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바르셀로나-그라나다로 이동하는 여행자들은 흔히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야간열차와 (저가)항공이다.

 

야간열차는 당연히 침대차가 기본이다. 스페인은 매우 큰 나라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 구간(약 600Km)은 고속전철 AVE가 있어 2시간 30분이면 주파 가능하지만 그보다 훨씬 먼 그라나다-바르셀로나 구간(약 800Km)은 아직 고속화되지 않았다.

 

야간 열차의 좌석이나 버스로도 이동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건 정말 몸 상하는 일.

 

 

 

비행기를 타고 내리기 위해 이동하는 일(대개 공항은 시내에서 상당히 멀다)을 꽤 싫어하고, 동시에 국내에선 쉽게 접하기 힘든 침대차에 대한 로망이 있는 1인으로서(사실 동행인의 의견은 그리 참고하지 않았다), 당연히 침대차를 선택했다.

 

늦은 시간. 그래도 산츠 역은 꽤 붐비고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지리적으로 상당히 외진 곳이라 유럽의 주요 도시들로부터 애매하게 멀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침대차가 꽤 중요한 수단이 되어 왔다지만 지금은 대부분 항공편을 이용하는게 일반적이다. 남아 있는 노선 중에는 파리행과 그라나다행이 꽤 유력하다고 한다.

 

 

야간열차 트렌오텔 Trenhotel 은 밤 10시 출발. 그라나다에는 다음날 오전 9시11분에 도착한다.

 

 

 

물론 중간에도 승객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 부지런히 기차가 서고 내린다.

 

야간 열차라고 해서 모든 칸이 침대칸은 아니다. 일반 좌석이 있는 칸도 있다.

 

렌페 renfe.com 에 가서 야간 열차를 예매하려면 이런 화면을 만나게 된다.

 

 

다섯 등급의 좌석을 판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좌석 2등급, 좌석 1등급, 침대차 4인 1실, 침대차 2인 1실, 침대차 2인 1실(특실)에 식사 포함이라는 기준이다. 위에서 네번째인 Cama Preferen(2인 1실. 1등칸)을 선택했다.

 

일단 11시간을 이동하는데 좌석...도 굳이 타라면 못 탈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청춘이 아니다. 최소한 침대차는 되어야 한다. Cama Turista는 예전에 기차 여행할 때 타 본 쿠셋 형의 변형인 듯 하다. 그래도 쿠셋은 방 하나에 간이 침대가 6개인데 이건 그나마 4개. 그리고 방 안에 세면대도 있다. 4인 1실이라도 남자 칸과 여자 칸이 따로 있다.

 

Cama Preferen은 164유로라고 되어 있는데 이 가격은 아마도 당일 구매 정도에 해당되는 가격인 듯. 약 1개월 전에 미리 사면 1인당 110유로 정도, 즉 2인 1실에 220 유로 정도에 탈 수 있다.

 

어쨌든 기차 표 끊는 법, 역에서 표 찾는 법 등은 이런 블로그 http://blog.naver.com/familyjhjh?Redirect=Log&logNo=90172132856 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어 여기서 새로 또 늘어놓지는 않는다.

 

220유로. 가격으로 따지면 재수가 좋은 경우 1박 요금+저가항공 2인 요금이 더 쌀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 육상 교통, 특히 기차 이동을 매우 선호하는 본인으로서는 침대차에서 하룻밤을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뭣보다 궁금하잖아.

 

 

 

문을 열고 2인 칸의 안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아, 물론 가방을 넣어 두고 한숨 돌린 뒤에 찍은 거다. (문을 열자 마자의 상태는 당연히 아니다.)

 

첫 느낌은 누구나 비슷하다. "뭐가 이렇게 좁아!"

 

그런데 걱정하실 필요 없다. 조금 지나면 대략 익숙해 진다. 하룻밤 정도는 충분히 머물만 하다.

 

 

2층 침대에서 문 쪽을 본 모습. 안으로 들어와 방 문(오른쪽)을 닫아야 욕실 문(왼쪽)을 열 수 있다.

