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지난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동방불패' 이전에도 여러번 임청하를 접했지만 그게 임청하인지 몰랐던 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촉산'에서 선녀, '폴리스 스토리'에서 기업형 악당 두목 애인 역할로 이미 국내에서 꽤 많은 관객들에게 노출됐었지만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아 그게 임청하였어?'라고 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성형수술을 해서 얼굴이 바뀐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성룡의 대표작 중 하나인 '폴리스 스토리'는 4편까지 제작될 정도로 대단히 히트하고,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하지만 사람들은 '폴리스 스토리'하면 장만옥만 기억할 뿐입니다. 1편에서 성룡과 경찰들은 한 기업형 악당을 처벌하기 위해 그의 내연의 여자인 임청하를 검찰측 증인으로 이용하려 합니다. 당연히 보호가 필요하고, 그 보호자 역할을 성룡이 맡죠. 이때부터 이미 성룡의 여자친구 역이었던 장만옥과는 묘한 긴장을 주고 받습니다. (이때의 장만옥을 생각하면, 그 뒤로 장만옥은 상당히 다이어트를 위해 노력했다는 걸 알 수 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이 영화 속의 임청하는 단발 커트였습니다.^)



(도입부에서 비탈길의 판자촌 하나를 박살내고 내려오는 카 체이싱 신은 당시로선 대단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마이클 베이의 '나쁜 녀석들 2'를 먼저 보고 이 '폴리스 스토리'를 보신 분이 있다면 꽤 충격을 받을 겁니다. '나쁜 녀석들 2' 마지막 부분에도 이를 베낀 것이 분명한 액션 시퀀스가 나오기 때문이죠. 80년대 홍콩 영화, 특히 성룡 영화의 액션은 정교함 뿐만 아니라 규모에서도 대단했습니다.)

 

주윤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1986년작 '몽중인'은 '폴리스 스토리'에 비하면 크게 주목받지 못한 영화였지만, 임청하의 존재감은 이 쪽이 훨씬 강했던 모양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국내에서는 '천녀유혼'의 대성공 이후, 그리고 '화중선' 같은 일련의 모방작들이 한 차례 쓸고 지나간 이후에 등장했던 작품이라 큰 주목을 끌지 못했습니다. 일부 격렬한 주윤발 팬들에 의해 기억되는 작품이죠. 아무튼 이 작품에서 주윤발과 임청하는 진시황 때 서로 사랑했다가 2000년이 지나 다시 교감하게 되는 비운의 커플을 연기합니다.

80년대의 임청하를 대표하는 작품은 아무래도 서극 감독의 '도마단(刀馬旦)'일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임청하-종초홍-섭천문이라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한 작품에 집결했다는 것도 화제지만, 특히나 임청하는 여기서 또다시 남장을 하고 묘한 중성적 매력을 뽐냅니다. 이 작품에서의 임청하는 남성 관객들보다는 여성 팬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습니다. 어찌 보면 다카라즈카 극의 남자 주인공 대접을 받은 셈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영화는 '동방불패'의 성공 이후 '동방여신'이라는 아주 해괴한 제목을 달고 극장에서 개봉되기도 합니다. 이미 '도마단'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출시된지 한참 다음에 말입니다.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도마단'이란 경극에 나오는 여장부 역할을 말합니다.

이 비슷한 시기, 홍콩발로 장국영이 한때 임청하를 짝사랑했고,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는 풍설이 들려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임청하라는 여배우의 존재에 눈을 뜨게 되죠. 대체 임청하가 누구길래 '영웅본색' '천녀유혼'의 대 스타 장국영이 그렇게 힘들어 한단 말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입니다. 당대 홍콩 최고의 여배우는 당연히 임청하와 종초홍이었지만, 전편에서도 말했듯 이들을 스타로 만든 멜로드라마는 한국 시장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격차가 생긴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결국 한국에서 임청하의 스타성이 폭발한 것은 1992년, '동방불패'가 개봉됐을 때의 일입니다. 1990년, '소오강호'의 성공은 홍콩 영화계에 김용 원작 붐과 정통 무협 붐에 불을 지릅니다. 물론 '소오강호'는 어느 정도 원작 소설의 흐름을 따르고 있지만 속편격인 '동방불패'는 주요 캐릭터들을 이어받았을 뿐 거의 새로운 작품입니다. 원작의 동방불패는 무공을 위해 거세를 하긴 하지만 영호충과 로맨스를 일으킬 수 있는 캐릭터가 전혀 아니었죠.



