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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폐하에 이어 간밤에는 웬 우락부락한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이 분들이 저 세상에서 심심하셨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자신들이 드라마에 나온다니까 TV를 열심히 보신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 분 또한 MBC TV '선덕여왕'에 대해 할 말이 많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또 타이핑된 글이 있군요. 매일 이런 탓에 낮에 피곤한 모양입니다. 아무튼 어제와 똑같은 과정이었다는 점만 말씀드리고 그냥 올리겠습니다.

아, 이번 글의 싸인은 흥무대왕(興武大王)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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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처음 보시는 분은 '선덕여왕이 '선덕여왕'을 봤다면' 편을 먼저 보시는 게 이해가 빠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빙의 시리즈 두번째 편입니다.^



내 이름은 유신. 당연히 김씨다. 우리 조상은 금관가야의 왕족이지만 일찌기 신라와 나라를 합쳤다. 결코 복속된 것은 아니다(불끈). 증조부 때 신라 조정에 출사했고 내 조부 무력공은 일찌기 진흥제를 도와 관산성에서 대승을 거두고 백제 왕(성왕)을 전사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서라벌의 콧대 높은 귀족들이 우리 가야 출신들을 무시하지 못하게 된 데에는 조부의 공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 서현공은 감히 만호태후의 딸인 만명부인과 혼인도 없이 사통을 했다. 어머니 만명부인은 진흥제의 여동생이며 며느리(동륜태자의 부인)인 만호태후가 숙흘종과 사통을 해서 낳은 딸이지만, 숙흘종 역시 진흥제의 동생이었으므로 부/모계가 모두 왕족인 귀인이었다. 다행히 뒷날 만호태후가 나를 보시고 자신의 외손자로 인정하셨으므로 나는 비로소 왕가와 피를 섞은 몸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아버지는 한번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어머니와 짝을 이루려 한 것도 내게 보다 나은 출세의 기회를, 더 나아가 가야 출신들이 신라에서 더 나은 지위를 얻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런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자진해서 왕실을 상대로 사기를 칠 만큼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이냐고? 일설에 따르면 나는 어머니가 임신한지 스무달 만에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사람이 어떻게 스무달을 뱃속에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소문이 퍼지게 된 건 아마도 어머니가 아버지와 야반도주를 할 때, '나는 이미 서현공의 아이를 가졌으니 더 이상 따라와서 괴롭히지 말라'는 식의 통보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어머니가 나를 가진 것은 그로부터 열달 뒤의 일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스무달 만에 아이가 나왔다'고 얘기하게 된 게 아닐까?

이런 부모님의 뜻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남달리 노력했다. 열다섯에 화랑이 된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생긴지 백년도 되지 않은 제도였지만 화랑이라는 이름이 갖는 위엄은 대단했다. 사다함같은 명문가의 자손들이 화랑이란 이름으로 피를 뿌린 뒤로 누구도 화랑을 무시하지 못했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신라는 화랑의 피를 먹고 자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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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이란 이름으로 검을 허리에 차고 나면 우리는 모두 목숨을 나라에 내놓은 셈이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만큼 삶에 대해 알지 못했고, 늘 자랑스럽게 죽어 나라의 제사를 받는 선배 화랑들의 명예에 대해 이야기했다. 감히 전장에서 적에게 등을 보이는 자가 있으면 적보다 내가 먼저 목을 쳤을 것이다.

내 나이 열다섯. 세상에서 그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

물론 나는 누구보다 병법을 열심히 연구했으므로 실제로 전장을 지배하는 것은 개개인의 용맹보다는 장수의 역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정병이라도 무능한 장군 아래에선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실전 경험을 쌓아 가며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지만, 어쨌든 아군의 희생 없이 거둘 수 있는 승리는 없었다. 필요한 피를 아끼는 것은 더 많은 피를 흘리게 할 뿐이었다. 만약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것이어야 했다.

