에는 몇개 따 볼까도 생각했는데 지나다니다 보면 너무 흔해서 아무도 안 건드리는 느낌이다. 나중에 세비야로 넘어가면, 아예 가로수가 라임나무다. 문득 은행나무가 우거진 서울 거리의 가을 냄새가 생각났다.^

 

가로수가 라임이면 어느 철에는 도시에서도 라임 냄새가 날까?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정원이다.

 

정원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면 헤네랄리페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 관개수로의 정원 Patio de la Acequia 에 도착한다.

 

 

 

 

헤네랄리페를 상징하는 바로 이 한 컷.

 

'관개수로의 정원'이란 번역 대신 그냥 '아세퀴아의 정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실 오늘날의 헤네랄리페는 거의 유적에 가깝다. 기독교도들에 의해 파괴되기 전의 헤네랄리페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지금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1670년 경에 완공된 것으로 추정되는 헤네랄리페는 기독교 점령 시대에 예배당으로 개조됐다.

 

지금 남아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파티오 데 아세퀴아 정도. 얼마나 더 화려하고, 얼마나 더 정교했을까.

 

 

 

반대쪽에서 바라보면 이렇다.

 

 

 

난간 너머로 건너편 알함브라를 바라보는 맛도 최고.

 

 

 

 

잠시 후 알함브라에서 본격적으로 보게 되지만, 건물의 정교한 장식이 지금부터 감탄을 자아낸다.

 

 

 

 

 

 

 

 

 

 

관개수로의 정원에서 한 단계만 올라 서면 또 하나의 보물같은 정원이 나타난다.

 

 

 

 

 

이른바 '사이프러스 정원 Patio de los Cipreses'.

 

 

 

 

 

 

꼭대기의 사자상을 한번 잡아당겨 봤다. 벽돌로 된 아치와 기와를 얹은 지붕은 언뜻 친숙하게 느껴진다. 창덕궁 어느 한 구석에도 비슷한 색감의 벽돌 문을 발견할 수 있으니.

 

구불구불 돌아 계단을 올라가면 사이프러스 정원을 좀 높은 곳에서 바라볼 수 있다.

 

 

 

 

 

정교하고 아름답다. 실로 왕이 거닐었을 법한 정원이다.

 

 

난간으로 물이 흐르게 한 유수 계단의 아이디어. 꼴꼴꼴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흥취를 더한다.

 

헤네랄리페의 많은 건물들과 구조물들은 모두 '여름 스페인의 태양'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어떻게 해서든 태양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피해 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그러자니 그 시절에 가능한 냉각제는 '흐르는 물'과 '지나가는 바람', 그리고 '가능한 한 여러 곳의 그늘' 외에는 없었을 듯.

 

 

 

계단 위에 사려깊게 건설된 햇빛 가리개. 안달루시아의 여름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바로본 관개수로의 정원.

 

 

규모가 그리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헤네랄리페의 정원은 '이래서 사람들이 알함브라 알함브라 하는구나' 하고 수긍이 가게 하는, 정교하고도 품위있는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이렇게 한껏 기대를 높인 상태에서 알함브라로 넘어가게 되는데...

 

 

 

 

728x90

7,8년 전인 듯 합니다. 우연히 밤에 택시를 탔는데 일상적인 강원도 사투리보다 더 강한 억양의 사투리를 쓰는 기사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려서부터 많이 듣던 사투리였기에 '이북 쪽이신가봅니다?'했더니 함경도 쪽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저보고 어떻게 아느냐길래 '저도 함경도 쪽'이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는 겁니다.

 

알고 보니 그분이 탈북자. 그런데 그 무렵만 해도 탈북자가 택시 운전을 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놀랍기도 하고, 직업적 본능(?)도 살아나고 해서 이것 저것 대화를 나누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하시더군요.

 

"부모님한테 효도하세요. 그때 피난 내려와서 낳아 주셔서 감사하다고. 여기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러게요. 하긴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탈북자가 등장하는 영화는 이미 한 장르로 자리잡을 만큼 커졌습니다. 물론 탈북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다룬 차인표 주연의 '크로싱' 같은 영화 보다는 '북한 남성=그다지 근육질은 아니지만 마르고 탄탄한 특수부대 요원'이란 다소 비정상적인 고정관념을 확대시키는 영화가 지나치게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게 현실이죠. 아무튼 그중 많은 기대를 모았던 영화가 '용의자'입니다.

 

먼저 줄거리.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탈북자 지동철(공유). 다시 운전기사로 일해 달라는 박회장(송재호)의 청을 거절한 날 밤, 동철은 박회장을 살해하러 저택에 침입한 괴한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격투를 벌이지만 박회장은 이미 치명상을 입고 동철에게 유언을 남긴 뒤 숨을 거둡니다.

 

영화의 흐름상 당연히 동철이 범인으로 지목되고, 공수부대 교관 민대령(박희순)은 왕년의 정보국 동료였던 김실장(조성하)의 호출을 받아 지동철 수색에 나섭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민대령은 자신 외에도 동철을 뒤쫓는 팀이 있고,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릇된 오해를 받고 추격당하는 특수 요원'이라는 주제에는 누구나 본 시리즈를 떠올리겠지만 이런 스타일의 영화는 수백편, 수천편을 꼽아도 될 정도로 많습니다. 특히나 영화 뿐만 아니라 '24' 같은 드라마는 비슷한 플롯에 따라 수십편의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찍어내 이 장르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동철을 연기하는 공유가 음식이라곤 단 한번도 입에 대지 않는 것은 어쩐지 이 영화가 '본' 시리즈보다는 '24'쪽에 오마쥬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언하자면 '24'의 잭 바우어는 매 시즌 드라마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안 먹는 걸로 유명하죠.^^)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터질 지경인 이 영화의 카 액션에는 엄청난 찬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대단한 액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했든 한국 영화에서 이 정도 완성도의 자동차 액션을 보는 건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경찰차를 이용해 경찰차 바리케이드를 돌파하는 신은 강렬하고 인상적입니다. 물리적으로 과연 그런 돌파가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 일단 앞 경찰차가 브레이크만 강하게 밟아도 불가능할 것 같기는 한데 - 아무튼 보기 좋았습니다.

