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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의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요즘 먹히고 있는 워맨스 코드가 들어간 작품이라서..." "워맨스? 워맨스가 뭐야?" "아, 그게 브로맨스의 상대 개념인데..." "브로맨스는 또 뭔가?"

 

네. 당연히 그래서 정리했습니다.

 

 

 

 

 

워맨스

 

[명사] womance. Woman+romance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신조어. 동성애는 아니지만 자매애도 아닌, 우정과 사랑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동지애적인 감정.

 

여성 시청자나 관객들이 드라마나 영화 속에 삽입된 BL코드, 혹은 브로맨스(Bromance) 코드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다. 흔한 이성애자 남자가 영화 신세계의 자성(이정재)과 정청(황정민)의 관계, 혹은 2014 최고의 화제작 드라마 중 하나인 미생에 나오는 장그래(임시완)-한석률(변요한)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성적 긴장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여성 관객(혹은 시청자)들은 이들 사이에 가상의 러브라인을 그어 놓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심지어 장그래와 오차장의 관계에서 로맨스를 느끼는 시청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이런 취향을 의식해 응답하라 1994’ 처럼 아예 쓰레기(정우)를 향한 빙그레(바로)의 애타는 짝사랑을 집어 넣어 성공을 거둔 작품도 있었다. 물론 빙그레 역시 드라마가 끝나기 전 의예과 여자 선배(윤진이)와 연인관계로 발전한 이성애자라는 게 중요하다.

 

 

 

Brother romance를 합해 만든 브로맨스(bromance)가 어느 정도 사람들의 귀에 익숙해 질 무렵, 그 반대편의 워먼스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물론 이 또한 이미 존재하던 경향에 이름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문화 상품 가운데 워먼스 코드를 활용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1)’을 가장 먼저 꼽게 된다. 수잔 서랜든(루이스)과 지나 데이비스(델마)가 연기한 두 여배우는 모두 이성애자들이며, 심지어 델마는 젊은 남자 제이디(브래드 피트)에 정신이 팔려 둘의 도피를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여주인공의 관계는 흔히 말하는 우정의 선을 훨씬 넘어 운명적인 유대를 느끼게 한다. 때로 워먼스 코드는 단 두 사람이 아닌, 복수의 관계 속에서 표현되기도 한다. 빈민가에서 자란 네 흑인 여성이 은행강도를 계획하는 이야기인 셋 잇 오프(1996)’의 경우 스토니(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프랭키(비비카 폭스)의 관계를 중심으로 네 주인공이 서로 자매애와 흡사한 동지애를 보여준다.

 

브로맨스와 마찬가지로 워먼스도 동성애와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아예 레즈비언들의 애정과 갈등을 그린 미국 드라마 ‘L-워드(L word)’류와는 접점이 없다. 반대로 이성애를 기본으로 한 멜로드라마 속에서도 워먼스 코드가 빛을 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레이 아나토미속의 메레디스(엘런 폼페오)와 크리스티나(산드라 오)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워먼스 코드가 전체적인 여성 등장인물들간의 연대로 표현된 경우는 메가 히트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도 볼 수 있다. 네 도시 여성의 자유분방한 생활을 그리던 이 드라마는 결국 남자들은 왔다가도 가지만 친구들은 영원하다(Boys may come and go, but friends are forever)”라는 교훈으로 긴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현재 방송중인 MBC TV 드라마 전설의 마녀역시 이런 저런 이유로 교도소 한 방에서 수감생활을 한 네 명의 여주인공들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워먼스 코드는 가끔 적대적인 관게에서 표출되기도 한다. 말 많은 영화 쇼걸(1995)’에서 무명 댄서 노미(엘리자베스 버클리)와 스타 댄서 크리스탈(지나 거손)은 영화 내내 적대적인 관계에 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이 사실상 같다는 점을 서로 이해하면서 남다른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최근 방송된 MBC TV 드라마 마마에서도 승희(송윤아)와 지은(문정희)은 각각 태주(정준호)의 아들과 딸을 낳은 사이. 전통적인 드라마에라면 본처와 시앗의 관계지만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은 적대적인 관계를 벗어나 서로 이해하고 돕는 관계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양상의 워먼스 관계를 보여줬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식의 여성 캐릭터간 관계에 식상한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한 시도로 여겨질 법 하다.