내 나이 서른 다섯, 내게도 목숨을 바쳐야 할 시점이 왔다. 건복 51년, 아버지와 함께 출전한 낭비성 공략은 다소 무모한 싸움이었다. 고구려의 장병들은 날래고 거칠었다.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아군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병력은 뒤지지 않았고 훈련도 잘 되어 있었지만 서전의 패배로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투구를 벗고 창을 잡자 놀란 흠순(꽤 유명한 내 동생이다. '선덕여왕'에 자신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무척 상해 있다. 나는 혹시 월야가 나중에 흠순으로 개명을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이 말고삐를 잡았다. 우리 군의 총수인 아버지에게 결심을 알렸다. 흠순과 달리 아버지는 말리지 않았다.

단신으로 적진에 돌격해 내가 살아 남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미 죽음의 두려움을 아는 나이가 되어 있었지만, 왠지 자신감이 솟구쳤다.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내 피는 총명한 아우 흠순의 앞날에 날개를 달아 줄 것이었다. 만약 내가 살아남는다면, 나는 신라군의 전설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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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다소 방심한 듯 했다. 설마 한 놈이 쳐들어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달려드는 미친 놈에게 다들 길을 비켜 주었다. 내가 홀로 적진을 돌파하고 돌아오자 아군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두번째 말을 달려 적진으로 들어갈 때에는 나를 따르는 아군의 용사가 십여명이나 되었다.

우리는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적진을 누볐다. 이때에는 고구려군도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뒤를 돌아 보니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슴이 다시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독이 오른 아군이 함성을 지르며 돌격해들어오고 있었다. 이날 우리는 대승을 거뒀다.

그날 이후로 사병들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얼굴에 분칠을 하고 단신으로 창을 잡아 적진으로 돌격한 화랑은 한둘이 아니었지만, 두번이나 적진을 돌파하고도 살아 돌아온 사람은 나 뿐이었다. 나는 하늘이 돕는 신장이며, 창과 화살도 나를 꿰뚫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미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깨를 두드린 말은 하루에 천리를 달려도 지치지 않으며, 내가 벼린 창검은 부러지지 않는다고들 했다. 그래도 나는 전과 다름 없이 사졸들이 먹는 것을 먹고 사졸들과 같은 곳에서 잤다.

그 뒤로도 적진에서 위기를 맞은 적은 많았지만 휘하의 장병들은 나와 싸우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수백번 전장에 더 나섰지만, 내가 있는 주진이 돌파당한 적은 한번도 없다. 물론 나는 가끔 저 청년들을 대신해 내가 살아남는 것이 더 좋은 일인가 자문하기도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비녕자에게 적진으로 뛰어들어 죽으라고 할 수 있으며, 조카인 반굴에게 죽음으로 모범을 보이라고 할 자격이 있었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나 또한 위기를 맞았을 때 목숨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전장에서 병사는 운으로 살아남는다. 운이 중첩되면 그 장수는 신장(神將)이 되고, 그 군대는 신병(神兵)이 된다. 신장이 이끄는 신병은 결코 패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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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내 역을 맡은 배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곱상하고 야리야리한 배우들이 인기라고 들었는데 무엇보다 남자답고 무게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보다 보니 점점 속이 상했다.

나를 따르는 용화향도를 철없는 시골 소년들처럼 그린 것까진 이해한다. 천여명에 달했던 용화향도가 스물 남짓 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화랑으로서 인정받기까지 내가 들인 노력을 생각하면 내가 역경을 딛고 일어난 것으로 묘사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너무 하는 일이 없었다. 국선이 되고, 풍월주가 된 뒤에도 드라마 속의 나는 도대체 위엄이라는 게 없었다. 나는 휘하 화랑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국선이었다. 화랑들이 나를 그토록 우습게 여겼다면 내가 어떻게 신라군의 수장이 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드라마 속의 나는 사소한 계략에도 쉽게 빠져드는 용렬한 인재였다. 내가 그렇게 단순했다면 나는 일찌기 전장의 백골이 되었을 것이다. 일찌기 손자병법에도 병불염사(兵不厭詐)라 했지만 적의 계략을 꿰뚫는 것은 장수의 기본이다. 내가 저렇게 우둔하고 우직하기만 한 인물로 그려지다니, 슬슬 짜증이 났다.

