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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섬의 박물관들 가운데 가장 사진발이 잘 받는 곳을 꼽자면 아무래도 구 국립미술관 Alte Nationalgalerie 일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파란 하늘 아래 있으면 자못 멋지다.

 

 

 

독일어 한 마디도 못하지만 Alte는 old, Neue는 new다. 따라서 Alte가 있으면 Neue가 있다.

 

(예를 들어 뮌헨에도 Alte Pinakothek 과 Neue Pinakothek이 나란히 있다.)

 

물론 어디까지가 Alte고 어디부터 Neue 일까는 그때 그때 다를 수밖에 없지만 대략 20세기 이전이냐, 이후냐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베를린의 구 국립미술관도 19세기 후반, 살짝 넘쳐 봐야 20세기 초반까지의 독일 화가들이 남긴 작품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베를린의 신 국립미술관, 즉 Neue Nationalgalerie 은 언젠가부터 수리에 들어가 아직 폐쇄되어 있었다. 언제 다시 개장할지는 모르겠다. 물론 파울 클레나 막스 에른스트 등 20세기 전반 베를린을 빛나게 했던 작가들의 작품은 좀 더 작은 국립미술관 - 앞에 방문기를 썼던 두 미술관도 규모가 크지 않아 그렇지 당당한 Nationalgalerie다 - 에서 꽤 많이 보았으므로 크게 아쉽지는 않다.)

 

어쨌든 지금 온 곳은 Alte 니까 19세기 이전 독일 화가들의 작품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내부도 뭔가 부티가 풀풀.

 

 

언젠가부터 유럽 미술관에 들어가 보면 이런 어린이들을 찍게 된다.

 

테이트 모던, 프라도, 알테 피나코텍, 어디나 이렇게 엎어져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오크가 있는 수도원'. .

 

프리드리히라면 누구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생각하겠지만 그 그림은 함부르크에 있다.

 

 

이 박물관의 스타는 아르놀트 뵈클린 Arnold Boecklin. 그의 45세 때 자화상이다.

 

(독일 상징주의의 대표 화가 중 한명이지만 사실은 스위스 출신이다)

 

자신의 어깨 뒤에서 사신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광경을 그리다니. 악취미긴 한데,

 

 

세기말의 냄새가 물씬 나는 이런 '십자가 아래에서의 눈물' 같은 그림이 그의 작품이다.

 

 

그리고 수없이 패러디된 그의 대표작. '죽음의 섬'.

 

딱 봐도 음산하고 무섭다. 2차원의 그림인데 3D 효과도 너무나 선명하다.

 

 

자세히 보니 절벽에 AB 라는 그의 이니셜이 써 있다.

 

 

그리 큰 그림이 아닌데도 을씨년스러움이 온 전시실을 휘감는다.

 

 

역시 인기다.

 

 

'Ocean Breaker (The Sound)' 라는 제목인데, 오딧세우스 신화의 키르케를 묘사한 것일까?

 

 

 

그런데 미술관의 전시 상태에 좀 불만이 있다.

 

그림에 바로 자연광이 떨어지는 환경이라 반사가 심하다. 그 탓에 그림의 세부를 보기가 쉽지 않아 아쉬웠다.

 

아니 세계적인 미술관이 왜 이래.

 

 

그리고 지나는 길에 이건 누가 봐도 오노레 도미에의 누가 봐도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

 

 

 

갑자기 이 형님은 여기 왜 계신지.

 

 

그리고 독일에도 인상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막스 리베르만 Max Liebermann의 '정원의 벤치'

 

 

중간의 테라스에서 베를린 돔이 보인다.

 

3층과 2층에서는 사실 뵈클린과 프리드리히 외에 큰 관심 가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개취).

 

내 생각에는 1층에 있는 20세기 초 독일 화가들의 컬렉션이 아무래도 이 미술관의 진수가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프란츠 폰 슈투크 Franz von Stuck의 '죄악'.

 

 

 

여인의 얼굴과 뱀의 표정에서 사악함이 뭉클뭉클.

 

 

'키르케를 연기하는 Tilla Durieux' 라는 제목. 역시 비슷한 느낌이다.

 

틸라 두리유(?)는 당대의 유명한 여배우라고.

 

 

 

이런 사악한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슈투크는 이렇게 생겼다.

 

어째 그럴 것 같은 얼굴이다.

 

 

역시 슈투크의 작품인 '폰(Faun)과 인어'. 그런데 인어가 왜 하체가 갈라지는거야. ;;

 

혹시 인어 스타킹?

 

 

그러고 보니 이 전시실의 이름은 분리파(Secessionen)/ 세기말(Jahrhundertwende).

 

프랑스에서 기성 화단에 반항해 일어난 것이 인상파라면 좀 늦은 독일에선 분리파가 기성 화단을 부정하고 일어섰다.

 

슈투크 등의 화가들이 뮌헨에서 일어난데 이어 빈에서는 클림트가 그 깃발을 이어받은 셈이다. 

 

물론 분리파는 사조의 이름은 아니다. 다만 슈투크와 클림트는 상징주의의 화풍에서 공통점이 있는 셈이다.

 

 

토마스 데오도르 하이네의 '악마'.

