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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집을 소개할까 말까 좀 고민을 했다.

 

우리가 이 집을 간 건 맛집 소개를 받아서가 아니라, 단지 숙소에서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다.

 

바깥 여정에서 일찍 돌아온 날, 시내로 나가기 위해 민박집 주인장에서 시내에 가볼만한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동네 식당 한번 가 보는게 어때요? 우리도 가끔 가는데, 시내 식당보다 나아요" 라며 이 집을 찍어 주셨다.

 

그래서 가 본 곳이 라 펠라 La Perla.

 

 

 

풀네임은 La Perla Groupo Reloj.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구글에 있다.^^

 

https://maps.google.co.kr/maps?ie=UTF-8&q=la+perla+barcelona&fb=1&gl=kr&hq=la+perla&hnear=0x12a49816718e30e5:0x44b0fb3d4f47660a,%EC%8A%A4%ED%8E%98%EC%9D%B8+%EB%B0%94%EB%A5%B4%EC%85%80%EB%A1%9C%EB%82%98&ei=HUW2UrPbA8HoiAe_o4GoCg&sqi=2&ved=0CPgBEMgT

 

 

 

 

 

혹시라도 산츠 역에 내려 잠시 식사할 데를 찾는다거나(하긴 산츠 역에서 도보로 딱 10분. 아주 가깝다고 할 수 는 없다^^), 숙소가 아바 호텔, NH 누만시아 호텔, 그리고 그 주변인 사람들을 위해 적어 놓는다.

 

산츠 기차 역 광장으로 나와 누만시아 Carrer de Numancia 라는 큰 길을 따라 왼쪽으로 쭉 직진하면 바로 나온다. 찾기는 절대 어렵지 않다. 아바 호텔 Abba Hotel 만 찾으면 끝.

 

 

 

실내는 이렇게 생겼다. 왼쪽에 굉장히 독일식 발음을 하던 웨이터 아저씨가 보인다.

 

사실 이 식당을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음식, '바르셀로나의 국물'이라고 부를 만한 사르수엘라 Zarsuela 때문이다. 발음은 '사르수엘라'와 '자르주엘라'의 딱 중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르수엘라는 본래 노래와 무용이 결합된 스페인 특유의 가극 형태를 말한다. 그래서 마드리드에서 "어디 사르수엘라 하는 데 없나"하고 묻자 "무슨 오페라 같은 걸 찾는 거냐?"는 답이 나왔다. 접객 업무가 많은 호텔 직원이 이런 반응인 걸 보면 마드리드에선 이 음식이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듯 했다.

 

정식 명칭은 사르수엘라 데 마리스코 Zarzuela de Marisco. 마리스코는 해산물을 뜻한다. 사진에서 보듯 꽃새우, 대하, 조개, 대구살, 홍합 등을 넣고 토마토 페이스트 베이스의 국물에 걸쭉다기 보단 멀끔하게 끓여 낸 스튜를 말한다. 그런데 이게,

 

기가막히게 맛있다.

 

 

뭐 보시다시피 국물 재료에 맛 없을 것이 들어가지 않으니 당연히 기본적인 맛은 보장인데, 토마토를 베이스로 한 육수 재료에서 묘하게 이국적이면서도 달콤짭짤한 맛이 난다. 그게 일품이다.

 

같은 지중해 연안을 끼고 있는 나라들에는 뭔가 비슷한 느낌의 음식들이 많이 있다. 이를테면 이탈리아식 토마토 소스 홍합 찜 Zuppa di Cozze 도 국물을 흥건하게 하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맛을 낸다. 예전 서울 청담동의 올리비아라는 레스토랑에선 여기서 발전된 혇태의 얼큰한 홍합 국물에 파스타가 떠 다니는 요리를 나띠보라고 불렀는데, 한때 정말 좋아했던 음식이다(그런데 왜 이름이 나티보인지는 모르겠다. Naitvo는 이탈리아어로 영어의 native에 해당하는 말이다. 요즘은 마트에서 파는 자숙홍합으로 가끔 집에서 만들어 먹고 있는데 그럴 듯 하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식 해물탕인 야베스 bouillabaisse 도 비슷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먹어 본 부야베스는 강한 버터 맛이 났다. 물론 부야베스도 식당 따라, 조리사에 따라 레서피가 다를테니 그 강한 버터 맛이 부야베스의 본질인지는 아직 알 길이 없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요리 자체를 비교하는 건 무작위로 태권도, 유도, 합기도 선수를 1명씩 데려다 놓고 싸움을 붙여 무도의 서열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우연히 태권도 9단과 합기도 8급이 맞붙을 수도 있으므로)로 바보같은 짓이지만,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먹어 본 지중해 풍의 해산물 스튜 요리 가운데서는 이날 라 펠라에서 먹은 사르수엘라가 단연 최고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레서피를 배워다 한국에서 스페인식 해물탕집을 차려 볼까 하는 생각도 했을 정도.

