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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의 먹을거리들이 얼마나 오염되어 있는가...에 대한 위협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닙니다. 특히 최근들어 육고기보다 더 인기있는 곱창에 대한 얘깁니다.

사실은 방송 내용보다 더 충격적일지도 모르지만, 10일 MBC TV '불만제로'에서 곱창과 관련된 고발 내용이 방송됐습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상당수의 곱창집 곱창에서 가정용 세제의 주 성분인 계면활성제가 검출됐고, 이 계면활성제는 곱창의 구불구불한 구조 때문에 웬만큼 물로 씻어서는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몸에 안 좋은지는 그리 분명치 않습니다만, 계속 먹다 보면 위장 등 소화기관에 꽤 위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몸에 좋을 리는 없겠죠.

그런데 보고 있자니 아주 오랜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합니다. 20년 전, 그 곱창과 세제에 얽힌 얘깁니다. 세 가지 얘기가 되겠군요.



첫번째 얘기는 미국으로 유학가셨던 은사님의 추억담. 미국인들은 당연히 소 내장을 먹지 않으니 다 버리는 부위였는데 은근히 고향의 곱창전골이 생각났던 은사님과 친구가 내장을 잔뜩 얻어왔답니다.

내장이라는 것이 dung이 지나가는 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당연히 열심히 씻었답니다. 씻고 또 씻어서 내장이 뚫리는게 아닐까 싶을 때까지. 그리고서 갖은 양념을 하고 드디어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보글보글 끓는 전골. 그런데 한입 맛을 보니 입안에 도는 것은 바로 그 dung 맛이더라는 겁니다. 우엑! 씻는다고 그렇게 열심히 씻었는데도 내부의 융털 사이사이에 박힌 그 .... 아무튼 대실패.

그 뒤로 곱창전골집에 가서 물어 보니, "곱창은 고리를 걸어서 훌떡 뒤집은 다음 소금과 밀가루로 범벅을 해서 닦아 내야 dung이 다 빠진다"고 하더랍니다. 가끔 우리가 곱창을 씹으면서 '혹시 이게 그 무엇 아닐까'하는 부분은 절대 그 무엇이 아니라는군요. 그만큼 곱창이라는 것은 속 청소가 힘들고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셨다는 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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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얘기. 약 20년 전, 서울 시내의 한 대학교 옆으로 슬쩍 가면 J모 시장이 있었습니다(지금도 물론 있죠). 이 시장에는 다른 학교 근처의 술집들이 전부 문을 닫은 뒤에도 영업하는 술집들이 꽤 있어서, 양이 덜 찬 술꾼들이 몰려가곤 했습니다. 당연히 값도 저렴했고 곱창집, 국수집, 횟집, 감자탕집 등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워낙 2차, 3차 대상의 업소들이라 낮에 이런 가게를 가는 손님은 거의 없었죠. 그런데 전날 술자리 끝에 우산인가 뭔가를 곱창집에 두고 온 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이 오후 서너시쯤에 문을 열고 식당에 들어섰는데, 당연히 아무도 없는 식당 안에선 정적이 흘렀죠. 그래서 학생은 인기척을 찾아 주방 뒤쪽으로 난 마당으로 갔답니다.

처음 학생의 눈에 띈 것은 아기들이 수영장 대신 들어가서 노는 커다란 고무 대야를 앞에 두고 뭔가 열심히 빨래를 하고 있는 주인 아저씨의 뒷모습이었답니다. 그 다음, 거품이 부족한 듯 하이*이 봉지를 쏟아 붓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약 1,2초가 지난 뒤에야 학생은 문제의 빨래가 빨래가 아니라는 걸 눈치챕니다.

순간적으로 입에서 헉 소리가 나더랍니다. 당연히 인기척을 느낀 아저씨가 뒤를 돌아봤고, 범죄의 현장에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뻔질나게 드나들던 단골인 학생을 알아본 아저씨가 씨익 - 약간은 어색한 -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가 그렇게 소름이 끼치더라는군요.

그 자리에서 뒷걸음치던 학생은 아저씨의 "학생! 학생!"하는 소리도 뿌리치고, 우산이고 뭐고 다 잊고, 그냥 문을 박차고 달아났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전혀 도망칠 일은 아니죠. 아저씨가 증거인멸;;을 위해서 살인멸구;;를 시도할 일도 아니고...^^ 오히려 아저씨가 빌어도 시원치 않을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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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 뒤로 학생은 그집에 발을 끊었고, 주변의 친구들도 당연히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학생은 졸업을 했고, 취직도 했습니다. 근 10여년이 흐른 뒤, 학생은 옛 친구들을 만나러 학교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어찌 어찌 하다가 3차 쯤에서 다시 옛 추억의 곱창집...으로 가게 된 거죠. 뭐 당연히 잊었을 리는 없지만 워낙 오래 전 일이고,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나 궁금하기도 했던, 이제는 학생 아닌 직장인 아저씨도 자연스럽게 뒤를 따랐습니다. 물론 약간 께름칙하기도 했겠죠.

