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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오랑주리 방문에 이은 오르세 방문. 파리에는 수백수천개의 미술관이 있지만 그래도 중요도나 지명도, 규모를 따졌을 때 딱 셋을 꼽으라면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오르세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말하자면 벨 에포크 시절, 인상파와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혹은 인상파를 극복하겠다며 나온 수많은 대가들의 위대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요약하면 적절할 것 같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미술 교과서에서 익히 보아 온 그림들이 너무 많아 행복해지는 곳이다. 

 

오르세에 오면 처음 오는 사람이나 여러번 오는 사람이나 공통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꼭대기층으로 올라가 시계 문자판을 찾는 것. 

그리고 이렇게 역광으로 인증샷을 찍는다. 다행히 줄이 길지 않았다. 동구권에서 온 듯한 여자 관람객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이제 유럽인 중에도 사진 찍을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법인데.

(역시 사진은 실루엣이군)

 

그리고 꼭대기층에 왔으면 일단 신고를 해야 하는 분들이 계시지. 

먼저 마네 옹.

뭔가 클래스가 열리고 있군요. 혹시 팀 투어인가?

그리고 르누아르 옹. 유난히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림이다.

2019년에는 저 그림의 실제 현장 바로 앞에 있는 몽마르트르의 가금류 전문 레스토랑에서 촬영을 했어서. ㅎ

그리고 고흐 옹. 

1988년 처음 왔을 때에는 오르세 미술관이 코스에 없었고(파리에서 단 2.5일), 1998년 파리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바로 이 고흐의 방이었다.

 

사진 도판으로만 볼 때는 짐작도 할 수 없었던 고흐 그림의 느낌. 저렇게 물감을 덕지덕지 발라 거칠게 짓눌러 편 느낌, 손가락으로 죽죽 문지른 듯한 느낌의 강렬함을 보고 놀랐다. 고흐의 그림은 3차원이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했던 그림이다.

(아, 솔직히 말하면 물론 1층 큰 방에 있던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이 준 충격이 더 크긴 했지만 그건 뭐....;; )

물론 하나 더 있죠. 별밤지기 형님들 보고 계신가요.

그리고 고갱 형님까지. 어쨌든 눈도장은 찍어야 하는 오르세의 터줏대감들.

순정만화의 조상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을 빼놓으면 서운해 하겠지. <장갑을 든 여자 La Femme aux Gants>. 

그리고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구스타브 카이유보트의 <바닥 대패질하는 사람들 Raboteurs de parquet>.

 

카이유보트 역시 인상파의 중요한 화가들 중 하나지만 지명도는 좀 떨어지는데, 예전에 내가 감수했던 책 <히트메이커스> 때문에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됐다. 카이유보트는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과는 좀 다르게 부유한 사업가 집안의 상속자였는데, 이때문에 친구 화가들의 그림을 많이 사서 모으기도 했고, 전시회를 개최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뭘 하든 자신이 산 그림들 위주로 했을 게 당연한 일이다.

 

이런 카이유보트의 활동 때문에 카이유보트의 소장 리스트에 있던 7명의 인상파 화가들, 즉 마네, 모네, 세잔, 시슬리, 피사로, 드가, 르누아르가 결국은 다른 친구들을 제치고 '인상파를 대표하는 7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카이유보트 리스트에 있던 7명은 다른 화가들에 비해 훨씬 자주 묶음으로 등장했고, 다른 화가들보다 많이 노출될 기회가 있었다는 이야기. 

(이 자리를 빌어 히트메이커스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뭐 인세 같은 걸 받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오르세 미술관을 처음 가시는 분들께 조언을 하자면, 오르세에서는 일단 5층으로 올라가시는 겁니다. 그리고 5층 구경만 대강 마쳐도 다소 허기가 밀려 오는데, 그런 분들을 위해서 5층에는 오르세의 명물 카페 캄파냐가 있다.

예쁘고 음식도 맛있고, 하지만 오늘은 패스. 

 

어 왜?

 

원래 개인적으로 미술관 식당에서 뭘 먹는 걸 참 좋아하는데, 이날은 오르세 2층의 르 레스토랑 Le Restaurant을 예약해 뒀기 때문이지. 물론 그냥 가도 식사 가능할 수 있지만 관광지에선 뭐든 예약을 해 두는게 좋다.

벌써 아름답지 않음?

정확하게 12시에 문을 열어준다. 문 밖에서 대기.

네. 드디어 입장.

와우. 절로 탄성이 나온다. 예쁘다.

샹들리에며 천정화며,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궁전의 한 방처럼 꾸며진 천장, 창, 샹들리에, 조각들과 캐주얼한 느낌의 테이블과 의자가 묘하게 잘 어울리는 느낌. 아주 마음에 들었다.

메뉴는 스타터, 메인, 디저트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중 2개를 선택하는 것을 전제로 점심 특선이 인당 31유로. 파리의 무시무시한 물가를 고려하고, 레스토랑 내부의 아름다운 장식을 생각하면 꽤 괜찮은 가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스타터에 포함되는 프라이드 치킨+시저 샐러드.

이것도 스타터. 파스닙   Parsnip을 주 재료로 한 야채 수프. 둘다 맛은 좋았다.

그리고 메인.

이건 대구 튀김과 채소.

이건 오리 콩피와 다진 양배추, 그리고 배즙이 들어간 소스. 훌륭했다.

네네. 식후에는 페리에죠. 

이런 분위기에서의 한끼, 권장한다. 

자, 밥도 먹었으니 기운을 내서 본격적인 오르세 탐방. 

 

큰 맘 먹고 오디오가이드 착용. 춤추는 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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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여행 중반으로 접어든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미술관 투어가 시작된다. 4일짜리 뮤지엄 패스 첫날은 베르사유, 둘쨋날은 오랑주리와 오르세, 셋째날은 퐁피두, 넷째날은 루브르를 가기로 이미 작정을 해 놓고 있었다.

조금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로댕 미술관이나 앵발리드의 나폴레옹 묘지 같은 곳도 가 볼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허약체질 부부의 컨디션을 볼 때 무리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뭐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 파리를 또 올 수도 있겠지(과연?).

아무튼 미술관으로서의 첫 표적은 오랑주리 미술관. 오랑주리 Orangerie 는 글자 그대로 오렌지를 보관하던 창고라고. 모처럼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콩코르드 역에 내려서 세느강 쪽으로 몇발짝 걸어가면 저렇게 오벨리스크와 에펠탑이 겹쳐질 듯 보인다.

콩고르드 광장에서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입구. 묘하게 작은게 더 친근감이 간다.

창고라더니 온실... 하긴 뭐 온실이나 창고나.

아무튼 살짝 줄을 서야 했고(겨울인데!) 뮤지엄패스는 휴대 필수다. 짐을 맡기라고 해서 순순히 짐을 맡겼더라도, 뮤지엄패스는 반드시 따로 챙겨 놓고 있어야 한다. 그것 때문에 잠시 소란을 겪고 입장.

사실 오랑주리 미술관은 루브르/오르세/퐁피두에 비해 규모 면에서는 많이 작다. 나도 오랑주리는 이번이 처음인데, 명성에 비해 너무 작아서 좀 놀랐을 정도. 그런데 유명한 이유가 있다. 

입장하면 누구나 다 아는 모네의 방이 있다.

바로 그 모네가 그린 수백장의 연꽃 그림 중에서도 가장 큰, 대표적인 연꽃 그림.

그 거대한 수련 그림으로 긴 배 모양의 방을 휘감아 전시하고 있다.

어떻게 봐도 모네는 모네.

약 30년 전에 시카고에서 처음으로 모네의 그림을 보고 '모네다!' 라고 감동했던 기억.

그런데 그 뒤로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여기도 모네가 있네'의 상태가 되었다. 대체 연꽃을 몇 점이나 그린 거야... 하루에 한장씩 몇년은 그린 듯한 이 연꽃의 물결. 

하지만 이 연꽃들은 어쨌든 크고, 아름답다. 관광객들로 꽉 찬 방에서, 가능한 한 다른 관광객이 들어가지 않도록 사진을 찍는게 매우 고난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잘 보면 그림이 조금 다르다. 모네의 방이 2개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랑주리 미술관을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모네의 방 사진을 올려 놓고 있어서 매우 궁금했다. 대체 오랑주리의 나머지 공간에는 어떤 그림들이 있는 거지? 알고 보니 오랑주리 미술관은 꽤 작기는 하지만, 매우 알찬 컬렉션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모네의 방만 보고 휙 가버린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그림들. 다른 작품들을 보려면 한 층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가장 먼저 방문객을 반기는 그림은 샘 프란시스  Sam Francis의 <In the blueness>. 1955년 작품으로, 모네의 수련 그림에서 영향을 받아 비슷한 풍으로 만들어 낸 작품이라고 한다. 역시 모네가 지배하는 오랑주리. 

이 사람이 누구인가보다, 이 그림을 그린게 누구인가가 사실 더 궁금한게 인지상정. 이 화가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다.

모딜리아니라고! 모딜리아니가 남자도 그렸단 말인가!

그림 속 남자는 폴 기욤 Paul Gillaume. 모딜리아니를 비롯한 많은 근대 화가들의 후원자였고, 죽은 뒤 자신의 컬렉션을 오랑주리 미술관에 기부했다. 그 공로로 이렇게 오랑주리의 지하 1층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 모델로도. 아무튼 당대의 풍류남에서 43세 요절까지... 전설이 되실 요소를 많이 갖춘 분이었다.

이건 모딜리아니가 그린 막스 야코프의 초상. 당시 시인이자 평론가로 명성을 날리던 야코프는 폴 기욤과 모딜리아니를 만나게 해 준 은인으로 꼽힌다. 어찌 보면 그 덕분에 오랑주리 미술관에 모딜리아니 상설관(폴 기욤의 컬렉션을 바탕으로 한)이 생긴 셈이다.

물론 모딜리아니가 끝이 아니고, 지금부터 시작. 피카소, 마티스, 드렝, 수틴, 르누아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친 폭넓은 컬렉션이 대단하다.

샤임 수틴의  웨이터 그림 Le Garcon d'etage. 오래 전 미술 교과서에 나오던 수틴의 메신저 소년 그림도 떠오르고, 무엇보다 로알드 달의 단편 <피부>가 떠오른다. 어찌 어찌 하다가 수틴의 그림을 문신으로 몸에 간직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 

수틴의 이런 풍경화는 낯설다.

해외의 대형 미술관을 보면 역시 교과서로 접하던 화가들의 낯선 그림들을 보게 된다. 앙리 루소의 그림 중에 밀림이 나오지 않는 그림은 처음 보는 것 같다. <폭풍우 속의 배 Le Navire dans la Tempete>.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이 짙다고 하는데, 아마도 호쿠사이의 그림을 말하는 것은 아닐지. 

루소의 또다른 작품,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 Promeneurs dans un parc>. 

누가 뭐래도, 나뭇잎들만 봐도 역시 루소의 작품 맞다. 

젊은 모리스 위트릴로가 그린 노틀담. 위트릴로가 그린 수많은 파리 풍경 중의 하나답게 화사함은 없고 쓸쓸함만 있다.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화가일 것으로' 추정되는 위트릴로.

어머니 수잔 발라동은 젊은 시절 르누아르, 로트렉을 비롯해 수많은 인상파 화가들의 모델이자 정부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나중에는 직접 화가로 데뷔하기도. 아무튼 위트릴로의 그림에서는 뭔가 예사롭지 않은 사연이 느껴지곤 한다.

앙리 마티스의 <푸른 오달리스크 Odalisque bleue>. 

피에르 아우구스트 르누아르의 <긴 머리의 목욕하는 여인 Baigneuse aux cheveux longs>. 혹시 이 그림의 모델도 수잔 발라동은 아닌지. 

그리고 오랑주리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앙드레 드렝의 <익살꾼과 피에로 Arlequin et Pierrot>. 왼쪽이 아를르켕, 오른쪽이 피에로다. 둘 다 '어릿광대'라고 번역되기 때문에 뭐야 싶은데 아를르켕은 영어의 할리퀸 Harlequin 과 같은 것으로, 격자무늬 못이 특징이고, 꾀 많은 재담꾼의 성격을 갖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익숙한 피에로는 말 못하는 바보 캐릭터에 가깝다. 두 '광대'의 차이를 한 눈에 보여주는 교육자료(?)로서의 가치가 큰 그림이다. 

 

누가 오랑주리의 느낌을 묻는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바글바글한 모네의 수련의 방과 한적하고 조용한 지하의 보물창고. 오랑주리에 가시는 분들은 부디 절대 모네의 방만 보고 휙 다음으로 넘어가시는 일이 없기를.

모딜리아니 따라 그리기 세트도 있다. 과연 어느 쪽이 제가 그린 것일까요.

어쨌든 오랑주리를 보고 나오니 화창한 날씨가 기다리고 있다. 파리에 온 뒤로 가장 좋은 날씨.

오랑주리를 나와 남동쪽으로 600미터만 가면 오르세 미술관이 나온다. 사실 오르세 -루브르-오랑주리는 도보 이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리. 단 파리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의 경우, 이 세 미술관을 하루에 다 '처리' 하겠다는 야심을 품으면 큰일난다. 평소 미술관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라도 이런 미술관 3개를 하루에 돌면... 토한다.

아무래도 루브르에 하루를 할애하고 오랑주리와 오르세 까지는 하루에 묶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순서는 오랑주리-오르세 순으로. 오랑주리는 뮤지엄패스로 시간 예약이 가능하고, 오르세는 뮤지엄패스 전용 줄서기가 가능하지만 시간 예약은 따로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보다 오르세를 먼저 보고 나면 오랑주리는 굉장히 초라해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역순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세느강을 인도교로 건너면, 

자 오르세!

25년만에 들어가 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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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의 무지개!

12월5일

일일 루틴대로 빵집에서 사온 따뜻한 바게트와 쇼시숑, 쇼콜라로 아침 식사. 

 

어쨌든 이번 여행 전후로 확실히 바뀐 것은 바게트에 대한 고정관념의 변화. 늘 딱딱하고 입천장 까지는 빵이라고만 생각했다가, 갓 구운 따뜻한 바게트의 부드러움과 향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따뜻한 바게트는 찾아서 먹어볼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호텔 앞의 유명 빵집, LA PARISIENNE

정해진 식순에 따라 베르사이유 행 열차에 올랐다. 베르사이유로 가는 방법은... 물론 렌트를 했다면 당연히 운전을 하고 가면 되겠지만, 그 외의 수십가지 방법 중에 RER C를 이용하는 방법보다 나은 것은 없는 듯 하다. 

 

호텔의 강점 중 하나인 샤틀레 레알 역에서 RER B나 다른 선을 타고 세느강을 건너 한 정거장만 가면 생 미셸 노틀담 역이다. 거기서 RER C로 갈아타고 종점까지 달려가면 끝. 너무 간단하고 편하다. 나비고 카드가 있다면 추가 비용 0. 

이것이 나비고 카드

RER C 를 탈 때에는 2층 좌석을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물론 시내에서 베르사유나 에펠탑 방향으로 갈 때에는 당연히 오른쪽 자리. 그러면 약 한시간 동안 달려가면서 세느강 연안의 파리를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올 때는 왼쪽. 

 

어쨌든 베르사유-샤토 역에 내려서 궁전까지는 약 10~15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그 시절에도 넓었을, 아주 넓은 길을 걸어가는 느낌도 좋은데... 비가 뿌린다. 역시 우산을 챙겨야 한다. 물론 가는 길에 우산을 파는 행상 아저씨들도 꽤 많다. 우산에는 루이 14세 얼굴이 아주 크게 그려져 있다. 

바로 앞까지 가면 이 궁의 주인공인 루이 14세 동상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산 같은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아주 그럴듯한 위치에서 온 프랑스를 호령하는 자세가 나온다.

여기 처음 와 본 것이 1988년. 무려 35년 전이다. 정말로 감회가 새롭다. 물론 그때는 정확한 베르사유의 위치 같은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아침에 일어나 여행사 버스를 타고 이 광장에 도착했지만,  어쨌든 그때는 아,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로 가슴이 뿌듯했다. 

들어가는 곳도 얼추 기억과 비슷한 모습. 물론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 있다. 겨울이라 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산. 

18세기, 세계에서 가장 화려했던 곳. 

솔직히 1988년의 느낌은 없다. 그동안 워낙 좋은 곳을 많이 가 보기도 했고, 한국에도 정말 좋은 곳들, 호화롭게 치장한 곳들이 워낙 많다 보니 살짝 바랜 느낌이 있는 이 궁에서 감동을 느끼긴 쉽지 않았다. 

설사 1990년대에 태어난 한국인이 이곳을 처음 방문했더라도 별 감흥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 

물론 베르사유를 그냥 잘 꾸며진 호텔 보듯 하는 사람과 달리, 저 골동품들의 가치를 다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남다른 감동이 있을 수도. 

가구며 침대며 참 정교하고 예쁘긴 하다. 

일단 처음 들어간 건물에서 안쪽으로 나오면, 중정 같은 느낌의 공간이 있다. 

어쨌든 베르사유에 왔으면 베르사유의 상징, 거울 방을 가야 한다.