 

 

이 전시실의 분위기와 딱 맞는다.

 

 

막스 클링거의 '조개껍질을 탄 비너스'

 

 

프레디 머큐리를 연상시켜서 담았다. 아르투르 캄프 Arthur Kampf의 '연기자' (광대?)

 

물론 전통적으로 베를린을 대표하는 화가는 이들보다는 아돌프 멘젤 Adolph Menzel 이다.

 

프로이센 왕국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이런 우아한 궁정 그림이 멘젤의 대표적인 화풍인데,

 

여기 전시된 다른 그림들을 보면 꼭 그렇게 우아한 것만을 고집한 사람은 아니다.

 

 

 

뭔가 격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은,

 

 

제목이 '프라하의 유태인 묘지 Judenfriedhof in Prag.

 

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가 생각나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기심.

 

 

이렇게 해서 박물관 섬의 다섯개 박물관 가운데 세 개를 기를 쓰고 돌아봤다. 꽤나 힘들다.

(3개를 가든 5개를 가든 입장료는 모두 베를린 뮤지엄 패스로 해결된다. 꼭 사라.)

 

베를린 구 박물관과 보데 박물관까지는 여력이 미치지 않아 그대로 패스. 구 박물관은 그리스/로마 시대 조각이 많다고 하고, 보데 박물관은 중세 기독교 관련 유물이 많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무리일 것 같아 나름 순위를 매겨 상위 3개를 돌아봤다.

 

미안해요. 건물 외관 예쁜 보데 박물관. 그리고 정면 멋진 구 박물관.

(하지만 다음에 와도 들르겠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

 

아직 가 볼 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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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박물관 섬의 다섯 박물관은 정말 뭉쳐 지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관람객들은 멀리 왔다갔다 하지 않아서 좋지만 외곽에 위치한 구 박물관, 신 국립미술관, 그리고 보데 박물관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건물 전경을 찍기가 쉽지 않다.

 

아무튼 그래서 페르가몬 박물관에 이어, 신 박물관 Neues Museum 도 전경은 없다.

 

 

 

일단 박물관/미술관은 제일 높은 층부터 간다는 원칙에 따라 3층(그러니까 4층)으로 직행.

 

가 보니 인류 발달사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대형 모니터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석기시대부터 인류가 발달해 온 과정을 간략하게 보여주는데, 마음 바쁜 관광객도 자리를 지키고 보게 할 만큼 그래픽과 내용이 흥미로웠다.

 

 

 

3층 한 구석에는 이 박물관의, 어쩌면 베를린 전체를 대표하는 간판 유물인 '황금 모자 Berliner Goldhut'가 있다.

 

그렇다. 저 가운데 번쩍번쩍 빛나는 뾰죽한 물건이 바로 모자다.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생겼다.

 

 

유물의 비중이 비중인 만큼 설명 페이지를 붙여 둔다. 청동기시대의 왕 또는 제사장 같은 신분의 사람이 썼던 것으로 추정될 뿐, 이 황금모자와 관련된 다른 사료나 증거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그냥 생각만 해 봐도 그 옛날에 저 정도의 황금 모자를 만들었을 정도라면 상당히 강력한 지도자였음은 분명할 것 같다.

 

그런데 그 옛날에도 금 좋은 건 다들 알았었다니.

 

 

 

황금 모자를 넋놓고 바라보다 박물관의 다른 한 편으로 넘어간다. 박물관 중간의 계단실이 이 정도의 규모다.

 

 

창밖으론 잠시 후 갈 신 국립미술관이 보인다.

 

 

기원전 5천년 전 정도의 그릇받침.

 

 

신 박물관의 3층은 어찌 보면 '문명 이전의 베를린 지역'에 대한 향토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당시 석기/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사냥했을 엘크의 뼈가 전시돼 있기도 하다.

 

엘크, 진짜 크다.

 

 

약 1만3천년 전의 것 정도로 추정되는 말 모양의 토기 하며,

 

 

 

베를린 인근 지역을 거쳐간 수많은 문명의 흔적들이 전시돼 있다.

 

하기야 대륙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와는 달리, 대륙 복판의 베를린 지역은 수많은 민족들이 밀고 들어왔다 밀고 나기기를 반복했을테니 흘리고 간 유물도 다양할 수밖에.

 

 

 

라고 생각하면서 2층으로 내려오면 동네 잔치는 이제 그만.

 

이집트 어딘가에서 온 유물들이 줄줄이 줄줄이 쏟아진다. 시종 목상이다.

 

 

 

 

그런데 시종 Chamberlain, 혹은 Hepetni 라고 이름 붙은 좌상들은 전부 저렇게 오른손은 뭔가를 쥐고, 왼손은 편 상태다.

 

뭘까?

 

 

 

아이들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축소해서 표현하는 스타일도 흥미롭다.

 

 

 

이런 식으로 이집트 유물들이 죽 전시되어 있는데,

 

다른 유럽 지역 미술관/박물관에 비해 사진 촬영에 대단히 관대한 베를린 사람들이 유독 찍지 못하게 하는 유물이 있다.

 

이집트 출신으로 클레오파트라 다음으로 유명한 여자.

 

물론 나도 엄중한 관리를 뚫고 찍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ABC뉴스에 활용된 보도 사진.