 

 

 

 

반면 몇 차례 등장하는 근접 전투 신은 그동안 수많은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들을 보아 온 탓에 이제 좀 질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특히나 두 명의 격투 상대자가 최대한 몸을 접근시킨 뒤 손날과 팔꿈치로 서로 동시에 공격과 방어를 하며 주위의 장애물들에 몸을 부딪는 '격투 전문가들의 싸움' 장면들은 최근 10년 사이 너무 많은 영화에서 사용돼 이제 좀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다음 세대의 격투 신은 과거처럼 팔과 다리를 화려하게 휘젓는 쪽으로 다시 유행이 옮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영화 '용의자'는 희대의 걸작은 아니지만,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는 영화입니다. 일단 문제점으로 보이는 부분들을 꼽자면, 이야기 자체가 그리 독창적이라고 보기 힘들고, 이야기의 짜임새 또한 그리 정교하지 않습니다. 특히 결말을 앞둔 마지막 30분 정도에선 논리적인 설명을 포기한 듯한 진행이 계속됩니다. 네. 이런 부분들이 '용의자'의 약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그 마지막 30분 동안, 동철과 딸의 생사를 걱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비록 상당 부분 전형적인 흐름을 따르고 있지만, 관객들이 동철의 운명을 충분히 걱정할 수 있도록 하는 감정의 배분이 잘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찌 보면 강인한 인상이지만 근본적으로 선량한 웃음을 갖고 있는 공유라는 연기자의 적절한 캐스팅이 빛을 발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캐스팅만 해 놓고 일이 다 끝난 건 아니죠. 어떻게 그 동철에게 관객의 감정을 집중시키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원신연 감독은 이 부분에서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심각하게 생각해 보면, 생존률 3%라는 북한 최고의 특수부대에서 수없이 생사를 넘나들고, 죽이지 않으면 죽는 나찰의 세계에서 버텨 온 남자가 과연 그렇게 선량한 눈빛과 웃음을 지닐 수 있겠느냐는 회의가 들긴 합니다. 만약 진짜 특수부대 출신 - 자칭 특수부대 말고 진짜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부대 - 을 만나 보신 분들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뭐 어떻겠습니까. 이건 다큐가 아니라 그냥 영화인 걸. 그리고 2004년, 공유의 영화 데뷔작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공유의 오늘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관객이 동철의 안위를 걱정하게 된 이상, 나머지 요소들은 꽤 무시해도 좋습니다. 대략 국정원 차장급의 간부가 분명하지도 않은 트집으로 지상파 방송사 기자를 해직시킬수 있다는 부분, 기자들이 닭처럼 '특종!'이라고 외치며 우왕좌왕하는 부분, 다른 경찰들은 아무도 들어가지 못할 때 항상 혼자 유유히 침투하는 슈퍼 능력자 민대령의 석연찮은 동선 등 이 영화의 플롯에는 좀 무리다 싶은 부분들이 분명 눈에 띕니다.

 

그렇지만 관객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충족시켰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은 슬쩍 묻혀 버립니다. 아마 이 영화를 본 여자분들은 공유의 팬이거나, 아니었더라도 보고 나서 마음 속에 공유를 담아 가게 될 듯 합니다.

 

 

 

 

결론적으로 '용의자'는 뭔가 생각 많이 하지 않고 볼만한 뇌 휴식용 영화를 원하는 분들에게 아주 훌륭한 선택입니다. 상영시간은 매우 짧게 느껴지고, 특히 액션 마니아들에게는 충분한 시각적 포만감을 제공합니다. 공유의 열연이 과연 올 한해, 대작 사극들이 수없이 격돌하는 2014년 남우주연상 레이스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P.S. 거의 첫 장면, 동철과 박회장이 만나는 허름한 식당의 이름이 '봉남집'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당연히 '통미봉남'이 연상되어서였죠. 이밖에도 몇몇 대사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남북관계의 현주소에 대한 꽤 심도 있는 학습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만, 영화상으로 그리 효과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관객이 재미 없어 할 부분은 모두 뺀 결과겠지요.

 

P.S.2. 동철이 만삭의 아내에게 사다 준 물건은 크레파스라는군요. 아울러  언제부터 한국 대북공작원들의 전용차가 VW CC가 된 것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PPL]

 

 

 

P.S.3. 잠시 삼천포로 빠졌다가 다시 본연의 자세로 돌아온 김성균. 역시 반갑더군요.

 

P.S.4. '용의자'에 대한 관객의 만족도를 생각하면, 하정우 주연 '황해'도 좀 결말을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P.S.5. 물론 이런 용의자는 안 나옵니다.

 

 

 

728x90

그라나다에 알함브라 이외의 볼거리가 많다는 분들도 많았는데 어차피 평생 스페인에서 보낼 게 아니라면 선택은 불가피했다. 아무튼 그라나다에서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그것도 아침 일찍 기차에서 내려 좀 휴식을 취하고 나니 대략 오전은 다 지나갔다.

 

남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바로 호텔을 나섰다.

 

 

 

호텔 정문을 나서 바로 왼쪽 산길로 접어들면 이런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앞에서도 말했듯 알함브라는 시내의 가장 높은 고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식당-호텔 등이 몰려 있는 누에바 광장 Plaza Nueva 까지 가려면 약 1Km 정도 산길을 내려가야 한다. 위의 경로와 대략 일치한다.

 

지도가 커서 멀어 보이지만 약 10~15분 정도 산길을 걸어 내려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리막길이란게 매우 중요. 오르막이면 힘들다.)

 

 

 

산 위쪽을 바라보면 알함브라의 성벽 끄트머리가 숲 사이로 슬쩍 슬쩍 보이는 정도.

 

 

 

내리막이라 그렇지 만약 오르막이라면 꽤 힘들게 올라왔을 길이다. 경치는 참 좋지만 내리막으로 활용하는게 좋을 듯.^

 

 

 

시내까지 거의 내려오면 급수탑(?)이 나타난다.

 

산 위에서 내려오는 길 안쪽에선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알함브라 처럼 산 위에 대단위 요새를 구축하려면 물이 필수였을 터. 헤네랄리페를 봐도 알 수 있지만 고지이면서 물이 풍부하다는 점이 알함브라의 가장 핵심적인 입지조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타나는 것이 알함브라의 메인 게이트.

 

 

밖에서 성을 향해 가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이 문을 통과하면 그때부터 알함브라 영역이다.

 

물론 진짜 알함브라 성문은 이 문을 통과해 산길을 1Km 정도 올라가야 나타난다. 

 

 

 

플라멩코 기타의 장인(?)이 운영하는 기타 샵.

 

사진으로는 별 느낌 없지만 이 거리에 있으면 굉장히 운치 있어 보인다.

 

 

 

그리고 계속되는 내리막길. 저 골목 끝으로 보이는 곳이 누에바 광장이다. 위의 기타 샵 처럼 골목 곳곳에는 고전적인 냄새가 풀풀 풍기는 다양한 가게들이 여행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플라멩코의 발상지는 흔히 세비야라고 하지만 스페인의 온 도시에 파에야 가게 없는 곳이 없듯 플라멩코 공연장 없는 곳도 없다.

 

특히 그라나다는 집시들의 거주지역인 동굴 내에서 플라멩코를 공연하는 곳들이 유명하다고 한다. 동굴 플라멩코는 아니지만(그건 구 시가의 알바이신 지구에 있다고 들었다) 어쨌든 플라멩코 공연장이 여기서도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큰길 도착.

