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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 가기 전부터 리세우 Liceu 극장 이나 카탈루냐 음악당 Palau de la Música Catalana 중 한군데에서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시다시피 리세우 극장은 세계적인 오페라 공연장. 그리고 카탈루냐 음악당은 '가우디의 라이벌'이었다는 평 때문에 슬슬 스페인 바깥에도 알려지고 있는 몬타네로가 지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이라고 불리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공연장을 방문하는 낮 투어 가격만도 30유로. 게다가 투어 내내 사진 촬영 금지를 강조한다고 한다. 그럴 바엔 공연을 보는게 낫지! 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공연을 예매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낚인 것 같기도 했다.

 

이 투어의 존재가 어쩌면 공연 관람을 유도하는 마케팅이었는지도.^^

 

 

 

그런데 국제적인 명성에 비해선 극장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19세기적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이 이 건물에 바치는 정성은 예사롭지 않다. 1층 출입문 옆의 오래된 매표구 자리를 보면 알 수 있듯, 원형 그대로의 보존하려는 노력이 매우 가상하다.

 

건물 뒤편의 정식 매표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식당이 있다. 여기서 한 첫번째 실수는, 이 극장 뜰에 있는 레스토랑과 내부의 카페테리아가 너무 격이 다른 식당이었다는 것. 당초 뜰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었지만 자리가 없었다.

 

뭐, 카페테리아도 모습은 훌륭하다.

 

 

 

 

고풍스러운 시설에서 간단한 먹거리(pincho)와 음료, 맥주, 와인 등등을 판다.

 

문제는 식사. 10유로에 파스타와 음료를 주는 메뉴가 있었다. 웨이터라는 작자에게 무슨 파스타냐고 물었다. '오늘의 파스타'란다. 그래서 그 '오늘의 파스타'가 대체 무슨 파스타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답이 가관. '오늘의 파스타는 스파게티'라는 거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스파게티가 어디 한두가지냐. 그럼 그 스파게티는 '어떤 스파게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냥(just) 스파게티'라는 거다. 그래서 '뭐가 들어가는 스파게티' 냐니까 '밀가루, 물, 소금, 토마토...' 동행인만 없었으면 확 때려 엎을 뻔 했다.

 

아무튼 시간도 그렇고, 다른 사정도 있어서 그 '그냥 스파게티'를 시켰다. 그 결과는 이랬다.

 

 

 

토마토 소스도 아닌, 케첩도 아닌, 뭔가 붉은 국물에 버무린 스파게티였다. 먹어보니 아주 오래 전, 1980년대 학교 구내식당에서 팔던 함박스테이크(한 7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에 살짝 끼어 나오던 '스파게티'의 맛이었다. 햄버거로 치자면... 한 30년 전에 중고등학교 매점에서 팔던 계두버거(패티에 닭 머리를 갈아 넣는다는 소문이 있던 햄버거. 공식 명칭은 '빅보이'인가 그랬다. 먹다 보면 뭔가 뼈처럼 딱딱한 것이 씹혀서 그런 소문이 돌았는지도)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런 우아한 공연장에서 이따위 음식을 팔다니. 기분이 팍 상했다. 관광객의 속을 터지게 했던 웨이터의 태도가 문득 이해가 갔다. 대체 저따위 음식을 뭐라고 설명한단 말인가.

 

먹는 둥 마는 둥(물론 그렇다고 남겼을 리는 없다) 접시를 물리고 공연장으로 입장.

 

 

 

안쪽에서 본 1층 로비.

 

 

뉘신데 여기 계신지...

 

 

 

1층에는 로비뿐이고 실제 공연장은 2층부터다. 그리고 계단 하나, 벽 마무리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2층에는 뭔가 좀 더 격식을 갖춘 레스토랑이 있다.

 

 

 

레스토랑 입구의 휴게공간. 인터미션 때 왕년의 귀족 아저씨들이 샴페인과 시가 한 대를 즐겼을 법한 공간이다.

 

아르누보적인 느낌이 오늘날 보기엔 약간 조잡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당시로서는 최대한의 공력을 들여 치장한 느낌.

 

 

 

극장 내부. 무대의 정면. 대형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 무대는 다소 좁아 보인다. 풀 오케스트라가 바그너나 말러를 공연하기엔 다소 비좁아 보일 정도.

 

 

 

 

낮에 보면 더 예쁘다는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

 

 

 

이렇게 4층 객석의 아치와 연결된다.

 

 

 

2층이 무대와 같은 높이. 3층과 4층에 객석이 있다.

 

 

자세히 보면 이런 느낌.

 

 

 

무대 정면의 위쪽도 화려함의 극치다.

 

 

조금 확대해 보면 이런 느낌. 그러니까 저 가장자리를 둘러 친 거대한 장미꽃 모양을 비롯해 전체 내부의 인테리어 컨셉트가 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거대한 꽃밭이다.

 

 

 

 

딱 내 취향은 아니지만 아무튼 대단히 공이 들어간 작품이라는 건 분명하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 명성에 비해 규모는 꽤 작은 극장이다.

 

 

 

아무튼 공연 시작.

 

볼 공연은 오페라와 플라멩코를 결합해 꽤 상업적으로 성공했다는 오페라 이 플라멩코 Opera y Flamenco. 지난 2009년부터 바르셀로나에서 거의 상시 공연되고 있고, 수시로 해외에서도 초청됐던 공연이다.

 

홈페이지는 http://www.barcelonayflamenco.com/shows.php?id=486#cast-tab 

카탈루냐 음악당은 http://www.palaumusica.cat/en/

 

 

 

2013년 10월19일의 출연진은 이랬다.

 

 

바이올린, 첼로, 카혼(상자같이 생긴 타악기), 피아노에 노래를 겸하는 기타리스트까지 반주자 5명, 칸타오르 cantaor(남)와 칸타오라 cantaora(여) 라고 불리는 플라멩고 전문 싱어 2명, 그리고 소프라노와 테너가 각각 1명씩 등장하는 제법 큰 규모다.

 

 

 

 

물론 이 위에 쓴 사람들은 보조 출연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뭐니뭐니해도 무대의 꽃은 각각 바일라오르 bailaor(남)와 바일라오라 bailaora(여) 라고 불리는 플라멩코 댄서들이다. 특히 이 무대의 꽃은 카티아 모로 Katia Moro(바로 위 사진) 라는 이름의 바일라오라였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공식 예고편을 보는 게 빠를 듯.

 

 

 

 

뭔가 좀 아쉽다. 카티아 모로의 모습을 좀 더 볼 수 있는 다른 공연장의 모습이다.

 

 

 

사실 오페라와 플라멩코의 결합이란 플라멩코의 발상지로 꼽히는 세비야가 무대인 오페라 '카르멘'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나중에 세비야에서 본 플라멩코 공연에도 '카르멘'의 한 장면이 동원된다). 그 밖의 다른 오페라들은 사실 플라멩코와 큰 접점은 없다. 그리고 '오페라' 파트에서 등장하는 두 성악가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실제 오페라의 주역급은 아니라는 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페라와 플라멩코(스페인어 y는 and의 뜻)'는 꽤 매력적인 콘텐트다. 이유는 전체 공연에서 약 1/4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 오페라와는 별개로 3/4 정도의 비중인 플라멩코의 수준이 워낙 훌륭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위에서 거론한 카티아 모로의 열연은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담이지만 스페인도 인터넷 사용이 꽤 보편화되어 있는 느낌인데 비해 플라멩코 관련 내용은 온라인으로 검색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이 플라멩코도 한국에서의 국악의 위치와 다소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80분 정도의 공연을 마치고 박수갈채에 답하는 출연자들.

 

반대쪽에서 보면 이런 모습이다. (물론 이 사진은 위의 Opera y Flamenco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

 

이렇게 해서 첫 이틀이 폭풍같이 지나갔다.

 

 

P.S. 스페인을 여행중인 한 관광객이 이 음악당에서 이 무지치 합주단의 공연을 본 뒤 "이렇게 소리가 좋은 공연장은 오랜만"이라는 소식을 알려 왔다. 카탈루냐 음악당은 보기만 좋은 공연장은 아닌 듯 하다.

 

 

 

(예고) 셋째날, 드디어 살바도르 달리를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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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주익 언덕으로 가는 길은 에스파냐 광장에서 시작된다. 에스파냐 광장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몬주익 언덕의 주요 포스트를 거쳐 몬주익 성을 지나 다시 광장으로 내려온다. '그 중간 중간'에 카탈루냐 미술관, 호안 미로 미술관, 보타닉 가든 등의 볼거리가 있다. 전부 샅샅이 구경하고 나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미 해가 기울기 시작한 오후. 다리도 아프고 그럴 여유가 없다.

 

심지어 이런 중요한 포스트도 버스 안에서.

 

 

 

 

 

 

제일 크게 나온 사진이 제일 흔들렸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영웅,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의 부조다.

 

당시를 기억할만한 또래라면, 결승점에 선두로 달려들어오던 황영조의 모습을 중계하는 캐스터의 "몬주익 언덕에.... 몬주익 언덕에...."라는 숨가쁜 코멘트를 통해 '몬주익 언덕'이란 이름을 결코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1992년 8월10일. 바르셀로나 올림픽 폐막 경기인 마리톤에서 황영조는 전 세계의 황금 다리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황영조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우승후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황영조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가 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었다. 이유는 더위에 강하다는 점. 당일 바르셀로나 올림픽 위원회는 초여름 무더위를 피해 오후 6시30분로 출발 시간을 미뤘다. 그래도 시내는 스페인의 태양에 후끈 달아올라 있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결승점인 몬주익 경기장은 언덕으로 올라가는 대로 곁에 지어져 마지막 2km 정도는 오르막을 뛰어올라야 하는 난코스였다. 이미 세계 마라톤은 지구력에서 스피드로 패러다임이 바뀐 시점이었지만, 이런 난코스라는 점을 감안할 때 누구보다 폐활량이 크고 지구력이 강한 황영조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더위에 강한 한국 마라톤'은 이미 10년 전, 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 누구도 예상 못한 금메달을 따낸 김양곤 때부터 검증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김양곤은 기록상으론 2시간22분대의 저조한 성적이었지만 뉴델리의 무더위 속에서 페이스를 잘 지켜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몬주익 영웅'의 탄생.

 

 

 

예상대로 당시 세계신기록보다 7분 정도 뒤진 기록이었지만 무더위 속에서 기록한 값진 승리. 특히 손기정 이후 56년만의 마라톤 금메달이라 의미는 더욱 컸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황영조 신화의 시작이다. 황영조는 2년 뒤인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국민 영웅의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98년 이봉주의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한국 마라톤은 전성기를 이어갔다.

 

 

어쨌든 중간의 포스트들은 모두 통과하고 도착한 곳이 바로 몬주익 언덕 정상에 있는 몬주익 성이다.

 

몬주익은 '유태인의 산'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뭐 유태인이 어쨌든 가 보면 이 자리야말로 바르셀로나라는 항구 도시를 수호하는 최대의 군사 거점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요충지 중의 요충지다.

 

 

 

당연히 이런 대포도 있고,

 

 

성벽이 있다.

 

 

성벽 위로 올라가 보면 탁 트인 전망.

 

 

 

바르셀로나 시에는 어떤 건축물도 몬주익 성의 높이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꽤 큰 규모의 성이다.

 

 

 

 

 

반대쪽으로 나오면 바르셀로나 해안선이 역시 한 눈에 들어온다.

 

 

 

 

갈매기가 한가롭게 날고,

 

 

해변의 랜드마크가 된 W호텔이 멀리 보인다. 사진상으론 그리 인상적이지 않지만, 몬주익 성은 바르셀로나 전체를 한번쯤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로, 들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성 아래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출발점인 에스페냐 광장으로 내려왔다.

 

 

 

토요일 저녁. 저 몬주익의 분수 쇼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꾸역꾸역 까탈루냐 미술관 앞으로 몰려들고 있다.

 

아나운서 출신 여행작가 손미나가 "바르셀로나를 떠나 가장 생각났던 시공간"으로 지목했던 바로 그 분수 쇼. 장관이라는 말은 참 많이 들었는데 안타깝다. 여행중에 들를 수 있는 날은 금,토 이틀밖에 없었는데, 지금 분수 쇼를 바로 앞에 두고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카탈루냐 음악당의 공연을 예매해 두었기 때문이다.

 

아쉬움에 한껏 줌을 당겨 봤다(위 사진).

 

 

실제로는 꽤 먼 거리.

 

 

분수쇼는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다음번 바르셀로나를 찾을 때 보기로.

(...이번 생에 다음 기회가 있어야 할텐데.)

 

 

 

 

다들 분수쇼는 이 노래가 나올 때가 클라이막스라고 한다.

 

당연히 프레디 머큐리, 몽세라 카바예가 함께 부른 'Barcelona'. 본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제가로 만들어진 이 노래는 프레디 머큐리가 AIDS로 급사하는 바람에 갑작스레 그 자리에서 밀려난다. 그리고 나서 등장한 것이 사라 브라이트먼과 호세 카레라스가 부른 'Adios Para Siempre'. 모든 사람이 앞의 노래가 더 좋다고들 했지만 당시만 해도 '에이즈로 죽은 사람이 부른 노래를... 상서롭지 못하게...'라는 분위기였다. 요즘같으면 오히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라고 더 난리가 났을 일이다.

 

 

 

 

에스파냐 광장을 대표하는 쇼핑몰. 모습을 보면 눈치챌 수 있지만 본래 투우장이라고 한다.

 

해변에 서 있는 콜럼버스 동상이나 마찬가지로, 옆에 있는 탑 같이 생긴 옥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코스도 꽤 인기있는 관광 코스다. 물론 올라가 보지 않았다.

 

다 아시겠지만 본래 바르셀로나는 투우를 즐기는 문화권이 아니다(아시다시피 대부분의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우리는 카탈루냐 사람이지 스페인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본래 두 군데의 투우장이 있었지만 그것도 사실상 관광객용이었고, 몇해 전에 아예 카탈루냐 주 법령으로 투우가 금지됐다. 그래서 기존 투우장은 모두 용도변경이 이뤄졌다고.

 

 

 

 

중간 과정은 생략하고 어찌어찌 해서 카탈루냐 음악당 도착.

 

이날 저녁, 극장 안의 식당에서 이번 스페인 여행 내내 가장 잊을 수 없는 식사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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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마리아 델 마르 광장에서 점심시간을 보낸 뒤 본격적인 고딕 지구 탐방이 시작됐다. 그런데 줄지어 있는 기념품 매장 가운데 똑같은 포즈의 인형들이 즐비한 진열장이 눈길을 끈다.

 

 

 

 

 

 

잘 보면 알만한 세계적인 인물들인데, 포즈가 약간 이상한 느낌을 풍긴다. 조그만 인형 하나에 16유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뒤쪽을 보면 헉 소리가 난다. 피케, 파브레가스, 푸욜, 사비, 메시 등 바르셀로나의 주축 선수들이 줄줄이 앉아서... 대변을 보고 있는 인형이다. 위 사진의 근엄한 세계적인 인물들도 모두 마찬가지.

 

 

 

 

 이 인형은 바로 바르셀로나의 전통적인 명물 까까네로 Cacanero 인형이다. 한국어로는 과자를 가리키는 까까가 스페인어로는 바로 대변이란게 좀 뜨악하다. 아무튼 이 까까네로 인형은 액운을 막아 준다는 행운의 상징으로,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관광 상품이라고 한다.

 

 

 

사이즈도 다양하다.