 

아마도 고대의 여인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조각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에는 목상인가, 아니면 토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은 석회암(limestone) 조각이다. 그 밖에 장식용의 접착재료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도 미인이지만 당시에도 미인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BC 14세기 이집트의 미적 감각이 현대인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건 이상하게 안도감을 준다.

 

남편 아케나톤 Ahkenaton 은 전통적인 다신교 신앙을 가졌던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 아톤 Aton 을 유일신으로 하는 종교개혁을 시도했을 정도로 강력한 왕이었다(이상하게도 옛날 교과서에서는 이크나톤이라고 배웠다. 이집트어에서 모음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아마르나 유적지에서 당시의 대 조각가인 투트모세 Thutmose의 작업장을 발굴하다가 출토된 덕분에, BC 1345년이라는 제작 연도도 추정 가능했다.

 

이 완벽한 조각상의 한가지 흠결은 수정으로 조각된 오른쪽 눈과 달리 왼쪽 눈이 없다는 것. 이 때문에 네페르티티가 본래 왼쪽 눈이 없는 인물인지, 아니면 단순히 조각상이 파손된 것인지도 얘기가 분분했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아케나톤과 네페르티티는 그 유명한 투탄카멘의 부모라고도 한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설들이 있다. 다른건 다 떠나서 BC 14세기 인물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상세한 기록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는 데 이집트 문명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솟는다.)

 

아무튼 실물로 본 네페르티티, 역시 미인이더라.

 

 

 

네페르티티의 방을 지나가면 그 못잖게 유명한 젊은이가 있다.

 

크산텐의 젊은이. Xantener Knabe.

 

 

 

라인강까지 진출한 로마인들의 유물이다.

 

BC 1세기 경의 것으로 1858년 라인강의 어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

 

 

아마도 오른팔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 검투사들의 모습을 조각한 것들이 많은데,

 

(당연히 저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이 흘린 물건들)

 

 

 

그런데 너무 귀엽잖아.

 

 

응? 저게 에... 에로스라고?

 

 

거기 비하면 이건 누가 봐도 머큐리(헤르메스) 이긴 하네.

 

 

 

그리고 이렇게 그럴듯한 로마 시대 조각품이 있는가 하면

 

 

갑자기 이런 토템 조각 같은 것이 등장한다.

 

이 박물관... 뭔가 약간 어지러워.

 

그리고 다시 이집트 조각과 묘지 벽화의 습격.

 

 

그리고 이 박물관의 마지막 스타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베를린의 녹색머리 Berlin Green Head.

 

 

녹색편암을 이용한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조의 작품. BC 1세기 언저리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가 살던 시대의 작품이라는 얘기.

 

그런데 놀랍도록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돌의 가공 상태는 물론이고 좌우 균형에서 뒤통수의 주름까지, 완벽하다.

 

 

마지막으로 이집트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0층이 바로 각종 관을 전시한 곳이다. 주로 이집트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1층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뜨악 놀란다.

 

 

우르크, 혹은 와르카라 불리는 고대 도시의 거대한 꽃병....

 

꽃병이라기엔 좀 너무 크고, 예식용의 꽃꽂이용 청동 항아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3천년 넘은 물건이라고.

 

 

 

이런 물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긴 처음인데 멋지다.

 

 

이건 로마시대의 석관(Sarcophagus).

 

사르코파구스의 어원은 '사람을 먹어치우는 돌'이라고 한다.

 

 

 

이집트 석관은 내부에도 이렇게 조각이 되어 있다.

 

 

뭘 많이 보다 보니 화장실 표시도 굉장히 있어 보인다.

 

 

어느새 대낮.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이럴땐 매점행이다.

 

 

 

그리고 이렇게 날씨가 좋아져 있을 줄이야. 박물관 앞 잔디밭에 앉기 딱 좋은 날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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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가몬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면 뜬금없이 방 하나가 나타난다.

(혼동을 막기 위해 다시 한번 강조하면, 한국식으로는 3층에 해당한다)

 

알레포의 방 Aleppo Room 이라는 전시물이다.

 

 

 

이 대목에서 알레포가 누구야, 라고 하시면 안됨.

 

왜냐하면 알레포는 지명이라서.

 

 

 

지도 보시다시피 알레포는 레반트 지역의 북쪽, 시리아 북부의 도시다.

 

십자군 전쟁 관련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오래 된 도시.

 

 

 

이 방은 17세기 초, 알레포의 기독교인 거주구역에 있던 한 부유한 상인의 집에서 방 하나를 통째 뜯어내 재현한 것이다.

 

(독일 분들은 뭔가 통째 뜯어와 재현하는 걸 참 좋아하지 싶다.)

 

 

옆방은 여전히 복원 공사가 진행중이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방 안의 치장이 정교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는 엄청난 양탄자의 습격이다.

 

 

 

뭔가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이런 작품도 있고,

 

(왠지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보이는 형상들이 날고 있다)

 

 

 

이 박물관 전시품들 중 가장 큰 카펫. 7.68 x 2.98 m 크기로 무게만 50kg에 달한다.

