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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에 한번씩 되풀이되는 희망고문의 역사가 드디어 시작됐습니다. 물론 2002년은 예외로 치고 하는 얘깁니다. 매번 월드컵 조추첨이 있을 때면 '한국의 탄식'이 시작됐습니다. 기억하시는 분은 기억하시겠지만 한번도 한국은 '죽음의 조'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건 사실 월드컵이라는 대회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너무도 당연한 거였죠. 정상적으로 조편성이 될 경우 탑시드(말하자면 세계 8강) 팀 하나와 바늘구멍같은 유럽 예선 통과팀 하나를 같은 조에 넣고 시작해야 하는게 정상이니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 같은 축구 약소국의 입장에선 월드컵 조편성은 '죽음의 조'가 기본이고 어쩌다 아주 운이 좋으면 행운의 조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무슨 전문가는 절대 아니지만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상식선에서 볼 때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맞붙게 된 2010년 조편성은 대단한 행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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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다른 조는 어떤가 한번 비교해 봅니다.

A조 남아공 멕시코 우루과이 프랑스
B조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한국 그리스
C조 잉글랜드 미국 알제리 슬로베니아
D조 독일 호주 세르비아 가나
E조 네덜란드 덴마크 일본 카메룬
F조 이탈리아 파라과이 뉴질랜드 슬로바키아
G조 브라질 북한 코트디부아르 포르투갈
H조 스페인 온두라스 칠레 스위스

척 보기에도 우리와 비슷한 처지인 아시아 대표들, 일본/북한/호주는 그 자리에서 묵념 분위기입니다. D조의 호주, G조의 북한은 맡아놓은 최하위에다 냉정하게 말하면 승점 1도 그리 쉽지 않아 보입니다. E조 일본의 16강은 그 자리에서 포기 수준이군요.

이 세 이웃에 비하면 한국은 - 물론 절대 무시할 수 있는 나라들은 아니지만 - 한결 마음이 편합니다. 나이지리아와 그리스는 그나마 아프리카와 유럽 국가들 중 상대해볼만 하다고 꼽히는 팀들이고 아르헨티나 역시 스타 감독 마라도나씨의 활약(?) 덕분에 정상적인 위력을 뽐내지 못하고 있으니 '지더라도 개망신은 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한국은 희한하게도 월드컵 본선에서 두번째 상대한 나라에게는 웬만하면 성적이 나아졌다는 희한한 징크스(?)도 갖고 있습니다. 과연 아르헨티나에게도 이게 통할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세 차례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모두 첫판에선 졌지만 두번째 대결에선 비기거나 이겼습니다.^^ 그러고 보니 2002년 독일에게 져서 4강 탈락했던 걸 깜빡했군요. 수정했습니다.)

역대 조편성과 이번 조편성을 비교해 보시면 이번 조가 그나마 얼마나 편한 조인지 알 수 있습니다. 1986년 이후를 보겠습니다. 조 추첨 전 언론이 자꾸 남아공 얘기를 해서 짜증이 났습니다. 솔직히 2002년에 포르투갈 축구 팬들이 '한국과 같은 조'라는 소식을 듣고 처음엔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현실적으로 제가 살펴 본 1986년 이후, 주최국이 16강에 못 간 대회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주최국'은 브라질 이상으로 무서운 존재입니다. 남아공과 같은 조가 안 된 게 대단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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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아르헨티나(1대3패), 불가리아(1대1), 이탈리아(2대3 패), 한국
아르헨티나-서독 결승서 아르헨티나 우승, 이탈리아 16강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조편성입니다. 물론 이때는 조3위도 잘하면 16강 진출이 가능했기 때문에 2무1패만 거뒀어도 가능성이 있었다는 아쉬움도 따릅니다. 아무튼 당시의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강. 마라도나가 5골, 발다노가 5골을 넣으며 우승해버립니다.
개최국인 멕시코는 본래 잘 하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조 1위로 8강까지 승승장구하다 이 대회 준우승국인 서독에게 승부차기로 패해 운이 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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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벨기에(0대2 패), 스페인(1대3 패), 우루과이(0대1 패), 한국
벨기에, 스페인 16강. (서독 우승)

스페인이야 여전하지만 당시의 벨기에는 지금과는 천양지차. 이탈리아 국가대표를 마다하고 벨기에 소속으로 뛴 엔조 시포(위 사진)라는 세계 최고 레벨의 게임메이커가 뛰고 있었습니다. 86년 대회에서 4강에 올랐던 막강한 팀이었죠. 물론 그 벨기에도 16강에서 돌풍이 그쳤지만 한국에겐 버거운 조편성.
뭐 이번엔 별 의미 없지만 개최국 이탈리아의 성적은 4강(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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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스페인(2대2) 볼리비아(0대0) 독일(2대3 패), 한국
독일, 스페인 8강 (브라질 우승)

