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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Toledo. 실질적인 스페인의 역사적 수도. 현재의 수도 마드리드가 스페인의 수도가 된 것은 1561년, 펠리페 2세 때의 일이다. 그 전까지 마드리드는 작은 소읍에 불과했고, 스페인 역사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럼 스페인의 빛나는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가야 할 도시는 어디일까. 사실 바르셀로나 - 그라나다 - 세비야 - 마드리드까지 '꼭 가야 하는 도시'를 잡아 놓고 그 틈새에 어느 도시를 가야 할까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이슬람 유적의 코르도바와 절벽미의 론다, 피카소의 말라가, 백설공주의 도시(?) 세고비아와 요새 도시 쿠앵카 등등의 후보가 난무하는 가운데, 마드리드 일정에서 하루를 빼서 간다면 엘 에스코리알톨레도 중 골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엘 에스코리알 El Escorial 은 수도원/학교/묘지를 겸하고 있는 곳으로,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에 천도한 이후 이 도시를 기념하기 위해 강력한 역사적 기념물을 남기고자 하는 야망으로 건설한 거대한 구조물이다. 더욱이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의 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해서,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엘 에스코리알은 일단 교통이 좀 불편하고, 지명도가 그리 높지 않은 탓에 가 본 사람이 별로 없는데다, 대부분 장소들이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라 뭔가 자료를 참고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사진을 못 찍으면 가 봤다고 잘난체 하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 아무튼 도보 이동을 매우 싫어하는 동반자가 있는 이상 이동 경로가 복잡한 건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론은 : 첫번째 스페인 여행이라면 톨레도를 빼놓아선 안 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매우 잘 한 선택이었다.)

 

 

 

시내 중심부에서 가까운 남쪽의 아토차 Atocha 역에서 톨레도 행 AVE를 타는 것이 가장 손쉽고 빠른 길이다. 워낙 관광객이 많은 노선이라 그리 멀지 않은 길인데도 AVE가 다니고 있어 30분이면 도착한다. 왕복 요금은 50유로 가량 소요.

 

그래서 바쁘지 않은 사람이라면 왕복 10유로 정도면 해결되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단 버스를 탈 경우 1시간~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는 정보. 뭐 조금만 부지런했더라면 버스를 탈 수도 있었는데, 어찌 어찌 하다 보니 기차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도착한 톨레도. 물론 톨레도는 중세의 성곽 도시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므로 시내에 기차역이 있을 리 만무하다. 역은 성에서 차로 약 5~10분 거리에 있다. 걸어가는 것도 괜찮겠으나 30분 가량 소요. 별 고민 없이 택시를 탄다. 4~5 유로.

 

거리를 생각하면 아까울 수도 있겠지만 비싼 기차까지 탄 마당에.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톨레도 성문 앞에 도착한다. 저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톨레도가 시작된다.

 

 

 

택시를 타든 뭘 타든 바로 이 소코도베르 광장 Plaza de Zocodober 광장에서 내린다. 물론 광장이래봐야 농구 코트가 2개 이상 들어가기 힘든 크기다. 왼쪽의 'OPEN'이라고 써 있는 곳이 미니열차 Zocotren l의 출발/종착점. 자동차가 딸린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지 않았다면 꼭 타 봐야 할 시설이다. 

 

 

소코도베르 광장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모습. 그러니까 남쪽 대문을 통해 톨레도 성에 입성해 소코도베르 광장까지 걸어 올라왔다면 바로 이 각도에서 도시를 바라보게 된다. 관광객들은 저어기 보이는 맥도날드(고성에 웬 맥도날드냐고 놀리지 말 것. 바로 옆에는 KFC도 있다. 엄청나게 잘 된다) 매장에서 왼쪽 길이나 오른쪽 길을 택해 걸어 올라가며 관광을 시작하게 된다.

 

일단 왼쪽 길로 올라갔다. 이유는 이 도시의 알카자르를 보기 위해서.

