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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제시카 고메스는 한국 연예인?'의 후속입니다. 분명히 외국인이고, 해외에서도 연예인으로 활동을 하던 차에 한국에 와서 아예 한국 연예인이 되다시피한 사람들은 꽤 있습니다. 제시카 고메스는 사실 여기서 좀 빠지는 듯도 했지만, 기왕이면 한국 연예인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고 할 수 있죠.^ 고메스는 곧 화장품 CF를 위해 다시 들어온다니 당분간은 '한국 연예인'으로 남아 있을 듯 합니다.

물론 해외에서도 우선 연예인이었어야 한다는 조건이므로 다니엘 헤니나 데니스 오, 산다라 박 같은 연어파들은 제외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전략적으로 '한국에서 먼저 성공한 뒤 본국에서의 활동'을 노리는 닉쿤이나 슈주의 한경, 장리인 같은 경우도 제외합니다. 그럼 대체 누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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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유민, 그러니까 후에키 유코 가 한국에서 한참 활동할 때 제가 어느 기사에다 이런 말을 쓴 적이 있습니다. '해방후 50년이 넘도록, 일본이 한일간의 화해와 우호 친선을 위해 했던 그 어떤 노력보다 강력한 무기'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유민 앞에서 항일정신은 봄눈 녹듯 사라져갔습니다.^^ 그게 그거랑 같냐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아마 유민을 보고서 처음으로 '일본 여자와 결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 사람도 꽤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좀 빨랐던 분들은 요시나가 사유리를 보고도, 혹은 구도 시즈카를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하셨겠지만, 그 숫자로 볼 때 이분들과 유민은 비교하기 힘들 겁니다.

유민이 처음 데뷔하던 드라마 '우리집', 농아 역할로 등장했을 때 참 많은 분들이 '대체 쟤 누구냐'고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그리곤 대사 한 마디 없이도 일약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죠.

유민의 인기는 남자 연예인들의 대시로 이어졌습니다. 유민은 꽤 자주 열애설에 등장했던 셈입니다. 그중에는 최근에 입대한 친구도 있었죠. 이 친구가 유민에게 구애하던 시절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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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소속사 측에서는 이 친구가 유민에게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당연히 노발대발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 친구가 소속사 대표에게 '제가 좀 뵙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 온 겁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대표는 그러라고 했답니다. 어쩌나 보려고 한 것이기도 하고, 오면 와락 겁을 줘서 떼 놓을 참이었죠.

그런데 이 친구, 들어오자마자 넙죽 절을 하더니 뭘 주섬주섬 꺼내더랍니다. 뭔가 보니 소주와 오징어를 사왔더라는군요. 그러더니 "형님, 한잔 하십쇼"하고 대표에게 잔을 권하더랍니다.

그러고서 얘기인 즉, 자신은 여자친구를 사귀어도 누구한테 누가 될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는 이 친구를 가볍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으며, 특히 객지에 와서 고생하는 유민양을 데뷔때부터 줄곧 보살피고 있는 대표님은 늘 좋은 분이라는 얘기를 유민양으로부터 듣고 있다. 오빠나 마찬가지라서 항상 감사드리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형님으로 모시고 싶다. 그러니 교제를 허락해 달라....고 청산유수로 얘기를 하더랍니다. 중간에 몇번 버럭 화를 내려고도 했으나 전혀 겁을 먹거나 놀라는 기색도 없더라는군요(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대표의 회고입니다. "직접 만나 보니 잘 생긴데다 말도 똑부러지게 하고, 믿음이 가요. 그리고 참 이렇게 찾아와서 이런 얘기 하는 것도 남자답지 않습니까. 비슷한 일이 있으면 다른 놈들은 일부러 도망을 다니는데 말이죠." 그래서 "오냐. 좋다. 대신 잘 해줘야 한다"며 그냥 사귀라고 허락을 해 버렸다는 겁니다. 참 드문 일이기도 합니다.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친구의 소속사는 대표가 목포 출신이라 그 근방에서 뭔가 힘을 쓴다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가 '유민 소속사에 인사를 하러 가겠다'고 하자 주위의 '형님들'이 '너 그렇게 갔다가 그쪽 성질을 돋궈서 맞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우리가 주변에 차 대놓고 기다리고 있을테니, 위급해지면 신호를 보내라. 우리가 당장 들어가서 구해 오마' 하고 준비를 해 놨다는 겁니다. 평소 이런 분위기에서 생활을 했으니, 누가 웬만큼 화를 내선 겁을 먹을 일이 없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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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에게 최대의 시련은 남자 스타들과의 스캔들이 아니라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절 촬영한 영화 한 편이었습니다. '신 설국'이라는 영화였죠. 정말 쌍팔년도 스토리에다 쌍칠년도 촬영 기술을 갖고 만든 영화라 끝까지 보는 것이 인내력을 시험하는 그런 영화였지만 뒤늦게 한국에 수입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유민의 베드신이 나오기 때문이었죠.

더구나 수입사는 흥행을 위해 의도적으로 유민의 노출을 널리 널리 홍보했습니다. 현재 '잘가는 청순미의 스타 유민'을 보유하고 있던 소속사에서는 격분했지만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찍어 놓은 영화를 뭘 어쩌겠습니까.

