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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공고 1학년 1반 25번 서태지'가 방송됐습니다. 일단 느낀 점은 두가지. '(일부러 안 웃기는 건지는 몰라도)여전히 서태지는 웃기는 데에는 재능이 없구나', 그리고 '서태지가 참 친절해졌구나' 하는 겁니다.

물론 골수 팬들에게는 서태지만큼 재미있는 사람이 없고, 서태지만큼 친절한 사람이 없을 지 모르겠습니다. 일반인의 시각에선 그랬다는 얘깁니다. 아무튼 그러면서 더 보태지는 생각은 '이제 서태지도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겁니다.

외모상으로 서태지는 아직도 20대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윗세대, 혹은 동년배들에게 이렇게 젊어 보이는 서태지가 과연 그보다 훨씬 어린 10대-20대 팬들에게도 그렇게 젊어 보일까요. 그건 굉장히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싱글 '모아이' 발매 이후 그런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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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서태지도 늙는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는 배트맨의 활약을 로마시대의 케사르와 비교하는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영웅일 때 죽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악당으로 변해 있는 걸 볼 때까지 오래 살 것인가."

젊었을 때의 케사르는 로마 공화정의 부패와 경제난을 해소한 구원자였지만 늙어서는 '괴물',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어느 시대든 영웅이 되는 건 쉽지 않지만, 그 영웅이 평생 동안 명성을 유지하는 건 그보다 몇 배나 어려운 일임을 지적한 얘기다.

서태지가 4년여만에 현역에 복귀했다. 팬들은 다시 환호하고 있다. 물론 예전같지는 않지만, 대한민국 대중문화 역사상 가장 충실한 팬들답게 화려한 팡파레를 울려 주고 있다.

서태지는 일반적인 대중 스타와는 다르다. 그는 언제나 왕이었고, 대통령이었고, 교주였다. 16년 동안 그의 말과 행동은 일개 연예인의 말을 뛰어넘는 힘과 위엄을 지녔고, 그를 비판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와 맞서는 것은 '부패한' 기존 권력의 하수인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공감대가 젊은 층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렀고, 예견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서태지는 더 이상 젊음과 반항의 상징이 아니었다. 청소년기에 서태지를 접한 세대는 이미 30대가 됐고, 그보다는 H.O.T나 god가 친숙한 세대는 오랜만에 돌아온 '중년의 한때 잘 나가던 록 뮤지션'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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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눈에는  U.F.O 이벤트보다 인터넷을 휩쓰는 '빠삐놈' UCC가 훨씬 그럴싸하다. 이들에겐 한때 젊은이들을 대변했다던 서태지가 중산층을 겨냥한 중형차 모델이 되어 있는 '변절'도 불쾌한 일일 뿐더러, '딸랑 네 곡'이 들어 있는 싱글을 만원이 넘는 가격에 파는 것도 못마땅하다. 10년 전, 아니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반응이다.

물론 서태지야 억울할 수밖에 없다. 애당초 서태지는 사회 변혁을 부르짖지도 않았다. 빌딩과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갖고 있는 갑부라는 사실 역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싱글이든 앨범이든, 만원이든 10만원이든 사는 사람이 있는 한 사지도 않을 사람이 볼멘 소리를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싱글 만원이 웬말?'이라는 바보같은 이야기에 대한 내용은 이쪽)



이번 음반에서는 서태지의 고민이 읽힌다. 일반적으로 뮤지션은 팬들과 함께 늙어간다. 더 이상 신곡이 인기 차트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10대들이 공연장에서 기절하지 않아도 충실한 팬들은 계속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서태지는 그걸로 만족하기엔 아직 너무 젊다. 아직 '새로운 친구들'을 받아들이고 싶은 욕구도 뜨겁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그는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 지금은 그렇다 쳐도 10년 뒤, 20년 뒤의 서태지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인가. 앞으로의 한발 한발에 더욱 눈길이 간다. 역시 영웅으로 늙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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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팬들에게는 대단히 불편한 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서태지에게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이유로 반감을 갖고 있는 젊은 층의 목소리를 들어 본 분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다크나이트'에 나오는 굵은 부분의 원문은 "You either die a hero or live long enough to see yourself become the villain" 입니다. '영웅으로 일찍 죽든가, 오래 오래 살아 자신이 악당이 되어 있는 걸 보든가'라는 말은 다양한 함의를 갖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수많은 '젊은 날의 영웅'들이 나이들어 젊은이들에게 비판받는 악당으로 변해왔습니다. 케사르는 말할 것도 없고,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자 베토벤이 3번 교향곡의 표지를 찢었다는 얘기도 유명하죠. 한국에서도 멀리는 4.19세대, 가깝게는 386의 영웅들이 어딘가 비뚤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젊었을 때의 이상을 늙어서까지 간직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가 되겠지만, 실제 함의는 그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이상을 말하기는 쉽지만 현실은 알수록 어렵다는 것, 혹은 비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책임을 맡아 보면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스스로는 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변해 버립니다. 1980년대에는 너무나 진보적이었던 생각이 21세기에는 케케묵은 구식 생각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유행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가끔 복고풍이라는 반발도 가능하지만, 한 시대의 첨단 유행일수록 시간이 흐르면 더 빨리 시들어버립니다.