 

가격이 싸지는 않다. 이 집에서 24유로. 하지만 먹어 보면 후회하지 않을 듯. 바르셀로나의 식당가에서 어느 식당이든 들어갔다면, 한번쯤 메뉴판에서 사르수엘라를 찾아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같이 먹은 음식 중 하나. 아스파라거스와 조갯살이 들어간 스페인 식 계란 찜.

 

태국에 갔을 때 대부분의 요리 이름들이 직관적으로 재료의 이름을 붙이면 만들어지는 걸 보고 재미있게 생각했는데 - 이를테면 뿌는 게, 팟은 볶다, 카리는 커리, 합하면 뿌팟퐁가리가 된다 - 생각해보면 한식도 비슷하다. 설렁탕이나 육개장처럼 이름만 봐선 뭘로 만든 무슨 음식인지 잘 모를 때가 있지만, 대개 아구찜은 아구를 찐 것이고 통닭은 닭을 통으로 구운 거다.

 

스페인도 대략 비슷하다. 그런 의미에서, 스페인으로 갈 때에는 스페인어의 식재료를 좀 알아 두는 것이 좋다.

 

이게 하나 둘 셋 넷 세는 것보다 훨씬 유용할 때가 많다.

 

 

 

여기에 몇개 보태자면,

 

마늘 Ajo 아요, 고추 Picante 피칸테, 고기 Carne 카르네 (카르네는 거의 쇠고기지만 구별하면 쇠고기는 Ternera, 돼지고기는 Cerdo) 등이 있다. 알면 알수록 당연히 도움이 된다.

 

세상에 먹는 것보다 중요한게 어디 있을까. 뭐가 뭔지 모르겠고, 물어보기 귀찮고, 괜히 말 안 통하면 답답할까 어색하고, 이런 게 싫어서 여행 가서 맥도날드만 먹다 오면 그것보다 큰 불행이 없을 듯 하다. 더구나 스페인처럼 맛난 것이 많은 나라에서.

 

 

 

하다못해 패스트푸드를 먹더라도, 스페인 곳곳에 있는 이런 '빤스' 같은 체인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야간 촬영이라 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노란 바탕에서 저 검은색 로고를 여기저기서 만나게 된다.

 

 

가격은 맥도날드와 비슷한 수준. 바게트 샌드위치 세트가 5~6유로 선이다.

 

샐러드도 박스로 팔아 좋았다. 맛도 굿.

 

 

어쨌든 이렇게 해서 바르셀로나를 떠나게 됐다.

 

스페인 여행의 첫 방문지라서, 그리고 오랫동안 멀리서 동경했던 도시라 아쉬움도 크지만, 아직 남은 여정이 긴 터라 가벼운 걸음으로 떠나게 됐다. 가우디, 피카소, 그리고 달리. 20세기를 장식한 천재들의 흔적을 발견한 것 만으로도 포만감 느끼는 여행이었다.

 

 

 

 

여행이란 이렇게 거리에서 바 안을 들여다 보고 찍는 사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 안은 멋지고 편안하고 즐거워 보이지만 또 그들에겐 그들의 인생과 고민이 있을게다.

 

나흘이 후딱 지나간 바르셀로나에서의 여정. 언젠가 다시 찾을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좀 더 푹 젖어 보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에 이렇게 안녕을 고하게 됐다.

 

 

 

다음은 그라나다로 가는 침대 열차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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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 들어서던 날, 비가 오고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태양의 나라에도 가을 겨울은 있었다. 이런 날씨라면... 국물이 필요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먹었던 사르수엘라(자르주엘라) Zarzuela가 생각났다.

 

하지만 호텔 매니저는 사르수엘라를 잘 하는 집은 커녕 사르수엘라라는 음식을 아예 몰랐다. "공연을 보시고 싶은 건가요?" 하고 반문을 한다. 참고로 사르수엘라는 스페인식 오페라의 일종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포기. 그럼 카스티야 풍의 국물 음식은 뭐가 있는지 물었다. 문득 가이드북에서 본 코시도 Cocido 라는 말이 생각났다. 호텔 근처에 코시도 잘 하는 집이 있느냐고 묻자 매니저의 눈이 반짝였다. 이건 자신이 있다는 신호. '미첼린'에도 나온 집이란다. '음. 스페인식으로는 미슐랭이 미첼린이로군'.

 

그가 지도를 꺼내 표시해 준 집은 라 볼라 La Bola. 볼라 거리를 대표하는 집이라는 뜻이란다. 호텔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를 걸어가면 작은 광장이 나오고, 거기서 메르쿠레 Mercure 호텔이 보이면 왼쪽으로 꺾으란 설명.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 안에서 또 길이 두 갈래다. 이런. 일단 볼라 거리 Calle de Bola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다행히 한 아주머니가 이 방향이라고 가르쳐 준다.

