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세비야 대성당의 명물이라면 역시 히랄다 Giralda 탑이다.

 

높이 105m. 38층이라고 표기되는 히랄다 탑은 느낌 그대로 아랍 문화의 유산이다.

 

어쨌든 유럽에서도 크기로 손꼽히는 대성당의 상징이 됐고, 산지가 적은 안달루시아의 대평원에서 수백년 동안 멀리 멀리까지  그 종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고 있다.

 

 

 

 

38층이라는 말에 다소 긴장했지만 다행히 층고가 그리 높지는 않다.

 

여름에 올라간 사람들은 퍽 고생을 했을 거란 생각. 아무튼 도전. 오늘의 입장객수가 곧바로 표시된다.

 

 

 

 

계단이 아니라 네 면을 따라 비스듬히 경사면을 오르게 되어 있다.

 

계단이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왕이 말을 타고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말이라면 좀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올라가며 짬짬이 창밖을 내다 본다.

 

 

역시 성당의 명물 중 하나인 오렌지 나무 정원. 파티오 같은 게 아니라 그냥 파티오다. 내놓고 이슬람 양식.

 

 

조금씩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성당의 지붕을 통과하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거의 다 올라왔다.

 

 

마침내 정상. 시원한 바람이 분다.

 

 

산지가 없다는 게 실감날 정도로 일망무제의 평원이 펼쳐진다.

 

알록달록 예쁜 건물들. 문득 장난을 쳐 보고 싶다.

 

이렇게.

 

 

 

 

 

 

 

 

뭐 다른 쪽도.

 

 

정말 예쁜 거리다.

 

 

 

오렌지 정원도.

  

 

 

정말 모형처럼 보인다.

 

 

 

세비야 대성당의 지붕. 용의 등뼈와 날개를 봉인한 듯한.

 

거대한 소음과 함께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상상.

 

런던의 상징 중 하나인 세인트 폴 성당을 건설하던 크리스토퍼 렌이 지붕의 무게 때문에 고민했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이 세비야 대성당도 마찬가지. 지붕 쪽에 실리는 하중을 분산해 주기 위해 세워진 보조 기둥들의 위용이 인상적이다.

 

 

 

멀리 투우장이 보인다.

 

그 부근에 밤에 플라멩코를 보기로 한 공연장이 있다.

 

 

 

 

 

탑에서 내려가 오렌지 정원으로.

 

어쩐지 회랑에 악어가 매달려 있다. 무슨 사연일지.

 

 

오렌지 나무 사이로 정상이 보인다.

 

정상의 바람이 느껴지는 듯.

 

저 꼭대기의 여인상은 '왕자의 문' 앞에 있는 여인상과 같은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한번.

 

 

 

성당에서 오렌지 정원으로 나오는 문.

 

'수태의 문' Puerta de la Concepción 이라고 해석해야 할 듯 하다.

 

그냥 이해의 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 하지만 이 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것이고 보면.

 

(영어의 컨셉션에 그런 뜻이 있는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성당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히랄다 탑과 성당의 지붕에게.

 

안녕.

 

성당을 나서 동쪽으로 담을 돌아가면 알카자르가 나타난다.

 

 

한번쯤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1. 유료다. 2. 민박집에서 "그라나다에서 오시는 길이면 실망하실 거에요. 안 보셔도 돼요"라는 말을 들은 뒤였다. 굳이 알함브라를 보고 와서 다시 이슬람 양식의 정원을 보고 싶진 않았다.

 

 

 

어쨌거나 담벼락은 멋지다.

 

 

 

 

 

담벼락이 끝나는 곳에서 산타 크루즈 지역이 시작된다.

 

 

세비야의 구 시가 지역. 좁다란 골목길 속에 알록달록 칠해진 다양한 가게와 건물들이 빼곡 들어찼다.

 

 

 

골목 골목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흔적과 관광객을 맞이하는 구역의 구별이 없는 점이 눈길을 끈다.

 

세비야를 찾은 사람들이 이곳의 정취를 얘기하는 이유를 알 듯 하다.

 

장난감처럼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진 골목이 마냥 예쁘다.

 

 

 

 

 

사람 사는 모습을 한껏 보여주는 동네다.

 

물론 다들 속으론 먹고 살기 바쁘겠지만.

 

 

 

 

마돈나가 왔다 갔다는 산 마르코 San Marco 라는 맛집.

 

소개는 받았는데 별로 뭘 시켜 먹어 보고 싶진 않았다. 마돈나가 별거냐.

 

 

그보다 더 원래부터 유명하다는 Bodega Santa Cruz 라는 식당.

 

뭐 그리 끌리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정작 들어간 집은 이 집. 이름은 La Catedral.

 

나중에 다시 나온다.

 

 

 

이렇게 히랄다 탑과 산타 크루즈를 헤매고 다녔다.

 

 

 

 

마지막으로 느낌이 좋았던 종탑 사진.

 

 

 

728x90

제가 좀 미친 것 같습니다.

 

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아무튼 늦었지만 아직 하나밖에 안 지나갔군요. ^^;;

 

나머지 추천 문화생활을 충분히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2월의 문화가이드

 

1년 중 가장 짧은 달, 2월이야. 그래도 문화적으론 꽤 풍성한 달이지. 직장인들은 설 연휴에 목돈이 빠져나가 여유가 없을 수도 있지만, 학생들은 세뱃돈을 받아 풍성해졌을 테니 문화생활의 갈증을 한껏 풀어 보도록.

2월의 음악 공연 중에는 세계 정상급 솔리스트 두 사람이 참여하는 공연들이 눈길을 끄네. 바로 하피스트 라비니아 메니에르와 플루티스트 엠마누엘 파후드야.

 

14. 발렌타인데이.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로맨틱 라흐마니노프에 라비니아 메니에르가 나와.  연주할 곡은 모짜르트의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 메니에르는 몇해 전 화제가 됐던 다큐멘터리 라비니아의 귀향주인공이야. 네덜란드로 입양 간 한국인의 핏줄이지. 태어나자마자 해외로 입양을 보낸 처지에 굳이 한 민족이니 뭐니 하는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게 인지상정. 물론 연주력도 극강이니 믿어 봐.

 

이날의 메인 곡은 스테판 애즈베리가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 피아노 협주곡이 아니라 교향곡 2번이야. B 2만원 추천.