뒤집어 말하면, 영웅으로 오래 오래 기억되려면 일찍 죽어야 한다는 뜻도 될 겁니다. 케네디가 되거나, 짐 모리슨이 되거나, 알렉산더 대왕이 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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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북공고...'가 방송되기 이틀 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그리고 '북공고...'를 보고 나니 서태지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40대가 된 서태지는 그 시기의 10대들에게 무엇일까, 또 50대의 서태지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혹시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면 다른 누구보다 그 자신이 견딜수 없을 테지요.

아무튼 지금까지의 모습만을 간직한다면 서태지는 '그 시절의 사람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 시절의 젊은이들이 듣던 노래를 부른 뮤지션'으로 서서히 잊혀져 갈 겁니다. 그걸 거부하고 거기서 벗어나려면, 서태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음악을 해야겠죠. 그것이 '더욱 더 가장 젊고 발랄한 세대의 취향'을 선도하려는 노력이 될지,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이 될 지는 알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세대를 뛰어 넘어 활약하는 뮤지션들은 나이가 들면 서서히 인생을 노래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사랑과 질투, 소녀와 이별의 아픔(물론 나이들어서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20대 초반에 이해할 수 있는 것과는 매우 다르죠^^)에서 벗어나 세계와 인간을 가사에 담기 시작하죠. 멜로디도 자연히 부드러워집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이번 싱글은 '중년 서태지'를 위한 시작이 아닌가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다른 생각인 분들도 많겠죠?



p.s. 어제 처음 공개된 '모아이' 뮤직비디오입니다. 칠레와 이스터섬에서 촬영됐다는군요. 가요계의 침체 이후 이렇게 공들인 뮤직비디오는 참 오랜만에 보는 터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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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해서: '다크나이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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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크리스천 베일)은 레이첼(메기 질렌할)의 새 연인인 고담 시의 새로운 지방검사 하비 덴트(아론 에커트)가 범죄에 맞설 수 있는 강한 의지와 인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습니다. 배트맨과 덴트, 그리고 고든 반장(게리 올드만)은 조직범죄를 싹쓸이하기 위해 힘을 합칩니다.

한편 고담시에는 유례가 없는 대악당 조커(히스 레저)가 등장, 시민들뿐만 아니라 조직 보스들도 공포에 떨게 합니다. 배트맨과 덴트가 조직들의 자금줄을 죄자 보스들은 마침내 조커에게 배트맨을 제거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배트맨과 조커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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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팀 버튼의 '배트맨'으로 시작된 네 편의 영화는 그나마 음침함을 유지하고 있던 팀 버튼이 손을 떼면서 완전히 동화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런은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이 시리즈에 새로운 숨을 불어 넣었죠. 보다 그럴듯 하고, 보다 성인용인 배트맨의 세계 말입니다.

아무래도 '다크나이트'를 얘기할 때는 조커를 제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히스 레저의 조커는 대단히 유니크한 범죄자입니다. 그는 단순한 범죄자의 차원이 아니라 악마 자체죠. '순수악'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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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영화라면 칙칙한 밤 장면이 많이 나오는게 당연하지만, 조커의 존재는 이 영화를 더욱 어둡고 무겁게 만듭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조커는 수세기에 걸친 악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담은 캐릭터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현자들이 정리한 선과 악에 대한 정의들을 종합하면 결국 선은 '타자와의 공존을 지향하는 의지', 악은 '타자의 생존 가치를 부정하는 이기적인 의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세상에 순수선과 순수악만 존재한다면, 결국 세상은 사라져버리고 말 겁니다. 이론적으로 선이란 악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때로는 전체의 선을 위해서 소수의 악을 제거할 수 있다는 이른바 '필요악'이 등장합니다. 이것 바로 정의라고 불리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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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은 '이 정의라는 필요악이 지나치게 거대해져서 그것이 사람들을 억압하는 존재가 되어 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늘 걱정합니다. 특히 정의가 어떤 특정 이념을 신봉하는 세력에 의해 운영될 때 그렇습니다. 실제로 어떤 가치나 신념도 전제하지 않은 정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악명 높은 인종 청소를 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는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믿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 문명일수록 절차와 합의를 중시하고, 정의의 실현에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나 사사로운 정의의 실현(예를 들면 부모의 복수)은 엄격한 경계의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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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와 배트맨의 대결은 이런 전제를 바닥에 깔고 있습니다. 조커는 순수악의 상징, 배트맨과 하비 덴트는 건전한 정의의 상징입니다. 이 상징이란 사람들의 믿음의 대상이기도 하죠.