 

 

 

이것이 누에바 광장의 상징인 분수대. 그리고 그리 넓지 않은 광장은 이미 각종 레스토랑들이 전진배치해 놓은 식당들의 야외 좌식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목 좋은 곳에 있는 식당의 메뉴는 너무나 관광객용이다.

 

물론 지난번에 말했듯 프라이드 치킨, 햄버그 스테이크 등 관광객들이 고민하지 않고 먹을만한 메뉴 델 디아 의 향연이다. 뭔가 좀 전통 스페인식으로 보이는 음식을 시키려 하면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메뉴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그 음식은 만들 수 없다'고 한다.

 

(메뉴 델 디아가 뭔가 싶은 분: 그란비아, 그리고 메뉴 델 디아란 무엇인가 http://fivecard.joins.com/1181 )

 

 

적당한 식당이 없어 그란비아까지 걸어 내려왔다.

 

 

 

그라나다 그란 비아의 이면 도로. 호텔에서, 그러니까 알함브라 궁전에서 누에바 광장을 거쳐 여기까지 걸어오는 데도 한눈 팔지 않고 걸으면 20분이면 충분하다. 서울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정말 아담한 도시다.

 

 

 

그리고서 바로 모퉁이만 돌아 골목을 빠져나가면 그라나다의 유명 관광 포인트 중 하나인 왕실 예배당 Capilla Real de Granada 이 나타난다. 그라나다라는 도시의 사이즈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라나다에선 모든 것이 가깝다.^^

 

 

 

이렇게 생긴 왕실 예배당. 바로 뒤에 그라나다의 카테드랄이 보인다.

 

거대한 카테드랄 옆에 있으면 소박해 보이지만 그래도 이사벨라 여왕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여왕 자신이 그라나다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는 얘기. 아무래도 콜럼버스의 영광보다는 스페인 땅의 마지막 이슬람 영토였던 그라나다 정복이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혹은 새로 정복한 땅 그라나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자신이 이룩한 국토 통일을 헛되게 하지 말라는, 후손에 대한 경고의 의미일 수도 있을 듯 하다. 아무튼 오후 1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는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카테드랄도 마찬가지. 그래서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골목 안에 식당 하나. '세비야'라는 간판이 눈길을 끈다.

 

왠지 식당 간판의 느낌이 좋아서 바깥에 앉았다. 골목 안에 테이블이 촘촘하게 붙어 있다. 

 

 

 

골목에서 바로 밖으로 나오면 바닥까지 이런 광경이 펼쳐진다.

 

이 집의 대표 메뉴라는 '세비야 샐러드 Ensalada de Sevilla(뭐 이런 이름의 샐러드가 어디 가나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냥 식당 이름을 단 샐러드)'와 기본 파에야 주문. 음료까지 25유로 정도.

 

 

 

작은 감자 샐러드를 먼저 전채 요리처럼 준다. 빠에야가 오래 걸릴 테니 기다리는 동안 맛보란 배려.

 

 

 

이 나라 사람들은 올리브유의 사용이 매우 자연스럽다. 신선한 올리브유와 흩뿌린 치즈,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잘게 썬 하몽이 샐러드 재료들과 어우려져 좋은 맛을 낸다.

 

신선한 야채와 함께 씹히는 짭짤한 하몽이 포인트. 통 올리브가 들어 있지 않은 점은 약간 아쉬웠다.

 

 

 

샐러드를 해치우고도 한참을 더 기다려 오너 셰프(?)가 직접 프라이팬을 들고 나와 보는 앞에서 각각 접시에 덜어 준다.

 

토마토 소스에 조갯살, 닭가슴살, 오징어, 새우, 그리고 각종 야채가 들어 있는 볶음밥이다.

 

 

 

흔히 리조또와 비교되는 것이 빠에야인데, 해외에서 먹은 리조또는 사실 맛있다고 하기가 힘들었다. 기본적인 리조또의 상식은 쌀을 반 정도만 익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리조또는 한국식으로 푹 익혀 조리하지만, 해외에선 그렇지 않다. 특히 이탈리아 본토에서의 리조또는 오독오독 쌀이 씹힐 정도로, 한국 사람의 입장에선 설익은 밥의 수준을 넘어 절반 정도는 생쌀의 느낌이다.

 

왕년에 라스베가스에서 한국인 손님 유치를 위해 식당에 한식을 배치했는데, 이탈리아 출신 주방장에게 밥 하는 법을 '설득'하는게 굉장히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을 많이 붓고 쌀을 완전히 익혀야 한다'는 말을 해도 계속 설익은 밥을 가져오더라는 거다. '더, 더'하고 요구하니 '아니 그럼 그걸 어떻게 먹어'라는 식의 반응이더라는 얘기.

 

반면 빠에야는 몇번 먹어볼 때 한번도 쌀이 설익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즉 한국 복집에서 복 지리를 먹고 난 뒤 남은 국물에 볶아 준, 약간 죽 비슷한 볶음밥의 느낌. 밥 상태가 아니고 쌀 상태에서 조리를 시작하는 것은 리조또와 마찬가지지만 '쌀을 충분히 물에 불려 둔다'는 것이 중요한 레서피라고 한다. 이 쌀의 익힘 정도가 리조또와 빠에야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위 부분은 일천한 제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는 겁니다. 이 구별이 정확한 것인지 검증을 구합니다. '나는 설익은 빠에야도 많이 먹어 봤다' 하는 분,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빠에야가 만족스러워서 아저씨와 사진 한 컷. 잘 먹었어요~~.

 

 

혹시 찾아 가실 분을 위한 주소. 그냥 왕실 예배당 옆구리 골목을 찾으시는게 나을 수도.

 

 

 

 

못 들어가는 왕실 예배당 한 컷.

 

 

카테드랄 옆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색색깔의 상가가 이어진다. 꽤 정감있는 뒷골목이다.

 

 

카테드랄 안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작품화 한 듯 한 관광객용 소품.

 

 

 

 

그라나다는 본래 '석류'라는 뜻이라는데 석류는 아닌 희한한 가로수가 자주 눈에 띈다.

 

 

 

여기가 아까 식당 앞에 있던 왕실 예배당의 정문. 카테드랄과 나란히 붙어 있다.

 

 

고개를 돌려 보면 모습을 드러낸 카테드랄.

 

 

 

아까 그 노란 열매가 익으면 이렇게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여전히 정체 불명.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그라나다의 카테드랄. 세비야보다 작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웅장하다.