 

 

맨 왼쪽은 누군지 모르겠고(캐머런 영국 총리...?) 카스트로, 사르코지, 올랑드, 엘리자베스 2세 까지 다양한 세계 각국 명사들도 모두 뒤를 돌려 보면 엉덩이를 까고 덩어리를 낳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의 싸이도 (아마도) 밥 말리와 함께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략 훑어본 바에 의하면 한국 사람으로 이 까까네르 인형의 반열에 오른 건 이 싸군 한 사람 뿐인 듯 하다.

 

 

 

저게 싸이야? 하시는 분들, 만든 사람이 곰손이라 그렇지 싸이 맞다. 나름대로는 이 모습을 만들고 싶었던 거다. 이해하자.

 

 

 

그리고 다시 찾아온 왕의 광장 Placa del Rei. 밝은 날 보니 약간 낯설다.

 

 

 

지도 위의 파란 줄이 바르셀로나의 핵심 거리인 라 람블라 La Rambla 다. 그 라 람블라를 중심으로 이 글에 나오는 명소들이 죄다 위치해 있다. 위 지도 한복판, 붉은 원 안에 '1' 표시가 있는 곳이 바로 바르셀로나 카테드랄과 왕의 광장 Placa del Rei 가 있는 곳이다. 복습하면 왕의 광장은 콜럼버스가 1492년 신대륙 발견을 처음으로 이사벨라 여왕에게 보고한 역사의 현장.

 

그리고 그 오른쪽의 X표 쳐진 곳이 피카소 미술관. 시내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해서 그렇지 다 거기서 거기다.

 

 

 

계단에서 골목 입구 방향을 바라보면 이런 구도가 나온다. 역시 바르셀로나답게 광장이라고는 하지만 그냥 뒷마당 정도의 크기다. 아무래도 밤에 오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 이 상태에서는 저 멀리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시민들의 환영 속에 달려오고, 이 계단에 이사벨라 여왕이 서서 맞아들이는 장면의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런 역사적인 대사건의 무대 치고는 좀 초라한 게 사실.

 

 

뭐니뭐니해도 관광객에겐 이런 모습이 제격 아니냔 말이다. 역시 밤이 낫다.

 

 

 

왕의 광장의 유명한 계단을 올라가면 문이 하나 있다. 시립 바르셀로나 역사 박물관 Museu d'Historia de Barcelona 로 통하는 문이다. 땅 위에도 볼 것 천진데 굳이 들어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별로 많은 사람이 찾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무척이나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우선순위를 따지다 보니 막상 시간이 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라는 도시가 처음 건설된 것은 페니키아 계열의 지중해 해양 민족이었다고 하고, 로마의 진출과 함께 이 지억에 첫번째 전성기가 찾아온다. 그러니 우리가 아는 '스페인 제2의 도시', 혹은 '카탈루냐의 수도 바르셀로나' 이전에 '로마의 고대 도시'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들어가 보진 않았고,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아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아무튼 바르셀로나의 외피로 덮여 있는 고대 로마 지배하 스페인의 모습(히스파니올라라고 불리던)이 담겨 있다는 전언이야. 다른 구경도 많이 했지만 다녀 오고 나면 이런 게 제일 화가 나지.

 

 

 

 

이건 계단에서 바라볼 때 바로 오른쪽으로 뚫린 입구 안쪽. 바르셀로나 문화청 건물인데 예전 귀족 저택을 개조한 거라고 한다. 그래서 바로 문 안쪽으로 파티오 Patio(中庭)가 보인다.

 

 

 

 

 

이것이 신대륙을 발견한(물론 당시의 인식으로는 서쪽으로만 계속 가도 인도 동쪽에 있는 지팡구로 갈 수 있다는 신항로를 개척한) 콜럼버스의 공적을 인정해 그를 그가 도달한 땅의 총독으로 임명한다는 약조 원문. 뭐가 그리 조항이 많은지 책으로 한 권이다. 신영토를 개척한 콜럼버스와 그의 자손들에게 내리는 특전, 그리고 그가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될 일에 대한 내용이 꼼꼼하게 정리됐다고 한다.

 

역시 영토 정복 사업도 해 본 자들이 잘 한다. 하긴 바로 이웃에 온 세계를 다 쓸고 다니며 정복하고 있던 포르투갈이 있었으니 그 전례를 많이 모방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연히 카테드랄 앞에서 마주친 거리 축제. 이른바 '시장 축제'다. 바르셀로나 각 지역 시장들이 나와서 벌이는 판촉 행사인 셈이다. 주로 먹거리 위주의 판매이므로, 안 그래도 점심시간이 긴(어림잡아 오후 2시~5시) 이곳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시끌벅적 벌인 판이 제법 볼만하다.

 

 

 

밤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구시가의 골목들. 노란색과 빨간색의 깃발이 바로 카탈루냐주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잘 알려진대로 스페인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카탈루냐주는 지속적으로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중앙 정부는 절대 놔 줄 생각이 없다.

 

 

 

 

토요일의 람블라 거리. 차가 다니는 1차선 도로인데도 관광 마차가 다닌다. 승용차 운전자들로선 복장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주말에 람블라 거리로 차를 갖고 나오는 건 애당초 만용이란 생각도 든다.

 

 

 

람블라 거리는 기본적으로 도보 통행을 위한 거리기 때문이다. 양쪽으로 차도가 있고, 가운데에는 서울의 광화문 광장처럼 섬 같은 인도가 죽 이어진다. 그냥 인도가 아니고, 그 위에 카페와 레스토랑, 꽃가게 같은 점포들이 이어진다. 물론 노점상은 전혀 없다.

 

 

 

지나다 보면 갑자기 2층에서 깜짝쇼가 펼쳐진다.

 

 

 

뭔가 했더니 에로틱 박물관의 자체 홍보 활동이다. 눈길은 확 끈다. 성공적이다.

 

그 에로틱 박물관의 바로 앞에 유명한 식료품 전문 시장인 보케리아 시장 Mercado de la Boqueria 이 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셰프가 '보케리아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했대서 더욱 알려졌다.

 

 

기념물 내용을 제대로 읽을 능력은 없으나 대충 때려맞춰 보면 올해가 개장 100주년인 듯.

 

 

 

관광객을 제일 먼저 반기는 건 역시 스페인의 상징인 하몽 Jamon. 돼지 다리를 저렇게 통으로 숙성시켜 만드는데 돼지의 질과 숙성 기간, 산지 등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혹자는 이 하몽을 한국의 홍어에 비교하기도 하는데, 홍어에 비해 너무나 보편화된 대중식이란 점이 좀 다르다. 처음엔 살짝 비릿하고 구릿한 맛이 날 수도 있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말린 고기 특유의 감칠맛이 난다. 한국에서 육포를 먹듯 살짝 불에 구우면 더 맛이 좋아질 것도 같은데, 체류기간이 짧아서 막상 그렇게 먹는 법은 보지 못했다.

 

그냥 얇게 저며 생으로 먹거나, 그대로 빵 사이에 끼워 다른 재료 전혀 없는 '하몽 샌드위치'로 먹는게 가장 흔한 방식이다. 그 외에는 수만가지 요리에 재료로 쓴다고 한다.

 

 

 

 

스페인 하면 과일. 태양의 나라답게 오만가지 과일이 알록달록 아름답다. 보케리아 시장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객 유치 수단은 과일 주스인 것 같기도 하다. 가격은 1.5~2.5 유로 정도. 안쪽이 더 싸다.

 

여기서부터 다소 엽기적인 사진이 등장할 수도 있으니 심약하신 분들은 그만 보셔도 좋을 듯.

 

분명히 경고합니다.

 

 

 

사실 그냥 식재료만 마구잡이로 파는 게 아니라 비주얼도 매우 훌륭하다.

 

멋대가리 없이 10개 20개씩 포장된 한국 마트의 계란쌓기와는 좀 차원이 다른 디스플레이. 그럴싸하다.

 

 

여기서 등장하는 '좀 다른' 식재료는 토끼 고기. 시장에서 이렇게 손질된 토끼고기를 생닭 팔듯 판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 토끼는 식용 동물이라기보단 애완용 동물의 이미지가 강한 데 비하면 참 원초적인 느낌이다. 하체 곡선이 좀 징그럽기도 한데, 아무튼 이 사람들에겐 이 누드 토끼가 누드 닭만큼 자연스럽다고 한다. 특히나 빠에야의 본산 발렌시아는 항구 도시이지만 해물보다 일단 토끼고기가 들어가야 진정한 빠에야라고 쳐 준다는 설이 있다.

 

아. 가끔 가게에 따라선 닭을 주문할 때 따로 얘기하지 않으면 대가리까지 붙여 준다고.

 

 

 

물론 시장의 재미는 이런 즉석 먹거리. 시장 맨 안쪽에 이런 식의 바 들이 성업중이다. 시장에서 파는 먹거리들을 즉석에서 살짝 살짝 조리해 바로 음식으로 만들어 판다. 여기에 맥주나 와인 한잔을 곁들여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들끓는다.

 

보기엔 만원인데 가이드의 설명으론 '아주 잘 되는 집은 아닌' 것 같단다. 이유는 바닥이 너무 깨끗하다는 것. 이 지역의 문화는 이런 바 바닥에 포장지며 땅콩 껍질, 생선 가시, 닭뼈 등을 버리는 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거다. 그래서 바닥에 뭔가 사람이 먹고 마신 잔해가 흩어져 있으면 그게 '잘 되는 가게'의 상징이라나.

 

 

 

하다 하다 보니 한국 점포도 있다. 이름은 마싯따(마드리드에 있는 한식집 마시타와는 무관^^). 한국산 라면이며 고추장 등 먹거리를 팔고, 메뉴를 보면 알 수 있듯 간단한 한국 음식을 낸다. 한국 관광객들이 꽤 오는 듯 했다.

 

바로 아래 사진의 다음 사진을 보기 전, 마음의 준비들을 해 두시길.

 

 

 

시장 한 켠에 있는 코치니요(El Cochinillo) 전문점에는 일본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다. 세고비아 지역의 명물인 새끼 돼지 통구이 요리 코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 전문점이라는 설명이다.

 

그 원조라는 세고비아에서 한번 먹어볼까 했는데 세고비아를 가 보지 못해 그냥 통과. 

전에 상해에 갔을 때 카우루주(烤乳猪)라는 지역 특산 새끼돼지 통구이를 먹은 적이 있는데 바삭바삭한 껍질이 정말 일품이었던 기억이 난다. 맛간장으로 양념해 굽는 중국식과는 다르겠지만 스페인식도 대략 훌륭한 맛일 듯.

 

 

 

 

 

 

자, 이제 진짜 충격적인 사진이 나온다.

 

 

 

 

 

 

무슨 사진인데 그렇게 뜸 들이냐는 분들, 난 책임 못 진다.

 

그럼.

 

 

 

카베사스 코르데로 Cabezas Cordero, 새끼 양의 머리다.

 

생선 대가리가 아니고 염소 대가리를 이렇게 시장 정육 코너에서 판다. 이 분들이 염소탕을 집에서 많이 끓여 드시는데, 대가리를 안 넣으면 국물 맛이 제대로 안 난다는 거다. 뭐 우리도 유명한 설렁탕집에선 소머리가 안 들어가면 맛이 안 난다고 한다. 이분들, 맛 제대로 아신다.

 

 

 

바로 옆에선 내장을 이렇게 판다. 영/미권에선 바로 버리는 내장인데 스페인에선 수프의 주 재료로 쓴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든 대표적인 음식이 카스티야 지방의 대표적 음식인 카요스 마드릴레뇨스 Callos Madrilenoz 라고 하는데, 드셔 본 분들의 말에 따르면 토마토 소스로 끓인 곱창전골 맛이 나서 한국 사람들도 꽤 좋아할 만 하다고.

 

아무튼 이 분들, 음식문화가 참 마음에 든다.

 

 

 

여전히 화려한 디스플레이의 향연.

 

라 람블라를 동남방으로 죽 걸어내려오면 바르셀로나의 바닷가가 나온다. 그렇다. 바르셀로나는 항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바닷가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위업을 기리는 기념탑이 서 있다. 엄청나게 높다. 단 저 콜럼버스가 가리키는 방향이 자신이 발견한 신대륙의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그냥 웃자는 얘기다.

 

 

 

잡아당겨 보면 이런 포즈. 아무튼 유럽 역사, 특히 스페인 역사에서는 잊을 수 없는 영웅이다. 물론 스페인 사람이 아니고 이탈리아 제노바 사람이라는 게 함정. 실제로 제노바에 가면 콜럼버스가 살았던 집이 관광 명소라는데, 급조된 것이니 절대 가 볼 필요가 없다는 제보가 있었다.

 

 

 

콜럼버스의 동상에서 해변으로 나 있는 구름다리를 건너 면 고래등같은 쇼핑몰 하나가 갑자기 등장한다. 마레 마그눔 Mare Magnum. 바르셀로나의 모든 쇼핑몰과 거의 대부분의 상점들은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 한국 백화점이 기를 쓰고 일요일에 문을 열고 월요일에 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이 마레 마그눔만은 일요일에 문을 연다고 한다.

 

그리고 저 APP라는 글자 바로 밑, 그러니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 올라간 자리에 스타벅스가 있다. 저 자리가 할일없이 해변을 바라보고 앉기에는 최고의 명소라는 평이 있다. (사진은 못 찍었다. 미안하다.)

 

이렇게 해서 피카소 미술관 이남의 고딕 지구에 대한 간략한 탐방 끝. 다리는 아프지만 뿌듯하다.

 

다음 코스는 그 이름도 유명한 몬주익 언덕이다. 몬주익 언덕에 뭐가 있냐고?

 

 

바로 1992년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대한 건아 황영조의 부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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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 둘쨋날. 역시 아침부터 바르셀로나 여행에 나섰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유로자전거나라 투어. 이번엔 도시 곳곳을 누비는 속살 투어다. 특히 전날 밤 투어에서 다녀 본 길들을 낮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끌렸다. 다만 걷는 거리가 이만저만 아닐 것 같아 다소 긴장했다.

 

그런데 정작 집합한 뒤, 카탈루냐 광장 맞은편의 카페로 향한다.

 

 

카페 이름은 4Gats. 4가 Quatro라 콰트로가츠라고 읽는다. 정식 이름은 카탈루냐어로 Els Quatro Gats 다. gat이 영어의 cat이니 네 마리의 고양이란 뜻.

 

이 카페가 바르셀로나에서 무명 시절의 피카소가 늘 죽치고 앉아 시간 때우던 유서깊은 곳이라는 거다. 갈 데가 없어 하루 종일 자리 차지하고 있던 피카소에게 가끔씩 커피도 한잔씩 서비스로 주고 하던 주인장이 사실상 피카소를 키웠다는 이야기. 피카소 뿐만이 아니고 이 카페는 당대 스페인 화단의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 카페의 주인이 당대의 유명 화가인 라몬 카사스 Ramon Casas 였기 때문. 파리를 늘 동경했던 카사스는 바르셀로나에도 파리의 유명 카페들처럼 예술가들의 보금자리가 될만한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가게(?)를 열었다.

 

아래 그림이 카사스의 유명한 대표작. 자전거 앞자리에 수염난 사람이 카사스 자신, 뒷자리 사람은 콰트로가츠의 공동 경영자인 페레 로메우 Pere Romeu라고 한다.

 

 

여기 있는 그림은 사본이고 진본은 박물관에 있다고.

