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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를 봤습니다.

 

2017 연말은 '강철비'-'신과 함께' - '1987'이 잇달아 개봉하는 대목입니다. 겨울방학의 시작이고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이 가장 영화를 많이 보는 시즌인데다 크리스마스와 1월1일이 모두 연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대작들이 1주일 간격으로 개봉하는 것은 좀 이례적인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방학도 긴데 이렇게 꼭꼭 붙어 개봉을 해야 하는지 약간 의문입니다.

 

그 세 작품 중 가장 먼저 '신과 함께'를 보았습니다.

 

일단 만족도는 최상. 오랜만에 훌륭한 순수 오락영화를 봤습니다.

 

흔히 오락성=상업성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떤 작품이 상업적이냐 아니냐의 기준에는 오락성 외에도 여러 조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굳이 '순수 오락 영화'라고 한 것은 정치적인 상황, 개봉 당시의 사회적 이슈 같은 외적 요인을 최대한 배제하고 영화 안에 내재하는 고유의 오락성이라는 요소에 주목할 때 매우 탄탄하고 충실한,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의미입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 만들어진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 좀 지나칠 정도로 내수 전용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신과 함께'는 꽤 특이한 영화입니다. '광해', '변호인', '국제시장' '명량' 등 역대 천만 영화들, 그리고 기획 순간 바로 천만을 바라봤던 '군함도', 'VIP'같은 2017년의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한국 역사의 질곡이나 독특한 정치 상황에 주목한 작품들이 상당히 많았던 점을 생각하면 제가 얘기하는 '내수 전용'이라는 말의 의미는 쉽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굳이 말하자면 '신과 함께'는 이런 영화들에 비해 매우 보편성을 띤 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12금이라는 점도 '한국형 블록버스터'들과는 좀 다르죠.

 

아무튼 들어가는 말이 길었습니다. 그럼 줄거리.

 

(이 정도면 '출발 비디오 여행' 수준에 비쳐 볼 때 거의 스포일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스포일러가 있다고 느끼신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튼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소방관 자홍(차태현)은 위험한 화재현장에서 소녀를 구해 함께 추락합니다. 일순 소녀를 구해냈다는 안도감을 느끼지만, 자신을 데리러 온 차사 해원맥(주지훈)과 덕춘(김향기)을 보고 자신이 죽었음을 깨닫습니다. 어머니를 만나기 전엔 죽을 수 없다는 항변에도 불구하고 자홍(의 혼)은 저승으로 날아가고, 자홍은 거기서 차사들의 우두머리 강림(하정우)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망자들은 49일 동안 일곱 차례의 재판을 통해 이승에서 저지른 죄를 평가받게 되며, 그 결과에 따라 환생할 것인지 지옥에서 세월을 보낼 것인지 결정된다는 설명을 듣습니다. 

 

(네. 천당행...은 여기선 선택지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한 의인으로서의 죽음 덕분에 자홍은 귀인(貴人)으로 대접받지만 그래도 모든 인간은 살면서 생각지도 못한 죄를 짓고 사는 법이죠. 통과하는 재판마다 자홍은 조금씩 위기에 빠집니다. 그리고 차사들은 차사들대로, 천년 동안 49인의 망자를 각각 49일 안에 환생시키면 그들도 환생을 맞을 수 있다는 저승의 법에 따라 안간힘을 씁니다. 강림-해원맥-덕춘 조는 자홍에 앞서 47인의 의인을 환생시킨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홍이 통과하면 딱 한명 남게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자홍과 세 차사의 앞에는 지옥귀들이 나타나 재판길을 방해하고, 이것이 이승에서 망자의 직계 가족이 원귀로 변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강림은 이승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자홍의 동생 수홍(김동욱)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을 당해 원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죠. 제대를 앞둔 육군 병장이었던 수홍의 원귀는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관심병사 동연(도경수)의 주변을 맴돌고... 그 과정에서 자홍이 이미 15년 전 집을 나가 단 한번도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집니다.