 

 

 

그런데 스페인의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거대한 카테드랄을 지어 놓고 건물 앞의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 놓지 않은 것은 그라나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뒤로 물러설 수 있는 데까지 물러서 봐도, 이 정도 뷰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독특한 양식. 짓기 시작할 때에는 그냥 고딕 양식으로 설계했다는데 막상 완상할 때에는 아랍 풍의 느낌이 추가되며 약간 희한한 모습이 됐다. 내부도 상당히 화려하단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쨌든 카테드랄의 개관 시간까지 기다리다간 알함브라를 못 볼 상황.

 

 

 

아프리카 대륙과 가깝다는 것을 상징하듯 아랍풍의 말린 과일과 향초 등을 파는 가게들 천지다.

 

 

 

 

야자수 가로수가 매우 인상적이다.

 

구경을 하자면 두세시간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정적으로 시간이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알함브라로 향했다. 그란 비아 어디에서나 미니버스 32번을 타면 알함브라로 가게 되어 있다. 물론 그라나다처럼 작은 도시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이런 서비스는 매우 마음에 든다.

 

 

728x90

[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라는 제목은 누가 들어도 너무 깁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우사수]라고 불릴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닙니다.

 

2012년 연말부터 2013년 초까지 JTBC에서는 '우리가 결혼할수 있을까' 라는 드라마가 방송됐습니다(당연히 '우결수'라는 제목으로 불렸죠). 이 드라마는 김윤철 PD와 하명희 작가가 호흡을 맞췄고, 결혼을 앞둔 두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결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안과 기대, 좌절과 화해를 그려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성준과 정소민이 사랑스런 젊은 커플로 등장했고, 정소민의 '세상 물정을 다 아는' 닳고 닳은 엄마로 이미숙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약 1년만에 김윤철 PD는 '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라는 또 한편의 여자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우사수'는 MBC TV의 '기황후', KBS 2TV '총리와 나', SBS TV '따뜻한 말한마디' 와 같은 시간에 방송되는 월화드라마입니다. 묘하게도 '우사수'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우결수'를 집필했던 하명희 작가가 '따뜻한 말한마디'의 작가이기도 하다는 게 참 묘한 운명을 느끼게 합니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응답하라 1994' 와 같은 궤도에서 출발합니다. 드라마 한 편을 구상하고 만드는 데 빨라도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니, '응답하라 1994'가 종영하고 바로 이 드라마가 시작되는 건 사실 우연입니다(제작발표회에서도 관련 질문이 나왔는데 김윤철 PD는 안타깝게도 '우사수'의 준비 때문에 '응사'를 한 회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1995년, 다같이 지긋지긋한 고3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세 친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잠시 삽화로 보이는 2002년. 정완(유진)은 만삭의 임산부, 선미(김유미)는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 그리고 지현(최정윤)은 원숙한 주부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20대인 세 친구는 열심히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국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현재. 서른 아홉 동갑내기엔 세 친구의 위치는 무척이나 달라져 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던 정완은 남편과 헤어져 홀어머니와 함께 아들 태극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하는 선미는 잘 나가는 골드미스. 지현은 준재벌급의 남편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셋 모두 그늘이 있습니다. 정완은 생활고 때문에 마트에서 알바를 해야 하는 처지. 선미는 어느새 동년배 남자들에게 자신이 '늙은 여자'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지현은 결혼생활 10년이 넘었는데도 어려운 형편의 친정 때문에 여전히 시모에게 가정부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찍 낳은 딸 세라는 어느새 무서운 사춘기를 겪고 있습니다.

 

 

('빵꾸똥꾸' 진지희가 어느새 성장해 10대 역으로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사수' 1회는 1995년에서부터 이들 세 단짝 친구의 현주소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세 여자 주변에 포진된 남자들도 슬슬 모습을 드러냅니다. 정완은 영화사 대표 도영(김성수)와 젊은 나이에 장래가 촉망되는 감독 경수(엄태웅)을 만납니다. 동시에 도영은 지현의 첫사랑이기도 하고, 선미 역시 경수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선미에겐 진심을 고백하는 한참 연하의 부하 직원 윤석(박민우)이 있지만, 선미가 보기엔 정말 철딱서니 없는 사내아이일 뿐.

 

과연 이 남자들이 서른 아홉이란 나이의 여주인공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의 도입부에서 이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입시의 중압감에서 해방된 열 아홉 나이의 세 친구가 일제히 미장원으로 달려가 한껏 헤어스타일을 고치고, 귀를 뚫습니다. 이걸 통해 '어른이 됐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죠. 성년식이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나란히 귀를 뚫은 세 친구가 20년 동안 우여곡절을 - 대학 졸업반이 될 무렵 IMF를 겪고, 취업난으로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해외 연수가 보편화되기도 하고(물론 졸업 연도를 늦추려는 시도와 함께), 대학 운동권이 총학생회에서 배제되기도 하고,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를 경험해 보기도 하고, 2002년의 대축제로 20대의 끝자락을 장식해 보기도 하고, 그리고서 이제 중년의 문턱에 와 있는 세 친구.

 

그런 그들의 시작을 '귀를 뚫는다'는 행위로 표현한 것. 매우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실 세 배우 모두 서른 아홉이란 나이를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30대 중반으로 가고 있는 나이.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실제 나이보다 위인 배역은 거의 맡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캐스팅이지만 선공개된 '우사수' 1회를 봐선 이들 중 누구도 연기의 깊이가 부족해 애를 먹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1회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건 누가 뭐래도 '여자를 가장 잘 아는 연출'로 불리는 김윤철 PD의 늘어지지 않는 속도감. 따발총같이 쏟아지는 대사가 아닌데도 지루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빠른 전개가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합니다.

 

 

 

39라는 숫자를 들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노래는 퀸의 '39'입니다. 물론 나이로 서른 아홉이 아니라 1939년을 담고 있는 노래지만, 그래도 흘러간 좋았던 날들을 돌이켜보는 데서 이 드라마, '우사수'와도 만나는 부분이 느껴집니다.

 

'우사수'와 관련해선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가 여자의 인생에서 갖는 의미와 관련해 '39 드림 프로젝트'라는 이벤트가 진행중입니다. 이쪽도 들러 보셔도 좋습니다.

 

여자 나이 서른 아홉, 공돈 1000만원이 생기면 뭘 하지? http://fivecard.joins.com/1209

 

 

 

 

P.S. '우결수'도 '우결수'지만 '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의 시놉시스를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났던 드라마는 2004년 방송됐던 MBC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극본 김인영 연출 권석장)'였습니다. 당시엔 명세빈 이태란 변정수가 사회생활과 연애 사이에서 고민하는 30대 초반의 세 친구로 나와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샀던 작품이었죠.

 

'우사수'는 '응답하라 1994' 세대의 현재 이야기인 동시에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10년 뒤 이야기라면 딱 맞을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 보실만 하지 않을까요.  