 

 

 

아무튼 화가들답지 않게 경영 수완도 좋았던지 4Gats는 오늘날까지도 같은 자리에서 성업중이다. 얼마 전 바르셀로나를 무대로 한 우디 앨런의 영화 '내 남자의 여자도 좋아 Vicky Cristina Barcelona' 에도 나왔다. (사실 제목이 주는 기대감과는 달리 이 영화에는 바르셀로나의 풍광이 그닥 많이 소개되지 않는다.)

 

바로 이 아래쪽 자리 중 하나다.

 

 

 

 

아무튼 1897년부터 성업해온 유서깊은 곳 답게 곳곳이 예쁘고 아늑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피카소의 일대기(말하자면 피카소와 일곱 여자-아내의 역사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날 바르셀로나 투어의 시작이다.

 

사실 공식적인 미술사를 보면 피카소는 수없이 변신한다. 초기 - 청색시대 - 장밋빛시대 - 아프리칸 - 입체파 - 신고전주의 - 다시 입체파 - 자유분방한 만년으로 계속해서 바뀌는 스타일을 보였다. 막연히 이렇게만 알고 있던 터에 그 변화의 시기마다 피카소의 내면이 흔들릴만한 생활 면에서의 변화가 있었다는 설명은 매우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창백하고 우울한 청색시대는 피카소의 청년기 절친이었던 카를로스 카사헤마스 Carlos Casagemas의 자살, 그리고 1901년 파리로 건너가 느낀 '나는 우물 만 개구리였구나'와 식의 느낌에서 온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얘기다. 피카소가 1881년생이니 이 해 나이 만 스무살. 이 콰트로가츠에서 늘 어울리던 친구, 그리고 파리로 같이 청운의 뜻을 품고 유학간 친구가 모델에게 구애하다가 거절당하고 자살한 사건 정도면 충분히 인생을 바꿔놨을 만 하다.

 

 

 

이 청색시대를 대표하는 그림 '인생 La Vie'에 등장하는 남자가 바로 카사헤마스라는 설명. 피카소의 친구에 대한 애도가 느껴진다. 아무튼 이 청색시대는 피카소에게 사랑이 찾아오면서 끝난다. 역시 젊은이에겐 사랑이 약. 피카소가 모델 페르난도 올리비에 Fernando Olivier 와 사랑에 빠지면서 우울한 청색은 사라지고 바로 장및빛 시대가 시작된다.

 

 

 

 

피카소는 올리비에의 초상만 100장 이상 그렸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피카소가 여자를 총 몇명 사귀었는지는 도저히 알 길이 없으나, 그의 여성 편력에서 시작점은 늘 이 올리비에다.

 

 

 

 

에바 구엘 Eva Gouel - 피카소의 초기 입체파 시기. 하지만 구엘은 1912년 피카소를 만나고 3년만에 결핵으로 병사한다. 깊이 사랑했다고는 하나, 피카소는 죽기 직전의 그녀를 나몰라라 했다고 전해진다.

 

(이 대목에서 인상적인 이야기: 피카소는 본래 현실적인 성격이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매우 민감했다. 예를 들어 피카소가 처음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린 것은 1907년이었지만 당시 주위 사람들이 '그게 뭐냐'고 일제히 혹평을 해 대자 장롱 깊숙히 그림을 감춰 두었다가 1916년, 시대가 큐비즘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서자 전시에 내놨다...는 이야기. 이유야 어쨌든 '아비뇽의 처녀들'이 9년 동안 미발표작으로 남아 있었던 건 사실이다.^^) 

 

 

 

올가 코흘로바 Olga Khokhlova - 러시아 발레단의 발레리나. 이 시기 피카소는 화단의 기린아로 칭송받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면서 과도한 실험성에서 도피, 신고전주의의 화풍을 지향한다. 어쨌든 피카소가 실제로 결혼한 첫 여자는 올가.

 

사실 수많은 여자관계에도 불구하고 피카소가 단 두번밖에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바로 올가가 이혼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마리 테레즈 발터 Marie-Therese Walter - 1927년, 피카소는 17세의 마리 테레즈를 만난다. 임신중이던 아내 올가는 마리 테레즈도 임신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격분해 이혼을 요구하지만 피카소는 재산 분할을 거부. 따라서 올가는 1955년 죽을 때까지 피카소의 아내라는 법적 지위를 유지한다. 

 

아무튼 마리 테레즈는 피카소의 대표작 중 하나인 '꿈(위 그림)'의 주인공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그린 마리 테레즈의 얼굴들을 보면 평온함과 행복이 느껴진다. 반면...

 

 

 

 

도라 마르 Dora Maar -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낳을 수 있게 했던 여자라는 평. 사진작가이며 그 스스로도 예술가여서 피카소 자신도 스스로에게 영감을 주는 여자라고 불렀다고 함. 1936~1944년 사이 피카소의 연인이었지만, 자유분방한 피카소에게 너무 집착하다가 정신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피카소의 유명한 '우는 여자(위 그림)' 연작 그림이 바로 신경쇠약으로 피카소만 보면 눈물을 흘렸다는 도라 마르를 모델로 한 것이다.

 

마리 테레즈를 그린 그림과 뒷날의 도라 마르를 그린 그림 만큼 그 여자들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비교도 없을 듯.

 

 

 

 

 

프랑수아즈 질루 Francoise Gilot - 가장 얘깃거리가 많은 여자다. 1943년, 62세의 피카소는 22세의 미술학도 를 만나 깊은 관계에 빠진다. 젊은 연인의 활력 덕분인지 이 시기의 피카소는 '고전 다시 그리기'의 새로운 세계에 진출한다.

 

 

 

이 그림도 지금은 고전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이 그림을 그릴 무렵의 피카소는 자신감이 흘러 넘친 나머지 "야, 내 그림이 벨라스케스 그림보다 훨씬 낫지 않아?"하고 물어 많은 사람을 곤혹스럽게 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화면 아래쪽의 개 그림에서 피카소의 유머 감각이 돋보인다. 이 개는 1992년, 바로 유명한 이 개의 모델이 된다.)

 

 

 

바로 바르셀로나 올림픽 공식 모델인 코비 Cobi. 어딘가에서는 피카소가 키우던 개 이름이 바로 코비였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확실치 않다. 아무튼 잠시 곁길로 이야기가 샜다.

 

 

 

질루는 60이 넘은 피카소의 일방적인 만행과 왕자병, 그리고 끊이지 않는 젊은 여자들과의 스캔들에 피카소와 결별해 버린다. 그리고 나서 다른 식으로 피카소에게 복수를 했다. '피카소와의 삶 Life with Picasso'라는 자서전 풍의 책을 내면서, 한 해변에서 늙은 피카소가 큰 양산을 들고 젊은 자신을 공주처럼 모시고 따라다니는 장면의 사진을 표지로 사용한 것이다. 누가 봐도 '망할 놈의 영감, 어디 엿 좀 먹어 봐라' 라는 느낌이 강렬하다.

 

 

 

유사 이래 수많은 예술가들은 젊은 연인을 사귀면서 자신의 창의성을 유지했던 것 같다. 피카소 역시 젊은 여성들에게 끝없이 끌렸던 것이 바로 야수와 같은 창작력의 원천이 아니었나 싶다. 질루는 이에 대해 "그 '성스러운 괴물(sacred monster)'에게 자신을 희생하지 않은 여자는 나 뿐"이라며 피카소의 이기적인 모습을 고발했지만... 그렇게 해서 그 자신이 얻은 건 무엇일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질루가 낳은 딸 팔로마 피카소는 뒷날 티파니의 보석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쳐 피카소의 자손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됐다.

 

 

 

 

자클린 로케 Jacqueline Roque - 유로자전거나라 설명에선 '피카소도 결국 질루 이후 지친 탓인지 만년은 35세의 과부와 보냈다'고 되어 있었지만 다른 기록을 보면 피카소는 1953년 27세의 이혼녀 로케를 처음 만났다. 이 시기, 피카소는 도자기에 새롭게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1년, 80세의 피카소는 35세의 로케와 두번째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니까 로케 역시 피카소가 좋아했던 '젊은 여자'였다. 단지 오래 버틴 젊은 여자였을 뿐이다. 운이 따랐다면 피카소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 '공식 아내'인 올가 코흘로바가 1955년 사망했다는 것. 그렇게 해서 로케는 피카소의 '아내 2호'가 됐다.

 

피카소의 두번째 결혼은 1973년 피카소의 죽음까지 이어졌다. 당연히 질루를 비롯해 수많은 과거의 연인들, 피카소의 '씨'를 낳은 엄마들이 재산에 대한 권리를 놓고 도전해 왔고, 로케는 이들과 맞서 '피카소의 아내'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1986년, 로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설명에 따르면 로케는 피카소의 장례식에 다른 유족들의 접근을 막을 정도로 독점욕이 강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피카소 이야기 끝.

 

[물론 저는 미술사 전문가도 아니고, 바르셀로나를 다녀 온 여행객일 뿐입니다. 가이드의 설명에 제가 알고 있던 것들을 덧붙여 쓴 글입니다. 혹시 더 정확한 내용을 아시는 분이 이 글을 읽으시면 가차없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피카소가 쭈그리고 앉아 있던 카페에서 듣는 느낌도 색달랐다.

 

 

 

바르셀로나 시가 인증한 문화공간으로서의 표석. 바르셀로나 곳곳에 이런 식의 유적 인증 표지가 있다.

 

 

 

"아저씨, 제가 죽치고 있어도 뭐라고 안 해 주셔서 감사해도. 혹시 제가 뭐 해 드릴거라도 없을까요?"

"음. 너 곧잘 그리는 것 같은데 우리 가게 포스터 하나만 그려 봐라."

"포스터요? 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로트렉 그림이 마음에 들더라구요."

 

뭐 대략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을, 피카소가 그린 4Gats의 포스터.

 

이렇게 해서 첫 코스인 4Gats를 나서 피카소 미술관 Museo Picasso 로 간다.

 

 

 

 

 

 

좁다른 고딕 지구의 골목길을 수십번 꺾어져서 도착한 곳이 바로 피카소 미술관. 왜 피카소 미술관인데 철자에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B' 마크를 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바르셀로나 시의 공식 문장인 것 같기도 하다.

 

 

 

 

한 귀족 가문 저택을 개조해서 만들어진 덕분에 중정이 있는 고운 건물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아름답다. 규모나 소장품의 수가 결코 어마어마하지는 않지만, 위의 이야기 속에서 여자들(!)과 함께 거론된 피카소의 시대별 변천사를 일목 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잘 정돈된 미술관이었다. 입장료 11유로. 월요일 휴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특히나 이 글을 읽고 갔다면.^^

 

 

 

 

피카소 미술관에서 역시 다시 좁은 골목길을 내려오다 보면 갑자기 하늘이 파랗게 넓어지면서 빛을 한껏 안고 나타나는 건물이 있다. 바로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성당 중 하나인 산타마리아 델 마르 Santa Maria del Mar.

 

1384년 완공될 당시에는 이 성당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찰랑찰랑 하는 해변이었다고 한다. 산타마리아는 잘 알려진대로 뱃사람들을 수호하는 역할.

 

 

 

 

고전적인 사원의 양식미가 잘 살아 있다.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처럼 전 세계에 단 하나 있는 아름다움과는 좀 다르지만, 아무튼 내부에 들어서면 위압감과 안정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유럽 대 성당의 느낌에 충실하다.

 

 

 

그렇지만 고전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수많은 스테인드 글라스 중에는 1992년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하나 있다.

 

1992년은 바로 바르셀로나에서 월드컵이 열린 해.

 

 

자세히 보면 수많은 이니셜들이 쓰여 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 중 메달리스트들의 이름 철자를 이용해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다. 누가 찾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이 중에 황영조 선수의 이니셜이 있다고 한다.

 

눈 밝은 사람이 좀 찾아 주기 바란다. 내 눈엔 안 보여서.

 

 

 

 

 

7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산타마리아 델 마르는 여전히 예배를 보는 성당으로서의 역할을 완수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카탈루냐 카톨릭의 상징인 검은 성모상.

 

본래의 검은 성모상은 이슬람 지배 초기, 이교에 대한 박해를 겁내 지하로 숨어들어갔던 시절의 유물이다. 그때도 처음부터 검은 색이었던 것은 아니고, 지하 동굴 성당에서 예배를 보려니 촛불이나 횃불의 그을음 때문에 성모상이 검게 변했다는 것. 그 전통을 기려 이렇게 지상에 나와 있는 성모상에도 검은 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리지널 검은 성모상은 바르셀로나 근교 도시 중 유명한 관광지인 몬세라트에서 볼 수 있다고.

  

 

 

이렇게 해서 오전 일정 끝. 한여름은 아니지만 바르셀로나의 태양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오후엔 난데없이 바르셀로나 뒷골목에서 위대한 한국인과 마주치게 된다. 대체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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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을 자고 나왔다. 이쯤에서 숙소 소개를 한번쯤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한다.

 

바르셀로나 in, 마드리드 out으로 일정을 잡았기 때문에 바르셀로나는 일단 스페인에 처음 발을 디디고 적응해야 하는 곳이라 질의응답이 꽤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숙소는 한인 민박으로 잡았다.

 

그 많은 바르셀로나의 한인 민박 가운데 까사꼬레아나 http://www.casacoreana.com 를 선택한 이유는 첫째, 손님을 많이 받을 수 없는 구조였고(더블 룸 하나, 트윈 룸 하나가 전부다) 둘째, 방마다 전용 욕실이 딸려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외에 '음식이 좋다!'는 부가적인 평가가 있었지만 그건 사실 직접 가 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나이 먹은 부부가 여행하면서 욕실이 딸리지 않은 방에서 묵는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샤워를 하기 위해 복도를 걸어가서 다 씻고 물기를 닦은 뒤 속옷까지 갈아 입고 다시 복도로 나와 방으로 돌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번거롭다. 아, 물론 나도 대략 15년 전만 해도 그런 민박의 도미토리에서 자고 여행을 다녔다. 그때는 공동욕실을 쓰고, 칸막이 하나 없는 큰 방에서 다 같이 잤다. 그 시절에 누가 나에게 욕실이 딸린 방이어야 하기 때문에 민박집 방에 1박 85유로를 낸다고 했으면 미쳤다고 했겠지만, 사람이 그럴 때가 있었으면 안 그럴 때도 오는 법이다.^^

 

 

 

머문 방 사진. 쿠션이 지나치게 푹신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깔끔하고 편안했다. 이 사진은 직접 찍은 게 아니고 http://www.casacoreana.com/ 에서 퍼 왔다.

 

하지만 방은 별 변수가 아니었다. 정말 놀란 건 아침 상을 받아 보고 나서다.

 

 

 

 

 

 

네 번의 아침이 모두 감동적이었는데 먹느라 정신을 뺏겨서 두번은 사진 찍을 생각을 못했다.

 

사실 평소 진밥 애호가인 본인은 건강을 생각해서 주신 현미밥이 너무 된밥이라 좀 먹기 힘들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박 하는 동안 제공된 식사가 너무나도 감격적이었다는 점은 꼭 강조하고 싶다. 정말이지 바르셀로나까지 가서 저런 아침밥을 먹게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관광 정보는 덤. 주인댁 부부가 바르셀로나 안내 서적을 쓰셨던 분이다.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홈페이지에 없는 욕실 사진. 마루바닥이고, 하루에 사람 수대로 수건 1장씩이 제공된다. 비누, 샴푸, 헤어 드라이어는 기본 제공. 당연히 온수 무제한. 욕실에 창도 있어 습기를 뺄 수 있다.