하지만 영화 제작진은 이 역할에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애절함을 더했고, 임청하라는 스타에게 이 역할을 맡깁니다. 이미 '도마단'에서 임청하의 중성적인 매력이 갖고 있는 폭발력을 확인한 서극과 정소동에게 임청하를 이용한 동방불패 캐릭터의 구현이라는 시도는 정말 '바로 이거다' 싶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이미 촬영 당시 나이 37세, 하지만 놀랍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있던 임청하는 이 작품 하나로 홍콩 영화의 구원자가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위 사진은 안 나오느니만 못했던 '동방불패 2'의 홍보용 사진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방불패'의 성공 덕분에 양우생 원작의 '백발마녀전', 김용 원작의 '녹정기'와 '천룡팔부' '동사서독(사조영웅문)', 고룡 원작의 '절대쌍교'가 모두 그를 주인공으로 영화화되죠. 이들 대부분이 히트하면서, 임청하는 '정통 무협물의 여왕'으로 다시 부각됐고 70년대와 80년대를 넘어 90년대에까지, 3 decade에 걸친 스타덤을 구축합니다. 경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임청하가 1인2역을 연기한 '동사서독'을 최근 왕가위 감독이 '동사서독 리덕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내놨습니다. 이번엔 DVD가 제대로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 예고편.



그러나 90년대의 임청하는 스스로 성공일로의 경력을 끊어 버립니다. '중경삼림'의 히트 이후, 임청하는 갑작스레 결혼을 발표합니다. 상대는 홍콩의 유명 의류 브랜드 에스프리 그룹의 거물인 형리원(邢李원, 마지막 글자는 火+原, Michael Ying Lee Yuen). 주윤발, 성룡 등 숱한 톱스타들과 염문을 뿌렸지만 그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작가 경요가 "임청하가 진정 사랑한 사람은 진한 뿐이었다"고 말했듯, 팬들은 "어쨌든 언젠가 결혼을 한다면 진한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는군요.
나이든 뒤의 진한과 임청하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한, 임청하


이건 결혼 발표 보도 화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형리원-임청하 부부

 

물론 형리원과의 결혼은 임청하를 여왕 중의 여왕으로 만들었습니다. 형리원은 한때 에스프리 그룹 지분의 45%를 보유하기도 했고, 2007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40대 거부 중 12위에 올랐을 정도의 자산가입니다. 두 사람은 지난 14년 동안 가끔 잡음이 일기도 했지만, 세 아이를 낳고 잘 살아왔습니다.

'에스프리 사모님'이던 시절의 임청하를 만난 사람 중 하나로부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바로 송승헌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2001년 송승헌은 홍콩에서 서기, 막문위와 함께 영화 '버추얼 웨폰(당시에는 '석양천사'라는 한자 제목으로 불렸습니다)'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촬영장으로 임청하가 딸과 함께 구경을 왔다는 겁니다. '가을동화'의 열렬한 팬이라면서 말입니다.

 

임청하는 송승헌을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당연히 송승헌도 응했습니다. "어려서 본 '동방불패'에서의 모습과 거의 차이가 없더라"는 증언입니다. 언어 장벽 때문에 대화가 여의치 않아 "한국 배우들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구나"라고 느끼기도 했다는군요.

식사를 마칠 무렵 형리원 당시 에스프리 사장이 등장해 인사를 나눴고, 이별이 아쉬웠는지 임청하는 송승헌 일행을 에스프리 본점 매장으로 데리고 가 "선물하고 싶다. 마음대로 골라라. 매장을 다 가져가도 좋다"고 말하는 큰 통(?)을 과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송군이 "그럴 수는 없다. 사양하겠다"고 예의를 차리자(물론 브랜드가 에스프리여서 그랬을 수도 있죠^^), 못내 아쉬워하면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언제든 홍콩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했었답니다.

(불행히도 송군은 이런 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이 같이 찍은 기념사진은 공개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이때의 임청하는 47세. 뭐 이 정도 모습이었을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송승헌의 홍콩 촬영 회고를 통해 이 이야기가 기사화된 것이 아마 임청하가 한국 미디어의 관심을 끈 사실상 마지막 사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뒤로 임청하에 대해 들려온 소식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남편과의 불화가 있다는 등 단발성의 잡음 정도였습니다.