 

 

 

728x90

바르셀로나-그라나다로 이동하는 여행자들은 흔히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야간열차와 (저가)항공이다.

 

야간열차는 당연히 침대차가 기본이다. 스페인은 매우 큰 나라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 구간(약 600Km)은 고속전철 AVE가 있어 2시간 30분이면 주파 가능하지만 그보다 훨씬 먼 그라나다-바르셀로나 구간(약 800Km)은 아직 고속화되지 않았다.

 

야간 열차의 좌석이나 버스로도 이동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건 정말 몸 상하는 일.

 

 

 

비행기를 타고 내리기 위해 이동하는 일(대개 공항은 시내에서 상당히 멀다)을 꽤 싫어하고, 동시에 국내에선 쉽게 접하기 힘든 침대차에 대한 로망이 있는 1인으로서(사실 동행인의 의견은 그리 참고하지 않았다), 당연히 침대차를 선택했다.

 

늦은 시간. 그래도 산츠 역은 꽤 붐비고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지리적으로 상당히 외진 곳이라 유럽의 주요 도시들로부터 애매하게 멀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침대차가 꽤 중요한 수단이 되어 왔다지만 지금은 대부분 항공편을 이용하는게 일반적이다. 남아 있는 노선 중에는 파리행과 그라나다행이 꽤 유력하다고 한다.

 

 

야간열차 트렌오텔 Trenhotel 은 밤 10시 출발. 그라나다에는 다음날 오전 9시11분에 도착한다.

 

 

 

물론 중간에도 승객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 부지런히 기차가 서고 내린다.

 

야간 열차라고 해서 모든 칸이 침대칸은 아니다. 일반 좌석이 있는 칸도 있다.

 

렌페 renfe.com 에 가서 야간 열차를 예매하려면 이런 화면을 만나게 된다.

 

 

다섯 등급의 좌석을 판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좌석 2등급, 좌석 1등급, 침대차 4인 1실, 침대차 2인 1실, 침대차 2인 1실(특실)에 식사 포함이라는 기준이다. 위에서 네번째인 Cama Preferen(2인 1실. 1등칸)을 선택했다.

 

일단 11시간을 이동하는데 좌석...도 굳이 타라면 못 탈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청춘이 아니다. 최소한 침대차는 되어야 한다. Cama Turista는 예전에 기차 여행할 때 타 본 쿠셋 형의 변형인 듯 하다. 그래도 쿠셋은 방 하나에 간이 침대가 6개인데 이건 그나마 4개. 그리고 방 안에 세면대도 있다. 4인 1실이라도 남자 칸과 여자 칸이 따로 있다.

 

Cama Preferen은 164유로라고 되어 있는데 이 가격은 아마도 당일 구매 정도에 해당되는 가격인 듯. 약 1개월 전에 미리 사면 1인당 110유로 정도, 즉 2인 1실에 220 유로 정도에 탈 수 있다.

 

어쨌든 기차 표 끊는 법, 역에서 표 찾는 법 등은 이런 블로그 http://blog.naver.com/familyjhjh?Redirect=Log&logNo=90172132856 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어 여기서 새로 또 늘어놓지는 않는다.

 

220유로. 가격으로 따지면 재수가 좋은 경우 1박 요금+저가항공 2인 요금이 더 쌀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 육상 교통, 특히 기차 이동을 매우 선호하는 본인으로서는 침대차에서 하룻밤을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뭣보다 궁금하잖아.

 

 

 

문을 열고 2인 칸의 안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아, 물론 가방을 넣어 두고 한숨 돌린 뒤에 찍은 거다. (문을 열자 마자의 상태는 당연히 아니다.)

 

첫 느낌은 누구나 비슷하다. "뭐가 이렇게 좁아!"

 

그런데 걱정하실 필요 없다. 조금 지나면 대략 익숙해 진다. 하룻밤 정도는 충분히 머물만 하다.

 

 

2층 침대에서 문 쪽을 본 모습. 안으로 들어와 방 문(오른쪽)을 닫아야 욕실 문(왼쪽)을 열 수 있다.

 

사진상으로 엄청나게 비좁은 느낌이 드는데, 맞다. 엄청나게 좁다. 그래도 욕실 설비는 제법이란 느낌이 든다.

 

 

 

욕실로 들어가서 오른쪽을 보면 거울과 세면대, 그리고 양치질용 물과 컵이 있다. 수도꼭지에서도 물이 잘 나오지만, 생수 2병을 굳이 넣어 뒀다. 물론 마실 수 있는 물이고, 럭셔리하게 양치질 하는 데 쓸 수도 있다.

 

(우리는 양치질하는 데 썼다. 이유는... 1.5리터짜리 에비앙을 이미 사 왔기 때문에. 다 마시느라 애썼다.) 

 

 

 

왼쪽을 보면 변기와 작은 선반이 있고, 그 위에 샤워용의 큰 타월 두 장과 예비용 두루마리 휴지 등이 있다. 제법이다.

 

세면대와 변기를 합해 여객기 기내 화장실 정도의 크기. 하지만 거기엔 없는 호사스런 서비스가 있다.

 

 

 

제법인 이유는 더 안쪽에 샤워실이 있기 때문. 여행 자료를 보면 Cama Preferen에 샤워가 있다, 샤워는 없고 세면대만 있다는 등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결론을 말하면 샤워실이 있었다.

 

넓이는 작은 사이즈의 샤워박스 정도.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들어가면 갇힌 느낌으로 죽을 것 같을 수도 있겠지만, 야간 침대 열차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건 사실 대단한 호사다.

 

그리고 비록 좁다지만 원통형이라 나름 합리적이고, 사진에서 보듯 장시간의 입식 샤워(?)에 피로한 당신을 위해 엉덩이를 살짝 걸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아울러 바닥은 배수가 잘 되도록 신경 쓴 구석이 보인다. 좁은 침실로 샤워 물이 넘쳐 방이 물바다가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방은 이 정도. 열차로 두 칸 정도 넘어 가면 스낵바가 있고, 스낵바 바로 너머에 식당칸이 있다.

(열차가 흔들려 어쩔 수 없이 진동...)

 

 

 

하긴 먹으면서 이동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이건 식당칸 옆의 부엌을 살짝 찍은 것. 철판 위에서 스테이크가 혼자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식당칸에서 음료 정도는 마셔 주는 것도 괜찮을 듯 했으나 어찌나 에어콘을 세게 틀었는지 얼어 죽을 것 같았다.

 

 

 

밤 10시 출발. 한국인들에겐 매우 늦은 시간이지만 이쪽 사람들에겐 한창 저녁을 즐길 시간이니.