 

위치는 지하철 5호선 산츠 역에서 걸어서 5분(진짜 5분). 전철로 바르셀로나 관광의 중심인 카탈루냐 광장까지 15분 정도 걸린다. 전철역까지 오가는 길 도중에 저렴한 중국 수퍼가 있어 간식거리며 과일 등을 살 수 있고 집에서 1분 거리에 꽤 괜찮은 식당이 있다(나중에 맛집으로 소개 예정).

 

뭐 숙소가 카탈루냐 광장에 있어 밤에 걸어서 숙소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일 듯 한데, 이 정도 거리에 조용하고 넉넉한 공간이 있는 것도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다른 숙소는 다른 숙소대로 장점이 있겠지만, 아무튼 숙소 선택은 대만족. 추천한다.

 

내친 김에 바르셀로나 교통 요령도 간단 설명.

 

지하철은 단기간 체류 예정이라면 T-10 이 매우 편리하다. 모든 전철역에 이렇게 생긴 판매기가 있다.

 

 

 

 

T-10이라고 써 있는 표를 사면 된다. 9.8유로. 명함 크기 정도의 종이 티켓이 나온다. 이걸로 지하철과 버스를 10회 탈 수 있다. 단 70분 이내 환승은 1회로 친다. 표 한장으로 둘이 나눠 쓸 수도 있다. 물론 2회씩 차감된다.

 

 

 

아래쪽은 뒷면. 한번 탈때마다 긴 숫자가 찍히는데, 마지막 숫자만 보면 된다. 그 숫자가 앞으로 탈 수 있는 횟수를 보여준다. 잘 보면 긴 숫자의 마지막 자리 숫자가 하나씩 줄어드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바르셀로나 지하철이 그렇게 깨끗하거나 환상적이진 않다. 외국 나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 지하철 만큼 삐까뻔쩍 깨끗하고 넓고 잘 관리된 전철은 없다고 봐도 좋다. 바르셀로나 지하철도 한국 지하철보다 작고 좁은데, 장점이 있다면 배차간격이 엄청나게 짧다. 차를 하나 보냈나 싶으면 금세 다음 차가 온다. 지루하게 기다린단 느낌이 거의 없다.

 

 

 

산츠 에스타시오 Sants Estacio 는 척 보면 알 수 있듯 '산츠 역'. 바르셀로나의 가장 대표적인 역이다. 주요 도시로의 연결은 모두 산츠 역을 이용한다.

 

 

 

타고 내릴 때 소르티다 Sortida(출구) 라는 표지만 보면 이용 준비 끝. 숙소의 위치가 누만시아 Numancia 거리였으니 '소르티다 누만시아'로 나가면 된다. 쉽지?

 

 

 

흔히 바르셀로나 관광객은 5호선(녹색선)만 잘 타면 된다고들 하는데 뭐 경험상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맨 오른쪽 끝의 산츠 역에서 두 정거장만 가면 몬주익 언덕/분수쇼/카탈루냐 미술관 등의 관광 거점인 에스빠냐 광장 Espanya 역이다.

 

해변 쪽으로 갈거면 Parallel(빠라옐? 뭐라고 읽는지 잘 모르겠음)이나 Drassanes에서 내리면 되고, 람블라 거리와 구 시가(고딕 지구)를 갈거라면 리쎄우 Liceu 나 카탈루냐 Catalunya 에서 내린다. 뭐 쇼핑이 목적이라면 그라시아 거리 Passig de Gracia 까지 가면 되고. 아래 숫자가 있는 역은 당연히 환승역이다.

 

 

까딸루냐 역에 내리면 당연히 소르티다를 보고 나갈 방향을 찾는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가장 많이 갈 방향은 당연히 람블라 거리 쪽. Rbla가 Rambla를 줄여 쓴 거다. 이 글자만 눈에 들어오면 지하철에서 헤맬 일은 없다.

 

아무튼 서울 사람을 기준으로 말하면, 바르셀로나는 매우 아담한 도시다. 지도상으로 멀어 보여도 사실은 골목 돌면 거기다. 서울에서 강 한번 건너면 기본이 30,40분인 거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동 시간은 그리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택시 요금 체계가 약간 희한하긴 한데, 다른 유럽 도시들에 비해 바르셀로나 택시 요금은 그리 비싼 편이 아니다. 최저 요금인 T1 체계와 할증인 T2, T3가 있다. 모두 기본요금은 2.05 유료인데 그 다음 Km당 요금이 다르다.

 

주의할 점은 평일 할증 시작 시간이 밤 12시가 아니라 저녁 8시라는 것. 그리고 토요일 밤과 일요일 밤은 T3가 적용된다. 뭐 그렇다는 얘긴데, 기왕 피곤해서 택시를 탔다면 할증도 그렇게 크게 긴장할 정도는 아니다.

 

아, 공항에서 밤에 시내로 들어갈 때에는 30유로 정도 나온다.

 

 

 

 

아무튼 교통안내는 여기까지. 둘쨋날도 매우 고된(?) 관광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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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부터 야간 투어는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오랜 경험에 따라 '첫날은 일단 피곤하게'라는 원칙을 따르기로 했다. 첫날 무리해서 여정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보다 무서운 건 시차의 극복이었다. 첫날 일정을 오후 7~8시 정도에 마감하고 쓰러져 잠들어 버리면 기껏 많이 자 봐야 밤 12시에서 새벽 1시 정도면 잠이 깬다. 그때부터 다시 자 보려는 부질없는 노력과, 다음날 일정까지 망치면 어쩌나 하는 스트레스가 매우 짜증스럽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가능한 한 첫날은 일찍 잠들어선 안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둘쨋날 기상 시간이 늦으면 늦을 수록 그 여행은 성공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바르셀로나 야경 투어는 람블라스 길 한 귀퉁이, 지하철 역으로 리세우 Liceu 역 부근에 있는 레이알 광장 Placa Reial 에서 시작됐다. 레이알 광장은 네 면이 건물로 둘러싸인 거의 정사각형의 공간이다.

 

 

 

사실 사진으로 보면 그럴듯하지만 결코 사진만큼 매력적이지는 않다. 한복판의 랜드마크인 분수는 오물로 가득 차 있고, 주변 건물들의 아치에는 세월의 그을음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노천 카페에서 먹고 마시며 금요일 밤을 만끽하고 있었다. 지저분하다면 지저분한, 낭만적이라면 낭만적인 그런 장소였다.

 

그리고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색이 다른 가로등, 이게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이게 가우디의 데뷔작이라는 레이알 광장의 가로등. 본래 가스등으로 설계된 것이었다고 하나 "왜 니가 설계한대로 짓기만 하면 뭐든 왜 설치비가 두배씩 드는 거야"라는 시 당국의 반응 때문에 결국 1호 등인 이 등만 남고 나머지는 설치된 곳이 없다고 전한다. 비록 가우디의 건물들이 지금은 입장료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하지만, 건축 당시로 돌아가 보면 정말 경제적으로 성공한 곳이 없다.

 

아무튼 야경을 찍으면서 새로 산 카메라의 놀라운 성능에 혼자 감탄하고 있었다. 이 밝기에서 삼각대도 없이 이 정도..?

 

마침내 가이드 도착. 야경 투어 출발.

 

 

 

 

 

이 지도에서 A라고 표시된 곳이 출발 지점인 레이알 광장, 그리고 B라고 표기된 곳이 일단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는 카탈루냐 음악당 Palau de la Música Catalana 이다. 위의 구글 지도상으로는 1.2Km, 도보로 약 15~20분 정도 거리라고 볼 수 있는데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빨리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닌 만큼, 약 1시간 동안 골목을 이리저리 돌며 지나간다. 위 지도에서 볼 수 있듯, 카탈루냐 광장의 남쪽, 바르셀로나의 구 도심은 엄청나게 미로같은 골목과 골목의 연속이다.

 

그리고 지도 오른쪽의 동그라미 친 부분 바로 아래를 보면 El Gotic 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바로 이것이, 이 주변을 가리키는 이름인 '고딕 지구' 라는 뜻이다. 이 주변에 바르셀로나의 카테드랄 Cathedral, 왕의 광장 Placa del Rei, 그리고 시립 역사 박물관 등의 포인트가 있다. 비록 도착 첫날, 한밤중에 골목길을 빙빙 돌아 간 위치가 제대로 기억에 남을 리 없으나, 아무튼 나중에 지도상으로 확인해 보면 그렇다.

 

사실 저 위 지도가 커버하는 영역 안에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찾는 바르셀로나 관광 포인트의 절반 가량이 들어 있다. 아무리 미로같은 골목의 연속이라지만 방향만 눈에 익으면, 바르셀로나 중심부에서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지도 왼쪽 윗부분의 미로처럼 표현된 카탈루냐 광장, 광장을 등지고 바로 오른쪽 아래(바다 방향)로 뻗은 라 람블라 La Rambla 거리,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라이에타나 길 Via Laietana 만 알면 절대 헤매지 않는다. 중간에서 아무리 헤매도 한 방향으로만 계속 가면 10분 내에 두 길 중 한 길과 만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뭐 이건 한참 나중의 이야기고, 일단 밤길을 즐겨 본다.

 

 

 

 

이렇게 가이드의 뒤통수만 보고 골목길 속으로 들어가는게 시작.

 

소니 RX100 2의 렌즈 밝기 때문에 길이 실제보다 밝아 보일 수 있다. 사실은 굉장히 컴컴하고 으슥한 골목이다.  

 

 

 

그런 좁은 길에도 수시로 자전거가 지나간다. 긴장은 해야 한다.

 

 

 

물론 모퉁이를 돌 때마다 수백년 전에 건설된 성벽의 잔해, 그리고 아치와 만날 수 있다.

 

(이 광장은 영화 '향수'의 무대가 되었다는 곳.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작은 광장 마다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금세 익숙해진다.

 

 

구 도심에는 높은 건물 없는 5~6층짜리 오래된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스페인 특유의 파티오 Patio, 즉 중정(中庭)을 갖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통으로 된 돌 건물 같지만 내부에는 뻥 뚫린 공간과 작은 정원이 있다는 뜻.

 

도시 경관 유지를 위해 건물의 외부를 수리하는 일에는 엄격한 제한이 있다. 이건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에 대부분 적용되는 규정이다. 그래서 실제로 내부에 들어가 보면 그렇게 오래된 건물이라는 느낌은 없다고 하지만, 건물 외관을 봐선 도저히 현대인이 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지역의 아파트들은 특히 엘리베이터 따위는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래도 도심 한복판인데다, 보기보다는 치안도 좋고, 무엇보다 유명한 바르셀로나의 고딕 지구에 살아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 집세는 꽤 비싼 편이라고 한다.  

 

아무튼 저 위 사진들이 페란 Ferran 거리, 아비뇽 Avignon 거리 등을 지나며 찍은 것들이다. 잠깐 아비뇽 거리? 그렇다. 피카소가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에 나오는 바로 그 아비뇽 거리다. 피카소가 살던 무렵에는 도심의 집창촌이었고, 그 그림에 나오는 여자들 또한 거기서 일하는 매춘부들이었다는 얘기다.

 

 

 

이 아비뇽이 '아비뇽의 유수'로 유명한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이 아니라 바르셀로나의 거리 이름이었다니.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그 사연을 알고 나니, 이 그림이 그렇게 큰 비판의 대상이 된 이유가 단지 화법이 대담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피카소는 과감했다. 20세기 초에 누가 이렇게 누구나 입에 담기 꺼려 하는 창녀촌의 여자들을 올 누드로 그리고, 제목까지 명확하게 붙여 작품으로 내놓을 생각을 했을까 싶다.

 

 

 

 

사실 야경 투어 가이드의 방침 자체가 '분위기를 느껴보라는 보너스 투어' 형식이지 이해하라는 것이 아니어서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지나가다 보니 그럴싸한 건물 벽면에 뭔가 중요한 듯한 설명 명패가 붙어 있어 찍었다.

 

팔라우 델 라 헤네랄리타트 Palau de la Generalitat 는 '카탈루냐 자치정부 청사'라는 뜻. 팔라우는 스페인어로 궁전, 청사라는 뜻이고 헤네랄리타트는 카탈루냐 특유의 자치 시스템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건 그 자치청사의 뒷골목. 건물과 건물 사이를 '행정적 편의'를 위해 연결해 놓은 모습이다. 공무원 건물이라지만 관광객이야 알 바 아니고, 밤에 보면 꽤 멋지다.

 

 

 

 

미로같은 건물마다 도로명이 써 있긴 하지만 초행자가 길 찾기란 매우 힘들다. 그래도 갈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 없다. 그리 규모가 크지 않아 위에서 말한 대로 어느 방향이든 한 방향으로만 계속 가면 람블라 거리나 라이에타나 길 중 하나를 만나게 되니까.

 

단 바르셀로나 뿐만 아니라 전 스페인 사람들에게 길을 물을 때 주의사항. 영어로 의사소통이 안 되거나 잘 모르는 듯한 사람을 만나면 빨리 패스하고 다른 사람을 섭외해야 한다. 상대방이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한데도, 딱 잘라 이쪽인지 저쪽인지 말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뭔가 수다를 떤다. 특히 노인들이 이런 경향이 짙다. 마치 '너는 스페인어를 모르지. 하지만 내가 계속 하는 얘기를 듣고 있으면 너도 귀가 트여 우리 말을 이해할 수 있을거야'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악의에서 하는 행동은 절대 아니겠지만, 바쁜 관광객의 입장에선 잡혀 있으면 좀... 곤란하다.

 

 

 

어둑어둑한 골목만 보면 마치 유령도시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 골목 사이마다 카페나 바가 있고 사람들이 빼곡 들어차 술을 마시고 있다. '있을까' 싶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게 매력이다.

 

 

 

그 골목을 돌고 돌다 가게 된 곳이 유명한 포인트 중 하나인 왕의 광장 Placa del Rei. 저 아마추어 밴드가 공연하고 있는 계단이 바로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최대한 스페인 발음에 가깝게 하면 끄리스또발 꼴론)가 이사벨라 여왕에게 신대륙의 발견을 보고한 역사적인 자리다.

 

 

 

 

 

왜 이 자리에서? 하는 생각은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면 사라진다. 이곳이 바로 스페인이 분할되었던 시대, 아라곤 Aragon 왕국의 궁전 앞이기 때문이다. 아라곤 왕국의 수도는 사라고사 Zaragoza 지만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에도 왕궁이 있었던 모양이다. 1492년은 스페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다.

 

초간단으로 설명하면, 아랍계 무어인들과 오랫동안 공존해 온 스페인의 기독교/유럽 세력은 강력한 국토 회복 운동을 벌여 수많은 지역이 몇 개의 왕국으로 통합되어 갔다. 그 결과 중부 스페인 대부분 지역을 다스리던 카스티야 왕국과 동남부, 아라곤과 카탈루냐, 발렌시아 등을 장악한 아라곤 왕국이 양강을 형성하게 됐다.

