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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본 총선에서 만년 여당 자민당이 침몰하고 사실상 최초의 정권교체가 일어난게 지난 8월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조용히 묻혀 지나간 사건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이쪽으로 가져올 타이밍을 놓쳐 버렸는데, 바로 일본 최고의 스타, 여자들이 매년 뽑는 '최고의 남자 연예인'에서 10년 넘게 일본 최고의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는 기무라 타쿠야와 소속 그룹 SMAP이 관련된 사건입니다. 만약 한국에서 SMAP 정도로 인기 있는 연예인들이 여당인 한나라당을 공개 지지하며 '구관이 명관'이라고 옹호하고 나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인기 있는 연예인의 한마디 한마디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가 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일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굳이 이름을 달자면 'SMAP의 자민당 지지사건'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이미 전해 들은 분도 있겠지만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비교할만한 한국 사례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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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타의 한마디

1987년 6월 10일, 민주정의당 전당대회장에 당대 최고 인기 코미디언 김병조가 등장했다. 그가 “민정당은 국민에게 정을 주는 당, 통민당(당시 통합 야당이던 통일민주당)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당”이라고 말하자 박수와 웃음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사실이 다음 날 언론에 보도되자 대중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김병조는 하루아침에 방송·광고계에서 퇴출돼 '자숙'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받은 대본대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도 소용없었다.

일본의 총선 열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 8월 26일, 대표적인 우익 언론인 산케이 신문에 희한한 광고가 실렸다. 신문을 완전히 싼 4페이지짜리 래핑 광고. 겉보기엔 일본 최고의 인기 그룹인 남성 5인조 스마프(SMAP)의 새 음반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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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안쪽 두 페이지 내용.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방법'이란 제목의 글이 SMAP 멤버들의 명의로 실려 있었다. 내용은 '경기가 좋으면 총리도 인기가 있고, 경기가 나빠지면 인기도 떨어진다' '행복한 미래는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남 탓하기는 쉽지만 막상 자기가 직접 하려 하면 뭐든 힘든 법이다' 등등.

긴 글 어디를 봐도 '자민당'이나 '민주당'이라는 이름은 전혀 나오지 않지만 누가 봐도 의미는 불 보듯 선명했다. 위기에 몰린 집권 자민당을 응원하는 노골적인 메시지였던 것이다.

서구 언론들은 이런 기이한 현상을 크게 보도했다. 일본 주오 대학의 스티븐 리드 교수는 영국 텔레그래프지와의 인터뷰에서 “스마프가 정치 캠페인에 동원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자민당이 얼마나 절박했는가를 보여준 증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해외에서의 이야기다. 정작 일본 내에서는 이 사건을 거론한 언론 보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 광고가 실린 신문은 품귀현상 속에 인터넷 경매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됐지만, 그 내용에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최고 인기 코미디언이 강요된 말 한마디로 방송에서 퇴출되는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만약 한국의 인기 아이들 그룹이 선거를 앞두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글 한 줄이라도 미니홈피에 쓴다면 그 다음 날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한해협 양쪽에서 '연예인의 발언'에 실리는 무게가 이토록 다른 이유가 궁금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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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펼쳐 놓으면 이런 내용의 광고입니다.

위에 대략 정리를 했지만 주제만 얘기하면 '지금 있는 사람들도 선거로 뽑은 정치인들 아니냐. 사실 막상 일 시켜 놓으면 거기가 거기다. 구관이 명관이다. 그냥 지금 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지해라. 바꿔 봤자 별수 없다...' 이런 내용입니다.

정말 자민당이 얼마나 다급했나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죠. 하지만 일본의 수많은 신문-방송 가운데 이 문제를 짚고 나선 곳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블로고스피어가 좀 시끄러웠고, 그걸로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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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팬들은 그 래핑 광고가 담긴 신문을 서로 사고 파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일본 옥션의 매물 페이지입니다. 꽤 전에 캡처한 화면이라 지금은 다 없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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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신문이 옥션에서 거래될 정도로 인기 높은 SMAP인데 정작 그 메시지는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다니.... 이건 광고를 낸 쪽이 서운해해야 할 일인지, 아니면 SMAP 쪽에서 서운해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이 사건은 일본 정치를 바라보는 해외 매체들 사이에서만 화제가 됐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쟈니즈쪽에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광고를 한 것이냐'고 문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대답은 '이건 아무런 정치적인 의도가 없는, 그냥 SMAP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글일 뿐'이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솔직히 제정신인 사람 가운데 저 글을 SMAP 멤버들이 직접 썼다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누가 보나 쟈니즈와 극우 언론 산케이의 합작품이겠지만 이런 일에 말려들어 이름을 내주고도 아무 소리 없는 SMAP 멤버들이나, 거기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 SMAP 팬들이나, 언론 매체들이나 한국적인 시각에서 보면 참 신기합니다.

한국같으면 이런 눈가리고 아웅하는 수작이 통했을까요. 어림도 없겠죠.

문득 떠오르는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윗글에 나오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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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1987년 6월10일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하신 말씀은 이런 식으로 보도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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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내용이었지만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1987년 6월. 바로 뜨거웠던 '6월 항쟁'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앞선 4월29일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선언이 있었고, 6월10일 전당대회에서 노태우 후보가 민정당의 차기 대권 후보로 지명됐습니다. 이때를 전후해 민심은 들끓었고, 마침내 6월29일 노태우 후보는 당시 헌법의 대통령 간접선거 조항을 포기하고 직선제 개헌을 통해 87년 연말 대선을 치르겠다고 선언합니다.

아무튼 이건 좀 지난 다음 얘기고, 바로 다음날 신문 만화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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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시청자들의 항의로 MBC는 김병조씨의 방송 출연을 제한할 것을 검토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김병조씨가 출연하는 방송은 모두 MBC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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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일만인 6월13일. 김병조씨는 스스로 '당분간 쉬겠다'고 선언합니다.

'지구를 떠나거라' 등의 유행어, '나도 리도 샴푸를 써야겠다'는 등의 광고로 세상에 거칠 것이 없던 인기 코미디언이 하루 아침에 야인이 돼 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연예인이 무슨 힘이 있나. 시키는데 어떻게 안 하냐"는 항변은 일면 일리가 있는 얘기였지만 성난 여론은 그런 변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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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나는 이름들이 몇명 더 있지만, 아무튼 김병조씨는 당시의 뜨거웠던 정치 열기에 애매하게 희생된 케이스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한국과 너무나 대조적인 일본의 반응. 과연 어디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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