 

22일 공연은 엠마누엘 파후드와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이란 제목이야. 한 번에 안 외워지지? 엠마누엘 파후드는 22세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플루티스트로 뽑혔다는 천재야. 그 뒤에도 플루트의 세계에선 최고수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물이지.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이란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많겠지만,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 중에서 바로크 음악에 특화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유닛이야. 더 설명이 필요할까?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5번을 비롯해 텔레만의 플룻 협주곡 등 친숙한 곡들을 연주해. 아마 연주의 정교함으로는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협연이라고 생각해. 3만원짜리 C석도 있긴 한데 형편에 따라 B 5만원까진 써도 아깝지 않을 듯.

 

이번엔 국악 차례. 국립극장에서 19일부터 23일까지 공연되는 창극 숙영낭자전이야. 숙영낭자전은 신재효가 기존의 판소리 열두마당을 여섯마당으로 정리한 뒤로 판소리 사설이 전해지지 않아. 그래서 고전소설 숙영낭자전을 창극으로 개작한 작품이지.

 

달오름극장은 그리 크지 않으니 2만원짜리 A석이 목표인데 할인행사가 많아서 잘 찾아보고 가길 권해. ‘이름이 숙영인 분은 50% 할인같은 것도 있어.

 

 

공연에 돈을 많이 썼지만 아직 할 일은 많아.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선 117일부터 316일까지 박수근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열려. 고인의 작품 90여점이 한 자리에 모이는 건 상당히 뜻깊은 일이라는군. 또 국제갤러리에선 국내에서도 인기 높은 영국 화가 줄리언 오피의 개인전을 323일까지 개최해. 참고로 이 두 전시는 무료.

 

 

책은 그동안 소설 위주로 추천했는데 이번엔 흥미로운 역사+심리분석서를 한권 소개하려고 해. 나시르 가에미가 쓴 광기의 리더십(A first-rate madness)’.

 

제목을 보면 히틀러나 스탈린이 제일 먼저 생각날텐데, 물론 히틀러에 대한 내용도 있어.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링컨, 처칠, 간디 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대접받는 위인들이야.

 

저자는 각 인물들의 삶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정상인에 비해 상당히 심각한 정신병을 갖고 있었다고 판단해. 가장 자주 등장하는 병은 조증과 우울증인데,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가에미는 이런 병증들이 위대한 지도자가 되는데 상당히 필요한 자질이라고 강조하고 있어.

 

예를 들면 조증 환자는 전쟁처럼 긴장감이 높아진 상태에서 고도의 집중력과 함께 탁월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타입이라는 거지. 물론 다 좋다는 건 아냐. 예를 들어 2차대전 당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처칠에 대해 그는 하루에 100개의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런데 그중 4개 정도만 쓸만하다고 비아냥거렸다는 일화도 소개하고 있어.

 

사실 자신의 판단 한번에 수백만, 수천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자리에 있다 보면 제정신일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 그래서 어쩌면 지도자를 고를 때도 너무 반듯하고 흠 없는, 모범생만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야.

 

2월은 금세 지나가. 3월에 만나.

 

14일 로맨틱 라흐마니노프                                               B 2만원

22일 엠마누엘 파후드와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                     B 5만원

19~23일 창극 숙영낭자전                                                B 2만원

국제갤러리 줄리언 오피전                                                 무료

가나인사아트센터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                         무료

나시르 가에미, ‘광기의 리더십                                       16000원 선

합계                                                                      106000

 

 

 

 

줄리언 오피는 제가 좋아하는 화가라 좀 사진이 편향되게 많이 들어갔습니다. 위에 보시는 이 블러의 앨범 재킷도 오피의 작품이죠. 또 한번 보면 처음 보는 작품도 그 사람의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맨 위에 있는 그림의 제목은 '신사동을 걷다'. 따지고 보면 한국과 무관한 사이가 아닙니다.

 

 

 

서울역 맞은편 서울스퀘어 빌딩(구 대우빌딩)에 걸렸던 작품 '군중'도 유명하죠. 저 동그란 머리가 바로 오피의 상징입니다.

 

 

 

일본 오모테산도 힐즈를 장식한 벽화들도 딱 보면 그의 작품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추천해놓고 제가 서울 전시를 못 가보고 있다는 ㅜㅜ)

 

에마누엘 파후드는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시면 수없이 많은 공연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곡 제목인 쉬링크스(Syrinx)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명을 받은 헤르메스가 천개의 눈을 가진 괴물 아르고스를 잠재우기 위해 만들었던 피리의 이름이죠. 당대의 '피신'으로 통하는 파후드에게 잘 어울리는 곡입니다.

 

물론 이번 공연의 색채와는 좀 다른 곡이지만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골랐습니다.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과의 협연도 자료가 있군요. 바흐 관현악모음곡 2번(BWV 1067) 중 7곡 바디네리입니다.

 

 

 

(제목만 보고 뭐야 하시는 분들, 들어 보시면 다 아시는 그 곡입니다.^^)

 

 

 

라비니아 메이에르의 영상을 찾아 보면 필립 글래스의 곡만 나와 좌절하시는 분들이 있을 법 합니다(개인적으로 필립 글래스는 공포의 대상...). 몬테베르디의 바로크 곡 연주를 들으시면 기분 전환이 되실 겁니다.

 

 

 

마지막으로 웃자는 내용. 파후드는 흔히 이런 모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드물지 않다는 거. (찾아보시면 더 심한 모습도 많습니다.)

 

남자도 사진빨, 크게 작용합니다.

 

그럼 늦은 2월 인사는 이만.

 

 

 

 

728x90

무어인(아랍인)들로부터 국토를 되찾기 위한 스페인 카톨릭의 노력 결과, 세비야는 비교적 일찍, 13세기에 이미 기독교인의 땅이 되었다. 그 뒤로 세비야는 내륙의 교역 도시로 발달했고, 1401년에는 이슬람 예배당이 있던 자리에 카톨릭의 위엄을 세계에 떨칠 수 있는 거대한 성당을 세울 계획이 세워졌다.

 

착공 100년이 되기 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뭐 틀린 말인 건 다 알지만 그냥 이렇게 쓰자)했고, 세비야는 이 새로운 대륙 개척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실제로 배가 드나드는 항구로는 세비야 서쪽의 우엘바와 남쪽의 카디스가 발달했지만, 신대륙 항해를 위한 법적 절차나 인허가는 모두 세비야에서 이뤄졌다. 신대륙에서 들어온 막대한 부 역시 세비야에 집결됐다. 거대한 문서보관소와 황금의 탑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 역시 세비야가 바로 신대륙 개척의 상징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스페인식으로 크리스토발 콜론의 묘가 세비야에 있는 것도 당연한 일.