 

1479년 카스티야의 공주 이사벨과 아라곤의 왕자 페르난도가 결혼을 한다. 양쪽 모두 기득권 세력의 반대가 만만찮았지만 아무튼 통일과 국토 회복을 위한 대 결단이 내려졌고, 두 나라가 하나로 무혈 통합됐다. 그렇게 해서 국력이 두배가 된 이들은 1492년 1월, 그라나다에 있던 마지막 이슬람 세력을 무찌르고 기독교 스페인의 회복, 즉 레꽁께따 Reconquesta(철자를 보면 알 수 있지만 re-conquest, 즉 '재정복'이란 뜻이다. 레꽁께스따라고 읽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s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를 완성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같은 해 8월, 스폰서를 구하다 구하다 못 구한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얻어 서쪽으로 서쪽으로 인도를 발견하겠다고 가더니 결국 라틴 아메리카를 발견해 냈다(물론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발견한 땅이 인도 동쪽의 어디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향료 대신 황금을 가져와 스페인의 전성시대를 연다. 1492년이 이토록 중요한 해였으므로 스페인에서는 그 500주년인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아라곤이란 말을 듣는 순간 '반지의 제왕'의 비고 모텐슨을 떠올리며 꺅 소리를 내시는 분들이 꽤 있는데 그 아라곤은 Aragorn. 책에는 아예 아라고른이라고 써 있다. 스페인의 아라곤 왕국과는 아무 상관 없이 톨킨이 만들어 낸 이름이다. 혹시 여기 오면 반지의 제왕과 관련된 뭔가가 있을까 기대하시는 분이 있을까봐 기우로 한마디 보태면,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 소설이다. 제발 실제 역사와 판타지는 구별 해 주시길.^^)

 

 

 

 

이렇게 동상과 그림자를 이용한 조명 플레이도 꽤 멋지다. 누구 동상인지는 패스.^^

(지금 찾아보니 바르셀로나의 백작 라몬 베렝게르 3세라고 한다.)

 

 

 

왕궁의 한 귀퉁이. 지금은 이쪽 면이 라이에타나 대로변으로 나와 있다. 대로라고 해봐야 겨우 4차선 정도다.

 

 

 

뒤로 살짝 돌아 나오면 이것이 바로 바르셀로나의 카테드랄 Cathedral. 각 도시마다 있는 카테드랄은 그 도시의 수많은 성당들 중 본당을 의미한다. 당연히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탈리아의 두오모와 거의 같은 역할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지만 바르셀로나의 카테드랄은 좀 서운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일단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지어지고 있는 한편, 남쪽 해변 가까이 있는 산타마리아 델 마르 성당에도 지명도 면에서 뒤지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규모나 화려함 면에선 별로 뒤질 게 없어 보이는데... 안됐다.

 

 

 

거기서 길을 건너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카탈루냐 음악당이 나온다. 오페라의 전당인 리세우 Liceu 극장과 함께 바르셀로나 공연 문화의 상징이며, 이 도시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대 가우디의 라이벌이라는 건축가 몬타네로의 작품이라는 데서 오는 자부심이고, 외벽만 봐도 꽃 장식이 요란하다. 심지어 내부 투어만 하는데도 입장료를 받는다.

 

내일 저녁에 공연을 보러 올 예정이므로 이 정도만.

 

 

 

 

아름다운 건 분명하나 명성에 비해 너무 좁은 골목길 안에 있어 건물 전체를 찍을 각도가 잘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여기서 불량 체력 관광객들은 일행과 결별.

 

나머지 일행은 한국의 리움 미술관도 설계했다는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 Jean Nouvel이 지은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명물, 아그바 타워 Agbar Tower를 보러 떠났지만, 이만 하면 숙면을 취하기 충분하겠다는 판단 아래 숙소로 향했다.

 

 

 

바로 이 건물. 저렇게 태극 색으로 반짝이는 야경 사진을 보면 가 볼걸 그랬다는 생각도 물씬물씬.

 

그런데 여행은 가서 배우고, 다녀 와서도 배운다. 막상 바르셀로나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명물로 아그바 타워도 있어요"라고 말할 때, "아, 런던에서 그거랑 똑같은 건물을 봤어요. 같은 사람이 지은 건가 보죠?"하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네. 그렇다고들 하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아니더라는 거지.

 

알고 보니 지은 사람이 달랐다.

 

 

 

이 건물이 런던에 있는 30 세인트 메리 엑스 30 St. Mary Axe(좀 길지만 건물 이름이 이렇다). 똑같이 생겼지만 이건 장 누벨이 아니라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 Norman Foster의 작품이었다. 이럴수가.

 

공법이 전혀 다르다 해도 외관이 이 정도로 비슷하면 표절 시비라도 이는 게 정상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아무튼 런던과 바르셀로나에 있는 똑같이 생긴(바르셀로나에서는 '좌약 빌딩'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두 건물은 아버지가 달랐다. 놀라웠다.

 

이렇게 해서 첫날을 마무리.

 

둘째 날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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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La Sagrada Familia 는 서쪽 출입구 쪽 매표구로 입장해 다시 서쪽 출입구로 나오는 구조다. 입장료는 14.8 유로. 건물의 규모가 비교가 안 되는 카사 밀라나 카사 바트요에 비해 훨씬 싸다. 물론 한국 돈으로는 2만원이 넘지만 아무튼 현장에선 그렇게 느껴진다.

 

그리고 입장하는 순간, 전혀 본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화려한 천장 기둥 장식. 수백의 꽃송이가 기둥을 떠받친다.

 

 

 

감동이 밀려온다. 이 정도 규모의 성당이 없는 게 아니라, 성당에서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라는 게 감동적인 거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대성당의 천장을 찍었을 때, 기대되는 사진은 이런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유서깊은 산타마리아 델 마르 Santa Maria Del Mar 성당의 천장이다. 이런 비주얼도 매우 아름답지만, 이런 성당은 유럽 곳곳에 굉장히 많다. 그걸 가우디는 저렇게 획기적으로 바꿔 놓은 거다.

 

 

 

그야말로 기둥과 천장만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여기에 뒤를 돌아보면 환장하게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채광.

 

 

 

 

 

이틀 뒤 카사 바트요에서도 느끼지만 가우디는 자연광을 실내로 끌어들여 이용하는데 진정 장신의 솜씨를 보여준다.  

 

하늘과 통하는 구멍 하나 정말 허투루 뚫린 것이 없을 정도.

 

 

 

 

 

 

 

 

 

그냥 이 안에서 살고 싶다. 다른 생각이 들질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첫날부터 너무 강한 걸 봤어...

 

사실 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성당 내부가 일단 완공된 것은 2010년의 일이다. 2009년 이전에 바르셀로나를 방문한 사람은 이 내부 광경을 볼 수 없었던 거다. 만약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내가 죽기 전에 이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싶다"며 스페인 정부를 압박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이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일각에선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공사가 자꾸 늦어지는 것이 '가우디의 유작, 아직도 건설중'이라는 화제를 한없이 길게 끌고 가려는 스페인 관광청의 음모라는 설도 있었을 정도니까.

 

이래저래 말이 많은 베네딕토 16세지만 이 시점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일어났다.

 

 

 

내부 구조를 소개한 모형. 그러니까 평면도를 보면 성가족성당의 내부는 이런 식으로 생겼다.

 

 

 

 

1번 쪽이 현재 관광객들이 출입하는 서쪽 출입구. 2번이 성당의 주 제단(High Altar)이 있는 북쪽(출입구가 없다), 3번이 가우디가 생전에 완성한 동쪽, 그리고 4번이 현재 공사중인 남쪽이다. 위 모형의 4번 계단으로 볼 때 전체 성당이 완공되면 남쪽이 주 출입구가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이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주 제단(High Altar).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평면도의 4번 방향에서 2번 방향의 주 제단을 바라보면 이런 모습이다. 그리고 좌우의 스테인드그라스로부터 휘황찬란한 빛이 들어와 온 성당을 광휘로 휘감는다. 말하자면 빛의 오르가즘이라고 표현할 만 하다.

 

 

 

어지럼증을 느끼게 하는 매혹적인 광경의 연속이다.

 

 

 

3번 방향에서 1번 방향을 본 그림. 사진의 왼쪽 끝 나선 계단 뒤편에 옥수수 모양을 한 파사드 중간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줄 길이가 장난 아니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은 바로 그 나선계단이다. 대략 보기에만도 상당히 어지럽고 폭도 매우 좁다. 참고로 엘리베이터는 추가 요금이 있는데, 굳이 타고 싶지 않았다.

 

 

 

가우디가 만들어낸 동쪽의 조각을 보고 '마치 바닷속에서 솟아 올라온 기괴한 산호초같은 형상'이라고 느꼈다면 동쪽의 이 기둥 장식을 보고 흐뭇해질 수도 있다. 이 거북 받침은 가우디가 성당 건설 과정에 바다의 이미지를 담고자 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 동쪽 입구로 나오면 기념품 가게와 박물관으로 연결된다.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설과 관련된 도면, 모형, 사진자료, 스케치, 기타 등등이 꽤 방대하게 전시되어 있다. 가우디 마니아라면 이 박물관만 보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듯.

 

 

 

1926년. 가우디가 죽던 해까지의 공사 현장 사진이다.

 

 

 

 

가우디가 전철에 치어 죽었다는 것, 그리고 사망 당시 너무나 남루한 차림을 하고 있어 아무도 그가 그 유명한 가우디인지 몰랐고, 그래서 꽤 오랜 시간을 응급실 구석에 방치되어 있다가 죽었다는 일화 등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1882년, 31세의 나이로 스승이 짓던 건물을 물려 받아 1926년 사망할 때까지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설에 매진했던 가우디는 이 성당의 지하에 묻혔다. 그에게는 너무나 어울리는 영면의 자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묘소가 있다는 지하 기도실은 평소엔 개방하지 않는다.

 

이렇게 엿볼 수밖에 없었다.

 

 

 

 

매년 바르셀로나를 찾는 그 많은 관광객 가운데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찾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지만, 지금까지 내 두 눈으로 직접 본 인류의 구축물 가운데 이렇게 큰 충격을 준 건물은 없었다. 진정 탁월한 상상력과 그 구현체를 보고 싶은 자라면 하루 빨리 바르셀로나 행 항공편을 예약하라고 권하고 싶다.

 

오후 6시. 문 닫을 시간임을 알리는 경비원의 손짓이 아니었더라면 한참을 더 성당 관내에 앉아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유로자전거나라 투어의 가우디 투어 일정에는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떠나 람블라 거리에 있는 구엘 저택이 마지막 코스로 되어 있었지만, 중년 관광객에겐 하루 치의 체력과 감동을 느낄 능력이 모두 소진된 터라 여기서 일단 숙소로 향했다. 잠시 휴식으로 원기를 보충한 뒤 야간 투어를 따라 나서기 위해서였다.

 

아무튼 첫날. 하루 분의 감동으론 좀 지나치지 않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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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팬이라면 아마도 이들의 소위 전성기가 훨씬 지나 1987년에 나온 앨범 '가우디 Gaudi'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이 음반의 첫 곡 제목은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La Sagrada Familia' 다.

 

 

 

이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운 노래를 듣고 나서 당연히 '대체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뭐야?'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당연히 찾아 봐야겠는데, 1980년대 후반의 한국은 인터넷은 커녕 PC통신도 활성화되기 전이었다. 백과사전에서 찾아낸 몇 장의 사진이 전부였다.

 

세월이 흐르며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혹은 성 가족 성당에 대한 정보가 쌓이면 쌓일 수록, 죽기 전에 반드시 가 봐야 할 곳이라는 다짐은 점점 굳어 갔다. 이 노래에서 보컬을 맡은 존 마일즈의 격정적인 목소리와 함께.

 

La Sagrada Familia we thank the lord the danger's over
La Sagrada Familia behold the mighty hand
La Sagrada Familia the night is gone the waiting's over
La Sagrada Familia there's peace throughout the land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신에게 감사드리자. 위험은 끝났네.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신의 손길을 바라보라.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밤은 지나갔고, 기다림은 끝났네.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온 누리에 평화가 깃들었네.

 

그리고, 긴 기다림이 끝났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이런 모습으로 방문객을 처음 맞는다. 저 입구가 있는 벽체를 파사드 Pasad라고 부른다. 네 개의 옥수수 모양 탑이 있는 동편 파사드는 예수의 탄생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부조들은 모두 예수의 탄생과 관련된 복음서의 기록들을 조각으로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1882년 지어지기 시작한 이 성당에서 1926년 가우디가 죽을 때까지 완성된 면은 단 한쪽 벽면. 바로 이 동쪽 면이다.

 

가우디의 구상에 따르면 동쪽 면은 예수의 탄생을, 남쪽 면은 예수의 영광을, 그리고 서쪽 면은 예수의 희생을 상징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었다. 이 동쪽 면을 가득 채운 조각들은 지금 봐도 당연히 찬탄을 자아낸다.

 

 

 

그 정중앙을 더 자세히 보면 이렇다.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은 세월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이 극사실주의적으로 표현된 인물 조각들을 보고 있으면, 전 유럽의 거장들이 천년 동안 만들어 온 모든 성당을 뛰어 넘고야 말겠다는 가우디의 야망이 피부로 느껴진다. 

 

 

 

성당의 이름이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즉 '성가족'이니 요셉의 비중이 작지 않다. 수태고지의 관을 쓰는 마리아를 옆에서 늙은 요셉이 바라보는 모습을 정면 중앙에 배치했다.

 

조각이나 그림 속의 요셉은 왜 이런 늙은이로 묘사되어 있을까. 그건 마리아가 결혼 뒤에도 처녀였다는 내용과 관련 있다. 요셉이 젊고 혈기방장한 남자일 경우 과연 그게 납득이 가겠느냐는 깊은 생각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위로는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예수를 상징하는 JHS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JHS, 혹은 IHS가 예수를 상징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찾아 보니 그게 무엇의 약자인지는 사실 의론이 분분하다고 한다. 라틴어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 Iesus Hominum Salvator ' 의 약자라는 설이 지배적이지만 그냥 IHS 자체가 '예수'의 다른 표기법이란 의견도 꽤 설득력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아직도 한참 공사가 진행중. 공사 얘기가 자꾸 나오는데, 가우디 사후 100주년을 맞는 오는 2026년을 넘기지 않고 완공시킨다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사실 공사 기간은 엄청난 음모설의 대상이었다. 성가족성당의 공사가 초대형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1926년 이후의 진척도를 생각하면 뭔가 이상한게 사실이다. 150층짜리 빌딩도 몇년이면 다 짓는 요즘 세상에 왜 70년 80년이 소요되고 있는가?

 

공식 답변은 '소요되는 엄청난 공사비를 기부금으로 충당했는데 모금이 여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 들어도 궁색하다. 오히려 스페인 정부가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갖고 있는 관광자원으로서의 매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고의로 완공을 미루면서 관심을 유발시키고 있었다는 음모설이 훨씬 설득력있다.

 

그러던 것이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내가 죽기 전에 이 성당에서 미사를 한번 집전해 보는게 소원"이라고 얘기하면서 전 세계 가톨릭권의 압력이 스페인으로 밀려왔고, 결국 '등 떠밀린' 스페인이 공사에 속도를 붙여 2010년에는 지붕이 완성되고 미사가 진행되는 데까지 일이 진행됐다. 이렇게 되고 보니 한번 맘먹고 지으면 금세 지을 걸 왜 그렇게 시간을 끌었느냐는 의혹만 더욱 짙어지고 있다.

 

 

 

아무튼 예수 탄생 기록을 위해 가우디는 수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켰는데,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거의 모든 조각품이 실제 모델의 본을 떠 석고 모형을 만든 뒤 이뤄졌다는 것. 심지어 왼쪽의 '이집트로 피난가는 성가족'에서 마리아가 탄 당나귀를 표현하기 위해 진짜 당나귀의 본을 떴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리고 오른쪽, 헤롯의 명령에 따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모든 아기들을 참살하는 병사의 모습에도 얘깃거리가 있다.

 

일단 모든 모델을 석고본을 떴으면 아기는....?

 

병원에 연락해서 죽은 아기를 가져다 썼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아기를 들고 있는 병사, 완성해 놓고 보니 발가락이 여섯개였다는 것이다.