 

무굴 제국의 샤 자한이 자신의 왕궁 또는 아내의 무덤(타지 마할)에 깔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그렇다고 인도에서 만든 것은 아니고, 만들어진 곳은 바그다드 근처로 추정된다고.)

 

 

 

 

본래 카펫에는 동물 그림은 넣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이 카펫은 용과 불사조가 그려져 있다.

 

뭐 실물이 있는데, 해도 되는 거겠지.^^

 

아무튼 양탄자 사진만 한 20장 찍어왔는데 양탄자에 토하실 수도 있으니 이 정도로 한다.

 

 

 

안쪽으로 죽 들어가 보면 역시 꽤 큰 형상에 눈길을 끈다.

 

므샤타 Mshatta 의 궁전 성벽을 홀랑 뜯어 와서 전시중이다.

 

Mshatta를 대체 어떻게 읽어야 하나... 음샤타? 므샤타? 어디를 봐도 별 지침이 없어 곤란했는데 유네스코 페이지는 친절하게 Mushatta 라고 표기해 놓고 있다. 고마워요 유네스코.

 

(바르셀로나 화이팅)

 

 

 

 

 

우마이야 조 Umayyad 는 이슬람교의 성립 이후 최초로 등장한 통일 아랍 왕조다.

(아랍어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중역 과정에서 옴미아드 혹은 옴미야드 조라고 배운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사실 그런걸 누가 다 기억해. ) 

 

지배자는 칼리프 caliph 혹은 칼리파 Khalifah. 기독교 문화권에 비교하면 칼리프는 교황, 술탄은 황제라고 보면 된다...고 예전에 배운 것 같다.

 

 

이 므샤타 유적이 건설된 시기는 8세기, 그러니까 우마이야 조의 말기라고 보는 것 같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안 가봤지만 공항 가는 길이라고)

 

 

 

이런 유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뭐 여기서 뜯어가고 저기서 뜯어가고... 했겠지.

 

그래도 아직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라니 대단하다.

 

사람이 사는 게 유적 보호에 좋은지, 안 사는게 유적 보호에 좋은지, 늘 궁금하다. 

 

 

 

아무튼 페르가몬 박물관에 와서 30여년만에 들어보는 고유명사들을 다시 영접하려니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 일 한국(Il-Khanate)만 해도 그렇다.

 

몽골 제국은 징기스칸 사후 서서히 대원제국과 네 개의 한국으로 정리되어 간다. 중국과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원(元)제국은 익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원나라고, 네 개의 한국은 각각 일 한국, 킵차크 한국, 차가타이 한국, 오고타이 한국이다.

 

차가타이(징기스칸의 2남)와 오고타이(징기스칸의 3남, 공식 후계자) 한국은 중앙아시아 지역을 남북으로 나눴고, 징기스칸의 손자들이며 위대한 정복자 바투(친자 여부가 의심스러운 징기스칸의 장남 주치의 아들)와 훌라구(4남 툴루이의 아들, 쿠빌라이의 동생)는 그보다 더 서쪽으로 진출했다. 그래서 훌라구는 아랍 지역을 차지해 일 한국을, 바투는 러시아를 거쳐 폴란드와 헝가리까지 진출해 킵차크 한국을 세웠다. 만약 바투가 몽골 제국의 황위 계승 분쟁 때문에 귀환조치를 받지 않았다면 서유럽도 몽골 제국의 일부가 되었을 지 모른다.

 

[징기스칸 전기와 그 부록 -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들 - 을 열심히 읽은 것이 근 40년 뒤에 이런 데 도움이 될 줄이야.]

 

어쨌든 독일 제국의 관심사는 중근동 지방이었으므로 페르가몬 박물관은 일 한국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물론 그런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 뿐이지, 그 나라의 문화가 어땠는지, 심지어 어디 말을 썼는지, 그런 거야 알 바 아니다. 일 한국의 영토가 이란, 이라크, 동부 터키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었으니 당연히 그 지역 문화에 흡수됐겠지... 하는 정도.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 때 몽골 제국의 후예들이 4개의 한국을 세웠다는 말에 오오 우리가 몽골 제국의 후손인가 하는 바보들도 좀 있었는데, 이 한국은 韓國이 아니라 汗國, 즉 '칸(汗, Khan)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Khanate.

 

(요즘은 이렇게 한국이란 이름이 혼동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칸국'이란 말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뭐 그렇다고.

 

 

그렇다고 생각하고 보니 어쩐지 짙은 몽골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알함브라에서 본 듯한 이런 것도.

 

알함브라 얘기를 하고 있자니 진짜 알함브라에서 뜯어 온 것도 있다.

 

 

알함브라 돔 Alhambra Dome 이라고 불리는 목조 천장

 

알함브라의 나스르 궁을 가 보신 분들은 이것과 거의 비슷한 천장을 많이 보셨을 거다.

 

차이가 있다면 이 천장은 목조고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다.

 

아르투르 폰 귀너 Arthur von Gwinner라는 독일 은행가가 알함브라 지역의 부동산을 샀다가 스페인 정부에 다시 기증한 댓가로 이 목조 천장을 뜯어 올 권리를 얻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 하나.

 

상아로 만든 뿔피리(Oliphant)다. 서사시 '롤랑의 노래'에 나오는, 롤랑이 불고 죽은 바로 그 피리...는 아니지만, 아무튼 그 피리와 같은 종류의 올리펀트다. 길이 50cm 정도. 꽤 크다.