 

 

대략 엇비슷하게 비교하자면, 알카자르는 스페인식 성곽 도시의 방어 핵심 구조물이다. 외성벽이 돌파되어 적이 성 안에 밀려들어왔다고 할 때 두번째 수성전을 전개할 만한, 도시 안의 도시라는 느낌이다. 일본식 성이라면 천수각의 의미라고나 할까.

 

한편으로는 - 혼자 생각이지만 - 대부분의 스페인식 도시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두 건물은 알카자르와 카테드랄(대성당)이다. 카테드랄이 카톨릭의 귄위를 상징한다면 알카자르는 왕이나 영주의 세속 권력을 상징한다. 그래서 영주들은 알카자르를 건설할 때 카테드랄에 기가 죽지 않도록, 보는 이들이 위압감을 느끼도록 심혈을 기울인 것이 아닐까 싶다.

 

카테드랄은 화려하며 장식적이고 우아하되 알카자르는 남성적이고, 군더더기 없이 강직한 미감을 지닌다. 특히 톨레도의 알카자르가 갖고 있는 이런 매력이 극대화된 형태가 바로 엘 에스코리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나는 왠지 이런 쪽에 매력을 느끼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현재 톨레도의 알카자르는 군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부를 들어가면, 이 거대한 건물이 얼마나 장구한 세월 동안 개축을 거듭해 오늘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적이 나온다.

 

 

 

그리고는 바로 전시 시작.

 

그런데 이 전시물이라는 것이 왕년의 밀덕 또는 어쨌든 잠재적 밀덕이라고 할 수 있는 10대~60대 남성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것인 반면, 여성 관람객들에게는 대체 이따위 것들을 왜 시간 내서 봐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들이라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처음부터 이런 식. 스페인을 천년간 장악했던 무어 인 기병의 기본 무장이다.

 

 

 

그리고 많이 보던 스페인식 풀 플레이트 Full Plate 갑옷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역시 사이즈는 작다.

 

 

이런 식의 챙 있는 투구는 불행히도 과거 우리가 익히 보아 온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선 별 감흥 없는 역할들의 전유물이었다. 특히나 영국 해적들을 영웅으로 그린 영화들에선 이 투구는 곧 '거드름은 피우지만 전투만 했다 하면 깨지는 스페인 세력'의 상징이었으니.

 

 

흥미로운 전시. 슬라이드를 이용해 역사적인 전투 현장을 저 노란색과 빨간색 부대 이동을 통해 설명한다. 바닥의 굴곡은 당연히 현지의 지형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역사 교육을 위한 박물관 등에선 충분히 활용할만한 모습이다.

 

 

 

 

대략 3층까지는 과거 알카자르의 자리에 있었던 옛 건물의 토대 발굴 현장을 같이 보여준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면,

 

 

 

현재의 알카자르가 위용을 드러낸다. 네 귀퉁이의 첨탑을 빼고 대략 5~6층 높이라는 느낌.

 

 

 

 

내다보면 그 주위는 모두 평원이다.

 

 

 

어쨌든 이렇게 생긴 건물.

 

 

 

 

 

 

 

 

 

 

정교하고 아름답다. 손 크기까지 고려해 맞춤 제작하지 않으면 사용이 불가능한 제품.

 

 

 

 

 

수많은 실전을 거치며 주인을 보호했을 갑주의 모습. (아니면 단순히 보관상의 실수로 때가 묻은...?)

 

 

이렇게 보면 저 갑옷의 주인공들이 그리 큰 체구는 아니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초기의 총기들은 외형만으로 참 매력적이다.

 

 

영어로는 Musketeer라고 불렀을 총기병. 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총사 銃士 들의 스페인판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건물의 4층 정도로 올라오면 갑자기 화려한 장식적 공간이 나타난다. 이른바 '하늘 위의 중정 Pateo' 인 셈이다.

 

 

 

 

 

 

 

 

과거 왕가의 문장을 전시한 곳에서 확 눈에 띄는 문장. 바로 합스부르크 가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다.