 

여러 면에서 워먼스는 브로맨스와 떼놓을 수 없는 개념으로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남성 동성애자들은 브로맨스를 동성애를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판타지로 여기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비해 여성 동성애자들은 워먼스에 대해 호의적이다. 스스로 레즈비언임을 밝힌 미국의 칼럼니스트 엘리자베스 앤 톰슨은 최근 브로맨스 대 워먼스라는 글에서 워먼스라는 개념을 통해 걸프렌드라는 말의 의미를 확장할 수 있었다며 동성애자 여성이 이성애자 여성과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를 워먼스라는 단어를 통해 재정의하기도 했다.

 

P.S. 물론 브로맨스와 워먼스는 모두 여성 관객들에게서만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절대 다수의 이성애자 남성 관객들은 둘 중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워맨스가 왜 뜨는지를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합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브로맨스나 워맨스 코드를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대체물로 생각하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브로맨스나 워맨스는 '남녀간의 연애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관계와 반대쪽에 있는 것은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쓰였던 대가족 중심의 가족애가 아닐까 싶습니다.

 

핵가족화로 인해 전형적인 가족간의 형제애/자매애에 대한 기억이나 공감의 여지가 많이 약해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친구나 선후배에게서 그것을 대체할 만한 감정을 찾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브로맨스나 워맨스는 관념적으로 '가족보다 친구가 더 가까운' 시대의 산물이 아닐까요. 물론 실제로 그러냐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겠지만.

 

 

맨 위 영화 사진은 우마 서먼, 재닌 갈로팔로 주연 영화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입니다. 이런 류의 여성-여성 관계가 좀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로맨틱 코미디도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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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꽤 있더군요.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에 대한 판단은 꽤 엇갈립니다만, 개인적으로 눈길이 간 건 이 영화의 제목입니다. (이 글은 이 영화에 대한 리뷰가 아닙니다. 이 영화 아직 못봤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를 열심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대사 "He's just not that into you"는 드라마 속에서 여자들이 일반적인 남자의 생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주는 소재로 쓰였죠. 여자들은 늘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살다 보면 참 많이 느끼게 됩니다.

얼마 전 한 여자 후배에게 일어난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후배는 20대 후반. 소위 명문대를 나왔고 다른 일에서는 무척이나 야무지고 똘망똘망한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하루는 소개팅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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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을 했는데 제법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왔답니다. 게다가 매너가 짱이었다는군요.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호스트 역을 맡은 김주혁도 "프로 호스트들을 만나 보니 인물은 크게 대단한 게 없었다. 역시 매너는 끝내 주더라"는 얘기를 하는 걸 보면 매너, 중요하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남자는 식사와 차로 이어지는 첫날 소개팅 풀코스를 무난히 소화하고, 후배의 전화번호를 알아 갔습니다. 물론 조만간에 다시 보자는 립 서비스도 했죠. 하지만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저는 좀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소개팅의 상식 중에 상식인 일을 이 후배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 일주일째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가 걸려오지 않자 후배는 주선자를 닦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전화를 한다더니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거냐. 그 남자 어떻게 된 거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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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라면 후배를 좋게 보고 남자 하나 붙여주려 했던 죄밖에 없는 애꿎은 주선자는 또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봅니다. 물론 이 이후의 상황은 불보듯 뻔합니다. "요즘 매우 바쁘다. 여유가 생기면 연락하겠다." 지극히 교과서적인 대답입니다.

하지만 후배는 이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전화를 기다리다가 급기야는 친구들에게 이 남자를 씹어대기 시작합니다. "뭐야, 처음부터 기대를 갖게 하질 말던가. 전화한다고 해 놓고 왜 전화를 안 해. 남자들은 이상해. 그놈만 이상한 걸까? 하여간 이상해."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웃음이 터져나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를 열심히 보신 분이라면 아마 이와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보셨을 겁니다. 특히 시즌6의 4번째 에피소드, <Pick-A-Little, Talk-A-Little> 편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 캐리의 애인 잭 버거가 네 여자와 담소를 나누는데 미란다(혹시 모르시는 분이라면 사진 맨 오른쪽)가 얼마전의 만족스러운 데이트 이야기를 합니다.

첫 데이트에서 키스를 두 번이나 했는데 남자가 유감스럽게도 다음날 바쁜 일이 있어서 그냥 갔고, 곧 전화를 한다고 했는데 지금껏 전화고 이메일이고 오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데이트때 그렇게 좋았다면 곧 전화가 오겠지"라며 맞장구를 칩니다.