3년 이상 한국에서 활동했지만 참 신기한 건 정말 더디 느는 한국어 실력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심지어 한국 남자친구까지 있었는데도 참 말이 늘지 않더군요. 결국 '올인'에 출연할 때까지도 한국어 연기는 더듬더듬 수준을 넘지 못했습니다. 알아듣기는 다 알아듣는데 입으로 나오는 말은 발전이 없으니 참 답답할 노릇이었죠. 그래서 결국 유민은 자신이 목표라고 말하던 '한국인 역할'은 데뷔작에서의 청각장애인 연기 외에는 단 한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유민은 누릴 건 다 누린 셈입니다. 2002년 월드컵을 전후해서 한국에 있는 일본 홍보대사 자격으로 고이즈미 총리를 만나기도 했고, 지금까지 한국 상륙을 시도했던 일본 연예인들 중에서 가장 높은 인기와 지명도, 수입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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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일본으로 돌아간 다음의 성적표는 당연히 한국 시절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애당초 일본에서 통하는 외모와 한국에서 통하는 외모에는 좀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연기력도 한국어로 연기할 때나 일본어로 연기할 때나 큰 차이가 없었다는 약점도 있었습니다. '어텐션 프리즈' 등 화제작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조연의 벽은 넘지 못했습니다.

최근 유민이 화제작 '아이리스'에 출연해 '올인'에 이어 이병헌과 다시 만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한국 팬들이 아직도 유민을 잊지 않았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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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댓글에 잠깐 등장했던 캐리 앤 론 도 이 계열의 연예인들입니다.

독일의 남녀 컨트리 듀오인 이들은 심지어 allmusic.com에도 프로필이 올라 있지 않을 정도로 독일 국내를 제외하면 초 무명 가수들입니다. 그런 이들이 뜻하지 않게 한국에서 대 성공을 거둔 것은 유동근-황신혜 주연의 드라마 '애인'이었습니다.

신감각 불륜 드라마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이 드라마에 이들의 노래 'I.O.U(I Owe You)'가 삽입되면서 이들의 인기는 하루 아침에 절정으로 치솟았습니다. 전 세계 앨범 판매량의 80% 이상이 한국에서 팔렸다는 거죠. 그 결과 내한공연까지 열게 되는 뒤늦은 호황을 맞았지만 이들은 드라마가 끝남과 동시에 다시 무명 그룹으로 돌아갔습니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아직도 애청곡으로 꼽히는 'I.O.U'. 참 그러고 보면 이렇게 '한국에서 먹힐' 곡들을 찾아내는 음악 프로듀서들의 능력도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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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우 중 하나로 역시 캐롤 키드 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캐롤 키드는 엘라 피츠제럴드를 위시해 흑인 아줌마들이 판을 치던 여성 재즈 싱어의 세계에서 백인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가수였습니다. 그나마 지금 꼽고 있는 부류의 가수들 중에서는 가장 지명도가 높은 편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한국에 왔을 때 보니 정말 인상 좋은 할머니더군요.


아무튼 키드 할머니는 'When I Dream'이 영화 '쉬리'에 삽입되면서 늘그막에 한국에서 최고의 재즈 가수로 각광받습니다. 내한 공연도 매진사례. 아무튼 1998년을 전후해 제시카의 Goodbye가 담긴 '약속', 이 'When I Dream'이 들어간 '쉬리', 그리고 사라 본이 부른 'A Lover's Concerto'를 비롯해 올드 팝의 명곡들이 주르르 박힌 '접속' 등 훌륭한 외국 곡을 들여온 사운드트랙이 대대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


O.S.T로 인기를 얻은 가수들을 제외하면 단연 첫 손에 꼽힐만한 것이 이 친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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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하트 하면 She's Gone, She's Gone 하면 스틸하트. 참 떼놓고 생각하기가 힘들죠. 그런데 한국 밖으로 나가서 'She's Gone'이라는 노래 제목을 대면 아는 사람이 참 드뭅니다. 록 밴드의 노래라고 하면 그제서야 '아~~~~~~~~~ 블랙 사바스의 노래?'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을 정도입니다. 밴드 이름을 가르쳐 줘도 '갸우뚱*갸우뚱'입니다.


초 고음 보컬 마이클 마티예비치가 이끌던 스틸하트는 1991년 발표한 'She's Gone'으로 한국에서는 어느 록 밴드에도 밀리지 않는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들은 진짜 '한국 가수'가 되어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도 없는 삼성영상사업단. 이들이 만든 삼성뮤직이라는 레이블에서 놀랍게도 스틸하트를 소속 가수로 둔 앨범을 내놨습니다. 세계적인 음악 레이블을 지향하던 삼성뮤직은 당시 꽤 많은 외국 가수들과 계약하고 음반을 냈습니다. 그 중에는 미국 국적이지만 독일과 터키 등지에서(만) 뜨거운 인기를 모으던 다섯 명의 남성들로 구성된 보컬 그룹이 있었습니다. 아마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백 스트리트 보이즈라고.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은 한국 가수였을 때에는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고, 계약이 풀린 뒤 자이브 레코드와 함께 본격적으로 미국 공략에 나서자 그때부터 무시 못할 반향을 일으킵니다. 만약 이들이 조금 더 '한국 가수'로 남아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똑같은 성공을 거뒀을까요, 아니면 그냥 무명 그룹으로 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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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시카 고메스 때문에 시작된 포스팅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참 곁길이 굵고도 길군요. 해외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들어와 인생의 반짝 하던 시기를 보낸 연예인들은 의외로 꽤 많습니다. 그런 친구들을 우리가 아니면 누가 기억해 주겠습니까. 다들 반가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시리즈의 1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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