 

 

 

 

스페인은 세계에서 52번째, 유럽에서 다섯번째, 그것도 유럽이라고만 하기엔 좀 껄끄러운 러시아와 터키를 빼면 세번째로 큰 나라(프랑스, 우크라이나 다음)다. 남북한을 합친 크기의 두배 이상 크다. 제국 스페인의 남쪽 해안선은 지브롤터를 경계로 동쪽은 지중해로, 서쪽은 대서양으로 열려 있다.

 

스페인의 대항해시대는 곧 대서양으로 열린 항구의 발전을 뜻하며, 우엘바와 카디스, 두 개의 항구를 끼고 있는 세비야는 제국 남부의 중심지로 줄곧 발달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유난히 큰 성당, 유난히 금박을 많이 씌운 성상을 구축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 부와 권위의 상징인 세비야 대성당을 보러 갔는데, 입구의 박물관을 들어서자마자 에그머니.

 

 

식도와 척추의 단면이 너무도 선명하게 묘사된 사람의 목부터 보게 됐다.

 

 

 

산 후안 바우티스타(San Juan Bautista)가 대체 누군가...했더니 Saint John Baptist. 그러니까 우리 말로 세례 요한이었다.

 

살로메의 복수 때문에 목이 잘렸다는 그 양반. 그런데 그 머리를 이렇게 정교하게 묘사해 놓은 조각품은 대체....;;

 

 

 

두 성스러운 존재가 세비야 대성당의 상징인 히랄다 탑을 가호하는 그림이다. 한쪽은 아마도 성모 마리아일 듯 한데 다른 한 쪽은 대체 누구... 아무튼 손에 종려나무를 든 이런 수호신의 묘사는 세비야에 대단히 흔하다. 종려나무 가지가 바로 세비야의 상징이라서.

 

아무튼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뜨왓.

 

 

 

 

 

정말 거대하고...길다.

 

 

지난번에 본 세비야 대성당의 모습. 그림 앞쪽이 북쪽이고, 그림에서 보이지 않는 남쪽에 관광객 용 입구가 있다.

 

 

 

 

그리고 북쪽이 위로 가게 그려진 지도. 남쪽 입구가 관광객의 출입구라고 했지만 사실은 입구 왼쪽으로 돌아서 정작 성당 내부로 들어서게 되는 건 위 지도의 숫자 10번이 그러진 지점 부근이다.

 

지도의 11, 12, 16, 17, 23, 24, 27 등으로 되어 있는 작은 방들은 스페인어로 카필라(Capilla), 즉 영어의 chapel에 해당하는 예배당이다. 지도의 왼쪽 상단에 있는 성소 교회에서도 보았듯 큰 대성당 안에, 세비야 유력 가문들이 각각의 예배당을 운영해 온 셈이다.

 

 

 

그 각각의 예배당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네만의 제단을 화려하게 장식해 가문의 영광을 뽐냈다. 무리요나 엘 그레코 같은 유명 화가들의 그림, 동방에서 가져온 희귀한 성상 등 갖은 보물들이 이 안을 장식했다.

 

 

 

 

세비야 대성당은 길이가 긴 쪽이 135m, 짧은 쪽이 100m인 직사각형의 모습이다. 천장의 가장 높은 곳이 42미터, 물론 첨탑인 히랄다 탑을 뺀 천장 얘기다. 히랄다 탑 꼭대기는 105m에 달한다. 그 기둥과 내부의 공간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위압한다.

 

 

각각의 카필라들은 이런 스테인드 글라스 하나와,

 

 

이렇게 요란하게 장식된 제단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제단의 양쪽 벽면은 이런 식으로 온갖 고전 회화들로 가득하다.

 

한마디로 카필라의 규모가 각 가문의 세 대결인 셈이다.

 

이런 카필라들을 구경하며 동쪽으로(동쪽에 주 제단이 있으므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거대한 볼거리가 눈길을 장악한다.

 

 

합창대석의 양쪽에 장착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정말 크고 위압적이다. 다른 표현이 필요 없다.

 

 

 

이런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합창대석의 좌우에 하나씩 배치돼 있다.

 

나무로 조각된 디테일 하나 하나가 섬세하기 이를데 없다.

 

합창대석을 지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네 사람이 떠받든 관이 나타난다.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지다.

 

 

 

 

 

지도의 파란 별 모양이 있는 곳이 바로 콜럼버스의 묘지. 별 왼쪽 위의 Coro는 코러스, 즉 합창석을 말하며 그 바로 옆의 Capilla Mayor는 흔히 말하는 High Altar, 즉 이 성당의 주 제단을 말한다. 물론 그보다 더 동쪽 끝에는 Capilla Real, 즉 왕실 예배당이 있다.

 

 

 

콜럼버스의 묘를 상징하는 이 거대한 석상은 네 사람의 왕이 콜럼버스의 관을 들고 대성당의 남쪽 문을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형상이다. 네 왕은 각각 카스티야, 아라곤, 레온, 나바라, 즉 스페인이 통일되기 전에 있던 네 왕국의 왕들이다.

 

그러니까 이 네 왕이 운구를 할 정도로 대단한 위업을 남겼다는 얘기다.

 

 비록 죽은 뒤이지만 대단한 예우다.

 

 

 

문득 관 바닥이 궁금해졌다.

 

 

이렇게 생겼다.

 

 

그의 업적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지금껏 여러모로 말이 많지만,

 

대장부로 태어나 죽어서 이런 예우를 받는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콜럼버스의 묘를 지나면 오른편(그러니까 남쪽)으로 성구실과 보물창고에 이른다.

 

 

같은 실내고 별다른 조명이 없는데도 성구실은 무척 밝다.

 

천장을 보면 바로 이유를 알 수 있다.

 

 

다중 쿠폴라를 통해 빛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밖에서 보면 이런 식으로 돔의 상부에 채광창을 두어 빛을 성당 안으로 스며들게 한 배치다.

 

 

 

물론 사진에서 보듯 필요한 곳에는 각각 조명이 배치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쪽 보물창고는 훨씬 밝다.

 

 

 

언뜻 보기에도 어지간한 공력으로는 만들기 어려웠을 보물들이 즐비하다.