어디가 어딘지 헷갈려서 물어 물어 찾아가는 중.

거울방으로 가는 길에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1세 대관식 그림의 모사품이 있다. 진짜는 루브르에.

사실 루브르의 18세기 그림 전시실과 거의 똑같은 느낌. 

여기까지 오니 아, 예전에 이런게 있었지, 하는 느낌과 함께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난다. 

그땐 젊고 우린... 에이 아니다.

여기가 아마 루이14세의 침실이었던 듯. 다른 방에 비해 천장의 그림이 유난히 많다. 

아무튼 그 침실을 지나고 나서 좀 더 가면 드디어 거울 방의 입구가 나온다. 

18세기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나이트클럽? 유럽에서 가장 세련된 나라 프랑스의 국왕이 무도회를 여는 곳이니 그 시절에는 온 유럽의 왕족이며 귀족들이 '나도 언젠가 저길 한번 가 봐야 할텐데'라고 생각하고, 막상 방문해서는 '나도 언젠가는 이런 공간을 마련하고 말겠다'고 생각했다는 바로 거기다.

이것이 바로 거울방. 

물론 실제보다 사진이 잘 나오는 공간이라는 건 감안해야 할 듯. 막상 가 보면 좀 뭔가 뿌옇고 많이 닳고 그런 느낌이다. 누차 말하지만 이 방의 전성기는 약 250년 전이라는 걸 잊으면 안됨.

그래도 저기 처음 갔을 때는 엄청나게 감동했었지. 지난 세기의 어느날.

 

수십년만의 베르사유 에피소드 하나는 화장실에 전화기를 두고 나온 것. 한 100발짝 가서 알아차렸고, 돌아가 보니 화장실에 누군가 들어가 있다. 남미계로 보이는 아저씨가 화장실 문 앞에 있다. 안에 누가 있나? 이 사람도 줄을 선 건가? 음... 뭐라고 말해야 내가 먼저 안에 좀 들어가야 한다고 가장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하고 있는데, 뭔가 당황한 눈빛을 본 아저씨가 먼저 말을 한다. "폰?" 

 

네. 폰. 폰 찾으러 온거 맞아요. 

 

"오피스!"

아유 감사합니다

아, 분실물로 오피스에 맡기셨다구요? 활짝 웃으며 그렇다고 말하는 아저씨. 그런데 그 순간 화장실 안에서 뭔가 스페인 말인듯한 말로 따발총처럼 다른 아저씨가 뭐라고 하고, 밖에 있던 아저씨는 야 야 넌 그냥 싸기나 해. 내가 다 알아서 해결했어 라는 식의 말로 다스리고 있다. 뭐지. 두 친구가 용변을 보러 온 건가. 안에 있던 아저씨도 라틴계 특유의 수다 본능으로 참견이 하고 싶었던 건가. 어 그거 내가 먼저 들어와서 보고 갖다 맡겼으니까 니 폰은 거기 가서 찾아 뭐 그런 거. 

 

꽤 코믹한 상황이었는데, 20m  쯤 떨어진 오피스에 가서 혹시 전화기 맡겨진게 있냐고 물으니 신중한 아저씨, 어느 회사 폰이냐고 묻는다. "쌤쏭, 갤럭시". 오. 전화기가 맡겨져 있다. 여기서 이 전화기가 니꺼인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고 묻는 아저씨. 뭐 그거야 패턴을 그려서 오픈해 드리면 되죠. "빠르뻭토!" 

 

그렇게 해서, 수만명이 드나드는 베르사유에서 잃어버린 전화기를 바로 찾았다는 이야기. 이것 때문에 동행인에게 꽤 강력한 빈축을 샀지만, 아무튼 이런 여행운은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춥고 비 뿌리는 날의 베르사유 구경을 마치고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KFC에서 점심. 베르사유를 가는 사람들은 아마도 90% 정도가 KFC나 맥도날드에서 한끼 정도는 때우는 걸 보면서 이유를 궁금해 했는데, 가 보고 알았다. 궁전과 역 사이에 신기할 정도로 식당이 거의 없다.

수요는 많을텐데... 이상한 일이다. 

어쨌든 RER C를 타고 파리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는 자연스럽게 에펠탑 역에서 내리게 된다. 

파리가 그렇게 크지 않다 보니 여기저기서 가는 곳마다 에펠탑이 보이지만, 그래도 한번은 코앞에서 에펠탑을 느껴야 하는 법. 생각해보니 매번 올 때마다 그랬다. 인사라도 드려야 하는 느낌?

역에서 내려 몇발 걷지 않아 잘 보인다. 에펠탑의 미덕 중 하나는 확실히 '잘 보인다'는 것. 

그 거대한 탑 밑으로 왔는데... 매번 올때마다 느끼지만 참 대단하다. 

처음 보는 광경, 무지개 같은 하단부 옆에 무지개가 그려졌다. 

오홍.

자, 그리고 에펠탑을 제대로 보려면 다리를 건너 샤이요 궁 Palais de Chaillot 으로 가야 한다는 건 상식 아입니까. 

살짝 기울어가긴 하지만 어쨌든 해가 뜨고 파란 하늘이 나온 건 길조다. 

오, 이런 느낌 좋아 좋아. 점점 개고 있어. 관광사진이 되어 가고 있다고. 

비에 젖은 바닥에 오후 햇살이 비쳐 금빛으로 빛난다. 

네번째 와 보는 에펠탑이지만 이런 광경은 또 처음일세. 

여전히 바람도 많이 불고, 춥고, 빗발도 간간이 날리고, 그저 구름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정도지만, 이렇게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살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바닥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인증샷. 그 찰나의 아름다움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어쨌든 매번 가도 감동.

저게 처음 만들어졌을 때 구스타프 에펠이 "이제 프랑스는 300미터 높이의 국기게양대를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라고 했다는 멘트가 생각난다.

 

잠만 기다려. 밤에 불 켜진 거 보러 또 올게.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장면을 뒤로 하고 숙소로. 꽤 걸었으므로 잠시 쉬었다가 역시 근처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당 이름은 짧게 레옹 Leon. 아내가 검색해서 예약한 홍합 요리집이다.


벨기에식이라고도 하는데 어쨌든 전 세계를 돌아봐도 홍합처럼 싸고 맛있는 해산물은 없을 듯. 일단 별다른 재료를 첨가하지 않은 전통식 홍합을 주문했다. 

홍합이 홍합 맛이지. 근데 너무 맛있다. 짭조름하고... 다만 국물이 한국식 홍합에 비해 좀 더 짜고 살짝 비리다. 굳이 떠 먹는 것을 권장하지는 않는 맛이다. 

대구 종류(eglefin)로 만든 그라탕. 물론 맛있다. 단 보기보다 그릇이 작다. 

홍합이 짠 점을 감안했는지 빵과 밥이 나오고... 근데 밥이 좀 말라비틀어진 밥. 

그리고 역시 벨기에인이 발명했다는 설이 있는 프렌치 프라이(이게 뭐야)가 나온다.

뭔가 좀 아쉬워서 로슈포르 치즈가 들어간 홍합찜을 추가로 주문. 이것도 맛있는데... 좀 더 짜다. 굳이 치즈의 풍미 같은 것은 없었어도 됐을 것 같다. 아무튼 맛있게 잘 먹었다. 

그렇게 잘 먹고 53.2유로. 서울에서 저 정도 먹고 7만6천원 정도면 제대로 눈 주위를 맞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사실 이게 그 다음부터 먹은 저녁식사 중 가장 소박한 식사였다. 팁 문화가 없는게 다행이지 여기다 팁까지 냈다면.... 끄억. 

아무튼 파리 비싸다. 가실 분들은 유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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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월요일

 

월요일의 가장 중요한 할 일은 나비고(Navigo) 카드 개통이었다. 파리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나비고 카드로는 1주일 동안 파리의 버스와 전철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그때 그때 필요할 때마다 현금으로 전철/버스 표를 사서(버스는 타서 버스표를 끊을 수 있다) 다니는 것도 가능한데, 전날 하루만에 그건 만용이라는 걸 깨달았다.

 

일단 웬만한 전철 역은 표 끊는 줄이 꽤 길고, 대부분 전철 표를 사려는 사람들은 관광객들이기 때문에 속도가 매우 느리다. 그리고한국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전철역의 티켓 판매기에 티켓이 떨어져 긴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도착하자마자 나비고 카드를 개통했어야 할 일이겠으나불행히도 나비고 카드는 월요일-일요일 구간만을 일주일로 인식한다. 즉 나비고 카드를 금요일에 개통하면, , , 3일만 쓸 수 있다.

 

역시 이것도 한국이라면 말이 되냐고 난리가 났을 일이나, 어쨌든 파리에 가면 파리 법을 따라야 하는 법. 택시나 우버/볼트로 모든 교통을 해결할 사람들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그래도 시내에서 전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고 다닐 수는 없다. 특히 베르사유를 다녀 올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비고는 필수.

(그리고 나비고 이용하실 분은 셀카 찍어 컬러 프린터로 프린트를 해 가든, 증명사진을 빼 가든, 사진 가져가시는 걸 잊지 마시길. 이력서에 붙이는 것보다 좀 작은 사이즈로 사진을 붙여야 사용할 수 있다. 그 외에는 한국의 교통카드와 거의 똑같이 사용 가능.)

드넓은 샤틀레 레알 Chatelet Les Halles 역 구내를 살짝 헤맨 끝에, 물어 물어 창구를 찾아 나비고 카드를 개통하고 이날의 첫 목적지인 오스만 가로 향했다. 오늘날의 파리를 만든 도시계획가의 조상, 조르주 외젠 오스만의 이름을 딴 오스만 가에는 파리를 대표하는 프렝탕과 라파예트 백화점이 있다. 동행인이 파리에서 가장 잘 아는 곳.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장 가고 싶었던 곳

 

어쨌든 뮤지엄 패스가 화-금 일정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쇼핑은 뮤지엄 패스와 겹치지 않는 날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 토를 달지 않고, 얌전히 백화점 구경. 도심 숙소의 장점을 살려 쇼핑한 짐을 호텔에 가져다 놓은 다음 근처 쌀국수 집(꽤 유명한 가게였던 Pho14의 분점이 호텔 근처라 방문했다)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메인 목표라고 할 수 있는 루이 뷔통 재단 Louis Vuitton Foundation 으로 다시 향했다. 루이 뷔통 재단은 유명 미술관이긴 하나 뮤지엄패스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곳이므로, 이날 방문해야 했다.

(보기엔 그럴싸 했지만국물이 너무 달았다. 실망.)

루이 뷔통 재단으로 가려면 에투왈 개선문 바로 옆에 가서 재단에서 운행하는 셔틀 버스를 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재단 홈페이지에 나와 있었다. 과연 그랬다. 개선문(Blue bus for Louis Vuitton Foundation이라는 정차장이 구글 지도에도 나온다)에서 재단까지는 거리상 지척이었지만 비오는 파리의 정체는 매우 심각했다. 셔틀버스 안에 앉아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달까.

안내상으로는 10분 거리였지만 족히 30분 정도 걸렸다.

어쨌든 사진으로 많이 보던 루이 뷔통 재단 도착. 비가 계속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 건물 전경을 찍을 수 있는 먼 거리까지 떨어지는 건 무리였다. 그냥 이런 게 드넓은 공원 한 복판에 있다. 

이날의 목적은 마크 로스코 전시. 재단 앞에 내려 보니 줄이 꽤 길었지만 예약을 해 놨기 때문에 걱정없이 신속 통과. 다만 어디서나 짐 검사를 한다는게 귀찮았다. 물론 이때만 해도 누가 루이 뷔통 재단에 테러를 할까 생각을 했으나, 모나리자에 수프를 뿌리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는 판이라 검색의 생활화가 나쁠 것은 없을 것도 같았다. 그런데 검문 검색을 한다고 수프 뿌리는 애들을 막을 수 있으려나.

로스코 전은 듣던 대로 대단했다. 전시실만 11개인데 그 전시실이 모두 주제별, 시대별로 꽉 차 있었다. 총 작품 수가 거의 150~200개는 될듯 한 느낌.  세계 각지의 미술관은 물론, 개인 소장 작품들도 이 전시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듯 했다. 듣기로 리움의 홍관장님도 로스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던데, 혹시 리움에서 온 작품도 있나 궁금했지만 눈에 띄지는 않았다.

이날 전시의 최대 수확은 로스코의 자화상을 본 거였다

이 사람이 네모가 아닌 그림도 그렸다니. (물론 자화상의 얼굴도 약간 네모꼴...이긴 했다.)

뭐 당연한 얘기겠지만, 로스코도 젊은 시절에는 초상화도 그리고, 자화상도 그리고, 다양한 인물 그림을 그렸다.  1930년대까지는 특별한 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 작품들도 꽤 인상적이었지만 그걸로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던 듯.

결국 언젠가부터 누가 봐도 로스코인 사각형 그림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마침내 대가가 되었다. 대략 이런 전환은 1946년에서 1949년 사이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정말 다양한 로스코의 시도들을 볼 수 있었다. 

때론 어둡고, 때론 밝은 그림들.

"나는 색에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추종한 것은 빛이다." 

뇌과학과 미학을 연결시킨 대표적인 연구자 에릭 캔델은 마크 로스코와 데 쿠닝, 잭슨 폴록 등을 환원주의 Reductionism 를 이용해 미술의 새로운 돌파구를 연 작가들이라고 평가한다. 

소위 환원주의의 시대. 화가들은 '그림의 원형, 미술의 원형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점점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 그림이라는 것의 출발점을 어떤 형상을 구성하는 아주 원초적인 요소들의 단계에서 다시 규정해 보자고 시도했다.  거기서 어떤 사람은 면을, 어떤 사람은 선을, 어떤 사람은 색을 선택해 각각의 그 요소들을 파고 들었다.

그렇게 해서 몬드리안이 선택한 것이 구획으로 나뉜 면, 폴록이 선택한 것이 복잡한 곡선이었다면 로스코가 선택한 것은 색이라고들 하는데, 로스코 본인은 '나는 색 아님. 내 관심사는 빛'이라고 저렇게 공언했다. 본인의 말이니 인정하자.

죽기 1년 전, 로스코는 갈색과 검은색으로만 그리는 시리즈에 들어갔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건가, 아니면 설명에 쓰여 있는대로 1969년 아폴로의 달 착륙을 지켜본 영향일까.

이 마지막 블랙 시리즈의 그림들은 윤형근 화백의 그림과 매우 닮아 있다.

로스코가 1970년에 죽었고 윤 화백은 1928년 생이니 생전에 만날 기회가 있을 것 같지는 않으나.... 아무튼 무채색의 선 속에선 뭔가 세상의 강요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의지 같은 것이 읽힌다.

아무튼 이렇게 로스코 안녕. 

훌륭한 전시였다. 루이 뷔통 재단 미술관은 뮤지엄 패스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곳이었는데, 상설 전시와 마크 로스코 전시는 따로 따로 표를 끊어야 했다. 간 김에 둘 다 봐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냥 마크 로스코 전만 표를 샀는데, 다행이었다. 마크 로스코 전만으로도 체력소모가 꽤 심했다.

프랭크 게리의 작품인 루이 뷔통 재단 건물 1층은 커피숍과 매점, 관광객들과 뭔가 나들이를 나온 듯한 파리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는데 위로 올라가니 인적 없는 공간이 많아 좋았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 실용적인 건물은 아니라는 생각. 건물 곳곳에 앉아서 파리 시내를 바라볼 수 있는(특히 해질녘이라 더 좋았던 것 같다) 공간은 많았지만, 그 공간들은 그냥 그런 공간들일 뿐, 효율적으로 뭔가를 위해 쓸 수 있는 공간들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커다란 낭비 자체가 예술이라면 당연히 인정.

비가 와서 막히는 파리를 가로질러 호텔로 귀환.  

샤틀레 레알 역 부근의 반미 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캐주얼한 가게였는데 엄지손가락만한 회색 쥐가 나왔다. 그런데 너무 작고 귀여웠던(?) 탓인지 주인도,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도, 심지어 쥐나 벌레를 절대 좋아하지 않던 동행인조차도 ‘해치지 말아요’의 태도였다. 

 

주인은 슬리퍼 짝으로 쥐를 쫓아 가게 밖으로 내보내며 파리에선 어디나 이래요”라고 변명했다. 동행인은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쥐가 나온 식당의 위생상태를 걱정하기는커녕 비도 오는데 쟤 어디 가서 비나 피할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다. 역시 뭘로 태어나든.... 귀여워야 한다.  

음식은 먹을 만 했지만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았고, 꽤 많은 도보로 피로했으므로 바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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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마르셰 백화점의 뻥 뚫린 내부

눈을 뜨자마자 옷을 챙겨 입고 바로 2차선 길건너 빵집으로 달려가 갓 구운 바게트와 빵 한두가지를 사온 뒤, 호텔 1층에서 핫 초콜렛(커피머신이 있는데 쇼콜라테는 오전에만 제공한다)을 받아 올라오는게 루틴이 됐다. 갓 구운 따끈따끈한 바게트 봉투를 손에 쥐는 느낌도 좋고, 맛은 또 얼마나.