 

 

 

가는 길에 한식당 마시타 Mashita 발견. 사실 여기까지 와서 한식당을 갈 이유는 없었지만 나중 호기심에 찾아 보니 트립어드바이저에서 꽤 순위가 높은 집이었다. 많은 손님들이 이 집에서 '환상적인 스시'를 먹었다고 하는데... 과연 무슨 스시를 먹은 것일지. 혹시 노리마키?

 

 

 

 

마시타에서 골목길을 죽 내려가면 오른쪽에 라 볼라가 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후 3시에 줄을 서 있다. 대단하다.

 

 

 

 

집 대문을 장식하고 있는 미슐랭(스페인식으로 미첼린) 가이드의 위용. 그리고 더 잘 보이는 '현찰만 받아요' 간판.

정감있는 고전적인 분위기의 실내엔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첫 주문은 당연히 이 집의 성명절기인  '마드리드식 코시도 Cocido Madrileño '. 그리고 고기와 토마토 소스 스튜라는 설명이 있는 로파비에하 Ropavieja를 시켰다.

 

 

 

 

아담한 항아리에 담긴 코시도가 나왔다. 아래 보이는 올리브는 기본 제공. 이 올리브만 반찬으로 해서도 빵 한접시를 비울 수 있을 정도로 신선하고 상큼한 맛이 났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후, 항아리가 개봉됐다.

 

 

 

 

코시도를 먹는 순서 1. 우묵한 접시에 소면 같이 가느다란 파스타를 담고, 거기에 항아리에서 국물만 따라 붓는다. 진한 국물과 함께 소면을 말아 먹는 셈이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인상적인 맛.

 

대부분의 국내 곰탕/설렁탕 집들은 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오만가지 비법을 다 쓴다. 마늘과 양파, 통후추는 기본이고 각종 한약재에서 커피까지 다양한 소재들이 고기를 삶을 때 비장의 재료로 사용된다. 하지만 코시도의 국물은 이보다 훨씬 정직한 '고기 국물' 맛이다. 국물의 '고기 냄새'에 예민한 사람들은 싫어할 수도 있을 듯.

 

 

 

수프와 파스타 접시를 비우면 항아리의 내용물이 나온다.

 

 

 

스페인 특유의 알 굵은 콩을 중심으로 쇠고기 한 덩어리(양지머리 같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됨), 닭 가슴살 한 덩이, 소 꼬리 한토막, 그리고 삼겹살(이라지만 사실은 거의 비계) 한 덩이가 들어 있다. 이걸 푹 곤 국물을 좀 전에 먹은 거다.

 

 

 

고깃덩이를 가져다 찢어 먹는게 코시도의 두번째 순서. 느끼한 맛을 덜기 위한 토마토 소스, 초절임 고추(전혀 맵지 않다), 날 양파가 제공된다. 고기와 삶은 콩, 토마토 소스를 마구 버무려 먹다가 심심하면 고추절임을 한입씩 깨물면 된다.

 

맛있다. 음.

 

 

 

그러는 사이 두번째 메뉴 로파비에하 Ropavieja 등장.

 

재료상으로는 코시도 마드릴레뇨와 크게 다를 게 없다. 토마토 소스를 나중에 첨가해서 먹느냐, 아니면 토마토 소스를 함께 넣고 고기를 잘게 찢어 국물이 많지 않게 자박자박하게 끓여 내느냐의 차이 정도.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로파비에하가 이 집의 진미를 맛보는 더 간편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코시도로 일어선 집인 만큼 처음에는 일단 코시도를 맛봐 주는게 예의가 아닐까 싶다.

 

이밖에도 메뉴상으로는 다양한 생선과 고기 요리를 취급한다. 혹시 다음에 가 볼 기회가 있다면 이 집 방식의 라따뚜이를 맛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아무튼 태양의 나라에도 쌀쌀한 날씨는 있는 법, 푸짐하게 먹고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마드리드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코시도.

 

 

 

끝으로 서비스의 질. 서빙하는 거구의 어르신도 라 볼라의 명성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주어왔을 듯 하다. 말 안 통하는 외국인 손님들을 맞아서도 여유가 넘치고, 양쪽에서 똑같은 음식을 주문했을 때 코시도 항아리를 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어.느.놈.을.먼.저.줄.까.요' 를 몸짓으로 구현하기도 하는 재치까지. 음식 맛 뿐만 아니라 여유있는 서비스도 인상적인 식당이었다.

 

 

 

1870년부터 성업중인 노포의 명성은 역시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닌 듯.

 

 

 

스페인 여행 첫 소식을 이걸로 전합니다. 앞으로 [여행]과 [맛집]으로 나눠 포스팅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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