하지만 잭 버거는 '진실을 원하느냐'고 묻고, '그 남자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은 것 뿐(He's just not that into you)'이라고 말해줍니다.



이 대사는 나중에 <섹스 앤 더 시티>의 스토리 어드바이저였던 그렉 버렌트 (Greg Behrendt)가 쓴 연애 지침서의 제목이 될 정도로 유명한 한마디가 됐습니다(그리고 당연히 이번엔 영화의 제목이 됐죠).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남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런 상황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여자들은 의외로 잘 모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후배의 이야기를 전해 준 다른 후배(역시 비슷한 또래의 비슷한 스펙입니다)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역시나 "그 남자가 좀 이상한 사람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설명했죠.

"그 남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그 남자가 소개팅에서 **이(소개팅을 했던 후배의 이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대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했을까?"

소개팅이라는 건 참 묘하게 예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일단 주선자의 얼굴을 생각해야죠.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가 나온다고 해서 마구 행동해선 안됩니다. 최대한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하는 거죠.

이런 예의바른 행동을 자기에 대한 지나친 호감으로 착각해선 곤란합니다. 첫날은 누구나 어느 정도 예의를 지키죠. 그 예의에는 '상대의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것'도 포함됩니다. '잘 들어가셨나요' 정도의 귀가 확인 문자도 이 예의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따라서 '기껏 잘해주더니 전화도 안 거는 이상한 놈'이라고 상대를 매도하는 것은 대단히 온당치 못한 일입니다. 첫날의 그 남자는 여자에게 호감을 표시한 것이 아닙니다. 진짜 호감이 있는지 없는지는 '전화를 걸어 다시 만날 약속을 하는지 마는지'에 달려 있는 거죠.

물론 아주 드물게 손가락이 부러졌다든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든가, 회사가 망했다든가 하는 일로 전화를 못 하게 되는 일이 아니라면 남자는 절대로 소개팅에서 만난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전화를 생략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바로 다음날 전화를 걸게 되고, 제아무리 선수라 해도 일주일을 넘지 않습니다. (선수일수록 전화를 늦게 하는 경향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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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입니다.

첫 만남 이후에 남자가 전화를 걸어오기까지의 기간은 그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를 확인해주는 시간입니다. '첫날'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첫날 아무리 잘 대해 줘도 그건 그 남자의 일상적인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가끔은 이럴 때 여자 쪽의 친구 중에 '그럼 니가 전화를 해보면 되잖아'라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친구는 멀리 하는게 좋습니다. 물론 가끔은 이런 식으로 적극적인 입장을 취할 때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런 전화가 걸려오는 순간 남자는 그나마 있던 정(?)까지도 떨어지게 됩니다. 심한 경우에는 여자를 스토커 취급하고 경계 태세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자신이 어느 정도 여자에게 매력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록 더욱 그렇죠.




만약 정말로 그 남자에게 전화를 한번 걸어보고 싶어진다면, 최소한 열흘은 기다려 보는 게 좋습니다. 열흘이라면 어떤 남자라도, 호감을 느낀 여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시간입니다. 열흘 내에 전화하지 않는 남자는 1년이 지나도 전화하지 않습니다(어쩌다 술을 한잔 먹으면 전화할지도 모릅니다. 이건 또 다른 심각한 문젭니다. 절대 넘어가면 안됩니다).

따라서 열흘이 지난 상태에서 전화를 하는 건 '밑져야 본전'인 상태가 되는 겁니다. 이때도 뜨뜻미지근한 상태라면 조용히 마음을 접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이런 전화는 하지 않는게 더 좋죠. 정말 제법 매력있는 남자라면, 이런 전화 한통에 왕자병이 더욱 심해질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p.s. 요즘 세상이 세상이다 보니 남자들이 나약해져서 '여자들이 빨리 반응을 안 보이면 그냥 발 뺀다'는 친구들이 꽤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 쪽에서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 고, 전화도 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도 있더군요.

뭐 세상이 좋아졌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남자라면 진득하게 달려드는 맛이 있어야지, 그런 찌질이들을 뒀다 뭐에 쓰겠습니까. 그런 남자라면 오히려 연결 안 되는게 여자들의 인생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자기 앞으로 건물 두채 쯤 있는 남자라면 적극적으로 달려들 만도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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