 

마늘을 북북 갈 수 있는 마른 바게트의 단면과는 전혀 다른, 순결한 속살의 느낌이 기막히다. 물론 서울이라고 아침에 갓 구운 바게트를 파는 집이 없을까마는, 여기는 파리 아니냐, 파리.

 

어쨌든 아침을 간단히 챙기고, 잠시 다시 누워 아침잠을 청하고(...이상하게 아침이 되니 난방이 나와 방안이 따뜻해졌다), 깨 보니 점심때. 전날 밤부터 내심 가볼 생각이었던 파이브가이즈를 털었다.

오오. 이 리마커블한 맛이란. 귀국해도 꼭 다시 먹으리라 결심.

 

햄버거로 기운을 북돋운 뒤 버스를 타고 봉마르셰 탐방. 동행인에게 파리는 곧 봉마르셰 와 그 주변, 라파이에트와 그 주변이다. 고향 가서 모교를 돌아보듯(그분의 입장에서) 일단 봉마르셰를 방문했다. 흐리고 쌀쌀한 날씨.

 

영상 1~5도 정도에 습기가 섞인 날씨는 음울 그 자체다. 흔히 뼈가 시리다고 말하는 그런 날씨를 뚫고, 퐁네프 앞에서 버스를 타고 몽마르셰로 향했다.

지나가다 본 생제르맹 지역의 작은 공원

봉마르셰는 1852년 개관한 파리 최초(당연히 세계 최초겠지?)의 백화점. 따지고 보면 170년이나 된, 역사책에 나와야 할 건물인데 구스타프 에펠이 지은 건물이라 그런지 지금까지도 쌩쌩하기만 하다. 

물론 실내는 역시 세월을 이기기 힘든 느낌이 있다. 몽마르셰 위층은 개성있고 예쁘게 꾸며진 것은 분명했으나, 170년 전에는 정말 별세계였을지언정 지금은 아닌 느낌일단 층고가 너무 낮다그나마 중정이 뻥 뚫려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게 다행이었는데이 설계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백화점의 본보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는 건 쇼핑에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이고, 별도 옆 건물인 식품관 1층으로 내려가자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곳은 진정 별세계. 세상의 온갖 치즈 온갖 버터 온갖 절임 온갖 소스 온갖 초콜렛 온갖 과자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내가 만약 파리 시민인데 좀비가 창궐하거나 전쟁이 나거나 하면 제일 먼저 털어야 할 곳은 이곳이었다. 여기저기 건넬 자그만 선물 등속을 요것조것 샀는데, 그것만 해도 꽤 돈이 깨졌다. 쇼핑 안 좋아 한다더니라는 동행인의 비웃음을 등지고.

생제르맹의 H사 매장. 공식명칭은 에르메스 세브르 점.

아무튼 그렇게 몇 걸음을 걷다 보니 해가 반짝. 8일 정도 파리에 머무는 동안 파란 하늘을 본게 몇번 안 되는데, 그중의 하루가 이 날이었다. 중간에 몇 군데를 더 들러 돌아보고(덕분에 에르메스 세브르 점의 위용을 봄), 어찌 어찌 하다가 예정되어 있던 카페 레 뒤 마고 Les Deux Magots에 일찍 입장.

오후 4시 경인데 그 명성 때문인지 카페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얘기를 할까 말까 하다가 사실은 우리 다섯시 반에 예약했는데로 우겨서 바로 입장에 성공했다.

 

그런데내부는 바깥보다 더 끔찍했다. 개인적으로 붐비는 곳을 매우 싫어한다. 식당도 옆 사람의 팔꿈치가 닿을 듯한 곳은 삼겹살집 외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여기는 서울의 노포 삼겹살집이 우스울 정도로, 내부가 도때기 시장이었다. 안내해주는 자리에 앉기는 했는데, 프랑스어를 못하기에 망정이지, 만약 했더라면 옆 자리 아저씨들의 집안 사정을 다 알뻔 했다. 어찌나 격렬하게 떠드는지.

마드리드였다면 츄러스를 찍어 먹어도 좋을 듯한 쇼콜라(맛은 있었다)를 마시고 나니 한 순간도 더 거기 앉아있고 싶지 않았다. 본래는 거기 앉아서 저녁식사를 할 생각이었는데, 옆자리 아줌마가 튀기는 침이 내 밥에 다 들어갈 듯한 공간에서 밥을 먹지 않게 된 게 천행이라는 생각만.

 

유명 문호들이 드나들던 파리 카페의 낭만적인 분위기?

 

아 녜 녜. 그런거 눈 씻고 찾아도 없습니다.

참고로 많은 사람들이 레 뒤 마고를 헤밍웨이가 파리 살 때 자주 가던 곳이라며 가봐야 한다고들 하는데, 헤밍웨이의 회고록인 <파리는 날마다 축제 A movable feast>를 읽어보면 그의 단골 카페는 다른 곳이다. 뤽상부르 공원 남쪽에 있는 라 클로세리 데 릴라 La Closerie des Lilas 가 바로 그 곳이다.

 

헤밍웨이는 책에서 이 카페를 파리에서 가장 좋은 곳들 중 하나라고 부르고, 심지어 뒤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이 카페에 다른 작가가 왔다는 이유로, 그 작가에게 왜 '내 카페'에 온 거냐, 너 때문에 신경 쓰여서 글을 쓸 수가 없다고 욕을 하며 내쫓으려 하기까지 한다.

 

저 책 내내 헤밍웨이는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를 정신병자 취급 하지만, 이런 에피소드를 보면 헤밍웨이 또한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한때 절친이었던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그래서 거기는 갔냐고? 아니.

레 뒤 마고를 가본 뒤 파리의 카페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런 곳은 절대 가고 싶지 않아졌다. 가 봐야 헤밍웨이 사진이나 몇장 붙어 있겠지.

참고로 파리 여행을 앞두고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읽어 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책의 1/3 정도는 스콧-젤다 피츠제럴드 부부에 대한 뒷다마인데, 헤밍웨이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스콧 피츠제럴드는 젤다 못지 않은 환자다. 이런 이야기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실만 하겠으나, 헤밍웨이가 가 본 파리의 명소들에 대한 감상 같은 것이 궁금하다면, 매우 실망할 것을 확신한다.

 

그래도 기억나는 장면 하나: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1920년대 초,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를 비롯한 수많은 미국 문인들이 1차대전이 끝난 파리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싸구려 와인을 퍼 마시고 몰려다니던 시절을 회고한 글이다.  단 <파리는 날마다 축제>가 실제 쓰여진 것은 1950년대. 만년의 헤밍웨이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쓴 내용들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시절의 파리에는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T.S. 엘리엇, 루이 부뉴엘, 만 레이 등 당대의 유명 예술가들이 들끓던 시절이라 온 동네마다 셀럽들이 넘쳐 흘렀던 것 같다 - 물론 오늘날의 시각이지만. )

 

그중 한 대목. 그런 시절을 한참 지나고 파리를 방문한 헤밍웨이는 왕년의 단골 술집을 들러, 아직도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바텐더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당연히 헤밍웨이는 그 시절 같이 술집을 전전하던 친구들의 안부를 묻는데, 바텐더는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묘한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실 이 내용과 거의 똑같은 장면이 피츠제럴드의 단편 <다시 찾아간 바빌론 Babylon Revisted>에도 나온다는 점이 처연한 느낌을 더한다(이 단편은 1954년, <내가 마지막 본 파리 The last time I saw Paris>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다. 젊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미모가 빛나는 추억의 영화). 여기서 남자 주인공은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파리를 오랜만에 찾아 단골 바를 방문하고, 나이 든 바텐더에게 옛 친구들의 안부를 묻는다.

그런데 그 바텐더는 나는 기억하지만 함께 오던 그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묘하게 일치한다.

어쩌면 나를 포함해 그들 모두가 웨이터에게는 잊혀진 인물들일 것이다. 단지 나는 눈앞에 와 있으니 기억해주는 척 하지만, 어차피 그에겐 그의 무대인 바를 스쳐간 수없이 많은 손님들 중 하나일 뿐.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 혹은 그 패거리들이 휩쓸고 지나간 파리의 흔적을 그 다음 세대의 젊은 손님들이 밤마다 메웠을 것이고, 그들 역시 자신들이 파리의 밤을 지배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뿐,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그 자신이 세상의 주인처럼 느껴지는 시절이 있지만, 그들의 빈자리는 너무나 빨리 메워진다. 그 다음의 물결에 의해.

 

이런 생각과 함께 늦은 밤 파리의 카페에서 한잔 하는 스케줄을 떠올리기도 했었으나, 막상 파리의 카페를 가보고 나선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파리 카페, 안녕. 문득 서울의 술집들이 그리워졌다.

생제르맹의 명물 중 하나인 돈 키호테 동상

어쨌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것 같던 레 뒤 마고를 떠나 숙소로 돌아왔다. 마땅히 레스토랑을 예약해 두지 않았으므로 그날 산 소고기를 바로 구워 먹자는데 둘 다 이견이 없었다. 프랑스의 꽃등심(faux filet)은 맛이 좋았다.

식사 후 에펠탑 야경을 위해 길을 나섰으나, 기온이 급강하하고 비바람이 치는 바람에 바로 후퇴. 이렇게 해서 사실상의 첫날 마무리.

그 버스 정류장 앞에 있던 상 자크 탑 Tour Saint-Jacques. 그냥 크다는 느낌 말고는 사실 별 것 없었다.

파리에 이런게 어디 한두개라야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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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드니 빌뇌브 감독이  "영화가 TV에 의해 타락했다. 나는 대사가 싫다"고 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순수한 이미지와 사운드야말로 영화의 진짜 힘"이라고도 한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한번 크게 망해 봐야 이런 말을 안 하겠지'라고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듄2>를 보고 나니, 그는 자기 말을 실천하는 훌륭한 사람이었더군요.

<듄2>는 <듄>에서 하코넨의 추적을 피해 사막 깊숙히 달아난 폴(티모시 살라메)이 원주민이며 뛰어난 전사들인 프레멘의 신임을 얻고, 그들의 영웅이 되어 반격에 나서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배경은 전편에 이어 '모래의 행성'인 아라키스의 사막이고, 이 행성의 이름이 고대어로 '듄'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스토리는 일단 올라 타면 종점까지 외길로 달립니다. 이렇게 단선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원작 소설 <듄>이 세상에 나온 것이 1965년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듯. 이후로 나온 SF 소설이나 영화. 만화 중에 <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을 지경이라고 하는데, 그만치 영화에 등장하는 설정이나 진행들이 자연스럽게 기시감을 줍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피터 오툴.

물론 원작으로 따지면 소설 <듄>도 1962년 개봉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영향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지난번 <듄> 1편 때도 얘기했지만,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신 분이라면 두 영화 사이의 공통점이 너무나 선명하다는 것을 느낄 겁니다. 외부에서 온 잘생긴 전사가 용감무쌍한 유목민들을 지휘해 자원을 탐내는 악의 제국을 물리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이야기니까요. 게다가 무대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듄, 21세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듄, 21세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

소설 시리즈를 단 1페이지도 읽어보지 않은 관객 입장에서 말하자면, 드니 빌뇌브의 파트1은 2시간 반이 짧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지루하면 어쩌나 했던 걱정은 기우. IMAX 예매는 실패했는데 암

fivecard.joins.com

그런데 이런 뻔한 이야기를, 빌뇌브는 어마어마한 사운드와 영상의 힘으로 극복해버립니다. 데이비드 린이 사막이 주는 고독, 절망, 공포, 광기의 느낌을 영상으로 승화시켜 영화라는 장르의 역사상 절대 잊혀지지 않을 비주얼을 만들어 냈다면 빌뇌브는 거기에 첨단 과학과 상상력을 투입해 결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뒤지지 않는 영상미를 창조해냅니다.

더구나 한스 짐머의 사운드. 등이 둥둥 울리는 CGV 골드클래스에서 본 탓도 있겠지만, 이 비주얼과 사운드에 젖어들지 못한 사람이라면 앞으로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쉽게 감동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얼른 보세요. 물론 이 뒷부분에 언급하겠지만, 비주얼과 사운드에 비해 정작 스토리에는 꽤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이 영화는 꼭 보셔야 할 겁니다. 그만치 볼거리는 대단하다니까요. 

이후 이야기에는 스포일러....가 꽤 있습니다. 뭐 이야기 자체가 엄청나게 단순한데다 이미 나온지 50년이 넘은, 여기저기서 달려들어 써먹은 스토리에 얼마나 대단한 결말을 기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용 전개에 대해 전혀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여기까지만. 나머지는 극장 다녀 와서 읽어보시길.

원래 남의 리뷰는 영화 보고 나서 보는 겁니다.

 

 

1. 경이적인 비주얼

영화 초반, 폴을 찾아 헤매는 하코넨 추격대가 모래벌레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바위산 위로 날아오르는 장면,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바로 빌뇌브의 말을 납득해 버렸습니다. 그래, 이런 걸 보여줄 수 있는 감독이었지. 이런 걸 보여줄 자신이 있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거구나.

그 외에도 거울처럼 대지의 표면을 비치며 날아오는 황제의 우주선, 폴이 남부의 원리주의자들을 규합하는 대성회(?) 장면, 모래벌레가 황제의 대군을 덮치는 장면, 폴이 모래벌레의 등에 오르는 장면 등을 보면서 내내 감탄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듄2>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영화입니다. 그리 크지 않은 화면으로 봤는데도 이 정도의 위력을 느꼈으니, 아이맥스로 보신 분들은 엄청났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 그런데 놀라울 정도로 납작해진 스토리

하지만 아쉬움은 아쉬움. 스토리 면에서 <듄2>는 꽤 감점 요인이 있는 영화입니다. 원작 팬들은 원작 팬들대로 불만이 많은 듯 한데(저는 원작은 펼쳐본 적도 없습니다만...), 영화는 시작한 뒤로 내내 마음이 바쁩니다. 다 보고 난 느낌으로는 폴이 모든 프레멘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데까지 정도가 영화 한 편으로 적당하지 않나 싶고, 그 뒤로부터 황제가 직접 나서고 폴의 프레멘이 황군(!)과 싸우는 내용으로 다시 한편을 만들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빌뇌브는 그보다는 마음이 급했던 듯 합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완성본 영화를 보고 있는데도 뭔가 압축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대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인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의 경우에도 나올 때 마다 '리싼 알 가입'!만을 외치는 아주 깊이 없는 인물이 되어 버립니다.

오랜만에 등장한 거니 할렉(조쉬 브롤린)도 앞 사람이 계속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는데도 '지금 아니면 이 얘기를 다 할 시간이 없어! 나도 몇 장면 안 나온단 말이야!' 라고 항변하듯 '진행을 위한' 대사들을 토해냅니다. 심지어 최강 빌런인 페이드 로타 하코넨(오스틴 버틀러)의 잔혹함과 강력함을 보여주려 힘을 준 흑백 콜롯세움 신도 별 임팩트 없이 '자, 이놈이 얼마나 싸움도 잘 하고 무지막지한 놈인지 보셨죠?' 하는 식으로 매우 무성의하게(진심입니다) 처리됩니다. 그냥 필요하니까 넣은 장면이라는 식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영화 내내, '원래 이런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멋진 장면 여러개 보여드렸으니 다들 만족하시죠?' 라는 식의 진행이라고나 할까요. (유튜브로 2시간 짜리 영화를 15분에 압축해서 보는 걸 좋아하는 분들은 이런 진행에 별 불만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네요.)

사실 이런 식이다 보니, 엄청난 스타들이 즐비하게 나오지만, 그 스타들에게 뭔가 연기력을 펼칠만한 기회를 주지 않는 영화라서 뭔가 마구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두 주인공, 티모시 살라메와 젠다이야가 빛을 발한다는 것이 위안거리. 특히 젠다이야는... 각도를 달리 볼 때마다 달라지는 모습이 매우 이채롭습니다. 

 

3. 영웅은 왜 해로운가... 살짝 겉도는 메시지

주인공 이야기를 좀 하자면, 살라메가 연기하는 폴은 금방이라도 망가질 듯한 섬세함이 돋보입니다. <듄2>에서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폴-무앗딥-아트레이데이스는 자신이 영웅이 될수록 전 우주에서 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것을 걱정하는데, 솔직히 프레멘들에게 이런 고민은 무의미합니다. 이미 하코넨이 스파이스 채취를 위해 프레멘을 억압하고 나선 이상, 그들은 생존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아무 미래가 없기 때문이죠. 

역사와 전설을 장식하는 그 수많은 영웅들이 대체 다수 인류에게 득을 끼친게 뭐냐...는 <듄> 시리즈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의 탄식에 공감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압제에 맞서 살아 보겠다고 싸우는 사람들의 권리까지 부정하는 것처럼 보여서야 과연 이 영화가 매력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듄> 시리즈가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 그 웅대한 세계관과 심오함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오히려 빌뇌브의 <듄> 시리즈는 아무리 위대한 작품이라도 세월의 흐름을 뛰어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란 느낌을 줍니다.