 

대체 효성과 우애가 유난히 깊은 의인 김자홍이 어머니와 동생을 15년간 외면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이 영화의 뒤쪽 절반을 차지하는 미스테리이고, 강력한 반전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꼭 휴지나 손수건을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특히 여자분들은 눈화장이 녹아 민망해질 수 있습니다.

 

 

 

 

앞부분, 자홍이 죽은 이유와 일곱 대왕이 지배하는 일곱 지옥의 설정, 자홍과 세 차사들의 캐릭터가 설명되는 부분은 흠 없이 매끄럽게 흘러갑니다. 사실 '신과함께'의 초기 홍보 과정에서 가장 많이 부각된 부분은 '상상을 초월하는 CG 효과로 저승의 거대한 비주얼이 표현될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CG는 명불허전, 대단합니다. 자홍과 세 차사가 가는 저승길의 비주얼은 한국 영화에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규모의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다가 아니죠. '신과 함께' 제작진은 자칫 이런 작품의 제작진이 빠질 수 있는, '자, 이게 우리가 제공한 스펙터클이야. 어때, 멋지지?'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서 김용화 감독은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화려한 저승의 그래픽을 밑에 깔고 그 위에 메인 요리로 인물들의 디테일과 사랑받을만한 사연이 허술하지 않게 들어 찼다는 점이 '신과 함께'의 첫번째 강점입니다. 당연히 사건을 풀어 가는 메인 주인공은 하정우의 강림 역(원작의 강림도령과 변호사 진기한을 합친 캐릭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단순무식과격한 무적의 전사 해원맥이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해원맥은 차사들의 우두머리 강림도 위급할 때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강력한 전사입니다. 단 머리 쓰지 않는 일일 때만. ^^ 

 

 

 

 

그래서 해원맥은 사뭇 진지한 강림과 영화 내내 걱정이 태산인 자홍 때문에 자칫 무거워질수도 있는 영화에 웃음과 힘을 제공합니다. 아, 한국인이 좋아하는 배우 차태현의 위력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정우-차태현-주지훈-김향기 라인은 이들 외에 어떤 배우를 끼워넣어도 이 이상의 효과를 내기 힘들 정도로 탄탄합니다. 여기에 딱 세 장면 등장하지만 주인공으로 착각할 정도로 존재감이 뚜렷한 이정재가 있고, 영화 시작 30분 이내에 장광 김해숙 오달수 임원희 유준상(응? 어디?) 가 쏟아져 나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물반 고기받으로 쏟아진다는 점에서 진정한 블록버스터의 향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흠을 잡자면 초반엔 자홍의 재판이 너무 안이하게 쉽게 풀려나간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지옥귀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영화 '신과 함께'는 장르가 바뀝니다. 수홍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와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뜻밖의 이야기들이 관객을 서서히 클라이막스로 이끌어 갑니다.

 

마지막, 올해 한국 영화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한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듭니다.

 

이 '한방'에 대해 꽤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너무 신파다'라는 일부 평자들의 주장입니다만, 부모 자식간의 정에 대한 이야기로 관객의 심금을 건드리는 것은 어떤 영화든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고,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관객의 몫입니다. 이 영화에는 가족사에 관련된 강력한 최루성 코드가 있고, 저는 그 부분이 '신과 함께'라는 영화의 훌륭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네. 이 영화의 후반 30분은 관객 모두가 '우리도 알고 보면 모두 죄인임' 을 인정하게 만들어 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물론 '신과 함께'가 완전무결한 영화는 아닙니다. 주인공 중 하나인 자홍의 초반 감정은 관객들이 따라가기에 다소 아슬아슬한 부분도 있고(이 역할을 연기한 것이 '한국인이 사랑하는 배우' 차태현이 아니었다면 좀 심각한 위협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전자 제품에 대한 집착은 좀 지나쳐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후반부가 자아내는 거대한 공감의 크기는 그런 사소한 흠결들은 충분히 덮고 갈 수 있는 힘들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영화 본편이 끝났다 싶으면, 역대 한국 영화 사상 최강의 쿠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심 빵 터집니다.)

