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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 바둑용어지만 정석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예능에도 정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보여준 것이 31일 방송된 KBS 2TV '1박2일'입니다. 강호동은 은근히 이날 '예능의 정석'이라는 걸 들먹이는데, 사실은 들먹이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요체를 직접 몸으로 보여줬습니다.

나주 2부작에서 전반부의 히어로는 MC몽입니다. 속담 표현의 귀재로 등장하면서 그동안 퀴즈를 통해 '바보 형제' '무식한 원숭이'로 낙인찍혔던 체면을 확실하게 회복합니다. 그리고 2부째, 강호동이 '스태프 대 출연자'라는 초유의 구도를 마련합니다.

강호동이 동원한 '예능의 정석'이란 '여섯 명 중 세명은 밖에서 자야 한다'는 1박2일의 원칙에 대한 뒤집기에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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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하면 복불복, 복불복 하면 잠자리라는 것은 그동안 이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이라면 당연히 상식으로 받아들일 내용입니다. 그런데 강호동이 여기에 대해 전복을 시도한 것입니다.

여기서 강호동은 "왜 출연자만 밖에서 자야 하느냐"며 "스태프 대표와 6대6 대결"을 제의합니다. 출연자 6명이 이길 경우 출연자들은 전부 실내에서 자지만 스태프 80명이 모두 '텐트에서 자건, 박스를 깔고 자건' 야외에서 자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강호동은 '예능의 정석'에 나와 있는 비결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예능의 정석이란 책이 진짜 있다 해도 스태프와 대결하라는 얘기가 있을 리 없습니다. 강호동이 짚어낸 진짜 '예능의 정석'은 따로 있습니다. 그건 '반복은 지루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매주 3:3 복불복을 보아 온 시청자들로서는 무슨 말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날은 좀 다릅니다. 지지난주 방송 이후 줄곧 '1박2일' 멤버들은 게임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첫날 내내 벌칙을 고르기 위한 미션 플레이를 했고, 그 직전까지도 나주 곰탕 획득을 위한 게임 대결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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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결들과 비교해 볼 때 잠자리 복불복으로 어떤 종목을 한들, 이어지는 게임 대결이 지루함을 유발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MC중의 MC인 강호동이 간파한 것은 바로 그 부분이죠. 어떻게 편집을 해 놓더라도 31일 방송분은 '죽어라고 앉아서 게임만 하는' 형태가 될 것을 우려한 것입니다. 그래서 초유의 '스태프와 대결'이 추진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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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보여준 또 하나의 '예능의 정석'은 뭐든, 언제든 웃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1박2일'의 기본 정신이고, MC몽이 자다가 일어나서 보여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가 본보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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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제작진이 아니기 때문에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스태프와 출연자 6인조의 대결이 이뤄진 것이 사전에 짜여진 각본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방송 분량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전 계산대로라면 이날 방송의 최종 하이라이트는 출연자 6인조가 펼치는 꼬막캐기 대혈전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이날 방송에서 정작 꼬막 캐는 광경은 10분 정도밖에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촬영하는 시간이나 그동안의 노력에 비하면 10분은 대단히 아쉬움을 자아낼만한 길이죠. 이건 제작진의 입장에서 보면 '꼬막캐기'보다 훨씬 앞부분을 살리는게 시청률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당초 그런 볼거리가 예정돼 있었고, 남는 시간이 10분 정도일 거라고 예측했다면 꼬막캐기 같은 '독한' 아이템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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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이것도 예능의 정석 중 하나입니다. '뭐든 남게 찍어라'. 모자라는 것 보다 남는 것이 선이라는 것은 예능 프로그램의 철칙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 같으면 30분 넘게 편집해서 처리했을 꼬막 캐기도 10분 내외로 처리해 버릴 수 있는 '1박2일'의 위력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꼬막 캐기 같은 중노동은 방송에 10분 분량이 나가든, 30분 분량이 나가든 똑같이 힘들다는 점을 생각하면, 출연자들이 공짜로 놀면서 출연료를 챙겨가는 건 아니라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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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 물론 꼬막을 캐다가 "어머님들은 이걸 1년 내내 하세요?"라는 멘트를 잊지 않는 것도 '예능의 정석' 중 하나죠. 그리고 그 코멘트가 강호동의 입에서 나왔다는 건 그 '정석'을 꿰뚫고 있는 것이 누군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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