 

 

 

 

 

죽은 아기가 모델이라니 왠지 좀 섬뜩하게 느껴지긴 한다. 아무튼 대단하다.

 

 

 

예수의 영광을 그려낼 남쪽 파사드는 현재 열심히 공사중이다.

 

 

 

모퉁이를 돌면 서편, 그러니까 지금의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 쪽 파사드가 보인다.

 

이른바 '수난의 파사드'인데, 조각가가 주젭 마리아 수비락스 Josep Maria Subirachs 로 바뀌면서 조각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사실적이고 화려한 동편의 조각과는 달리 20세기 스타일의 추상적인 형상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네 개의 옥수수탑 중앙부, 녹색 공사용 그물이 쳐져 있는 곳에 약간 노리끼리한 사람의 형상 같은 것이 보인다.

 

그 장면을 확대하면 이렇다.

 

 

 

예수상이다. 문제는 높이 있으면 작아 보이는게 인지상정인데, 수비락스의 의도는 이 예수상이 아래쪽에 있는 예수상과 같은 크기로 보이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위에 있는 조상일수록 커져야 하는 법. 이 예수상만 3톤의 크기라고 한다. 그럼 저 거죽을 바른 도금엔 금이 얼마나 들어갔을까...

 

아무튼 서쪽의 추상적인 스타일은 동쪽의 고전적인 스타일과 완전히 대비를 이루며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도 아예 공사 현장의 X빔을 그대로 노출시켜 사용했고,

 

 

예수가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수건으로 피와 땀에 젖은 예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베로니카 성녀를 가운데 배치하는 파격적인 연출도 눈길을 끈다.

 

또 옆에 서 있는 로마 병사들은 카사 밀라 옥상에 있는 가면 쓴 병사들의 형상들을 그대로 가져와 가우디와의 접점을 마련했다(심지어 왼쪽 끝에 서 있는 사람은 누가 봐도 가우디).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이 형상들은 영화 스타 워즈에 나오는 제국 군대 스톰 트루퍼의 원형이라고도 한다. 

 

 

 

 

사실 이 모습의 원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진실은 피터 잭슨만 알고 있겠지.

 

 

심지어 맨 왼쪽에 서 있는 인물은 만년의 가우디.

 

 

 

이건 관찰력이 필요한 부분. 왼쪽의 사방진은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이 모두 33. 이 조각은 예수에게 키스해 병사들의 습격을 받게 하는 유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누가 예수고 누가 유다인지 혼동할까봐 유다의 발밑엔 뱀을, 예수의 등 쪽에는 합계 33(예수가 죽을 때의 나이)의 사방진을 배치했다. 왜 사방진인지는... 글쎄.

 

 

 

이렇게 해서 알파와 오메가의 형상이 동시에 그려져 있는 기룩한 성전 기둥을 지나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외관을 보면서 박수를 쳤다면, 내부를 보고는 감히 박수를 치지 못했다.

 

 

 

 

이유는 너무 대단해서. 지금까지 세계를 돌며 좋은 것도 꽤 많이 봤지만, '이런 건' 정말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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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한복판에는 그라시아 거리 Passeig de Gracia 라는 대로가 있다. 우선 바르셀로나의 도시 모양을 일단 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처음 지도를 보면 아무 느낌도 없겠지만, 며칠 돌아다니다 보면 이 도시의 특성이 보인다.

 

 

 

바르셀로나의 주축 도로는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도시를 가로지르는 대로 Gran Via 다(위 지도의 파란색 선). Gran Via는 스페인에서 한 도시의 가장 큰 길을 말하는 것으로, 앞으로 갈 모든 도시마다 Gran Via가 있다. 대개의 경우 그 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문제가 없다.

 

이 그란 비아의 공식 명칭은 Gran Via de les Catalanes 지만 뒷말은 무시해도 좋다. 어차피 그란비아는 이 길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지도를 클릭해서 크게 보면 파란 선이 통과하는 전철역(빨간 마름모) 중 그라시아 거리 Passeig de Gracia라는 역이 보인다.

 

 

 

그러니까 그 중심 대로인 Gran Via 길 위의 그라시아 거리 역에서 수직으로 북서쪽으로 가는 길이 바로 그라시아 거리다.

 

이 거리를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이 길이 바르셀로나의 청담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명품의 거리기 때문이다. 샤넬에서 에르메스에 이르는 명품 매장들이 모두 이 길에 있다. 또 망고에서 자라까지 거의 모든 브랜드가 다 자리잡고 있어 쇼핑으로는 단연 그라시아 거리가 no.1이다.

 

이 거리는 19세기에 구축된 바르셀로나의 신시가지(도시가 좀 연식이 있다 보니 19세기가 신시가지다)로, 카탈루냐 광장 남쪽의 미로같은 구시가와는 달리 직사각형으로 딱딱 대로가 갈라지는 계획도시의 풍모를 강하게 풍긴다.

 

그리고 이 길 위에 가우디의 작품인 카사 밀라카사 바트요 가 있다. 이 두 건물이 그라시아 거리에 있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두 건물은 모두 20세기 초 중산층의 삶, 그리고 아르누보의 시대와 직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다.

 

 

 

북서쪽에서부터 내려오다 보면 일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카사 밀라 Casa Mila.

 

카사 비센스에서도 예습했듯 1910년 지어진 카사 밀라는 '밀라 씨의 집'이라는 얘기다. 이 집 역시 세련된 취향을 가진 중산층 이상을 위한 아파트 단지로 설계됐는데, 결과적으로 이 집 역시 실패한 단지였다. 가우디가 손만 대면 부동산으로선 매번 실패했다는 이야기만 듣게 된다. 보기 좋은 집이 살기도 좋은 건 아니라는 얘기일 듯 하다. 그래서 결국 주인이 몇번 바뀌다 바로 길 건너 있는 은행의 소유물이 됐다는 얘기.

 

아무튼 이 집은 채석장이란 뜻의 라 페드레라 La Pedrera 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고 한다.

 

 

 

그리고 남동쪽으로 그라시아 거리를 따라 내려오면 카사 바트요 Casa Batillo 가 나타난다.

 

스페인 건축의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건물 앞의 공간이 충분히 확보된 곳이 많지 않다. 뒤에 가 볼 도시들의 카떼드랄 Cathedral 들이 모두 그래서 건물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기가 그리 쉽지 않다. 특히나 카사 바트요는 건물이 북동향이라 오후에는 길 건너편에서 찍으려 해도 건물 정면을 찍으면 역광이 된다. 그래서 저 건물의 특징인 용이 헤엄치는 지붕을 찍기란 매우 힘들다.

 

아무튼 참 절묘하고 특이하다. 그리고 가우디의 영향까진 아닐지 몰라도, 그라시아 거리엔 독특한 스타일의 건물들이 꽤 많이 눈에 띈다. 6~8층 정도로 거의 통일된 높이의 건물들이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치장되어 있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이 건물의 정체는 지금도 모르겠다.

 

 

 

이건 매우 유명한 카사 바트요 옆집. 카사 아마예 Casa Amatller ('아마트예' 라고 읽어야 할 듯 하지만 카탈루냐어로는 아마예라고 읽는다고 한다. 그러나 택시 운전사와 주민들이 동네 하나 부르는 이름이 모두 다른 스페인이고 보면 사실 좀 불안하긴 하다) 라는 건물인데, 그냥 '카사 바트요 옆집'이란 이름으로 국내 여행객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 이 건물도 카사 바트요 못잖게 요란하고 화려하다.

 

 

 

 

이 건물은 초콜렛 박물관으로 1층만 개방중인데, 어떤 인연인지 카사 바트요는 현재 추파 춥스 사탕 회사가 소유하고 있다.

 

 

 

이건 카사 바트요에서 옆 길로 꺾어지면 보이는 안토니 타피에스 미술관 Fundacio Antoni Tapies. 이 건물도 가우디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몬타네르 Lluis Domenech I Montaner (역시 이분의 이름도 카탈루냐 식으론 유이스 두메넥 몬타네르...) 의 작품이라는데, 건물 위의 정신없이 꼬인 철사줄 같은 장식이 매우 인상적이다.

 

가우디의 진수를 맛보려면 건물 내부에 들어가야 할텐데 일단 장애가 좀 있다. 카사 밀라는 16유로, 카사 바트요는 20.35유로(관광안내소에서 10% 할인 쿠폰을 준다. 18.15유로인 셈)를 받는다. 두 건물 모두 보려면 1인당 5만원이 넘는다.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다. 그리고 유로자전거나라는 카사 바트요 앞에서 점심식사 포함해 2시간 정도의 여유 시간을 준다. 그러니까 식사를 하고, 알아서 들어가고 싶은 건물을 들어가 보라는 얘기다.

 

일단 시차적응이 안 된 중년 커플은 여기서 퍼져 앉고 싶은 마음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몇 군데의 식당을 추천받았는데 그때만 해도 오래 오래 걸리는 스페인 식 식사를 즐길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비교적 음식이 빨리 나온다는 식당으로 향했다.

 

(결론적으로 음식은 전혀 빨리 나오지 않았다.)

 

 

 

따예 데 타파스 Taller de Tapas(자. 이제 taller를 톨러라고 읽는 촌스러운 발음은 빨리 졸업하도록 하자). 나중에 알고 보니 체인이어서 바르셀로나 곳곳에서 똑같은 간판을 볼 수 있다. 애초부터 프랜차이즈였는지, 장사가 잘 되어 분점이 여러 곳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음식 맛은 낫 배드.

 

카사 바트요에서 안토니 타피에스 미술관을 지나 왼쪽으로 꺾어지면 바로 보인다(남서쪽으로 한블럭 뒤라는 얘기). 주소는 Rambla de Catalunya, 49-51, 08007 (람블라 어쩌고 하는 주소 때문에 '아 그 유명한 람블라 길? 하는 오해는 없길 바람. 그 람블라 길은 La Rambla 다). 야외석과 실내석이 따로 있다.

 

여기서 드디어 스페인 식문화의 특징 중 하나인 메뉴 델 디아(Menu del Dia)를 시키게 된다. 메뉴 델 디아란 '오늘의 메뉴'라는 뜻으로, 거의 모든 레스토랑이 점심 시간에 전채 요리 하나, 메인 요리 하나, 그리고 디저트 등 3식에 빵과 음료를 더해 매우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게 되어 있는 제도를 말한다. 저렴하다는 건 10유로 정도. 관광지든 마드리드든 결국 메뉴 델 디아 가격으로 비싼 집이라도 14유로 이상은 못 봤다.

 

10유로면 14000~15000원 정도니 비싸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서서히 스페인 물가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버거킹의 세트 메뉴가 7~8유로 정도 한다. 전식-메인-후식 세 접시 식사에 음료와 빵을 주고 10유로면 엄청나게 싼 거다. 이 제도를 만든 사람이 그 유명한 독재자 프랑코고, 노인네들 사이에서는 메뉴 델 디아가 '프랑코가 잘한 대표적인 일' 중의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만, 이 제도를 경험한 결과, 메뉴 델 디아는 관광객에게 그닥 추천할만한 식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메뉴 델 디아에 나오는 전채와 메인, 디저트 모두 각각 몇가지 선택지 중에서 고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어떤 식당도 자기네 식당의 간판 메뉴를 메뉴 델 디아로 내놓고 있지는 않았다. 특히나 관광지로 갈수록 메뉴 델 디아에 속하는 건 대개 닭다리, 소 안심 스테이크, 돼지 등심 구이, 심지어 햄버거 스테이크 등 '관광객용 메뉴' 인 경우가 많았다. 스페인에 가서 비교적 저렴하다고 메뉴 델 디아만 먹다 보면 정작 스페인이 자랑하는 특유의 맛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하고 돌아오기 십상이다.

 

그리고 경험해본 바에 따르면, 재주껏 주문하는 요령만 생기면 배부르게 먹고도 메뉴 델 디아와 별 차이 안 나는 계산서를 만들 수 있다. 놀랍게도 식당 주인이나 웨이터들도 그런 태도를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 좀 아는구나. 그래. 음식은 그렇게 먹어야지' 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곤 한다.

 

스페인 식당에 갔으면 영어 메뉴와 스페인어 메뉴를 번갈아 보면서 음식 이름, 혹은 음식 재료 이름을 조금씩 익혀 가며 뭔가 주문해 먹는 맛, 이런게 있어야 진정한 여행의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런 건 다 며칠 지난 뒤의 얘기고, 이날은 아무것도 몰랐으므로 12.5 유로짜리 메뉴 델 디아 주문.

 

 

 

 

 

메뉴 델 디아에서 전채로 선택한 연어 샐러드와 구운 야채.

 

 

그리고 메인 중 하나인 닭다리 구이. 뭐 이런 음식이 나온다. 굳이 스페인까지 가서 먹을 이유가 없는 음식들이다.

(그래서 이 집은 '스페인 맛집' 항목에 들어가지 못했다. 먹어 본게 이런 건데 어떻게 평가를 하겠냐는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시간이 오후 3시30분 정도 되어 가는데(스페인의 점심 시간은 대략 오후 2시~4시 쯤이라고 보면 된다. 스페인 사람은 하루 보통 5끼를 먹는다고 하는데 이건 어느 가이드북에나 다 나오는 이야기이므로 여기선 생략), 여전히 노변의 카페들이 바글바글했다.

 

흔히 '스페인에는 시에스타가 있다'고들 하는데 바르셀로나에는 시에스타가 없다. 다만 점심을 집에 가서 먹고 오거나 밖에서 아주 오래 오래, 잘 떠들면서 즐겁게 먹는다. 뭐... 직장인의 입장에서 참 보기 좋았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날은 카사 밀라도, 카사 바트요도 내부는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스페인의 오래 오래 먹는 점심 문화를 경험해 봤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여행 첫날은 항상 부담스럽고 힘들다. 너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이 건물들의 내부 이야기는 넷째날에 소개하기로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가 아직 남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곧바로 전철을 타고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짜잔. (당연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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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스페인을 찾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이. 한번도 안 가본 곳을 가보려는 생각 가운데 바르셀로나라는 도시 이름이 스쳤다.

 

그리고 후배 아무개의 페이스북에서, 야간 개방을 한 알함브라 궁전 곳곳을 찍은 사진을 봤다. 신비롭고 또 신비로웠다. 이런 곳이 아직 남아 있었는데 내가 못 가봤다니. 불끈 마음 속의 불기둥이 섰다. 에스빠냐. 곧 가고 말겠다.

 

 

 

마일리지 보너스 항공권으로 여행 일정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비행기 한 대에는 수백개의 좌석이 있지만 항공사들이 마일리지 손님들을 위해 열어 놓은 좌석은 그중 한주먹을 넘지 않았다. 몇 차례 혼선을 겪은 끝에 일정을 잡았다.

 

스타 얼라이언스를 이용한 바르셀로나 in ~ 마드리드 out의 일정. 10월17일에 서울을 출발해 28일 돌아오는 10박12일의 일정이었다. 직장인으로선 감히 생각하기 힘든 사치였지만 사실 마지막 날은 약간의 착오 때문에 생겼다. 돌아오는 여정은 당일 도착이 아니라 +1이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 그래서 10박11일이라고 생각한 여정이 12일이 돼 버렸다.

 

아무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30분. 이미 프랑크푸르트에서 검색지역을 통과한 터라 바르셀로나에서는 바로 공항 문을 나설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는 유럽 공항 중에서도 유난히 민감한 검색으로 유명하다. 화장품류를 사는 경우, 액체 용량 제한에도 가장 엄격한 기준을 내걸고 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걸린 시간은 약 20분. 요금은 29유로 정도. 미터기대로 갔는데도 가이드북의 추정 요금 30유로를 넘지 않았으니 정직한 예금으로 보인다. 첫날은 바로 수면. 물론 시차 때문에 숙면은 힘들지만.