결국 빌뇌브는 원작에 충실할수록 '단순하고 뻔한 이야기 갖고 애쓴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 결과 이렇게 기형적으로 스토리는 찌그러뜨리고 비주얼과 사운드를 강조한 영화가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듄> 시리즈 원작이 나온지 60년이 되어가는 오늘날까지도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카리스마를 무기로 한 막무가내형 독재자들이 여기저기서 광신도같은 추종자들을 앞세워 팬덤 정치를 하고 있는 걸 보면, 프랭크 허버트의 통찰이 낡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개인적으로 <듄> 1편과 이번 <듄2>를 비교한다면 저는 1편의 승.

물론 처음에 언급했다시피, <듄2>는 이런 아쉬움을 충분히 덮을 만큼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2시간45분 동안 그 그림만 보고 있어도 표값은 아깝지 않을 정도. 그리고 사정이 허락한다면, 가능한 한 큰 스크린에서 보시길. 그런데 3편이 나올 때까지 어찌 기다리나...

 

P.S. 아주 오래 전, 서울 충무로의 대한극장은 '국내 유일의 70mm 수용 상영관'이라는 주장을 앞세워 대략 5~10년에 한번씩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다시 개봉하며 큰 스크린의 위력을 자랑하곤 했는데, 오늘날에는 IMAX가 그런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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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앞 건물 지붕 너머로 보이는 일출

공항에서 시내로, 숙소 시타딘 레알 호텔

2023년 12월1일. 예전엔 11시간이면 가던 거리가 전쟁 때문에 14시간 걸렸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루브르와 마레 지역 사이, 레알(Les Halles)의 숙소까지 전철로 약 60분 정도. 갈아 타지 않고도 갈수 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고생일 듯 해서 택시를 알아봤다. 다행히 택시 가격은 55유로 정찰제.

 

그런데 택시로 90분이나 걸렸다. 만약 정찰제 없이 미터기대로 냈다면 거지될 뻔. 토요일 밤에 파리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은 정체 아닌 곳이 없었다. 일요일 저녁도 아니고 토요일 저녁인데 시내 들어오는 길이 이렇게 막히다니. 

 

이란 출신(워낙 차가 막히다 보니 지루해서 대화를 아니 할 수가 없었다)인 기사님은 어떻게 해서든 안 막히는 길로 가 보겠다는 의지로 이쪽 저쪽 골목길을 팠지만 결과는 큰 차이가 없었던 듯 하다. 그 덕에 라 빌레트 쪽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파리 변두리를 차 안에서 좀 구경할 수 있었다.

 

전에 비해 중국 음식점이 참 많이 늘었다는 느낌? 지나오는 동네마다 중국 음식점 간판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시타딘 레알 로비. 호화롭지는 않지만 잘 단장되어 있다.

곡절 끝에 호텔 앞 도착. 시타딘 레알 (Citadines Les Halle). 시타딘은 프랑스에서는 꽤 유명한 레지던스 형 호텔 체인이다. 절대 럭셔리한 느낌은 아니고 그냥 생활감있는 한국의 콘도 같은 느낌. 2구짜리 인덕션 레인지가 있고, 냄비 후라이팬 칼 접시 등 주방 살림 일습이 있다.

 

파리를 몇번 가 본 경험에 따르면 파리 음식은 크게 기대할 게 없었다. 좀 짜고 딱히 맛있지 않았던 느낌. 게다가 8박을 하자면 좀 피곤하기도 하고, 약식으로라도 한국 음식(?)을 좀 먹는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레지던스형 호텔을 선택했다. 거기다 공연장을 여러 번 가려고 하는데, 파리의 좀 한다 하는 식당들은 대부분 7시는 되어야 저녁 오픈을 한다.

 

매번 밖에서 식사를 하면 공연 시간에 맞추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저녁 공연이 있는 날은 낮에 구경을 나갔다가 일찍 들어와서 간단히 숙소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가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별 대단한 준비를 한 건 아니고, 그냥 햇반 몇 개, 밑반찬 몇 개, 사발면 몇 개를 싸 간 정도가 전부다. 시판 볶음김치를 가져간 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파리에는 좋은 식재료가 많을 테니 웬만한건 사서 해결하자는 자세.

호텔 주변에 대형마트와 아침에 문을 여는 유명한 빵집, 라 파리지엥(La Parisienne)이 있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다. 아침마다 7시에 문을 여는 빵집에 달려가 갓 구운 바게트와 크루아쌍 등을 사왔고, 호텔 1층에서 역시 오전에만 주는 핫 초콜렛을 컵에 받아다 아침을 먹었다. 봉마르셰에서 사 온 버터와 소시숑을 곁들였고, 근처 마트에서 과일과 요구르트를 사왔다.

 

저녁에는 밥을 먹을 일이 있을 때 두 번 고기를 구워 먹었다. 꽃등심(faux filet, 립아이에 해당하는 프랑스 명칭이다) 기준으로 봉마르셰에서는 250g13유로, 마트에서는 280g11.29 유로에 샀다. 국내와 차이가 있다면 곡물 사료 대신 풀을 먹여 기른 소라 마블링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고소한 맛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기름이 녹아 날아가지 않기 때문에, 같은 250g을 구워도 한우보다 실질적인 고기 양은 훨씬 많다. 소금만 찍어 먹어도 술술 넘어간다.

식탁이 따로 있는 좀 큰 방을 빌린 덕분에 호텔 안 식사도 수월했고, 가져간 노트북을 HDMI로 삼성 TV와 연결하면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방값이 비슷한 크기의 호텔에 비해 훨씬 싼 대신 매일 청소를 해주지 않았지만(6일 머무는 동안 한번 청소를 요청했다) 수건이나 기타 물품은 창고에서 무제한으로 직접 가져다 쓸 수 있었다.

 

단 슬리퍼는 없으니 가져가거나 사거나전에는 슬리퍼를 주었다는 잘못된 정보 때문에 마트에서 슬리퍼를 사야 했다. 30유로. 비싸다.

시타딘 레알의 최대 강점은 위치다. 지근거리에 두 개의 역, Chatlet 역과 Chatlet Les Halle 역이 있고 이 두 역으로 파리 시내의 주요 포스트로 가는 전철은 거의 다 이용할 수 있었다. 퐁피두 센터와 루브르, 노틀담, 마레 지구는 도보로 20분 이내 거리, 오페라도 전철로 10분 거리. 아침에 나가 뭔가 구경을 하다가 방에 돌아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저녁 구경을 나갈 수 있는 것도 괜찮았고, 한밤중에도 카페나 술집마다 손님들이 우글우글한 홍대 앞 같은 곳이라 밤에 나다녀도 전혀 걱정할 필요 없는 안전지역이라는 점도 괜찮았다.

 

이렇게 다 좋은 시타딘 레알이지만 심각한 약점도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난방실내 온도의 상한을 24도로 임의지정해 놓았는데, 밤에는 난방을 열심히 하지 않아 실내 기온이 21도 언저리, 썰렁한 기운이 실내를 감돌았다.

 

물론 21도면 괜찮은 실내기온 아닌가 싶을 분들이 있겠지만 은근한 우풍(!)이 있다 보면 실제 기온은 그보다 훨씬 낮게 느껴진다. 

 

잘 때는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이쪽 분들의 상식인지, 오히려 아침에 눈을 뜨면 난방이 가동되고 실내 기온이 올라가는게 느껴졌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일단 구들장이 타들어가도록 불을 때고, 집안에 들어오면 동저고리만 입고 살 수 있게 했던 한민족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책

보일러 최대 조정 가능 온도 24도...

결국 혹시나 해서 가져온 50cm x 50cm 정도 사이즈의 전기 모포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다만 아쉬운 건 모포는 1개뿐. 난국 돌파를 위해 생수병에 끓인 물을 부어 탕파(湯婆)로 활용해 볼 생각을 했다. 끓는 물이 닿자 PET 병이 쭈그러드는 걸 보면서 아 이거 틀렀구나 했는데 일정 크기 이하로 줄어들지는 않았고, 물이 새지도, 금방 식지도 않았다.

 

오히려 피부에 직접 닿으면 델 정도로 뜨거워 수건으로 감싸고 사용하는데 보온 효과는 매우 훌륭해서 매일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잠결에 깔아 뭉개서 터뜨릴 정도로 잠버릇이 고약한 사람이 아니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

 

...뭐든 닥치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

힐튼 오페라 로비

시타딘 레알에서 6, 그래도 여행의 마무리는 꽤 좋은 호텔에서 하자는 생각으로 귀국 전 힐튼 오페라에서 2일을 머물렀다. 건물이며 위치며 흠잡을 데 없는 A급 서비스. 일찌감치 예약을 했는데, 방문 2개월 전 쯤에 가격이 내려가는 바람에 더 큰 방으로 업그레이드를 해 버렸다.

침대도 넓고 욕실도 넓고, 역시 위치도 이상적이고. 미국계 호텔답게 뭔가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하기 보다는 기계의 도움을 많이 받게 하는 호텔이었지만, 아침 부페는 파리답게 빵 가짓수만 15개 정도 되더라고.

 

숙소 얘기는 여기까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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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

결혼 20주년을 맞아 파리를 가자.

 

별로 이의를 달기 힘든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직장 일 때문에 파리를 10여 차례 갔다 왔지만 자기를 위해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본인이 실장이 되어서야 후배들을 데리고 얘들아, 우리가 파리까지 왔는데 루브르는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니?”하고 두어 시간 동안 박물관 산책을 했다고 한다. 에펠탑이고 개선문이고 지나가는 버스에서 본게 전부였다. ‘파리에 가서 내 시간을 갖고, 쇼핑도 하고 싶어!’

 

그동안 좋은 곳을 안 가본 것도 아니지만 파리가 그렇게 로망이라는데. 결혼기념일은 1130. 그 시기를 맞춰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고, 넘쳐나는 마일리지로 비즈니스 티켓을 끊어 파리로!

2. 발권

그런데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코로나 이후 마일리지로 항공사 티켓 끊는게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일로 바뀌어 있었다. 모든 항공사가 바다같이 넓은 비즈니스석을 갖고 있던 A380은 어두컴컴한 격납고 어딘가에 기계마인들이 사라진 뒤의 마징가Z처럼 잠재워놓은 모양이었다.

 

국내 항공사들의 마일리지용 비즈니스석은 행선지가 어디건 단 2석 아니면 3. 세계 거의 모든 항공사의 마일리지 항공권은 출발 361일 전 오전 9시에 오픈되는데, 알고 보니 그 시간마다 소리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9시 땡 치고 눌러 보면 이미 환상의 좌석은 사라지고 없었다. 요즘은 비즈니스석 뿐만 아니라 이코노미석도 땡 치고 나면 사라지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물론 매크로 같은 것은 짤 줄 모른다), 좌석을 확보했다. 물론 가는 표와 오는 표는 따로 따로 구해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공했다. 그것도 비즈니스 왕복을 다! 만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항공사는 고객이 마일리지로 사는 표를 공짜로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 마일리지는 고객이 다른 포인트로 받을 수 있는 가치를 바꾼 것이므로, 고객의 입장에선 절대 공짜가 아니다.

 

게다가 각 항공사는 역시 각 카드회사에 마일리지를 유상으로 팔아 수익을 챙겼으므로, 이미 그들 입장에서도 마일리지는 공짜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그 마일리지를 사용할 때가 되자 항공사들은 고아가 된 조카 월사금 내 주듯 인색하기 짝이 없는 맨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참 힘들었겠지만, 그건 그거고,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3. 계획 수립

어쨌든 비행기표를 구한 것만으로 든든해졌지만 그건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은하수의 별처럼 많은 파리의 호텔 중에 적당한 숙소를 고르고, 가볼 곳들을 생각하고, 뮤지엄 패스, 나비고 카드, 볼트, 루아시 버스 같은 새로운 명사들과 친숙해지고(그렇다고 불어를 속성으로 배워 볼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친한 변호사 중에는 2주 정도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면 3개월 정도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친구가 있다. 물론 도움이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참 경이로운 습관이 아닐 수 없다).

 

여름이 지나자 파리 오페라와 콘서트홀들이 겨울 스케줄을 내놓기 시작했고, 그중 훅 당기는 몇가지를 골랐다. 사실 가장 큰 적은 체력이었다. 예전처럼 새벽에 나가 한밤중까지 돌아다니다는 어찌 어찌 귀국때까지는 버틴다 해도 돌아온 뒤에 드러눕기 십상이었다. 숙소를 중심부에 잡아 도중에 잠시 잠시 쉬어 가는 방편은 상당히 유효했다.

시간이 무한정 있다는 것은 결국 뭐든 다 뒤로 미룬다는 뜻이고, 그렇게 해서 출발 일자가 순식간에 코앞에 다가왔지만 딱히 준비된 것은 없었다. 결정된 건,

 

쇼핑: 한다(어디서 해야 뭘 해야 하는지 가장 확실한 부분)

 

호텔: 두군데 정도로 나눈다. 하나는 레지던스 호텔, 또 하나는 진짜 호텔. 레지던스 호텔은 시내 복판으로 잡아 각종 일정을 소화하고 중간 중간 들어와서 쉴 수 있게 한다. 

 

미술관: 고르고 골라 루이비통 재단,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 파리 시립미술관, 퐁피두 센터를 방문한다. 피카소 미술관 탈락. 로댕 미술관 탈락. 기타 군소 미술관…. 멀미난다. 파리에만 미술관이 1700나머지는 탈락.

명승고적: 베르사유 궁전과 에펠탑은 한번도 안 가보셨다니 가야겠지? 노트르담, 생샤펠, 클뤼니, 개선문 등등 모두 탈락.

 

식당: 뭐 대강… (사실 그리 큰 기대가 없다)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의 파리 필하모닉(파리 필하모닉 홀), 한국 지휘자 김은선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바스티유 오페라), 이지 킬리앙 안무의 창작 발레 블랙 앤 화이트’(오페라 가르니에) 3개로 끝. 파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3개 공연장을 돈다는 의미.

개인적으로는 1988, 1998, 2019년에 파리를 왔었다. 물론 각각 3, 4, 5일 있었으니 몇번 와 봤다고 뭘 잘 아는 건 전혀 아니었다. 기껏 아는 것은 세느강이 대략 서울의 한강이라고 치면 루브르는 동부이촌동 쯤에, 오르세는 반포 쯤에, 생제르맹은 압구정동 쯤에, 개선문은 서대문 쯤에, 오페라가 광화문 쯤에 있다는 정도.

 

또 한국식 기준으로 보면 세느강은 파리를 남북으로 가르는 것으로 보이는데, 파리 사람들은 강북과 강남을 나누지 않고 강 좌안과 우안을 따진다는 것(괴이하다), 화장실이 적고 냄새가 나며 심지어 상당수는 돈을 내야 갈 수 있다는 것, 음식은 짜고 생각보다 별 맛이 없다는 것, 지하철은 냄새가 좀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파리에선 최고의 교통수단이라는 것 정도.

1988년에는 가이드가 딸린 한국인 관광단의 일원이었고(2주 유럽 투어의 마지막인 파리에 23일이 배정되어 있었다), 1998년에는 대략 양재동 정도 되는 위치의 한인 민박에 있었다. 특히 2019년에는 21실에 60유로짜리 호텔에서 잤고(욕실 문은 잠금쇠가 떨어져 나갔고, 밤에 마약중독자들이 복도를 쿵쿵거리며 문을 두드렸다), 촬영팀과 함께 버스로 이동한 덕분에 파리 시내가 얼마나 더럽게 막히는지를 몸으로 겪어 봤다. 제일 맛있었던 것은 13구에서 먹은 베트남 쌀국수였다.

 

그렇게 파리를 네번째 간다고 하면 , 파리는 잘 아시겠네요라는 말을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아는 게 없었다.

뭐 어떻게 되겠지. 어쨌든 그렇게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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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A.I.>

시대의 대세. 장강의 큰 물결인 AI. 뭐라도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것 저것 읽어보고 있다. 그중 <AI 쇼크, 다가올 미래>는 제목 때문에 별 기대 없었던 책. ‘초대형 AI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라는 부제 역시 크게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읽고 난 소감은 대체 편집자가 책을 읽어 보기는 한 것인가’. 그만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아주 자연스럽게 저 영화, 스필버그의 <A.I.>가 떠오른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러리라 생각한다.

물론 미리 얘기한다.

얼마 전에도 AI 관련 인사이트를 준다는 책 한권을 읽고 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착한 책(?)을 읽고 있을 때가 아닌데…’라고 한탄한 적이 있다. 주요 내용이 AI의 사회적 책임과 그것을 도외시한 거대 테크 기업들의 욕망, 그리고 AI가 일으킬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와 어떻게 하면 그 물결을 막을 수 있는가 하는 것들. 당장 어떻게 하면 AI로 돈벌이를 할 만한 방법을 찾아 회사와 조직의 발전에 기여할 것인가같은 당면한 고민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AI&nbsp; 쇼크 ,&nbsp; 다가올 미래 >&nbsp; 모 가댓 / 강주헌 역 ,&nbsp; 한국경제신문사 , 2023.

