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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2.27 '십상시'와 '지록위마'의 공통점

올해 쓴 글들을 방출합니다. 물론 이미 '매거진 M'을 통해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십상시의 여파가 남은 동안 매년 연말 등장하는 교수협회의 고사성어에 '지록위마'가 등장했습니다. 퀴즈 프로그램에서 '십상시와 지록위마의 공통점은?'이라는 문제가 나오면 당연히 0.2초 내로 답이 나옵니다. '환관'이죠.

 

어째서 우리는 2014년에 환관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거기에 대한 글입니다. '십상시 사건'이 터졌을 때 쓴 글이고 중간에 조고와 지록위마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지록위마'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더군요.

(마지막에 2001~2014 교수신문의 연말 사자성어들이 궁금해서 정리해 봤습니다. 거의 '동의어 찾기' 수준.)

 

 

 

 

 

십상시

 

[명사] 十常侍. 중국 한나라 영제 때 권세를 장악했던 장양 등 열 명의 환관을 통칭해 부르던 말.

 

500여년간 동양 남성의 필독서였던 소설 삼국지연의천하의 대세란 본래 갈라지면 하나로 합쳐지고, 합쳐지면 또 갈라지는 것(天下大勢, 分久必合,合久必分)이란 명문장으로 시작한다. 광무제에 의해 시작된 후한(後漢)의 정세가 어떻게 어지러워지면서 위, , 촉 삼국의 뿌리가 태동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 '삼국지연의'의 시발점이 되는 서기 168, 13세의 나이로 즉위한 영제(靈帝)는 평생을 환관들의 영향 속에 살았다. 몇몇 신하들이 도전했으나 영제는 매번 결정적인 시기에 환관들의 손을 들어줬다. 선대 환제(桓帝) 때 부터 황제를 모신 열 명의 내시들은 한 몸처럼 움직이며 정권을 농단했다. ‘삼국지연의는 이들의 이름을 장양、조충、봉서、단규、조절、후람、건석、정광、하휘、곽승이라 기록하고 있다. 정사인 후한서도 장양, 조충 등을 거론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그 수가 12명이다.

 

이들의 폐해로 정치가 어지러워졌고, 184년 황건적의 난으로 후한의 통치 체제가 사실상 붕괴됐지만 영제는 주색에만 탐닉하다 189, 34세로 숨을 거뒀다. 16세인 영제의 장남 유변(劉辯)이 뒤를 이었으나 5개월 만에 십상시의 난을 겪으며 동탁에 의해 쫓겨나 소제(少帝)라 불렸다.

 

명색이 십상시의 이라고는 하나 실상은 십상시가 대장군 하진을 죽이자 하진의 부하들이 십상시와 그 일족들을 몰살시킨 사건이다. 정권 탈취 음모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라는 이름은 다소 억울할 수 있다. 환관들의 권력이 철저하게 황제의 총애에 기반한 것이고 보면, 환관들이 황제를 해치는 것은 자살행위인 셈이었다. 하지만 해바라기 권력의 속성상 이들은 군왕의 심기에만 온 정성을 기울였으므로, 대개 국정은 극도로 어지러워졌다.

 

십상시 외에도 중국 역사에는 악명 높은 환관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지록위마의 고사를 남긴 진시황 때의 조고를 비롯해 촉한의 황호, 당 현종 때의 고역사, 당 희종 때의 전영자 등 부지기수다. 명 태조 주원장은 그 폐해를 막기 위해 환관의 수를 100명으로 제한하고, 정치 참여를 사형으로 다스리는 등 엄한 관리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죽고 고작 37년 뒤인 1435, 5대 영종 때 다시 환관 왕진이 권력을 잡았다.

 

 

 

 

반면 한국사에서는 시대를 전횡한 내시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치 사대부들의 견제가 엄격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25(1494)에는 임금이 몇몇 환관들과 의관들에게 가자(加資, 관료들의 품계를 올려 주는 것)를 내리자 조정 백관들이 크게 반발한 기록이 있다. 특히 대사간 윤민은 한나라 원제가 석현 한 사람을 등용했을 때 뒷날 오후(아래에 자세히 설명)나 십상시의 권세를 예견했겠느냐228일부터 312일까지 11회나 상소를 올리며 가자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성종 또한 결국 조치를 취소하지 않았으나 이후로는 훨씬 신중해졌다.

 

이렇게 치열한 견제 때문에 오히려 조선의 내시들 가운데서는 상당한 수준의 학문과 교양을 갖춘 이들이 나타났다. 중국에서는 환관들이 학식을 갖추면 정치에 관여한다 하여 공부를 하지 못하게 했지만, 반대로 조선에서는 내시들이 업무 수행에 걸맞는 교양을 쌓는 것을 의무로 삼았기 때문이다. 박상진의 연구서 내시와 궁녀, 비밀을 묻다에 따르면 조선 시대엔 내시부에 환관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3명의 내시고관을 상주시키고 어린 내시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 결과 순조 때 시문집 노곡만영을 남긴 이윤묵 같은 문인이 배출되기도 했다.