 

 

그, 어린아이(아무리 아기 천사라고는 하지만)들의 머리통을 밟고 선, 인자하기보단 잔혹해 보이는 성모상.

 

 

 

 

몇 안되는 출처를 알 수 있는 작품 중 하나.

 

조각가 페드로 롤단(Pedro Roldan)이 만든 카스티야 왕 페르난도 3세의 조각이다.

 

뒷날 '산 페르난도(성 페르난도)'로 추앙받은 페르난도 3세는 13세기 중엽, 세비야를 탈환해 기독교도의 품으로 되돌린 왕이다. 이때문에 산 페르난도라는 지명은 라틴 아메리카 문화권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이런 성구실 안에도 작은 파티오가 있고, 파티오 안에 분수가 있는 것은... 누가 봐도 이슬람 양식의 반영임을 알 수 있다.

 

 

 

 

 

 

 

 

 

 

 

뭐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아무튼 보물의 산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날따라 주 제단 Altar Mayor와 왕실 예배당 Capilla Real 이 보수중.

 

보수막이라도 찍어 올 걸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주 제단은 목각에 신대륙에서 가져온 1.5톤의 황금을 들이 부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생겼다.

 

세비야 관광 진흥 사이트에서 퍼옴.

 

 

 

 

 

 

뭐 대신 이 성당을 대표하는 사이트 중 하나인 은의 제단 Altar de Plata.

 

 

 

 

흔히 보는 기독교적인 상징과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사실 이런 건 처음 봤다.

 

오히려 태양신 숭배의 상징이라면 모를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일단 세비야 대성당의 내부 관람을 마쳤다.

 

 

흔히 서양의 대성당을 들어가면, 건물 전체가 왠지 드래곤을 형상화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성당 내부를 들어서면 거대한 용의 몸속에 들어온 것 같다는 느낌.

 

특히나 이 거대한 세비야 대성당의 천장은 용의 등뼈를 보는 듯한 상상을 자아냈다.

 

 

사실, 밖에서 보기에도 좀 그렇게 보이는 구석이 있다.

 

 

 

 

어느 카필라엔가 있었던, 아무리 봐도 엘 그레코의 작품인 것 같은 그림 한 점.

 

(뭐 영향을 받은 화가일 가능성도 당연히.)

 

 

어떤 카필라는 이렇게 문을 열어 놓고 청소중이기도 했다.

 

위쪽의 초상화들은 아마도 자랑스러운 역대 귀족 가문의 조상들인 듯.

 

자. 이제 히랄다 탑을 오를 차례다.

 

 

 

728x90

로시니의 오페라 제목이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세비야 Sevilla 의 이발사'로 바뀌어 자리잡은 건 아마도 1992년 세비야 엑스포를 전후해서였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1992년은 '투우와 태양, 다혈질의 나라'였던 스페인이 '세련되고 매력적인 나라'라는 브랜딩을 위해 전력투구했던 해인 듯 하다.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같은 해다.

 

세비야는 이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흔적으로 유명한 도시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두 개의 문화 유산, 투우와 플라멩코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착시킨 곳이 바로 세비야라고 한다. 프랑스 소설가 메리메는 세비야의 담배 공장을 배경으로 소설 '카르멘'을 썼고, 이를 비제가 불멸의 오페라로 만들었다. 카사노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설적인 바람둥이 돈 후안의 근거지도 세비야다.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를 거쳐 마드리드로 가는 일정. 과연 중간에 어디를 거쳐야 할까 하는 걸 놓고 잠시 고민했는데, 가 보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그래도 일단 세비야를 빼놓을 수는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고? 일단 대성당 Catedral de Santa María de la Sede 이 있기 때문에.

 

스페인의 도시 치고 카테드랄이 없는 도시는 없지만, 그래도 세비야의 카테드랄은 다른 도시와는 다른 각별한 의미가 있다.

 

 

 

세비야 대성당 안에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

 

15세기 말. 당시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던 대국은 포르투갈이었다. 항해왕 엔리케를 비롯해 바스코 다 가마, 바솔로뮤 디아스 등 명성 높은 탐험가들의 활약에 의해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해안을 따라 인도양으로 진입해 인도 서안에 이르는 무역로를 개척하고 거대한 부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비롯한 많은 선각자들은 생각했다. 지구는 둥글다(많은 사람들이 '지구는 둥글다'는 주장을 갈릴레오가 처음 한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지동설이나 지구 자전설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별개의 주장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이미 기원 3세기 이전,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널리 알린 주장이다). 만약 남쪽으로 돌아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서 인도가 나왔다면, 반대로 서쪽으로 똑바로 나아가도 인도에 도달할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많은 모험가들(당시의 벤처 투자자들)이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대개의 투자자들은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1492년 1월, 코르도바에서 역사적인 영토 회복으로 한창 들떠 있던 이사벨라 여왕을 후원자로 삼는 데 성공했다(물론 6년이나 공을 들인 끝의 성공이었다). 그리고 1492년 4월3일, 콜럼버스는 니냐, 핀타, 그리고 산타마리아라는 이름의 세 범선을 이끌고 지금 우엘바(Huelva)의 일부인 작은 항구 팔로스 델 라 프론테라(Palos de la Frontera)를 출발했다.

 

제노바 출신의 이탈리아인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코르도바에서 이사벨라 여왕에게 투자 허락을 받고, 산타페(그라나다 부근의 소읍)에서 '발견된 땅의 총독이 되고, 신대륙 수입의 10%를 갖는다'는 약정에 서명했고, 팔로스에서 1차 원정을 출발했고, 서인도제도에 도착했다가 바르셀로나로 귀환,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라 여왕 부부를 알현하며 원정의 성공을 알렸다.

 

저 많은 인연 있는 땅을 두고 왜 세비야에 콜럼버스의 묘가 있을까. 그 이유는 세비야야말로 대항해시대 스페인의 영광을 가장 크게 누린 도시였기 때문이다. (다음 글로 이어짐)

다시 시점은 그라나다를 출발할 때로 거슬러 올라감. 

 

 

 

그라나다에서 세 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세비야. 입구의 야자수 가로수가 손님을 반긴다.

 

그라나다-세비야 구간은 기차 버스 모두 가능하고, AVE가 아직 다니지 않아 시간도 얼추 비슷하다. 단지 버스가 약간 싸다.