당연한 얘기지만 스페인과 독일을 상대로 4골을 넣으며 분투했다는 것 때문에 94년의 김호 사단은 2002년을 제외하곤 가장 선전한 팀으로 꼽혔습니다. 특히 스페인전에서 서정원의 동점골은 온 국민을 환호로 들끓게 했죠. 비록 탈락했지만 이 끔찍한 조편성에선 할만큼 했다는 평입니다.
개최국인 미국은 스위스, 루마니아, 콜롬비아와 같은 조가 되어 1승1무1패, 조3위로 16강에 오릅니다만 바로 브라질을 만나 꼬리를 내립니다. 어쨌든 당시 미국 전력으론 과분한 16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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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멕시코(1대3 패), 네덜란드(0대5 패), 벨기에(1대1), 한국
멕시코 16강, 네덜란드 4강

스포츠에서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 대회. 예선과 평가전까지만 해도 사상 최강을 운운하던 대표팀은 본선 직전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전력의 핵인 스트라이커 황선홍이 부상으로 출전 불가 상태(2002년 한국과의 평가전 이후 지단이 빠진 프랑스의 운명과 유사합니다)가 되는 비운을 맞습니다. 게다가 첫판인 멕시코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하석주가 곧바로 퇴장당하면서 분위기는 급냉각. 결국 세 골을 내주며 역전패.
이 두 사건만 없었어도 히딩크 사단에게 '오대영'의 참변을 당할 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경기를 계기로 히딩크 감독을 영입하게 된 게 전화위복이라면 축구의 신의 섭리는 참 오묘하다고 해야 할까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주최국 프랑스는 우승. 좋은 전력이었지만 무적 브라질까지 이긴 건 좀 이상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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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폴란드(2대0 승), 미국(1대1) 포르투갈(1대0 승), 한국

너무나 다들 생생하게 기억하시니 자세한 내용 생략. 목이 터져라 외친 감격도, 지저분한 잡음도 다 기억하실테니 생략. 조편성때까지만 해도 포르투갈 뿐만 아니라 폴란드 국민들도 만세를 외쳤겠죠 아마.
공동개최국인 일본 역시 벨기에 러시아 튀니지와 한 조를 이뤄 무난히 16강 진출. 글쎄 1986, 90년 때의 벨기에가 아니더라니까요. 아무튼 국제대회에서 일본의 조편성 운빨은 늘 한국을 앞질렀습니다. 이번엔 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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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토고(2대1 승), 프랑스(1대1), 스위스(0대2 패), 한국
스위스 16강, 프랑스 준우승

그동안 워낙 극악의 조편성에 시달려 온 터라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몰랐던 거죠. 스위스가 이 무렵부터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는 걸. 아무튼 1승2무 세 팀에 토고가 3패 팀이 되는 경우를 예상해 골득실을 조절하면 16강이 가능하겠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이건 '결과론'이 아니라 대회 직전에 웬만한 축구팬이면 다 예상(기대)했던 결과입니다. 그래서 토고전의 후반부에 아드보카트 감독이 수비 위주의 안전 플레이를 했을 때 탄식이 나왔던 거죠. 이건 이겨도 16강은 못 올라간다...는 슬픈 예감 때문에.
그런데 이 예상이 너무 정확하게 맞아 들어간겁니다. 스위스-프랑스, 한국-프랑스가 비겨 버린 가운데 토고를 상대로 한국은 2대1, 프랑스와 스위스는 2대0의 성적을 거둔 거죠. 한국은 스위스와 비겨도 조3위로 탈락하는 운명이 됐고, 결국 맞불을 지르다 2대0으로 패하고 맙니다. 물론 이 결과로 아드보카트를 탓할 수는 없겠지만, 토고전에서 한골을 더 얻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길이 길이 남습니다.
역시 이번엔 별 의미가 없지만 개최국인 독일은 4강(3위)에 오릅니다.



2010년엔 결국 C조의 미국이나 F조의 뉴질랜드 정도가 우리보다 나은 조편성으로 보일 뿐, 이만하면 해볼만 하다는 쪽으로 다시 기대를 걸어 보렵니다. 이번엔 정말 주최국이 아닌 위치에서 처음으로 16강에 갈 수 있을지... 허정무 사단 빠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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