 

 

합스부르크 가라면 대개 오스트리아를 연상하지만 카를 5세(1500~1558, 스페인 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의 후손들은 대표적인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스페인 군주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이자 신성 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문장. 아무리 봐도 스페인의 역사적 전성기는 페르디난드-이사벨라 부부의 결혼과 스페인 전토 통일(그리고 비슷한 시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달), 카를로스 1세에서 펠리페 2세로 이어지는 15세기 말 ~ 16세기 시절로 여겨진다.

 

카를로스 1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 '미남 필립'과 페르디난드-이사벨라 부부의 유일한 혈육인 요아나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미 탄생과 동시에 네덜란드와 스페인 왕위를 확보했고,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가 죽으면서 신성 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다. 현재의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의 상당 부분과 이 나라들의 모든 해외 영토를 한 손에 거머줜 강대한 권력자가 등장한 것이다. 먼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카를 대제(나라에 따라 샤를마뉴, 찰스, 칼, 카를로스라고 발음만 다르게 불리는 이름들의 조상) 이후, 그리고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유럽의 패왕이 되기 전까지 이렇게 넒은 영토를 독차지한 유럽에 없었다.

 

물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독일/오스트리아에 기반을 둔 합스부르크 왕가의 종손이었기 때문이고, 그리 보면 카를로스 1세 자신의 스페인 혈통은 50%에 불과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스페인 사람들이 이 왕에게 굳이 그리 큰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비유를 하자면 명나라 황제가 조선 공주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조선과 명나라 모두의 황제가 되고, 그 후손들이 조선의 왕으로 이 땅을 다스린 뭐 그런 상황이라고 할까. 아무튼 스페인 왕이고 사후에도 아들 펠리페 2세를 비롯해 줄줄이 그 후손이 스페인 왕가를 차지한 데 대해 막상 스페인 사람들은 별 불만이 없는 것 같다. 어찌 보면 그런 논의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는지도.

 

(여담이지만 카를 5세의 후손들인 합스부르크 왕들의 대가 끊긴 1700년에는 역시 스페인 공주를 어머니로 두었지만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태어난 프랑스 왕가의 후손 필립 5세 -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손자인 - 가 스페인 왕이 되면서, 부르봉 왕가의 스페인 왕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렇듯 스페인 왕의 계보를 보면 국내파보다는 수입파가 훨씬 더 많은데, 대체 왜 그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졌는지는 공부가 짧아 모르겠다.)

 

어쨌든 결론: 쌍두 독수리 가슴의 방패가 저렇게 복잡한 것은 저 문장에 들어가야 할 상징물이 그가 다스린 지역의 수만큼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 멋진 형이다.

 

 

 

 

느닷없이 등장하지만 세고비아의 알카자르. 바로 디즈니랜드에 있는 '백설공주의 성'의 모델이 되었다는 그 성이다.

 

물론 뮌헨에 가면 백설공주의 성의 모델은 퓌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라고 한다(사실 이쪽이 더 비슷하다).

 

뭐, 세계의 온갖 성 중에서 가장 멋진 것들을 모아서 지었겠지, 당연히.

 

 

 

 

 

 

대표적인 기병들의 군도인 사브르. 어찌 보면 무어 인들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어느새 현대로 넘어오면 스페인 내전기의 무기들이 등장한다.

 

 

바로 스페인 인민전선군 - 그러니까 프랑코에 맞서 싸운 쪽의 기본 스타일이다.

 

 

 

스페인 내전에 대한 기록은 이번 여행에서 가 본 스페인 어디에도 짙게 남아 있었다.

 

 

전시물은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하루 종일 봐도 좋을 정도로 방대했다. 간혹 가다 이런 깜찍한 전시물도 있다.

 

나폴레옹 군대와의 전투 장면 묘사.

 

 

정원으로 나오면 보오얀 톨레도 교외가 펼쳐진다.

 

 

살짝 장난친 그림. 그리고 건물 밖에는 중세 ~ 근세의 무기들을 전시해 놓고 있는데 묘한 물건이 눈길을 끌었다.