영화 속의 세계로 들어가 설명하면 배트맨과 덴트가 있어 고담 시민들은 세계가 안전하고 정의롭게 운영될 수 있다는, 또는 실제로 그렇게 운영되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쪽을 지향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조커는 그런 상징을 파괴하려 끊임없이 시도합니다. 결국 어느 정도는 성공하게 되죠.

'다크 나이트'는 바로 악과 싸우는 정의라는 필요악의 존재, 그리고 이 필요악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냉엄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흔한 블록버스터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죠. 이 과정에서 놀런의 솜씨는 대단합니다.


아울러 월 스트리트 저널이 이 영화의 배트맨을 부시 대통령과 비교한 칼럼을 게재한 것도 전혀 얼토당토 않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영화의 요점을 꿰뚫어 봤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였죠. (그 글의 방향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슨 얘긴지 잘 모르시는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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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연 일반 관객들이 영화의 뒷면까지 속속들이 이해하고, 놀런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생각할까요. 그걸 기대하기는 힘들 겁니다. 이 영화의 흥행 기록을 날로 갱신하고 있는 미국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일테구요. 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영화의 나머지 절반, 즉 순수 블록버스터로서의 '다크 나이트'입니다. 그리고 이쪽 절반 역시 대단히 훌륭합니다.

사실 '다크 나이트'의 액션에는 두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인공 배트맨의 강력한 의상으로 인해 스턴트맨의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죠. 배트맨의 주연 배우가 그렇게 자주 바뀐 건 우연이 아닙니다. 누가 입어도 구별이 안 되는 의상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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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주인공의 특성상 대부분의 액션 신이 밤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죠. 상대적으로 덜 정교해도 됩니다. 사소한 실수가 발견돼도 그냥 CG로 슥슥 검게 지워버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도시 한복판에서 콘테이너 트럭을 직각으로 뒤집어 버리는 차원의 액션은 입이 떡 벌어지게 합니다. 홍콩과 고담(극중에선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한 시원시원한 액션 역시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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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 얘기로 넘어가면 더더욱 할 말이 없어지죠. 크리스천 베일과 히스 레저는 동급 최강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조커는 매우 연기하기 쉬운 역할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저의 연기력은 발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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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의 배우들, 게리 올드만, 모건 프리맨, 마이클 케인, 아론 에커트의 진용은 '오션스 11'이 부럽지 않죠. 이 영화의 배우 남용은 엄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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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에선 주역이었던 킬리앙 머피가 스케어크로 역 그대로 카메오 출연합니다. (왼쪽에서 두번째 앉은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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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단 한 신 나오고 마는 은행 경비원 역으로 윌리엄 피트너가 나올 정도라니 말 다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이 메기 질렌할이라는 건 좀... 제작비 절감 차원이라고 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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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축복받은 영화라고 부를 만한 '다크나이트'지만 한국에서의 흥행 성적에 대한 예측은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지난 글에서 얘기했다시피, 이 영화의 배트맨은 너무나도 '한국적인 슈퍼 영웅'과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배트맨의 본질적인 성격과 관련이 깊죠. 배트맨은 '다이 하드'의 브루스 윌리스가 아닙니다.

(배트맨의 답답성 본질(^^)에 대한 내용은:)




배트맨은 악당은 물론이고 자기를 깨무는 개조차도 죽이지 못합니다. 이건 그의 원칙에 따른 것인데(물론 '다크나이트'에는 배트맨 외에도, 기회가 왔을 때 조커를 죽이지 못하는 캐릭터가 또 있습니다), 이런 그의 원칙에 따른 행동거지가 과연 한국 관객들의 구미에 맞을지, 그건 확인해 보기 전엔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벌써 '속터져서 못 보겠더라'는 관객이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남 얘기가 아닙니다. 보면서 마음속으론 조커를 열두번도 더 죽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실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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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히스 레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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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영화 리뷰는

http://isblog.joins.com/fivecard/category/영상을%20훑다가/영화를%20보다가

(자동이동이 안되는군요. 긁어다 주소창에 붙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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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개봉을 앞두고, 조커역을 맡은 히스 레저의 연기력에 대한 경탄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이 영화가 한국 관객들에겐 지나치게 답답한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깁니다.