 

사진상으로 엄청나게 비좁은 느낌이 드는데, 맞다. 엄청나게 좁다. 그래도 욕실 설비는 제법이란 느낌이 든다.

 

 

 

욕실로 들어가서 오른쪽을 보면 거울과 세면대, 그리고 양치질용 물과 컵이 있다. 수도꼭지에서도 물이 잘 나오지만, 생수 2병을 굳이 넣어 뒀다. 물론 마실 수 있는 물이고, 럭셔리하게 양치질 하는 데 쓸 수도 있다.

 

(우리는 양치질하는 데 썼다. 이유는... 1.5리터짜리 에비앙을 이미 사 왔기 때문에. 다 마시느라 애썼다.) 

 

 

 

왼쪽을 보면 변기와 작은 선반이 있고, 그 위에 샤워용의 큰 타월 두 장과 예비용 두루마리 휴지 등이 있다. 제법이다.

 

세면대와 변기를 합해 여객기 기내 화장실 정도의 크기. 하지만 거기엔 없는 호사스런 서비스가 있다.

 

 

 

제법인 이유는 더 안쪽에 샤워실이 있기 때문. 여행 자료를 보면 Cama Preferen에 샤워가 있다, 샤워는 없고 세면대만 있다는 등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결론을 말하면 샤워실이 있었다.

 

넓이는 작은 사이즈의 샤워박스 정도.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들어가면 갇힌 느낌으로 죽을 것 같을 수도 있겠지만, 야간 침대 열차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건 사실 대단한 호사다.

 

그리고 비록 좁다지만 원통형이라 나름 합리적이고, 사진에서 보듯 장시간의 입식 샤워(?)에 피로한 당신을 위해 엉덩이를 살짝 걸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아울러 바닥은 배수가 잘 되도록 신경 쓴 구석이 보인다. 좁은 침실로 샤워 물이 넘쳐 방이 물바다가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방은 이 정도. 열차로 두 칸 정도 넘어 가면 스낵바가 있고, 스낵바 바로 너머에 식당칸이 있다.

(열차가 흔들려 어쩔 수 없이 진동...)

 

 

 

하긴 먹으면서 이동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이건 식당칸 옆의 부엌을 살짝 찍은 것. 철판 위에서 스테이크가 혼자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식당칸에서 음료 정도는 마셔 주는 것도 괜찮을 듯 했으나 어찌나 에어콘을 세게 틀었는지 얼어 죽을 것 같았다.

 

 

 

밤 10시 출발. 한국인들에겐 매우 늦은 시간이지만 이쪽 사람들에겐 한창 저녁을 즐길 시간이니.

 

 

 

이건 스낵바. 아주 가벼운 간식거리와 커피, 음료, 맥주 등을 판다. 이것도 제법 운치있는데, 혼자 여기서 맥주라도 홀짝거리며 창밖을 보고 있으면 굉장히 자신이 측은해 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무튼 열차 안의 복도는 매우 좁다. 기내용 캐리어는 통과할 수 있지만 1주일 이상 여행용의 트렁크는 정상적으로 통과할 수 없는 넓이다. 그 점 하나만 빼면 침대차 내의 시설은 충분히 수긍할 만 했다.

 

 

 

이건 방 안에 있는 1인용 위생 팩.

 

 

조립식 칫솔. 치약. 면도기. 비누. 화장솜. 빗 등이 키트로 들어 있다.

 

준비 없는 사람이 1박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설비다.

 

 

 

1층 침상. 다리를 충분히 뻗을 수 있다. 위쪽으로 개인용 독서등도 있고, 충전용 전원도 있다.

 

 

동행인이 최종적으로 1층을 선호해 2층으로 올라갔다. 1층과 2층은 왼쪽의 전화기를 빼면 시설에 아무 차이가 없다. 쿠셋과는 달리 두 층 뿐이므로 1층과 2층 모두 일어나 앉을 수도 있다. 침구도 깔끔하고 편안한 느낌.

