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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이 한창 인기를 얻어가던 무렵에 일간스포츠에 연재되는 <두루두루>라는 칼럼에 '<주몽>이 역사를 왜곡했다고?'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면의 제약 때문에 문장의 연결고리가 되는 부분이 정리됐더군요. 좀 아쉽기도 해서 원래 썼던 글을 그대로 올립니다.

(제목은 저건데 왜 엉뚱한 얘기가 나와, 하시는 분들, 곧 나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주몽>은 처음부터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일단 사소한 고증부터 따지자면 <주몽>의 시대는 아직 종이가 발명되기 전입니다. 하지만 주요 무대가 된 부여 왕궁을 비롯해 온갖 건물에 후대에나 볼 수 있던 창호지 문들이 달려 있죠.

그렇다고 가죽옷을 입고 창문도 없는 집에 사는 금와왕이나 주몽을 그리는 건 사극으로서의 기본적인 '뽀다구'를 희생시켜야 하기 때문에 제작진으로서는 참 채택하기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뭐 이런 고증 분야에서의 재현 외에 더욱 컸던 것은 민족 자주성 문제였죠. 고대사에서 늘 민족 자존심의 기원을 찾는 일부 인사들은 <주몽>의 앞부분을 보고 "부여가 한나라에 위축된 속국처럼 그려지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이게 대단히 큰 논란이었습니다. (사실은 이 논란도 드라마를 널리 알리는 데 큰 도움을 줬죠^^)

사실 개인적으로는 <주몽>같은 드라마를 놓고 역사를 논하는 것은 좀 오버액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트로이>를 만들면서 볼프강 페테젠 감독이 했을 고민이 떠오르더군요.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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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이 역사를 왜곡했다고?
-'판타지 사극' <주몽>을 바라보는 세가지 시선-

서구의 먹물들은 심심풀이로 미녀들의 용모를 측정하기 위해 헬렌(helen)밀리헬렌(milihelen)이라는 단위를 만들었다. 1밀리헬렌은 '1척의 배를 동원할 수 있는 수준의 미녀'를 가리킨다. 트로이 전쟁때 절세미녀 헬렌을 되찾기 위해 전 그리스가 1000척의 함대를 일으킨 데 착안해 1000척을 동원하는 미녀는 1헬렌, 50척을 동원하면 50밀리헬렌급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유머다.

헬렌, 혹은 헬레네는 트로이 전쟁의 핵심이지만 역사가들은 그 실존 가능성에 비관적이다.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미녀 헬레네가 아니라 무역국가 트로이가 구축한 황금이었다는 것이다. 지존급 호사가인 <아웃사이더>의 작가 콜린 윌슨은 "그리스 영웅들의 동기란 탐욕이었고 약탈과 강간이 그들의 본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헬레네가 빠진 트로이 전쟁 이야기야말로 단무지 없는 김밥. 영화 <트로이>의 볼프강 페테젠 감독은 고심 끝에 '신화가 아닌 진짜 인간들의 이야기'를 만들겠다며 아예 헬레네 역할을 빼 버렸다가 제작자들의 압력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 역에 신인 다이앤 크루거를 기용했지만 두고 두고 이 결정을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신화와 역사의 중간 쯤인 스토리를 소재로 하는 제작진은 과연 어디까지 판타지를 인정하고, 어디서부터를 인간의 영역으로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마련이다. 최근 3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침체에 빠졌던 드라마계를 리드하고 있는 MBC TV <주몽> 팀도 이런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극의 거목 최완규ㆍ정형수 작가가 공동 집필하는 <주몽>에 대한 불만은 세 방향에서 온다. '지나치게 신화의 요소를 훼손시켰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사극이라기보다는 너무 판타지'라는 비판이 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소수지만 '중국 중심의 사관에 치우쳤다'는 것도 있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취향의 문제. 여기에 대해 제작진은 "사람이 알을 낳는 수준까지는 곤란하지만, 유화가 위기에 빠졌을 때 벼락이 떨어져 구해주는 정도는 다룬다. 전체적으로 '옛날 이야기 같은 드라마'라고 생각해 달라"며 '판타지와 역사 사이의 균형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번째 입장은 좀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현재 가장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층은 <환단고기>류의 '민족 사서'들에 경도된 사람들이다. 우리 민족의 과거를 찬란하게 포장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겠지만 지나친 민족주의는 중국이 시도하고 있는 동북공정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무디게 할 수 있다. 이들의 주장대로 2000년 전 한민족의 주 활동 영역이 중원 대륙이라면 대체 한반도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 혹시 현재의 우리는 이들이 말하는 '자랑스런 한민족' 의 후손이 아닌게 아닐까 하고 겁이 날 지경이다.

이런 비판을 예견한 제작진은 다수의 사학자들로부터 조언을 받고 있다. 단 이들의 조언은 '드라마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 한정된다. 비록 해모수의 경우 상당 부분이 가공됐지만 유화와 주몽, 대소와 소서노 등 실존 인물들의 생사는 철저하게 역사의 기록을 따를 예정이다.

최완규 작가는 <주몽>을 맡으며 "이렇게 사서에 자세히 기록된 인물을 다루는게 처음이라 무척 긴장된다"는 농담을 던졌다. 사실 <허준>의 명의 허준이나 <상도>의 거상 임상옥, 그리고 그가 상당 부분 관여했던 <해신>의 장보고가 모두 사서의 기록이 빈약해 작가의 상상력이 드라마의 내용을 좌우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천부적인 이야기꾼인 최완규 작가가 이번엔 '어, 역사책과 다른데'라는 '기록의 굴레'를 어떻게 피해갈 지 지켜보는 것도 <주몽>을 보는 재미일 듯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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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젠 감독이 다이앤 크루거를 헬레네 역으로 캐스팅했을 때, 전 세계의 관객들은 '대체 저 여자가 1000척의 배를 동원한 절세 미녀란 말이냐'고 일제히 흥분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선택 뒤에는 페테젠의 저런 고민이 있었더군요.

그래도 기왕 할 바에는 좀 더 미모의 여배우를 캐스팅했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샤를리즈 테론 정도면 불만의 소리가 잦아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튼 주제와는 좀 거리가 있는 얘기였군요. 그나자나 주몽, 오랜만에 일일극을 제외하고 시청률 30%가 넘는 드라마가 나올까 싶어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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