 

 

 

무시무시한 싱크로...^^

 

 

 

P.S. 도경수가 연기한 캐릭터 이름 '원동연'은 이 영화의 제작사인 리얼라이즈 픽처스 원동연 대표의 이름에서 따 온 것입니다. 따라서 촬영장 분위기 충분히 상상이 갑니다. "동연아 임마! 야 이 자식아!"....

 

 

 

아무튼 도경수의 연기력은 아이돌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 한 사람의 배우로서 훌륭합니다.

 

 

 

P.S.2. 그래도 개인적으로 이 영화 때문에 가장 크게 득 볼 배우는 주지훈김동욱이라고 생각.

 

P.S.3. 이 영화가 갖는 감동의 핵심은 관객의 죄책감을 공략한다는 데 있습니다. 특정한 장면이 평소 관객들이 갖고 있던 죄책감의 단초를 확 폭발시키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이 부분에서 김용화 감독은 매우 탁월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주위에 잘 하셨던 분들은 그런 느낌이 덜 할 수도 있지만, 대다수 관객들은 이 대목에서 왈칵 밀려드는 감정을 느낄 거라는 생각. ^^ 여러분은 어떤지 한번 시험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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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완성되기 전부터 '뭔가 괴물같은 영화가 하나 나올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나홍진이라는 신인 감독은 '어쩌면 천재일 지도 모른다'는 소문의 주인공이었고, 두 명의 주연 배우 역시 역량이 입증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김윤석은 '타짜'를 통해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과 같은 선에 설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고, 하정우 역시 뭔가 터뜨리고 말 재목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죠. 그래서 정작 영화의 세부 사항(잔혹한 스릴러라는 것 외에는)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대가 꽤 영글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원래 큰 법. 하지만 진짜 물건은 그런 큰 기대를 넘는 파도를 만듭니다. 저 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에게 2008년 최고의 영화로 기억될 '추격자'는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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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마사지 업주로 변신한 전직 형사 엄중호(김윤석)는 잇달아 일어나는 휘하 마사지사들의 실종으로 골머리를 앓습니다. 그는 어느날 애 딸린 미진(서영희)을 억지로 한 손님에게 내보낸 뒤에 문제의 휴대폰 번호가 수상하다는 걸 깨닫죠. 하지만 미진은 연쇄살인마 지영민(하정우)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맙니다.

'추격자'는 잘 알려진대로 출장마사지사 등 유흥업계 종사 여성들을 주로 살해했던 유영철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누가 살인마인지를 추격하는 두뇌 게임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닙니다. 범인의 정체는 시작하고 20분 이내에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죠. 하지만 게임은 거기서 시작되고, 나홍진 감독은 두 시간 내내 관객의 가슴을 벌렁벌렁하게 만듭니다.

혹자는 이 영화를 가리켜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연출 데뷔작'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장편 영화를 처음 연출하는 감독의 작품으로서 이보다 훌륭한 영화는 없었다는 뜻이죠.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이 영화는 그런 칭찬을 받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이미 엄청난 찬사를 받고 있는 영화인 만큼, 칭찬은 간략하게 보태고자 합니다. 영화 진행상 중요한 대부분의 장면들이 밤의 골목길이나 실내의 침침한 화면인데도 불구하고 감독이 의도한 것, 즉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장면들은 너무도 선명하게 콕콕 찌르듯 전달됩니다. 이건 감독이 화면 어디를 어둡게, 어디를 밝게 해야 할지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는 뜻이죠.

화면의 물림 또한 거의 완벽합니다. 갑자기 밝아졌다 어두워진다거나, 중견 감독들의 작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화면 톤의 갑작스런 변화도 이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미 편집 단계에서 감독이 자기가 원하는 장면을 모두 갖고 있지 않고선 확보하기 힘든 완성도입니다.

(물론 현장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이런 완성도는 감독이 천재라서가 아니라, 엄청난 강도의 재촬영 -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죽을 때까지 다시 찍을 수 있는 끈기와 스태프를 설득해내는 리더십의 증거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어느 쪽일까요?^^)



김윤석과 하정우라는 배우들 또한 아무리 칭찬해도 넘치지 않을 겁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하정우는 상대적으로 인물의 설정이 쉬운 사이코패스 역할을 맡은 데 비해 김윤석은 다소 복잡한 엄중호라는 인물을 너무도 완벽하게 관객에게 납득시킨 공로가 있어 더욱 칭찬받을 만 합니다.