 

 

중세 내내 아랍령이었던 시실리 지역에서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모양의 올리펀트는 유럽 전역과 북아프리카에 걸쳐 발견된다. 심지어 조각된 문양에도 비잔틴, 아랍, 기독교 양식의 특징이 골고루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 뿔피리 하나에 유럽과 중근동의 역사가 다 담겨 있는 셈이다.

 

 

 

아무튼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사이에 페르가몬 박물관을 훑고 나오는 동안 우마이야 조, 사마라, 압바스 조, 파티마 조, 티무르 제국, 호라즘, 셀주크 투르크, 사파비 조, 앗시리아, 사산 조, 수메르 등등 언젠가 뇌 한 구석에 들어왔다 나갔던 수많은 고유명사들이 다시 한번 머리 속을 명멸하는 것을 느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내가 저런 고유명사들의 의미를 다시 알게 될 일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만치 인생은 짧고, 인류가 구축해 놓은 유산들은 너무나 많다.

 

50이 되면 이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건 그만 둘 때가 된 거라고 며칠 전에 한 선배가 말씀하셨지만, 아직은 그 이야기를 부정하고 싶다. 세상은 넒고 알고 싶은 건 아직 너무나 많은데.

 

 

사실 페르가몬을 보고 왔지만, 정작 페르가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거대한 '페르가몬의 제단'은 보지 못했다.

 

기적적으로 2차대전 때 살아남은 이 유물은 현재 대대적인 보수에 들어가 있고, 2020년에야 다시 공개될 전망이다.

 

밀레투스의 시장 문도 어마어마했지만 이 제단에 비하면 소규모 유물인 셈인데.

 

 

과연 언제 또 베를린에 들러서 저 제단의 계단을 직접 밟아 볼 일이 있을까, 솔직히 장담할 수가 없다.^^ 

 

아무튼 저 제단 때문에 페르가몬박물관에 가 볼 날을 꿈꿨지만, 저 제단 없이도 페르가몬은 충분히 위대했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엔 한껏 구름이 끼어 있다.

 

박물관 하나 보고 나왔는데 벌써 다리가 아파 온다. 자, 박물관 섬에서 두번째 박물관으로 황금 모자를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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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걷는 날이 될 거란 확신 때문에 아침을 든든히 먹기로 했다.

 

(물론 다른 날이라고 부실하게 먹은 건 아니겠지.)

 

베를린 풀먼 호텔의 조식은 지금까지 가 본 수많은 호텔들 가운데서도 손끕을만 한 퀄리티다. 너무 맛있고 재료도 풍성하다.

 

 

 

 

 

베를린을 가로(세로?) 지르는 슈프레강 한 복판에 양말같이 생긴 약간 길쭉한 섬이 있다.

 

이 섬의 이름이 바로 박물관 섬이다. 독일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다섯개의 박물관이 이 섬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섬의 왼쪽, 그러니까 북서방향에 다섯개가 오밀조밀 몰려 있다.

 

 

 

이렇게 다섯개가 사이좋게 붙어 있다.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 이라고 불리는 정원 쪽에서부터 A. 구 박물관, B. 신 박물관, C. 구 국립 미술관, D. 페르가몬 박물관, E. 보데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사이좋게 차곡차곡 붙어 있다.

 

사실 이렇게 보면 맨 앞(?)에 나와 있는 구 박물관이 뭔가 약간 왜소해 보이는데,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

 

 

 

베를린 관광의 필수 노선인 시내버스 200을 타고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 역에 내리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물은 바로 이 어마어마하게 큰 베를린 돔이다. 이 사진은 약간 옆에서 봐서 그런데, 정면에서 보면 정말 위압감 느끼게 큰 건물이다.

 

 

 

 

그런데 시선을 약간 왼쪽으로 돌리면 다른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잔디밭이 바로 루스트가르텐이고 저 앞의 무식하게 큰 건물이 바로 구 박물관.

 

시선이 꽉 찬다. 어마어마하게 좌우로 길고 크다.

 

 

 

 

 

 

 

그리고 이 풍경이 보일 때 쯤이면 베를린 돔 앞을 지나가고 있다.

 

베를린 돔도 꽤 유명한 관광 스팟이지만 미안하다. 너한테까지 할애할 시간은 없단다. 오늘 형이 좀 바빠.

 

 

 

 

사실 저 어마어마하게 큰 구 박물관은 그냥 통과.

 

박물관 마니아로서 안타깝지만 저 구 박물관까지 돌아보다간 다리가 부러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내셔널갤러리 앞을 통과하면,

 

 

 

뭔가 공사판 한 구석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야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 페르가몬 박물관 Pergamon Museum 을 갈 수 있다.

 

 

 

자. 복습이다. 루스트가르텐에서 A, B, C를 모두 통과해야 D, 즉 페르가몬 미술관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건물 자체가 저렇게 다른 건물들에 포위되듯 둘러싸여 있어 어떻게 해도 전경을 찍을 수가 없다.

 

페르가몬 미술관 외경에 대한 자료 사진이 없는 데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다.

