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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입니다.

한글날에 좀 맞는 화제를 들고 나오고 싶었습니다. 사실 지난번 추석 연휴때 또 나왔던 얘기이기도 한데 아끼고 아꼈다가 한글날 다 같이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요즘 TV를 보는 시청자들이 "TV에서도 원음을 살려 자막으로 외화를 방송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요청은 대개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인기 외화가 몰아서 방송되는 명절 때 많이 제기된다고들 하지요.

꽤 전에 한 방송사 편성 담당 간부 한 분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문득 외화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죠. 'X-파일'이 방송되던 시절인데, 일부 일간지에서는 'X-파일'의 인기로 미국 드라마 붐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기사가 나올 때였지만 정작 시청률이 왕년의 인기 외화들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얘기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왜 '프렌즈'같은 시트콤을 방송하지 않느냐"고 물었죠. 그 간부는 "우선 정서가 한국 정서가 아니고, 너무 섹스와 관련된 얘기가 많아 적절하게 옮기기가 함들며, 성우들이 그 시트콤의 맛을 낼 거라고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자막으로 내면 되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죠.

그러자 그 간부가 씩 웃으며 하던 말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거야? 누구 쪽박 차는 거 보고 싶어?" 저는 그때까지 정말 몰랐습니다. 한국 시청자들이 그렇게 자막을 싫어한다는 것을. 그 간부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자막 들어가서 방송된 프로 중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게 뭔지 알아? '여명의 눈동자'야. 그거 빼곤 전부 한자리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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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TV 외화, 더빙해야 할까 자막으로 볼까

명절 때가 되면 홍콩 스타 성룡(成龍)이 나오는 영화가 방송된다는 건 상식이다. 그리고 그만큼 자주 재연되는 논란이 있다. 바로 '성룡의 목소리'와 관련된 문제다.

TV 외화는 더빙을 하는 게 좋을까, 하지 않는게 좋을까. 한쪽에선 관람의 편의나 우리말의 소중함을 내세우고, 다른 쪽에선 실제 배우의 육성이나 만들어진 음향을 해치지 않는 관람을 요구한다. 당연히 돈이 더 드는 쪽은 더빙을 하는 쪽이다. 어느 쪽에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방송사 쪽에선 돈을 안 들이고 욕먹는 쪽이 낫다고 보아야 할까?

일단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떤지 볼 필요가 있다. 더빙과 관련해 '원어로 영화/드라마를 볼 수 있는 자유'를 말하자면, 한국만큼 이 자유를 폭넓게 보호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거의 모든 국가들이 한국과는 반대로, TV는 물론 극장에서도 '자국어로 더빙된 영화를 볼 권리'를 국민들에게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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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스페인, 독일 등 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은 방송 드라마의 경우 전면 더빙을, 극장용 영화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더빙을 원칙으로 생각한다. 그런 탓에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성우들이 인기 스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심지어 프랑스에서는 원어판(자막판)을 상영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더빙이 되어 있지 않음'을 명시해야 한다. 관객에게 '자막을 읽는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중국도 마찬가지. 자막 상영이 더 보편적인 일본에서도 거의 모든 영화가 더빙판 상영을 병행하고 있다.

오히려 극장에서 자국어로 더빙되지 않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 정도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미국인들은 '미국에서 외국(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 쉽지 않은 것은 더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엔 '자막을 읽어 가며 영화를 보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며, 외국어로 된 영화에 자막을 넣지 않는 것은 관객을 곤란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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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로 된 영화나 드라마를 원어 그대로 보든, 자국어로 더빙해서 보든, 사실 대단한 문제는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케이블TV의 경우 어린이용 애니메이션까지 자막 방송을 하기도 한다는 점은 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혹시 이런 현실이 자국어에 대한 애정의 부족 때문은 아닐까. 더빙 여부가 제작비 몇 푼의 문제, 성우 몇 사람의 생계 문제만은 아니라는 부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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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 관객들의 기준은 그리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1980년대, 홍콩 영화 포스터에는 조그맣게 '중국어 발성'이라는 문구가 써 있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홍콩 합작 영화가 꽤 많았고, 합작 영화는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홍콩에서는 광동어로 더빙되어 상영되는 게 상식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소룡에 이은 성룡의 성공이 모든 걸 바꿔놨습니다. 관객들은 재빨리 '중국어로 발성되는 영화'가 '한국어로 더빙된 중국 영화'에 비해 작품성이나 재미가 훨씬 낫다는 걸 알아 차린겁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더빙된 영화를 노골적으로 기피하는 경향이 생겼죠. '중국어 발성'이란 바로 품질 보증이었던 겁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말할 것도 없죠. 극장에서 더스틴 호프만 대신 배한성씨의 목소리가 나오는 영화를 걸었다가는 아마 관객들의 항의가 하늘을 찌를 겁니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지금도 더빙판을 병행 상영하지만, 어쨌든 한국에서는 '극장에 가서 외화를 본다=자막으로 영화를 본다'로 굳어진 지 오랩니다.

하지만 TV의 경우엔 영 다릅니다. 절대적으로 더빙된 영화에 대한 선호가 높죠. '어, 난 아닌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죄송하지만 이 경우에 여러분은 소수파입니다. 전체 국민, 즉 전체 시청자를 대상으로 했을 때 자막이 들어간 외화는 절대적으로 기피 대상입니다. 자막으로 방송되는 'CSI'가 인기라구요? 그래 봐야 시청률로 따지면 2~3%가 한계입니다. 더빙으로 방송되는 지상파에서는 6~7%까지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도 만약 국산 드라마와 붙여 놓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자막으로 된 외화를 선호하는 사람은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전 시청자의 절반 이하입니다. 많이 배운 여러분이 쉽게 계산에 넣지 못하는, '나이도 많고 교육수준도 낮은' 시청자들에겐 자막이 전혀 인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건 우리나라 쪽입니다. 다른 나라는 잘 사는 나라건 못 사는 나라건, 대개 극장에서도 더빙 상영판을 메인으로 간주합니다. 아예 원어 상영(자막판)을 하지 않는 나라도 꽤 많죠. 이건 바로 가장 기본적인 자국어 우선 정책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우리도 '더빙'을 무턱대고 구시대의 유물 취급하는 태도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극장에서야 지금처럼 자막 상영의 기본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겠지만, TV에서는 더빙이 좀 더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나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영화까지 굳이 지막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어린이들이 일본어로 만화 주제가를 따라 부르는 걸 보고 "조기 외국어 교육이 효과가 있네" 하면서 좋아할 수 없는 건 저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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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진은 위에서부터 배한성, 양지운, 장유진, 얼마 전 돌아가신 장정진, 그리고 탤런트로 더 유명한 김영옥씨와 그분들이 연기한 대표적인 역할입니다. 어려서 쇠돌이의 목소리를 내는 분이 중년 아줌마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기도 했더랬습니다.

요즘은 어떤 분들이 스타 성우인지 저도 잘 모르겠군요. 이누야샤 목소리를 내던 강수진씨 정도나 알겠네요. 그래서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X-파일'의 경우 유독 더빙에 대한 선호가 높은 것 같더군요. 멀더군의 실제 목소리에 실망했다는 분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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