이번 글은 그 '답답함'이 바로 배트맨의 본질적인 요소라는 데 대한 얘깁니다. 영화 리뷰는 아직 아닙니다.




악과 싸우는 고뇌를 너희가 아느냐
고지식한 미국식 영웅 배트맨의 귀환
송원섭 기자 | 제73호 | 20080802 입력  
 
배트맨, 1939년생, DC 코믹스의 간판 스타, 일명 다크 나이트(Dark Knight).

70 평생을 사는 동안 수많은 만화가에 의해 수십 차례 다시 태어난 수퍼 스타지만 설정의 주요 부분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본명은 브루스 웨인. 성경에 나오는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의 이름을 합한 고담 시티(사실은 뉴욕) 최고의 재벌 후계자이며 미남 독신자.

당연히 바람둥이지만 이런 행각에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다. 수없이 많은 미국 만화 속 수퍼 히어로 중에서 배트맨처럼 초자연적인 능력이 없는 영웅은 아이언맨 정도밖에 없다. 그의 무기는 두뇌와 체력(무술), 그리고 웨인 그룹의 막대한 재산이 투입된 첨단 과학 장비다. 무장과 의상에서부터 자동차·모터사이클, 심지어 비행기까지 동원한다. 당연히 장난감 회사가 가장 사랑하는 수퍼 영웅은 배트맨이다.

물론 그를 규정하는 특징을 꼽을 때 내면의 어둠을 빼놓을 수 없다. 배트맨은 어린 시절 부모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고, 그로 인해 복수의 화신이 됐다. 그의 정의 실현은 아무래도 복수의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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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그는 어둡기보단 냉정함이 돋보이는 캐릭터였다. 66년부터 방송됐을 때의 의상이 밝은 보라색이었던 반면 89년 팀 버튼의 극장판 ‘배트맨’ 이후에는 완전히 밤에 녹아 드는 검은색 의상이 자리를 굳혔다. 의상 색깔이 어두워진 배트맨의 성격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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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낮과 밤이 다른 정체성이다. 고담시의 시민으로서 법 질서를 무시한 자신의 정의 구현이 과연 어디까지 정당한 것인지 고민한다. 그의 역할은 범인을 잡아 사법기관에 넘기는 것. 손에 피를 묻히는 일도 거의 없다.

사실 이런 영웅답지 않은 성격으로 인해 한국과 미국 시장에서 그에 대한 선호도에는 꽤 큰 차이가 난다. 국민 기질과 사회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자기 편을 제지하며 “악당이라도 함부로 죽이면 안 돼!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지!”라고 외치는 순간 한국 관객들은 한숨을 쉬며 시계를 본다.

뒷일이야 어쨌든 ‘테이큰’이나 ‘아이언맨’처럼 화끈하게 자기 손으로 모든 걸 처리해 버리는 주인공이 한국인의 정서엔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를 상식으로 안고 사는 한국인들에게 ‘수퍼 영웅이라도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배트맨의 고지식함은 답답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런 면에서 7일 개봉하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두 번째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의 한국 흥행 성적에 관심이 쏠린다. 배트맨 최고의 적수인 조커(히스 레저 분)는 이 영화에서 인간의 내면과 타락을 조종하는 절대악을 상징한다. 조커를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조커는 끊임없이 정의의 수호자들에게 “너희도 나도 똑같다”며 마음을 흔든다.

당연히 배트맨도 '내가?'하는 고민에 빠진다. 이러니 미국에서 ‘다크 나이트’는 역대 단기 흥행 기록을 모두 허물며 약진 중이지만, 한국 관객들은 조커를 보자마자 기관총으로 벌집을 만들어 버리지 않는 배트맨을 보고 더욱 울화가 치밀 수도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이 영화 속의 배트맨이 부시 대통령과 닮았다는 한 우익 작가의 칼럼을 실어 눈길을 끌었다. 룰을 지키지 않는 테러집단과 맞서 싸우기 위해선 어느 정도 인권의 제한이 불가피하지만 그걸 무시하는 진보 진영(원문은 ‘좌경 세력’)은 ‘자유의 투사’들을 범죄자로 몰고 있으며, 따라서 현재 부시가 욕을 먹는 것은 정의로운 배트맨이 오해와 모함에 시달리는 것과 같다는 주장이다. 어쩐지 많이 듣던 얘기라 더욱 흥미롭다.