 

하지만 왼지 뒷문 같은 음침한 입구를 통해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즉 0층을 통과해 1층 -한국의 2층 - 으로 올라간 순간)

 

 

 

건물 내부인데 이런 경악스러운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슈타르의 문'이다.

 

베를린에 수없이 많은 박물관들이 있고, 거기에도 나름 가치 있는 유물들이 차고 넘치지만 솔직히 말해 런던에는 대영 박물관이 있고 파리에는 루브르가 있다. 로마? 로마는 도시 자체가 인류사에 남을 유물의 덩어리다.

 

이런 유럽의 슈퍼 박물관들에 대항할만한 베를린 박물관의 에이스가 있다면 아무래도 페르가몬이다. 이 베를린의 자존심 페르가몬을 구경하기 위해서 이 아침부터 박물관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는 것이다.

 

(페르가몬 박물관을 가실 분이 있다면 무조건, 개장 시간에 맞춰 줄을 서라. 오후가 되면 줄은 더 길어진다. 박물관 정원제에 따라 일정 인원 이상이 입장한 상태에서는 일단 입장객들이 퇴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원전 6세기, 신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 바빌론에 있던 성문 중 하나를 통째로 옮겨 온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바빌론, 공중정원, 니네베, 뭐 이런 얘기로 넘어가면 그게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전설인지 역사인지 아물아물해진다.

 

(이게 막 지구라트와 바벨 2세가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전설의 시대가 이런 새파란 벽돌의 모습을 하고 눈앞에 나타나니... 감동적이다.

 

 

 

 

파란 벽돌(타일)을 보니 은근히 사마르칸트의 기억이 떠오르는데,

 

생각해 보면 이 파란 벽돌은 사마르칸트에서 본 색보다 조금 짙고 어두운 느낌이 돈다.

 

(물론 14세기 티무르 제국 유적과 6세기 신바빌로니아 유적을 한데 묶어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 어쨌든 그냥 파란 벽돌을 보니 반가웠다는 정도로 정리해 두자. )

 

 

 

문을 등지고 서면 이렇게 성벽의 벽돌 모자이크 부분을 다 뜯어와서 복원해놓고 있다.

 

 

 

 

 

그러니까 외성문에서 내성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이걸 허락 안 받고 뜯어 온 거라면 정말 기가 찰 노릇인데,

 

페르가몬 박물관 측은 극구 "대영박물관의 엘긴 대리석과는 달리 합법적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뭐 그러려니 할 밖에. 모자이크라기엔 부조에 좀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이 사자들은 바로 마르두크 신의 상징이고,

 

 

 

이건 당시 바빌로니아 신화에 등장하는 용, 뮤슈수(Mushussu)라고 한다. 이 성벽의 부조에 등장하는 동물은 무슈수, 사자, 그리고 역시 신성한 동물인 황소(아우로크 Auroch 라고 한다) 뿐이다.

 

 

 

그리고 이슈타르의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놀랄 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밀레투스의 시장 문(Market Gate of Miletus) 이다.

 

밀레투스는 소아시아 지역, 그러니까 터키 서부 해안을 따라 그리스인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 중 하나다. 이들 도시 중 가장 유명한 곳들이 트로이 전쟁으로 파괴된 트로이, 그리고 호메로스의 출생지인 스미르나(오늘날의 이즈미르) 등이다.

 

 

이 시장의 정문은 기원후 2세기, 그러니까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10세기 경 지진으로 파괴됐다. 그걸 근세에 발굴하면서 복구했고, 그게 지금 베를린에 와 있는 것이다.

 

높이 16미터, 폭 30미터의 엄청난 사이즈인데,

 

 

 

이 모형의 왼쪽 귀퉁이에 있는 바로 저게 이 시장의 문이다.

 

그러니까 당시 밀레투스의 거대한 도시 규모에 비하면 이 웅장한 문이 별 것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리 보니 귀엽네.

 

 

 

 

아무튼 시장 문과 한 세트인 건너편 제단은 어느 신전의 한쪽 벽면이었던 것 같다.

 

 

 

 

 

물론 크게 상관 없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들도 함께 전시돼 있다. 2세기 경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의 에로스 부조,

 

 

 

그리고 이건 레바논의 바알벡(Baalbek) 유적에서 나온 빗물 배출용 사자 머리 가고일이다. 역시 AD 2세기.

 

 

아무튼 쉽게 눈길을 뗄 수 없는 시장의 정문을 뒤로 하고,

 

 

뭔가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앗시리아 유적 속으로.

 

(대체 왜 친근감을 느끼냐고 하시면 뭐라 대답할 말은 없지만서도)

 

 

 

니네베(니느웨)의 궁전 벽에서 나온 사자 사냥 부조다. BC 7세기.

 

 

 

친절한 베를린 분들은 이 돌이 어디서 나온거냐 하면... 을 이렇게 지도로 꼭 같이 표기해 준다.

 

물론 그래 봐야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겠지만.

 

 

좀 알만한 지도로 바꿔 보면 앗시리아의 대표 도시인 니네베와 님루드는 이렇게 붙어 있다.

 

 

 

이건 라마스(Lamassu), 그러니까 '날개 달린 인면 사자상'인데,

 

 

사실 대영박물관에서 그 천장에 닿을 듯 한 거대한 라마스를 본 사람에겐 약간 애교스러운 사이즈.