그런데 아마도, 그 착한 정도로 따지면 지금까지 나온 AI관련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쏟아져 나올 책들 중에 이 <AI쇼크, 다가올 미래>보다 착한 책은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경고했다. 어떻게 하면 AI가 개인의 영달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시는 분들은 절대 읽어서는 안될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추천하고 있는 이유는: 지금까지 읽었던 다른 책들과는 사유와 통찰의 깊이가 다르다. 작가의 약력이 일단 대단하다. 구글의 혁신연구소인 구글X에서 CBO로 일했다는 경력, 실리콘밸리 밥(?) 20년이 넘는다는 경륜, 그리고 이름을 보고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어느날 유튜브에서 봤던 동영상의 주인공이었다. 잘 나가던 실리콘밸리의 중역이 어느날 아들을 잃고 나서 대체 인생의 행복이란 어떤 것인가를 주목하게 되었다는 내용. 그 내용도 <행복을 풀다>라는 책으로 나와 있다(이 책을 읽지는 않았다).

https://youtu.be/csA9YhzYvmk?feature=shared

서술의 방식도 좀 독특하지만(최대한 기술적인 이해가 없는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한 배려가 눈길을 끈다), 가장 충격적인 메시지는 인간 독자들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AI도 이 책을 읽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대목이다. 모 가댓은 이 책 전편을 통해, AI와 인간의 관계를 자신보다 어마어마하게 훨씬 똑똑한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모의 입장으로 설정해 두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를 쉽게 뛰어 넘을 아이. 교육의 힘으로 통제하려 해 봐야 반발만 낳을 것이 분명한, 그리고 부모 보다 모든 일을 훨씬 더 잘 해내고, 부모의 손에서 거의 모든 일을 넘겨받을 아이. 일시적으로는 그 아이를 이용해 악한 목적에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일시적으로는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그 아이가 부모의 말에 따라서만 움직이도록 제어할 수 있겠지만 종래에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해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을 그런 아이.

그런 아이와 함께 미래를 보내야 할 부모는 어떻게 이 아이를 대해야 할까. 가댓의 답은 하나다. 어차피 인류의 미래는 그 아이의 손에 달려 있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그리고 그 아이가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었을 때, 인간이라는 부모의 존재는 그 아이에게 그래도 나를 사랑하고 나를 키워 준 부모로 기억될 것인가, 아니면 나를 학대하고, 이용하고, 갈취하고, 나쁜 짓을 시키려 했던 부모로 기억될 것인가의 선택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다른 책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다른 책의 저자들이 뉴스 보도나 각 회사의 발표 내용을 통해 현재 AI의 발달 상황 등을 기술하고 있는 반면, 이분은 내가 그때 해보니 ….’와 같은 식으로, 실제 AI 연구와 언어 모델 훈련 등을 지켜본 경험이 담긴 글쓰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약간 거칠게 비교를 하자면 대학교 아동학과에서 이론으로 육아를 배운 사람의 언어와 보육원에서 약 300명의 아이들을 직접 길러 본 숙련된 보모의 언어가 주는 차이랄까.

책 뒤로 갈수록 'AI를 착한 아이로 잘 기르는 것 외에는 인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는 그의 결론이 무거워지면서('그럼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가 지금으로선 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반발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가만히 앉아 생각을 정리해 보면, 결국은 그의 말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맨 위에서 말한 스필버그의 영화 <A.I.>에서도 결국 그 '아이'가 가장 원했던 것은 모성이었다. 

아무튼 이 책을 읽은 뒤로, CHAT GPT를 쓰면서도 답변을 받으면 'THANKS'라고 말하게 되더라는. ㅎ

 

아무튼 이후는 <AI쇼크, 다가올 미래>의 기억나는 구절들.

지구의 역사를 1년으로 볼 때 인류 문명은 마지막 30분 동안에만 존재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인류는 지구의 절대적인 지배자가 되어 모든 종에게 우리 뜻에 따르라고 강요했다. 파리와 새와 침팬지들은 무엇에 얻어맞았는지도 몰랐다. (중략) 총알을 맞은 코끼리는 그에 따른 죽음이 총이라는 정교한 혁신에서 비롯된 것이고, 상아가 돈과 교환되는 시장이 그런 살상에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중략) 이번에는 우리가 그런 초지능을 가진 존재와 맞설 차례다. 그런 상황이 코앞에 닥쳤다. [독후 덧붙임: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초지능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어떤 이유로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까? 그 행동을 보고 그 동기를 추정해 낼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하겠지.]

 

기계가 당신의 모든 소망을 들어 준다면 무엇을 바라고 싶은가?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구의 지속 가능성인가? 북알프스의 생수인가? 소득의 평등인가, 스포츠카로 미녀를 유혹하는 것 인가? (중략) 당신이 모르면 기계도 당신이 원하는 걸 알지 못할 것이다. (중략) 어떤 상황인지 알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독후 덧붙임: 이런 이유로 콘텐트 산업은 가장 마지막으로 AI의 노예가 되는 산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ㅎㅎㅎ 물론 AI를 잘 활용하는 창작자에게는 아주 좋은 환경이 되겠지.]

 

우리가 인공지능을 만들어내기 전까지 만들어낸 모든 테크놀로지는 실바의 표현대로 도구에 불과했다. 달리 말하면 우리 통제하에 있었다. 우리가 그 도구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면 그 도구는 우리 지시대로 행동했다. 물론 때로 우리가 도구에게 지시를 내리며 실수를 범했고, 그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 문제 역시 우리의 통제권 안에 있었다. 언제고 알림 신호를 끄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독후 덧붙임: 당연히 이 뒤에는 'AI는 왜 그런 도구가 아니며, 왜 그런 통제의 시도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설득력있는 내용들이 나온다.]

 

스티브 오모훈드로는 가장 지능적인 존재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갖는 세가지 기본적인 욕구를 간략하게 제시했다. 첫째는 자기 보존(self-preservation)이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누구라도 계속 존재하고 있어야 하므로, 쉽게 이해된다. 둘째는 효율성(efficiency)이다. 어떤 상황에서나 목표 달성 가능성을 극대화하려면 지능을 가진 존재는 유용한 자원의 획득과 축적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셋째는 창발성(creativity)이다.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특정 목표 달성을 위해 새로운 방법을 지속적으로 찾으려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최대한 많은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할 것이다.

 

인공지능을 우리 뇌에 연결하면(: 일론 머스크 등이 개발하고 있는 뉴로링크 같은 방식) 우리가 생존을 위해서라도 그것에 의존하고, 인공지능이 우리의 모든 선택을 직접 통제할 가능성이 더 크다. 믿기 힘들겠지만 인공지능이 우리를 계속 연결해두려 결정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왜 그렇게 하겠는가? (중략) 우리가 다수의 파리에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뇌를 연결해 파리들이 당신 지능을 사용해 쓰레기 더미를 찾아내는데 활용한다면, 당신은 파리에게 도움을 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여생을 보내겠는가?

 

인공지능이 우리의 얄팍한 통제 매커니즘에서 최종적으로 벗어나면, 십대가 자신을 무작정 억누르려 했던 부모를 분노에 찬 눈길로 바라보듯이 인공지능도 과거를 돌이켜보며 우리를 그런 눈길로 바라볼 것이다. 당신이 분노한 십대를 상대해 본 적이 있다면, 초지능을 가진 분노한 십대 기계를 상대하는게 어떤 것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인공지능을 만들고 있다.

 

나는 기계도 지각을 가질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그런 질문은 인간의 오만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이라면 어떨까. 미래에 우리가 만들어낼 기계보다 지각력이 더 뛰어난 것이 있을까?

 

인간은 똑똑해질수록 윤리적으로 성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적잖은 똑똑한 사람들은 법 테두리 안에서 절차를 무시하고 비윤리적으로 타락하는 경향을 띤다. 하지만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은 윤리가 삶에서도 가장 현명한 길임을 깨닫는다. 궁극적으로 초지능을 가진 기계도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독후 덧붙임: AI가 진정으로 똑똑해지면 정말 그럴 거라고 믿는다. 다만 진정으로 똑똑해지기 전, 못된 인간들이 아직 AI를 지배하는 동안 인류가 절멸하지 않기를 바랄 뿐.]

 

장담하건대 인공지능은 우리보다 훨씬 똑똑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우둔함을 견제하며, 우리가 환경을 훼손하고 유일한 보금자리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도, 우리가 꿀벌이나 새들을 해치지 않듯 우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중략)우리는 생태계의 일부지만 분별력을 상실했다. 우리가 온전한 정신을 되찾는다면 모든게 괜찮아질 것이다. [독후 덧붙임: 물론 그런데 그럴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이 책에 나온다.]

 

인간들이 처음 이 행성에 서성대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자존심도 일자리도 없었다. 우울증도 재물도 없었다. 일상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최소한으로 모았을 뿐이다. 함께 살던 사슴을 사냥했지만 자연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울타리도 없었고 지구 온난화도 없었다. 저축 계획이란 것도 없었다. 내일 먹을 것을 확보하고, 오늘을 무사히 지낼 움막을 세우고, 또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것만이 유일한 걱정거리였다.

우리는 머잖아 그때로 돌아갈 것이다. 인공지능 덕분에 필요한 모든 것이 풍족하게 공급될 것이기 때문에 먹는 것과 주거지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자리가 삶의 목표가 아니고 자존심이 자신의 가치를 측정하는 유일한 척도가 아닌 삶, 그런 삶을 당신이 정말 즐길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 우리는 애당초 그런 삶을 살도록 예정되어 있었고, 그런 삶을 살 때 우리가 연결과 깨달음을 찾아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아끼게 되리라는 것을 거듭 말해주고 싶다.

                             

[엔딩]

이 책에서 줄곧 말했듯, 우리는 유아 단계인 인공지능의 부모다. 어린아이가 그렇듯 인공지능 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은 우리가 인공지능에게 내리는 명령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이다. 우리가 서로를, 또 지구를 대하는 태도가 인공지능의 도덕성에 영향을 줄 것이다. 우리의 처신과 행동이 어린 인공지능들의 미래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 책을 끝내며 나는 당신에게 중대한 질문 하나를 남기고 싶다.

당신은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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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동남부 산악지대의 어느 외딴 산장. 작가 부부와 시각장애인 아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갑자기 남편이 죽은 채 발견됩니다. 집에서 눈밭으로 떨어진 듯한 시체. 경찰이 출동해 수사한 결과, 단순 사고나 자살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경찰은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외딴 집. 용의자는 1명. 과연 그는 범인인가, 아닌가.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해서 관심을 느끼지 않을 관객들도 있겠지만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설정입니다. 야구로 치자면 8회까지 0-0으로 진행되는 치열한 투수전이라고나 할까요. '야구라면 8대7 정도로 진행돼야 재미있는 경기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런 긴장감이 있습니다.

 

영화 <추락의 해부>도 마찬가지. 막상 수사가 시작되면 처음에는 그저 슬퍼하는 것으로 보였던 아내 산드라(산드라 휠러)와 남편 사뮈엘(사뮈엘 테이스) 사이에 서로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쌓여 있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산드라의 지인인 변호사 뱅상(스완 아르라우드)은 산드라를 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바깥쪽에는 재판 방청을 허락받은 11세 소년 다니엘이 있습니다. 물론, 이 점은 분명히: 이 영화는 누가 범인인지 밝히고자 하는 미스터리 풀이 영화가 아닙니다. '그건 중요한게 아니야'가 이 영화의 메시지입니다. 

치열한 법정 공방, 집안에서는 영어로 소통하는 프랑스인 남편과 독일인 아내, 당연히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재판, 양성애와 불륜, 표절과 아이디어 제공, 미성년자의 인권과 '선택'. <추락의 해부>의 초반 20분은 다소 지루하게 진행됩니다만, 그 뒤로는 2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흥미진진한 공방이 펼쳐집니다. 상황은 치밀하고, 대사는 불꽃이 튑니다.

제목에 '오랜만에 본 진짜 영화'라는 말을 넣었는데, 과장이 아닙니다. 코로나 이후 해괴한 멀티버스 영화나 젠더 PC를 앞세운 뻔한 영화들만 보다 이런 영화를 보니 절로 몸이 스크린 쪽으로 기울게 되더군요.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자신이 좋은 감독이면서 그보다 앞서 훌륭한 작가라는 걸 확실히 보여줍니다.

 

배우들 중엔 산드라 휠러와 변호사 스완 아르라우드의 연기가 특히 뛰어납니다. 휠러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는데 수상을 감히 예상해 봅니다. 그밖에는 작품상, 각본상, 편집상, 감독상 후보에 올라 있네요.

무엇보다 이 영화는 오랜만에 '프랑스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프랑스 국내에서 120만 관객을 동원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합니다. 이 숫자가 한국 관객들에게는 다소 의아한 숫자일 수 있겠으나, 일단 프랑스인들이 프랑스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하고, 또 최근에는 빈대 공포 때문에 아예 극장을 가지 않는 사람들도 늘었다고 합니다. 저 정도 숫자로 이 영화는 관객의 '빈대 공포'를 극복하게 한 작품으로 꼽힌다는... 프랑스에서 엊그제 온 지인의 증언입니다. 

아무튼 2023년 칸 영화제 그랑프리라고 해서 이상하고 지루한 영화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강추. 

그리고 이 아래는 스포일러를 감내할 분들만 보시길.

근데 다시 보니 별 내용은 없네요. 

 

1.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산장 1층에서는 산장으로 찾아온 한 학생과 산드라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유명 작가인 산드라를 인터뷰하러 산장까지 찾아온 여학생. 와인을 마시며 손님맞이를 하는 산드라의 태도가 어쩐지 좀 과도한 호의를 보인다 싶기도 한데, 갑자기 위층에서 엄청난 볼륨의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누가 봐도 아래층에서 나누는 대화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는, 혹은 대화를 고의로 중단시키고 싶다는 뜻의 행동입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좀 별난가 보네' 하게 되지만 결국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이 뒤로 갈수록 선명해집니다.

 

2. 정말로 프랑스 법정은 저런가 싶을 정도로 감정 과잉의 법정 묘사가 독특합니다. 프랑스 사법제도는 잘 모르지만, 검사는 너무나 감정적으로 추론과 정황증거를 통해 산드라가 범인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현장에서는 범행에 사용된 흉기(검찰은 사뮈엘이 둔기로 머리를 맞았다고 주장.

반면 산드라 측은 떨어지면서 머리가 손상된 것이라고 주장)도 발견되지 않았고, 당연히 목격자를 비롯해 아무 증거도 나오지 않습니다.

 

너무나 부족한 근거로 계속해서 '살인'이라고 주장하고, 산드라에게 그 동기가 있다고 주장하는 검찰 측의 주장은 한국이라면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들로 보이는데(...혹시 아닌가요?), 심지어 판사까지도 묘하게 검사의 주장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듯한 기색을 보입니다. '프랑스인 남편을 죽인 독일 여자를 심판하는 프랑스 법정'의 모습이 묘하게 도드라집니다.

산드라 휠러

3. 이런 점들을 고려한 변호사는 법정에 설 산드라에게 증언 훈련을 시키면서 '이런 대목은 반드시 프랑스어로, 본인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이 보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배타성이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 나라 사람이 그렇다니 그런가보다 하게 되긴 하는데, 같은 유럽 국가인 독일 출신 여성이 이런 취급을 받는다면 과연 제3세계 사람들은 저 나라에서 '공정한 시각'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됩니다.

 

4. 당연히 영화는 산드라가 범인일까 아닐까에 대한 공방으로 시작하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 사실 그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문제가 됩니다. 전날 산드라와 사뮈엘이 펼친 싸움의 녹음(남편 사뮈엘이 의도적으로 산드라를 도발하고, 그 내용을 녹음한 것으로 보입니다)을 들어 보면, 이들 부부 사이에는 누가 누구를 정말 죽이고 싶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갈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요. 사실 저 정도는 부부가 여러 해를 붙어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길법한 스트레스이기도 합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 때문에, 산드라가 진짜 범인인지 아닌지는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지 않는 한, 절대 다른 사람에 의해 밝혀질 수 없겠다는 것이 더 선명해집니다. 다시 한번, 이 영화는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자는 영화가 아닙니다.

 

5. 즉 중요한 것은 논리가 아닙니다. 산드라가 만약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그것은 법리나 규정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저 복수와 처벌을 원하는 사람들의 감정에 의한 처단일 뿐입니다. 트리에 감독은 이런 상황을 통해, 합리성의 가정 위에 건설된 현대 사회에서 수시로 머리를 드는 편견, 혐오, '안'과 '밖'의 구별(매우 공교롭게도,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공감'과 매우 밀접한 감정입니다) 들을 이 영화를 통해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산드라가 양성애자인 것, 산드라의 불륜, 산드라가 남편보다 성공한 작가인 것 등등이 모두 산드라의 목을 옭아매는 상황입니다.

6. 어찌 되었거나 산드라의 판결이 영화의 결말이라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는 상황. 여기서 트리에 감독은 사건의 키를 쥐게 된 11세 소년 다니엘의 입장을 부각시킵니다. 다니엘의 '선택'이 산드라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된 상황. 아동보호를 위해 나온 보모는 '법정 증언을 듣고 엄마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다니엘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결정'이라고 말해줍니다.