 

뭐 꼭 가격이 싸서라기보다, 스페인의 고속버스는 어떤지 한번 경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ALSA 버스는 깨끗하고 편했다. 3시간 짜리 노선이라 그런지 중간에 정차는 없었고, 시속 100Km를 준수했다. 물론 도로 중간을 봐도 한국식의 거대한 휴게소는 눈에 띄지 않았다. 주유소와 편의점, 화장실 정도만으로 구성된 휴게소는 중간에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오래 전 이탈리아의 아우토스트라다에서 들렀던 휴게소는 그래도 커피숍과 카페테리아 정도의 설비를 갖춰 놓고 있었는데, 이게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차이인지, 아니면 그라나다-세비야 구간이 짧아서 없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ALSA 버스는 와이파이를 제공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터지지는 않았다. 옆자리 미국인의 아이폰도 마찬가지. 그 외에는 깨끗하고 쾌적했고, 인터넷으로 예매도 할 수 있어 간편했다.

 

물론 한국의 우등버스와 비교할 수준은 결코 아니었지만.

 

 

 

세비야 고속버스 터미널. 나름 운치있게 꾸며져 있다.

 

공식 명칭은 프라도 데 산 세바스티안(Prado de San Sebastian) 터미널.

 

그냥 Estacion 은 역, Estacion de Autobuses는 버스 터미널이다.

 

 

 

밖으로 나오면 이렇다.

 

 

 

단 1박만을 위해 구한 민박 숙소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장점은 세비야 구시가와 가깝다는 것.

 

투우장 바로 옆이었고, 대성당까지 빠른 걸음으로 5분 정도 걸렸다. 또 직접 제작한 지도를 나눠주고 포스트를 설명해 주는데, 특히 식당 추천이 좋았다. 초행길에 꽤 도움이 됐다. 침구류에서도 불쾌한 냄새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단점은 대부분의 민박이 그렇듯 바닥이 아예 맨발로 다닐 수 없는 돌 바닥이고, 욕실에서 방까지 신을 신고 이동해야 한다는 것. 2인실이라도 방 안에 욕실이 있는 구조와 복도를 지나 공용 욕실이 있는 구조는 천지차이다. 그리고 식사는 전혀 기대할 바가 못 된다. 그냥 혼자 자취하면서 먹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워낙 대단한 대접을 받아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주요 관광 포스트와의 연결점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추천. 나머지 요소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면 비추.

http://cafe.naver.com/sevilla5happy.cafe

 

 

 

지도에서 B지점이 민박집, A지점이 대성당 모퉁이(대성당이 워낙 거대하다. 농담 아니고 지도상의 저 구획이 모두 성당이다).

 

도보로 5분은 조금 과장이고 7,8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지도 왼쪽의 큰 M자가 써 있는 곳이 프라도 데 산 세바스티안, 즉 버스를 내린 고속터미널.

 

거기서 꽤 큰 공원(공원 이름도 프라도 산 세바스티안인 모양이다. 버스 터미널 이름과 같다)을 건너가면 바로 스페인 광장 Plaza de Espana이다.

 

그러니까 작정하고 대성당 부근, 그리고 에스파냐 광장만 보기로 맘먹은 사람에겐 좋은 입지가 아닐 수 없다.

 

 

 

숙소에서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 있는 식당 피멘톤(Pimenton)은 반드시 들러 볼만한 곳. 나중에 자세히 소개한다.

 

 

저 피멘톤 앞길로 죽 내려가 도착한 카테드랄(Cathedral, 대성당)의 남쪽 면(엄밀히 말하면 성소교회의 남면).

 

세비야를 대표하는 교통 수단인 트램이 마침 지나갔다.

 

 

 

트램의 뒷모습. 1.5유로에 시내의 주요 지점을 연결해 주는데 꽤 편리하다.

(카테드랄 앞에서 고속터미널까지 단 2정거장. 5분이면 도착)

 

표를 끊고 차를 탔는데, 전혀 검표와 관련된 수단이 없어 매우 당황했다.

물론 처음엔 당황하지만, 다음엔 매우 기뻐하게 된다.

 

 

 

꽤 걸어야 카테드랄과 성소교회(Iglesia del Sagrario: Church of Sanctuary)의 경계면에 도착한다.

 

왼쪽은 왕실예배당의 입구, 오른쪽은 카테드랄의 서쪽 문.

 

 

 

그러니까 저 빨간 동그라미를 친 곳이 바로 대성당의 부속 건물인 성소교회다.

 

지금 서 있는 길이 저 빨간 선이 그어진 길이고.

 

 

 

전에도 말했듯 스페인의 카테드랄 앞길은 그리 넓지 않아서 전경을 찍기가 편치 않다.

 

그래서 꼭 이렇게 올려찍기를 해야 한다.

 

그래도 이 서문, 즉 승천의 문(Fuerta del la Asuncion)이 이 거대한 성당의 메인 도어라니 찍어 둬야지.

 

 

 

서문의 좌우를 자세히 찍은 뒤, 옆의 성소 교회로 입장한다.

 

 

 

성소교회 의 내부. 천장의 흰 천은 보수공사를 위해 씌워 놓은 것인데, 제법 잘 어울렸다.

 

성소교회, 즉 영어로 하면 Church of Sanctuary 인데, 무엇을 위한 성소인지는 잘 모르겠다.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지도 않고... (보기에 따라선 깊숙한 곳일 수도 있다.)

 

아마도 예수의 유골이나 성인의 유골을 안치했다는 의미로 Sanctuary라고 한 듯.

 

 

 

왕실예배당만 해도 규모가 상당하다. 물론 잠시 후 보게 될 대성당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규모.

 

스페인식 성당의 배치를 보면, 복도(?) 양쪽으로 있는 작은 방 하나 하나가 모두 예배당 역할을 한다.

 

이런 작은 방들을 카필라 Capiilla 라고 한다.

 

 

 

작은 방 하나 하나마다 이런 식의 성상 배치가 되어 있다.

 

대부분은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예배당이다.

 

 

 

중앙의 주 성상만이 예수를 모시고 있다.

 

 

 

조금 자세히 보면 이런 모습.

 

예수의 유해 일부가 안치되어 있다면 아마도 이 제단 뒤편일 것 같다.

 

나머지는 거의 모두 성모상이다.

 

 

이렇게 금빛으로 찬란하게 묘사된 성모상.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성모의 발 아래를 받치고 있는 올망졸망한 아기 천사상들이다.