대체 저 사람들은 김부식이 쓴 내 열전(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전)을 읽어 보기는 한걸까? 사방에 간첩을 보내 적정을 정탐한 건 염종이 아니라 나라는 걸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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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황고가 등극하신 뒤로 나는 신국을 수호하기 위해 신명을 바쳤다. 그런데 어느날 드라마를 보니 내가 흰 옷을 입고 옥에 갇혀 있었다. 기가 막혔다. 이 드라마를 만든 이들은 나를 약 천년 뒤 사람인 이순신과 착각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다음 회에 내가 졸병으로 강등되어 싸우는 장면(백의종군)이 나오는게 아닐까 의아해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본래 이 무렵의 나는 나가서 싸우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장의 승리를 완성시키는 것은 뛰어난 내정이었다. 그리고 나의 미래를 춘추에게 걸기로 했다. 좋은 장군의 재목은 아니었지만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화술, 그리고 놀랍도록 빠른 상황판단은 내가 본 최고의 인재였다.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사람 가운데 이렇게 뛰어난 인물이 있다는 것은 신라의 복이었다.

물론 나와 춘추의 동맹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자가 비담이었다. 그와 여왕 폐하가 사귀는 사이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아, 여왕폐하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나를 좋아했다는 대목이 나오던데 참 보기에 민망했다. ...여자와 관련된 스캔들은 천관녀 하나로 족하다.

아무튼 비담은 자신이 왕이 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듯 하지만 이거야말로 최후의 발악이었다. 어차피 전장에서 단련될대로 단련된 나의 군사들에게 비담의 무리는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명활산성에 웅거한지 10일만에 비담군을 격파했다. 물론 연을 날린 것도 나의 계책이긴 했지만, 그게 그리 중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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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대목에서도 드라마 속 나는 그저 무능한 장군일 뿐이었다. 적군의 이동을 눈치채지 못했고, 제대로 공성전을 펴지도 못했으며, 비담이 스스로 자기 편을 해하지 않았다면 난을 진압하지도 못했을 것 같았다.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내가 보기에도 이런데 과연 누가 드라마 속의 나를 명장이라고 생각할까. 예상대로 내 역할을 맡은 배우는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주목을 덜 받는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무능하게 그려지는 건 정말 참기 힘들다. 어차피 드라마는 만드는 사람 마음대로였다면, 그냥 소년시절만 나오고 말았으면 할 정도로 창피했다. 이 긴 드라마에 나오면서 내가 나름 머리를 써서 한 것이 불붙은 연을 날린 것 하나라면, 이건 나에 대한 모욕이다.

여왕께서는 드라마 홈페이지의 기획의도를 보고 분노하셨지만, 사실 드라마 시작할 때만 해도 옛날이다. 드라마에서 미실새주가 죽고 나서 그 작가가 이후의 진행 방향을 거론하며 "천하의 기재가 드디어 빛을 발한다. 무적의 군신으로서 서라벌 최고의 중망을 가진 장군인 김유신. 그토록 비담이 갖길 원했던 ‘천년의 이름’을 당당히 거머쥔다. 김유신은 앞으로 삼국의 통일이라는 거대한 꿈을 위해 덕만을 끝까지 지지하고 덕만 역시 끝까지 김유신을 신뢰함으로써 둘의 완전한 결합은 이뤄진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뭐가 천하의 기재고 뭐가 무적의 군신인가. 드라마 본 사람들에게 물어봐라. 차라리 말이나 말지. 완전한 결합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興武大王.

P.S. 심지어 전화기 광고에도 바보로 나오다니. 가문의 치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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