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KBS 2TV '아가씨를 부탁해'가 화제 만발입니다. 윤은혜를 둘러싼 미스캐스팅 논란에서부터(...별로 미스캐스팅같지 않은데), 연출이 닭살이라든지(...뭐 이런 드라마가 그렇지), 연기가 발연기라든지(....사실 이런 드라마 보면서 연기력 따지는 것도 좀) 예상할 수 있던 모든 얘기들이 다 나오고 있는 듯 합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꽃보다 남자'의 성공에 용기백배한 KBS 드라마국의 기획 드라마 2탄이라는 점이 분명하고(물론 외부 기획 중에서 선택한 것이죠), 그런 만큼 이 드라마의 한계와 표적 또한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좀 심한 것이, 장면 장면마다 죄 너무나 어디서 본 듯한 친숙함이 흘러 넘치더군요.

물론 공감하시는 분도, 안 그런 분도 있을 겁니다. 아무튼 제가 '아가씨를 부탁해'를 보면서 느낀 기시감(데자부)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하긴 '일본 드라마 짜깁기'는 그리 새로운 현상은 아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초간편 설명을 곁들이지면, 한국의 패리스 힐튼인 강혜나(윤은혜)는 강만호 회장(이정길)의 사실상 유일한 후계자(물론 강회장의 후처-아들-딸로 이어지는 경쟁자가 하나 있긴 합니다)로 온 아시아를 뒤흔드는 핫 셀러브리티입니다.

그 반대쪽에는 전직 제비족이지만 손을 씻고 여의주(문채원)네 꽃집에 얹혀 살고 있는 서동찬(윤상현)이 있습니다. 하지만 손을 씻은 대가는 사채업자들의 집요한 빚 독촉이죠. 그러던 동찬이 꽃배달을 가다가 혜나의 '싸가지 없는 운전 매너' 때문에 얽혀 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강회장이 동찬에게 혜나의 '사람 만들기'를 목적으로 동찬을 혜나의 전속 집사로 고용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 마지막 시퀀스가 좀 이해가 안 가긴 하지만(드라마를 봐도 당연히 이해가 안 갑니다), 어쨌든 드라마가 원래 저렇게 되게 되어 있었으니 그냥 갈 길을 가는 겁니다. 거기에 토를 달아 봐야 별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너무 노골적으로 일본 드라마의 만화적인 분위기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드라마 도입부의 장중한 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남자 목소리의 나레이션은 수많은 일본 드라마에서 써먹은 테크닉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드라마는 당연히 '부호형사'입니다. '꽃보다 남자'에도 많은 영향을 줬던 이 드라마는 어마어마한 재벌가의 손녀딸인 후카다 교코가 형사가 되어 '이해하기 힘든 서민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 가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해가는 하이 코미디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후카다 교코가 극중에서 살고 있는 저택입니다. 네버랜드는 여기 비하면 콘테이너 임시주택 수준이군요. 저 넓이에다 한쪽에는 독자적인 항구까지 갖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윤은혜가 살고 있는 '골프장, 테니스장, 수영장이 갖춰진 40만평짜리 저택'을 보다 보니 '부호형사'가 가장 먼저 생각났습니다.

그 다음은 당연히 많은 분들이 떠올리실 '메이의 집사' 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올해 일본에서 방송되어 상당한 호응을 얻었고, 국내의 일드 마니아들이 '꽃보다 남자'의 금단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많이 찾았다는 작품입니다.