자리를 잡고 앉아서 주문이 끝났을 때, 학생 아닌 직장인 아저씨는 주인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짧은 순간, 두 사람의 눈길을 타고 수많은 사연이 교차했죠. 학생(인제 귀찮아서 그냥 이렇게 씁니다)은 금세 시선을 피했습니다. 아저씨는 짐짓 사이다를 서비스로 주더라는군요.

그리고 술자리가 이어졌는데, 학생은 그래도 이 곱창을 집어 먹는 건 어쩐지 찜찜하더랍니다. 그래서 묵묵히 소줏잔을 기울이다가 화장실을 갔는데, 나와 보니 아저씨가 손목을 잡아 끌더라는군요.

학생: 왜, 왜 이러세요.
주인: 학생, 미안해. 사실 나도 그 뒤로 반성 많이 했어.
학생: 뭐, 뭐, 뭘요;;
주인: 에이, 그날 다 봤잖아. 사실 나도 그게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란거 알아.
학생: ...;;
주인: 그래서 학생이 그날 너무 놀라는 거 같아서, 나도 바꿨어.
학생: 뭘 바꿔요?
주인: 그거 있잖아. 하이*이 인제 안 써. 퐁*으로 바꿨어. 괜찮아. 인제 먹어도 돼.

... 뭐 제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닙니다만, 아무튼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아, 그리고 '불만제로' 팀에 따르면 빨래 하는 세제 대신 설거지용 세제를 쓴다고 해서 안전한 건 절대 아니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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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는 10여년 전 제가 직접 겪은 이야기. 당시 야구 취재 때문에 대구에 한달에 두번 이상 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쪽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대구 하면 막창구이죠. 경기가 끝난 늦은 밤이면 막창구이 집으로 걸음을 옮겨놓곤 했더랬습니다.

유명한 막창집인데, 막창이야 본래 쫄깃쫄깃한 맛에 먹는다고 하지만 함께 주문한 곱창도 꽤 질겼습니다. 서울에서 먹던 곱창과는 큰 차이가 있었죠. 그래서 물었습니다.

나: 서울 곱창들은 연하던데 이집은 왜 이렇게 질긴가요? 곱창과 대창 차이인가요?

그랬더니 사장님이 픽 웃으면서 하는 말.

사장: 오래 살고 싶으면 연한 곱창 너무 좋아하지 마소.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사장: 내가 소 밥통 창자 주무른지 25년인데, 약 쓰지 않으면 곱창이란게 꾸버 놨을 때 연해 질 수가 없는기라.

그리고는 그 다음부터 무슨 말을 해도 더 이상 얘기를 안 하더군요. 그러니까 자기네 막창이나 곱창은 약품 처리를 하지 않은 것이니 그냥 먹어도 좋다는 것이겠죠. 아무튼 그때도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곱창이 도마에 오르니 참 별 생각이 다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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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럴 때마다 먹을 것 갖고 장난하면 천벌을 받아도 싸다는 말이 나오지만, 참 아직도 이런 사건이 TV에 나오는 걸 보면 짜증이 다시 솟구칩니다.

다행히 꽤 많은 업소들의 곱창에서 이런 계면활성제가 검출되지 않았고(이건 모두 돼지곱창의 얘깁니다), 소곱창 집 중에서는 검출된 곳이 없다고 합니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1. 세제는 세척보다는 돼지 특유의 냄새를 없애는 목적으로 쓰인다

2. 돼지곱창은 60여군데, 소곱창은 10군데를 조사한 걸 보면 역시 제작비가 변수다

정도겠군요. 소곱창은 안심하고 드셔도 좋을 지 모르겠지만 워낙 비싸서... 아무튼 결과적으로 세제로 빡빡 닦은 곱창이 상에 오르는 데에는 결국 경제 원칙도 큰 몫을 합니다. 세제 아니라 사람 손으로, 밀가루와 소금을 동원해 씻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건 긴 시간의 힘과 노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많이 들고, 이는 식당에서 파는 곱창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즉 앞으로 위생적인 곱창을 공급하려면, 곱창구이의 생산 단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조금 돌려서 생각하면, 이 방송 이후에도 가격 인상을 하지 않는 곱창집은 종전의 생산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듯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소비자가 깨끗한 곱창을 먹기 위해서는 그 위생에 들어가는 가격을 감수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가격은 싼게 좋고, 음식은 깨끗한게 좋고... 세상이란게 본래 항상 좋은 것만 가질 수는 없는 거죠.

...아무튼 저는 저런 일을 듣고 보고도 아직 어디 식당에 가면 곱창을 처걱처걱 잘 먹습니다. 전골이든 구이든 순대 볶음이든 다 좋아합니다. 특히나 추운 겨울날 먹는 곱창전골과 소주 한잔(딱 한잔입니다)은 마음까지 훈훈해지죠. 어째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머리는 못 믿는데 몸이 그냥 믿어 버리는 걸까요?

 

예전에 반찬 재활용 식당에 대해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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