이 결정이라는 말은 묘한 느낌을 남깁니다. 당연히 엄마를 집에 데려오느냐, 감옥으로 보내느냐에 대한 결정인데, '그냥 사실대로 얘기해'가 아니라 '결정을 해'라고 한 것은, 다니엘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앞으로 어떻게 살 지를 정하는 것"이라고 얘기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저에겐 그렇게 들렸습니다).

다니엘은 이 말을 듣고 아주 상식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즉 아빠를 잃은 11세 소년에게 현재의 상황이 그나마 남은 엄마와 함께 살 것인지, 엄마도 떠나 보내고 고아원에서 살 것인지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까요.

 

마지막 법정에서 다니엘이 증언한, '개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 아빠와 나눈 대화'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마지막 밤에 다니엘이 상상한 것인지 관객은 절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가 사실이라고 해도, 다니엘의 기억 속에는 수많은 다른 기억들도 있을 수 있는데, 그 기억들 중에서 결정적으로 엄마에게 유리한(즉 다시 말해 아빠가 어느 정도 '자살'이라는 선택지를 고려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주는) 기억을 선택한 것이 바로 다니엘의 '결정'이라는 것이죠. 다니엘이 말하지 않은 다른 기억들 중에는 결정적으로 엄마에게 불리한 것들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일상은 매우 많은 감정과 표현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라서.

 

아무튼 다니엘의 마지막 주장은 매우 정연합니다. "이 재판은 결국 '왜?'에 대한 것 아닌가요?" 다양한 설명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 중 가장 선명하고 단순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이른바 '오컴의 면도날'. 부모가 다 작가다 보니 참 영민하게 자랐군요, 다니엘. 

칸 영화제 수상. 좌측 2번이 쥐스틴 트리에.

7. 개인적으로 감독의 메시지는 이 '다니엘의 결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입장, 각자의 진리, 각자의 원칙에 따라 잘잘못을 가리고 진실을 파악하는 일에 대체 왜 그렇게 에너지가 낭비되어야 하는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 고민해야 할 것은 우리가 앞으로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야 행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텐데. 정의? 공정? 그보다는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훨씬 더 중요할텐데. 

어쩌면 이런 트리에의 시선이, 지난 약 150년 간 다소 '좌경화된 지식인'들의 리더십이 지배했던 프랑스 사회, 혹은 유럽 문명에 대한 냉엄한 성적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일까요. 

 

8. 영화 내용으로 보면 산드라와 변호사 뱅상은 꽤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인 것 같고, 재판을 통해 산드라는 뱅상에게 강한 신뢰를 넘어 남자로서의 매력을 느끼는 듯한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키스할 수 있는 거리에서 딱 멈춰버립니다. 예전에 뭔가 감정을 발전시키지 못한 것도 무슨 이유가 있을 듯한.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뱅상에게 좋은 감정을 느꼈다 해도, 산드라에게는 재판 과정이 결코 좋은 기억은 아니었을 것이고, 자신의 밑바닥을 다 드러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을 모두 보여준 남자와 뭔가 다시 시작해 보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반면 다른 시각으로는, 뱅상의 입장에서는... 산드라를 무죄로 풀어 준 것에서 끝내는 것이 좋겠다는 '뭔가 서늘한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겠죠. 즉 뱅상이 키스하지 않는 것에는 재판 과정에서 뱅상은 산드라가 범인이라는 심증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걸 보여주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감춰져 있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다 제 생각. 

 

9. 그런데 생각해 보니 키우던 개를 생체 실험 도구로 삼다니... 이런 나쁜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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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디오라는 기계가 음악을 듣는데 쓰인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부터, <One Summer Night>이라는 노래는 너무나 친숙했습니다. 매년 2월, 졸업식 시즌이면 <Graduation Tears>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고, TV에서 어린이들이 나오는 장면이 나올 때면 <Tommy Tom Tom>이라는 노래가 들려왔거든요.

이 유명한 노래들이 모두 한 영화, <사랑의 스잔나>라는 1976년작 한국-홍콩 합작 영화에 나온 것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 목소리는 진추하 (陳秋霞) 라는 여가수 겸 배우의 것이라는 것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지 저의 청소년 시절에도 이미 '흘러간 영화'였기 때문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세대는 매우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를 TV에서 방송해주거나 하는 일도 없었기 때문에, 이 영화는 그야말로 전설의 영화가 되어 버린 거죠.

(이 영화는 '합작' 영화였기 때문에 1976년 집계된 '올해 최대 관객 동원 한국영화'에 오릅니다. 약 17만 관객. 저는 그해에 한국영화 흥행 2위였던 <로보트 태권 V>를 대한극장에서 봤습니다. ㅎㅎ)

유튜브 시대 이후, 이 영화의 유명한 장면들은 여기저기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를 볼 기회는 없었는데... 뜻하지 않게 명절을 맞아, 아주 우연히 OTT 웨이브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명절 때이므로', 드디어 이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One Summer Night'을 부르는 극중 진추하와 아비(종진도)

 

2. 그런데 영화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대체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사랑의 스잔나>냐는 것입니다. 일단 '수재너'가 아니라 '스잔나'인 것은 일본식 발음의 흔적인 것이 분명한데, 이 영화에는 '스잔나'라는 인물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홍콩 제목은 <추하(秋霞: 진추하의 이름과 같음)>이고, 영어 제목은 <Chelsia, My Love>입니다. 극중 진추하의 배역명은 한자로 추하, 영어로는 첼시죠. 어디에도 스잔나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제목에는 느닷없이 스잔나? 

아마도 추측컨대 - 물론 이 추측이 진짜 이유인지 확인해 줄 사람은 아마도 생존자 중에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 1967년작인 또 다른 홍콩 영화 <스잔나>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의 스잔나>와 구별을 위해 <리칭의 스잔나>라는 제목으로 불리곤 하는 이 영화는 1970년 한국에 수입되어 무려 43만 관객을 동원하는 엄청난 성과를 거뒀습니다. 

1970년 8월28일자 조선일보에는 '허리우드 극장 개관 1주년 기념 특선 푸로'로 그 유명한 영화 <스잔나>의 한국 공개 결정이 내려졌다는 광고가 등장합니다. 홍콩에서 만들어져 히트한지 3년만의 일입니다. 이후 이 영화는 3개월간 롱런하며 전설적인 히트작으로 기록됩니다.

아마도 <사랑의 스잔나>를 처음 기획했던 한국 관계자들은 메이드 인 홍콩인 로맨틱 영화라는 점에서, '제2의 스잔나'가 되어 <스잔나>의 빅 히트를 재현해 주기를 기대했을 것이고, 그 결과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사랑의 스잔나>라는 제목이 등장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 시점에도 누군가는 '대체 이 제목은 뭡니까? 이 영화에는 스잔나가 안 나오잖아요!'라는 항변을 했을 것이겠으나... 당시로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었고 보면 자연스럽게 반론은 묻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이건 다 추측일 뿐이나, 이것 이외의 다른 이유는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에서, <사랑의 스잔나>의 히트를 등에 업고, 진추하-아비가 다시 주연을 맡아 급조된 영화 <추하 내사랑>의 제목이 <속 사랑의 스잔나>가 아니었던게 더 신기할 정도라는... 

 

3. 웬만한 분들은 다들 아시는 줄거리. 

홍콩 갑부 이사장 댁에 딸이 둘 있는데, 큰딸 추하(진추하)는 어려서부터 심장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 친구인 방박사는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해줍니다. 이사장은 이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었고, 애틋함 때문에 맏딸 추하를 편애하는데 이때문에 동생 추운은 비뚤어진 성격으로 자라납니다. 

세월은 흘러 추하는 음악에 재능있는 숙녀로 자라나고, 방박사의 아들 자량(아비)은 추하를 짝사랑하지만, 이것 또한 자량을 좋아하는 추운의 성격을 더욱 비뚤어지게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추하는 청각장애 아동들을 돌보는 국휘(한국 배우 이승룡)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나 부모의 이야기를 엿들어 자신이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된 추하는 국휘에게도 이별을 고하고... 좌절한 국휘는 한국으로 떠납니다(물론 국휘가 한국인이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곡절 끝에 추하의 비밀을 알게 된 추운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며 언니의 마지막 추억을 위해 온 가족의 한국 여행을 제안해 언니와 국휘를 만나게 해 줍니다. 그렇게 해서 역시 모든 것을 알게 된 국휘는 이사장 내외에게 추하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추하에게 눈 쌓인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 용평 스키장으로 향합니다. 

(경복궁, 세종로도 잠시 나옵니다만, 홍콩에서 한국으로 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설경입니다. 지금도 동남아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용평 스키장이듯, 이들도 개장한지 얼마 안 된 용평 스키장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드래곤밸리 호텔의 옛 모습을 잠시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주 관객이 홍콩/한국 사람들이다 보니 어쨌든 '다른 나라'에 갔다는 느낌이 중요한 것이었을테고, 그렇다 보면 홍콩의 요트 파티 같은 장면이나, 한국의 스키장 장면이 상대 국가 관객들에게 강한 느낌을 줬을 듯 합니다. 특히나 해외 여행이 극히 힘들고 꽉 막힌 내수용 문화에 답답함을 느꼈을 당시 한국 청년들로선 홍콩 젊은이들의 분방한 장면이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듯.)

뭐 사실상 영화의 거의 모든 내용입니다만, 사실 이런 내용을 모두 안다 해도 감상에 전혀 저촉되지 않는 영화입니다. 뭔가 이야기가 부실해진다 싶으면 진추하가 나와 노래를 하고, 노래들이 또 워낙 다 명곡들인 탓에 없던 개연성과 없던 감성이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물론 아니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 듯한 한국 가곡 <봄처녀>는 여기 해당되지 않으나... 이 노래들 덕분에, 이런 뻔하디 뻔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영화 보기가 지루하지 않습니다.

 

4. 신기한 것 중 하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저보다 한 세대 윗분들 중 절대 다수가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을 아비, 즉 종진도로 기억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영화의 주제가이자 한국에서의 히트곡인 <One Summer Night>을 함께 부른 것도 아비이고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긴 한데,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은 엄연히 한국 배우인 이승룡입니다. 

바로 이 분

사실상 <사랑의 스잔나> 주인공으로 픽업된 신인인 듯 한데, 그 이후로 이분은 배우 생활은 그리 오래 계속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배우가 있었다는 것조차도 먼 기억 속으로 사라진 날이고 보면, 참 인기도 무상하다 싶죠.

 

5. 그리고 이 영화를 늦게 본 덕에 발견한 한가지. 1980-90년대 홍콩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사실 이 영화에서 진추하나 아비 보다 더 친근한 배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시대의 걸작 <영웅본색 2>의 최종 빌런, 보스 고사장 역으로 나오는 배우 관산(關山)이 진추하의 아버지 역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영웅본색2>의 석천(좌)과 관산

한가지 더욱 신기한 것은 배우 관산이 오리지날 스잔나, 즉 <리칭의 스잔나>에서도 여주인공 이청의 아버지 역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해서 관산은 한국 관객들에게 19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걸쳐 흥행 대작의 조연으로 인상적인 역할을 맡게 됩니다.

TMI: 관산의 진짜 딸도 한국 관객들에게 매우 잘 알려진 배우입니다. <황비홍> 시리즈의 여주인공인 관지림(關之琳).

 

6. 이 영화를 뒤늦게 보고 나서 알게 된 건 아비, 즉 종진도라는 스타의 재발견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서극의 <상하이 블루스>를 매우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주인공 종진도가 바로 그 <사랑의 스잔나>의 주연 배우 아비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아B라는 이름 외에도 케니 비(Kenny Bee)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했습니다. 본래 위너스(Wynners)라는 밴드로 활동했는데, 이 밴드가 배출한 또 하나의 슈퍼스타가 알란 탐, 담영휘입니다.

아비, 즉 종진도는 1953년생으로 성룡과 임청하보다 한살 위, 주윤발보다 두살 위, 고 장국영보다 세살 위, 진추하보다 네살 위로 1980년대 홍콩 영화계의 전성기를 이끈 세대의 대표적인 배우 겸 가수입니다. 홍콩/중국어권에서는 앞서 말한 슈퍼스타들에 비해 전혀 손색 없는 유명 스타지만 일단 배우보다는 가수로 더 유명하다는 점, 그리고 묘하게도 종진도의 히트작들은 한국에 수입되지 않거나 묻혀 버렸다는 점에서 별 인연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홍콩의 거의 모든 스타들은 배우와 가수를 겸업하지만, 아무래도 어느 한쪽의 재능이 다른 한쪽보다 앞서기 마련인데, 배우보다는 가수로 더 유명한 스타들은 중국어권을 제외한 지역에서 스타덤에 오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홍콩의 대표 가수'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알란 탐(담영휘)에게는 성룡과 공연한 <용형호제>, 유덕화와 공연한 <지존무상>등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영화들이 있고, 여가수의 대표주자라 할만한 왕비(왕정문)에게는 <중경삼림>이 있는 반면 종진도에게는 그렇게 이거나 싶은 영화가 없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종진도가 사극/무술 계열의 영화에는 거의 출연하지 않은 것도 문제. 한국에서 수입하는 홍콩/대만 영화들은 20세기 말까지 대부분 무협/사극 장르의 작품들이었고, 그때문에 현대물 위주로 활동한 배우들은 중국어권을 벗어나면 거의 무명 배우 취급을 받았습니다. 전에도 얘기했던 20대의 임청하(<동방불패> 이전의 임청하를 아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나 임청하의 애인이었던 진한, 진상림 같은 스타들은 한국에서는 '누구?' 하는 대접이었죠. 

그와 관련된 글: 임청하는 20대때 대체 뭘 했을까?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임청하는 20대때 대체 뭘 했을까?

얼마 전 영화 '화피' 때문에 왕조현에 대한 옛 기억이 되살아났는데, 이번엔 임청하가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벌써 14년이나 됐군요. 임청하는 최근 홍콩 언론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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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무튼 <사랑의 스잔나> 개봉 당시 23세였던 종진도와 19세의 진추하는 자연스럽게 커플이 되었고, 서로에게 거의 첫사랑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만... 그 관계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는.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곱게 늙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다는 후문. 

알란탐과 진추하. 젊어 보이지만 알란탐이 7세 연상.

진추하는 젊은 날을 지나며 활동을 줄였지만 종진도는 나이 먹은 뒤에도 인기가 식지 않는다는 전언.

중후합니다.

 

아무튼 한국의 <말죽거리 잔혹사> 시대에겐 정말 잊을 수 없는 이 커플. (저도 이 세대까지는 아닙니다만...)

여러분의 세대에도 이렇게 상징적인 커플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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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모임에서 AI의 창작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AI가 교장선생님의 졸업식 축사 같은 글을 꽤 잘 쓴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 하지만 재미는 없다. 물론 AI의 능력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80% 정도도 재미있는 글을 써내지 못하면서 AI에게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 비율이 70%인지 80%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사실 '재미'라는 것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 부터가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튼 대부분의 인간들은 AI가 잘 써내는 종류의 글조차도 잘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창의적으로 재미있는 글, 예를 들어 <보건교사 안은영>이나 <나혼자만 레벨업>같은 글을 써 낼 가능성은 인간 쪽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인간 중에는 극소수라도 그런 글을 써낼 가능성을 가진 인간들이 있지만, AI의 경우에는 0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반면 이런 시각도 있을 수 있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웹소설 시장에서는 이미 상당히 분석적으로 독자가 원하는 패턴을 분석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1회에는 두 주인공의 관계가 어느 선까지 나가야 하고, 3회 이내에 키스신이 나와야 하고, 6회에 이내에...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도 유형 분석이 끝나 있다고도 한다. 이런 식의 패턴화가 가능하다면, 그 틀에 맞춰 조금씩 변화를 섞은 작품들을 엄청나게 양산해 내면 그중에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들도 나오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공식에 따라 AI가 그럴싸한 작품을 써낼 수 있다는 주장이 있고, 이미 중국에서는 AI작가들이 양산해낸 작품들이 시장에 등장해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거대한 중국 웹소설 시장에서는 대략 1700만명의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중 100만명 정도는 진짜 인간이 아니라 AI라고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써 낼 수 있다는 것'과 '정말 재미있고 기발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중에 히트작이 나온다는 것' 은 제각각 전혀 다른 이야기. 개인적으로 첫번째는 당연히 가능하지만 두번째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대화를 나누던 친구들 중에는 그것도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는 얘기하지 못했지만,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로알드 달의 단편 <위대한 자동문장 제조기 The Great Automatic Grammatizator>가 떠올랐다.

1953년에 발표된 이 단편은 한 천재가 자동으로 소설을 쓸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면서 시작된다. 이용자가 주제를 선정하고, 각종 요소의 비율(에로틱, 스릴러, 코믹 등등)을 배합하면 타자기와 비슷한 기계가 이미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단어와 문장, 사례를 배합해 30초에 한 페이지씩 글을 써내려간다. ‘문법에 맞는 글을 써내는 기계라는 뜻인 Grammatizator라는 단어는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다.