 

다음날 아침부터 일단 강행군을 시작했다. 유로자전거나라의 1인당 30유로짜리 가우디 투어. 바르셀로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꽤 심도있는 해설을 해 준다. 단 30유로는 순전히 가이드 비용. 각 건물의 입장료나 이동 교통비 등은 모두 각자 부담이다. 그러니 절대 싼 가이드비는 아니지만, 찬찬 세세한 설명은 충분히 그 값을 한다.

 

 

 

 

첫 방문지는 카사 비센스 Casa Vicens. 스페인어로 '카사 ~'라는 이름은 '~의 집'이라는 뜻이다. 즉 카사 비센스는 주인의 이름이 비센스라는 얘기. 건물 전면을 타일로 장식한 것은 비센스 선생의 직업이 타일 판매상이라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1878년부터 약 10년간에 걸쳐 지어진 카사 비센스는 가우디의 첫 작품이라 그의 취향이 그리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지는 않다는 설명. 아무튼 이색적인 건물이 충분히 눈길을 끈다. 어쨌든 현재 개인 소유라 내부 공개는 하지 않는다.

 

 

 

 

이런 소소한 유머감각까지.^^

 

이 집은 현재 판매중이라는 후문. 자신있는 분은 응찰해 보시길.

 

 

 

 

특이한 건 집 앞 전깃줄에 내걸린 운동화.

 

 

 

 

알고 보니 이 신발은 그 앞집에서 대마초를 팔고 있다는 사인이라고.

 

 

 

다음은 산길을 넘어 도착한 구엘 공원.

 

 

 

그 수없이 많은 관광 책자며 블로그에서 보던 바로 그 정문.

 

구엘공원은 알려진대로 1900~1914년 연립주택으로 설계됐다. 옥상에 내린 빗물을 자동 정수해 생활용수로 활용하는 등 획기적인 구상과 디자인이 당시에도 화제였다. 하지만 문제는 20세기 초의 교통 환경. 당시 이 일대는 주거지로 삼기엔 너무 산 꼭대기의 외딴 땅이었다. 그래서 결국 완공에 실패했고, 1920년 언저리에 공원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입구의 이 아리따운 건물들이 바로 구엘 공원을 연립주택으로 설계했을 때 경비초소와 경비원 숙소라는 얘기.

 

 

 

 

 

금요일이라 공원 안은 소풍온 어린이들로 인산인해. 특히 계단의 상징 표석과 알록달록 도자기 모자이크가 박힌 도마뱀 주위는 항상 관광객들로 포위되어 있다.

 

이 기법을 트렌카디스 trencadis 라고 부른다고 한다.

 

 

 

10월이라도 구엘공원의 햇살은 충분히 일사병을 걱정하게 했다. 이때 위안이 된 것은 석조 회랑 안의 시원한 공간. 천정의 모자이크는 공사중이라 볼 수 없었지만, 그 곡선미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곳으로 소풍오는 초등학생들에 대한 약간의 부러움도.

 

 

 

 

 

 

건물 주위를 둘러싼 유명한 석축 회랑을 뒤로 하고 옥상으로 올라가면, 

 

 

 아예 작정을 하고 조성한 듯한 공원이 나타난다.

 

 

 

 

 

 잘 알려진대로 공원의 가장자리는 이렇게 트렌카디스 기법으로 장식된 물결 무늬 모양의 벤치가 만들어져 있고,

 

 

 

 그걸 아래쪽에서 보면 이렇다.

 

 

 

 아무튼 구엘 공원에서 정면 쪽을 바라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리가 다 아는 그 공사중인 옥수수 탑이 보인다.

 

 

 

사실 볼거리는 이게 전부. 10월 초라도 무시무시한 땡볕 때문에 밖에서 오래 구경하는 건 건강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가우디의 명성 덕분인지 인파는 바글바글. 

 

일설에 따르면 해질 무렵 여기서 바라보는 석양이 기가 막히다고도 한다.

 

 

아무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구엘 공원은 마냥 아름답다. 구엘 공원 탐방을 마치고, 시내로 이동했다. 가우디와 관련해 돈독이 심한 바르셀로나에서 구엘 공원은 예외적으로 아직 공짜지만 곧 여기도 입장료가 생긴다는 얘기가 있다. 이렇게 해서 오전 일장을 마치고 시내로 이동했다. 

 

시내 한 복판에 있는 가우디의 간판들, 카사 밀라와 카사 바트요, 그리고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기 위해서.

 

18일 밤: 택시비 29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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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 들어서던 날, 비가 오고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태양의 나라에도 가을 겨울은 있었다. 이런 날씨라면... 국물이 필요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먹었던 사르수엘라(자르주엘라) Zarzuela가 생각났다.

 

하지만 호텔 매니저는 사르수엘라를 잘 하는 집은 커녕 사르수엘라라는 음식을 아예 몰랐다. "공연을 보시고 싶은 건가요?" 하고 반문을 한다. 참고로 사르수엘라는 스페인식 오페라의 일종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포기. 그럼 카스티야 풍의 국물 음식은 뭐가 있는지 물었다. 문득 가이드북에서 본 코시도 Cocido 라는 말이 생각났다. 호텔 근처에 코시도 잘 하는 집이 있느냐고 묻자 매니저의 눈이 반짝였다. 이건 자신이 있다는 신호. '미첼린'에도 나온 집이란다. '음. 스페인식으로는 미슐랭이 미첼린이로군'.

 

그가 지도를 꺼내 표시해 준 집은 라 볼라 La Bola. 볼라 거리를 대표하는 집이라는 뜻이란다. 호텔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를 걸어가면 작은 광장이 나오고, 거기서 메르쿠레 Mercure 호텔이 보이면 왼쪽으로 꺾으란 설명.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 안에서 또 길이 두 갈래다. 이런. 일단 볼라 거리 Calle de Bola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다행히 한 아주머니가 이 방향이라고 가르쳐 준다.

 

 

 

가는 길에 한식당 마시타 Mashita 발견. 사실 여기까지 와서 한식당을 갈 이유는 없었지만 나중 호기심에 찾아 보니 트립어드바이저에서 꽤 순위가 높은 집이었다. 많은 손님들이 이 집에서 '환상적인 스시'를 먹었다고 하는데... 과연 무슨 스시를 먹은 것일지. 혹시 노리마키?

 

 

 

 

마시타에서 골목길을 죽 내려가면 오른쪽에 라 볼라가 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후 3시에 줄을 서 있다. 대단하다.

 

 

 

 

집 대문을 장식하고 있는 미슐랭(스페인식으로 미첼린) 가이드의 위용. 그리고 더 잘 보이는 '현찰만 받아요' 간판.

정감있는 고전적인 분위기의 실내엔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첫 주문은 당연히 이 집의 성명절기인  '마드리드식 코시도 Cocido Madrileño '. 그리고 고기와 토마토 소스 스튜라는 설명이 있는 로파비에하 Ropavieja를 시켰다.

 

 

 

 

아담한 항아리에 담긴 코시도가 나왔다. 아래 보이는 올리브는 기본 제공. 이 올리브만 반찬으로 해서도 빵 한접시를 비울 수 있을 정도로 신선하고 상큼한 맛이 났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후, 항아리가 개봉됐다.

 

 

 

 

코시도를 먹는 순서 1. 우묵한 접시에 소면 같이 가느다란 파스타를 담고, 거기에 항아리에서 국물만 따라 붓는다. 진한 국물과 함께 소면을 말아 먹는 셈이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인상적인 맛.

 

대부분의 국내 곰탕/설렁탕 집들은 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오만가지 비법을 다 쓴다. 마늘과 양파, 통후추는 기본이고 각종 한약재에서 커피까지 다양한 소재들이 고기를 삶을 때 비장의 재료로 사용된다. 하지만 코시도의 국물은 이보다 훨씬 정직한 '고기 국물' 맛이다. 국물의 '고기 냄새'에 예민한 사람들은 싫어할 수도 있을 듯.

 

 

 

수프와 파스타 접시를 비우면 항아리의 내용물이 나온다.

 

 

 

스페인 특유의 알 굵은 콩을 중심으로 쇠고기 한 덩어리(양지머리 같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됨), 닭 가슴살 한 덩이, 소 꼬리 한토막, 그리고 삼겹살(이라지만 사실은 거의 비계) 한 덩이가 들어 있다. 이걸 푹 곤 국물을 좀 전에 먹은 거다.

 

 

 

고깃덩이를 가져다 찢어 먹는게 코시도의 두번째 순서. 느끼한 맛을 덜기 위한 토마토 소스, 초절임 고추(전혀 맵지 않다), 날 양파가 제공된다. 고기와 삶은 콩, 토마토 소스를 마구 버무려 먹다가 심심하면 고추절임을 한입씩 깨물면 된다.

 

맛있다. 음.

 

 

 

그러는 사이 두번째 메뉴 로파비에하 Ropavieja 등장.

 

재료상으로는 코시도 마드릴레뇨와 크게 다를 게 없다. 토마토 소스를 나중에 첨가해서 먹느냐, 아니면 토마토 소스를 함께 넣고 고기를 잘게 찢어 국물이 많지 않게 자박자박하게 끓여 내느냐의 차이 정도.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로파비에하가 이 집의 진미를 맛보는 더 간편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코시도로 일어선 집인 만큼 처음에는 일단 코시도를 맛봐 주는게 예의가 아닐까 싶다.

 

이밖에도 메뉴상으로는 다양한 생선과 고기 요리를 취급한다. 혹시 다음에 가 볼 기회가 있다면 이 집 방식의 라따뚜이를 맛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아무튼 태양의 나라에도 쌀쌀한 날씨는 있는 법, 푸짐하게 먹고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마드리드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코시도.

 

 

 

끝으로 서비스의 질. 서빙하는 거구의 어르신도 라 볼라의 명성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주어왔을 듯 하다. 말 안 통하는 외국인 손님들을 맞아서도 여유가 넘치고, 양쪽에서 똑같은 음식을 주문했을 때 코시도 항아리를 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어.느.놈.을.먼.저.줄.까.요' 를 몸짓으로 구현하기도 하는 재치까지. 음식 맛 뿐만 아니라 여유있는 서비스도 인상적인 식당이었다.

 

 

 

1870년부터 성업중인 노포의 명성은 역시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닌 듯.

 

 

 

스페인 여행 첫 소식을 이걸로 전합니다. 앞으로 [여행]과 [맛집]으로 나눠 포스팅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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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왜 포스팅이 안 올라오나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멀리 멀리 와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로마인들이 히스파니올라라고 불렀던, 그리고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이 헤스페리데스의 사과를 찾아 노저어 갔던 바로 그 곳입니다.

 

대략 밤에 잠들면 아침에 깨고, 현지 요령이 하나둘씩 생겨날 무렵에 돌아가야 한다는게 아쉽지만...^^

 

이런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먹고 있습니다.

 

 

 

 

 

 

 

 

 

 

 

 

 

 

 

 

 

 

 

 

 

 

 

 

 

 

 

 

 

 

 

 

 

 

 

 

 

 

 

 

 

 

일부만 올리는데도 참 힘들군요.

 

아무튼 그동안 없던 마음의 평화를 한껏 누리고 있습니다.

 

곧 돌아가서 뵙겠습니다.

 

(연말까지는 여행 포스팅으로 먹고 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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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4일째. 사실 여름에 홋카이도를 가는 사람들 중 80% 정도는 후라노-비에이 방향을 거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북쪽의 섬. 한국보다 낮은 여름 기온. 나지막한 지평선과 알록달록한 화원. 매력적인 관광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삿포로에서 후라노까지 다녀오는 건 일단 당일치기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침 일찍 기차나 버스편으로 삿포로를 떠나면 후라노 혹은 비에이까지 2시간 정도에 도착 가능합니다. 그 안에서 대략 어떻게 여행을 구성하느냐 하는 건 개인의 자유라고 봐야겠죠.

 

물론 이틀 이상 머물며 구경한다면 더 느긋하게 초원의 정취를 느끼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저도 다음번에는 한번쯤 렌트카를 이용해 넉넉하게 돌아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삿포로에서 이 지역을 가는 방법을 소개하자면 네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째는 삿포로에서 출발하는 하루 치기 관광 버스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예매할 수 있는 버스 상품을 알아 본 결과, 그리 충실한 상품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추.

 

둘째는 기차-버스 연결입니다. 왕복은 기차를 이용하되 현장에서 버스 관광을 이용하는 방안입니다. JR을 이용하는 승객만 이용할 수 있는 트윙클 버스라는 특화된 서비스가 있습니다. 가격도 500~1000엔 사이.

 

세째는 기차로 현장까지 가서 자전거나 렌트카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다른 도시에서부터 아예 렌트카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경험자들에 따르면 비에이 부근의 아름다운 구릉지대를 차로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피로나 한국과 반대인 운전 방향에서 오는 위험성은 감수해야 할 겁니다.

 

 

저는 그래서 두번째 길을 선택했습니다. 패스는 지난번 아사히야마 때와 마찬가지로 에나프투어(ENAF, www.enaftour.com)를 통해 JR의 열차 패스를 이용했습니다. 이 패스에 포함된 것은 삿포로-아사히카와 왕복권, 그리고 아사히카와에서 후라노 사이를 오가는 구간에서의 열차 무제한 이용권입니다. 1인당 5400엔. 이용기간이 3일간이기 때문에 후라노/비에이 지역에서 숙박을 해도 노롯코 열차는 계속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삿포로-아사히카와 사이는 역시 슈퍼카무이라고 불리는 고속 전철로 연결합니다만, 아사히카와에서 비에이를 거쳐 후라노까지 가는 길에는 '노롯코'라고 불리는 저속 열차가 하루 세 차례씩 왕복합니다. 물론 노롯코가 아닌 완행 열차도 다니지만, 여름에 후라노 지역을 찾는다면 당연히 노롯코 열차를 타 봐야 합니다. 왜 그런지는 타 보시면 압니다.

아무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당일 스케줄을 이용합니다.

 

09:06 삿포로 출발 / 11:03 후라노 도착 : 후라노 라벤더 EXP 3호

노롯코 열차 이용해 11:52(후라노) ~ 17:45(아사히카와) 관광

18:00 아사히카와 출발 / 19:20 삿포로 도착 : 슈퍼 카무이 40호

 

그런데 사실 약간 불만인 것은 이렇게 하면 실제 후라노-비에이 지역 체류 시간이 상당히 줄어듭니다. 후라노 역에서 1시간 정도 대기하라는 것(물론 식사 시간도 포함이지만) 역시 그리 반갑지는 않습니다. 또 얘기를 들어 보니 후라노 역에서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볼거리 중에는 만족도가 높은 곳이 별로 눈에 띄지 않더군요.

 

그래서 실제 관광 시간을 늘린 시간표입니다.

 

08:25 삿포로 출발 / 09:45 아사히카와 도착 : 슈퍼카무이 5호

노롯코 열차로 09:55(아사히카와) ~10:24(비에이) ~ 17:45(아사히카와) 관광

18:00 아사히카와 출발 / 19:20 삿포로 도착 : 슈퍼 카무이 40호

 

이 경우의 단점은 '후라노 역'을 들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시간표의 목적은 가장 가 보고 싶던 곳인 팜 도미타(FARM TOMITA)에 머무는 시간을 길게 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의 목적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단 그렇게 해서 아사히카와 역에서 노롯코 열차로 갈아 탔습니다. 매우 귀엽고 운치있는, 소풍가는 느낌을 주는 열차입니다. 삶은계란과 사이다...는 아니더라도, 다들 뭔가 테이블에 잔뜩 펼쳐놓고 먹고 마시고 있습니다. 기차 안 매점에서도 간단한 먹을거리를 판매합니다.