 

 

 

아마도 영국이 먼저 털고 간 자리에 뒤늦게 독일인들이 도착한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얘들은 다리가 다섯개다!

 

대체 왜 ;;

 

(혹시 실수로 다섯 개?)

 

 

 

 

 

이것은 국왕의 모습으로 추정되는데, 신상들 사이에 위치해 왕=신의 느낌을 주려는 배치라고.

 

 

 

이런 식으로 앗시리아 왕궁의 한 방을 그대로 뜯어와 재현했다.

 

 

 

 

온갖 유물들이 다 있고,

 

 

 

이것은 앗시리아 시대 자유도시였던 사말(Sam'al)에서 뜯어 온 대형 돌사자들.

 

사말은 또 어디야... 생전 처음 들어본다.

 

터키 남부에 있는 유적이다. BC 10세기.

 

 

 

뭔가 마법적인 보호력을 기원하고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묘하게도 민화 속 호랑이를 연상시킨다.

 

 

 

 

 

누가 봐도 그렇지?

 

 

휴. 간신히 한 층을 끝냈다.

 

페르가몬 박물관, 한 층 보기가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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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둘쨋날. 작지만 알찬 박물관 두 개를 돌아보고 나니 어느새 오후.

 

미친듯이 관광 포인트를 도는 여행은 둘 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천천히 다시 시내로 이동, '사진 박물관'을 찾았다.

 

 

 

 

 

분명히 영어로 하면 museaum for photography. 사진 박물관 맞는데 사실 사진박물관이라기보다는 개인 박물관의 느낌이다.

 

힌트는 왼쪽 벽에 붙어 있는 '헬무트 뉴튼 재단'.

 

헬무트 뉴튼이라면 바로 그 유명한 사람, 그 왜 엄청 유명한 셀렙들과 번쩍번쩍 빛나는 비닐 장화 '만' 신은 누드의 슈퍼모델들을 즐겨 찍었다는 그 양반! 사진 작가이면서 그 자신이 셀렙인.

 

 

이 박물관은 뉴튼의 유지에 따라 이뤄진 것이고, 뉴튼의 유물들이 전시품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 박물관인 만큼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인데 어떤 분위기라는 것은 전하고 싶어서 한장 찍어 봤다.

 

 

 

굳이 말하면 '사진의 신' 뉴튼에게 바치는 헌정의 공간이랄까. 신전 같은 느낌이었다.

 

 

뉴튼의 전시 공간 외에도 상당 부분이 다른 작가들의 사진을 전시하는 데 활용되고 있었다.

 

뉴튼의 사진을 보고 나니 왠지 허기가 밀려왔다.

 

미술관 카페에서 뭘 좀 먹었는데 그걸로는 부실했던 모양.

 

마침 베를린을 대표하는 먹거리라는 커리부어스트의 대표적인 맛집이 초 역 바로 앞에 있었다.

 

 

 

관광책자에도 나온다는 Curry 36.

 

 

소문난 맛집답게 당연히 줄을 서야 한다.

 

 

 

노점풍의 분위기답게 사서 들고 먹거나, 저렇게 길가의 보도 난간에 놓고 먹는다. 격식 따위 전혀 없다.

 

 

 

 

 

 

사실 뭐 별거 없다. 소시지에 튀김옷을 입히고, 케찹 위주의 소스(뭔가 좀 섞긴 섞은 것 같다. 단순히 케찹은 아니다) 에 커리 파우더를 뿌려 먹는게 전부다. 가격은 대략 1.5~2유로 정도. 여기에 저 소스와 찰떡궁합이라는 감자튀김을 곁들이면 3유로까지도 올라간다. 소시지 하나로는 끼니가 되지 않으니 감자 튀김으로 양을 늘려 본다는 느낌이다.

 

맛은... 맛 없을 요소가 없으니 당연히 맛있다. 찍어 먹는 방식이나 뭐나 가기 전부터 '떡볶이 비슷해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전혀 매운 맛이 아닌데도 어쩐지 떡볶이를 먹는 기분이 든다. 아무튼 맛있다. 그런데 매우 단순한 맛이라 대체 이 정도의 음식에 맛집이 따로 있다니 그건 또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ㅎ

 

아무튼 프라하-베를린을 쉼 없이 달렸으니 약간의 낮 휴식.

 

(불량체력의 중년 여행객에겐 강행군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내친 김에 아예 관광객 티를 내기로 작정하고 포츠다머 플라츠로 향했다.

 

 

포츠다머 플라츠 1층의 린덴브로이 Lindenbrau.

 

베를린에 간 사람 - 중에서도 초행인 촌스러운 사람들은 모두 한번씩 가 보고야 만다는 바로 그 집이다.

 

 

 

 

사실 우리가 아는 독일 음식이란 게 대부분 돼지고기 요리다. 오래 전 혼자 독일에 왔을 때에는 아이스바인을 먹었고, 한국에서도 이제는 꽤 많은 곳에서 학센을 맥주 안주로 먹을 수 있다. 물론 독일 대중식의 상징 같은 소시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전날 낮, 베를린 주민이신 가이드님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독일 사람들은 왜 그렇게 돼지고기를 많이 먹죠?"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독일 사람 돼지고기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아요.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많이 먹죠. 오히려 돼지고기는 별로 안 먹을 걸요?"