임청하는 공식적으로 은퇴 여부를 말한 적이 없습니다. 종초홍이 그랬듯 그저 결혼과 함께 활동을 중단했을 뿐입니다. 아마 그 자신도 중단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두 편의 영화에서 나레이션을 맡아 영화계와의 끈을 완전히 놓아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경우든 다시 한번 일선에 복귀한다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궁금합니다. 임청하가 일선에 복귀한다면, 그가 시발점이 되어 지난해 남편의 사망으로 거액의 유산 상속자가 돼 화제를 모았던 종초홍이나 소식도 알 수 없는 섭천문 등이 장만옥과 유가령 등 아직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왕년의 전설적 여배우군에 합류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몇가지 보너스샷.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도 노래가 빠지면 안되겠죠? 장국영이 부른 '백발마녀전'의 주제가 '홍안백발'의 MV.



이상입니다.




임청하 지난 이야기를 못 보신 분은 이쪽으로

 


대개 이런데 관심이 있으면 다음 글들도 관심이 가시겠죠. 왕조현편입니다.

전편



후편입니다.

 





728x90

얼마 전 영화 '화피' 때문에 왕조현에 대한 옛 기억이 되살아났는데, 이번엔 임청하가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벌써 14년이나 됐군요. 임청하는 최근 홍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감동을 주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다시 해보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도 몇 차례 컴백설이 흘러나온 적이 있지만, 대개는 임청하의 이혼 가능성을 보도하면서 곁다리로 나온 소식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이혼설은 전혀 거론되지 않고 컴백 가능성만이 부각되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어쩌면 정말로 임청하를 촬영장으로 다시 끌어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나이 54세. 대개의 여배우들이 50대가 되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게 정상일 겁니다(간혹 과도한 성형 수술이나 미용 시술로 구설에 오르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1954년생인 배우들로는 성룡과 존 트래볼타가 있습니다. 이 정도의 연배 여배우가 컴백 하건 말건, 누가 관심이 있을까 싶지만 임청하는 다르더군요. 대체 그 전설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80년대 홍콩영화를 대표한 것이 성룡을 중심으로 한 코믹 액션과 '영웅본색'으로 대변되는 느와르의 흐름이었다면, 90년대는 시대극을 표방한 리얼 액션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한 복판에는 1991년작 '동방불패'와 임청하가 있었죠. 이 시기의 홍콩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임청하와 '동방불패', '백발마녀전', '신용문객잔'과 '동사서독'을 잊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임청하는 그 시기에 이미 30대 후반(37세)의 나이였죠. 그때까지 임청하는 뭘 하고 있었을까요? 많은 한국 팬들은 임청하를 '젊은 날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다 나이 먹어서 뜬 배우' 정도로들 알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한국에선 잘 몰랐지만, 임청하는 70년대부터 이미 중국어권을 통틀어 여배우 중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임청하는 1954년 대만에서 태어났고, 1972년 경요(瓊瑤) 원작 영화 '창외'에 캐스팅됩니다. 생일이 지나지 않은 탓인지 '17세'로 소개되기도 했군요.

 

이때부터 미모가 각광을 받아 일약 대만의 톱스타가 됩니다. 특히 대만 최고의 인기 작가 경요(흔히 '대만의 김수현'으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주로 남녀간의 로맨스를 다룬 소설이 발표하는 족족 메가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죠)의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가 될 때 응당 주인공은 임청하가 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경요의 소설과 영상 작품들은 대만에서뿐만 아니라 홍콩과 싱가포르, 동남아 일대는 물론 중국 본토와 해외 중국인 집단 거주지역이면 어디서나 인기 폭발이었기 때문에 임청하의 스타덤은 일찌감치 국제적이었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스무살도 되기 전에 온갖 남자들의 구애로 요란한 스캔들이 시작됩니다.