 

 

아니 이 친숙함은 뭐지...?

 

 

 

 

 

영화 '신기전'을 보신 분들이면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가? 바로 조선시대의 다연장 로켓 무기인 화차의 모습이다. 그 중에서도 신기전(神機箭)을 장착한 화차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다.

 

 

 

정면으로 보면 더 많이 보던 그 물건이다.

 

 

이름도 Hwach. 화차의 공식 표기인 Hwacha와 한끗밖에 다르지 않으니 중국이나 일본의 비슷한 물건을 가져다 놓은 건 아닌 듯 싶다. 저 설명을 독할 능력은 없으나 동양에서 온 물건(oriental로 추측해 보건데) 이라는 것은 분명한 듯 하다. 대체 어쩌다 이 화차는 이역 만리, 톨레도 알카자르 앞에까지 와 있게 된 것인지.

 

물건의 인연이 기구하기도 하다. 아무튼 아방(我邦)의 흔적을 만리 밖에서 만나니 실로 반갑기 짝이 없었다.

(이건 뭐냐 열하일기도 아니고...)

 

알카자르 방문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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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밤 풍경을 보기 위해 나섰다.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가 봐야 한다고 하는 곳은 마요르 광장 주변과 푸에르타 델 솔. 그래서 마드리드의 상징 중 하나인 마요르 광장 Plaza Mayor 근처로 나섰다.

 

 

 

마요르 광장 역시 스페인의 다른 광장들처럼 건물로 둘러 싸여 있다. 애당초 처음에는 광장이 있고 그 주위에 건물이 선 것이겠지만, 이제는 광장을 보기 위해선 건물들 사이로 난 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이런 느낌.

 

문득 지금도 약간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청계천 구 세운상가 언저리의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쇠락한 동네가 되어 가고 있지만 아주 오래 전에는 그 구름다리같은 청계천 상가의 기둥 아래로 제과점이며 술집, 금은방 같은 점포들이 이어졌다.

 

마요르 광장 주변의 고풍스러운 기둥과 가스등 느낌의 가로등, 그 노리끼리한 불빛 아래, 마드리드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고, 와인을 마신다. 이야기가 넘쳐 난다. 구경꾼은 알 수 없는.

 

 

 

광장 안쪽. 당연히 북적이고 있다.

 

 

딱 나와 있기 좋은 날씨. 선선하고 보송보송하다.

 

 

펼쳐 보면 이런 모습.

 

 

광장을 둘러싼 건물 틈으로 나오는 문(물론 여닫는 문은 아니다) 하나 하나 마다 이렇게 이름까지 붙어 있다.

 

 

광장 서쪽으로 나오면 불이 환한 거대한 유리장 같은 것이 보인다.

 

사진을 클릭해 보면 건물 왼쪽 위로 간판이 있다. Mercado de San Miguel. 산 미구엘 시장이다.

 

 

 

이 위치. 대략 광장과 비교해 봐도 결코 만만찮은 규모다.

 

 

밤 열시 가까운 시간인데 아직도 불야성.

 

유럽 다른 지역 사람들이 스페인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거라고 한다.

 

(물론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와도 같을 거라고 생각된다.)

 

 

 

스페인에서 가는 곳마다 입이 즐거웠던 이유 중 하나는 풍성한 과일.

 

태양의 혜택을 받은 과일들이 진한 원산지의 맛으로 다가왔다.

 

 

가격도 꽤 괜찮은 편. 반건조 무화과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스페인. 딱 한국 밤 같은 생긴 밤이 있고, 그 옆에도 어디서 많이 보던 과일이 있다.

 

그렇다. 한국의 대봉시와 똑같이 생긴 감이다.

 

그런데 대봉시보다 100배쯤 맛있다. 모습은 대봉시지만 내용물은 단감인데, 딱딱한 단감이 아니고 살짝 말캉해서 망고보다 약간 더 단단한 상태의 단감(감 좋아하시는 분들은 어떤 상태인지 아실 수 있을 거다). 그 맛난 스페인 과일 가운데서도 가장 맛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막힌 맛이다.

