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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적인 예매율, 대출을 받아서라도 반드시 보고 말겠다는 영화 팬들의 의지가 이렇게 뜨겁게 느껴진 것도 참 오랜만입니다. 바로 '아바타' 얘깁니다. 제왕 제임스 카메론의 11년만의 신작. 이미 흘러 넘칠 정도의 호평과 찬사.

영화 관객 뿐만 아니라 모든 소비자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갖고 있는 재화로 가장 효율적인 소비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호평받는 상품에 끌리게 되고, 제임스 카메론과 같은 명품 브랜드(패션으로 치자면 샤넬 정도 되려나요^)를 신뢰하게 됩니다. 패션 명품과 차이가 있다면 한국에선 어쨌든 똑같은 가격이라는 이점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뭐라고 하건 '아바타'는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는 건 눈치채셨을 겁니다. 물론 어떤 영화라도 '이걸 보라고 추천한 개**들은 뭐냐'고 투덜대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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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으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전직 해병 제이크(샘 워딩턴)는 미 정부의 부름을 받고 죽은 형의 대타로 판도라 행성에 갑니다. 6년간 잠자며 날아간 판도라 행성은 지구인들이 탐내는 희귀 자원의 보고로, 자원 채굴을 위해 진출한 기업과 그들이 고용한 용병들이 원주민(즉 판도라 행성에 사는 외계인)들과 끊임없는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행성에 파견된 생물학자 그레이스(시고니 위버)는 인간과 원주민의 DNA를 합성해 만든 아바타를 동원해 인간과 원주민 사이의 대화 창구로 삼으려 합니다. 곡절 끝에 제이크의 아바타는 원주민 추장의 딸 네이티리(목소리는 조 살다나)를 만나 그들의 부락으로 가게 됩니다. 한편 용병의 리더 쿼리치 대령(스티븐 랭)은 제이크에게 언젠가 있을 무력 충돌에 대비해 원주민들을 낱낱이 탐색해 보고하라고 유혹합니다.

대략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만 아무튼 영화의 설정은 이보다 훨씬 정교하고, 설득력있게 되어 있습니다(괜히 카메론을 제왕이라고 부르는 건 아닙니다). 아무튼... 이 '아바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대표적으로 네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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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니메이션의 미래다?

카메론이 '반지의 제왕'의 골룸을 보고 이 영화를 만들어도 좋겠다고 판단했다는 건 이미 유명해진 얘깁니다. '아바타'의 60% 가량을 차지하는 CG 화면은 실사와 비교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일각에서는 '베오울프'나 '크리스마스 캐럴' 등 제멕키스의 작품들과 비교하며 '아바타'의 우수성을 칭찬하기도 합니다. 사실 비슷한 노선을 걸어온 '파이널 판타지' 계열과 비교해 봐도 '아바타' 쪽의 손을 들어 주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엔 살짝 함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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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위에서 든 영화/애니메이션들이 가장 큰 비판을 받은 부분은 바로 '인간의 얼굴'이었습니다. 얼굴의 솜털까지 표현할 정도로 정교한 애니메이션이 동원됐지만, 이들 중 어떤 작품도 인간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너무도 실망스러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죠.

이를 모를 리 없는 카메론은 제멕키스처럼 우직하게 맞붙는 대신, 슬쩍 피해가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아바타'에 등장하는 디지털 배우(즉 아바타들)들의 연기가 호평받은 것은, 그들이 '인간의 얼굴'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바타'에서도 판도라 원주민 아닌 진짜 인간들의 얼굴을 디지털로 표현하려 했다면, 제아무리 카메론이라도 망신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골룸도 진짜 인간의 얼굴이면 그런 호평은 없었을 겁니다.) 이런게 바로 제왕의 지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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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간의 얼굴이 아니면서도, 이게 누구의 얼굴인지는 다 알아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미래는 아니다'입니다. 혹자는 '현재 블록버스터의 첨단 기술 수준을 1이라고 봤을 때 카메론이 사용한 것은 20'이라고 극찬하기도 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카메론과 이 분야의 경쟁자들 사이에 결정적인 기술적인 격차는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단지 이쪽이 좀 더 현재 상태에서의 기술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한 것 뿐입니다. 좀 더 영리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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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정주의 서부극의 변신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줄거리를 들으면 제일 먼저 '포카혼타스'를 떠올리고,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은 '라스트 사무라이'를 연상합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더스틴 호프만의 고전 '작은 거인'이나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 처럼 인디언(네이티브 아메리칸이라고 써야 하나...)들의 시각에서 본 서부극 영화들과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20세기 이후 인류 역사에 일어난 급격한 변화는 종전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한 윤리를 요구합니다. 이를테면 시험관 아기나 생명 복제에 대한 부분이 그랬고, '인간은 다른 동물과 지구를 나눠 쓰고 있다. 인간의 생존권과 동물의 생존권이 대립할 때 동물의 편을 들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환경보호론에 대해서도 판단이 필요합니다.