 

임청하의 오랜 스캔들 중 첫 남자이자 끝까지 가는 남자는 바로 진한(秦漢, 1946년생)입니다. 이 스캔들이 절정에 올랐을 때에는 진상림(秦祥林, 1948년생)과의 삼각관계가 온 중국계 호사가들의 관심사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역시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어권에서는 당대의 미남 톱스타들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배우들이 잘 알려지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 국내에서 흥행이 되는 중국어권 영화는 거의 대부분이 쿵후 액션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멜로드라마형 스타들은 드러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거죠. 아비와 진추하 주연의 '사랑의 스잔나' 같은 경우가 좀 드문 예외였고, 진추하조차도 그 이후의 스타덤을 이어 갈만한 히트작을 내지 못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왼쪽이 진한, 오른쪽이 진상림.)

당시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만 드라마. 초반 몇분은 그냥 지나치면 얼음여왕님의 앳된 비키니 장면이 나옵니다. 제목은 모르겠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진한.





임청하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는 세 스타가 공연한 1976년작 '아시일편운(我是一片雲, 역시 경요 원작)'에서 최고조에 달합니다. 여기서 승자가 되는 진한은 국내에서는 관금붕 감독, 장만옥 주연의 '완령옥'에 중간 정도 비중으로 얼굴을 비춥니다. 이에 비해 진상림은 국내 팬들이 이름을 몰라서 그렇지 얼굴은 꽤 알려진 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뒷날 성룡, 홍금보와 함께 80년대에 '오복성' '복성고조' '하일복성' 시리즈에 참여하기 때문이죠. 다섯 멤버 중 얼굴만 번드르하고 실속은 없는 바로 그 남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간 네 사람 중 맨 오른쪽이 진상림. 옆의 배우 이름에도 성룡, 홍금보, 종초홍과 함께 진상림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아무튼 국내에 임청하가 처음으로 소개된 작품은 1978년작 한-홍콩 합작 '백사전(眞白蛇傳)'인 것으로 보입니다. 흰 뱀이 변한 여자가 인간의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지만 요물을 용서하지 않는 인간들에 의해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슬픈 전설은 일본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하고, 뒷날 왕조현 장만옥 주연의 '청사'와도 사실상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도 진상림이군요.

임청하가 언제 홍콩으로 본격 진출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1977년 쇼 브라더스 영화 '홍루몽'에도 나오는 걸 보면 교류는 일찍부터 있었을 듯 합니다.

이한상 감독의 '홍루몽' 앞 부분입니다. 이때부터 소년 역으로 나오니 임청하의 남장은 정말 역사가 길다고 해야겠죠.




1980년, 당대의 검술 액션 1인자 정소추와 공연한 1980년작 '정인간도(情人看刀)'가 히트할 무렵에는 스타덤의 중심지가 대만에서 홍콩으로 이동해 있습니다. 그리고 1982년, '미니특공대(迷니特攻隊)'로 더 이상 멜로 스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솔직히 1985년 국내에서 '대복성'이란 제목으로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본 저로서도 이 영화에 임청하가 무슨 역으로 나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만들어진지 3년이나 지나 개봉된 이 영화의 국내 제목이 원제와 전혀 무관한 '대복성'인 이유는 '오복성'의 히트 때문이라는 건 설명할 필요도 없겠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룡과 왕우, 정소추와 임청하 등 호화 배역진이 출동한 이 영화의 배경은 참으로 황당무계합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열대지방의 전선(?)에서 뭔가 미션을 이행하기 위해 왕우가 인솔하는 특공대가 길을 떠납니다. 특공대원 중 성룡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이죠. 네. 리 마빈 주연의 '특공대작전(Dirty Dozen)'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분명합니다. 아무튼 이들은 길을 떠난 뒤로 여인족(?)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귀신나오는 집(?)에서 귀신들과 싸우기도 합니다. 아무튼 결말은 장렬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영화 보신 분들 있나요? 영상을 보시면 기억이 좀 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복성'.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니까 순서대로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국내에서 임청하를 볼 기회는 1978년 개봉된 '백사전', 1983년의 '촉산', 그리고 1985년의 '대복성'과 '폴리스 스토리'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분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역할은 '촉산'이죠. 물론 이때까지도 '악의 화신이 된 정소추 때문에 번민하는 예쁜 그녀' 정도로만 기억될 뿐이지 임청하라는 이름은 전혀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1980년대 중반까지밖에 못 왔는데, 예상대로 너무 길어지는군요. 이번엔 이 정도에서 끊겠습니다. 나머지 얘기들은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 편입니다.



대개 이런데 관심이 있으면 다음 글들도 관심이 가시겠죠?

전편



후편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