 

잘 보면 과일의 이름은 Kaki, 즉 일본어로 감이다. 일본에서 수입된 감이 스페인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시장이 꽤 고전적인 향취를 느끼게 한다면 산 미구엘 시장은 그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물론 시장 구석구석마다 이렇게 즉석에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게 해 놓았다는 점은 똑같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이다.

 

 

 

금요일 밤이다 보니 사람들이 와글와글.

 

 

그리고 문득 젓갈과 비슷한 신기한 비주얼 발견.

 

 

뭔가 지렁이 같은 비주얼이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저 Gulas라는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별미로 장어의 새끼를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위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 저렇게 마트에서 파는 Gulas는 큰 생선(주로 대구) 살로 만든 가짜 새끼 장어라는 것.

 

즉 장어의 비주얼을 가진 '새끼장어 맛살'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게맛살을 먹듯이 이쪽에선 또 이런 걸 먹는다.

 

 

 

빠에야에 와인까지 곁들여도 5유로. 싸다.

 

 

 

 

가격표를 보기 전까지는 오향장육인 줄 알았다. 삼겹살 같이 생긴 초콜릿 과자. 얇은 막을 여러 겹 붙여 튀겨낸 듯한 맛이다. 페스추리 Pastry 의 느낌?

 

 

 

같이 어울려 당장 뭘 먹고 싶은 분위기. 아예 끼니를 여기서 때울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그 자리에서 저렇게 굴을 까서 화이트와인과. 그리고 그 곁엔 친숙한 타바스코. 침이 절로 넘어간다.

 

 

영국처럼 모든 사람이 서 있는 펍의 분위기는 아니고, 웬만큼 앉을 자리가 있으면 다들 앉아서 먹는 느낌.

 

 

 

헉. 아구 ;;

 

바로 옆이 수산물 매장으로 이어지지만 냄새 같은 것은 전혀 없다. 한국 대형마트의 수산물 코너와 비교해도 그 반의 반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쾌적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마트 수산물 매장의 위생 관리가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위 이름표에서 볼 수 있듯 아귀는 스페인어로 Rape다. (영어 아니다)

 

이 이름표를 보고 웃음이 난 이유가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해산물 스튜 사르수엘라 Zarsuela를 먹었을 때, 웨이터에게 이 스튜의 국물은 뭘로 내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Rape가 주 재료라는 거였다. 대체 그게 뭐냐.

 

그때 그 웨이터 형이 그려준 그림이 이랬다.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는 건 저 그림을 보고 아귀라고 맞췄다는 것. ^

 

 

 

 

그리고 여러분이 스페인에 가시면, 꼭 드셔봐야 할 것이 - 물론 지금까지 꼽은 것도 엄청나게 많지만 - 바로 저 물건이다. 빨간 새우. 카라비네로 Carabinero 라고 한다. 저 선명한 붉은 색을 제외하면 한국 대하와 똑같이 생겼는데, 제철에 먹는 대하나 타이거 새우보다 조금씩 더 크다. 지중해 산으로 이탈리아에서는 감베로 로쏘 Gambero Rosso 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래 조그만 숫자를 보면 1Kg에 70유로. 대략 9만5천원 정도 되니 절대 싼 식재료는 아니다. 하지만 한번 맛을 보면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살도 살이지만 대가리에서 정말 진한 국물이 나온다. 너무너무 맛있다.

 

지난번 글 http://fivecard.joins.com/1262 에서 소개한 벤타 엘 부스콘에서 먹으면 이렇게 나온다. 오른쪽 아래에 수줍게 숨어 있는 빨간 애들이 바로 쟤들이다.

 

 

 

시장을 나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여기가 바로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형태의 술집인 메손 Meson이 즐비한 산 미구엘 거리 Calle Cava San Miguel.