'아바타'가 제시하고 있는 상황은 이보다 한발 더 앞서 있습니다. 누군가 외계에서, 인간과 상당히 유사한 외형을 갖추고,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번식하는 지적 생명체를 발견했을 때, 과연 이들을 '외계인 괴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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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행성의 원주민 정도라면 큰 고민이 필요 없을 듯도 하지만 가령 어느 외계 행성에서 발견한 오랑우탄 수준의, 혹은 개구리 수준의, 혹은 지렁이 수준의 '외계인'에 대해 각각 어느 정도나 '예우'를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아바타'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같은 인간들끼리도 경멸하고 차별하는 인종주의자들이나 '인디펜던스 데이'에 환호하는 수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얘깁니다. 그리고 카메론은 그런 논의가 결코 흥행에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지 그런 도덕에 대한 문제를 '시사'하는 선에서 더 나가지 않습니다.

사실 '아바타'가 영화니 그렇지만 어느 별에서 발견된 '외계 지렁이의 생존권'을 위해 지구인에게 총질을 해 대는 사람을 우리가 현실에서 만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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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타쿠에 대한 풍자다?

사실 '아바타'라는 제목부터 현실 세계의 아바타들을 연상하게 하죠. 지난 여름 개봉했던 영화 '써로게이트'는 '아바타'와 출발점이 똑같은 영화입니다. 단지 그 아바타들이 우주 아닌 지구의 거리를 걸어다니고 있다는 게 차이가 날 뿐입니다.

저는 '아바타'를 보다가, 아바타와의 접속 상태에서 풀린 제이크가 '얼른 먹고 빨리 다시 접속해야지'라는 자세로 허겁지겁 음식을 먹고, 그레이스가 제이크에게 '대체 너 마지막으로 목욕한게 언제냐'고 물을 때 빵 터졌습니다. 삼시 세끼를 컵라면과 초코파이로 때우고, 며칠째 감지 않은 머리와 면도 따위는 잊은 몰골로 게임 속 엘프가 되어 있는 'PC방의 아저씨들'이 저절로 떠올랐기 때문이죠.

여기에 대해선 따로 써놓은 글이 있어 이 정도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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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임스 카메론의 자기 복제다?

이 영화에 비판적인 사람들(그리 많지는 않지만)은 '카메론이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 비교할 때 새로운게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평생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면서도 거장으로 대접받는 사람이 있는데 카메론을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뭐 그만큼 완벽주의자 카메론에 대한 기대가 두텁다는 뜻이겠죠. 아무튼 약간 다른 얘기지만, '아바타'를 보면서 카메론이 지금까지 내놓은 작품들의 편린을 살펴 보는 건 꽤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 시고니 위버가 나온다는 건 0.1초 안에 '에일리언 2'를 생각하게 합니다. 당초 쿼리치 대령 역으로 내정됐던 마이클 빈이 탈락한 것도 "시고니 위버에다 마이클 빈까지 나오면 이건 누가 봐도 '에일리언2'"라는 비판을 의식한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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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미셀 로드리게스가 연기하는 트루디 캐릭터에서 '에일리언 2'의 흔적을 발견하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체구는 작지만 남자들을 압도하는 라틴 혈통의 터프한 여전사'라면 '에일리언 2'에서도 이미 본 적이 있죠. 지넷 골드스타인(Jenette Goldstein)이 연기한 바스케스 상병입니다.

또 원주민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 아바타들은 '적들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와 똑같이 생긴 괴물'들입니다. 적대적이지 않을 뿐, 바로 터미네이터죠. 누가 운영하느냐의 차이가 있지만 쿼리치 대령이 아바타의 운영을 맡았다면, 이 아바타들은 바로 터미네이터가 됐을 겁니다. 아마도 카메론 팀은 스토리를 개발할 때 이런 방향도 검토했겠지만, 누군가 "그렇게 되면 그건 너무 '터미네이터잖아"라고 지적했을테죠.

물론 지금껏 카메론이 만든 영화 가운데 '아바타'와 가장 많은 유사점이 발견되는 작품은 그의 유일한 실패작^^으로 기억되는 '어비스'입니다. 미지의 지성체와의 조우, 부활의 주제, 막연한 공포와 적대감/광기, 미래 인류의 생존과 자원 등 '어비스'에서 카메론이 건드렸던 수많은 어젠다들이 '아바타'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살짝 모습을 바꾼 채로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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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내용들을 염두에 두고 보든, 이중 어느 한 시각에서 보든, 혹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보든 '아바타'는 멋지고 감탄할 만한 영화입니다. 가장 좋은 감상은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보는 것일 수도 있죠.

아무튼 아직 3D 버전을 보지 못해 그 부분에 대해선 따로 언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3D버전과 아이맥스/3D버전을 각각 따로 한번씩 볼까도 생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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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혹자는 "그래픽이 훌륭하다 훌륭하다 하길래 봤는데 만화영화인 걸 다 알 수 있더라"고 불평하시기도 하더군요. 물론 다른 분들이 '다 알 수 없어서' 이 영화를 호평하는 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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