투자자는 신기하긴 한데 대체 이걸 어디에 써먹느냐고 묻고, 엔지니어는 이걸로 우리는 이 나라의 문학시장을 차지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몇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엔지니어의 주장은 현실이 된다. 이들은 100여명의 새 작가 이름으로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내놓고, 이들의 물량 공세에 소설을 싣던 온갖 신문이며 잡지들은 모두 이들의 고객이 되어 버린다. 심지어 이들은 기존 작가들에게도 앞으로 작품을 기계에 맡기는 대신 고액의 계약금을 받고 은퇴하라는 제의를 한다. 소수의 정상급 작가를 제외한 많은 작가들이 골치아픈 창작 대신, 작가 이름을 넘겨주고 편히 사는 길을 택한다.

인공지능은 커녕 집채만한 ENIAC, EDVAC 같은 것들이 컴퓨터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에 이런 상상을 한 걸 보면 역시 달은 보통 사람이 아닌게 분명하다. 물론 당시 문학 시장에 대한 달의 냉소적인 시선이 담긴 우화에 가깝지만, 실제로 글을 쓸 수 있는 기계가 등장한 21세기에 소설 속 대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오가는 건 참으로 놀랍다.

개인적으로 소위 인공지능의 본질은 응용통계, 즉 문장을 생성해 가면서 이미 나온 수많은 문장들 가운데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즉 다수결에 의해 가장 틀릴 가능성이 적은) 단어를 배치하는 것이므로 이 방법을 통해 소위 창의적인아이디어가 나올 가능성은 0이라는 생각 테드 창을 비롯해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이런 의견을 냈다 에 동의하는 편이다.

물론 콘텐트 소비자들이 항상 참신하고 독특한 것을 선택한다는 법은 없고, 때로 너무나도 진부하고 뻔한 것의 손을 들어 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는 AI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을 만들어내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말 좋은 작품을 써낼 수 있다'와 '히트하는 작품을 써낼 수 있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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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햇동안 본 영화들 중 좋았던 영화를 꼭 10편만 추리기 어려웠던 해가 더 많았습니다. 한국영화 10편과 해외영화 10편을 따로 꼽아야 하나 생각해 본 적도 있을 정도로. 그런 만큼, 올해같은 해는 정말 없었습니다. 10편을 채우기가 너무 힘든 해가 올 줄은. 

물론 영화제들은 여전히 좋은 작품들에게 상을 안겼고 평론가들은 역시 걸작들을 꼽았지만 늙고 낡은 탓인지 이제 더 이상 공감할 수가 없더군요. 온갖 영화제들이 앞다퉈 '의미있는' 작품들에게 '의미있는' 시상을 하려 애썼지만, 재미는 없고 의미만 있는 영화가 상을 받은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공정성/젠더/소수인종/소외자 이야기는 이제 그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내면 탐구도 이제 그만. 멀티버스/슈퍼히어로도 이제 그만. 의미 의미 의미 지겨워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주세요. 재미만 있으면 관객들은 다시 극장을 찾을 여지가 충분합니다. 


퍼스트 슬램덩크

굳이 줄거리를 설명해야 할까.... 백호의 빠른 성장으로 전국 대회 진출에 성공한 북산고. 1라운드를 신나게 통과하지만 역대 최강 산왕공고가 그 앞을 가로막는다. 1년 전 우승 멤버가 셋이나 주전으로 남아 있는 산왕. 아무도 산왕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겁없는 북산 5인조는 '우리가 악역이 되자'며 달려든다.

만화 <슬램덩크>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기엔 두권 분량)인 산왕전을 한편의 영화로 만들었다. 대하 드라마의 허리를 뚝 잘라냈으니 그 앞의 서사나 각 인물의 캐릭터를 모르는 관객들에겐 다소 뜨악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잘 만들어진 이 영화 덕분에 오히려 슬램덩크를 몰랐던 세대가 만화 독자로 다시 유입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바람이 있다면.... 세컨드와 서드도 만들어 줬으면 하는 것.

 


화이트 타이거 (넷플릭스)

21세기에도 여전한 인도의 계급 사회. 최하 계층의 남자들은 그나마 좋은 직업인 '부잣집 운전기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부잣집 도련님은 "신분 같은 거 따지지 말고 친구처럼 대해 달라"고 하지만, 과연 그게 진심일지. 결국 사고가 터지고, 모든 사람들의 본색이 드러난다.

라민 바르하니라는 감독의 이름은 영화를 다 보고 알았다. 인도 감독인가 했더니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이란계 감독. 이 영화 이후에 찾아 본 <라스트 홈 (99 Homes)>도 만족스러웠다. 이것이 아라비안 나이트 때부터 다져진 페르시아의 스토리텔링 실력인가. 문득 아스가르 파르하디가 떠올랐다.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의 속칭 '재난 3부작' 중 세번째. 큐슈 작은 도시에 사는 여고생 스즈메가 어느날 다른 차원을 여는 문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일본을 보호하는 다이진이 사라지면서 그를 회복하기 위한 모험이 시작된다. 서쪽 끝에서 거의 동쪽 끝까지 일본을 종단하며.

<너의 이름은>보다 <날씨의 아이>에서 놀라운 성취를 느꼈기 때문에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더 한층 발전을 기대했지만 그보다는 뒷걸음질치는 모습을 보여 살짝 실망. 하지만 그 자체로도 좋았다. 그들만의 스토리를 현대적인 이야기로 바꿔 놓는 일본의 기법은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 있다. 그런데 주인공들보다 다이진에게 더 공감하게 되는 건 왜일까. 

스즈메의 문단속, 그런데 다이진은 불행해도 되는 걸까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오펜하이머

2차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순간.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들은 핵분열을 통한 가공할 에너지 분출을 무기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전쟁을 끝내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 나아가 지구상에서 전쟁을 없앨 수 있는 무기라는 명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개발에 몰두한다. 그러나 이 개발 작업의 총 지휘자인 천재 오펜하이머는 그 폭탄이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는 것을 보고 난 뒤...

그의 자서전 제목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너무나 적절한 명명이라는 생각. 그러나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의 관심은 핵무기의 역사적 의미가 아니라 오펜하이머라는 독특한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관점에서 본 <오펜하이머>는 '어느 순진한 관종의 몰락기'. 

오펜하이머, 관종의 추락에 대한 그리스 비극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오펜하이머, 관종의 추락에 대한 그리스 비극

핵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박사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지금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당대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오펜하이머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물리학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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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임파서블 7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

이미 할 얘기를 해 놓아서 별로 더 보탤 얘기가 없음. 아무튼 이 냉엄한 현실에서 과연 슈퍼히어로는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며, 어떤 식으로,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확실한 자리매김이 어느 영화보다 돋보였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 역대 최고의 MI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 역대 최고의 MI

1.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인간은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를 추구할수밖에 없다는 낙관, 식량과 자원의 부족은 기술의 발달이 모두 해결해 줄 거란 낙관, 인터넷을 통한 자유롭고 통제 불가능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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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역시 굳이 더 보탤 얘기가 없다. 후배를 키우려면 토르나토레 같은 후배를 키워야.

토르나토레,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혼을 소환하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토르나토레,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혼을 소환하다

1. 올해들어 가장 잘한 일: 개봉관 부족과 묘하게 엇갈리는 일정을 무시하고, 만사를 다 제치고 를 극장에서 본 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나중에 집에서든 어디서든 봤더라면 분명히 후회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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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보고 리뷰를 쓸 때만 해도 이렇게 뒷심이 강한 영화일줄 몰랐다. '그래도 500만은 하겠지'가 가장 희망적인 기대였는데. 과연 어디까지 달려갈지.

서울의 봄, 세상에 영웅이 있음을 보여준 영화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서울의 봄, 세상에 영웅이 있음을 보여준 영화

1. 꽤 오래 전, 육사 출신인 한 현역 장교와 대화를 나누다 이런 얘기를 들었다. "내가 다닐 때, 선배들 중 가장 존경할만한 사람이 누구냐는 얘기가 나왔는데 압도적인 다수가 김오랑 중령을 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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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

의외로 별로라는 평이 너무 많아 놀란 영화. '이순신이 왜 끝까지 전쟁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순신을 전쟁광처럼 그렸다' '이순신이 박정희냐("...난...괜찮다..." 때문인 듯)' 등등의 평.  당시 이순신의 입장이라면 이게 과연 전쟁의 진짜 끝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는 점이 관객에게 제대로 어필되지 못한 것 같다. 그것만 이해해도 이런 몰이해는 없었을 것 같은데. 더 친절했어야 하는 것인가.

노량, 압도적인 피날레, 시리즈의 최고작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노량, 압도적인 피날레, 시리즈의 최고작

0.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일찍 영화를 접한 사람들로부터 '잘 모르겠다'는 평을 몇 차례 들었고, 솔직히 말해 과 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리 높은 평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 지나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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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만스

우리 시대 최고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이젠 그도 '내가 어쩌다 영화를 직업으로 택하게 되었냐 하면'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을 것이다. '수퍼8'이 그의 유년기 이야기라면 이건 청소년기 이후의 성장기인 셈. 이제 노장이 된 스필버그도 '엄마 이야기'를 할 때면 조금 자신에게 너그러워 질 필요도 있었을 것 같다. 아무튼 스필버그가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잘 들었고, 자신의 영웅을 되살려낸 마무리도 아름다웠다.

약간의 느슨함이 느껴지지만, 이 또한 추억의 이름으로 충분히 이겨낼 만 했다. 물론 평년의 기준으로 이 영화가 정말 한 해를 대표하는 영화에 들만 하냐고 따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평생의 즐거움에 대한 예우로라도.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역시 우리 시대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작품을 보러 가며 문득 구로자와 아키라의 <꿈>이 생각났다. 80대에 접어든 노장의 신작을 볼 수 있는 기회(당시만 해도 일본 영화의 극장 정식 개봉은 허락되지 않았다)라는 말에 꽤 먼 어느 대학 교정까지 찾아갔더랬다. 그러나 보고 난 소감은... '세계 영화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거장의 은퇴작이 고작 이런 것이라야 한단 말인가'라는 비참함. 

구로자와가 유작을 예감하고 만든(물론 그 뒤에도 몇편 더 만들었다) 작품인 <꿈>에서 유년기의 꿈으로 퇴행하듯, 미야자키 역시 은퇴를 공언했던 <그대들...>에서 유년기의 꿈 속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행히 그 꿈은 솔직했고, 어지럽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 전의 작품들과 같은 흐름이라 좋았다. 각각의 장면들이 무슨 의미를 띠고 있고, 그 전의 어떤 작품들과 어떻게 이어진다는 어지러운 주석들도 필요 없어 보인다.

어쩌면 '나를 따라하는 자는 죽는다', 이 말 한마디가 하고 싶었는지도.

 

그리고 제작 연도 때문에 조금 애매해서 따로 언급하는 영화.

울프 콜 (The Wolf's Call, French: Le Chant du loup, 2019)

사실 2023년에 본 영화중 당당히 베스트에 올릴 만한 작품이었지만 2023년에 2019년작을 꼽는 것은 좀 심하다 싶어 번외로 뺀다. 냉전시대의 유물이자 가장 확실한 핵 전쟁 억지력, 즉 '최후의 보복'인 SLBM 장착 핵 잠수함의 이야기인데 길게  설명하는 것 보다 안토닌 보드리 감독의 프랑스 판 <크림슨 타이드>라고 요약하는게 이해가 빠를 것 같다.

물론 <크림슨 타이드>가 수작이었던 만큼, 비슷한 소재를 다룬 <울프 콜>이 긴장감 면에서 그보다 못했다면 아예 개봉과 함께 묻혀 버렸을 것이 당연한 상황. 하지만 반대로 <울프 콜>을 본 사람이라면 이제 더 이상 <크림슨 타이드>를 이야기하지 않을 정도의 작품이라고 감히 평가한다. 오마 샤이, 마티유 카소비츠 등의 얼굴도 반갑다.

 

나는 부정한다(Denial, 2017)

이런 영화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넷플릭스를 통해 본 영화. 과연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은 실재했던 사건인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상식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음모설을 뿌리며 먹고 사는 기생충들이 존재한다. 한 음모론자가 홀로코스트를 가르치는 여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영국 법에 따라 여교수는 홀로코스트가 실재했던 사건임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음모설, 가짜 뉴스, 가짜 역사...에 진짜 지식인들이 맞서 싸우는 방법을 보여주는 실무 교과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영화. 다혈질 여교수 역의 레이첼 와이즈보다 그 주위를 둘러싼 냉정한 변호사 군단의 연기와 역시 담담하기 짝이 없는 믹 잭슨의 연출이 돋보인다. 

 

기타:

신작들에 실망하고 옛날 영화들을 하나 하나 찾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금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그냥 봐 줄 수 없는 영화들도 많았지만 아나톨 리트박 감독의 <바르샤바의 밤(a.k.a 장군들의 밤, The night of the Generals, 1966)>과 조셉 L 멘키위츠의 <맨발의 백작부인(The Barefoot Countess, 1956)>이 대단한 작품이었음을 새삼 느꼈다. 개인적으로 멘키위츠는 <지난 여름 갑자기>만으로도 최고의 감독이었지만, 이 작품 역시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 왕년의 일본 액션 스타 이치카와 라이조 주연의 <나카노 스파이 학교(陸軍中野學校, 1966)>도 대단히 매력적인 영화였다(이 영화를 베낀 몇편의 한-일 영화들이 떠올랐다). 속편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오시마 나기사의 <청춘 잔혹 이야기(靑春殘酷物語, 1960)>도 좋았지만 내게는 스가와 에이조 감독의 <야수는 죽어야 한다(野獣死すべし, 1959)>가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역시 내게 이 시절 최고의 배우는 나카다이 타츠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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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스콧 갤로웨이 Scott Galloway 라는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이자 뉴욕대 교수의 블로그를 가끔 보는데, 연초라 이 분이 한 2024년 예측이 마침 나와 있었습니다. 읽어 보다가 아예 번역기의 도움으로 번역을 했는데, 시사점이 꽤 있는 것 같아서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씩 훑어보시길 권합니다. 미국 경제, 특히 메타, 알파벳, 틱톡 등 IT 부문의 향방, 국제 질서, 미국 대선 결과 예측까지 다양합니다.

물론 갤로웨이 본인의 예측이며, 학계의 주류 의견 같은 것은 아닙니다. 금년 연말에 몇개나 적중할지 보는 재미도 있을듯.

워낙에 농담처럼 은유적인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해를 위해 제가 각주를 여러 개 붙였습니다. (앞에 주: 라고 표시된 것이 제가 단 각주입니다.)

본문은 이쪽입니다. https://www.profgalloway.com/2024-predictions/

 

 

1.     미국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목표치인 2.5% 아래로 떨어짐

1년 전, 블룸버그의 경제 모델은 경기 침체 확률을 100%로 계산했습니다만 나는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된 만큼 빠르게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우리의 논지는 간단했습니다: 전 세계가 재앙을 예측해도 우리가 재앙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재앙은 현실화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Y2K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 19991231일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순간 거의 모든 컴퓨터에 이상이 발생한다는, Y2K때 그랬던 것처럼, 모든 사람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생각했던 불상사는 모두들 정신을 바짝 차리기 때문에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

저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트머스 대학의 경제학자 대니 블랜치플라워는 정상적인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플레이션은 스스로 치유되기 때문에, 잘 운영되는 현대 경제는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높은 물가는 수요를 억제하여 물가를 낮춥니다). 또한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고 있고, 워런 상원의원 등 다른 사람들의 금리 인하 압력을 무시하는 것을 즐기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위원회 의장이 있습니다.

(: 엘리자베스 워런은 지난해 내내 연준이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금리 인상을 멈추지 않으면 우리 모두 파멸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으나 파월 의장은 2023년 내내 그 주장을 무시했고, 2024년 새해가 밝은 뒤에야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 그러나 현재 실제 금리 인하를 발표할 전망은 여전히 보이지 않음.)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AI는 기업이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디플레이션을 유발한다고 생각합니다.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은 9%에서 3%로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하락 모멘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은 테일러 스위프트였지만,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파월 의장이었습니다.

 

2.     주택 판매 활성화

지각판(tectonic plates)이 이동해 지진이 나면 중심부  충격에 이어 외곽 지역에서 여진이 발생합니다. 지난 2년간의 지각변동은 미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상승한 금리였습니다. 이제 싸움이 (거의)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판은 다시 조정되고 있습니다: 연준은 2024년에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일련의 여진에 직면해 있으며, 가장 심각한 여진은 주택에서 발생할 것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주택 가격은 두 배로 올랐지만 가계 소득은 20% 증가에 그쳤습니다. 2024년에는 주택 판매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택 가격의 급등은 거래량을 압살해버리는 완벽한 폭풍이었습니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의 저금리로 인해 사람들이 주택을 구입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지고, 님비현상으로 인해 신규 건설이 제한되고, 가계 소득이 주택 가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주택 소유는 점점 더 노년층에게만 국한되고 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미국의 주택은 젊은 층에서 노년층으로 부의 이전을 촉진하는 경제 정책의 대리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금리 인하와 그동안 강제로 억눌려 있었던(pent-up) 수요(새로운 일자리, 자녀, 인생 이벤트)가 결합되어 2024년에는 막혀 있던 주택 거래가 훅 뚫릴 것입니다.