 

"아 그래요?"

 

"작년에 남편(독일 사람. 굉장히 유명한 분이라고)이랑 한국 나갔는데 하루 삼겹살, 하루 제육볶음 먹더니 남편이 그러던걸요. '한국 사람은 돼지고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아.' "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

 

"아니 그럼 그 학센이며 아이스바인이며 이런 것들은 다 누가 먹나요?"

 

"누가 먹긴요. 관광객들이 다 먹죠."

 

으음 ;;

 

"한국에서도 신선로 구절판 이런거 평소에 먹는 사람 없잖아요. ㅎㅎㅎㅎ"

 

그래서 학센을 주문하지는 않았다.

 

 

 

여담이지만 독일 사람들은 뭘 섞어 마시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약간 흰색이 도는 바이스비어는 뭔가를 섞어서 저렇게 다양한 음료로 다시 태어난다.

 

물론 한국에서도 맥주와 사이다를 같이 시켜서 섞어 먹는 사람이 꽤 있지만 저걸 저렇게 술집에서 아예 메뉴판에 써놓고 팔진 않잖아.

 

게다가 저건 약과다.

 

아주 오래 전 독일에 왔을 때, 카페의 메뉴에 별 희한한 것들이 다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지금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콜라+환타, 닥터페퍼+환타, 콜라+맥주 등등이 다 메뉴판에 써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얘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안 믿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들 했는데,

 

 

 

 

 

마침 그 증거를 발견했다.

 

위 메뉴의 소프트드링크 항목 아래를 보면 펩시 콜라와 미린다(물론 오렌지 맛이다)를 섞은 음료를 슈페찌 Spezi 라고 부른다고 써 있다. 봐! 보라고! 독일에선 이런 걸 판다고!

 

* 아울러 한국에서 한때 환타의 경쟁 음료였던 오렌지 음료를 '미란다'라고 기억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 음료의 이름은 '미린다'다. '미란다 원칙' 아니다. M.I.R.I.N.D.A. 미린다라고 미린다.

 

(물론 지금도 열심히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 술집이 펩시콜라 친화적이라 슈페지도 '펩시+미린다'였던 듯. 만약 코카콜라 가맹점이었다면 코카콜라+환타의 슈페지를 내놨을 것이다.

 

 

카페에서만 반반 섞어 파는 게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슈페찌 음료들이 아예 상품화되어 팔리고 있다. 참 희한한 동네 아닌가 싶다.  아무튼 슈페지의 맛은 예전에 다들 해보셨을 것 같은 - 음료 자판기에서 이맛 저맛을 돌려가며 섞은 바로 그 맛, 어찌보면 닥터 페퍼 같은 맛 - 그 맛이다. (이번에 먹어봤다는 뜻은 아님. 오래전에...)

 

여담이지만 환타라는 음료가 태어난 곳도 바로 이곳, 베를린이다. 이건 긴 얘기니 다음 기회에...

 

 

 

어쨌든 먹어 봐야 뻔한 맛인 슈페찌를 주문한 건 아니고, 독일 전통식인 소시지 샐러드 (Wurstsalat. 글자만 봐도 눈치챘겠지만 소시지가 바로 독일어로 Wurst. 커리부어스트 별거 아니었어), 그리고 독일 전통 감자 샐러드 Kartoffelsalat 를 곁들인 닭 반마리 구이를 시켰다.

 

(의도적으로 학센, 아이스바인 피한거 맞다)

 

요 며칠 새(당연히 독일에 머물던 그 며칠 새) 계속 먹고 있지만 감자와 오이를 잘게 썰어 만든 저 카르토펠살라트는 새큼하면서도 입에 붙는 맛이라 고기 요리를 먹을 때 아주 잘 어울린다. 물론 독일이니까 자우어크라우트를 줘도 좋겠는데, 이 린덴브로이의 카르토펠살라트는 좀 너무 짰다.

 

짜니까 맥주를 많이 마셔야 하잖아...

 

 

 

이렇게 앉아서 색깔이 변하는 포츠다머플라츠 소니 타워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6월이지만 해가 떨어지니 날씨가 스산해지던 참인데 비바람이 몰아치니 막 춥다.

 

 

물론 저 천장도 괜히 있는 건 아니어서 비바람이 불어도 밖에 앉아서 맥주 마시고 하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지만, 기온이 점점 내려가는게 느껴진다. 이럴 땐 미련 떨지 않고 후퇴하는 게 상책이다.

 

 

서울 못잖게 편리한 베를린의 대중교통체계. 200번만 타면 어쨌든 집(호텔)에 간다.

 

역시 낯선 도시의 숙소는 교통이 가장 중요.

 

 

비에 젖은 차창 밖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홀이 보인다. 걱정하지마. 곧 갈거야.

 

이렇게 비가 오면 내일은 어쩌나 걱정했지만 미리 걱정해 봤자 아무 소용 없는 변덕스러운 베를린 날씨.

 

 

 

 

그리고, 다음날 박물관 섬에서는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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