 

 

 

 

저 계단을 올라가면 마요르 광장으로 통한다.

 

 

그래도 한군데는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음?

 

 

물론 1년 내내 관광객이 밀어닥치는 곳이니 본래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겠지만, 그래도 뭔가 스페인의 정취가 느껴진다.

 

 

 

마드리드 특산물이라는 코시도 마드릴레뇨를 판다는 간판.

 

마드리드에 한 1주일만 있었어도 저런 집들을 찾아다니며 마드리드의 맛을 더 연구하련만.

 

이렇게 해서 마요르 광장 밤 풍경 스케치를 완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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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와도 여전히 무덥습니다.

 

사실 당연한 겁니다. 입추 지나고 한참 더 더운게 정상이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추석도 지나치게 빨라서 뭔가 계절의 균형이 깨진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주긴 합니다. 세월이 하 수상한데 날씨라고 멀쩡할 리는 없겠죠. 9월 가이드 들어갑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9월의 문화가이드 (2014)

 

올해는 추석이 빨라서 가을이 더 빨리 온 것 같아. 해가 쨍쨍 내리쬐는 불볕 더위가 언제 왔다 사라졌는지 잘 기억이 안 나네. 산과 바다로 여행이라도 다녀들 오셨는지?

 

9월의 주요 볼거리들을 살펴 보다 보니 국악 관련 이벤트들이 눈길을 끄네. 가장 큰 무대는 추석을 맞아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블루문 페스티벌이야. 달맞이를 하듯 세 사람의 국악인들이 각각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꾀하는 공연을 펼치는 거지.

 

96일은 양방언, 7일은 이자람과 송소희가 공연자로 나서. 그 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건 이자람이야. ‘눈대목이란 이름으로 판소리 다섯마당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고, 자신이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개작한 판소리 사천가를 공연해. 한번 직접 눈으로 보면, 왜 이 가이드가 이자람 얘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무는 지 알 수 있을거야. 티켓 값이 아주 싼 편은 아닌데, 33천원으로 2층 뒷자리 A석을 사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여담이지만 현재 한국 국악계가 내세울 만한 톱스타로 양방언, 이자람을 꼽는다면 거기에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아. 그런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톱스타가 여고생 송소희라는 건(티켓 가격도 제일 비싸)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네. 하긴 뭐 송소희를 보고 있으면 나부터도 기분이 좋아지니까 그냥 넘어 가기로 해.

 

보다 정통 국악의 느낌을 원하면 927, 서울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를 찾아 봐. 송재영 명창의동초제 흥보가 공연이야. 송재영 명창은 동초 김연수에서 오정숙을 거쳐 이일주에게 전해진 동초제의 정통 후계자지. 전석 2만원.

 

완창판소리 공연을 본 사람 중에 시간이며 돈이 아까웠다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 그래도 꼭 가사집을 사서 그 자리에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어. 판소리는 사설의 다양한 표현을 보고 알아듣는게 중요한데, 아무리 전달력을 강조하는 동초제라고 해도 듣는 소리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이야. 가사를 눈으로 보면서 들으면 100.

 

다음은 쉽게 볼 수 없는 합창 공연. 칼 오르프의 까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 대개 카르미나 부라나라고 쓰는데 이번 공연엔 좀 액센트가 세더군)’를 국립합창단이 930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려. 제목만 들어선 모를 사람이 많겠지만, 이 합창모음곡의 1번인 운명의 여신이여(O Fortuna)’를 유튜브 같은 데서 검색해서 들어 봐. 다들 ~ 이 곡?’ 하는 반응이 나올 거야.

 

곡에서 느껴지는 원초적인 강렬한 에너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중세 이전의 곡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까르미나 부라나 1937년에 만들어진 현대 음악이야. 물론 꽤 오랜 시간 동안 별 주목을 받지 못한 곡이었지만 1980, 존 부어맨 감독의 영화 엑스칼리버에 사용되면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지. 그 뒤로 각종 시상식, 광고, 패션쇼 등을 통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멜로디가 됐어. 최근엔 드라마 연애의 발견첫회에 에릭과 정유미가 재회하는 장면에도 나왔지. 아무튼 직접 전곡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 색다른 경험이 될 거야. R석이 5만원으로 꽤 저렴한 편이고, 2만원 짜리 A석도 제법 좋은 자리야.