 

신체의 다른 부위는 보이지 않고 얼굴만 강조되어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좀 징그럽기도 하고, 성모가 아이들의 머리통을 밟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식으로 천사의 몸통을 다 묘사하고 있다면 그나마 낫긴 하다.

 

아무튼 좀 적응하기 힘든, 스페인 식의 묘사법이다.

 

 

주 예배석 위쪽의 쿠폴라에서 들어오는 빛. 흰 천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보수중이라 조금 더 돋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카테드랄의 앞길로 이렇게 한가롭게 관광객 용 마차가 다닌다.

 

 

 

서쪽 문 근처에서 죽 내려와 왼쪽으로 꺾어지면 대성당의 남쪽 문, 즉 관광객을 위한 일반 입구가 나타난다.

 

위 사진의 파란 세모가 있는 곳. 바로 여기다.

 

 

 

이것이 세비야 대성당의 대략의 입면도. 아까 위에서 본 승천의 문(Puerta de la Asuncion)이 오른쪽(그러니까 서쪽)에 있고, 지금 서 있는 면은 저 입면도에서 안 보이는 남쪽이다.

 

그 남쪽에는 왕자의 문(Puerta de la Principe)이 있다.

 

바로 이 문. 이 문 왼쪽이 관광객용 출입구다.

 

 

 

남쪽면에 위치한 카테드랄의 동쪽 출입구. 개인 입장객은 이곳으로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단체 입구는 북쪽, 히랄다 탑 옆구리에 따로 있다)

 

입구의 청동상은 세비야의 문장이 든 깃발과 세비야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입구로 처음 들어가면, 세비야 대성당과 관련된 박물관을 먼저 보게 되는데,

 

 

 

 

에그머니나. 이게 누구야.

 

 

728x90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부탁했다.

 

"산 건너편에서 알함브라의 야경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매우 로맨틱한 식당이 있다고 들었다. 거기서 제일 전망이 좋은 자리를 예약해 다오."

 

스페인 사람답게 잘 생긴 직원은 씩 웃으며 최고의 장소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테라스 자리를 달라고 했더니 웃으며 10월 밤 날씨면 테라스에서 밥 먹다가 얼어 죽을 수 있단다. 대신 창이 넓은 식당을 추천하겠다며 '나만 믿어'라는 눈빛을 쏜다. 말로만 듣던 스페인 남자의 눈빛이다. 남녀 안 가리고 쏜다.

 

그래서 간 곳이 여기. 에스뜨레야스 데 산 니콜라스 Estrellas de San Nicolas.

 

Callejón Atarazana Vieja, 1, 18010 Granada, ; +34 958 28 87 39

 

 

산 니콜라스 는 흔히 말하는 '알함브라 앞산' 동네, 즉 알바이신 지구의 꼭대기 쯤에 있는 전망대의 이름이다.

 

본래 건너편에 있는 알함브라를 보는데 최적화된 전망대고, 그 전망대 바로 옆에 이 레스토랑이 있다.

 

 

 

식당의 외부 전경.

 

 

 

낮에 알카사바에서 바라본 산 니콜라스 전망대. 가운데 사람들이 서 있는 공터가 산 니콜라스 전망대고, 오른쪽 동그라미 친 곳이 바로 이 레스토랑이다.

 

 

 

식당 내부는 그냥 흔한 산장식 레스토랑. 그닥 운치는 없다. 오직 알함브라의 아경이 있을 뿐이다.

 

창가 테이블을 달라고 분명히 요청했는데 '이미 그 자리는 오래 전에 예약된 자리라' 어쩔 수 없단다.

 

성질 같아선 나가버리겠는데, 비까지 내리는 이역만리. 치안도 좋지 않다는 지역에서 무리하면 안 된단다.

 

아쉬운 마음에 창 너머 풍경을 도촬하는데 그도 쉽지는 않다.

 

창가 자리를 내놓으라고~~

 

 

 

 

자료 사진을 보니 여름철엔 아예 창틀을 뜯어내는 모양이다. 이편이 훨씬 잘 보이긴 하겠다.

 

 

 

 

첫 메뉴. 세가지 치즈와 견과류가 들어간 샐러드.

 

머리에 떠오르는 바로 그런 맛이다. 맛있는 재료들을 모아 만들었으니 당연히 맛이 있을 수밖에.

 

 

 

여전히 마음은 창가 자리에 있는데,

 

 

 

그라나다 지역의 좋은 물로 만들었다는 탄산수.

 

물맛 좋다.

 

냉수 먹고 속 차리자.

 

 

 

메인 디시. 안달루시아 풍의 쇠꼬리 찜.

 

와인 소스가 진한 맛을 내는데, 사실 쇠꼬리를 갖고 한 요리를 골라 먹으라면 한국식 꼬리찜을 먹겠다.

 

꽤 유명한 음식이라 맛이 궁금했는데, 한국식 꼬리찜을 먼저 먹어 본 사람이라면 이걸 먹고 감동하긴 쉽지 않다. 느끼한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비추.  

 

 

 

 

식후. 디저트 와인과 함께 저 통 안에 계산서를 꽂아서 내 온다.

 

나름 귀염을 떤다.

 

 

 

 

창가 자리 손님이 먼저 자리를 뜬 김에 다시 촬영 시도.

 

아니 왜 알함브라는 잘 안 나오고 뚱보만 나와.

 

이때까지만 해도 식당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종업원에게 산 니콜라스 전망대가 어디냐고 물으니 건물 바로 바깥이란다.

 

진작 얘기하지.

 

 

 

밖으로 나왔다. 비에 젖은 알함브라가 훨씬 잘 보인다.

 

사진 왼쪽의 높은 건물이 대사의 방이 있는 코마레스 탑, 그리고 그 뒤로 약간 높이 보이는 흉물이 카를로스5세 궁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높은 성벽이 알카사바.

 

 

건물 측면도.

 

바로 옆에 있는 산 니콜라스 전망대로 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 목적인 알함브라.

 

 

생각만큼 잘 나오진 않는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다.

 

 

 

비 때문인지 문 닫은 앞집 식당.

 

날씨 좋은 날이면 이 집에 가서 노천 테이블을 잡는게 여러 모로 좋을 듯 하다.

 

 

 

 

어쨌든 호텔로 귀환.

 

 

 

밤에 보면 정말 그럴듯한 로비가 있다.

 

 

그리고 방 밖으로 내다 본 그라나다 시가 야경. 멋지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한 공간도 나쁘지 않다. 이 호텔, 꽤 추천할 만 하다.