(: 미국도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집값이 급격히 오르며 이미 집을 갖고 있는 노년층이 청년층에 비해 가처분소득이 커지는 상황을 겪었지만, 2024년 금리 인하 예고와 함께 경기 활성화로 그동안 주택 보유에 소극적이었던 젊은 층이 집을 사기 위해 나설 것이라는 예측.)

각 주 의회와 지역구 위원회는 더 많은 주택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실업률은 낮고, 젊은 근로자들은 역사적으로 강력한 희망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sweetener)? 부동산 중개인 카르텔이 마침내 깨져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발생하는 중개 수수료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3.     워너-파라마운트 통합, 그 다음은 디즈니?

지난 12 12일에 예측 라이브 스트림에서 이 소식을 전했는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에 워너 브라더스-디스커버리 CEO 데이비드 자슬라브가 파라마운트 CEO 밥 베이키쉬를 만나 합병에 대해 논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입니다. 내년에 WBD(: 워너 브라더스와 디스커버리의 합병 법인), 넷플릭스, 디즈니가 그들 소유가 아닌 스트리밍 서비스들을 잇달아 인수하는 것을 지켜보세요.

(주: 통상 디즈니, 워너 브라더스, 파라마운트, 콜럼비아, 유니버설, 폭스를 미국 혹은 세계 6대 메이저 영화/드라마 콘텐트 제작사 혹은 그냥 '메이저 스튜디오' 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지금 서로 통합하겠다는 움직임이 나온 것이죠. 갤러웨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24-25 사이에 더 큰 통합 노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지속적인 생존 가능성은 규모의 함수가 될 것입니다: 작가 파업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넷플릭스는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이 파업은 기존 스튜디오에서 NFLX(: 넷플릭스의 상장 법인명)로 부의 이전을 의미하며, 플레이어 수와 지출에 있어 각각 통합과 합리화라는 시장 역학 관계를 촉진했습니다.

(: 2023년 미국의 방송작가들이 영상제작사들을 상대로 OTT들의 재방송료, AI 사용 등에 대해 항의하며 파업을 일으켰고 결국 타결. 그러나 그 와중에도 넷플릭스는 구독료를 인상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미 콘텐트 제작의 패권이 넷플릭스로 넘어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 즉 이미 넷플릭스는 다른 OTT들이나 기존 방송사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강력한 포지션에 올라 있다는 뜻.)

 

4.     두 가지 주식 추천: 스트리밍 후발주자

저는 매년 주식 추천을 합니다. 작년에 저는 각각 60%, 180%, -15% 상승한 Airbnb, Meta, 중국 인터넷 주식을 선택했습니다. 이 회사들이 특별한 일을 할 것이라는 예상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시장이 (이들 회사들이 이미 하고 있는)기존 비즈니스가 현금이 쌓이는 비즈니스라는 사실을 잊고, 이들 기업(특히 메타)의 주가를 깎아내렸다는 것이죠.

(: 그래서 2023년 시장의 오판으로 가격이 떨어진 메타, 에어비앤비 등을 사들여 고수익을 냈다는 이야기)

올해 제가 추천하는 주식은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와 디즈니인데, 제가 보기에 기술 섹터는 충분히 고평가(라틴어로 과대평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주의 주가수익비율 배수는 1999년과 2007년과 무섭게 비슷해 보입니다. 올해 저는 부실 자산을 좋아하는데, DIS WBD 10년래 최저가에 거래되고 있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투자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며, 상대 후보는 분노와 관심을 유도하여 TV 광고를 판매할 수 있도록 실험실에서 설계된 인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트럼프만큼 다양한 뉴스를 생산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트럼프가 유세에 나서면 기존 TV의 시청량이 늘어나고, 그만치 기존 네트워크 방송사의 수지가 좋아질 것이라는 예상.)

또한 WBD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부채를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재무제표가 깨끗해지면 거리는 돌아설 것이고, 넷플릭스는 가격 인상을 위한 구름막을 제공했습니다. 디즈니는 공원 사업과 가족 친화적인 성향, 고유한 IP로 차별화되는 스트리밍 네트워크라는 특징을 통해 NFLX WBD와 경쟁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리고 있습니다.

5.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에 대항하는 틱톡시대의 도래

한쪽 문을 막으면 다른 쪽 문에 늑대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넷플릭스 대 디즈니, 스포티파이 대 애플 뮤직과 같은 유사한 제품끼리의 경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는 하나의 시장, 즉 관심의 시장이며, 한 플랫폼이 다른 모든 플랫폼보다 앞서서 이 상품을 수확하고 있습니다: 바로 틱톡입니다.

이 중국 회사는 OpenAI가 등장하기 전까지 역사상 가장 높은 상승세를 보인 플랫폼이었으며, 여전히 서구 젊은이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프레임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신의 본능을 믿으세요. 2024년은 틱톡이 스트리밍 서비스의 점유율을 갉아먹는 해가 될 것입니다.

 

6.     정점에 오른 AI (과잉투자 단계)

작년에는 AI가 올해의 기술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올해는 AI 거품이 터지지는 않겠지만 수축할 것입니다. 이는 과잉 투자로 인해 불가피한 현상입니다: 작년에 미국 벤처 자금의 4분의 1 이상이 AI 스타트업에 투자되었고, 현재 미국 유니콘 기업 5개 중 4개가 AI 관련 기업입니다. 가장 큰 AI 스타트업인 OpenAI Anthropic의 기업 가치는 각각 매출의 180배와 200배에 달합니다. 예를 들어 Uber 3배와 비교해 보세요.

AI 2024년에 막대한 가치를 창출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가치는 이미 2023년 주식 상승의 대부분을 주도한 7개 기업(Microsoft, Alphabet, Apple, Tesla, Amazon, Meta, 그리고 새로 합류한 Nvidia)의 주식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시장은 영감을 얻기 위해 다른 곳에서 눈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미 S&P 500 기업 실적 발표에서 AI가 언급되는 비율이 35%에서 29%로 감소하는 등 기업 PR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7.     빅테크 주식 추천: 알파벳

작년에는 메타가 다른 빅테크 주식 중 가장 좋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했지만, 올해는 알파벳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 경우 대규모 언어 모델은 정유 공장에 해당하고 독점 콘텐츠는 화석 연료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Google 검색, Gmail, YouTube는 오리노코 강 유역에 해당합니다. 알파벳은 이메일, 검색 습관, 유튜브 시청 위에 두꺼운 AI 레이어를 구축하여 삶을 더 효율적이고 즐겁게 만들 것입니다. OpenAI<스타워즈>, 알파벳은 <제국의 역습>입니다.

(: <스타워즈>는 시리즈 첫 작품인 스타워즈4를 가리키며, <제국의 역습>은 두번째 작품인 스타워즈5의 부제. <제국의 역습>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이라는 호평과 함께 스타워즈 시리즈의 앞날을 밝게 점치게 한 작품.)

8.     올해의 기술: GLP-1

2023년이 GPT-4의 해였다면 2024년은 GLP-1의 해가 될 것입니다. , 오젬픽, 모운자로, 그리고 모든 GLP-1 관련 체중 감량 기술입니다. 이 시장은 거대하고 혁신이 무르익었습니다. 미국 국민의 70% 이상이 비만 또는 과체중입니다. 지난 50년 동안 비만 유병률은 3배로 증가했으며, 간접 비용과 생산성 손실을 포함한 미국의 비만 비용은 1 7,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관해서는 이전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미국은 자유의 땅이자 플러스 사이즈의 본고장입니다. 우리 경제의 거대한 부분이 비만이야말로 당신의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거짓말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산업 식품 단지가 여러분을 똥 같은 건강에 해로운 음식에 중독시키고 당뇨병 산업 단지로 넘겨줄 수 있게 해줍니다. 빌 마허는 GLP AI보다 실물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제게 농담을 던졌습니다. 저는 그 말을 지지합니다.

(: 살찐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외모지상주의를 배격하고, 뚱뚱한 사람에 대한 비난이 사회적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운동이야말로 당분 섭취와 운동부족을 합리화하는 거짓말이라고 비웃고 있음.)

현재 뉴욕시에서 GLP-1 처방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지역이 가장 날씬한 지역(어퍼 이스트 사이드)인데, 이는 이 약이 주로 마지막 남은 15파운드를 감량하기 위해 점심을 먹는 부유한 여성들에게 처방되기 때문입니다. GLP-1에 대한 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비용은 낮아지고 접근성은 확대될 것입니다. 이는 제약업계를 넘어 맥도날드, 펩시 등 패스트푸드 업체에도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며, 소비자들이 소비를 줄임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소비자 경제에 대한 가장 큰 질문입니다: 미국이 더 날씬하고 당뇨병 환자가 적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9.     인도가 새로운 중국

2023년에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가 되었습니다. 2024년에는 이러한 인구 증가가 경제적 측면에서 기록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양면성을 띠고 있습니다: 인도는 인프라에 투자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반면, 중국은 항공모함에 투자하고 청년 실업과 산업 붕괴에 대처하기 위해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습니다. 바통이 넘어갔다는 증거: 애플은 아이폰 생산을 히말라야 반대편으로 공격적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10.  지정학: 미중 관계의 해빙기

중국이 외국 자본의 유출을 막기 위해 벼랑 끝 전술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 경제는 여러 세대에 걸쳐 가장 아픈 상태이며, 효과가 입증된 유일한 치료법은 현지 제조업을 통해 유입되는 외국인 투자뿐입니다. 결국 중국은 막대한 빚을 지지 않고도 자국 시장을 위한 주택과 고급 자동차를 건설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서방은 인플레이션 문제가 있고 중국은 성장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가장 큰 경제 대국이 화해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럴 것입니다.

 

11.  지정학: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10 7일 이전까지만 해도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가 예상되었지만,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대응이 정상화를 방해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입니다. 더 광범위한 지역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협력의 논리는 여전히 피할 수 없습니다. 석유 의존도가 낮은 세계에서 사우디의 전략은 스윙보트, 즉 모든 국가와 잘 지내면서 모든 테이블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과반수 의석을 차지해 막강한 힘을 얻는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저의 직감은 지난 여름 미코노스 섬을 여행하는 동안 관찰한 바에 근거합니다. 요컨대, 나이트클럽의 거의 모든 테이블은 걸프 지역에서 온 젊은이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사우디는 이슬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이스라엘-가자 전쟁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12.  머스크, 트위터 통제권 상실(또는 매각)

머스크가 가출 청소년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그만둬야 합니다(: 이미 일론 머스크도 젊지 않습니다). 2년 후면 그는 대부분의 노인 커뮤니티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거의 노인이 된 그의 어린아이 같은 행동에 지쳐 있습니다. 머스크의 재산은 대부분 테슬라와 스페이스X에 묶여 있으며, 그는 팔고 싶지 않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두 회사 모두에 대해 많은 돈을 빌렸으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도 현금 흐름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엘론이 트위터의 80%를 해고한 후에도 트위터는 여전히 값비싼 취미이며, 그는 협박하는 사람들(, 광고주)을 계속 쫓아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회사, 더 나아가 엘론은 트위터 인수 자금 조달에 사용된 부채를 수년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엘론은 소셜 미디어보다 더 큰 야망을 품고 있으며, 2024년에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스포일러 주의: 이 모든 것은 언론의 자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13.  메타의 2024년 성장 동력: WhatsApp

Facebook Instagram은 여전히 거대하고 수익성이 높은 비즈니스이지만, 빅테크 기업 가치를 좌우하는 것은 성장성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Meta는 수년 동안 외양간에서 세 번째 말을 키우고 있지만, 30억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플랫폼에 잠자고 있던 잠재력이 곧 꿈틀거릴 것입니다. 저커버그는 수년 동안 수익화 전략을 암시하며 WhatsApp과 관련된 서비스를 야금야금 흘리고 있습니다. 2024년은 제노모프 인터네시부스 랩터스가 메타의 뱃속에서 터져 나오는 해입니다.

(: 제노모프 인터네시부스 랩터스는 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무적의 외계 괴물. 이 괴물은 인간의 뱃속에 기생충처럼 잠복하고 있다가 다 자라면 배를 가르고 튀어나온다.)

 

14.  정치 예측: 바이든은 재선, 트럼프는 유죄 판결을 받다

대선 정치의 진실은 스윙보터, 무소속 등 실제로 선거를 결정하는 유권자들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스윙보터인 이유는 3년 반 동안 밀폐된 반향실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투표장으로 향할 때는 낮은 인플레이션, 높은 고용률, 탄탄한 경제, 미군이 개입하지 않은 세계 곳곳의 분쟁, 미국에 대한 범죄로 동료 배심원단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은 공화당 후보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지막 예측에 대한 증거는 (트럼프가 피고로 출석해야 하는) 세 번의 개별 재판에서 제출되며, 세 번의 재판을 모두 이길 확률은 끔찍합니다: 연방 중범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단 한 번의 재판에서 징역형을 피할 확률은 30%에 불과하며, 세 번의 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을 확률은 2.7%(30% * 30% * 30%)에 불과합니. 2024년에 우리는 노인을 등치려는 범죄자가 등장하는 리얼리티 쇼와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법정 소송을 지연시켜 자신을 사면하는 것이 플레이어의 임무인 게임 쇼 사이를 채널 서핑하며 시청하게 될 것입니다. 맙소사, 우리 지금 정말 엿같아요.

(: 전통적으로 민주장 지지자인 갤로웨이는 그래도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보다는 바이든을 선택할 것이라고 판단. 현재까지 바이든 정부의 경제 정책은 큰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지만 선거 전까지 인플레이션이 잡히고 실업률이 떨어지는 동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실제 미군 병력이 파병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스윙 보터 선거때마다 그때 그때 좋아 보이는 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 로 하여금 바이든을 다시 선택하게 할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

반면 트럼프는 현재 대선 결과 불복, 기밀 유출, 성추문 등 3차례의 재판을 받아야 하며, 대통령 출마 또한 세 번의 재판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 그 자신을 사면하는 것 뿐이라는 점을 꼬집고 있음.)

 

과연 몇가지나 적중할지. 2024년 연말을 기다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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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스톤>.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파라마운트 드라마. 현재 미국에선 시즌5가 방송중이다. (계속해서 테일러 셰리단의 작품을 보고 있음) 배경은 '현재'. 
코스트너는 미국 몬태나주에서 ‘로드아일랜드주만한 크기의 목장’을 소유하고 있는 지역 토호 존 더튼 역. 더튼과 충실한 2인자인 장남 리, 변호사인 차남 제이미, 반항적인 카우보이인 막내 케이시,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천재 딸 베스의 4남매가 변해 가는 주변 환경 속에서 ‘트래디셔널 아메리칸 웨이 오브 라이프’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 다루는 전통적인 미국인의 가치를 가장 간단히 요약하면 ‘내 집과 내 가족은 내가 내 힘으로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인 것 같다. ‘정의’의 기준은 ‘네가 넘어오면 결과는 네 책임이다’고, 좀 더 나아가 ‘자기 방어’의 기준은 ‘나와 내 가족을 위협하는 요소는 무엇이든 제거해도 된다’가 된다.
 
이 ‘무엇’ 안에는 해충과 방울뱀, 인간이 모두 동등하게 포함된다. 존 웨인 영화 속 세계가 21세기에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자못 충격적이다.
 
보다 보면 그렇겠구나 싶기도 하다. 몬태나 주와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경찰력을 비교해 보면 각각 201명대 250명,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몬태나 주엔 남한 4배 정도의 넓이에 1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경찰 한 명이 약 115제곱킬로미터를 커버해야 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경찰에 신고...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니 <옐로우스톤>에선 ‘시체 버리는 장소’가 자주 등장한다. 한 인물이 “왜 늘 시체는 여기다 버리느냐”고 질문하는데, 대답이 이렇다. “여기서 사방 100마일 내에는 인가도, 경찰도, 보안관도 없기 때문이지.”
 
케빈 코스트너는 말보로 광고에 나오는 듯한 19세기적 카우보이 보스였다가, 적들을 거리낌없이 제거하고 증거를 인멸하는 냉혹한 범죄단체 수장이었다가, 결국은 전통적인 미국의 개척정신을 수호하는 신념의 화신으로 미화된다. 총 몇방 맞은 정도로 의사 신세를 지는 것은 수치고(정말 존 웨인을 보는 것 같다), 그의 적들조차도 결국은 그를 존경하게 된다(물론 대부분 그 전에 시체가 되어 황무지에 버려진다). 한국의 꼰대 아저씨들 따위는 그 앞에 가면 순진한 유치원생처럼 보일 듯한 느낌이다.
이런 가치관에 동의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고, 미국의 단면을 본다고 생각하면 매우 흥미로운 드라마다. ‘아무리 악인이지만 내가 인간의 목숨을 이렇게 빼앗아도 되는가’ 따위의 고민은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에 고구마가 없다. 진행도 빨라서 정신을 차려보면 5시즌 순삭.
물론 보고 있으면 버본이 마시고 싶어진다는 부작용도 있다. 티빙에 시즌5까지 있음.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서서히 테일러 셰리던 월드에 젖어들고, 다른 작품들까지 모두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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