 

중국 내시가 조선 내시에 비해 강한 권력을 가진 이유를 황제의 권력과 조선 국왕의 권력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조선은 일찍이 사대부의 나라로 자리잡았고, 어떤 군왕도 중국 황제처럼 전제 정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런 황제들이 권력의 일부를 양도할 수 있던 두 축은 종실(또는 외척)과 환관이었다.

 

환관 권력의 대명사인 십상시는 본래 영제의 전임자 환제의 시대에서 태동했다. 환제는 외척 세력 타도를 위해 암암리에 환관들을 활용했고, 이 과정에서 공을 세운 다섯 환관를 제후로 삼았다. 이들이 바로 위에서 말한 오후(五侯).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영제는 자연스럽게 환관들을 자신의 진정한 보호자로 여기게 됐지만 불행히도 그런 인의 장막이 최고 통수권자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영제와 십상시의 시대에서 2천년이 흐른 21세기에도 외척환관의 권력 암투가 뉴스가 되고 있다. 권력의 본질이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려주는 교훈담일 수도 있겠다(끝)

 

 

 

 

 

요약하자면 내시 권력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절대 권력자가 생각합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외척? 자기 집안 생각 뿐이고 삼촌? 사촌? 다들 내가 어떻게 되면 이 자리를 탐낼 자들이야. 아예 남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환관들? 저들에겐 가문도 없고, 그저 믿을 건 나 뿐이잖나. 진심으로 나를 위해 주고, 나와 생사를 같이 할 사람은 쟤들밖에 없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윗글에서도 얘기했지만 내시 권력은 오로지 최고 권력자 옆에 있을 때만 의미가 있고, 당연히 최고 권력자의 안위가 내시들에게는 최고의 관심사죠.

 

하지만 그러다 보니, 내시 권력은 '어르신'의 기분과 안전 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어집니다.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흉악하고 불측한 것들'과 '어르신'을 차단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게 되죠. 그러는 사이 국정은 개판이 되고 맙니다.

 

정치는 본래 욕망의 콜로세움입니다. 그 다양한 욕망과 에너지를 어떻게 통제해서 스스로 국가에 이롭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때로 그 욕망에 귀 기울여 자신의 행로를 수정하는 것이 통수권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단지 듣기 좋고, 먹기 좋은 것만을 던져 주는 오래된 측근들, 그들의 인의 장벽에 갇혀 '욕망의 정치판'에 혀를 끌끌 차는 것은 정치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내시 권력'의 핵심이고, 세간에서 말하는 '십상시'와 '지록위마'의 현실인 것입니다.

 

 

 

 

아울러 2001년부터 교수신문의 한해 정리 사자성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01 오리무중 五里霧中  설명이 필요 없는.
02 이합집산 離合集散  역시 설명이 필요 없는 국론 분열
03 우왕좌왕 右往左往  설명이 필요 없는.
04 당동벌이 黨同伐異  같은 편끼리 떼지어 상대방을 치는 국론분열에 대한 개탄
05 상하화택上火下澤   위는 불이요, 아래는 못. 다급한 상황

06 밀운불우 密雲不雨  구름은 끼었으되 비는 내리지 않는 답답한 상황
07 자기기인 自欺欺人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다. 자기도 믿지 않는 말로 누구를 속이려느냐는 개탄

08 호질기의 護疾忌醫  의사를 믿지 못해 병을 더 키움. 누가 자기 편인지도 모르고 충고를 무시하는 세태에 대한 개탄
09 방기곡경 旁岐曲逕  곧은 길이 아닌 구부러진 골목길. 한마디로 '정도를 가라'는 뜻.
10 장두노미 藏頭露尾  머리는 감췄는데 꼬리는 뻔히 보임.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11 엄이도종 掩耳盜鐘  자기 귀만 막고 종을 훔치다. 역시 눈 가리고 아웅.
12 거세개탁 擧世皆濁  온 세상이 다 흐리다. 썩은 세상.
13 도행역시 倒行逆施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행함.

(하지만 '도행역시'의 경우에는 고사를 살펴보면 본래의 맥락은 "어쩔수 없이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이므로 세태를 비판하려는 의도였다면 적절한 사용은 아닙니다. 이건 교수신문의 무리수.)

그리고... 올해의 지록위마 指鹿爲馬. 뭐 속성상 어떤 해라도 좋은 이야기로 마무리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개탄 일변도인 것이 21세기 한국의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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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송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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