내용인 즉 귀족가문의 영양들만이 다닐 수 있는 기숙학교(물론 가상)가 있고, 이 학교에는 학생 한명마다 식사와 의전을 책임지는 집사가 하나씩 있다는 기본 설정에서 시작됩니다. 이 학교에 어쩌다 너무나 평범하게 자란 메이라는 소녀가 다니게 되고, 그 어설픈 메이에게 어쩌다가 최고 중의 최고인 집사가 붙습니다. 당연히 메이와 집사 사이에는 뭔가 띠용띠용한 감정이 생기게 되겠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집사 역의 미즈시마 히로(당연히 가운데)는 차세대 기무라 다쿠야(물론 너무나 지겨운 호칭이기도 합니다)의 선두주자로 단연 부각되며 톱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차기작인 '미스터 브레인'에서는 기무라와 공연하기도 했더군요. (하지만 이번엔 좀 바보 캐릭터더라 전작 같은 폭발적인 반응은 기대하기 힘들겠더라는...)

아무튼 '메이의 집사'는 철저하게 '아가씨들의 판타지'에 입각한 드라마입니다. 공주 옷을 입고 하늘하늘 뛰어다니던 아가씨.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이때 준비돼 있던 미남 집사가 나직한 저음으로 "비를 맞으면 건강에 해로우십니다, 아가씨"하며 우산을 펼쳐 줍니다. 정 우산이 없으면 "전 비같은 거 맞아도 괜찮습니다. 아가씨만 멀쩡하시다면" 하면서 재킷을 벗어 씌워주겠죠. 혹시 길에서 깡패를 만난다, 당연히 "네 이놈들, 우리 아가씨에게 감히 손가락 하나라도 댈 셈이냐! 내 목숨을 걸고 지킬테다!"하며 눈에서 불이 뿜어 나옵니다.

...네. 제정신을 가진 남자 시청자들은 절대 참고 볼 수 없는 드라마 맞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아가씨'와 '집사'라는 이 두가지만 보더라도 '아가씨를 부탁해'와 '메이의 집사'의 관계는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미즈시마 히로와 윤상현의 캐릭터 차이, 또 정일우라는 새로운 인물의 보강으로 스토리 라인은 절대 비슷하지 않을 구조를 갖췄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드라마는 그냥 느끼할 정도로 달디 달게, 그냥 판타지의 세계로 달려가 버리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볼 사람들도 그 이상의 생각은 할 능력이 없거나, 할 능력이 있어도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만큼은 잠시 어디다 '생각'을 접어 두고 보실 분들이 대부분일테니, 굳이 이 드라마에 '생각'을 심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그런데 강만호 회장의 캐릭터나 굳이 '인권 변호사'라는 명함이 붙은 정일우의 캐릭터는 좀 우려를 낳게 합니다. 괜히 이 드라마를 가지고 노블리스 오블리제(물론 첫회에서는 비아냥의 대상으로 쓰였습니다만)를 얘기하거나 하는 건 오히려 참기름을 물에 녹이려는 부질없는 노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가씨를 부탁해'는 걸작을 지향하지도 않고, 지향할 수도 없는 드라마입니다. 10만원짜리 떡볶이를 만들어 봐야 별 소용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저기까지 가는구나' 하면서 너털웃음을 웃는게 시청자들의 적절한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닭똥을 치우는 혜나의 모습을 보다 보니 바로 패리스 힐튼의 '심플 라이프'가 떠오릅니다. 사실 패리스 힐튼은 아무 생각 없어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냉혹한 사업가 기질이 돋보입니다. 힐튼가의 부를 축내는 천덕꾸러기 행세를 하지만 사실은 반대로 자신을 상품화해서 힐튼 가의 재산을 오히려 늘려 주고 있죠.

뭐 이런 사실을 반영하는 건 나쁘지 않겠지만 강만호 회장의 문제(건강? 피습?)로 그룹에 위기가 닥치고, 갑자기 경영의 천재로 돌변한 혜나양이 남자 주인공들의 도움으로 가문을 지키는 처녀 회장으로 돌변한다... 뭐 이런 진부한 진행만은 좀 피해 줬으면 합니다. 그건 '보자 보자 하니까...'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거니까 말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참, 이 만화와는 그냥 제목만 똑같을 뿐 내용은 거의 겹치는게 없다는군요. 제가 직접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