이번 배트맨은 ‘배트맨 비긴스’에 이어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다. TV 시리즈 때의 애덤 웨스트에서 시작해 마이클 키튼, 발 킬머, 조지 클루니로 이어지는 박쥐 가면의 주인이다. 외모와 연기력에서 가장 이상적인 배트맨이란 극찬을 받았지만 이번 작품의 개봉 시기와 맞물려 어머니와 누나를 구타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스타의 두 얼굴과 배트맨의 두 얼굴이 절묘하게 교차된 셈이라고나 할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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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과 부시의 관계에 대한 글은 저 아래 링크되어 있습니다.)

사실 누가 만든 배트맨이든, 배트맨은 너무 생각을 많이 하고, 행동은 상대적으로 덜 합니다. 행동을 한다 해도 슈퍼맨처럼 미사일을 받아 던지거나 하는 일은 불가능하니 성에 차지 않을 가능성이 높죠.

저는 이런 생각은 한국 관객들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발견한 미국 유머 사이트에 나온 다음 유머를 보니, 그런 생각은 미국에서도 보편적인 인식인가보더군요. 제목은 '슈퍼맨과 배트맨이 한 영화에 같이 나오지 않는 이유(Why The Superman/Batman Movie Will Never Happen)입니다.

원문 주소는
http://www.collegehumor.com/article:1757347. 대충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시나리오 형식입니다.



고담시 경찰서. 배트맨이 짐 고든 경찰청장과 경찰관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배트맨: 낭비할 시간이 없어. 투페이스(배트맨 만화 시리즈의 단골 악당)가 은행에 인질을 잡고 있어. 그리고 우리는...

슈퍼맨, 요란한 소리와 함께 등장.

슈퍼맨: 헤이, 브루스-맨, 늦어서 미안해. 상황이 어떻지?
배트맨: 글쎄, 내가 보낸 상황 요약 메모에 적힌 바와 같이...
슈퍼맨: 오, 걱정마. 대강 봤으니까. 그놈 이름이 더블페이스였던가? 그놈의 무기가 뭐랬지?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던가? 아니면 엄청 빨라?
배트맨: 아냐. 음. 그놈은 사실 '2'라는 숫자에 굉장히 민감하지.
슈퍼맨: 하하! 장난하지 말고. 뭘 할줄 알지? 심리 조종?
배트맨: 글쎄, 피부 트러블이 좀 심하지.
슈퍼맨: 나랑 농담하자는거야! 1초만 기다려.

슈퍼맨, 벽을 뚫고 사라지다.

배트맨: 사실 그 피부의 문제라는 것은 즉 그의 이중성에 대한 은유로서...

슈퍼맨, 수갑을 채운 투페이스를 데리고 재등장.

슈퍼맨: 끝났어.
투페이스: 뭐야, 이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슈퍼맨: 그냥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범죄를 예방한 것 뿐이야. 그게 전부야.
배트맨: 하지만... 그 사명이란 것도 있고... 우리 부모님은...(우물쭈물)
슈퍼맨: 친구, 걱정은 좀 그만 해. 자네는 좀 더 밝게 살 필요가 있어.

배트맨의 의상 사이로 눈물 한 방울이 비친다.

슈퍼맨: 어쨌든 난 지금 갈건데 누구 혹시 태워줬으면 하는 사람 있나?

경찰관 한명이 손을 든다.

슈퍼맨: 이봐, 내가 '누구 혹시'라고 말하면 그건 방에 있는 여자들 중에서 누구란 뜻이야. 없어? 그럼 댁들 손해지 뭐. 나중에 보자고!

슈퍼맨, 다른 쪽 벽을 뚫고 사라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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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습니다. 만화에서는 수시로 같이 등장하는 슈퍼맨과 배트맨이 영화에서 함께 나온다면 저런 식으로 배트맨이 바보되기 십상일 거란(?) 날카로운 지적이군요. 물론 웃자는 얘깁니다.

아무튼 '다크 나이트'를 보면 한국 관객들은 대단히 울화가 치미는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건 배트맨의 본질에 기인한 것이지, 결코 영화를 잘 못 만들어서 그런 건 아니라는 변명 한마디. 영화 자체는 대단히 훌륭합니다.

'다크 나이트' 리뷰는 다음번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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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과 부시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시려면:



'다크 나이트'를 보시고 이 글을 읽어보시면 아주 황당무계한 얘기는 아니더군요.^




아무튼 이 글을 추천하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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