 

 

노롯코 열차가 달리는 길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평온해 지는 녹색 일색입니다. 달콤한 바람을 맞으면서 느긋하게 달리면 약 40분만에 '라벤더 팜' 역에 도착합니다.

 

 

사실 이 역은 여름, 라벤더가 피는 철에만 기차가 서는 역이기 때문에 역사 건물은 물론 아무 시설도 없습니다. 그냥 건널목 하나가 있을 뿐.

 

 

본래 정규 역은 이 역 바로 다음 역인 나카후라노(中富良野) 역이지만 이 역이 여름에 개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 역 부근에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팜 토미타가 있기 때문입니다.

 

널리 알려진 팜 토미타는 라벤더 농원을 화원으로 꾸미고 거기서 특화된 라벤더 상품을 팔아 명성을 누리고 있습니다.

 

 

상품 판매가 수입원이라 입장료도 받지 않습니다.

 

 

 

이 농원이 후라노/비에이 지역에서 가장 넓은 꽃밭은 아니지만(이날 오후에 간 시키사이 언덕이 규모 면에서는 훨씬 큽니다), 그 공력이나 꽃밭을 상품화하는 능력에서는 비교가 안 됩니다.

 

홈페이지도 마찬가지. 방문객들에게 그날 당일의 꽃밭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올려놓습니다. 아래 보시는 것이 8월5일의 꽃밭 모습. 물론 당일 기준으로 가장 꽃이 많이 핀 곳을 찍겠죠.

 

 

http://www.farm-tomita.co.jp/en/see/index.html (이 주소입니다.)

 

팜 도미타의 관광 사진을 보신 분들은 많으시겠지만, 위의 지도에 나오는 모든 꽃밭이 만개한 시기는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모든 꽃이 다 피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찾아간 7월초는 푸른보라색의 라벤더와 노란색의 뽀삐(?)가 가장 활발한 시기.

 

 

라벤더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습니다만,  

 

 

지금 위에 보시는 것은 '트래디셔널 라벤더'라는 품종입니다. 이밖에도 이 농원은 직접 개발했다는 '사키와'라는 품종의 라벤더가 널리 심어져 있습니다.

 

 

물론 이런 꽃들을 다 이름을 보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농원 곳곳을 스케치하기도 하고,

 

 

구름과 꽃들을 바라보면서 평온한 마음으로 산책을 하면 시간은 금세 흘러갑니다. 그러다 햇살이 따가워지면 그늘로 가면 되죠. 

 

팜 도미타라고 있다던데 눈도장이나 찍어 볼까? 여기야? 생각보다 별로인데... 사진이나 찍고 다음 장소로 고고! 라는 심정으로 가면 30분도 넉넉합니다. 삿포로에서 출발하는 당일 관광 버스는 팜 도미타에서 한 50분 정도 시간을 줍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적당한지는 개인차가 꽤 큽니다.

 

저희는 식사를 포함해 한 3시간 정도 머문 것 같은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후라노의 명물 중 하나인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홋카이도 곳곳마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특화되지 않은 곳이 없지만, 이 아이스크림은 연보랏빛 색과 함께 이 팜 도미타의 상징처럼 여겨집니다. '화장품 냄새가 난다'는 설도 있지만, 제 입엔 그냥 맛있는 보라색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그 다음 명물이라는 '라벤더 라무네'. 라무네는 일본식으로 '레모네이드'를 부르는 이름이지만, 그냥 사이다 맛입니다. 양도 적고 비쌉니다. 비추. 마개를 유리 공으로 막고 있는 옛날식이란 점이 약간 신기하지만, 병 수집이 취미가 아니시라면 굳이 마셔 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팜 도미타에서는 많이들 마십니다.

 

직접 가 보니 왜 입장료를 받지 않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비누, 오일, 파우더 등 라벤더로 만든 상품들은 그리 싼 가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리고 있더군요.

 

참고로 팜 도미타 전 매장 가운데 이 기념품 매장에서만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합니다. 이날 지갑을 놓고 가는 바람에 비상금이 없었으면 쫄쫄 굶을 뻔 했습니다. 팜 도미타는 물론이고 후라노/비에이 전 지역에서 그 어느 매장도 신용카드를 받지 않더군요. 일본 가시는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신용카드는 아예 '삿포로 시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삿포로 시내라고 '모두'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500원짜리를 사도 신용카드 결재가 가능한 한국과는 전혀 다릅니다.)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길. '라벤더 팜' 역 앞입니다. 구름이 살짝 몰려옵니다.

 

 

아무 것도 없는 평원 한가운데의 역. 사진찍기는 그럴싸 합니다.

 

노롯코 열차 편으로 다시 비에이 역에 내리면, 10분 쯤 뒤에 트윙클 버스가 출발합니다.

 

비에이에서 가는 트윙클 버스 노선은 두가지인데, 가격은 모두 500엔입니다. 시간표를 확인하시고 '반드시' 미리 예약하셔야 합니다. (아, JR 노선을 이용하는 관광객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버스는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의 작품을 전시한 타쿠신칸(拓眞館- 작품은 참 훌륭하지만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없어 패스. 그 작품들을 보면 다른 계절의 비에이가 정말 궁금해집니다 - 을 지나 역시 유명한 꽃밭인 시키사이(四季彩) 언덕으로 갑니다.

 

 

시키사이 언덕의 상징인 짚풀 인형상.

 

 

여기도 제철인 라벤더가 한창입니다. (7월 초 기준)

 

 

사진을 확대해 보시면 '청춘불패' 팀이 보입니다.

 

 

넓이로 따지면 팜 도미타에 못지 않은 넓은 지역. 꽃밭 자체는 참 아릅답고 저 너머로 보이는 비에이의 언덕들과 매우 잘 어울리지만, 꽃밭을 상품화하고 매력을 더하는 솜씨에서 팜 도미타와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버스는 계속 달려 비에이의 '패치워크'라고 불리는 구릉지대를 보여줍니다.

 

정말로 패치워크를 보듯, 각기 다른 작물을 심어 대지의 결이 달라진 모습이 마냥 아름답게 보입니다. 거기에 한몫을 하는 것이 파란 하늘과 구름.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집니다.

 

 

후라노-비에이는 '이 지역의 볼거리는 뭐지? 뭐가 유명하지? 한 군데에 30분씩만 머물면 될까?' 혹은 '여기 오면 꼭 먹어야 하는게 있다던데, 줄을 서서라도 꼭 먹어야지' 하는 심정으로 갈 곳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평원과 구릉, 그 위로 날아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화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곳입니다. 언젠가 렌트카를 몰아 직접 달려보고 싶은 길들을 계속 마주쳤습니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

 

 

 

 

마지막 날은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을 든든히 먹고, 공항에서 르 타오의 치즈케이크와 삿포로 클래식 맥주(홋카이도 한정 판매)를 사서 돌아왔습니다.

 

홋카이도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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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곰이란 참 동물원에서 재미있게 보기 힘든 동물이었습니다. 사실 동물원에 가는 많은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육식동물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호랑이, 표범, 사자를 동물원에서 재미있게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야행성인 이 동물들은 사람들이 구경 갈 시간에는 대개 한창 수면을 즐기고 있기 마련이죠. 가끔씩 동물원 생활에 적응한 몇몇 변종들이나 돌아다닐 정도.

 

대형 육식동물 중에서 그나마 낮 시간에 제대로 깨어 있는 것은 곰 정도지만, 이 또한 활기찬 몸집으로 구경꾼을 즐겁게 해 주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백곰류는 한겨울이 아니면 생기를 보여주기 힘들죠. 더구나 백곰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하지만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방식으로는 그렇지 않더군요.

 

 

 

 

 

 

 

앞 글에서 설명했던 백곰 축사의 모구모구 타임에는 사육사가 백곰을 물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럼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죠. 단 거의 모든 관에서 스트로보는 사용 금지입니다. 동물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한다는 이유입니다.

 

 

 

 

 

언뜻 둔해 보이지만 백곰의 몸놀림은 대단히 날렵했습니다. 사육사가 물속으로 던져 주는 먹이를 잡기 위해 움직일 때에는 물 밖에서의 느긋한 모습에서 180도 바뀌더군요.

 

 

속도감 인증. 아무튼 브라더와는 이렇게 작별입니다.

 

백곰관을 지나 밖으로 나오면 작은 동물관이 있고, 거기에 이 동물원의 스타들 중 하나인 레서 팬더(lesser panda)가 눈길을 끕니다. '쿵푸 팬더'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시푸(사부)의 원형이라 유명해졌죠.

 

 

 

그런데 이 동물원에서도 레서팬더를 찍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포토제닉한 동물들과는 달리 이 레서팬더는 워낙 카메라를 멀리 하는 수줍은 성격이었기 때문이죠.

 

 

 

 

이 정도가 가장 잘 나온 사진입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쪼르르 도망가 버리거나, 저렇게 높은 구름다리 위에서 낮잠만 잡니다. 상당히 영접하기 어려운 분입니다. 그나마 비가 뿌리기 전이라 저 정도라도 모습을 드러내는 듯.

 

이밖에 늑대관도 꽤 명성이 있습니다만,

 

 

이렇게 행동전시를 위해 설비를 해 놓은 것 까지는 좋은데,

 

 

정작 늑대님들이 돌아다니지 않고 쿨쿨 오수를 즐겨 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밖에도 수많은 동물들이 있긴 합니다. 이를테면 일본의 상징 중 하나인 두루미.

 

 

갤럭시 노트를 이용하면 미술작품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숭이관도 꽤 공들여 건립되어 있고 원숭이 종류도 다양합니다만,

 

 

비가 뿌리는 날씨 탓인지 별로 맥이 없습니다.

 

 

 

 

만사가 귀찮다는 분위기.

 

그래서인지 이 동물원에서 주력으로 미는 동물은 아래의 다섯 종류인 듯 합니다.

 

 

아사히카와 역에 설치된 전광판을 보시면 백곰, 펭귄, 레서팬더, 바다표범, 늑대의 다섯 종류가 캐릭터로 등장하죠.

 

분명 이 동물원에는 수많은 새들도 있고, 원숭이도 있고, 호랑이와 사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동물들은 어찌 보면 그냥 구색맞추기 정도입니다. 그리고 세계 어느 동물원에 가도, 호랑이와 사자는 있죠. 물론 백곰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독특한 전시 방침을 세우고, 자신들만의 강점을 내세운 동물원은 보기 힘듭니다. 심지어 겨울에는 이렇게 펭귄들이 행진하는 모습도 볼수 있다고 합니다. 운동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었는데 이게 또 사람들을 끌어 모으게 됐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영화도 만들어지고, 책도 나오고, 경영 성공 사례로 여기 저기 소개되면서 더 유명해지고... 뭐 좋은 순환입니다.

 

아무튼 '명망있는 동물원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우리만의 볼거리'를 강조해 성공한 아사히야마 동물원. 여러 모로 참고가 되었습니다.

 

 

주의사항은:

 

고위도 지방이기 때문에 폐장시간이 꽤 빠릅니다. 오후 다섯시 전후? 오후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고려하셔야 할 겁니다. 아울러 역과 동물원을 연결하는 버스는 기차 시간과 연동되어 있습니다. 오픈 티켓이 아닌 경우(좌석을 예약한 경우)에는 시간을 엄수하지 않으면 비싼 택시비를 물게 됩니다. 기차 시간과 교통편의 경우에도 에나프 투어(ENAF, www.enaftour.com) 등의 전문 여행사를 이용하면 직접 열차 시간표를 보고 연구할 필요 없이 스케줄링을 해 주곤 합니다.

 

구내에 식사할 장소가 있기는 합니다만, 가격도 비싼 편이고 메뉴가 그닥 눈에 띄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좋은 음식은 저녁에 드시고, 도시락 비슷한 것을 싸 가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단, 날씨가 좋은 경우에만.

 

다음에는 구름에도 표정이 있어 보이는 꽃의 낙원 편입니다. 후라노-비에이 하루치기.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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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 가운데에도 지능이 높고, 인간이라는 자기와 다른 존재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는 종류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돌고래, 침팬지 등이겠죠.

 

그런데 지능은 이 정도에 미치지 못해도 인간들에게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즐겨 하는, 과시욕 강한(?) 동물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펭귄은 명백하게 자신에게 인간들이 관심을 갖는 것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 갈매기는 지능과는 무관하게, 사람 가까이까지 날아와 공중에서 사실상 정지하는 동작을 자주 취하기 때문에(물론 인간들의 새우깡을 사랑하기 때문이겠지만) 본의와는 무관하게 포토제닉한 동물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모두 바다표범을 접해 보기 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 저는 바다표범이야말로 진정 카메라를 사랑하는 연예인 기질의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바다표범(아자라시) 관은 바로 펭귄 관이 끝나는 곳에서 이어집니다. 펭귄관과 마찬가지로 실외와 실내로 이뤄진 전시관이 있고, 관람은 실내에서 먼저 시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실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굵은 원통 기둥 모양의 투명 관. 그러니까 사람들의 관람 공간 한가운데 원통 기둥이 있고, 그 기둥 속으로 바다표범들이 드나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위에서 스윽 하고 한 녀석이 원통 속으로 내려옵니다.

 

이야~~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지죠.

 

환호를 받은 이 분은 결코 퍼포먼스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렇게 재주를 넘어 주는 건 기본.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 바로 앞까지 다가가 정면 포즈를 취해 주기도 합니다.

 

 

특히나 어린이가 있는 쪽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 듯한 느낌까지.

 

원통 기둥 속으로 바다표범이 나타났다 사라지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 동영상으로 보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오디오가 중요함^)

 

 

원통 기둥 옆은 아예 한쪽 벽면을 통유리로 깔아 바다표범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 한 구석으로 이렇게 다가와 자신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응시합니다.

 

 

그럼 이렇게 다들 달려들어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바다표범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아무튼 바다표범이라는 동물이 얼마나 우아하고 장난기가 많은 지 보여주는데는 최적의 공간입니다.

 

그 다음은 왠지 친숙한 동물입니다.^

 

 

가족이랄까...

 

 

이 동물원에서는 행동전시라는 이름으로 동물들의 바로 코 앞까지 가서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뒀습니다.

 

우측 상단의 돔 안에서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는 사람이 보이시죠?

 

 

저 안에서 곰을 보면 이렇게 보입니다.

 

곰이 화가 나서 이 돔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은 그냥 상상 뿐. 사실 안에서 본다고 그닥 희한할 것은 없습니다. 어쨌든 백곰관의 하이라이트는 먹이를 주는 모구모구 타임입니다.

 

 

사실 우리의 백곰 브라더, 날도 더워 멱을 감고 싶을만 한데 전혀 물에 들어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물속에 먹을거리가 투입되는 모구모구 타임에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속에 먹이가 투입되는 순간,

 

 

주저없이 물에 뛰어드는 우리의 브라더 아니 백곰! 하지만 너무 길어져서 동물원 편은 한번 더 늘립니다.^ 백곰의 수중 활약은 다음 편으로...

 

이걸로는 예고가 약한 것 같아 이 동물원의 마지막 스타도 소개합니다.

 

 

바로 레서팬더(lesser panda). 레드 팬더라고도 불리는 분입니다.

 

 

 

이분의 모델이었던 분이죠. 그럼 다음 편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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