 

누운지 몇분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물론 움직이는 기차 위이기 때문에 제법 흔들린다. 그 진동에 대한 적응엔 개인차가 꽤 크다. 앞서도 말했듯 본인은 그 진동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라서(요람 속 같다고나 할까), 눕자마자 금세 잠들어 숙면을 취했다.

 

 

 

그리고 아침. 그라나다에 거의 도착할 무렵 창을 열었다.

 

안달루시아의 아침놀.

 

 

 

 

 

 

아나톨리아 고원에서도 느꼈지만, 땅이 넓은 곳에선 구름이 훨씬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눈을 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바르셀로나에서 마지막 쇼콜라를 마시고 산 초코 머핀과 초콜릿 크루아쌍으로 아침 간식.

 

그라나다가 가까워 온다. 침상 정리를 해 본다.

 

 

 

위층 침대를 접으면 이런 모습,

 

 

그리고 아래층 침대를 마저 접고 그 아래 감춰져 있는 좌석을 펴면 이런 모습이 된다. 오래 전 다녔던 오리엔트 특급 같은 열차에선 낮엔 이런 식으로 가다가 저녁에 침대를 펴고 잠을 청하는 식의 여행이 가능했을 것 같다.

 

낮 이동이 훨씬 지루하긴 하겠지만.

 

 

오전 9시. 그라나다 도착.

 

그라나다는 춥고, 역무원들은 불친절하다. 역에 있는 인포메이션은 '우리는 관광안내소가 아니다' 라며 지도 한 장 비치해 두고 있지 않았다. 뭐 이리 쌀쌀맞아.

 

 

택시를 잡아 타고 그라나다의 그란 비아(사진 오른쪽 가게 간판 쪽에 써 있다)를 따라 호텔로 이동.

 

바르셀로나에선 반팔이 더 많았다면 여긴 확실히 가을 느낌, 그것도 늦가을 느낌이 난다.

 

그래도 왔다. 그라나다. 기다려라, 알함브라.

 

 

그라나다는 굉장히 작은 도시다. 여행을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숙소 결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 여정에서 그라나다는 단 1박, 그리고 알할브라 궁전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므로 숙소를 아예 알함브라 궁전 바로 코앞으로 잡았다. 이름하여 알함브라 팰리스 호텔 Alhambra Palace Hotel.

 

홈페이지는 여기. http://www.h-alhambrapalace.es/default-en.html

 

 

 

 

이번 여행 중 가장 럭셔리한 호텔이었던 것 같다.

 

물론 비수기라 그리 비싸진 않았다.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간에 방을 달라면 어떤 반응일지 조금 궁금했지만, 비수기인데다 기차 도착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선선히 방을 내 준다. 굳이 얼리 체크인을 언급할 필요가 없는, 알아서 해 주는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중엔 TV를 거의 안 봤다. 마드리드에서나 좀 채널을 돌려 봤던가...

 

 

 

 

아랍풍으로 꾸며진 욕실이 특히 넓고 화려했다.

 

 

 

호텔이라기보단 무슨 성 처럼 보일 정도로 요란한 장식이 있다.

 

 

사실 이 호텔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알함브라에 도보로 이동 가능한 호텔이라는 점(호텔을 나서 언덕배기를 3분정도 걸으면 바로 알함브라)이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알함브라 구경을 마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피해 호텔로 달려 들어오면서, 역시 가까운 호텔을 고르길 잘 했다며 스스로의 선견지명에 기뻐했다.

 

아울러 두번째는 트립어드바이저에 누군가 써 놓은 fantastic city view. 알함브라가 보이는 뷰면 더 좋겠지만, 사실 그건 쉽지 않다. 알함브라는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함브라 바로 앞에 있는 이 호텔도 알할브라 쪽의 뷰는 그냥 산 뿐이다. 대신 시내 쪽 방은 이렇게 알함브라 구시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잠시 방 구경과 짧은 오전 휴식을 마치고 곧바로 출동.

 

 

 

 

기다려라 알함브라! (사진은 헤네랄리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