 

 

 

이건 스낵바. 아주 가벼운 간식거리와 커피, 음료, 맥주 등을 판다. 이것도 제법 운치있는데, 혼자 여기서 맥주라도 홀짝거리며 창밖을 보고 있으면 굉장히 자신이 측은해 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무튼 열차 안의 복도는 매우 좁다. 기내용 캐리어는 통과할 수 있지만 1주일 이상 여행용의 트렁크는 정상적으로 통과할 수 없는 넓이다. 그 점 하나만 빼면 침대차 내의 시설은 충분히 수긍할 만 했다.

 

 

 

이건 방 안에 있는 1인용 위생 팩.

 

 

조립식 칫솔. 치약. 면도기. 비누. 화장솜. 빗 등이 키트로 들어 있다.

 

준비 없는 사람이 1박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설비다.

 

 

 

1층 침상. 다리를 충분히 뻗을 수 있다. 위쪽으로 개인용 독서등도 있고, 충전용 전원도 있다.

 

 

동행인이 최종적으로 1층을 선호해 2층으로 올라갔다. 1층과 2층은 왼쪽의 전화기를 빼면 시설에 아무 차이가 없다. 쿠셋과는 달리 두 층 뿐이므로 1층과 2층 모두 일어나 앉을 수도 있다. 침구도 깔끔하고 편안한 느낌.

 

누운지 몇분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물론 움직이는 기차 위이기 때문에 제법 흔들린다. 그 진동에 대한 적응엔 개인차가 꽤 크다. 앞서도 말했듯 본인은 그 진동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라서(요람 속 같다고나 할까), 눕자마자 금세 잠들어 숙면을 취했다.

 

 

 

그리고 아침. 그라나다에 거의 도착할 무렵 창을 열었다.

 

안달루시아의 아침놀.

 

 

 

 

 

 

아나톨리아 고원에서도 느꼈지만, 땅이 넓은 곳에선 구름이 훨씬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눈을 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바르셀로나에서 마지막 쇼콜라를 마시고 산 초코 머핀과 초콜릿 크루아쌍으로 아침 간식.

 

그라나다가 가까워 온다. 침상 정리를 해 본다.

 

 

 

위층 침대를 접으면 이런 모습,

 

 

그리고 아래층 침대를 마저 접고 그 아래 감춰져 있는 좌석을 펴면 이런 모습이 된다. 오래 전 다녔던 오리엔트 특급 같은 열차에선 낮엔 이런 식으로 가다가 저녁에 침대를 펴고 잠을 청하는 식의 여행이 가능했을 것 같다.

 

낮 이동이 훨씬 지루하긴 하겠지만.

 

 

오전 9시. 그라나다 도착.

 

그라나다는 춥고, 역무원들은 불친절하다. 역에 있는 인포메이션은 '우리는 관광안내소가 아니다' 라며 지도 한 장 비치해 두고 있지 않았다. 뭐 이리 쌀쌀맞아.

 

 

택시를 잡아 타고 그라나다의 그란 비아(사진 오른쪽 가게 간판 쪽에 써 있다)를 따라 호텔로 이동.

 

바르셀로나에선 반팔이 더 많았다면 여긴 확실히 가을 느낌, 그것도 늦가을 느낌이 난다.

 

그래도 왔다. 그라나다. 기다려라, 알함브라.

 

 

그라나다는 굉장히 작은 도시다. 여행을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숙소 결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 여정에서 그라나다는 단 1박, 그리고 알할브라 궁전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므로 숙소를 아예 알함브라 궁전 바로 코앞으로 잡았다. 이름하여 알함브라 팰리스 호텔 Alhambra Palace Hotel.

 

홈페이지는 여기. http://www.h-alhambrapalace.es/default-en.html

 

 

 

 

이번 여행 중 가장 럭셔리한 호텔이었던 것 같다.

 

물론 비수기라 그리 비싸진 않았다.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간에 방을 달라면 어떤 반응일지 조금 궁금했지만, 비수기인데다 기차 도착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선선히 방을 내 준다. 굳이 얼리 체크인을 언급할 필요가 없는, 알아서 해 주는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중엔 TV를 거의 안 봤다. 마드리드에서나 좀 채널을 돌려 봤던가...

 

 

 

 

아랍풍으로 꾸며진 욕실이 특히 넓고 화려했다.

 

 

 

호텔이라기보단 무슨 성 처럼 보일 정도로 요란한 장식이 있다.

 

 

사실 이 호텔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알함브라에 도보로 이동 가능한 호텔이라는 점(호텔을 나서 언덕배기를 3분정도 걸으면 바로 알함브라)이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알함브라 구경을 마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피해 호텔로 달려 들어오면서, 역시 가까운 호텔을 고르길 잘 했다며 스스로의 선견지명에 기뻐했다.

 

아울러 두번째는 트립어드바이저에 누군가 써 놓은 fantastic city view. 알함브라가 보이는 뷰면 더 좋겠지만, 사실 그건 쉽지 않다. 알함브라는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함브라 바로 앞에 있는 이 호텔도 알할브라 쪽의 뷰는 그냥 산 뿐이다. 대신 시내 쪽 방은 이렇게 알함브라 구시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잠시 방 구경과 짧은 오전 휴식을 마치고 곧바로 출동.

 

 

 

 

기다려라 알함브라! (사진은 헤네랄리페.)

 

 

 

 

 

728x90

새해를 맞았습니다. 새해에도 문화가이드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적극적으로 즐기시기 바랍니다. 인생 뭐 있겠습니까.

 

 

 

 

 

 

10만원으로 즐기는 1월의 문화가이드 (2014)

 

연말 술병은 다들 회복해 가나? 아직도? 세월이 하 수상해서 맨정신으로 새해를 맞을 수 없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뭐 어쩌겠어. 세상이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한편에선 좋아지는 게 있기 마련이야.

 

예를 들면 말러의 10번 교향곡을 국내에서 정상급 지휘자의 리드로 저렴한 가격에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아진 일 중 하나야. 123, 한스 그라프가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연주야.

 

사실 많은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죽었기 때문에 말러는 ‘9번 교향곡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이 10번 교향곡의 1악장만을 완성하고 죽어. 그리고 후세의 작곡가들이 나머지 초고를 완성해서 현재 연주되는 이 곡을 만들었지. 어떤 평론가는 이 10번의 정서를 용서라고 규정했던데,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못잖게 서정적인 선율이 일품이야. 123. B 2만원에 아직 쓸만한 자리를 살 수 있어.

 

사실 올해 1월의 음악 공연을 추천하라면 이 무지치 합주단의 사계(제일 싼 표가 5만원)나 제임스 블레이크 첫 내한 공연(균일 88000)을 첫 손에 꼽아야겠지. 하지만 역시 이런 건 이 칼럼에서 추천할 공연은 아닌 것 같아. 대신 오상진의 북콘서트같은 공연을 눈여겨 보라고 하고 싶어. 부제가 하루키의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2013년 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 소설 속에 나오는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같은 곡이 궁금할 거야. 대체 어떤 곡인지 찾아 들어 본 사람도 한둘이 아니겠지.