 

다만 성수기 때는 꽤 비쌀 것 같다.

 

 

 

아침 식사 후. 안달루시아를 고속도로로 가로질러 세비야로 향했다.

 

잇힝, 세비야!

 

 

728x90

'우리 결혼했어요'가 아닙니다. '꽃보다 할배'도 아닙니다.

 

가상 결혼 프로그램이면서 새롭게 등장한 실버 예능의 기수입니다. 제목은 '님과 함께'.

 

티저를 보시면 느낌이 확 올 겁니다. 제목은 '재혼자들'.

 

 

 

 

그러니까 임현식-박원숙씨가 드라마 아닌 예능에서 가상 부부 체험을 하는 얘깁니다.

 

두 분은 수없이 많은 드라마에서 커플 연기(주로 서민적인 정서가 뚝뚝 떨어지는)를 보여주셨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작은 뭐니 뭐니 해도 '한지붕 세가족'.

 

그 변형입니다. 2차 티저. '한지붕 새가족'.

 

 

 

 

'산업 폐기물 같은 맛'...이란.

 

그런데 문득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니 추억의 드라마가 솔솔 생각납니다. 바로 '한지붕 세가족'.

 

 

 

'봄바람 분다고 장독대 꽃피나'로 시작하는 김창완의 국악풍 주제가가 인상적인 오프닝.

 

 

 

 

 

'한지붕 세가족'은 자료에 따르면 1986년 11월9일부터 1994년 11월13일까지 방송됐습니다. 방송 시간은 몇번 바뀌었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일요일 아침을 고수했던 작품입니다. 참 지금 보니 젊은 모습.

 

 

 

제목이 한지붕 세가족인 것은 주인 집(현석)이 집의 2층과 별채를 세놓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서민 거주 지역에선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거주 형태였죠. 그 시절을 잘 모르는 분들은 영화 '완득이'에 나오는 동네를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아빠 임현식, 엄마 박원숙, 아들 이건주로 구성된 순돌이네는 동네의 전파사 및 만물 수리점이었죠. 그리고 순돌 아빠의 라이벌(?)로는 동네 세탁소 주인인 만수 아빠 최주봉이 있었습니다. 건강하지 못했지만 우등생인 만수와 늘 노는 것과 먹는 것만 밝히는 순돌이의 캐릭터가 대조를 이뤘습니다.

 

세월이 흘러 집 주인이 임채무로 바뀐 뒤에는 임채무의 처남 강남길과 애인 차주옥, 그리고 강남길의 어린 시절 친구인 김영배가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니까 위 사진은 90년대 '한지붕 세가족'의 모습인 듯 합니다.)

 

 

 

 

특히 강남길의 고교 동창이며, '시골 고등학교에선 동네와 학교를 주름잡는 멋진 친구였지만 나이를 먹어 이제는 허세밖에 안 남은' 김영배의 캐릭터가 인상적이었죠.

 

 

 

사실 작가와 연출자들은 소재도 떨어지고 시청률도 고르지 않아 몇번이고 종영이 검토됐지만 그럴 때마다 "'한지붕 세가족'을 없애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 MBC로 빗발쳤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드라마에 '회장님'과 '사모님'이 나오던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 시절엔 서민들의 애환을 그린 이런 드라마가 있었죠.

 

또 수많은 스타들이 '한지붕 세가족'을 통해 안방극장에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한석규 음정희를 비롯해 김혜수 차인표 등도 이 드라마를 거쳐갔죠.

 

그래도 화려한 스타 후보생들보다는 역시 서민적인 정취를 가진 연기자들이 '한지붕 세가족'에선 더 빛을 발했습니다.

 

 

 

 

 

그렇게 8년을 방송한 '한지붕 세가족'도 막을 내리고, 다들 나이를 먹었습니다.

 

개구장이 꼬마였던 순돌이 이건주가 어느새 어른이 됐죠.

 

 

 

 

 

 

 

 

그리고도 몇해 더 세월이 흘러 순돌아빠와 순돌엄마는 예능 속에서 맺어졌습니다.

 

재혼을 염두에 둔 가족 예능인 '님과 함께'에는 순돌이네 커플과 함께 이영하-박찬숙 커플도 출연합니다.

 

 

인생에서 일어날 법 한 웬만한 일들은 다 겪어 본 사람들의 이야기.

 

과연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청춘들과는 또 다른 재미가 기대됩니다.

 

 

728x90

그리스 출신의 위대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에서 그라나다 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건축물과 음악의 일체감. 나는 이미 코르도바의 이슬람 사원과 세비야의 알카사르에서 이런 것을 짐작했다. 그런데 여기 그라나다에서 그것은 가장 명확하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드러났다. 아랍 건축물의 최후이자 최상의 노력은 모든 물질적 형태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벽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것을 호리호리한 기둥이나 아치로 대체했다. 혹은 아랍의 카펫처럼 벽들을 조각하고 디자인했다. 그렇게 그것들은 무게에서 해방되었다.

 

기둥들은 더 가늘어졌을 뿐만 아니라 더 낮아졌다. 아치는 영묘하게 물결친다. 장식물들은 사상처럼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 된다. 단일한 주제가 주어지고, 이 주제는 수학적인 정교함과 환상의 풍요로움으로 무한히 울려퍼진다.

 

아랍의 음악가이자 건축가들은 빛과 공기와 색으로 공간을 채웠다. 그들은 대담한, 하나의 특별한 목적만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물질을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고정되고 무거운 모든 내용물을 추상화시켜서 오직 지적인 윤곽만을 남기는 것이었다."

 

실제로 보고 나니 진정 실감이 난다.

 

 

윗글의 이상이 가장 잘 실현된 곳을 찾자면 역시 나스르 궁전 가운데에서도 사자의 정원 Patio de los Leones 을 꼽게 된다.

 

사자의 정원인데 사자는 어디 있다고 궁금해 하실 분들, 

 

사자 나온다.

 

 

 

뒤로 돌면 이런 장식의 문.

 

앞을 보면 생각보다 규모는 작지만 자못 감동을 자아내는 사자의 정원이 전경을 드러낸다.

 

 

 

 

 

 

나스르 궁전 평면도. 대략 파란 선을 따라 구경을 하게 된다.

 

중앙의 긴 빨래판 모양이 도금양(아라야네스)의 정원 Patio de los Arrayanes, 이고 우하단에 사자의 정원이 보인다.