 

 

 

9월에도 연휴가 꽤 길지? 매일 TV만 보는 것도 지루할 테니 재미있는 책을 추천할게. 하정우가 직접 감독을 맡아 영화 허삼관 매혈기를 찍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 국내에 소개된 게 1999년이고 그동안 수없이 좋은 책으로 소개됐으니 많이들 보셨겠지만 그래도 안 보신 분들은 이번 기회에 한번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어. 잘난 척을 목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신간 아니면 큰 일 나는 줄 알지만, 책이란 건 자기가 좋자고 보는 거거든. 그러니까 왜 나온지 12년이나 된 책을 새삼 소개하냐고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이런 책을 알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하길 바라. 신간이 아니라서 8000원 정도면 살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내친김에 위화 선생의 다른 작품도 같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 제목은 형제’. 사실 허삼관 매혈기형제는 중국 문화혁명이라는 같은 배경을 담고 있어. 하지만 허삼관 매혈기에서 문화혁명을 다소 장난기있게 훑고 지나간다면 형제에서는 그 사건이 얼마나 큰 비극이었는지를 정면으로 응시한다고나 할까. 주인공인 두 형제 아닌 형제 중 이광두는 G2까지 성장한 중국인의 배금주의와 사업 역량을 상징한다면 송강은 중국인 고유의 정신문화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데, 한 지인은 책 한 권으로 진정 중국을 알 수 있다면 그건 바로 형제’”라고 극찬하기도 했어. 사실 이 책이 세 권이라는 점을 빼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세 권 합쳐 인터넷 가격으로 23000원 정도.

그럼 다들 등화가친하시고, 10월에 만나.

 

 

블루문 페스티벌 이자람   A 33000

국립합창단 까르미나 부라나  A 2만원

완창판소리 송재영의 동초제 흥보가    전석 2만원

위화, ‘허삼관 매혈기      8000

위화, ‘형제 1,2,3’          23000

 

합계       104000

 

 

 뭐 말로 길게 할 것 없이 이자람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시기에 한국에 내려진 축복이라고 할만한 재능입니다.

 

 

물론 이 소녀도 이 시기 한국에 내려진 기쁨으로 손색이 없죠.

그리고 '카르미나 부라나', 역시 이 영화를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자, '아 이거!' 하셨습니까?

정작 이 영화에서 이 곡이 나오는 장면은 성을 빠져나온 아서의 기사단이 꽃잎이 나부끼는 숲속을 일렬로 질주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당시 그 장면을 극장에서 본 사람 치고 그 장면에 빠져들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카르미나 부라나' 신의 미적 충격은 압도적이었죠. 물론 지금 DVD 화질로 그 장면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충격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유튜브를 찾아 보면 그 장면의 영상도 있습니다만, 앞뒤 맥락을 다 잘라 버리고 그 장면만을 봐서는 어떤 감흥도 없을 겁니다.)

 

이 영화의 이전과 이후로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를 소재로 수없이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이 영화만큼 완성도를 인정받은 작품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당시 관객들은 아동용 판타지와 신화가 된 전설의 차이를 명확하게 짚어 내고 있는 존 부어맨의 연출에 혼이 녹아드는 충격을 받았지만, 불행히도 존 부어맨은 남은 영화 인생 동안 이 작품에 비견할 만한 성취를 다시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브리엘 번, 리엄 니슨, 패트릭 스튜어트, 그리고 헬렌 미렌의 파릇파릇하던 시절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오늘날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화질의 벽이 참 크게 느껴집니다. '반지의 제왕'과 '왕좌의 게임'의 시대에. 아무튼 여담이고, '카르미나 부라나'는 한번쯤 들어 보실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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