 

하루키는 본래 클래식과 재즈, 올드 팝에 대한 식견이 예사롭지 않은 만큼, 그의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꽤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봐. 이번엔 오상진이 책을 읽고 캐나다 교포 피아니스트 루실 정이 곡을 연주하는 진행. ‘1Q84’에 나오는 바흐의 전주곡과 푸가,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드뷔시의 달빛등이 연주돼. 119, 예술의전당. 4만원.

 

만약 이런 컨셉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소설가가 사랑한 음악이란 제목의 CD도 추천할 만 하다 싶어. ‘무라카미 하루키 30년 소설 속의 음악이란 부제를 보면 따로 설명은 필요 없을 듯. 3CD. 15000. 클래식과 재즈만이라는 게 아쉽지만 비틀즈나 롤링스톤스 등 하루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뮤지션들은 이런 컴필레이션을 좋아하지 않아.

 

맑은 겨울날, 이런 음악을 틀어 놓고 먼 산에 쌓인 눈을 바라보며 트루먼 커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영화로 본 분들이 꽤 많겠지만, 영화와 원작 소설은 초코파이와 자허 토르테만큼 큰 차이가 있어.

 

 

 

 

로맨틱 코미디의 대명사인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비해 소설은 근본적으로 쓴 맛을 베이스로 깔고 있어. 주인공 홀리 고라이틀리 역시 영화에선 그냥 한국 월화드라마의 귀여운 4차원 아가씨 정도지만 소설에선 미쳐도 단단히 미친 X이거든. 물론 꽤 매력있는 미친 X이긴 하지.

 

이 책을 읽어 보면 생각나는 작품이 둘 있어. 하나는 에밀 졸라의 나나, 또 하나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아마도 영화만 본 사람이라면 대체 왜 이런 비교가 가능한 지 상상하기 힘들거야. 그러니 이번 기회에 원작을 한번 읽어 보길 바라.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새 번역본으로 약 1만원, 나머지 두 책은 7천원 내외로 살 수 있어. 싸지? 고전이 이래서 좋은 거야.

 

 

 

춥다고 너무 분위기를 떨어뜨린 것 같으니 아주 발랄하고 활기넘치는 전시 하나 소개할게. 스페인의 천재 그래픽 디자이너 하비에르 마리스칼의 전시회가 예술의전당에서 316일까지 열려.

 

마리스칼의 작품들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스코트 코비를 비롯해서 동글동글한 귀여운 선이 특징이지. 동심의 세계를 늘 떠나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일으키는 마리스칼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아직도 세상에는 상상력과 낙천적인 에너지로 이룰 수 있는 것이 많이 남아있다는 걸 느끼게 될 거야. 그럼 다들 감기조심하고, 2월에 만나.

 

오상진의 북콘서트 119    A 4만원

말러 교향곡 10 123     B 2만원

하비에르 마리스칼 전          12000  

소설가가 사랑한 음악(3CD)     15000

티파니에서 아침을               1만원

나나                           7천원

생의 한가운데                  7천원

 

 

 

말러가 수많은 선배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유명을 달리했다는 이유 때문에 '9번 교향곡'이라는 말을 꺼렸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러의 교향곡 번호는 9번이되 9번으로 불리지 않는 '대지의 노래'와 실제로는 10번째 교향곡이지만 9번으로 불리는 그냥 9번으로 약간 족보가 틀어집니다.

 

어쨌든 9번을 내놓고 10번은 완성하지 못한 채 말러도 고인이 됐으니 그렇게 두려워했던 징크스가 현실이 된 듯 합니다. 베토벤 이후 브루크너, 슈베르트, 드보르작이 모두 걸린 9번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죠.  물론 교향곡을 풀빵처럼 찍어낸 작곡가들은 이후에도 많았지만, 공식적으로 스타 작곡가 가운데선 15곡을 작곡한 쇼스타코비치가 이 징크스를 무력화시킨 공로자로 꼽힙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미완성으로 남은 10번은 데릭 쿡에 의해 5악장으로 완성된 버전으로 꽤 자주 연주됩니다. 국내에선 2010년 서울 시향이 처음 연주한 버전이죠. 안 그래도 들을 곡 천진데 굳이 다른 사람이 완성한 미완성곡까지 연주해야 할까...하는 의문도 물론 있지만, 흔히 그냥 '아다지오'라고도 불리는 1악장의 아름다움은 심하게 매혹적입니다.

 

 

 

특히나 이 곡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뮤즈 역할을 했던 말러의 아내 알마에 대해 말러의 '용서'를 담은 곡이라는 사연이 전해집니다. 솔직히 좀 이해하기 힘든 구석도 있는 얘기지만...^^ 곡 해설과 사연에 대해선 이쪽 참조.

 

http://www.pungwoldang.kr/board_music/content.aspx?b_UniqueID=107&tname=board_music

 

 

'티파티에서 아침을'의 원작 소설에 대해선 사실 그닥 관심이 없었지만, 지난해 나온 '트루먼 커포티 선집'에 끼어 있는 걸 보고 흥미가 생겼습니다. 이 독특한 작가와 누구나 다 아는 '그 영화'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싶었던 거죠.

 

아니나 다를까. 책에 나오는 미스 고라이틀리(Go+lightly^^)는 영화의 오드리 헵번과 너무x너무나 차이가 컸습니다. 오드리 헵번이라는 배우에 의해 '4차원적 사랑스러움'이 원작에선 너무나도 선명한 '돌아이 짓'이더군요. 원작자 커포티가 오드리 헵번의 캐스팅에 대해 "난 마릴린 먼로가 훨씬 더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라고 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원작을 보시면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와 원작은 비슷한 스토리라인을 따라가긴 합니다만, 이렇게 핵심적인 주인공의 캐릭터가 달라지고 보니 전혀 다른 작품처럼 읽힙니다. 그래서 에밀 졸라의 '나나'가 연상되는 것이고(고라이틀리는 오늘날 뉴욕에 떨어진 나나처럼 보입니다. 소설 첫 부분에 나오는 후일담도 졸라가 나나에 퍼부은 저주와 거의 유사한 수준...).

 

아무튼 영화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분들은 아예 다른 책이라고 생각하고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마리스칼의 코비는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별다른 설명 패스. 다시 한번 생각나는 것은 이 코비의 디자인에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피카소의 '여관들'이라는 그림입니다. 벨라스케스의 유명한 그림을 자기 식으로 재해석해 그린 그림이죠. 혹시 관련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이 글 http://fivecard.joins.com/1190 참조.