 

 

사자의 정원에 있는 사자는 우리 민화 속 호랑이를 닮았다. 공포의 대상이 아닌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사자상이 12마리인 것은 매 시간마다 물을 흘려 내보내는 것으로 시계의 역할을 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모든 사자가 입을 통해 물을 흘려 내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주위의 방들.

 

첫번째 방은 흔히 아벤세라헤의 방 Sala de los Abencerrajes 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팔각별 모양의 천장은 나스르궁 최강의 조형미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방은 나스르 궁에서 가장 흉악한 전설을 담고 있는 방이다.

 

아벤세라헤 일족의 남자 30여명이 이 방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이유는 정치적 음모에 대한 발각설과 왕비와의 불륜설이 있다. 가이드북에는 이 방에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이 있다는 등의 호러 스토리를 전하고 있지만 사실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천장의 아름다움이 매우 인상적인 방이다.

 

어쨌든 성 전체가 기독교도들에게 넘어가기 전에도, 넘어간 뒤에도 이 방은 께름칙하다는 이유로 그리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여행 사이트나 기행문의 '알함브라' 파트를 장식하는 바로 그런 비주얼이다.

 

사실 사자의 정원을 구성한 이 수많은 기둥들이 사진으로 볼 때보다 못하다고 실망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그 많은 관광객용 사진들은 대개 여름의 해질녘에 찍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진들 속에서 이 기둥들은 금빛으로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직접 가서 보면 솔직히 그런 느낌은 아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날씨가 꽤 흐렸다. 해가 쨍쨍 나는 맑은 날엔 또 다른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꽤 조명을 타는 유적이다.

 

 

 

벽에 어른어른 그림자 같은 것이 비친다. 이런 것들이 아벤세라헤 일족의 핏자국인지도.

 

 

그리고는 왕의 방. Sala de los Reyes

 

스페인어의 Sala는 방(Room)으로도, 홀(hall)로도 번역되는데 이 경우엔 그냥 홀이라고 하는게 나을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Sala de los Reyes 는 방도 홀도 아닌 그냥 긴 회랑이다.

 

 

 

그 다음 방은 두 자매의 방 Sala de Dos Hermanas 이라고 불린다.

 

특별한 전설이 있는 방은 아니다(심지어 정말 자매가 살았다는 보장도 없다). 보압딜과 그 이전의 군주들이 가족과 함께 거주하던 방으로 알려져 있다. 저 높은 천장에서부터 들어오는 빛이 꽤 아름답게 방을 감싼다.

 

또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아름답다.

 

 

 

 

이렇게 해서 사자의 정원을 지나 나스르 궁의 부속 건물로 접어든다.

 

 

 

눈썰미 있는 사람이 보면 창틀의 모양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고,

 

 

천장의 글자도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여기는 카를로스 5세가 잠시 사용했다는 황제의 집무실 Habitaciones de Carlos V 이다.

 

 

방 자체가 지금까지 거쳐온 알함브라의 방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누가 봐도, 기독교도들이 알함브라의 주인이 된 뒤에 구축한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음에 나타나는 방이 바로 '워싱턴 어빙의 방'.

 

전에 말했던 '알함브라 이야기'의 저자이며, 사실상 서구 사회에 알함브라 관광 붐을 일으켰던 인물이기도 하다. 중세 이후 먼지에 덮여 있던 알함브라를 세상에 널리 알린 덕분에 관광객들이 밀려오고, 그 덕분에 스페인 정부도 알함브라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고 정비에 나섰다는 얘기다.

 

어빙은 물론 '스케치북'의 저자로 알려진 미국 문학의 비조이기도 한데, 이렇게 알함브라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방이 남을 정도의 영광은 역시 알함브라를 소개한 공이 아닐까 싶다.

 

(국내 번역 제목은 '알함브라' 1권과 2권인데 그라나다로 갈 때 꼭 읽고 가야 할 정도는 아니다. 감상이 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다고나 할까. 맘에 드는 문장은 아니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동물의 형상.

 

아시는 분 있으면 설명 좀...

 

 

 

워싱턴 어빙의 방을 나선 테라스에서 구 시가 쪽을 바라보면 이런 정경이 펼쳐진다. 안달루시아 특유의 구조를 가진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 이런 장난도 쳐 보고 싶어진다. 인형 같은 집들이다.

 

 

 

 

여기까지 왔으면 나스르 궁 구경도 거의 끝이다.

 

쇠창살의 정원 Patio de la Reja. 글자 그대로 네 면이 모두 건물에 둘러 싸인, 정통 사각형 파티오다. 작고 아담.

 

 

 

그리고 나서 건물을 돌아 나오면 오렌지 정원 Jardín de los Naranjos 이 나온다.

 

 

옆으로 돌아 들어가면 아랍풍 목욕장의 유적이 등장.

 

 

 

타일로 방수가 되어 있는 목욕방. 별 모양의 천장 창을 통해 조명을 해결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이렇게 해서 다시 오렌지 나무 정원을 거쳐 밖으로 나오게 된다.

 

 

나스르 궁 안녕. 그리고 관람 시간이 끝났다.

 

알함브라는 여기서 안녕.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빗발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의외로 알함브라를 보고 실망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마도 생각보다 매우 작은 규모(나스르 궁에 한정해 이야기할 때), 나스르궁을 보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절차와 줄서기의 번거로움, 또 아마도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직면해야 할 안달루시아의 직사광선과 더위 등이 이런 실망을 부추긴 요인이 아닐까 싶다.

 

알함브라는 다른 중동 지역의 이슬람 유적에 비해 규모와 색채감이 좀 약한 것도 사실이다. 돌과 벽돌의 자연색을 그대로 활용한 유적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마르칸트의 티무르제국 유적의 웅대함과 신비로운 파란 타일에 넋을 잃어 본 사람이나, 이스탄불 톱카피 궁전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금은보화의 빛을 본 사람에게 알함브라는 다소 소박하게 보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알함브라에 대한 열정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전에도 얘기했지만) 알함브라의 아간 관람 사진을 보고 난 뒤였다. 아마도 밝은 태양 아래서는 워싱턴 어빙이 그토록 강조하는 '달빛 어린 전설'이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말하는 '관능적이고 요염한 분위기'를 느끼기 쉽지 않을 듯 하다.

 

언젠가 돌아와 밤의 알함브라를 보게 되길 기원하며.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찾아간 식당...은 다음 편에 소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