엄중호는 지나치게 악하지도, 또 지나치게 선하지도 않은 인물입니다. 그저 어떻게든 먹고 살아 보려는 인물이고 초반에는 어쨌든 자기가 본 손해를 만회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지만, 영화 후반이 되면 정의의 사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병원에 누워 있는 미진의 딸을 위해 어떻게든 미진을 찾아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실천으로 옮길 양심은 갖고 있는 사람이죠.

미진을 찾아 다니는 과정에서도 어린 아이를 앞에 두고 "미친년, 차라리 사우디라고 하지"라는 식으로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해 대는 사람이지만 최소한 뼈속까지 썩은 사람은 아닙니다. 이런 '보통이거나 보통만 못한 사람'이 결국은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부분에서의 메시지는 황정민이 연기한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관객이 느끼는 설득력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아무튼 미진의 어린 딸을 이용한 엄중호의 동기 부여는 어찌 보면 전형적인 수법이지만 매우 효과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의 흔들림과 엄중호의 변화는 김윤석의 놀라운 연기력으로 관객에게 자기 일처럼 전달되죠.




그런데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해묵은 궁금증 하나가 떠오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경찰 부분에 대한 놀라운 디테일에 대해 "정말 리얼하다"며 감탄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사람들 중 실제로 이 영화가 '리얼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진짜 경찰 관계자이거나, 경찰 가족이거나, 하다못해 경찰서 출입기자이거나 경찰서를 수시로 드나드는 범법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은 대체 어떻게 이 영화가 '리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런 의문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역시 많은 사람들로부터 "소름끼치도록 리얼하다"는 찬사를 받아냈던 오마하 비치 상륙 장면에서부터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기관총에 맞아 병사들의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장면을 실제로 본 사람은 관객들 중 0.001%도 안 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영화가 구현해내는 전쟁을 '리얼하다'고 느낍니다.

실제 있었던 전쟁이고, 그 참상을 전해듣거나 다큐멘터리로 봤기 때문일까요. 가끔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도 '리얼하다'고 느끼곤 합니다.





예를 들면 제임스 카메론의 '에일리언 2'에 나오는 우주해병대와 에일리언의 격전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리얼하다'고 중얼거리곤 합니다. 생각해보면 자신들이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을 수 있을텐데 말이죠.

정리해서 말하자면, 많은 경우 관객들이 리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짜 리얼리티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건 연출자와 배우들의 교묘한 사기일 뿐이죠. 즉 '그럴 듯 한 것'과 '실제로 그런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다수 관객들은 영화 '세븐 데이즈'에서 김윤진이 펼치는 엉성한 법정 변론 장면에 대해서도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추격자'에서도 관객들이 이 영화에 나오는 경찰들의 모습에서 리얼함을 느끼는 것은 '왠지 그럴 것 같기' 때문이지,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많은 관객들이 알기 때문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추격자'의 대본과 설정은 매우 성공적이란 얘기가 되겠죠.





아무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추격자'는 순식간에 끝나 버립니다. 러닝 타임은 두시간이 넘지만 너무도 짧게 느껴지게 말이죠. 수많은 장르 가운데서도 특히 스릴러의 수준이 낮았던 대한민국에서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건 정말 기적으로 여길만 합니다.



p.s. 두번이나 시도한 끝에 영화를 봤습니다. 스타라고는 없는데다 개봉 직전까지 인지도도 극히 낮았던 이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는 건 더욱 더 놀라운 일입니다. 평단과 언론의 집중적인 호평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특히 기본적인 사건의 인과관계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영화들의 홍수 속에서 '말이 되는' 영화의 흥행이라 더욱 반갑습니다. 이 영화의 성공이 대본 단계에서의 완성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군요.




p.s.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혹시 잔혹한 장면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분은 좀 주의하시는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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