 

2월에 만나요~~

 

 

728x90

여자 나이 서른 아홉. 만약 누가 '너 자신만을 위해서 쓰라'며 돈 1000만원을 준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는 1월6일부터 방송되는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준비와 함께 '39 드림 프로젝트'라는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39'라는 숫자는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를 뜻합니다. 이 나이는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핵심입니다.

 

과연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정말 마흔이 되면, 그때부터의 인생은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할까요? 서른 아홉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그 이후의 인생을 크게 좌우할까요? 예전만큼 '40'이란 숫자의 의미가 크지는 않을 듯 합니다만, 여전히 그 나이를 맞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듯 합니다.

 

그 나이를 맞기 전, '앞으로의 인생을 위한 준비 비용이야'라면서 누군가 1000만원을 준다면, 그리고 가족이나 남편이나 애인이나 아이들이나,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다면, 그 돈은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요?

 

 

 

 

 

 

 1. '우결수'에서 '우사수'까지. JTBC 미니시리즈의 진화

 

'우사수'는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준말, 줄인 제목입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우사수'가 된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지난 연초 JTBC에서는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줄여서 '우결수')라는 드라마를 방송해 꽤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미숙이 극성스런 엄마로, 이미숙의 딸로 정소민이, 정소민과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로 성준이 출연했던 드라마입니다.

 

여교사에 예쁜 얼굴로 경쟁력을 갖춘 신붓감인 정소민은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난 남친 성준과 결혼하려 하지만, '인생에 한번 하는 결혼, 제대로 뽑아내지 못하면 안된다'는 친정 엄마의 소신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이 서슬에 보자 보자 하던 성준의 엄마 선우은숙이 발끈, 결혼은 산으로 가고 두 사람은 거의 헤어질 위기에 놓이죠.

 

결혼을 앞둔 커플의 심리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소위 '결혼 한탕주의', 그리고 이들 커플을 둘러싼 다른 세 커플의 각기 다른 사랑만들기가 꽤나 인기를 끌었습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윤철 PD가 연출을 맡았고 당시 무명에 가깝던 하명희 작가는 현재 방송중인 SBS TV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한마디'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그 김윤철 PD가 새롭게 만드는 드라마가 1월6일부터 JTBC에서 방송됩니다. 제목은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와의 연결성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로 붙였습니다.

 

 

 

 

 

2. '우사수'는 어떤 드라마?

 

'우결수'가 남녀간의 연애 못잖게 여자들끼리의 우정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라는 걸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우사수'는 그렇게 사이 좋게 지내던 세 여자친구가 서른 아홉 나이를 맞아 각각 이혼녀, 유부녀, 노처녀로 '상태'가 갈린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셋 다 그리 형편이 좋지 못합니다. 애 딸린 이혼녀는 본래 시나리오 작가지만 생활을 위해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전남편이 재결합하자는 줄 착각했다가 김칫국을 마시는 처량한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부잣집으로 시집간 유부녀는 씀씀이에 모자람이 없지만 엄한 시어머니와 다소 마마보이인 남편 때문에 남몰래 폭음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노처녀. 브리짓 존스처럼 뚱뚱하지도 않고, 스타일도 좋고 수입도 좋은 소위 골드미스지만, 뼛속까지 시린 외로움은 달랠 길이 없습니다.

 

서른 아홉인 세 여자의 "대체 어디서부터 인생이 꼬인 걸까..."라는 넊두리에서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까지가 이 드라마의 주제입니다. 이들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요.

 

유진 최정윤 김유미가 각각 이혼녀, 유부녀, 골드미스로 나오고 엄태웅 김성수 박민우가 여자들의 서른아홉을 흔들어 놓을 남자들로 등장합니다.

 

 

 

 

 

3. 39 드림 프로젝트

 

서른 아홉. 남자든 여자든 마흔이 넘으면 대개 중년이라고 부릅니다. 아무리 젊어 보이고, 아무리 건강해도 마흔이 넘으면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할 것을 권해 옵니다. 특히 암 검사나 위/대장의 내시경 검사가 권장됩니다.

 

이런 나이를 앞두면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을, 그리고 '내가 가지 않은 길'을 되새겨 보게 됩니다. 과연 그때 그 판단을 했기 때문에 내 인생이 여기까지 온 것일까. 앞으로도 내 인생은 지금과 거의 차이 없이 흘러가게 될까.

 

'우사수' 방송에 즈음해 JTBC는 여자들의 인생에서 서른 아홉이란 나이가 갖는 별스러운 의미에 주목해 한가지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바로 '39 드림 프로젝트' 라는 이벤트입니다.

 

참가자는 대한민국 모든 여성 입니다. 딱 서른 아홉인 분도 있고, 넘은 분, 아직 이 나이를 맞지 않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딱 서른 아홉인 분은, 직관적으로 '지금 내 인생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런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는 이야기를 써 주시면 됩니다. 이미 서른 아홉을 지나 온 분들은, '그때 기회가 있었더라면 이런 걸 했어야 했는데'라는 내용을 적어 주십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지금이라도 '그때 못한 그 일'을 다시 저질러 보시는 겁니다. 아직 서른 아홉을 맞지 않은, 상대적으로 행운아인 분들은 '내가 지금 서른 아홉'이라고 가정하고, 그 전에 꼭 한번 해 봐야 할 것 같은 일을 적어 주십쇼.

 

 

 

 

단 저희가 선정되신 한 분에게 지원해 드릴 수 있는 돈은 1000만원 입니다. 상당히 큰 돈이지만 아주 많은 돈은 아닙니다. 이 돈으로 저희는 참가하신 여러분께 카페를 차려 드리거나, 좋은 별장을 사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달 정도 인도 전역을 여행하거나, 아프리카에 가서 멀리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바라 보며 아침 커피를 드시게 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스키 강습을 받게 해 드릴 수도, 옥스포드에서 영어 연수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상태 괜찮은 중고차나 사람들이 쳐다보는 자전거를 살 수도 있고,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아 볼 수도 있습니다. 크게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전신 성형을 통해 새로운 운명에 도전하시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영화 '버킷 리스트'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드실 수 있지만 '버킷 리스트'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 위안이라면 이 '39 드림 프로젝트'는 앞날이 창창한 사람들의 재충전 기회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즉시 아래 링크를 눌러 JTBC 홈페이지를 노크하시면 됩니다.

 

http://home.jtbc.co.kr/Event/Event.aspx?prog_id=PR10010275&menu_id=PM10021612&cloc=jtbc|top|top

 

그리고 '우사수'에 나오는 세 여자의 운명에도 계속 관심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P.S. 물론 그 1000만원을 지원받은 분이 그 돈을 어떻게 쓰셨는지는 많은 분들의 관심사가 될 듯 합니다. 어떻게 그 돈으로 놀라운 경험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 돈을 쓴 뒤로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저희가 어떻게든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